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적멸, 또는 적-멸

7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8/24
    국가? No! 나와바리? Yes!
    redbrigade
  2. 2008/08/22
    8월 27일 범불교도 대회
    redbrigade

국가? No! 나와바리? Yes!

  • 등록일
    2008/08/24 00:01
  • 수정일
    2008/08/24 00:01

용인지역 촛불이 테러를 당했다. 시민의 제보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은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한 폭력 노친네(난 가끔 이런 노친네들을 부를 만한 명사가 없을까 고민한다. 영감탱이? 아니 그걸로는 안되고, 늙다구리? 이건 너무 귀엽고, 미친 늙은이? 이게 가장 적당하지만 한 단어가 아니다) 한 명의 신원만 파악하고는, 오히려 촛불시민들 전체의 신원을 파악해 갔다. 이런 경우에는 적반하장이라는 말도 부족하다. 권력에 줄서는 그 한도도 넘은 거다. 이들, 경찰, 공무원들은 완전히 개가 된 거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개는 주인이 무엇을 명령하기도 전에 눈치 빠르게 그 일을 수행한다. 때로는 과잉충성으로 치닫기도 한다. 그러고는 완전히 땅바닥에 엎드려 배때기를 드러내고 헤-엑, 헤-엑거리는 거다. 좀 더 기다려 보면, 언론도 여기 가세할 것이다. 또 학계도. 하긴 학계는 이미 안병직을 비롯한 개들이 여러 곳에 있다(지금 버스 안인데 뉴스로 ‘건국 6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대한 소식이 들린다. 건국? 무슨 얼어 죽을... 일제부역자들 처벌도 하지 않고, 미국에 빌붙어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한 거다. 그게 60년이다). 곳곳에 개들 뿐이다. 이를 ‘주구(走狗)’라고 한다.

웃기는 것은 이들에게 직접 “너희는 명박이의 주구야”라고 말하면 마구 화를 낼 것이라는 점이다. 아니, 제대로 이름을 불러 줬는데, 화 낼 일인가? ‘개’라고, 또는 ‘개새끼’라고 부르지 않고 ‘주구’라는 고상한 한자성어로 불러 주는 걸 고마워해야 하지 않은가?

민주주의? 요원한 시절이다. 저항을 통해 저들에게, 도대체 권력의 주인이 누구인지 가르쳐 주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5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우리가 발 붙이고 있는 땅이 지옥이 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지옥에서의 한 철’이라고? 글쎄, 자칫하다가는 5년 이후에도 지옥이 지속될 것이다.

자고로 주인을 몰라 보는 개는 패야 한다고 했던가? 아니, 아니, 진짜 주인에게 즐거움을 주는 강아지들 말고. 명박과 청수를 비롯한 동네 똥개들 말이다. 이 동네 똥개들이 지금껏 깨끗하게 가꾸어 온 의좋은 이웃들의 집과 골목골목에 똥을 싸놓고, 행인들을 물고 있다.

패 주되 제대로 패 줘야 할 것이다. 다시는 더러운 이빨을 드러내고, 주인을 물어뜯지 못하도록 말이다. 아예 두 다리를 분질러 버리든지.

정말, 건강한 냉소(웬만한 사태에도 냉정을 유지하게 해주는 거)가 유지되지 않는다. 참 나, 이게 대체 국가인지 야쿠자 나와바린지 분간이 안 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8월 27일 범불교도 대회

  • 등록일
    2008/08/22 16:18
  • 수정일
    2008/08/22 16:18

 

촛불이 100일을 넘어, 시즌 2를 달리고 있다. 역사상 이렇게 길게 이어진 투쟁이 있었을까 싶다. 얼마전 있었던 프랑스 CPE 반대 투쟁도 2달여 했다. 우리는 세달을 넘기고 있다. 이 투쟁을 바라 보는 관점들, 회고적이라는 한계 안에서 바라보자면 두 가지 정도로 나눠질 것이다. 승리주의의 관점과 대기주의의 관점. 후자의 관점이라는 것은 여튼 운동의 역사 속에서 상당한 비판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고 전자의 관점만으로 투쟁 일정들을 바라보기만 해서도 곤란하다. 이 투쟁은 마냥 승리의 관점에서 바라봐서도 안되고, (패배주의는 말할 가치도 없다) 대기주의식으로 '아직, 아직'이라고 외치는 것도 곤란하다. 대기주의적 관점이 에누리 없는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일정에 대한 적극적 개입과 창조적 활력을 통해 일정을 능동적으로 작성해 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수동적으로 적들의 공세에 반응하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결국 용두사미가 되거나, 유야무야 되어서 '처음처럼'을 외치는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문제는 공세적 자세를 항상 견지하면서, 미래의 퍼스펙티브를 선취하고, 그것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지는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직력'과 '공분'이 필수다. 또 한가지 전략적-전술적 시기조절이다. 때를 잘 타야 된다는 말. 물질적으로 수세적인 시기(지금과 같이 명박이가 올림픽 특수를 톡톡히 누리는 시기), 그리고 수세적인 공간장악력(시청은 애초에 뺏겨 버렸다) 하에서는 섣불리 '승리주의' 관점을 취해서는 곤란하다.

대신 전술과 전략을 투쟁의 현장에서 배워나가야 한다. 얼마전 명동 투석전은 잘만 가꾸어 나간다면 훌륭한 전술로 상승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지금까지 촛불 투쟁의 활력을 가로 막은 주요 이데올로기는 폭력-비폭력이라는 evil-circle이다. 물리력은 투쟁의 필수 사항이다. 이건 진리이지 않은가?

이제 27일에 범불교도 대회가 있다. 사실 이 대회는 반정부 투쟁의 성격이 있긴 하지만 그 주요 동력은 바로 '종교편향'이다. 거기에 지금 총무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진보승려들의 독려가 한 몫한 것이다. 그러므로 총무원 스님들의 바램과는 상관 없이 이 대회가 주요 타겟을 이명박과 어청수, 권력 핵심의 탄핵과 정권퇴진의 절정으로 모아질지는 미지수다. 다만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시민들이 이 대회의 활력을 받아 안고 시청을 제대로 재전유하는 것이다. 아니, 시청이 아니라도 상관 없다. 명동에서와 같은 투쟁동력을 집단적으로 펼치고 그 후속조치들을 집단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한다면 ... 정말이지, 이후 이 싸움의 주도권은 시민들에게 되돌아 올 것이고, 명박이는 아가미가 상당히 답답해 질 것이다(퇴진은 조금 더 나아가야 한다). 제발 그렇게 되기를 빌어 본다. 뭐 가능성 희박하다고 꿈꾸는 것까지 안 할 수는 없지 않겠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