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8/06/10 09:21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한참전에 쓴 글. 부러진 손가락을 핑계로 이제야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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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이 가득한 파란나라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4월 9일 총선이 끝나면서 우리나라는 말 그대로 ‘파란 나라’가 되었다. 일부를 제외하고 전국이 한나라당의 파란색으로 뒤덮인 것이다. 박근혜와 이회창을 비롯한 보수파까지 포함한다면 국회의원의 3분의 2가 서로 진정한 보수라고 선명성 경쟁을 하는 사람들로 채워진 것이다. ‘파란 나라를 보았니? 꿈과 희망이 가득한’이라는 동요가 무색하게 실로 파란 나라가 암울하게만 느껴진다.

 

대통령의 당선과 총선 이후 매일매일 수많은 정책이 쏟아지고 하나하나에 세상이 시끌시끌해지고 있건만, 이상하게도 조용한 영역이 있다. 바로 여성 정책 관련 부분이다. 뭐, 어찌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싶기도 하고 어찌 생각하면 오히려 정책을 안 내는 게 도와주는 일이다 싶기도 하다.

 

이명박이 누구인가? 대통령 후보 시절 건설회사 사장 시절 이야기를 하며 ‘현지에서 오래 근무한 선배는 마사지걸을 고를 때 덜 예쁜 여자를 고른다더라. 얼굴이 덜 예쁜 여자들이 서비스가 더 좋더라’는 발언으로 그 여성관에 심각한 문제제기를 받은 적이 있는 바로 그 인물 아닌가? 또한 이번 4・9 총선에서 정몽준 후보는 MBC 기자에 대한 성희롱으로 선거 막판 물의를 일으켰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몽준은 국회의원으로 당당히(?) 당선이 되었으며 심지어 당권을 노리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2003년 10월, 서울시 부시장 시절, 경향신문 여기자 성희롱 논란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정두언을 공천하였고 2006년 2월 동아일보 여기자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였던 최연희도 공천을 하였으며 이 두 가해자 역시 모두 당선되었다. 가히 대통령부터 국회의원까지 성희롱 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니 차라리 여성 정책을 아는 체 하며 오히려 문제를 심화시키는 정책을 내놓는 것 보다는 조용히 있는 것이 해는 끼치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여성정책 관련 방향은 이미 ‘내용이 없다’는 비판에 직면해있다. 여성가족부를 없애려고 하다가 여론에 밀려 여성부로 축소・개편했던 정황을 따져 보면 어찌 보면 이 역시 당연한 일이다.

 

암울한 파란나라의 여성 정책 기조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여성 공약과 관련해서 공직에 여성 할당을 늘리고, 여성을 다시 일하게 하기 위한 사회적 지원기구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리고 보육 및 임산부에 대한 사회적 지원과 가족 친화적 기업 만들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인수위를 거치면서 ‘양성평등 수준 향상’, ‘여성을 위한 맞춤형 일자리 만들기’, ‘여성폭력 취약 계층에 대한 보호대책 마련’, ‘수요자 중심의 보육정책 개편’, ‘임신에서 취학 전까지 의료서비스 지원’, ‘보육시설 미이용 아동지원’등으로 구체화 되었다.

 

그러나 이는 말만 구체화일 뿐 실제적으로는 축소에 불과하며 그 내용 역시 빈약하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시절 여성 정책의 방향으로 “다수 여성을 위한 공약”을 내세웠고 “공약의 우선순위를 일반주부, 서민층 여성, 저소득층 배려에 할당”한다고 하였다. 즉 이명박이 말하는 ‘다수’에는 비혼 여성도 없고, 일하는 여성도 없었다. 오히려 ‘여성=출산=보육=가사’와 같은 가부장적인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한편 취임식에서는 “양성평등 정책을 추진해서 시민권과 사회권의 확장에 힘쓰겠다”며 “더 많은 여성이 의사결정의 지위에 오를 수 있도록 기회를 늘리고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여성장관은 여성부 장관 단 1명이고 차관 중에서도 보건복지가족부 차관 1명만이 여성이다. 주요 공직에서의 여성 비율의 양적 대가 실제로 양성평등에 얼마나 기여할 것이냐에 대한 논란을 별개로 치더라도 ‘양적 확대’라는 핵심 정책 기조 역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3월 21일 진행된 여성부의 청와대 업무보고 역시 부실하기 그지없었다.

 

 ‘미래를 여는 여성, 함께하는 평등사회로’를 기치로 진행된 이날의 업무 보고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여성부는 ‘양성평등기본법’이라는 이름으로 제안한 패러다임을 달성하겠다고 했으나 그 구체적인 내용이나 방법은 이전의 정권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또한 여성부의 기존 예산중 95%, 인력의 50%가 보건복지가족부로 이관되었다. 여성부는 100명으로 구성된 초미니 부서가 된 것이다. 돈도 없고 사람도 없는 여성부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명박 정부의 여성부에는 결국 여성이 없고 가족만이 있다. 실로 암울한 정책기조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기조가 이 모양이니 세부 정책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다. 이명박 정부의 여성 정책은 기조의 부재 속에 세간의 주목을 끈 사건에 대한 대응 수준도 되지 않는다.

 

구호뿐인 양성평등, 문제투성이 성폭력 예방

 

여성부는 21일 발표에서 95년 제정된 ‘여성발전기본법’을 ‘양성평등기본법’으로 개정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정책이 남성과 여성에 미칭 영향을 미리 분석하는 제도인 성별영향평가와 정부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칠 영향을 미리 검토하는 성인지 예산제도를 통해 양성평등을 구현하겠다고 했다. 이는 이미 이전 정부시절부터 추진되던 정책으로 새로울 것이 전혀 없는 구호에 불과하다.

 

후보 시절 이야기 되던 ‘여성 관리직 비율 30%를 목표로 한 임용 목표제 및 승진 할당제 실시’와 같은 앙상한 양적 확장조차 실행계획이 없다. 또한 성인지 예산 제도를 위한 구체적 기구나 인력의 배치가 전혀 계획되어 있지 않아 그 실효성이 심각하게 의심되는 상황이다.

 

한편 여성부는 최근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어린이 납치와 성범죄 및 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성폭력 근절 대책을 추진하면서 전국 공원 및 놀이터에 CCTV 설치를 확대하고 스포츠계 성폭력 예방 가이드라인 마련을 하겠다고 밝혔다. 여성폭력에 피해자에 대한 지원 센터의 운영을 활성화 한다고 했다. 참으로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CCTV를 만든다고 폭력이 예방되는 것도 아니고 (이미 여자어린이를 납치하여 성폭력을 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남성을 단순폭력으로 처리하여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는가?) 이는 오히려 일반적인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것이다.

 

양성평등이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고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폭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사후약방문식의 처방이 아니라 체계와 구조 그리고 투자가 필요하다. 여성의 문제를 ‘여성부’에서만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서에서 각각의 정책에 대해 성인지적 관점에서 고민하고, 이를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추진 중이던 과제들을 유지하는 수준의 여성부가 아니라 성평등한 사회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구체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예산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구색을 맞추기 위한 여성 활용이 아니라 여성지위 향상과 성평등 실현이라는 목표 하에 다각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공직 사회 등에 여성 할당제와 같은 양적인 확대뿐만이 아니라 양적인 확대가 가능하기 위한 여성에 대한 교육과 생애 과정상의 사회적 차별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성폭력의 예방을 위해 CCTV를 달고 가이드라인을 만들 것이 아니라 성폭력 범죄관련 형법을 개정하여 성적자기결정권 침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분명이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과 결혼한 이주 여성에 대한 폭력만을 다룰 것이 아니라 모든 이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지지와 지원 방식이 필요하고 단속추방을 없애서 이들이 국가적 억압 속에서 남성의 폭력을 감내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의 고리를 깨야 한다.

 

여성의 빈곤을 양산하는 노동정책

 

여기에 한술 더 뜨는 것은 여성 관련 노동정책이다. 이미 여성의 67%가 비정규직인 우리의 현실 속에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여성의 비정규직화와 이로 인한 빈곤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청년 여성을 대상으로는 지로 가이드와 진로 네트워크 구축 등의 지원을 하고, 중장년층의 경우에는 ‘여성 다시 일하기 센터(이하 다일센터)’를 운영하여 취업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한다. 그리고 여성친화적 기업문화를 조성한다고 한다. 이 외에 여성의 노동에 대한 정책은 거의 없다.

 

문제는 있는 정책 역시 그 실효성이 없거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뿐이라는 사실이다. 지원센터를 만든다고 해서 여성이 취업이 잘 된다고 할 수도 없으며 설령 취업이 늘어난다고 해도 이는 일자리의 질을 전혀 고려치 않은 정책이다. 또한 다일센터와 같은 재취업 교육기관에서 여성에게 제공하는 일자리 역시 지금의 자활이나 사회적 서비스와 관련도니 일자리에 비추어봤을 때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일 것이 뻔하다.

 

후보시절 이명박은 ‘사회서비스 분야 공공부문 일자리를 100만개 창출’하겠다고 했다. 소위 ‘여성 맞춤형 일자리’가 바로 그것이다.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절반 정도에서 성희롱의 경험이 있는 서울시 가정도우미나,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계약을 해지 당하는 청소용역 노동자들, 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간병인 노동자들, 최저임금 수준으로 내몰리면서 자존감에 심각한 손상을 받고 있는 의료급여관리사, 자신의 고용 형태도 모른 채 근로 계약서를 작성했던 KTX 승무원들, 이들이 소위 말하는 ‘사회서비스’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이다.

 

이러한 일자리들은 불안정하고 노동조건이 안 좋기로 유명한 직장이다. 재계약을 위해 성희롱을 참아야 하고, 최저임금이라도 받을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만 버틸 수 있는 직장인 것이다. 몸이 아파도 눈치가 보여 제대로 쉴 수 없는 그런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과연 여성을 위한 정책이냐는 것이다. 한편 가족 친화적 기업을 만든다는 미명하에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한다는 정책 역시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물론, 이런 것들만 제대로 시행되어도 현재의 여성의 어려움에 숨통이 트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육아와 출산이라는 것에 대한 여성의 책임만을 강조하는 지금이 현상을 고착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여성에 대한 노동정책은 돌봄노동이 마치 여성의 전유물인양 사고하고 육아와 출산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이명박 정부의 가부장적 생각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여성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율은 67%에 이른다. 임금도 남성에 비해서 66%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여성은 사회 최저층으로 빈곤에 처해 있다. 이러한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는 보육 및 가사의 전담, 교육과정에서의 불평등, 저학력, 일-가정의 부담, 저숙련으로 인한 비정규직화 등 복합적 문제에 의한 것이고 이런 조건 때문에 또한 저임금과 폭력을 감내하게 만들고 이것이 자녀에게 다시 전달되는 악순환을 그린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의 핵심은 여성이 평등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에 있다.

 

즉,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기간제법을 폐지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 한편 이러한 일자리들의 노동조건을 대폭 개선해야 한다. 또한 여성이 밖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보육과 가사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분명히 하여 공공 보육 시설에 대한 확충과 질적 향상 방과 후 시간에 대한 공적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보육의 질 향상을 위해 보육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과 보육서비스의 시설, 서비스의 확충 또한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과제이다. 한편 출산 휴가와 육아휴직을 확대하는 한편 보장범위를 넓혀야 하고 여성이 저임금 노동이라도 감내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교육 시장에 대한 규제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한 부모 가정이나 비혼 여성, 이주 여성을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역시 똑같은 사회구성체의 성원으로서 존중 받고 자신의 생활을 위해 평등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각종 지원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정책, 평등하게 일할 권리라는 기조를 세워라.

 

2007년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한국은 성격 차에 있어서 조사대상 128개국 중 97위에 불과했다. 호주제가 폐지되는 등의 성과가 있기는 했지만 세계 10위 수준이 경제 수준에 비하면 참으로 초라한 성적표이다. 이런 초라한 성적표에도 불구하고 최근 재계는 규제완화라는 미명하에 △육아휴직 중 해고 관련 벌칙 규정 완화 △직장 보육시설 설치 의무 완화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벌칙 규정 완화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가뜩이나 기반이 취약한 여성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과 차별 방지에 필수적인 제도 자체를 흔들겠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고 여성에 대한 천박한 가치관을 가진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재계의 요구에 귀가 솔깃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규모도 줄고 예산도 줄고 내공이 깊은 장관을 모시고 있지도 않은 여성부가 이런 흐름을 막는 것은 벅차 보인다. 정부에서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터라 공격적으로 정책을 입안하고 제도를 만들어 가기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정부기관에서 여성 정책에 적극적일리도 만무하고 국회에는 성희롱의 주범들이 우글대니 사면초가가 따로 없다. 그러니 내용이 부실한 것이 일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뭐, 정부의 장관 인선과정에서 특히 여성들의 발언이 문제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여성은 무능하거나 부도덕해 공적인 일을 못한다’는 세간의 편견을 확장하기 위한 음모가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마당이니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다’라는 의견에도 일견 고개가 끄덕여진다.

 

더군다나 이명박 정부의 여성 정책에는 여성이 아니라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여성’이나 ‘가족’만이 있다. 노동유연화가 사람들의 목을 죄어오는 현재 여성 정책의 핵심은 여성에게 전가되는 가정과 열악한 노동조건이라는 이중 부담을 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가사 및 육아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기조 하에 그 영역의 확장과 내용의 강화가 필요할 것이며 노동조건은 실질임금의 보장과 일자리의 안정화, 노동조건의 개선이라는 것이 같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현실은 참으로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평등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 뚜벅뚜벅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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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0 09:21 2008/06/10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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