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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루, 본의아니게 짐 정리를 하느라 거의 초죽음 직전이다.
방은 좀 좁아졌고, 덕분에 낡은 책장 하나도 버렸다.
그래서 책상 위에 책들이 너저분하게 쌓여있고,
그 동안 이래저래 모아 놓은 서류들과 책들이 내 책장에 빼곡하게 놓여있게 되었다.
그래도 가까운 거리로 이동하게 되어서 생각보다 참 빨리 끝난 것 같다.
세상도 좋아져서 인터넷이나 전화, 전기, 수도 등등 모든게 다 금새 완료되는 걸 보면.
옷들이랑 이것저것 정리해야 할 것들은 많은데,
오늘은 이 정도로 마무리 해야될 것 같다.
아...집에 있던 잡다한 이러저러한 물건들도 다 버렸다.
ㅋㅋ 그래서 여름마다 물고기들 집청소 해줘야 하는 수족관도 버리고,
가끔 생각날 때 먹이를 주던 물고기들도 가게에다 그냥 키워달라고 줘버렸다.
열대어라 물 온도도 맞춰줘야되고, 때 되면 산소도 갈아줘야되고, 밥도 열라 비쌌던 건데
내 버려서 한편으로는 속이 무진장 시원하다.
근데 한편으로는 물 속에 살던 놈한테도 정이 붙었나 물고기가게에서 비슷한 놈들이랑
섞어놓았더니 구석에서 혼자 놀고 있길래 한참을 바라보다가 나왔다.
못난 놈. 이제는 좋은 주인 만나서 제 때 밥 먹는 생활하거라~
아...그리고 싸이키도 버리고, 원래 내 방에 있던 컴퓨터도 버렸다.
한 동안 문서 쓸일도 없을테니, 뭐 그런대로 참을만도 할 것 같다.
개까지 내어버리지 않았으니, 다행이지.
05.1.31 추운 바람을 뚫고 새롭게 거처를 옮긴 후,
불타는 정리벽으로 신들리듯 정리한 책상을 기념으로 한 장 찍다.
곧 다시 돼지우리가 될 내 책상.
#2.
짐 정리를 하다가 이러저러한 옛날 것들이 다시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난 소심한 성격이라 초등학교 때 친구들에게 받은 쪽지부터
농활 때 받은 마니또 쪽지까지 다 모아놓았다.
이젠 한 상자 가득차고도 넘쳐서 이걸 버려야 하나, 아님 상자를 또 하나
만들까 한참을 고민했다. 결론은 그냥 넘치게 방 한구석에 놔뒀다.
성적표도 다시 발견했는데,
한 때 재수없다고 백번은 되뇌이던 담임들이 종합평가란에는
훌륭한 미사여구를 수도 없이 늘어놓았는지,
읽어보다가 한참을 웃었다.
나에게 예능기질이 있어서 사람들 앞에서 춤과 노래를 잘 한다니...
국민학교2학년 때 성적표에는 이러한 기질을 잘 살려 교육하라는
담임의 당부말까지 있다.ㅋㅋㅋ
고등학교 때에는 나에게 사회과학에 흥미가 많다고 했으니,
이것을 진작에 잘 알려줬더라면,
지금의 전공에 목눌려 살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ㅋㅋ
하긴 그 때 담임이 썼던 사회과학이 마르크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였을테니.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
#3.
이것저것 정리를 하다가.
만물상인 우리집에 찾다보니 지갑도 하나 나오길래 지갑을 바꿨다.
잃어버린 것들은 참 많은데, 지갑을 정리하다 늘 가지고 다니던
지하철 패스권 한 장을 잃어버렸단 사실을 알게 되고는 내내 기분이 착잡하다.
그걸로는 지하철을 탈 수 없는 다 쓰고 남은 종이짝일 뿐인데,
그래서 이미 오래전에 버렸어야 할 물건인데.
그냥 가지고 다니라면서 별 의미없이 그걸 나한테 줬던 사람의 말과
패스권에 찍힌 날짜때문에 차마 버리지 못했던 것이었다.
오히려 잘 됐지란 생각도 한다.
버릴 수 없는 물건이었는데,
이미 버려졌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대로 지나다보면 잊혀질 수 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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