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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17
    호네트 공부1 (인정-Anerkennung 개념에 대하여)(1)
    tnffo

호네트 공부1 (인정-Anerkennung 개념에 대하여)

1949년생인 호네트(Axel Honneth)가 1992년에 <인정투쟁>(Kamft um Anerkennung)이라는 책을 내면서 바야흐로 하버마스(1929~)의 자리를 대체하고 세계적인 철학자로 부상한다. 일찍이 호네트는 프랑크푸르트의 하버마스를 직접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하버마스가 20대 초반의 호네트가 쓴 어떤 논문을 보고는 감흥하여 자기 밑으로 끌어왔다는데, 그 떡잎의 진가가 어떻게 만개해 나갈지가 주목된다. <인정투쟁>이라는 책은 벌써 1996년에 한국어로 번역이 됐고(지금은 절판), 그 속편이라는 <물화>(Verdinglichung: Eine anerkennungstheoretische Studie)라는 책이 2006년에, 그리고 10여 편의 호네트 논문 모음집이 <정의와 타자>라는 이름하에 지난달 25일에 번역돼 나온 모양이다. 어제 한겨레의 고명섭 책팀장이 <정의와 타자>에 대한 서평을 올렸는데, 서평을 읽어보니 이해가 쉽지 않고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할 것은 절판된 책인 <인정투쟁>이 아닐까 싶다. 서평이 아주 개운하게 와닿지는 않는 연고로 일단은 서평자가 요약한 호네트의 문제의 소재만을 '발췌펌' 하고, 여기저기 뒤적이며 호네트를 따라가 본다.

"(...) <정의의 타자>는 <인정 투쟁>에서 펼친 논의를 좀더 확장해 인정과 정의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하려는 이론적 시도를 담고 있다. 인정 문제를 철학의 영역 한가운데로 불러들인 사람은 게오르크 헤겔이다. <정신현상학>을 쓰기 전 예나대학 재임 시기의 청년 헤겔은 인정 투쟁을 전체 사회의 도덕적 발전의 중요한 동력으로 해석했다. 청년 헤겔의 논의에 기대어 호네트는 <인정 투쟁>에서 인정의 사회적 함의를 탐구했다. 그가 보기에 ‘인정’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자 개인들이 긍정적인 자기 의식을 얻게 되는 심리적 조건이다. 그의 인정 투쟁 테제의 핵심은 사회적 투쟁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상호 인정 상태를 목표로 한다는 명제에 있다. <정의의 타자>는 <인정 투쟁>의 이 논의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의 고민은 사회적 정의가 원리상 개인들의 삶의 특수한 국면들을 다 포괄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정의의 원칙은 불편부당성을 핵심으로 한다. 모든 사람을 동질성을 공유한 보편적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개인들의 고유한 차이나 특수한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 정의의 원칙이다. 여기서 개인적 특수성은 정의 원칙의 바깥에 존재하는 타자, 곧 ‘정의의 타자’로 등장하게 된다. 이 정의의 타자를 어떻게 하면 윤리적 차원에서 포용하고 보호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호네트의 관심이다.(...)" (고명섭 기자, 인정욕구에 눈감는 정의는 폭력을 낳을 뿐, 한겨레, 2009-03-13 오후 08:09:25,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44075.html)

 
<정의의 타자>, 악셀 호네트 지음, 문성훈·이현재·장은주·하주영 옮김, 나남, 출간일: 2009-02-25, 1만8000원

 

[출판사 책소개] 이 책은 그가 1990년대에 저술한 다양한 논문들을 모아놓은 책인데 절차주의적으로 지향하는 정의 이론이 지닌 한계를 다양한 방향에서 규명해 보고자 하는 체계적 의도를 가지고 왔던 글들이 묶여 있다. 정의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어떤 형식적 원칙에 따라 개인의 행위나 사회운영이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저자가 ‘정의의 타자’에 관심을 두는 것은 정의의 원칙의 한계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는 ‘배려’의 윤리적 입장을 강조한다. 하지만 저자는 정의와 배려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양자를 아우르는 제3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비판이론 제3세대가 어디에 있으며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이정표 역할을 하는 저작이다. 호네트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또 다른 문제의식이란 호네트 자신의 고유한 이론인 인정 이론을 윤리학과 사회?정치철학 영역에 적용함으로써 ‘인정’을 일종의 새로운 행위 및 사회운영 원칙으로 발전시키는 데 있으며, 바로 우리는 이 인정 원칙을 정의의 원칙과 배려의 원칙을 넘어 이 양자를 포섭할 수 있는 제3의 원칙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호네트가 이 제3의 원칙을 제안하는 데서 핵심 개념축으로 삼는 것은 개인의 성공적 자아실현이란 의미에서 ‘좋은 삶’, 또는 ‘행복한 삶’이다. 즉, 호네트는 정의로운 행위나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라, 개인의 좋은 삶을 가능하게 하는 상호주관적, 혹은 사회적 조건에 주목하면서 바로 인정을 이 조건으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인은 타인의 인정을 경험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 의식을 형성하고, 더 나아가 자신감과 타인의 보장 하에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정을 좋은 삶의 조건으로 본다면 이제 인정을 개인 상호간의 의무로 규정하는 윤리적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개인의 성공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인정질서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다면 역으로 개인을 무시하는 행위를 비윤리적 행위로,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무시를 고착화시키는 사회를 병리적 사회로 비판할 수 있다. 인정의 원칙을 정의의 원칙과 그 타자를 포섭할 수 있는 제3의 원칙으로 발전시키려는 것은 하나의 이론적 구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는 바로 이 책에 수록된 다양한 논문 속에서 시험되고 있고, 또 이를 위해 윤리학과 사회?정치철학의 근본문제들에 대해 인정의 원칙이 얼마나 응용력을 가질 수 있는가가 검토되고 있다.

 

제1부 사회철학의 과제
사회적 병리현상 - 사회철학의 전통과 현 상황
개명적 비판의 가능성 - 사회비판의 현재적 논쟁의 지평에서 본《계명의 변증법》
무시의 사회적 동학 - 비판 사회이론의 자리매김
도덕의식과 사회적 계급지배 - 규범적 행위잠재력을 분석하는 데서 나타나는 몇 가지 어려움

제2부 도덕과 인정
정의의 타자 - 하버마스와 탈근대론의 윤리적 도전
아리스토텔레스의 칸트 사이에서 - 인정도덕에 대한 스케치
정의와 정서적 결속 사이에서 - 가족, 도덕논쟁의 초점
사랑과 도덕 - 정서적 결속의 도덕적 내용에 대하여
탈중심적 자율성 - 현대적 주체비판의 도덕철학적 귀결

제3부 정치철학의 문제들
보편주의는 도덕적 함정인가? - 인권정책의 조건과 한계
반성적 협동으로서의 민주주의 - 존 듀이와 현대 민주주의이론
소극적 자유와 문화적 소속 사이에서 - 이사야 벌린의 정치철학에서 풀리지 않는 긴장
탈전통적 공동체 - 개념적 제안

 

[번역자 4명] 문성훈 -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석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바롬교양대학 전임강사로 재직 중입니다. 저서로는<토론에 강한 사람이 논술도 강하다>(동녘출판사), <현대철학의 모험>(공저 : 길) 역서로는<인정투쟁>(공역 : 동녘출판사), <철학 오디세이2>(현실과 과학) 등이 있고 기타 다수의 전문 학술 논문이 있습니다.

이현재 - 이화여대 독문과, 같은 대학 철학과 대학원을 진학했으며, 이때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 이론을 통해 사회철학적인 관심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2004년 독일 프랑크푸트르 대학에서 인정이론과 여성주의를 접목시킨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귀국해서는 여성문화이론 연구소와 한국철학사상 연구소에서 연구원들과 함께 매춘, 성 그리고 여성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다. 가톨릭대에서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으며, 이화여대에서도 여성철학을 강의했으며 2008년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인문한국(HK)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책으로 약셀 호네트의 <인간투쟁>이, 지은 책으로 <여성의 정체성-어떤 여성이 될 것인가>, <성.노.동>, <여성주의적 정체성 개념 분석> 등이 있다.

장은주 - 현재 영산대하? 법과대학 교수.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 철학박사. 지은 책으로는 <생존에서 존엄으로>, <다윈주의. 축복인가 재앙인가>, <니체가 뒤흔든 철학 100년>, <인간이라는 자연의 미래>등이 있다.

하주영 - 서울대학교 철학과 철학박사

* <인정투쟁>은 96년 10월에 이현재 번역으로 동녘에서 출판됐고 지금은 절판 중. 그런데 위의 문성훈 약력에는 그가 <인정투쟁>의 공역자로 명기돼 있는데, 아마도 이름 안 올린 공역자라면 두사람이 부부지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이 든다.

 

 

물화 - 인정(認定)이론적 탐구(원제 Verdinglichung: Eine anerkennungstheoretische Studie), 악셀 호네트 (지은이), 강병호 (옮긴이), 나남출판, 출간일: 2006-09-11, 108쪽, 8,500원
 
제1장 루카치의 물화 개념
제2장 루카치에서 하이데거와 듀이로
제3장 인정의 우선성
제4장 물화: 인정 망각
제5장 자기물화의 윤곽
제6장 물화의 사회적 원천

"물화"에 관한 탐구인 이 새 책을 준비하면서 비로소 인정이론에 지금까지 하나의 근본층이 빠져있다는 것이 나에게 분명해졌다. 나는 지금까지의 작업에서 주로 서로 다른 인정형식들의 규범적 내용에 집중해왔기 때문에 모든 인정의 전제, 즉 인간 주체를 "인격체"로 지각하는 문제를 단순하게 지나쳐왔다. 다르게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을 그들이 갖고 있는 특정한 속성에서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어쨌든 그들을 일단은 그러한 속성의 가능한 담지자로 "구성"했을 때, 그러니까 그렇게 지각하기를 배웠을 때만이다. 이번에 출간되는 이 연구에서 나는 우리가 적절한 사회화 조건 아래 있다면 인정의 이러한 기본 형식을 거의 자동적으로 배우게 된다는 논증을 전개한다. 규범적으로 내용이 풍부한 인정형식들을 발전시키기 전에 우리는 사회적 생활세계 속으로 들어가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이미, 다른 사람들이(우리가 중립적으로는 그에 대해 반응할 수 없는) 인격적 속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경험하게 된다. 하이데거, 존 듀이, 사르트르 같은 여러 사상가들이 주목했던, 타자를 통해 항상 이미 감응되어 있다는 이러한 사실을 나는 여기서 "선행하는 인정"이락 이름한다. 그리고 물화의 가능성, 그러니까 사람을 "물건"으로 지각하고 다룰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의 이런 기본 형식에 대한 차후의 망각이란 정황으로부터 설명한다. - 악셀 호네트(지은이)

강병호 -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석사과정을 이수하고 현재 프랑크푸르트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에 있다.

 

* <인정투쟁>에 관한 출판사 소갯글 등의 관련 정보는 '알라딘'에 안 뜬다. 하여튼 한국에 번역된 호네트 책은 이렇게 세 권인 모양임. 이하에서는 불어로 소개된 관련 아티클 두 개를 옮기며 호네트를 공부해 본다.

 

 

Axel Honneth : « Sans la reconnaissance, l'individu ne peut se penser en sujet de sa propre vie »

Entretien Propos recueillis par Alexandra Laignel-Lavastine

Article paru dans PHILOSOPHIE MAG N°5, décembre 2006 - janvier 2007 (http://www.philomag.com/article,entretien,axel-honneth-sans-la-reconnaissance-l-individu-ne-peut-se-penser-en-sujet-de-sa-propre-vie,180.php) [<--원문. 이하 발췌펌]

 

0. [근본적 질문:] 우리는 우리 스스로와, 타자와, 그리고 세계와의 관계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Comment retrouver une relation vraie à autrui, à soi-même et au monde ?

 

1. ['사회철학'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사회적 병리현상들, 즉 성공적인 삶을 위한 조건들을 줄이거나 파괴하는 사회적 혼동상황들을 진단하는 특수한 임무를 '사회철학'이 수행한다. 루소로부터 맑스-베버-푸코-하버마스로 이어지는 이러한 사회적 병리현상의 진단 전통은 철학적 탐구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고, 그 종착은 물론 사회적 조건 속의 각 개인들이 누릴 적정한 자유의 확보-향유를 향한 것이리라. 
La notion de « philosophie sociale », dont je me réclame, soit rarement employée en France. J'entends par là cette grande tradition qui assigne à la philosophie la tâche spécifique de diagnostiquer les pathologies sociales, autrement dit les perturbations qui réduisent ou détruisent les conditions requises pour mener une « vie réussie ». De Jean-Jacques Rousseau à Cornelius Castoriadis ou Charles Taylor, en passant par Karl Marx, Max Weber, Michel Foucault ou Jürgen Habermas, ce courant de pensée va ainsi inventer un nouveau genre d'enquête philosophique dont la préoccupation première n'est pas tant de pointer les inégalités ou les injustices sociales, que de mettre au jour les critères éthiques d'une vie accomplie ou plus humaine. Hannah Arendt a, par exemple, accordé une valeur particulière à la participation active des citoyens à la vie démocratique, cette pratique permettant aux individus de parvenir à la conscience de leur propre liberté.

 

2. 세 가지 종류의 인정: 1. 개인이 제한된 공적 집단과 맺는 연대와 상호성의 감성에 기초한 사랑 영역 차원의 인정; 2. 개인이 권리와 의무를 갖는 보편적 주체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법적-정치적 보조장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의 인정; 3. 그런데 개인들의 이러한 상호적 관계가 지속적 작용력을 발휘하려면, 문화적 정체성(문화자본)이 제각각인 각 개인들의 구체적 개별 능력과 개별 가치에 대한 고려가 무시될 수는 없고 사회적 평가와 작용으로 인정돼야만 한다는 것.
Cela suppose que la réalisation de soi comme personne dépende très étroitement de cette reconnaissance mutuelle. C'est pourquoi je distingue trois sphères de reconnaissance, auxquelles correspondent trois types de relations à soi. La première est la sphère de l'amour qui touche aux liens affectifs unissant une personne à un groupe restreint. Seule la solidité et la réciprocité de ces liens confèrent à l'individu cette confiance en soi sans laquelle il ne pourra participer avec assurance à la vie publique. La deuxième sphère est juridico-politique : c'est parce qu'un individu est reconnu comme un sujet universel, porteur de droits et de devoirs, qu'il peut comprendre ses actes comme une manifestation – respectée par tous – de sa propre autonomie. En cela, la reconnaissance juridique se montre indispensable à l'acquisition du respect de soi. Mais ce n'est pas tout. Pour parvenir à établir une relation ininterrompue avec eux-mêmes, les humains doivent encore jouir d'une considération sociale leur permettant de se rapporter positivement à leurs qualités particulières, à leurs capacités concrètes ou à certaines valeurs dérivant de leur identité culturelle. Cette troisième sphère – celle de l'estime sociale – est indispensable à l'acquisition de l'estime de soi, ce qu'on appelle le « sentiment de sa propre valeur ».

 

3. 자본주의:
Ces paradoxes ou ces « pathologies » tiennent à mes yeux à ce que les idéaux d'émancipation, qui ont beaucoup progressé dans le monde occidental au cours des trois dernières décennies, semblent presque entièrement récupérés par le néolibéralisme et, de là, retournés en leur contraire. Si les possibilités d'épanouissement individuel se sont élargies (avec l'éducation, les voyages, le temps libre, la consommation, etc.), elles se trouvent désormais détournées au profit de l'idéologie managériale de la performance économique. On peut à cet égard parler de régression morale. Le principe de réalisation de soi ainsi instrumentalisé donne naissance à de nouvelles pathologies – sentiment de vide intérieur, d'inutilité, d'anxiété, etc. L'énorme pression néolibérale contraint les individus à se penser eux-mêmes comme des produits et à se vendre en permanence : il faut sans cesse se présenter comme étant hypermotivé, flexible, adaptable, etc. Ce n'est donc plus l'aptitude au dialogue intérieur et à la solidarité qui se trouve privilégiée, mais ce qui contribue au contraire à ruiner cette aptitude : l'extension d'un rapport de plus en plus marchand et stratégique à soi-même et aux autres. En ce sens, la reconnaissance, qui conduit à reconnaître en autrui une commune appartenance à l'humanité, doit être prolongée par une autoreconnaissance, soit l'assomption par chacun de son unicité, laquelle transcende tout traitement comme un objet.

 

4. 대안:
Étant donné qu'il ne s'agit pas de revenir au monde d'hier, la question demeure de savoir comment contrebalancer ces tendances pathogènes que la mondialisation ne fait qu'accroître. Ma réponse ne se situe pas, à la manière de certains républicains français, du côté d'une restauration des communautés politiques nationales. Des solutions ne pourront émerger que dans le cadre d'une Europe forte à même de résister aux aspects négatifs de la globalisation, mais à condition de ne pas faire dériver la solidarité européenne de nos traditions culturelles ou de nos racines chrétiennes. Cette dernière approche me paraît peu féconde. Je pense que le sens de la solidarité ne se consolide vraiment qu'à la faveur d'expériences partagées dans le domaine de la « productivité » – non pas seulement économique, mais aussi artistique ou intellectuelle. Vous semblez toujours vous situer à égale distance de l'éthique libérale et d'une éthique communautarienne… Ma tentative pour mettre en lumière la grammaire morale des conflits sociaux partage avec Kant et la tradition libérale l'attachement  à la notion d'autonomie ainsi qu'à des normes aussi universelles que possible. Je crois cependant avec les « communautariens » [courant de philosophie politique, critique des méfaits de l'individualisme libéral, Ndlr] que l'autoréalisation de l'être humain exige des formes de relations intersubjectives, les individus ne se constituant en personne que lorsqu'ils apprennent à s'envisager – à partir d'un « autrui » approbateur ou encourageant – comme des êtres dotés de qualités et de capacités positives .

 

 

Reconnaissance et justice / par Axel Honneth
Passant n°38(janvier 2002 - février 2002), http://www.passant-ordinaire.com/revue/38-349.asp

 

Quiconque a suivi de manière attentive l’évolution de la philosophie politique lors de ces dernières années a été témoin de processus théoriques par lesquels l’évolution de concepts centraux s’est accompagnée d’une transformation des orientations normatives. Jusque vers la fin des années quatre-vingt, la prédominance du marxisme en Europe et la large influence de Rawls aux Etats-Unis assuraient l’existence d’un principe directeur d’une théorie normative de l’ordre politique sans qu’il ne puisse y avoir de doute à ce propos ; malgré toutes les différences de détail, tout le monde s’accordait sur l’exigence d’éradiquer les injustices sociales ou économiques, qui ne pouvaient être justifiées sur la base de fondements raisonnés. A la place de cette idée influente de justice, qui était politiquement l’expression de l’ère de la social-démocratie, s’est installée depuis longtemps déjà une idée nouvelle qui, de prime abord, semble beaucoup moins facile à appréhender de façon univoque. L’éradication de l’inégalité ne représente plus l’objectif normatif, mais c’est plutôt l’atteinte à la dignité ou la prévention du mépris, la « dignité » ou le « respect », et non plus la « répartition équitable des biens » ou « l’égalité matérielle » qui constituent ses catégories centrales. Utilisant une formule choc qui devait rapidement devenir paradigmatique, Nancy Fraser a qualifié ce changement de passage de l’idée de « redistribution » à l’idée de « reconnaissance ». Tandis que le premier concept est associé à l’idée de justice, qui vise la mise en place de la justice sociale à travers la redistribution des biens, conçus comme vecteurs de liberté, le second concept définit les conditions d’une société juste ayant pour objectif la reconnaissance de la dignité individuelle de tout un chacun2.
Dans la suite de mon exposé, je souhaite esquisser les contours d’une théorie de la justice qui parte du fait social et moral de la nécessité de la reconnaissance sociale. Je procéderai en trois étapes. Dans un premier temps, j’essaierai d’expliquer pourquoi il est nécessaire de faire un lien entre la justice et la reconnaissance. Dans un second temps je me pencherai sur la justification de cette thèse et, pour terminer, j’aborderai la question de l’application concrète de cette théorie dans la réalité sociale d’aujourd’hui.


I. Reconnaissance et justice
Dans les travaux que j’ai menés jusqu’à présent, j’ai fait usage de l’idée normative de la reconnaissance principalement dans un sens purement descriptif ; il s’agissait de défendre la thèse selon laquelle les attentes morales formulées réciproquement par les sujets sociaux portent sur la reconnaissance sociale par autrui de leurs aptitudes, autrui conçu à la fois comme entité générale et différente. Les implications de ce constat socio-moral sont développées dans deux directions, la première portant sur la socialisation morale des sujets et la seconde sur l’intégration morale de la société. Pour ce qui concerne la théorie de la socialisation des sujets, nous avons de bonnes raisons de supposer que la genèse de l’identité individuelle passe généralement par des stades d’intériorisation de schémas standardisés de reconnaissance sociale : l’individu apprend à se percevoir comme membre particulier et à part entière de la société en prenant progressivement conscience de besoins et de capacités propres constitutives de sa personnalité à travers les modèles de réaction positive de ses partenaires d’interaction. Dans ce sens, chaque sujet social est, de manière élémentaire, dépendant d’un univers fait de formes de comportements sociaux réglés par des principes normatifs de reconnaissance réciproque; la suppression de telles relations de reconnaissance a pour conséquence des expériences du mépris ou de l’humiliation, ce qui n’est pas sans conséquences néfastes sur la formation de l’identité de l’individu. Dans la direction opposée, celle d’un concept adéquat de société, il résulte de cette imbrication étroite entre reconnaissance et socialisation que nous ne pouvons représenter l’intégration sociale qu’en tant que processus d’inclusion réglé par des formes de reconnaissance : dans l’optique de leurs membres, les sociétés sont uniquement considérées comme des entités sociales légitimes dans la mesure où elles sont en mesure d’assurer des relations fiables de reconnaissance réciproque à tous les niveaux3. Dans cette optique, l’intégration normative des sociétés ne peut se faire que par le bais de l’institutionnalisation de principes de reconnaissance définissant à travers quelles formes de reconnaissance mutuelle les membres peuvent être intégrés dans l’ensemble de la vie sociale.

Si nous nous laissons guider par ces prémisses théorico-sociales, la conséquence qui selon moi s’impose, est qu’une éthique politique ou une morale de la société doit être conçue de façon à recouper la qualité des relations de reconnaissance assurées par la société : la justice ou le bien-être d’une société se mesure à son degré d’aptitude à garantir des conditions de reconnaissance mutuelle dans lesquelles la formation de l’identité personnelle et ce faisant, l’épanouissement individuel, pourront se réaliser dans des conditions suffisamment bonnes. Bien sûr, il ne faut pas se représenter une telle orientation vers le normatif en en tirant la simple conclusion que la cohabitation sociale idéale découle d’exigences fonctionnelles objectives. Bien plus, les exigences d’intégration sociale peuvent uniquement être comprises comme des indications de principes normatifs d’une éthique politique dans la mesure où elles se reflètent elles-mêmes dans les attentes de comportements sociaux de sujets socialisés. C’est lorsque cette condition préliminaire est remplie – et un grand nombre d’indices mentionnés auparavant abondent à mon avis dans ce sens – qu’une telle orientation me semble justifiée. Dans ce cas, notre choix des principes fondamentaux d’orientation de notre éthique politique n’est pas guidé simplement par des intérêts empiriques mais plutôt par les comportements d’attente relativement stabilisés que nous pouvons saisir comme des « dépôts » subjectifs d’impératifs d’intégration sociale. Peut-être n’est-il pas tout à fait faux de parler ici d’« intérêts quasi-transcendantaux » de l’espèce humaine et peut-être est-il même justifié de parler à ce propos d’un intérêt à « l’émancipation » dirigé vers l’abolition des dissymétries sociales et des formes d’exclusion.

Cela dit, l’expérience nous a également montré que le contenu de telles attentes de reconnaissance sociale pouvait se modifier sous le coup de la transformation structurelle des sociétés. C’est uniquement de par leur forme que ces attentes se présentent comme des constantes anthropologiques alors que leur orientation et leur destination renvoient au type d’intégration sociale qui s’est établi au sein d’une société. Ce n’est ici pas le lieu adéquat pour défendre la thèse plus poussée selon laquelle la transformation structurelle normative des sociétés doit être renvoyée à l’impulsion donnée par la lutte pour

la reconnaissance4. D’une manière générale je peux parfaitement m’imaginer qu’il soit au moins possible, en regardant l’évolution sociale, de parler d’un progrès moral dans le sens où l’exigence de reconnaissance renferme toujours un changement de valeurs qui, dans le cadre de la mobilisation, veille à tenir compte de raisons et d’arguments difficilement réfutables, ce qui aboutit à long terme à une augmentation de la qualité de l’intégration sociale. A des fins d’argumentation, il est nécessaire ici de souligner que l’intérêt fondamental qu’il y a à être socialement reconnu est toujours modelé par les principes normatifs liés aux structures élémentaires de la reconnaissance mutuelle au sein d’une formation sociale donnée. La conclusion en est qu’aujourd’hui une éthique politique ou une morale de la société devrait être axée sur les trois principes de reconnaissance qui règlent, dans nos sociétés, quelles sont les attentes légitimes susceptibles d’être reconnues par les autres membres de la société. En conséquence, ce sont les trois principes fondamentaux que sont l’amour, l’égalité et la contribution à la société (Leistung) qui, pris ensemble, déterminent ce que l’on devrait comprendre aujourd’hui par l’idée de justice sociale.


II. Egalité et réalisation individuelle
De manière indirecte, j’ai déjà fait précédemment allusion à ma manière d’imaginer la justification normative de l’idée selon laquelle le point de référence d’une conception de la justice sociale doit trouver son ancrage dans la qualité des relations de reconnaissance mutuelle au sein d’une société. Pour les sociétés modernes, je pars ce faisant de la prémisse que l’égalité sociale consiste à permettre à tous les membres de la société de se forger une identité individuelle. Pour moi, cette formulation revient à dire que le véritable but recherché lorsque l’on parle de l’égalité de traitement de tous les sujets dans nos sociétés doit être la possibilité pour tous de réalisation individuelle. La question qui se pose est cependant de savoir à partir d’un tel point de départ (libéral), s’il est possible d’en arriver à la conclusion que c’est la qualité des conditions de reconnaissance sociale qui doit constituer le cœur d’une éthique politique ou d’une morale de la société. Mon idée est, ici comme je l’ai déjà évoqué, que nous devrions généraliser nos connaissances relatives aux conditions sociales de la formation de l’identité dans une conception qui prenne la forme d’une théorie de la moralité de type égalitaire. Dans une telle conception, nous exprimions quelles conditions nous considérons comme impératives pour donner à chaque individu la même chance de réaliser pleinement sa personnalité individuelle. (…)

A la différence du premier Rawls, je suis convaincu que le fait d’avancer moult arguments de nature théorique ne peut pas remplacer la démarche consistant à regrouper l’ensemble de nos connaissances pour les généraliser et développer une conception de la vie bonne qui soit toujours tangible et actuelle5. Nous pouvons élaborer cette théorie à la lumière de l’ensemble des connaissances dont nous disposons mais nous ne pouvons pas caresser l’espoir de parvenir un jour à lui donner un caractère exhaustif à travers des données empiriques ou des suppositions théoriques. C’est pour cela que la théorie de la reconnaissance, dans la mesure où elle peut désormais être comprise comme une conception téléologique de la justice sociale, prend aussi la forme d’une esquisse de la vie bonne à caractère hypothétique et général. En utilisant toutes les connaissances qui se recoupent, cette ébauche fait un relevé des formes de reconnaissance réciproque dont ont besoin les sujets afin de se forger une identité la plus intacte possible.


III. Principes normatifs de la justice sociale

Même si ces raisonnements ont tracé les grands traits du statut normatif de la théorie de la reconnaissance face au problème de la justice, la tâche considérable consistant à déterminer les principes directeurs de la justice sociale reste cependant à accomplir. La question de savoir comment les principes correspondants peuvent intervenir dans l’évaluation de conflits sociaux requiert également, au minimum, l’esquisse d’un début de solution.

Jusqu’ici, j’ai esquissé mon raisonnement jusqu’au point où il apparaît de manière claire pourquoi une morale de la société doit se référer à la qualité des relations de reconnaissance sociale. D’après mon analyse, l’argument décisif réside dans la thèse largement fondée selon laquelle la possibilité pour le sujet de réaliser son autonomie individuelle dépend des conditions préalables dont il dispose pour développer un rapport à soi intact à travers l’expérience de la reconnaissance sociale. C’est le lien avec cette conception éthique qui permet l’introduction d’un élément temporel dans le projet d’une morale de société, à mesure que la structure des relations de reconnaissance change de manière durable au cours du processus historique. Ce que les sujets peuvent respectivement considérer comme étant les dimensions de leur personnalité pour lesquelles ils sont en droit d’attendre légitimement une reconnaissance sociale se mesure au mode normatif de leur inclusion dans la société et ainsi, au degré de différenciation des sphères de reconnaissance. On peut par conséquent aussi interpréter la morale de société qui y correspond comme étant une forme de l’articulation normative de ces principes, qui, dans une formation sociale donnée, règlent la manière dont les sujets doivent se reconnaître réciproquement. Cette fonction qui n’est pour l’instant qu’affirmative, et peut-être même conservatrice, correspond à la représentation selon laquelle aujourd’hui, une théorie de la justice doit comprendre trois principes de même valeur, que l’on peut concevoir sans exception comme principes de reconnaissance. Afin de pouvoir réellement user de leur autonomie individuelle, il revient de manière égale à chaque sujet d’être reconnu, selon le type de relation sociale, dans ses besoins, dans son égal accès aux droits et dans sa contribution à la société. Comme le laisse entendre une telle formulation, le contenu de ce que l’on qualifie de « juste » se mesure chaque fois en fonction du type de relation sociale que les sujets entretiennent entre eux: s’il s’agit d’une relation caractérisée par la référence à l’amour, c’est le principe du besoin qui prévaut, tandis que dans les relations se référant au droit, c’est le principe d’égalité qui vient en priorité et que dans les relations de type coopératif, on applique le principe de la rémunération. A la différence de David Miller, qui part d’un pluralisme comparable entre trois principes de justice (need, equality, desert), la tripartition que je propose ne résulte ni d’un simple accord avec les résultats de la recherche empirique sur la justice, ni de la différence socio-ontologique de modèles de relations, mais de la connaissance des conditions historiques de la formation de l’identité personnelle : c’est parce que nous vivons dans un ordre social où les individus ont la possibilité de développer une identité intacte grâce à l’attention affective, l’accès égal aux droits et, enfin, l’estime sociale, qu’il semble approprié, au nom de l’autonomie individuelle, de faire des trois principes de reconnaissance qui y correspondent, le cœur normatif d’une conception de justice sociale. Une autre différence, par rapport à l’approche de David Miller, réside dans le fait qu’il aimerait que ces trois principes ne soient compris que comme des principes de redistribution, réglant en fonction des sphères spécifiques la manière dont les biens estimés doivent être répartis, alors qu’en ce qui me concerne, je cherche à appréhender les trois principes avant tout comme des formes de reconnaissance, de sorte que des conceptions spécifiques et des considérations morales soient à chaque fois obligatoirement associées. Ce n’est que lorsque ces types de respect moral ont à la fois des conséquences sur la répartition de certains biens que je parlerais également, au sens indirect du terme, de principes de redistribution.

Malgré ces différences, les points communs essentiels qui existent entre ces deux approches ne doivent cependant pas être oubliés. Sans recourir à des hypothèses téléologiques ou à des présuppositions éthiques, David Miller part lui aussi d’une certitude, à savoir que l’idée moderne de justice sociale doit être décomposée en trois facettes désignant chacune un des points de vue à partir duquel les individus doivent être traités de la même manière6. Il fait une distinction entre les principes de besoin, d’égalité et de rémunération, à la manière de celle que j’ai faite en parlant précédemment de la différenciation entre les trois principes basés sur la reconnaissance de l’amour, de l’égalité juridique et de l’estime sociale. Dans les deux cas, il ne faut pas être étonné de voir apparaître en deux endroits à la fois le terme d’« égalité », parce que cela touche à deux niveaux de la conception de la justice: à un niveau supérieur, cela signifie que tous les sujets gagnent de la même manière à être reconnus selon le type de relation sociale, dans leurs besoins, dans leur autonomie juridique ou dans leur contribution à la société ; à un niveau inférieur, c’est le principe de l’autonomie juridique qui joue, ce qui implique l’égalité de traitement entre tous et revêt ainsi, au sens strict, un caractère égalitaire7. On peut donc, au nom d’une égalité de niveau supérieur, pour l’exprimer de manière paradoxale, faire valoir, en fonction de la sphère prise en considération, soit l’utilisation du principe d’égalité juridique, soit celle des deux autres principes de reconnaissance qui ne sont pas égalitaires au sens strict du terme.


[IV] Le rôle critique d’une conception de la justice basée sur la théorie de la reconnaissance

Mais la question décisive concerne certainement le problème de savoir comment une telle conception de la justice basée sur la théorie de la reconnaissance peut, au-delà de la simple tâche affirmative, jouer également un rôle critique et progressif8. En effet, la controverse entre Nancy Fraser et moi-même, porte essentiellement sur la question de savoir dans quelle mesure, à l’aide d’une telle théorie, il est possible de s’exprimer de manière normative sur l’orientation que devrait prendre autant que possible le développement des confrontations sociales actuelles. Jusqu’ici, il n’était question que du rôle affirmatif que devrait pouvoir jouer la conception de la justice esquissée, dans la mesure où elle tente de garder en tête la pluralité irréductible des principes de justice dans la modernité: nous sommes ici en présence de trois principes indépendants de reconnaissance, spécifiques à des sphères – c’est ce que j’ai voulu mettre en lumière – qui doivent être validés en tant que modèles standards distincts de justice, lorsque les conditions intersubjectives de l’intégrité personnelle de tous les sujets doivent être protégées. Certes avec une telle faculté de différenciation, que l’on pourrait peut-être qualifier avec Michael Walzer de « Art of separation », de justice immanente, on n’a encore rien dit sur le rôle critique qu’une telle conception de justice devrait pouvoir jouer lorsqu’il est question de l’évaluation morale des luttes sociales.

Dans ce second cas, il ne s’agit plus simplement d’expliciter dans leur pluralité les principes de justice existants et ancrés dans le social, mais de la tâche beaucoup plus ardue de développer des critères normatifs à partir du concept pluriel de justice, à l’aide desquels des développements actuels peuvent être critiqués à la lumière de potentialités futures. Quiconque ne veut pas s’empêtrer dans une actualité à courte vue partant des buts visés par les mouvements sociaux actuellement les plus influents ne parviendra pas à développer de tels critères en lien avec des formulations sur le progrès moral des sociétés dans leur ensemble. En effet, l’évaluation des confrontations actuelles exige une appréciation du potentiel normatif contenu dans certaines revendications visant un changement, qui ne promettent pas seulement des améliorations à court terme, mais laissent espérer également un relèvement durable du niveau moral de l’intégration sociale. Il est nécessaire, alors, d’inscrire la théorie de la justice, esquissée jusqu’ici à grands traits, dans le cadre englobant d’une conception du progrès, qui est en mesure de rendre compte de l’évolution de la constitution morale des sociétés. Ce n’est qu’à partir de là que l’on peut voir, avec un fondement qui n’est pas seulement relativiste, dans quelle mesure certaines exigences sociales gagnent à pouvoir être justifiées de façon normative.

Malheureusement, le temps qui m’est imparti pour mon exposé me laisse à peine le celui d’esquisser les contours d’une telle conception du progrès. J’ai certes sans cesse donné jusqu’ici dans ma réplique des indications éparses quant à la nécessité et la possibilité tout à la fois, d’une conception du développement des rapports sociaux de reconnaissance, mais je ne peux livrer ici qu’un résumé sommaire, dont la fonction essentielle doit être de permettre au concept de la justice basé sur la théorie de la reconnaissance de fournir des jugements normatifs justifiés sur des confrontations sociales du temps présent. Dans le passage où j’ai exposé succinctement les rapports de reconnaissance dans les sociétés capitalistes libérales9, j’ai dû naturellement partir d’une série d’hypothèses implicites concernant l’orientation morale du développement social. En effet, leurs principes internes ne peuvent être considérés comme le point de départ légitime et justifié d’un projet d’éthique politique qu’à condition qu’il s’agisse, dans l’ordre social renouvelé, d’une forme moralement supérieure d’intégration sociale. Comme tous les théoriciens de la société attachés à une approche interne partant de la légitimité de l’ordre social moderne, qu’il s’agisse de Hegel, de Marx ou de Durkheim, j’ai dû également, dans un premier temps, partir de l’hypothèse d’une supériorité morale de la modernité, dans la mesure où je suppose que sa constitution normative est le résultat d’un développement dans le passé doté d’une visée. Je n’ai fait qu’évoquer en passant les critères qui me permettaient de décrire la différenciation de trois sphères de reconnaissance distinctes comme relevant d’un progrès moral: avec la formation de trois sphères distinctes, tous les membres du nouveau type de société ont une chance accrue de parvenir à un degré supérieur d’individualité car ils peuvent expérimenter leur propre personnalité à travers les différents modèles de reconnaissance. Maintenant, si ces convictions d’arrière-plan sont explicitées, on obtient deux critères, qui pris ensemble, peuvent justifier l’idée d’un progrès dans les rapports de reconnaissance : d’un côté nous avons affaire à un processus d’individualisation, donc à une augmentation des chances d’articulation légitime des différents aspects de la personnalité, et de l’autre côté, à un processus d’inclusion sociale, à savoir une intégration croissante de sujets dans l’univers des membres à part entière de la société. Il est facile de constater à quel point ces deux critères sont liés de manière interne aux prémisses théoriques et sociales d’une théorie de la reconnaissance, dans la mesure où ils esquissent deux possibilités de surcroît de reconnaissance sociale : si l’intégration sociale s’opère par le biais de l’établissement de rapports de reconnaissance, à travers lesquels les sujets obtiennent une approbation sociale pour certains aspects de leur personnalité et deviennent ainsi membres de la société, la qualité morale de cette intégration sociale peut alors s’améliorer grâce à une augmentation des aspects reconnus de la personnalité ou par l’inclusion des individus, en résumé, soit par individualisation, soit par croissance de l’inclusion sociale. L’essentiel de cette amélioration qualitative réside avant tout dans le fait que, avec le découplage entre reconnaissance juridique et estime sociale au niveau le plus basique, cette idée parvienne en même temps à percer et par conséquent que tous les sujets doivent disposer des mêmes chances de parvenir à l’épanouissement individuel à travers la participation à des rapports de reconnaissance.


[V] Evaluation des progrès moraux
Ainsi, avec quelques mots-clé, on a justifié pourquoi l’infrastructure morale des sociétés modernes capitalistes libérales peut être considérée comme le point de départ légitime d’une éthique politique. Vient alors la question de savoir comment évaluer les progrès moraux au sein de telles sociétés. Il est évident que la solution à ce problème ne peut se trouver que dans le cadre de ce modèle d’égalité tripolaire, qui est apparu comme réalité normative avec la différenciation des trois sphères de reconnaissance : ce qui doit être désormais appelé « juste » sera estimé, selon les sphères, soit par rapport à l’idée de réponse à un besoin affectif, d’égalité des droits ou d’équité dans la rémunération, et les paramètres du progrès moral au sein du nouvel ordre social ne peuvent être définis que par rapport aux trois principes. C’est par l’idée de « valeur de surplomb » (Geltungsüberhang) que cela prend la signification déjà mentionnée dans le cadre de la présentation des trois sphères de reconnaissance. Par la suite, je peux, dans un second temps, montrer que la fonction critique d’une conception de la justice basée sur la théorie de la reconnaissance ne doit pas se limiter à la revendication juridique de ces « valeurs de surplomb » spécifiques aux sphères, mais qu’elle doit au contraire englober également l’examen de la délimitation des frontières entre les sphères de valeur. Il est vrai que je dois ici aussi me contenter de maigres explications.

Comme je l’ai dit jusqu’à présent, les progrès au sein des rapports sociaux de reconnaissance s’accomplissent

le long des deux dimensions de l’individualisation et de l’inclusion sociale : soit de nouveaux aspects de la personnalité s’ouvrent à la reconnaissance réciproque, de telle sorte qu’augmente la proportion de l’individualité socialement confirmée, soit un surplus de personnes est intégré aux rapports de reconnaissance existants, de sorte que s’élargit le cercle des sujets se reconnaissant réciproquement. Avec le nouvel ordre tripartite de reconnaissance, apparu avec la société capitaliste moderne, on ne sait cependant plus très bien, en effet, si ce (double) critère de progrès peut encore trouver une application. En effet, les trois sphères de reconnaissance sont respectivement caractérisées par des principes normatifs, dont les critères internes déterminent ce qui peut être tenu pour « juste » ou « injuste ». Sur ce point, je suis d’avis que seule l’idée auparavant esquissée peut nous aider à progresser, à savoir que chaque principe de reconnaissance possède respectivement une « valeur de surplomb » spécifique, dont la signification normative s’exprime dans les faits par une lutte incessante pour son application adéquate et son interprétation. Il est ainsi possible à tout moment, au sein de chaque sphère, d’amorcer à nouveau une dialectique morale du général et du particulier, qui fait valoir un point de vue particulier (besoin, conditions de vie, contribution à la société) par référence au principe général de reconnaissance (amour, droit, prestation) et qui n’a pas encore été raisonnablement prise en considération. C’est cette « valeur de surplomb » des principes de reconnaissance face à la facticité de leur interprétation sociale, auquel se rattache la théorie de la justice esquissée, qui peut être hissée en tant que fonction critique: face aux pratiques dominantes d’interprétation, elle fait valoir qu’il existe à ce jour des états de faits particuliers et négligés, dont la considération morale exigerait l’élargissement respectif des sphères de reconnaissance. A vrai dire, une telle critique ne parvient à gagner un point de vue lui permettant de faire la différence entre des formes fondées ou non fondées du particulier, qu’après avoir traduit le critère général de progrès, auparavant esquissé, dans la sémantique des sphères de reconnaissance respectives : une exigence raisonnable et légitime se reconnaît ici par la possibilité de comprendre les conséquences de sa mise en place possible comme un gain en individualité ou en inclusion sociale.

Même si ces formulations peuvent rappeler de loin la philosophie de l’histoire de Hegel, elles ne doivent être utilisées que pour rendre compte des conditions théoriques dans lesquelles le concept de justice basé sur la théorie de la reconnaissance puisse aujourd’hui jouer un rôle critique. L’identification de prétentions morales justifiées, qui semble nécessaire pour une telle tâche, n’est possible que si l’on a tout d’abord mis des termes sur les principes de justice, en référence desquels une prétention peut être légitimement élevée. Dans mon modèle, cela correspond à l’idée selon laquelle nous avons affaire, dans notre société, à trois principes de reconnaissance fondamentaux dotés respectivement d’une « valeur de surplomb » normative qui leur est spécifique et qui permettent de revendiquer des différences ou des états de faits restés jusque là négligés. Parmi le grand nombre d’exigences particulières faisant typiquement l’objet de revendications de reconnaissance dans les luttes sociales, il faut trier celles qui sont justifiées moralement, et en second lieu, utiliser nécessairement un critère de progrès explicite et toujours formulé. En effet, seules les exigences conduisant potentiellement à un élargissement des rapports sociaux de reconnaissance, peuvent vraiment être considérées de manière valable comme normatives, car elles vont dans le sens d’un relèvement du niveau moral de l’intégration sociale. Les deux points de repère que sont l’individualisation et l’augmentation de l’inclusion, que j’ai esquissés précédemment, représentent les critères grâce auxquels un tel examen peut être entrepris.

Pour rendre compte de la manière avec laquelle le critère de progrès mentionné peut s’appliquer au sein des trois sphères de reconnaissance, nous avons besoin d’une certaine plausibilité. En effet, il semble que la question du progrès dans l’application du principe d’égalité ne soit claire, et dans une certaine mesure, que pour la sphère du droit moderne, alors qu’il n’en va pas de même pour les principes de reconnaissance de l’amour et de la contribution à la société. Comme dans de nombreux contextes normatifs, il peut être utile dans un premier temps de reformuler le critère positif en négatif et, conformément à cela, prendre comme point de départ l’idée d’une suppression des obstacles correspondants : un progrès moral dans la sphère de l’amour peut ainsi vouloir dire supprimer pas à pas ces clichés relatifs aux rôles, ces stéréotypes et affectations culturelles qui gênent de manière structurelle la possibilité d’une adaptation réciproque aux besoins des autres. Pour les sphères basées sur la reconnaissance de l’estime sociale, un tel progrès signifiera mettre radicalement en question ces constructions culturelles qui, dans le passé du capitalisme industriel, n’ont pris soin de ne compter qu’un petit cercle d’activités parmi le travail digne d’un salaire (Erwerbsarbeit). Mais un tel modèle de progrès basé sur la différenciation sectorielle se trouve confronté à une nouvelle difficulté, que j’aimerais aborder pour finir, car elle illustre toute la complexité de la tâche à surmonter.

Dans l’exposé de la situation montrant que le principe de l’égalité de traitement devant la justice dans la sphère de l’estime liée à l’activité avait progressé avec la construction de l’Etat social, il est apparu à quel point les progrès moraux dans l’ordre social moderne pouvaient aussi mener à de nouvelles délimitations de frontières entre les différentes sphères basées sur la reconnaissance, car il ne fait pas de doute que c’était dans l’intérêt des classes en permanence menacées par la misère économique, que de détacher une partie du statut social basé sur le travail et de le transformer en une obligation de la reconnaissance par des droits. Dans de tels cas de déplacements de frontières, on ne peut parler de progrès moral, que si les conditions sociales de formation de l’identité personnelle sont durablement améliorées pour les membres de groupes particuliers ou de classes, à travers le déplacement partiel sur un nouveau principe. Il semble que ce soit surtout des processus d’extension du droit, c’est-à-dire des tendances à l’expansion du principe juridique d’égalité de traitement, qui soient dotés de la capacité d’intervenir dans d’autres sphères de reconnaissance pour procéder à des corrections et veiller ainsi à la garantie des conditions d’identité minimale. C’est cette circonstance qui permet de reconnaître la logique morale étant à l’origine de ce déplacement de frontière, tant qu’elle se déroule à partir de la sphère du droit en direction des deux sphères de reconnaissance : car comme le principe normatif du droit moderne, pris en tant que principe de respect réciproque entre personnes autonomes, possède à l’origine un caractère inconditionnel, tous les sujets concernés peuvent s’en prévaloir dès le moment où ils constatent que les conditions nécessaires à l’autonomie individuelle dans d’autres sphères ne sont plus suffisamment sauvegardées. Les luttes pour imposer les droits sociaux, que nous avons déjà évoquées, ne sont pas les seuls exemples qui illustrent ces processus d’extension du droit partis depuis le «« bas ». Il y a aussi les débats largement ramifiés qui sont menés aujourd’hui sur la garantie juridique d’un traitement d’égalité réciproque au sein du couple et de la famille: l’argument central est qu’eu égard à la domination structurelle des hommes dans la sphère privée, les conditions pour une autodétermination des femmes ne peuvent être sauvegardées, que si elles prennent la forme de droits garantis de manière contractuelle et deviennent ainsi un devoir propre à la reconnaissance juridique.

Il découle de ces réflexions qu’un concept de la justice basé sur la théorie de la reconnaissance peut assumer une fonction critique, et non pas seulement là ou il est question de la défense juridique de progrès moraux dans les sphères de reconnaissance respectives. On a également constamment besoin d’un examen réflexif des frontières qui se sont établies entre les territoires respectifs des différents principes de reconnaissance, car le soupçon ne peut jamais être levé, que le partage du travail établi entre les sphères morales ne porte atteinte aux possibilités de formation de l’identité individuelle. Et il n’est pas rare qu’une telle remise en question en vienne à la conclusion qu’un élargissement des droits individuels est nécessaire lorsque, sous le régime des principes normatifs de « l’amour » ou de la « contribution », les conditions de respect et d’autonomie ne sont pas suffisamment garanties. L’esprit critique d’un tel concept de justice peut bien sûr ici entrer en conflit avec sa fonction propre de préservation, puisque toutes les légitimations morales en faveur des déplacements de frontières comportent également la nécessité d’un maintien de la séparation des sphères, car les conditions de la réalisation individuelle dans la société moderne ne sont, comme nous l’avons vu, garanties que socialement, lorsque les sujets ont la possibilité de faire l’expérience d’une reconnaissance intersubjective, non seulement de leur autonomie personnelle, mais aussi de leurs besoins spécifiques et de leurs capacités particulières.


Axel Honneth

 

* Politologue.


* Philosophe et sociologue allemand (professeur à l’Université de Francfort). Axel Honneth est un des représentants contemporains de la Théorie critique de « l’Ecole de Francfort », à laquelle il a consacré plusieurs écrits et qu’il tente de reformuler selon une théorie de la reconnaissance. Il est, en outre, l’auteur de nombreux ouvrages de philosophie sociale, de philosophie politique et de sociologie. Ses principales publications sont : Kritik der Macht (Suhrkamp, 1986), Die zerrissene Welt des Sozialen (Suhrkamp, 1990), Kampf um Anerkennung (Suhrkamp, 1992 ; La lutte pour la reconnaissance, trad. française de Pierre Rusch, Ed. du Cerf, 2000), Desintegration (Fischer, 1994), Das Andere der Gerechtigkeit (Suhrkamp, 2000), Leiden an Unbestimmtheit (2001).
(1) Nous remercions chaleureusement le personnel du salutaire Goethe Institut de Bordeaux pour, et grâce à l’intermédiaire de son directeur Jochen Neuberger, son vigilant rôle de passeur (ndlr).
(2) Les tenants de la théorie de la reconnaissance considèrent qu’une politique égalitaire de type redistributive ne saurait venir à bout d’un ensemble de dominations portant sur les systèmes de valeurs de collectivités sociales spécifiques, d’où la nécessité de faire intervenir des droits qui les protègent contre la discrimination. Il est courant d’opposer les luttes sociales visant la reconnaissance aux luttes sociales visant la redistribution. Nancy Fraser parle d’un changement de paradigme caractéristique du passage de la redistribution vers la reconnaissance, tout en proposant elle-même une unification des deux perspectives en vue d’une politique d’émancipation actuelle. Axel Honneth défend un point de vue proche, mais toutefois différent, puisqu’il remet en cause la distinction elle-même entre conflits pour la reconnaissance et conflits pour la redistribution, en montrant que les motifs moraux des conflits sociaux relèvent de demandes de reconnaissance, y compris ceux ayant en leur centre des enjeux redistributifs.
(3) Axel Honneth dégage un modèle comportant trois sphères de reconnaissance, qui rend compte des conditions réussies de réalisation de soi dans les sociétés modernes. La sphère de l’amour suppose que la relation de reconnaissance est liée à l’existence d’autres personnes charnelles, avec lesquelles la personne fait l’expérience d’une reconnaissance affective et peut développer à l’égard de soi-même une attitude de confiance se traduisant par une sécurité émotionnelle dans l’expression de ses besoins. La sphère du droit suppose qu’une personne puisse se sentir porteuse des mêmes droits qu’autrui et développer ainsi un sentiment de respect de soi. Ici, la relation de reconnaissance se fonde sur des droits égaux entre individus et repose sur un savoir partagé des normes réglant des droits et devoirs égaux. Enfin, le modèle de la contribution à la société suppose que l’apport des sujets à la collectivité, dont les particularités individuelles se sont construites à travers une histoire de vie singulière, soit considéré sans discrimination et qu’ils puissent ainsi développer un sentiment d’estime de soi.
4) Dans la conception d’Axel Honneth, les luttes entre les individus et les groupes aboutissent à une transformation de la structure normative des sociétés et à une forme d’élévation des rapports de reconnaissance. La conquête des droits est par exemple le fruit, objectivé dans des institutions, de luttes sociales menées par des groupes ou des classes dominés en vue de faire reconnaître par les institutions un certain nombre de nécessités exprimées (sur ce point, voir La lutte pour la reconnaissance, chap. 5 et 8).
(5) Axel Honneth se distingue ici de John Rawls, qui esquisse des conditions de la justice de manière spéculative. Rawls procède à une « critique constructive » basée sur l’élaboration abstraite d’une situation de justice idéale, modèle à la lumière duquel les conditions existantes peuvent être soumises à la critique si elles ne concrétisent pas les principes abstraits de justice. Honneth oppose un autre concept de critique, non fondé sur une construction des principes de la justice mais sur une reconstruction des principes à l’œuvre dans l’expérience pratique des individus et groupes sociaux.
(6) David Miller, Principles of Social Justice, Cambridge, Mass., 1999.
(7) Sur un tel type de différenciation entre un ordre premier et un ordre second de justice, qui rend possible, au nom d’une égalité universelle (au sens d’absence de prise de parti), de faire appel à une éthique de la sollicitude au second niveau, voir les réflexions de Brian Barry, Justice as Impartiality, Oxford, Chap. 9 et 10.
(8) Axel Honneth est de ceux qui défendent l’idée qu’une des tâches des théories ayant une prétention critique sur le monde social consiste à fonder les critères normatifs à partir desquels la critique des conditions existantes peut être menée. Sans fondements normatifs justifiés et validés de manière argumentative, la prétention théorique prend le risque de masquer le point de vue de son discours et de sombrer dans l’arbitraire. La seconde exigence de la critique est de se rattacher à un point de vue existant et effectif dans le monde social plutôt que de partir d’un niveau purement abstrait. Ainsi, ce sont les expériences mêmes des acteurs sociaux dans leur vie de tous les jours, et en l’occurrence, leur expérience du mépris ou d’atteinte à leur intégrité, sur lesquelles la théorie s’appuie pour mener une critique de l’ordre établi, à la lumière de potentialités comprises dans cet ordre lui-même. (Voir « La dynamique sociale du mépris ? D’où parle une théorie critique de la société ? », in Habermas, la raison, la critique, Ch. Bouchindhomme et R. Rochlitz (sous la dir.), Paris, Cerf, 1996, pp. 215-238).
(9) Axel Honneth se réfère ici au fait que la modernité se caractérise : 1) par une différenciation des relations sociales (privé/public, société/Etat), qui est l’une des caractéristiques du capitalisme et qui est à l’origine de la distinctions des trois sphères de reconnaissance qui viennent d’être décrites, 2) par l’affirmation du principe libéral (au sens du libéralisme politique) de l’égalité des droits.
Axel Honne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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