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ary No. 209, May 15, 2007


프랑스: 드골주의의 종언?
("France: The End of Gaullism?")



프랑스 대통령으로 갓 당선된 니꼴라스 사르코지는 선거 직후 낸 첫 성명에서 강한 어조로, 프랑스는 변화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권력을 손에 넣은 이들 사이에서 자기가 변화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중요한 건 변화를 천명한 그의 발언이 진심이었는지, 그렇다면 그게 대체 뭘 의미했느냐는 점이다. 미국에선 그의 당선이, 다섯 번에 걸친 공화국 출범이 이뤄졌던 프랑스 역사상 미국에 가장 우호적인 대통령의 등장이라고들 해석하는 상황이다. 두말 할 것 없이 그렇기는 하나, 이것이 프랑스 외교정책의 변화를 뜻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의 당선이 설명하는 바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해보자. 서구의 선거 체계에서는 통상 양대 정당이 한쪽은 좀더 왼쪽에, 다른 한쪽은 좀더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인데, 우파 주류는 사르코지가 속한 대중운동연합(UMP)이 대표하며, 좌파 주류는 세골렌 루아얄이 대선 후보로 나섰던 사회(주의)당이 그렇다. 대부분의 선거에서 보통은 각당의 고정지지층이 각당 후보를 지지하기 마련이다. 결선제도를 운용하는 프랑스에서는 결선에 갔을 때 지지양상의 재편을 좌우하는 세 지대로, 훨씬 더 왼쪽인 지대, 훨씬 더 오른쪽인 지대, 그리고 중간 지대가 있다. 이 중간 지대는 양대 정당 중 어느 쪽으로라도 움직일 채비가 돼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훨씬 더 왼쪽/오른쪽에선 둘 중 하나를 지원하거나 기권을 하는 게 보통이다.

1981년과 1988년 프랑수아 미테랑이 사회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이는 중간 지대에서 몰표를 획득했던 덕분이었다. 1995년 우파 후보로 나온 자끄 시락이 선거에서 이겼을 때는 그는 “사회적” 강령을 덧붙임으로써 중간 지대의 몰표를 얻었다.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사회당보다) 훨씬 더 왼쪽인 지대에서는 루아얄을 지지했다. 중간 지대에 자리한 유권자들은 늘 그랬듯 두 갈래로―3분의 2는 우파, 나머지 3분의 1은 좌파로 쪼개졌던 듯싶다. 사르코지가 추가표를 획득한 건 훨씬 더 오른쪽에 위치한 유권자 지대에서였다. 훨씬 더 오른쪽 지대에 위치한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대표격인 장마리 르펜 후보가 드러내놓고 결선에서 기권하라고 했건만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사르코지한테 표를 몰아준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들이 사르코지를 지지한 이유다. 이들은 대부분 대미관계에 대해 관심이 없다. 사르코지가 공약한 보수적인 경제조치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사르코지를 지지한 건 크게, 이들 눈에는 그가 자신들한테 중요한 의미를 지닌 반反무슬림적 입장을 대변하고 있어서다. 이런 입장을, 그는 세 가지 특정한 방식으로 내보인 바 있다. 그는 프랑스 게토 지역으로, 이민자들이 밀집해 있는 banlieues에서 발생하는 범죄에 단호히 대처하겠노라 약속했다. 이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그리고 그는, 터키가 유럽연합의 회원국으로 가입하는 데 대해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할 거라고 했다. 그가 이 세 가지 약속 지키리라는 건 거의 확실한데, 훨씬 더 오른쪽 성향의 유권자들은 이에 따라 자신들이 원했던 바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런 움직임이 사르코지의 나머지 구상과 관련하여 함의하는 바는 뭘까? 있다 쳐도, 딱히 의미심장하다고 할 만한 건 없다. 대중운동연합은 근본적으로 드골주의에 뿌리를 둔 정당이다. 드골주의는 뭐며, 또 뭐였을까? 샤를르 드골이 2차대전 직후 집권하면서 표방했던 건 세 가지였다. 즉, 세계정치의 장에서 프랑스가 주요하면서도 독립적인 위상을 확보하는 데 힘쓰는 한편, 일종의 케인즈주의 경제정책으로 프랑스 국가의 주된 역할을 특징으로 하는 통제경제 기조(dirigisme)를 채택함과 아울러, 대내적으로 반反공산주의 노선을 따르는 것.

1958년에 그가 다시 정권을 잡았을 때도 그 내용엔 변함이 없었다. 프랑스의 핵무기 보유에 관해 언급할 때 그는, 핵무장 계획이 프랑스를 사방(tous azimuts)으로부터 막아내는, 바꿔 말해 전방위 방어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지휘체계로부터 빠져나오면서도 그는, 프랑스가 미국과 마찬가지로 국경을 가로질러 같은 편을 먹고 있다고, 그러니까 반공 진영에 속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식 복지국가의 틀을 유지하는 데 진력하는 것도 전과 다름이 없었다.

드골 이후 프랑스에서는 네 사람이 대통령 직을 거쳤다. 그들 중 삼위일체를 이루는 드골주의의 세 축, 즉 프랑스의 독자적 위상 강화, 복지친화적 국가, 반공주의 기조에서 실질적으로 벗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넷 중에서 자타칭 드골주의자라고 했던 이는 둘뿐이었는데도 말이다.

사르코지가 제창한 변화는 드골주의의 삼발이로부터 제대로 벗어나자는 얘기일까? 회의적이다. 미국에 대해, 그는 그간 이라크 개입 건과 관련하여 프랑스가 대응하는 방식이 “오만”했다고, 그러나 기본적인 입장이 미국과 다른 건 결코 아니라고 해왔다. 이런 모습은 외려 (독일 수반) 메르켈의 노선에 가깝다. 미국에 대해 공손한 수사를 구사하면서도 상당 정도 독자적인 정책을 꾀하는, 그런 노선 말이다. 메르켈은 얼마 전 워싱턴을 상대로 상냥한 어조를 취함과 동시에, 폴란드와 체코 지역에 핵요격 시설을 미국이 배치하려는 데 대해 강한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19세기 중반 영국 외무부장관을 지냈던 팔머슨 경이 한 유명한 말이 있다. “대영제국한테 영원한 맹방이란 없다. 영원한 거라곤 모국의 국익뿐”이라는 말 말이다. 프랑스의 국익은 무엇일까? 사실, 프랑스는 미국한테 아쉬울 게 거의 없다. 프랑스의 지지가 아쉬운 게 외려 미국이라면 모를까. 프랑스의 국익은 무엇보다 유럽이라는 틀거리, 그리고 옛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지역과 어떻게 관계맺느냐에 달려 있다.

유럽에서, 프랑스의 국익은 독일과의 긴밀한 유대를 지속함으로써 극대화될 수 있다. 사르코지의 프랑스에게 메르켈은 대처 전 영국 수상보다도 훨씬 더 비중있는 역할 모델로 자리한 셈이다. 아프리카의 옛식민지들의 경우 사르코지가 당선된 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공개적으로 내비쳤는데, 바로 프랑스 극우 진영에서 내세운 의제들을 포용하겠노라는 그의 입장 때문이다. 사르코지 행정부의 외교정책은 독일과의 우호관계를 증진하는 한편, 프랑스의 구식민지 지역에 각인된 그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드골주의 노선을 포기하는 건, 앞으로 그가 취할 행보가 뭐가 됐든 보탬이 되지 않는다. 확실히, 주 35시간 근무제를 폐기하고, 이런저런 조세개혁 조치를 그가 취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복지국가 틀을 깨는 일과는 무관하다. 이번 선거에서 그가 써먹은 또 하나의 테마로는 1968년의 유산과 확실히 선을 긋겠노라는 약속이 있는데, 말하자면 반공주의의 2007년 판본이지 싶다. 이 다짐이 실제로 무얼 뜻하는지 파악하기란 아직 어렵다.

국내 정치적으로 봤을 때, 사르코지는 중도 지대 내에서 조직적 움직임을 보이며 “진정한” 중도 정당 창당으로 주류 우파와 거리를 두고싶어 했던 그룹을 가능한 한 끌어안기 위한 행보에 나설 참이다. 분명 뚜렷한 성과를 거둘 것이다. 사회당 내부의 난맥상이 향후 그의 선거기반을 강화하는 데 보탬이 되리라는 건 두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일들은, 1945년 이래로 지속돼온 정치적 합의가 깨지는 상황하고는 한참 거리가 멀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 예일대 수훈교수, 사회학


원문보기http://fbc.binghamton.edu/209e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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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2 21:48 2008/03/12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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