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ary No. 300, Mar. 1, 2011

변화의 바람 - 아랍 세계와 그 너머
("The Wind of Change - in the Arab World and Beyond")

 

 



 
51년 전인 1960년 2월 3일, 당시 영국 총리였던 보수당 소속 해롤드 맥밀런은 남아프리카공화국 국회에서 연설했다. 아파르트헤이트(제도화·정책화된 인종주의)를 통치의 기초로 삼던 정당이 다수 의석을 점하던 곳에서였다. 그가 한 연설은 훗날 “변화의 바람”이라 불리게 된 것이었다. 연설에서 그가 했던 말은 충분히 되새김해볼 만하다. “변화의 바람이 이 대륙에 불고 있으며, 그게 좋든 싫든 간에, 민족/국민의식의 성장은 정치적으로 기정사실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것을 정치적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일련의 국내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당시 남아프리카 공화국 수상이던 헨드릭 버워드는 이 이야기에 화답하지 않았고 그 이야기에 담긴 전제들과 제언을 거부했다. 1960년이란 해는 이제껏 아프리카의 해로 불려왔는데, 이 한 해 동안 16개의 식민지가 독립 국가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맥밀란의 연설은 사실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 절반을 차지하는 이들 국가에 주요 백인 정착민 집단(과 엄청난 광물 자원)이 자리해 있다는 점을 쟁점으로 삼은 것이었다. 이들 백인 정착민 집단한테는, 흑인들이 유권자의 압도적 다수를 이루게 될 보편적 선거권이란 발상 자체가 용납되지 않았다.

 

맥밀런은 급진정치 쪽관 무관하다시피한 인물이었다. 그가 펼친 기본 논지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의 주민들을 냉전 구도 아래서 서방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와 맞물려 있었다. 그의 연설은 의미심장한 것이었는데, 영국(을 나중에 뒤따르게 된 미국) 통치자들에게 백인의 지배라는 대의에 맞춤한 남아공 선거 제도는 이에 우호적인 백인들과 나란히 서방을 주저앉혀버릴지 모를 만큼 파국적임을 환기하는 신호란 점에서였다. 바람은 계속해서 불었고,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보편적 선거권(에 대한 대중적 요구)에 굴복하고 넬슨 만델라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기까지, 아프리카 대중은 각국별로 자기들 나름의 성취를 이뤄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영국과 미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는 어떻게 해서든 유지됐다.

 

이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두 가지다. 먼저, 변화의 바람은 아주 강해서 이에 저항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둘째로, 폭정의 상징들이 그 바람으로 일단 날라가버린 다음에 어떤 일이 뒤따를지는 매우 불확정적이라는 점이다. 상징들이 일단 쓰러지고 나면, 그같은 상징들은 어느 누구 할것없이 사후적으로 비난받는다. 그러나 기존에 누려온 이해관계 역시 새롭게 부상하는 구조들 속에서 어느 누구 할것없이 지키고 싶어 한다.

 

(1916년 첫 번째 봉기 이후)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촉발된 두 번째 아랍 민중 봉기의 물결은 지금 점점 더 많은 국가들을 휩쓸고 있는데, 더 많은 폭정의 상징들이 몰락을 맞거나 국가구조 내적인 변동을 대대적으로 겪으리라는 덴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러고 난 다음엔 누가 그렇게 몰락하거나 재편된 권력을 유지할까? 우리는 이미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이전 정권/체제의 핵심인물이던 이들이 새 총리가 되는 정황을 목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두 나라 군부에서는 봉기에 가담한 주민들에게 저항을 멈추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두 나라에선, (대외 종속 강화의) 축대 역할을 하면서 이전 정권/체제를 떠받치던 바로 그 서유럽과 북미 지역 국가들과의 연계를 지속하고, 심지어 확장하려는 추방자들의 귀환이 벌어지는 중이다. 확실히, 대중적 세력들은 이에 반격을 가하고 있고, 이 글을 쓰기 바로 전에 그들은 총리의 사임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프랑스혁명 와중에, 당통은 “대담무쌍하고, 더 대담무쌍하며, 언제나 대담무쌍“해질 것을 권고했다. 좋은 충고였던 것 같은데, 그러나 당통은 그후 오래잖아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그리고 다음 번엔 당통의 목을 쳤던 이들의 목이 잘렸다. 그 뒤로 우린 나폴레옹을 맞이했고, 그 다음엔 왕정복고가 되더니만, 그리고선 1848(세계혁명)이, 그리고는 파리코뮌을 경험했다. 1989년에, 그러니까 200년이 지나고서야 사람들은 사실상 어느 누구 할것없이 프랑스혁명을 사후적으로 긍정하게 됐지만, 우리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프랑스혁명에서 3위일체를 이뤘던 가치인 자유와 평등, 우애가 실제로 실현됐느냐고 말이다.

 

오늘날 정황은 이전과는 상당히 다르다. 지금 일고 있는 변화의 바람은 진정으로 전지구적이다. 현 시점상 변화의 진앙지는 아랍 세계이고, 이곳에서 바람은 여전히 격렬하게 휘몰아치는 중이다. 의심할 바 없이, 이 지역의 지정학은 결코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예의주시해야 할 결정적인 장소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팔레스타인이다. 사우디 왕정이 심각한 도전을 맞이할 경우 (아무리 못해도 이런 도전과 마주할 가능성은 있을 텐데) 아랍 세계 내의 어떤 정권/체제도 안전하다 자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바람에 팔레스타인에서 정치적으로 주요한 두 세력이 손을 맞잡게 될 경우, 해롤드 맥밀란 전 총리가 한 표현을 이 대목에서 써먹자면, 이스라엘마저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민족의식을 고려해야 하는 정황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미국과 서유럽은 이같은 변화의 바람에 대해 김을 빼고, 제한을 가하며, 그 방향을 틀고자 권력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가 부리는 권력은 예전만 못하다. 그리고 변화의 바람은 그네들 국가의 영토 내부에서 일고 있는 중이다. 바람이 이는 방식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들 바람의 방향과 동력은 한결 같지도 않고, 따라서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번에 이는 바람은 굉장히 강력하다. 이 바람을 엿먹이고 제한하며 재정위하기가 이제 더는 그렇게 쉽진 않을지도 모른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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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4 04:03 2011/03/04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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