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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하루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매일 익숙한 것보다는 낯선 것을 더 많이 겪는다.

일도, 만나는 사람도, 사물도, 지나는 길과 버스와 지하철 노선까지.

 

익숙한 건, 잠뿐인 것 같다.

 

다시 새내기가 된 것 같고, 내 성향이나 성격 따위 알아주지도 않을 사람들과 부딪쳐야 하고, 

날씨가 포근하다지만 내 몸은 겨울 탄다고 덜덜 떨리고

자꾸만 체한다.

 

2007년 스물여섯의 겨울이 이렇게 지나간다.

 

 

지은 -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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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도 뉴스도 보기 싫어

정치,에 별로 관심 없었다 치자.

뭐 자세히 알고 있는 것도 없잖아?

뉴스에서 읊는 것, 귀동냥으로 들은 것, 그리고 웹서핑하다 스쳐읽은 몇 줄. 그게 다니까.

귀찮으니까 두루뭉실하게 얘기하다가 결국 '나뻐' , '싫어'로 끝내버리곤 했던 정치/대선 대화.

 

요 며칠 친구네서 텔레비전을 봤는데 뉴스를 앞부분도 다 못보고 꺼버렸다.

당선 직후라지만 명박이 얘기가 너무 많이 나와서 싫어. 벌써부터 땡전뉴스 부활할까 두렵다.

여튼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에이씨!

 

세율조정이니 대학입시제도니 아파트 뭐시기니, 아아아 다 맘에 안 들지만

무엇보다 내년에 운하 착공하겠다는 말에는 '미치겠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지구특공대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거야? -_ㅜ)

 

대선 날 집에 혼자 들어가서 인터넷으로 대선 중계를 지켜볼 때보다 더더더더더 우울하다.

어쩜 좋냐.  ㅠ_ㅠ

신당도 깨갱하고, 언론들도 벌써부타 명박이 눈치보는 것 같다.

 

총선은 또 어떻게 될랑가. ㅠ_ㅠ

민노당도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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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내일은

"자췻집-엄마네 동네로 가서 투표하기-12시까지 한강진역-네모선장과 저녁약속"

 

 

-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들이대고 혼자 걷고 혼자 돌아다니는 자유

자유로운 만큼 외로운 시간

 

그리고 겨울 바람에 오들거리는 몸만큼

쿵쾅리는 심장

 

뭐가 그렇게 두려운 게냐

 

혼자 결정하고 움직이면서도,

지금 어딘가에 기댈 구석이 있다는 걸 감지하는 순간

든든함을 느끼느니 차라리 무너져버리는 나.

 

일어서기보다는 주저앉아 울고 싶은 마음

 

나에게 좀 가혹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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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126

 

미셸 르미유,  <천둥치는 밤>(비룡소,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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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얼중얼

이맘때 학교 안은 학교 밖보다 더 춥다. 덕분에 주말 내내 공부도 안 하고 감기로 골골골. 회사는 이제 정말 그만 나와야지. 손이 시렵다. 입술이 튼다. 입 안에 난 혹은 여전하다. 아빠의 문자를 볼 때마다 속이 울렁거린다. 나도 아빠도 똑같이 애다. 혼자서 병원을 찾아갔을 모습을 상상하니 안쓰럽다. 우울하다. 서울우유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그들의 요구는 너무 소박한데 회사는 들어주지 않는다. 시간을 가리지 않고 일하고, 회사의 압박 때문에 초과적재까지 해가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운전기사들이 생각난다. 내가 마셔온 우유들은 맛있는 척, 신선한 척, 1등급인 척, 몸에 좋은 척을 해왔구나. 벌써 이 일로 두 사람이 죽었다. 회사는 더 많은 사람들의 숨통을 지긋이 누르고 있다. TV는 안 봐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신문은 그들의 죽음과 요구에 너무 조용한 것 같다. 참세상에서 찍은 투쟁 모습이 생경하다. 사람들은 이런 것과 너무 상관없이 살고 있으니까. 누가 자꾸 우리 등을 미는 걸까. 옆을 둘러볼 새도 없이, 연대의 손을 내밀 틈도 주지 않고(하긴 같은 회사 동료와도 연대하기가 쉬운가?), 자기 밥벌이만도 버거워 헉헉대며 살아가게 만든 걸까. 그렇게 바빠도 어차피 가난할 텐데, 돈을 이미 가진 사람들의 돈굴리기는 쉬워지고, 노동해서 사는 사람들의 생활은 갈수록 팍팍해질 텐데...... 나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회사도 가지 않고, 이제 시간이 잔뜩 생겼는데, 다시 학교에 갇혀 일본어 문장이나 외우고 있다. 이런 내가 가끔씩 한심해 보이고, 이것이 공부일까, 싶기도 하다. 자본에 이용당하지 않고 싶다,고 친구에게 말해봤지만, 그 말은 11월의 스산한 바람 한 줄기와 다르지 않았다. 내일은 또 무엇을 할까,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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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봉?

요즘은 루냐보다 재봉으로 불릴 때가 더 많은 듯.

그건 나의 룸메 님과 논비리 친구들이 그렇게 불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퇴근하고 집에 가면 염리동의 똥개, '재봉'이 된다.

사실 발음하기도 어렵고 어딘가 약해보이는 루냐보다는

활발하고 엉뚱하고 시골청년다운 재봉이 좋다.

재봉으로 바꿔버릴까-

씩씩하고 명랑하게, 대책없이 달려라, 재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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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환경연대 그린리본 캠페인

 

여성들이 펼치는 “그린 리본” 캠페인

- 유해화학물질 추방으로 여성의 건강한 유방을 지키자! -


■ 배경 및 목적

-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 유방암이 급속히 증가하며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동안 유방암의 원인에 대한 연구는 유전적 요인, 출산 및 모유수유 여부, 초경/폐경시기 등의 생물학적 요인으로 분석해 왔다.
- 그러나 최근 들어 전 세계적인 유방암의 급증은 생물학적 요인으로만 설명할 수 없으며, 이에 유해화학물질의 범람과 같은 환경적 요인과의 관련성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들도 활발히 발표되고 있다. 또한 많은 나라에서 유방암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예방하려는 구체적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다.
- 특히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화장품, 합성세제, 살충제, 방향제 등에 함유되어 있는 각종 유해화학물질이 모두 유방암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는 유방암을 일으키는 또 하나의 환경적 영향이 되고 있다. 이로 인해 점차 남성 유방암 발병률이 높아지는 등, 남성들의 건강까지 위협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 아직까지는 위기감만 높아져 있을 뿐, 유방암과 환경과의 관계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명확하게 인지되고 있지 않으며, 현재 한국에서, 그리고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핑크리본 캠페인은 유방암에 대한 사전예방이라기보다는 사후관리나 기업의 마케팅 전략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 이에 여성환경연대가 앞으로 벌여나갈 유방암 예방 캠페인을 “그린 리본” 캠페인으로 명명하고, 유방암과 환경문제와의 관계를 널리 알려나가고, 정책적 차원에서 유방암을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촉구할 것이다.

 

: 여기 나온 생활수칙 중에서 제가 지키고 있는 것은 몇 개 되지 않네요. 조금 더 편리하다는 것 때문에 실천을 미루고 있어요. 그래도 가만 보고 있자니, 사람의 몸이 건강해지는 것도 지구가 건강해지는 방법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에서 더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이런 생각을 좀 더 강하게 해서 귀찮아하는 몸을 움직이고 굳은 습관을 깨버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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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희망을 말하다! _여성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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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free! Burma!

계피

추석연휴를 며칠 앞둔 9월 어느 날이었다. 일거리는 마치 씹다 뱉은 껌처럼 책상과 머릿속에 눌어붙어 퇴근하려는 내 뒤통수를 끈덕지게 바라보고 있었지만, 단호히 칼퇴근을 해버렸다. 집에 일찍 가는데도 기분이 개운치 않아 이나영의 사진이 붙어 있는 빵집에 갔다. 그곳에는 내가 좋아하는 'UFO 빵'이 있다. 어리석고 소용 없는 생각이지만, UFO 빵은 UFO라서 왠지 힘이 난다. 지구의 평화로운 종말을 기도하며 빵을 씹을 것이다. 나만 들을 수 있는 내 머릿속 카세트에서는 "날아와 머리 위로~" 하고 패닉의 노래가 흘러나올 것이다. 아무튼 나는 그 빵을 사러 간 건데 옆에 있는 작은 빵이 눈에 들어왔다. 계피가루 범벅이 된 작은 만주. 같이 샀다. 빈 집에 들어가 이불에 기대고 앉아서 빵을 먹었다. 계피향이 참 좋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아빠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환상이라기보단 우리 아빠가 대단한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로서는 그냥 견학을 다녀왔을 뿐인데, 난 그때 우리 아빠가 엄청 대단한 일을 하느라고 독일도 가고 일본도 가는 줄 알았다. 아빠가 독일을 다녀온 어느 날, 무거운 빵을 사왔다. 엄마는 그게 계피빵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 입 베어 물고는 "이게 무슨 '빵'이야? 퉤퉤퉤" 하고 말았다. 그건 빵이라기보단 한약을 뭉쳐놓은 것 같았다.

 

그땐 그렇게 싫었는데, 난 지금 계피가 참 좋다. 그리고 계피향을 맡으면 반드시 그 고약한 맛의 계피빵이 생각난다. 계피빵은 자연스럽게 아빠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계피향은 좋지만 아빠는 싫었고 지금도 나와는 안 맞는 사람인데, 그 둘의 관계는 긴밀하다. 아마 그때까지도 그가 그 자신이 되기보다는 '우리 아빠' 라는 신이 되어주길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계피빵을 지금도 기억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때 내가 그를 '내가 원하는 이미지대로'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난 아빠를 인격적으로 알 거나 이해하지 못했다.

 

마침 며칠 뒤면 추석이었고 아빠는 혼자 할머니댁에 가거나, 텅 빈 집에 혼자 있거나 할 것이었다. 아빠한테 갈 용기도 없고 대면하려면 더 오랜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계피향 덕분에 그냥 잠시 그를 생각할 뿐이었다. 어느새 일에 대한 걱정이나 다른 생각은 다 잊어버린 채,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빵을 천천히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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