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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와 소수 그리고 규칙

영화 '반칙왕'을 보면, 험한 세상을 아주 비굴하게 살아가는 회사원과 규칙을 깨뜨려가며 생존을 그리는 한 가면안의 레슬러가 있다. 사실 그 회사원과 레슬러는 생존을 위해서 한편은 암묵적인 규칙을 철저하게 따르고 혹은 철저하게 파괴하는 묘한 대조가 있다. 그리고 그 가면속의 레슬러는 그 속에서 용기를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04년 정기국회 회기가 며칠 남지 않은 연말에, 뉴스를 가득 메운 얼굴 중에는 꽤 익숙한 한 정치인도 있었다. 카메라는 연신 그를 비추기 바빴다. 사실 한평생을 국가보안법이라는 굴레속에서 몸서리 친 선배와 동시대의 사람들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씁쓸함이 가득 머리를 파고든다. 그리고 또 화가 난다. 의사봉을 손바닥으로 대신하는 모습은 그들이 비판한 지금껏 '날치기'와 하등의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규칙이 있는 판에서 뭘 해보겠다는 일군의 사람이 있었고, 이제 그들은 더이상 설득과 대화의 여지는 없다며 그 규칙을 무너뜨렸다.

일상에서 다수와 소수의 대결은 존재한다. 이 사회에서 그 대결은 대체로 다수의 표면적 승리로 귀결되기 일수다. 그런 패턴은 몸서리칠정도로 아주 오래되었다. 수영장에서 어린 아이를 내리치는 한 중년의 사내아저씨의 거대한 손바닥은, 그런 폭력에 항상 침묵으로 동조하는 방관자로 이어지고, 또다시 종교적인 이유를 핑계로 구획긋기를 합리화하는 거대권력으로 번지며, 이도 모자라 총부리를 겨눈다. 학교는 '왕따'로 이를 반영하고 회사는 '줄타기'로 대변한다.

현실의 아득한 권력짓기 속에서 누구 하나 예외일 수 없는 다수가 가진 폭력, 대체 어디서부터 반기를 들어야  하는 것인지? 이 사회의 소수의 권리에 대한 옹호는 정말 가당키나 한 것인가? 자꾸 회의적인 생각만 머리를 짓누른다.

나 또한 예외일 수 없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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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그리운 지난 것 혹은 두려운 올 것로의 떠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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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 얘기나 써볼까라고 생각한 2004년 7월 27일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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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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