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5/02/19 15:36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활동을 재개하고 얼마후... 우연히 집회판에서 후배를 보았다. 의대 후배도 아니었고 잘 알던 후배도 아니었다. 오가며 술 한잔씩하고 안부 물어보는 그런 후배였다.

 

그 후배가 사내하청으로 한 사업장에 들어가겠다고 나를 병원으로 찾아온것이 작년 초였던것 같다. 청력이 약간 이상해 채용신검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인지라 정밀검진을 해서 합격판정서를 내어준 기억이 있었다. 현장에 들어가겠다는 후배를 보면서 어느 조직에 속해서 가는 건지, 그런 현장 활동을 결의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지 자세히 물어보지 못했다. 그런 것을 꼬치꼬치 물어볼 만큼 현장 활동이라는 것에 대해 난 잘 알지 못했고, 그 친구와 나의 관계는 얇았다. 그 이후 아주 가끔씩 잊혀질 법 하면 한번씩 연락이 오던 후배였다.

 

그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무처 회의가 끝난 후 술잔을 기울이던 새벽 무렵이었다. 술이 한참 취한 후배는 힘듦을 토로하고 있었다.

 

조합도 없는 사내하청으로 중국인들과 함께 모처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번 회사에서 옮긴 모양이었다. 지난번 현장이야 조합두 있는 대공장 이었지만 이번 현장은 중소규모의 금속사업장이었다. 게다가 같이 일하는 소위 그 후배의 '조직화 대상'은 말도 잘 안 통하는 중국인들이라고 했다.

 

그런 그 친구가 힘듦을 토로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안 때문이었다. 상층에서 그렇게 결정해 버리면, 그렇게 정파적으로 진행되 버리면 자기같은 사람은 어떻게 하라는 거냐는 얘기였다. 그건 자기 죽으라는 얘기나 다름 없다는 얘기고 그래서 22일로 예정된 민주노총의 임대대를 보면서 두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정말 무섭다고, 상층에서 그렇게 결정해버리면 자기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냐고 했다. 버려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런 느낌을 같이 얘기할 사람도 아직은 없다고 했다.

 

술이 취해 '누나는 뭐 할거에요?', '뭔가 해야 되지 않아요?', '누나는 정규직운동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예요?'라고 하는 후배에게서 아픔과 아쉬움이 느껴졌다. 단선적인 후배의 판단이 아쉬웠고 그것을 잡아주고 토론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친구의 주변에 없음이 아쉬웠고 오죽했으면 나한테 전화해서 이런 땡깡일까 하는 아픔이 느껴졌다.

 

자기는 출근해야 되고, 민주노총 조합원도 아니니 임대대에 안 갈거라면서 제발 누나라두, 누나가 속해있는 조직에서라도 총 동원해서 사회적 교섭안 통과되는거 막아달라는 후배의 목소리를 들으며... '난 그럴 힘이 없는걸...'이란 말이 안으로 씹혔다. 내가 만난 활동가들 조합원들 노동자들에게 이런 이야기 한번 제대로 해본적이 없었다. 사회적 합의주의에 반대한다고 하면서도 이 문제는 언제나 '내 운동'의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말로만 반대를 외칠 것이 아니라 뭐라도 할 수 있어야 했던 것 같다.

 

한나라당이 대 타협에 동의하면서 비정규 개악안의 처리가 미뤄지고 22일 임대대에서의 사회적 교섭안 처리에 대한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반대'라는 나의 입장을 세우는 것 뿐만이 아니라 나의 일상과 활동속에 그 '반대'를 녹여내는 것이 필요하다.

 

'얌마! 한번 맘 먹었으면 10년은 뼈 묻을 생각하고 차근히 조직해! 그게 니 몫이잖어!'라는 나의 공허한 말에 그래두 고개를 끄덕이며 '누나 말이 맞아요.'라고 이야기 하는 후배에게 괜스런 미안함이 들었다. 정말로 한번 만나 사는 이야기라도 활동하는 힘듦에 대한 하소연이라도 들어줘야겠다. 잘 하라고 쪼아대는 선배가 아니라 같이 분석해주고 토론하고 필요하면 고개도 끄덕여주는 선배가 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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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9 15:36 2005/02/19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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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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