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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고착화되는 동아시아 신(新)냉전 체제와 고요한 한반도

  • 분류
    국제
  • 등록일
    2012/08/14 14:59
  • 수정일
    2012/08/14 14:59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뜨거워지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 속에서 북한의 선택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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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7월 일본, 아프가니스탄, 몽골,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이례적으로 중국의 동서남북에 있는 나라들을 모두 순방한 미 국무장관 힐러리는 “정치적 개혁 없는 경제적 성공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유독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상 중국의 정치체제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었다. 미국은 중국을 둘러싸고 있는 아시아 일대 국가들과 밀접한 외교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을 향해서는 체제비판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때마침 <뉴욕타임즈>, <블룸버그> 등 미국의 주요 언론들도 ‘중국 때리기’에 동참하고 나섰다. 하나같이 중국의 정치체제를 도마 위에 올려놓으며 권력층의 만연한 부패를 집중적으로 폭로했다. 중국이 시장자본주의를 적극 받아들인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을 했지만 후진적인 정치체제 때문에 결국은 사상누각이 되고 말 것이라는 식의 공격이 주류를 이루었다. 특히 중국을 놓고 “권력과 자본주의에 기생하는 공산주의”라는 혹평은 미국의 중국견제가 이제는 이념적 잣대에 따른 이데올로기적인 공세로 한층 더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미국과 중국 간의 대립과 갈등은 과거 냉전체제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점차 거대해지는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미국은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향후 10~15년 후에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대체적인 전망은 미국으로 하여금 대중 포위 전략을 더욱 재촉하고 있다. 중국 또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에 주저하지 않으며 지역안보기구인 상하이협력기구(SCO)를 내심 미국에 맞선 새로운 국제질서로 구축하려 들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동아시아 신냉전 체제 속에서 최전선에 위치한 한반도와 그 주변지역의 긴장분위기가 심상찮게 더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냉전 때보다 더 냉전적인 동아시아 정세


지난 6월14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의 공동선언에서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그러나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결과가 발표되었다. 한미동맹 관계에서는 이례적으로 일본과의 3자 안보협력과 그 중요성이 언급된 것이다. 이는 한미일 3각 동맹체제가 사실상 공식 출범되었음을 천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동아시아에서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으로 이원화된 친미동맹 체계가 하나의 정치군사적인 블록으로 융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명박 정권 이전만 해도 일본을 포함한 안보체계의 확립은 한미동맹 내에서 공식적으로 논의조차 되지 않던 의제였다. 안보관련 정보공유가 한미, 미일 양자 사이에서 배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한미일 3각동맹이 실질적인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한일 군사협력의 강화가 요청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보분야에서 한일관계의 진전은 과거사 및 독도 문제와 맞물려 언제든 국민적인 반일감정을 고조시킬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물론 지금도 한일 간에는 국정원, 검찰, 경찰, 국방부 등에서 일상적으로 정보협력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를 동맹관계 수준으로 공식화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에서 바로 이와 같은 금기가 깨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라는 이명박 정권은 한미일 3자 안보협력, 결국은 일본과의 군사협력 강화를 꾀하는 행보를 취임 첫해부터 밀고나가고자 했다. 2008년 1월 “일본의 사과를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겠다”는 이명박의 파격선언은 사전 정지작업과도 같았다. 하지만 곧이어 터진 2008년 촛불투쟁은 이명박 정권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키며 더 이상 한일 간 안보협력을 드러내놓고 추진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난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은 이러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로 활용되었고, 이후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 속에서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이 성사되는 등 한미일 3각 동맹 추진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한일 군사협력의 완성이었다.


주목되는 것은 현재 한미일 3각 동맹이 단지 선언적인 의미에 그치지 않고 제도화의 수순을 밟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권이 강행한 한일 군사협정 추진이 ‘밀실처리’ 논란을 빚으며 중단되었음에도 한미일 3국은 지난 7월12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별도의 3자 외무장관 회담을 갖고 안보협력의 강화를 위해 미국 워싱턴에 ‘실무급 운영그룹’을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2008년 이후 한미일 3자 국방회담이 비공개로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 합의된 실무급 운영그룹의 창설은 한미일 3각 동맹을 되돌릴 수 없는 제도적인 틀로 묶어두겠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이는 다분히 남한의 정치지형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12월로 예정된 남한 대선에서 설령 야권이 승리하더라도 남한의 차기정권이 ‘MB의 유산’을 쉽게 털어버리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으려는 것이다. 국가안보 문제를 놓고 미국과 합의한 사안을 일방적으로 파기한다는 것은 남한 내 전통적인 보수층의 반발을 불러올뿐더러 지금의 한미동맹 속에서는 아무리 야권이라 해도 남한의 집권세력이 된다면 정치적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한미일 3국은 한일 군사협정 추진이 현재 답보상태 중임에도 이명박 정권의 남은 임기 안에 한미일 3각 동맹질서를 최대한 공고히 가져가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과거 냉전시절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동아시아 친미동맹 질서를 빠르게 완결 짓고자 하는 것이다.

 


중국견제를 향한 미국과 일본의 다급해진 발걸음

 

현재 미국의 움직임을 보자면 왠지 모를 다급함이 배어 있다. 사실 정치에 있어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한다면 지금의 이명박에게 한일 군사협정 추진은 썩 내키지 않는 것이다. 임기 말 ‘굴욕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이명박에게 대내외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미치는 한일 군사협정은 당장 정권의 자기이해와는 거리가 있는 까닭이다.
 

지난 4.11 총선 이후 박근혜가 본격적으로 현 정권과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이명박근혜’의 협력관계가 깨지고 있고 이른바 ‘형님권력’마저 붕괴된 불안정한 정국이다. 이런 상항에서 대선을 앞두고 국민적인 반대여론에 직면할 한일 군사협정을 대선을 앞두고 강행한다는 것은 스스로 악재를 불러들이는 것과 다름없다.


더구나 군사협정의 상대국인 일본은 최근 우경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핵무장 주장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 그리고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제도의 국유화 선언까지 과거 군국주의의 부활을 의심하게 하는 잇단 조치들이 나오고 있고, 그 주체가 현 집권당인 민주당이라는 점에서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일본 정치권에서 보수우파로 분류되는 자민당이 과거 집권시절 주장했던 것들이 이른바 ‘역사적인 정권교체’로 탄생한 민주당 정권에서 일거에 실현될 기세이기 때문이다. 단지 오는 9월 유력시되는 차기총선을 노린 국내정치용으로 치부하기에는 일본 정치권 전체의 움직임이 심상찮은 상황이다.


이처럼 한일 군사협정이 추진되기에 결코 호조건이 아니었음에도 미국이 이를 이명박 정권에게 강제했다는 것은 그만큼 한미일 3각동맹의 구축이 시급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 몇 년간 한미일 3자 안보협력을 공식화하기 위한 정치외교적인 준비단계를 밟아 왔다. 2010년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을 처음으로 가동시킨 미국은 <2011년 국가군사전략>에서 한미일 3각 동맹을 이미 기정사실화 했고, 2011년 6월 일본과의 외교·국방장관 회담에서는 이를 재차 확인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 6월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은 이러한 한미일 3각동맹의 출범을 최종적으로 공식 확인하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를 통해 미국이 노리는 것은 중국을 대상으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새로운 군사전략의 실행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군사전략은 항공모함을 주축으로 하는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항공모함은 전세계 바다에서 거칠 것 없이 군림해왔다. 특히 냉전체제의 종식 이후 20년간 일방적인 독주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군사력은 나날이 팽창했고, 특히 미사일 분야에서 미국의 항공모함을 직접 겨냥할 정도로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 2010년 5월 당시 미 국방장관 로버츠 게이츠가 항공모함을 앞세운 미국의 군사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선언한 것은 이와 같은 미국의 불안감을 보여준 것이었다. 이는 미국이 항공모함 등 구축함 운용계획을 전면 재수정해야 함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은 2010년 이후 이른바 ‘공중해양전(Air-Sea Battle) 전략’을 수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처럼 미군을 일본의 오키나와 기지에 집중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동남아․호주 등의 각 기지로 분산 배치하고, 중국과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MD(미사일 방어)시스템을 가동하는 동안 중국의 미사일 사정거리 바깥으로 항공모함을 비롯한 핵심전력을 이동시키고 그 다음에 반격을 노리겠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 정치권에서 여야를 떠나 안보 위기감이 감돌고 있는 것은 이 같은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이 실행단계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올해 2월부터 미국은 일본에 주둔한 미 해병대 병력의 일부를 괌의 미군기지로 이동 배치하기 시작했고, 이제 일본은 자체방어에 적극 나서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군사대국화를 향한 일본의 보폭이 점차 빨라지고 있지만 미국은 이에 대한 공식입장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경제위기 여파로 향후 10년간 최대 1조 달러까지 국방비를 삭감해야 할 처지에 놓인 미국의 입장에서 일본의 군사력 강화는 호재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군사전략에 따라 미군이 일본 이외의 지역으로도 분산 배치되는 만큼 일본의 군비증강은 동아시아에서 자연스럽게 미국의 군사적 역할을 대체하고 보완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이 군비팽창을 가속화할수록 주변국들의 우려 역시 높아지고 있다. 누구보다 일본과 영토분쟁까지 겪고 있는 중국의 반발이 거세다. 아시아태평양 국가를 선언한 미국과 우경화한 일본이 더욱 밀착할수록 중국의 행보도 거침없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중국견제 방식의 변화


중국은 급성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최근 4~5년 전부터 어느 나라로부터도 공격받지 않도록 군사력을 강화한다는 명분하에 대대적인 군비확충에 나섰다. 특히 2009년부터는 남중국해를 티베트, 대만에 이어 주권에 준하는 ‘핵심적 이익지역’으로 설정하고 본격적인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일본과는 센카쿠제도, 남한과는 이어도를 놓고 영토분쟁화 하며 동중국해에서도 대립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동아시아 해역 일대가 모두 ‘뜨거운 바다’로 들끓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분쟁이 상시화 되면서 중국의 팽창전략은 더욱 더 노골적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대중견제 전략 역시 그 방식을 달리하고 있다. 과거에 미국은 이른바 ‘중국 위협론’을 직접 내세우기보다는 북한 문제를 빌미로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정치군사적인 개입의 근거를 마련해 중국을 우회적으로 견제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2010년 3월 천안함 사태 직후 미국이 서해상에 항공모함을 동원하며 적극적으로 무력시위를 벌인 것은 이러한 정책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아시아 일대에서 중국의 팽창전략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미국과의 안보협력은 강화되는 추세에 있다. 그 결과 예전과는 달리 미국이 대중견제를 위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 한반도의 안보현안을 애써 부각시킬 필요성은 상대적으로 적어지고 있다.


이는 올해 들어 지난 4월 광명성 3호 발사를 제외하고는 뚜렷한 대외 움직임이 없는 북한과도 관련이 있다. 한동안 북한은 김정일 사망이라는 급변사태를 맞아 권력이양과 체제결속 등 내치에 주력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은 세간의 우려와 달리 신속하게 ‘유일적 영도자’의 지위에 올랐고 급격한 이상 징후는 노출되지 않았다. 소위 ‘백두혈통’에 따른 북한의 세습체제가 이미 확고히 자리 잡은 가운데 기존 권력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북한 지배층 내부의 공통된 이해관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의 지배권력이 김정은에게 당장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기는 어려웠고, 김정은 체제는 이른바 ‘김정일 없는 김정일 체제’로서 사실상 집단지도체제에 가까운 모습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지난 7월 북한은 김정일 사후 7개월 만에 김정은 1인을 중심으로 하는 권력장악이 실질적으로 완료되었음을 보여주었다. 김정일 생전에 김정은 후계체제의 군부 후견인으로 중용된 리영호가 7월15일 김정은에 의해 전격 실각되고 이틀 뒤 김정은 자신이 ‘공화국 원수’ 칭호를 받은 것이다. 리영호의 전격적 해임이 처음 알려졌을 때만 해도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 가능성까지 제기되었으나 이후 진행상황은 김정은의 권력토대가 당과 국가기관, 그리고 군부까지 확고부동해졌음을 보여주었다. 이에 따라 김정은 체제가 아직은 김정일의 유훈통치, 즉 ‘핵보유국과 위성발사’로 상징되는 김정일의 선군(先軍)정치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지만 굳건한 권력기반에 기초해 적어도 과거와는 다른 변화를 꾀할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 : 선군통치의 변화와 경제개혁 추진


특히 김정은 체제가 기존의 선군(先軍)정치을 고수하기보다는 선당(先黨)정치로 선회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제자리걸음을 맴돌고 있는 경제난이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 북한은 김일성 출생 100년을 맞는 2012년을 강성대국의 원년으로 선전해왔다. 하지만 북한의 노동자들이 피부에 와 닿는 민생문제는 여전히 열악한 상황이다.


반면 김정일의 선군정치 시대를 거치면서 ‘과대성장’한 북한 군부는 온갖 특혜 속에서 국가자원을 독식해 왔다. 경제재건을 위한 국정의 정상적인 작동을 위해서는 선군정치의 한계를 극복하고 당 중심의 체제 확립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김정은은 “군대가 너무 돈맛을 들였다. 총과 총알은 당과 국가가 만들어 주겠으니 군대는 싸움만 잘하면 된다”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맞물려 눈여겨 볼 점은 북한 당국이 최근 발표한 ‘6.28 방침’이다. 사실 북한에서 시장경제를 일부 도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중후반 소위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공식배급체계가 갑작스럽게 붕괴된 북한에서 시장자본주의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 있다. 문제는 기존 체제질서를 유지하면서도 시장화의 수준을 적절히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체제존립의 이유를 설파할 수 있는 국가중심의 경제재건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피폐해진 경제현실에서 재건을 위한 ‘종자돈’ 마련은 여전히 풀기 어려운 숙제와 같다. 김정은 체제의 첫 경제조치인 ‘6.28 방침’의 핵심도 협동조합, 공장, 기업소에서 시장가격이 반영된 생산비용을 국가가 선(先)지급하여 생산을 추동한다는 것에 있는 만큼 국가재원의 확충은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결국 최근 불거진 북한의 변화 양상을 종합해보면 김정은 체제는 장기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경제회복의 가시적 성과를 달성해야만 하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성적인 식량난과 물자부족에 직면해 권력이 더 이상 총구에서만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실인식은 북한 지배층 전체의 공통된 시각으로 보인다.


리영호의 전격적 실각이 의도하는 것은 북한 군부에 대한 김정은의 확고한 장악 외에도 군부의 각종 경제적 이권을 당으로 이전시켜 ‘6.28 방침’의 시행을 위한 내부적인 재정확보였음이 드러나고 있지만 군부 내에서 반발이나 동요는 전혀 감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이 광명성 3호 발사 실패 이후 3차 핵실험을 비롯해 군사적 행동에 더 이상 나서지 않는 것도 김정은 체제의 정책적 변화가 바로 그 중심에 놓여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2013년 한반도 질서

 

2012년 올 한해는 한반도를 둘러싼 6자회담 당사국 대부분이 동시적 권력교체기를 맞는 까닭에 동아시아 외교안보가 문제가 특히 주목되어 왔다. 특히 북한에서 김정일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6자회담 당사국 중 가장 먼저 권력전환이 이뤄짐에 따라 한반도 질서에서 북한변수가 미칠 영향력은 그만큼 클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예상외로 북한의 돌발행동은 지난 4월 광명성 3호 발사를 제외하면 전무하다시피 하다. 그러나 이마저도 2.29 북미합의 당시부터 미국이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고, 발사 일주일 전에는 미 고위급 특사가 방북했다는 점에서 엄밀히 말해 북한의 돌출적인 군사적 행동은 아니었다.


북한은 그 이후로도 미국과 꾸준히 이면접촉을 진행하며 모종의 돌발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북한은 3차 핵실험에 나설 뜻이 없음을 미국에 통보했음을 밝힌 바 있고, 7월31일부터는 사흘간 싱가포르에서 미국과 비공식 접촉을 하기도 했다. 이런 북한의 행보는 군사적 무력시위 등으로 미국과 남한의 차기정권과 시작부터 불필요한 마찰을 빚을 경우, ‘6.28 방침’ 역시 시작부터 그 미래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6.28 방침’이 내부자원의 동원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한 만큼 궁극적으로 외부로부터 대대적인 경제지원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결국 북미관계 개선이 관건인 까닭이다.
 

이는 남북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북한은 남한의 이명박 정권과 관계개선의 기대는 접은 지 오래지만 그렇다고 대화단절 및 국지적 무력도발 같은 강경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 도리어 지난 7월 청와대 대북강경파인 김태효의 낙마를 전후해 북한은 5.24 조치 해제로 경제협력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수준에서 남북관계 개선 의사를 밝혔고 이후 남북 물밑접촉이 모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될지는 불투명하나 관련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은 남북간 외교채널이 완전히 붕괴되지 않았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질 경우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도 한층 더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고착화되고 있는 동아시아 신냉전 체제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대립은 이제 한반도 질서를 놓고 우회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 직접 맞부딪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말은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역학구도가 형성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남북 군사대치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남북문제가 곧 동아시아 역내 질서를 좌우하고 대변하던 시대가 마감되고 오히려 미국과 중국의 동아시아를 둘러싼 파워게임이 한반도 질서를 규정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따라서 올해 말 미국과 남한의 대선 이후 차기정권들이 대북관계 진전에 나서고 북한 역시 본격적으로 경제재건에 집중한다 하더라도 이와 별개로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여건은 여전히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높다.


불안정한 동아시아 신(新)냉전 체제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지금의 동아시아 신냉전 체제가 과거 냉전질서와는 또 다르게 불안정한 모습을 노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일본을 비롯해 동아시아 친미국가들은 앞 다퉈 군비증강을 적극적으로 표방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부상을 미국 혼자만의 힘으로는 막기 힘든, 즉 미국의 절대적이었던 패권이 약화되고 있다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만큼 아시아 각국의 군비경쟁이 초래할 위험성은 더 커진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2008년 이후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장기화됨에 따라 각국의 지배 권력이 자국민의 불만을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경우 지금과 같이 동아시아 일대에서 갈등과 대립의 골이 깊게 패인 가운데 우연적인 군사적 마찰이 일으킬 파장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이때 한미일 3각 동맹과 같은 군사동맹의 네트워크는 전쟁의 안전판이 되기는커녕 국지적 충돌을 대규모 전쟁으로 확산시키는 연쇄 고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까닭에 지금의 동아시아 신냉전 체제는 전세계를 파멸로 몰고 간 과거 세계대전의 끔찍했던 기억을 상기시킨다. 영토분쟁과 민족주의 정서고조, 그리고 정치군사적인 동맹결성 등은 10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동아시아에서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증대됨에 따라 전쟁 발발의 가능성을 일축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유럽에서도 영국과 독일을 비롯해 각국의 국민총생산 대비 무역비중은 상호 간에 증가추세에 있었다. 이러한 점은 현재 고요하기만 한 한반도 정세를 쉽게 낙관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최근 북한의 경제개혁조치와 남한의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감으로 2013년 한반도 질서의 새로운 변화를 희망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동아시아 신냉전 질서가 강화될수록 장기적으로 한반도와 그 주변정세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글 : 김성렬 tjdfuf@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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