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화의 방법인 참여행동연구
2004년 창립이전부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연구방법은 ‘참여행동연구 (participatory action research)'라는 단어로 정리되어 왔다. 이는 2002년 대우조선 근골격계 사업을 할 때부터 보고서에 공공연하게 등장해왔으며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정리되어 있다.
전통적인 연구에서 서로 고립되어 있는 연구, 교육, 활동의 과정들을 서로 결합한 것으로 연구자와 피연구자가 서로 구분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De Kong & Martin 1996). 참여행동연구 적용의 각 단계는 연구의 착수 ⇨ 서로를 알기 ⇨ 서로의 신뢰를 획득 ⇨ 문제의 발굴 ⇨ 작업자들의 건강에 관련된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동의를 구해나가는 과정 ⇨ 의결된 내용을 의사로 표현 ⇨ 평가에 반영 ⇨ 연구보고서의 발간등의 순서로 되어 있다(Ritchie 1996). |
한노보연의 참여행동연구는 공식적으로 토론되고 확인된 바는 없지만, 연구 활동이라는 것이 현장의 주체들의 필요를 읽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현장의 주체들을 조직하고 활동의 기반을 만드는 한편, 연구자와 연구대상인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통제를 확대하기 위한 조직가로서 같이 서는 것을 의미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 한노보연에서 진행한 많은 연구들은 보고서의 첫머리에 ‘참여행동연구’를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연구위원을 조직하면 되는 것으로, 또는 조합원 교육을 배치하면 되는 수준으로 진행되어온 측면이 있다. 특히, 참여연구의 성과라는 것이 한 번의 연구 사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 맺음과 토론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연구활동이라는 것이 조급했던 것일 수도 있다. 한 차례의 연구 사업이 아니라 이후의 관계까지를 통시적으로 검토하면서 실질적으로 ‘참여행동연구’를 과연 구현했는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참여행동연구’의 역사와 개념
참여행동연구는 다양한 전례를 가지고 있다. 이는 지식이라는 것이 권력집단의 이해를 대변하고 그들의 위치를 사회에서 더욱 공고히 하는데 복무해 온 것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 시작되었다. 참여행동연구는 초기에 저개발 국가에서 빈곤과 착취에의 사회구조적 이유에 대한 분석을 위해 사용되었고 공동체에 기반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보건의료 시스템에 대한 접근성을 평가하는 연구에 활용 되었다. 이러한 연구는 주로 변화를 위한 행동을 유도하기 위한 방법으로 공동체와 함께 진행하는 연구 방법론으로 자리 잡아 왔으면 현재는 선진국에서 정신보건 등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참여행동연구의 발전은 건강과 사회적 문제가 결합되면서 전통적인 방식의 '외부자인 전문가'적 접근으로는 공동체에 개입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인식에서 시작되었다. 연구과정에서 모든 관계자들을 평등하게 포함시키고 각각이 취할 수 있는 독특한 강점들을 인식해가는 과정에서 건강불평등을 줄이고 공동체의 건강을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 변화에 대한 지식과 실천의 결합을 목표로 하는 연구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참여행동연구는 연구방법론이 아니라 연구에 대한 태도(orientation)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누구를 위해서 연구를 설계하고 수행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연구과정의 각각의 단계에서 권력의 위치를 고려하는 연구자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참여행동연구의 과정은 좀 더 민주적이며 참여자들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고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고 전문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평가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 속에서 연구자와 연구대상자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되면서 변화의 원동력이 생기기 시작한다.
참여행동연구는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통해서 탄압받는 사람들의 해방을 위한 것이다. 비판적인 의식을 성장시킴으로서 부당한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의사결정구조에 대한 변화의 기원이 되는 현실을 집단이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참여행동연구는 모든 행동은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사회 권력의 분배와 권력을 유지하는 핵심적 기전인 지식의 생산을 통제하는 것이다. 세상에 벌어지는 많은 연구들은 가치에 기반하지 않고 이루어지지 않으며 따라서 중립적인 연구는 없다. 지식은 다양한 방법으로 생산이 되고 연구는 고도로 훈련된 과학자들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엇은 아니다. 타당성 있는 연구는 일상의 모든 사람들이 할 수 있고 실제로 땅에 발을 디딘(grass-roots) 과학이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전망을 줄 수 있고 그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고 가고자 하는 곳은 어디며 어떻게 갈 수 있는지 알려줄 수 있다.
한편 최근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는 참여행동연구는 그 기원과는 조금 다르게 건강증진의 차원에서 연구 대상들을 ‘교육’하는 수준으로 그치는 경우가 있다. 연구 대상자들을 단순한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연구를 기반으로 한 사회변화의 한 요소로 생각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으나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들이 변화 과정에서의 ‘주체’가 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참여행동연구’의 방법과 핵심
참여행동연구의 방법은 평가와 실천의 지속적인 과정을 전제로 한다. 교육과 분석, 조사, 행동으로 구성되는 순환의 연속이다 (그림 1). 이 과정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예측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연구성과로서의 논문을 발표하는데 더딜 수밖에 없고 연구비를 조달하는데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러한 학술적 측면에서의 단점은 ‘소위’ 전문가 집단에서 ‘합리적’인 또는 ‘과학적인’ 연구로 인정받는 과정에서 한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정’에 연구자인 사람들이 가치를 둘 것인지의 여부는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일 것이다.
방법론을 고민할 때 더 중요한 것은 참여와 행동을 함께할 ‘주체’들의 변화나 내용, 그들의 요구와 필요를 읽고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한 방법론적 고민이라 할 수 있다. 참여행동연구의 무게중심은 주체에게 가 있어야 하며 이들의 변화와 이들의 내용을 반영한 연구 방법이 참여행동연구의 순환 속에 구체적으로 녹아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참여행동연구를 평가하고 이해하기 위한 핵심 개념으로는 (1) 참여, (2) 권력과 권한 강화, (3) 평가와 행동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참여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서 전문가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전략을 향상시키고 민주적인 원칙을 준수하겠다는 약속을 의미한다. 참여를 통해서 대해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고 현재를 변화시키기 위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게 한다. 참여를 이끌어내고 좀 더 효율적이 되게 하기 위한 고민과 함께 참여행동연구에서 변화의 과정에서 주체가 된다는 ‘참여’의 진정한 목적과 그 목적을 실행하기 위한 기술이 필요하다. 참여를 효율적으로 또는 효과적으로 이끌어 낸다는 것은 연구자의 시선에서 일방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어떤 포인트에서 연구 대상 집단 및 개인에게 개입을 하고 그들의 표현되지 않거나 인식되지 않은 요구와 필요를 끌어내어 동기 부여를 할 것이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연구자 스스로도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권력은 참여행동연구의 결정적인 토대가 되는 개념이고 참여한 사람들의 권한(empowerment)을 강화 시키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권한강화는 두 사람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 사이의 권력관계의 질에 역동적 변화가 생기거나 이동이 생긴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적 자원에 접근하는데 있어서의 권력의 차이를 줄여서 불평등을 감소시키고 관계를 더욱 평등하게 만드는데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권력의 변화를 유도하고 그것에 기여하는 것이 참여 행동 연구의 핵심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 과정에서 연구 대상자들이 현재의 시점에서 어떤 과정에 있고 그 공간에서 어떤 일상을 살아가고 있느냐가 중요한 고려지점이 되어야 한다. 물론 일상과 삶조차 권력관계의 반영이기는 하지만 ‘권력’이라는 단어로 정리하기에는 그들에게 작용하는 소위 ‘권력’이 다층적이고 복잡하다. 따라서 공간 자체에서 작용하는 권력뿐만 아니라 그들의 개인적 일상에 작용하는 내밀하고 다층적인 관계와 기전들을 고려하여 이에 대한 변화를 동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을 찾고 만들기 위한 세상에 대한 재인식과 함께 이를 위한 변화가 일상적 호흡으로 다시 정리를 하기 위한 권력관계와 주체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환경과 조건에 대한 고려가 같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비판적 이론가는 그들이 연구한 문화에 대한 급진적 질문에 의해 변화를 위한 행동을 유발하기 위해 사회적 실제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진행하는 것이다. 집합적인 반성과 행동은 이 접근 방법에 있어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참여행동연구에서는 발전을 위한 공동체의 실천을 전제로 하여 억압과 착취에서 해방되기 위한 다양한 역량을 키우는 과정으로서의 평가와 실천을 노정한다. 평가의 과정은 참여행동연구를 통해 사회 변화에 대한 실천과 행동을 얼마나 이루어졌느냐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이 연구에 참여한 주체인 연구자와 연구대상자의 필요가 서로에게 읽히고 읽었느냐도 중요한 지점이다. 이런 관계의 형성 속에서 실제로 필요와 변화에 대한 내용과 방식들이 개인의 판단과 인식이 아니라 집단의 경험과 인식으로 재정립되었는냐가 중요한 평가지점이 될 수 있다.
경험과 평가
이렇게 봤을 때 우리가 하고 있는 연구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그림 2의 평가 틀에서 생각하자면, 한노보연이 그동안 진정한 참여행동연구를 해왔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연구자가 리더가 되고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조언을 하는 수준이 참여행동연구의 마지막 수준이고 그 다음 단계가 공동연구자로서의 역할을 연구자와 지역사회가 같이하는 것이라면 이는 ‘일시적’으로 성공했다고 평가할 만한 사례가 있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공동체가 연구의 리더가 되고 지속적인 조언을 주는 사람으로서 연구자의 위치가 자리매김 되기도 하였다. 이는 분명한 연구상의 진전이고 실제로 우리가 그 동안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참여행동연구를 위한 조직과 선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연구는 연구 파트너로서의 현장이 존재하는 것이고 일부에 있어서 연구결과에 대한 의견과 개선방안에 대한 대응을 같이 모색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현장에서 연구에 참여한다고 하여 ‘참여행동연구’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큰 한계는 지속성과 평가와 반성에 기반한 다음 단계의 실천을 기획하는, 그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일상적 소통과 실천의 체계를 갖추고 지속적인 활동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왔으나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여전히 노동조합의 임기와 성향에 따라서 1년 혹은 2년짜리 사업을 하고 있으며 이 사업들의 연계성을 확보하고 현장의 요구와 필요를 진전해 나가기 위한 장기적 흐름을 만드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나가며
지금까지 참여행동연구의 철학적 기원은 한노보연의 문제인식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으나 지금까지의 다양한 현장 사업들에 대한 ‘참여행동연구’ 관점의 평가는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참여행동연구’라는 틀에 대한 우리 나름의 정의와 정리가 필요하다. 우리의 연구가 주체형성이라는 측면에서 또는 연구 내용의 사회화라는 측면에서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평가하고 앞으로 진정한 ‘참여행동연구'가 되기 위해 어떠한 것들이 필요하고 어떠한 수준에서 무엇을 제시하고, 실천할 것인지에 대한 유형화와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참여행동연구라는 것이 그동안 우리가 수행해 온 연구 사업을 평가할 뿐 아니라 일상적 점검의 기준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참여행동연구의 핵심은 연구의 과정을 통해 주체인 연구자와 연구대상자 모두가 어떻게 변화했고, 서로의 필요를 공유하고 이해를 높였는가가 중요한 지점일 수 있다. 건강 증진 차원의 행동과 지표가 어떻게 변했느냐도 중요하지만 주체들이 서로의 필요와 변화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얼마나 공유했느냐가 더욱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이 실제 변화를 위한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연구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연구자들은 그들의 공동체에 관찰자이거나 공동체 친화적인 연구자가 아니라 그 공동체의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fessee 2008/12/26 1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딩시절 이름만 배웠던 "참여 관찰법"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것 같군요 +_+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어케 활용할 방법이 없나 궁금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