Posted on 2004/11/07 23:49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여성은 근골격계 직업병에 약하다'고 한다. 여성은 힘이 없고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능력도 떨어지며 통증에 대한 인식의 역치가 낮아 같은 통증에도 쉽게 '아프다'고 얘기하기 때문에 여성의 근골격계 직업병이 남성보다 많다고 한다. 그나마 여성을 조금이라도 '안다'고 하는 학자들은 여성들이 절대적으로 많이 하고 있는 '가사노동'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한다. 높이가 키에 맞지 않아 인간공학적으로 좋지 않은 조리대에서 이루어지는 요리와 설거지, 그리고 손목을 많이 돌리게 되는 빨래나 걸레 빨기 등의 작업, 무릎을 꿇고 이루어지는 청소 등의 작업이 노동을 하는 '여성'의 근골격계 직업병에 대한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한다. 집안 일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아마도 위의 논리에 모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이게 다 일까?
최근의 근골격계 직업병에 대한 조사의 흐름은 정규직 남성노동자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금속사업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연구는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진행된 몇 가지 조사와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문제의 심각성과 그 원인에 대한 이유를 추론해 볼 수 있다.



춘천에 있는 P사의 근골격계 조사사업을 진행할 때였다. 100여명이 조금 넘는 사업장으로 남성과 여성이 거의 반반씩을 차지하고 있다. 이 사업장의 조사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는데 미국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 기준의 증상 유병률이 남성은 63.8%인데 반해 여성은 조사대상자의 100%가 기준을 만족하는 것이었다. 설문조사 이후 실시한 1차 검진에서는 그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손가락의 관절염이 심해져 손가락이 휘고 숟가락을 들지 못할 정도의 어깨 통증을 호소하고 집에 가서는 집안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깨, 손목, 손 등 많게는 7개가 넘는 질병을 한 여성노동자가 가지고 있으니....정말 '종합병원'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유독 여성노동자에서 심할까?'라는 나의 의문은 공정조사를 하면서 쉽게 해결되었다.
원인은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가 하는 구체적인 작업의 차이였다. 여성은 끊임없이 정신없는 속도로 돌아가는 라인에 서서 쉬지 않고 작업을 하고 남성은 주로 물류나 공무와 같은 지원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여성들이 기계의 부속품이 되어 라인의 속도에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로 일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근골격계 직업병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또 하나의 예는 충남에 있는 Y 사업장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사업장은 금속사업장으로서 주물작업이 많은 사업장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주요한 노동과정을 남성들을 통해 이루어지며 여성들의 경우에는 '검사' 등의 소위 '가벼운' 작업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사업장의 주된 노동과정은 정말로 들기가 어려울 정도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중량물 작업이었다. 따라서 그러한 작업을 하는 남성들이 더 근골격계 직업병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1차 검진을 진행하다 보니 남성들의 증상 호소율에 비해 소위 '가벼운' 작업을 한다는 여성들의 호소율이 높은 것이었다. 검진을 진행하며 이것저것 물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육체적인 작업강도는 남성이 여성보다 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남성은 자신의 작업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라인작업이 아니라 쉬고 싶을 때 적당히 쉴 수 있었고 작업량을 스스로 정할 수도 있다. 반면에 여성들이 하고 있는 작업은 이러한 자율성이 전혀 없었다. 별로 '무겁지 않은' 제품을 검사하는 일이었지만 생산된 제품은 그날 반드시 검사를 하고 포장이 되어 나가야만 한다. 따라서 여성 노동자들은 잠깐의 쉬는 시간도 없이 계속 같은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노동조건하에서 여성 노동자는 어깨등의 통증을 거의 대부분 호소하고 있었다. 특히 남성노동자들 중에서도 이러한 노동자들의 통제력이 없는 주요 부서의 유병률은 다른 부서에 비해 높았다는 것을 보면 노동에 대한 노동자들의 통제력이 주요한 이유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 여성과 남성의 직능을 구분함으로 인해 여성들은 더 많이 근골격계 직업병에 걸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식품이나 화학과 같은 섬세한 라인 작업에는 집중적으로 여성을 투입하여 최대의 이윤을 창출하고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감당할 수 없는 작업인 경우에는 여성만이 하는 작업을 두고 철저히 통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들은 이렇게 구별되는 노동과정 안에서 골병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들의 골병의 원인이 이러한 노동과정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능력이 없다거나, 단지 약해서라는 이유만으로는 자본의 노동편재를 파악할 수 없다. 마치 힘들고 더러운 일에 비정규직을 투입하는 것처럼 특정 작업에 여성들을 집중적으로 투입하여 통제 함으로 인해 최대의 이윤을 얻어낼 수 있는 잔머리라고 할 수 있다.

여성노동자가 남성노동자에 비해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지 않는 다는 이유만으로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여성노동자들은 '육체적'으로 덜 힘든 일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피를 말리는 자본의 통제 속에 노출되어 있고 따라서 더욱 심한 노동강도에 시달리며 골병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들의 근골격계 직업병을 예방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통제'의 사슬을 깨야만 한다. 생물학적으로 여성들이 못하는 일이 있는 만큼 여성만이 하는 노동과정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과정에서 여성 노동자의 '자율권'과 '작업장 통제'의 정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여성노동자들을 골병에서 구해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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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7 23:49 2004/11/07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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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류 2004/11/08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쉬~ ^^
    근데 '생물학적으로 여성들이 못하는 일이 있는 만큼 여성만이 하는 노동과정은 생길 수밖에 없다'는 무슨 말인지 몰겄네.
    글구 작업장 밖에서의 여성의 권리가, 어쩌면 더욱 중요한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글 읽으면서 든다오.
    이번 노동영화제에 '여성전사들'이라는 다큐 있던데, 시간 맞으면 같이 봄세.

  2. 해미 2004/11/08 0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류//생물학적으로 여성이 못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여성이 할 수 있고, 게다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에는 여성을 중심으로 한 노동편재를 짬으로 인해 여성만이 하게 되는 공정들이 생긴다는 거겠지...(좀 오래된 글이라..ㅋㅋ)
    작업장 밖에서의 여성의 권리가...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가부장성의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에는 공감을 표하나 이 글은 사실 '여성이 더 아프다..가사노동등등 땜시'라는 일반적인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기 위한 글이었어.

  3. 해미 2004/11/08 0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류//그러한 가사노동으로 표현되는 일상의 가부장성이라는 것이 결국 노동과정에서의 여성에 대한 집중적 착취를 포함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덩...글을 쓰기 시작한 초기의 글인지라...짐 보니 좀 허접하다. ㅋㅋ
    참 그 영화는 17일 2시, 19일 6시더군.19일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야총한테 일을 떠맡기면..ㅋㅋ

  4. 미류 2004/11/08 1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물학적으로 못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특정 노동이 여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노동을 여성화하기 때문에 '어떤' 일들은 '생물학적으로 못하는 일'이라고 여겨지는 건 아닐까 싶어서... 글구, 가사노동 때문에 더 아프다는 지적은 중요한 것 아닐까. 어쩌면 여성노동이 특화되는 것-여성노동의 비정규직화 등-은 가사노동이 여성에게 강요되는 것과 동일한 맥락에 놓여있는 것일 수도.
    and 글이 허접하다구 말해버리면 민망해서 덧글 달겠냥! ^^

  5. 해미 2004/11/08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류//허접해두 민망해하지 말고 덧글 써줘야 발전이 있지 않겄냐? 사실 이 글을 쓸 무렵 '여성'의 문제는 나에게 관심이 아니었어. 아마 지금 쓴다면 글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네. 너의 문제의식에는 동의함. 물론 약간의 토론거리는 있을 수 있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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