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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Focus]민주주의 없이는 사회주의도 없다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1/05/06 13:31
  • 수정일
    2011/05/06 13:32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지난 3월 이후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 공동실천위원회(이하 ‘사노위’)는 내부 논쟁에 휩싸였다. 발단은 3월 16일 사노위 서울지역위원회에서 발간한 온라인 정치신문 <사회주의자 통신> 창간호의 한 기사였다. <사회주의자 통신> 비평 꼭지에 실린 사노위 임천용 활동가의 ‘소책자 <사회주의 지금 여기에!>에 대한 간략한 비평’(이하 ‘비평글’)이 사노위 내부에서 논란이 되면서 그 파장이 일파만파 확산된 것이다. 임천용 활동가는 사노위에서 발행한 소책자 <사회주의 지금 여기에!>를 놓고 비평글에서 “소책자의 전체 기조는 사회주의의 혁명적 전통을 계승하는 방식이 아니라 비판적, 공상적 사회주의로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인의 정치적 견해를 밝혔을 뿐인 비평글은 그러나 곧바로 삭제 요구에 직면하게 됐다.
사노위 중앙집행위원회(이하 ‘중집’)가 긴급 소집되어 비평글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진 데 이어, 중집의 요청으로 입장을 밝힌 서울지역위원회 운영위원회(이하 ‘운영위원회’)는 조직 내 혼란을 부추기고 소책자 사업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비평글의 삭제와 사과를 요구했던 것이다. (운영위원회의 최종 입장은 삭제를 뺀 사과로 결정됐다)

 

비판의 자유

 

현존하는 사회에 머물지 않고 그 대안을 찾고자 하는 한, 비판의 자유는 필수적이다. 여느 진보적 운동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체제의 타파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주의 운동에서도 스스로 비판을 억압한다든가, 토론을 금한다든가 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기존의 체제로부터 비판의 자유를 요구하며 정치적 활동을 펼쳐내려는 것은 그 내부에서 그러한 자유를 폐지하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사회주의 운동진영의 일부에서는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조직 내부가 가장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뛰어난 전위들의 조직이라는 모종의 관념은 조직 밖에선 민주주의 투쟁을 지지하면서도 조직 안에선 민주주의를 도외시하게 했다. 이러한 이중 잣대는 불가피하거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내부 단속에 가까운 관료적 통제를 정당화 하는 구실로 악용되기도 했다.
사노위 내부에서 불거진 논란은 이와 같은 과거의 오류와 폐해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때문에 비평글의 내용과는 별개로 운영위원회가 취한 삭제와 사과 요구 역시 비판의 자유를 부정하는 관료주의적인 조치로밖에 볼 수 없다. 비평글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비판과 토론이 어우러지는 공론의 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운영위원회는 사전 검열을 통해 개인의 정치적 의사표현이 공론의 장에 들어설 기회를 가로막고자 했다.
이는 소통의 단절을 꾀하는 위계적인 명령으로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떠한 의견도 자유롭게 표현될 수 없고 그래서 검열을 의식하게 된다면 남는 건 결국 은연중에 강제되는 정치적 수동성의 강화일 것이다. 기본적인 요구인 표현의 자유, 비판의 자유가 존중받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그 생명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오직 공문구로 치장된 민주주의만이 활개 치게 될 것이다.
하물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같은 진보정당에서도 중앙당의 입장이나 정책에 대한 당원들의 비판은 당내 언론을 포함한 각종 매체나 당원 게시판 등을 통해 제기되고 있다. 이때, 의견들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정치적 의제를 앞에 두고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사노위 중집과 운영위원회가 보인 위로부터의 통제와 검열은 민주주의가 후퇴된 정도가 아니라 박정희이나 전두환을 떠올리게 할 만큼 시대착오적인 것이었다.

 

민주주의가 요구되는 시대

 

 

△ 출처 : 민중언론 참세상

사실 이 같은 지적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며, 지난 2008년 촛불시위에서 거리의 민주주의를 계기로 확인된 것이기도 하다. 촛불이 타오르던 그때 거리로 나선 수많은 노동자서민들은 아래로부터의 소통과 연대가 무엇이고, 집단적 의사결정을 통한 직접 행동이 무엇인지 체험하고 느낀 바 있다. 그러나 대중의 민주주의적 요구에 대해 지배계급은 비판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과 논쟁이 아닌 이데올로기적인 색깔론과 표현과 비판의 자유에 대한 억압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최근 원전 사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방사능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자 ‘친(親)원전’을 표방한 이명박 정권은 반동적인 보수언론의 지원 사격을 받으며 ‘방사능 색깔론’ 타령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방사능 불안감을 조성하는 불순세력이 있다”, “국가 전복을 획책하는 불순세력에 맞서 제압해야 한다”며 강경한 언사를 쏟아냈다. 공권력은 방사능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인터넷 게시물을 엄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런 상황은 해외도 마찬가지였다.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여러 국가는 TV 애니메이션 <심슨가족>의 일부 에피소드가 방사능 공포를 확대시킨다는 이유로 방송금지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지배계급의 ‘비판의 자유’에 대한 이러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국내 원전이 밀집되어 있는 경북 지역의 주민들은 오히려 원전의 수명연장 반대 및 영구폐쇄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들어갔으며, 4월 23일에는 환경시민단체들과 함께 고리 1호기 인근 월내항에서 고리 1호기의 폐쇄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3월 26일 전국적으로 반(反)원전 시위로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고, 심지어 재난으로 인해 비상상황인 일본에서도 4월 1일 1만5000명이 모여 원전 반대 거리행진을 벌였다.
원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러한 갈등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세계 곳곳에서 세계화 등에 반대하여 대중의 직접 행동이 증가하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안착되어 있다는 서구 사회에서도 국민국가의 재량권을 뛰어넘는 거대 자본의 이해와 사회구성원의 이해가 충돌하고 있는 모습은 대중의 광범위한 직접 발언과 직접 행동으로 등장하고 있다. 원전 반대시위 역시 이른바 ‘대의민주주의의 위기’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사람들은 민주적으로 소통된 이해를 가지고 집단적인 저항에 나서길 주저하지 않고 있다.
몇 달째 지속되고 있는 아랍의 민주화 투쟁은 민주주의를 향한 또 다른 모습이다. 이집트에선 소셜 미디어가 대중집회와 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으며, 리비아에선 카다피의 탄압 공세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무장한 반정부 시위대가 해방된 지역에서 한때 민주적 통제를 경험하기도 했다. 수많은 난관과 제약이 뒤따르고 있지만 고조된 투쟁의 활력이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었다. 아랍 각국에서 불붙은 민주화 시위 또한 새로운 저항주체 형성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민주주의적 요구와 투쟁의 중요성은 이 시대에 들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내부의 비판에 대해 토론과 논쟁이 아닌 “조직적 혼란을 부추긴다”, “사업을 파괴한다”는 따위의 논리로 비판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는 사노위 지도부는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있는 지배계급과 과연 얼마나 다른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와 관료정치의 폐단을 극복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들은 능동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과 열망은 지지받고 확대되어야 한다. 이는 사회구성원이 함께 토론하고 함께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가 실현 가능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회주의를 향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사회의 생산수단을 장악하고 있는 지배계급의 이해와 사회구성원 전체의 이해 사이에서 민주적 권리를 놓고 빚어지는 대립과 마찰은 대중투쟁을 더욱 더 공공연하게 확대된 형태로 나아갈 가능성을 품고 있으며, 그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권력을 움켜쥔 지배계급의 질서가 타도되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게 달성될 수 없는 권리의 선언으로 그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민주적 기본권의 확대가 생산수단의 전사회적 소유로의 전환을 보증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주의 권리를 확장하고 누구나 정치의 주체로 설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하려는 노력과 이를 통한 직접적인 경험과 자각 없이 사회주의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사노위 내부 논쟁에서 드러난 운영위원회의 반민주적인 관료적 조치는 사회주의 운동을 표방하고 있는 정치조직에서 발생한 까닭에 더욱 우려스러운 일이다. 경제혁명이 사회정치적 억압을 제거하는 데 필수적인 전제조건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과 경제혁명으로 그러한 억압 모두를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만일 ‘사회주의가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다’ 하는 식으로 사고를 한정한다면 그것은 불합리하기까지 한 앙상한 주장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사노위는 430 정치대회를 준비하면서 “사회주의 정치활동 보장은 민주주의의 척도”라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지난 2월24일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사건 유죄판결에서도 드러났듯 소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전하는 남한의 지배권력은 정치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기는커녕 되레 국가보안법이라는 구시대 악습을 들이밀며 탄압하는 작태를 보였다. 때문에 이에 맞서 더 많은 지지와 연대를 위해서라도 운영위원회가 결정한 제재 조치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사노위 내부 논쟁은 더 이상 사노위만의 문제로 제한되지 않는다. 사노위 명의의 소책자 <사회주의 지금 여기에!>는 이미 공개되어 있으며 소책자가 말하고 있는 정치적 입장에 대한 판단은 사노위 밖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비평글은 그 내용과 무관하게 이러한 판단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단지 사노위 내부에서 이견이 제출되었을 따름이다. 운영위원회가 주장하듯 비평글이 조직 내 혼란을 부추겼다면 그와 같은 혼란은 장려되어야지 거부되어선 안 된다.
비평글과 같은 정치적 견해의 표출은 더 활성화 되어야 한다. 비단 사노위 뿐만 아니라 어느 정치조직, 운동단체에서든 그러한 능동적인 참여가 전제될 때 서로의 견해를 확인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배제가 아닌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노위 중집과 운영위원회는 소책자의 내용을 비판한 비평글을 구속하기에 앞서, 소책자에 나와 있는 다음과 같은 문구부터 되짚어 봐야 한다.

 

 

△ 출처 : 민중언론 참세상

 

“아무리 당의 방침이 올바르다 해도 당원의 동의와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집중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비판과 토론의 자유’를 아무리 보장해도 당원이 ‘침묵’하거나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표현을 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실제로 작동할 수 없다. 따라서 당원들이 민주적 참여의 주체로 설 수 있는 역량을 갖춰나가도록 힘쓴다. 그리고 ‘비판과 토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넘어 당내 지위와 체제가 위계화, 관료화, 권력화 되지 않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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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국제]리비아 위기, 어떻게 볼 것인가? - 노엄 촘스키 인터뷰

  • 분류
    국제
  • 등록일
    2011/05/05 17:44
  • 수정일
    2011/05/05 17:44
  • 글쓴이
    사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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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민주화 투쟁을 지지하던 세계의 진보진영은 리비아에 와서 입장이 갈렸다.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는 격렬한 반대시위에도 불구하고 권좌에서 내려올 것을 거부했다. 반대시위는 내전 형태로 발전했고, 리비아 동부 주요도시인 벵가지가 반란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그러나 전황은 카다피 군에 유리하게 반전되었고, 벵가지가 카다피 군에 함락되어 대학살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비등하는 국제여론 속에서 UN 안전보장이사회는 리비아를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하는 것을 포함한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프랑스·영국·미국이 주도하는 군사개입이 시작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각국의 진보진영과 사회주의자들의 입장은 마치 남한에서 80년대 벌어진 NL과 PD 진영의 논쟁처럼 제국주의 반대가 우선인가 카다피 반대가 우선인가를 놓고 갈라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서구 강대국들의 소위 “인도주의적 개입”의 목적이 결코 인도주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아마도 리비아 대중 대다수에게도)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제국주의 반대를 전면에 세우거나, 그러한 입장의 연장선으로서 일부 국내외 논자들처럼 반란세력 자체를 서구 음모의 산물로 매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해 보인다. 멀리 떨어진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섣부른 판단보다 투쟁하고 있는 리비아 대중들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조직하는 것이다. 사노신은 리비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지난 3월29일 노엄 촘스키와 미국의 진보적 온라인 신문 Znet의 인터뷰를 축약해서 번역 게재한다. [편집자주]

 

 

가장 넓은 의미로 국제관계에서 미국의 동기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대상지역이 어디든 미국이 취하는 정책적 선택을 항상 파악할 수 있는 포괄적인 동기와 테마는 무엇인가? 중동과 아랍세계에서 미국이 취하는 정책을 규정하는, 좀 더 구체적이지만 여전히 포괄적인 동기와 테마는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리비아의 현 상황에서 미국정책의 보다 구체적인 목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오바마 스스로도 3월28일 대통령 연설에서 리비아 군사개입의 인도주의적 동기에 대해 말한 내용을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공언하는 고귀한 의도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검증하는 쉬운 방법이 있다. 인도주의적 개입과 “국민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1)”을 주장하는 쪽이 과연 자신이나 우방들이 저지른 범죄의 희생자들을 보호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2006년 미국의 지지를 받는 이스라엘이 확실한 구실 없이 레바논을 살인적이고 파괴적으로 침공하는 동안 오바마가 비행금지구역을 요구했었는가? 오히려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동안 자신이 그 침공을 지지하고, 그것을 저지하려는 이란과 시리아에 대해 응징을 요구하는 상원 결의안을 공동발의 했다고 자랑하지 않았었나?
답은 명확하다. 실제로 인도주의적 개입과 보호권을 주장하는 대부분의 말과 글들은 이 간단하고 적절한 시험을 배겨내지 못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진짜 동기가 무엇인가는 거의 논의되지 않으며, 어느 국가든지 그 진짜 동기를 캐내기 위해서는 문서적·역사적 기록을 보아야만 한다. 미국의 동기는 무엇일까? 아주 일반적인 차원에서는 2차대전 동안 수행된 고위급 정책 연구(high-level planning studies) 이래로 많이 변한 것 같지 않다. 전시정책 입안자들은 전쟁이 끝난 뒤 미국이 압도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서게 되리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미국이 “군사·경제적 지배권”을 가진 “광대한 지역(Grand Area)”을 유지하며 그런 세계구상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의 “주권행사를 제약”할 수 있음을 보장받는 “묻지마 권력(unquestioned power)”의 확립을 요구했다. 이 <광대한 지역>은 서반구2), 극동, (중동의 에너지 매장지역을 포함한) 옛 대영제국 식민지와 유라시아 대륙의 가능한 많은 부분, 아니면 적어도 서유럽에 있는 그 산업적·상업적 중심지를 포함했다. 존경받는 영국 외교사가 제프리 워너의 정확한 평가대로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전후 미국의 패권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은 문서기록을 볼 때 명확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우리가 그 후 몇 년 간의 기밀문서에서 읽고 현실에서 목격한 것처럼 전시에 주의 깊게 세워진 계획들이 실제로 수행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상황이 변하고 그에 따라 전술적 조정이 있었지만 기본 원칙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중동 — 아이젠하워의 말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 — 에 관련한 주된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거기 묻힌 막대한 에너지 자원에 있다. 이 지역에 대한 통제는 영향력 있었던 로스벨트 대통령의 자유주의적인 보좌관 A.A 베를리가 일찍이 지적한한 대로 “세계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러한 관심사가 이 지역에 관련한 일들의 배경에 있다. 예를 들어, 이라크에서 미국이 실패했다는 것을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듣기 좋은 수사는 정책목표에 대한 정직한 선언으로 변했다. 2007년 11월 백악관은 이라크가 미군에게 무한정한 접근권한을 허용해야 하며 미국인 투자자들에게 특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원칙선언(Declaration of Principles)>을 발표했다. 두 달 뒤, 대통령은 이라크에서 미군의 영구적인 체류, 혹은 “이라크 석유자원에 대한 미국의 통제”애 제한을 가할 수 있는 법령은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회에 통고했다.
석유에 대한 통제가 중동정책의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도 상당히 훌륭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석유가 풍부한 나라에서 믿을 만한 독재자에게는 사실상 자유로운 지배가 허용된다. 예를 들어, 최근 사우디의 독재정권이 저항의 조짐을 원천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사용했을 때는 아무런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 쿠웨이트의 소규모 시위들이 즉각 분쇄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바레인에서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시아파 교도를 억압하는 정책에 대한 개혁 요구가 일어나 소수의 수니파 왕실을 보호하기 위해 사우디군 병력이 개입했을 때, 정부군은 진주광장 — 바레인의 타흐리르 광장3) — 의 천막들을 짓밟았을 뿐 아니라 바레인의 상징이며 시위참가자들이 점유하고 있었던 진주조형물까지 파괴해 버렸다.

 

바레인 진주광장의 시위대

바레인의 경우는 중동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인 미국 제5함대가 그곳에 주둔하고 있으며, 바로 옆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동부가 왕국 최대의 석유매장지인 동시에 바레인과 마찬가지로 시아파 다수 지역이기 때문에 특히 민감한 문제이다. 기묘한 지리·역사적 우연으로 인해 세계 최대의 탄화수소 매장지역들은 대개 시아파 지역에 속하는 페르시아 만 북부를 둘러싸고 있다. 시아파 동맹이 맺어질 가능성은 오랫동안 미국 정책입안자들에게 악몽으로 다가왔다. 탄화수소 매장량이 부족한 주요 국가들에게 그들이 선호하는 독재자가 곤란에 빠질 때 전술은 한 가지 원칙 안에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그것은 “가능한 오래 그를 지지하라, 그렇게 할 수 없게 됐을 때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사랑을 표명하기 시작하라, 그리고 가능한 한 기존 체제의 많은 부분을 보존하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는 지루할 정도로 익숙하다. 마르코스, 뒤발리에, 전두환, 차우셰수쿠, 모부투, 수하르토 등등. 그리고 근래 들어 튀니지와 이집트까지. 시리아 체제는 견고해서 붕괴하기 어려울 뿐더러 미국의 목적을 지지할 명확한 대안이 없다. 예멘은 직접적인 개입이 아마도 워싱턴에 더 큰 문제를 불러올 늪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그래서 그 곳에서 자행되는 정부의 폭력은 단지 위선적인 선언들만 난무하게 만들 뿐이다.
리비아는 그와 다르다. 그곳에는 풍부한 석유가 있고 미국과 영국이 최근까지 잔인한 독재자에게 상당한 지지를 표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다피는 근본적으로 믿을 수 없는 자이다. 그들은 더욱 순종적인 친구를 선호한다. 더욱이 리비아의 넓은 영토 대부분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고, 석유 전문가들은 더 의존적인 정부가 들어설 경우 서구가 개발할 수 있는 풍부한 미개발 자원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비폭력 시위가 시작되자 카다피는 그것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반란이 일어나서 리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벵가지가 해방되고 이는 서부에 있는 카다피의 근거지로 확대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카다피의 군사력은 상황을 반전시켜 오히려 벵가지 코앞까지 진출했다. 벵가지에서 학살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오바마의 중동정책 보좌관 데니스 로스가 지적한 대로, “모든 사람이 그것을 비난할 것”이다. 이는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고 카다피의 군사적 승리는 그의 권력과 독립성을 강화시킬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미국은 비행금지구역을 요구하는 UN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973호4)에 동참했다. 비행금지구역은 프랑스·영국·미국에 의해 실행되고, 미국은 거기서 보조 역할을 맡았다.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행위에 제한을 두거나, 심지어 결의안 1973호에 대한 확대해석을 억제하려는 노력도 전혀 없었다.
프랑스·영국·미국의 제국주의 삼총사는 UN 결의안을 즉각 직접 참전에 대한 승인으로 해석했다. 반란군이 아니라 카다피 군에 무력으로 휴전이 강요되었다. 반군은 서부로 진군하면서 군사지원을 받고, 곧 리비아의 주요한 석유생산지들을 확보하고 진군 태세를 갖추었다. UN 결의안 1973호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는 그냥 지나치기 힘든 사안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언론의 문제제기를 불러왔다. 예를 들어 <뉴욕 타임즈>의 카림 파힘과 데이비드 커크패트릭(3월 29일)은 “만일 카다피 군이 수르트[카다피 출신 부족의 중심지]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고 시민들에게 아무런 위협도 가하고 있지 않다면, 다국적군은 어떻게 수르트 주변의 카다피 군에 대한 공습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의문을 표했다. 또 다른 기술적 난점은 UN안보리 결의안 1973호가 “리비아 전역에 적용되는 무기금수 조치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는 반군에 대한 외부에서의 무기 지원이 비밀리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부에서는 카다피 정권 아래서 서구 기업들의 석유에 대한 접근이 허용되었기 때문에 석유는 개입의 동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미국의 주된 관심사가 무엇인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동일한 주장이 사담 후세인 정권에서의 이라크에 대해서나, 이란과 쿠바에 대해서 통용될 수 있었다. 워싱턴이 추구하는 것은 부시의 공언대로 지배하거나 최소한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우방을 심어 놓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의 내부문서들은 중동 뿐 아니라 모든 지역에서 “민족주의의 바이러스”가 가장 두려운 것이라고 강조한다. 민족주의적 정권들은 <광대한 지역> 원칙에 어긋나는 지나친 주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정권들은 나세르가 그러했듯이 자국민의 욕구에 따라 자국의 자원을 직접 지배하려 나설 가능성이 있다.
이런 유의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 대개 프랑스와 영국과 미국이라는 전통적인 세 제국주의 강대국들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역의 두 강국인 터키와 이집트는 비행금지구역을 강제할 능력이 있겠지만, 세 나라의 군사작전을 미온적으로 지원하고 있을 뿐이다. 페르시아 만의 독재정권들은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리비아 독재자가 제거된다면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이 오일달러들을 되찾고 복종을 확보하기 위해 쏟아 부은) 선진 군사장비로 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참여는 명목상의 수준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다. 미국의 맹방 르완다를 제외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UN안보리 결의안 1973호를 지지하면서도 대개의 경우, 몇몇 나라들은 특히 강하게 3국이 결의안을 해석하는 방식에 반대하고 있다. 그 외에는 결의안 1973호를 지지한 나라가 거의 없다. 러시아·중국과 마찬가지로 브라질은 전면적인 휴전과 대화를 요구하며 기권했다. 제안된 수단이 “이미 어려운 리비아 국민의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인도 역시 기권했다. 인도 역시 군사력보다는 정치적 수단을 요구했다. 독일조차 기권했다. 이탈리아도 머뭇거렸다. 아마 부분적으로는 그 나라가 카다피와 석유 계약에 매우 많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민족의 자결권을 믿는 제국주의 반대자들과 민중들이 UN이나 특정 국가들에 의한 개입을 지지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고려할 경우는 두 가지이다. 첫째 UN의 개입, 둘째 UN승인이 없는 개입. 우리가 현대세계에서 (전형적으로 극단적인 폭력에 의해) 확립된 형태의,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다른 고려지점보다 우월한 권리를 가진 국가의 신성불가침성이라는 개념을 믿지 않는다면,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해답은 두 경우 모두에 동일하다. 나는 그런 (국가주의적) 신념에 대해 논의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그 문제는 넘어가겠다.
첫 번째 경우에 관해서라면 UN 헌장과 이후의 결의들은 안전보장이사회의 개입에 상당한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그것은 예를 들어 남아프리카에 관련해서 보장되어 왔다. 이는 물론 “민족자결을 믿는 제국주의 반대자”가 안전보장이사회의 모든 결의를 지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개별 상황에 대해 다른 고려지점들이 개입되어야 한다. 하지만 다시 강조하는데 현존하는 국가들에게 신성한 불가침성이 부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한 그 물음에 대해 원칙적으로 긍정적인 답변이 가능하다.
두 번째의 경우 — UN결의안 1973호에 대한 프랑스·영국·미국의 해석과 관련해 나타난 예와 다른 많은 예들 — 에 관련해서도 대답은 다시 적어도 UN헌장과 협정들에 확정된 형태로 전 세계의 국가 체제가 가진 신성불가침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는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물론 군사개입 혹은 무력의 사용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늘 무거운 입증의 책임5)이 있다. 그 책임은 적어도 국제법을 준수하겠다고 공언하는 국가들이 UN헌장을 위반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두 번째 경우에 특히 높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 패권국가(global hegemon)가 그런 입장을 거부하고 UN과 OSA 헌장 및 다른 국제협약에서 스스로를 제외시키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1946년 (미국의 주도 하에) 국제사법재판소가 창설되었을 때 그 재판권을 용인하면서, 워싱턴은 국제협약 위반에 대한 고발 대상에서 자신을 제외시켰고, 이후 유사한 유보조항들을 가지고 제노사이드 협약 — 국제 재판소들이 지지한 모든 입장들 — 을 비준했다. 왜냐하면 그 절차는 재판권의 승인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보다 일반적으로 미국은 관례적으로 그것이 비준하는 국제협약에 자신을 효과적으로 제외시키는 중요한 유보조항들을 덧붙이고 있다.
입증의 책임을 충족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추상적인 논의는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법적 권리가 주어져야 할 몇 가지 현실 사례들이 있다. 2차 대전 이후, 비록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것으로 정당화 되지는 못했지만 마땅히 지지받아야 했을 두 건의 군사개입이 있었다. 그것은 1971년 인도의 동파키스탄 침공과 1978년 11월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이었는데, 두 경우 모두 대량학살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이 예들은 잘못된 지배자의 오류로부터 고통 받고 있었다는 이유로 흔히 서구국가들에게 부여되는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이름을 얻지 못했다. 그 개입들이 서구국가들이 수행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국은 철저하게 이 개입들에 반대했고, 오늘날 방글라데시 지역에서 벌어진 학살들을 종식시켰으며, 폴 포트의 학살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폴 포트를 캄보디아에서 몰아낸 국가들을 강력하게 응징했다. 베트남은 지독한 비난을 받았을 뿐 아니라, 미국이 지원한 중국의 침공과 미국-영국 군대와 태국의 기지들에서 캄보디아를 공격한 크메르루즈에 대한 외교적 지원에 의해 응징 당했다.
이 사례들에서는 입증의 책임이 충족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예들을 생각해 내는 것은 쉽지 않다. 리비아에서 UN결의안 1973호를 위반하고 있는 제국주의 3강에 의한 개입의 경우, 그 나라들이 보인 소름끼치는 이력들을 보았을 때, 입증의 책임이 특히 무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론 우리가 현재 형태의 국민국가들을 본질적으로 신성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 한, 입증의 책임이 원칙적으로 충족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도한 주장이다. 동기가 뭐라고 생각하든 벵가지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학살을 방지하는 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

 

 

한 나라의 반체제 세력들이 살아남아서 자결권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학살당하지 말아야 한다고 염려하는 사람이 실제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그런 학살을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개입에 반대하는 것이 타당할 경우가 있겠는가?
논쟁을 위해, 그런 의도가 진실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그것이 내가 앞에 언급한 간단한 기준을 만족시키는 것이라 해도, 추상적인 수준에서는 거기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모르겠다. 어디까지나 상황에 달려 있는 문제다. 예를 들어, 군사 개입이 더 심한 학살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면 반대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지도자들이 정말 순수하고 정직하게 1956년 헝가리 학살을 막을 목적으로 모스크바를 폭격했더라면, 혹은 크레믈린이 정말 순수하고 정직하게 1980년대 엘살바도르 학살을 막을 목적으로 미국을 폭격했더라면? 예상할 수 있는 결과들로 볼 때, 우리 모두는 그런 터무니없는 행위에 반대하는 것이 마땅했을 것이라는데 동의할 것이다.

 

 

 

 

코소보에 전쟁에 파견된 NATO군

 

많은 사람들이 1999년 코소보 군사개입과 현재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이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두 사안에 있어 중대한 유사성을, 그 다음으로 주요한 차이 지점들을 설명해줄 수 있나?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서구 선전 시스템의 가공할 위력을 입증하는 사례로 유사성이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코소보 군사개입의 배경은 보기 드물게 잘 기록되어 있다. 그러한 기록들 중에는 두 개의 자세한 국무부 편찬물, 코소보감독기구의 (서구)요원들이 현장에서 작성한 광범위한 보고서들, 나토와 UN의 풍부한 자료들, 영국의회 조사와 그 밖의 많은 기록들이 있다. 보고서들과 연구서들은 사실과 잘 부합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공습 전 몇 달 사이에 현장에서 중대한 변화는 없었다. 세르비아 군과 주로 이웃의 알바니아에서 공격을 감행하던 코소보해방군 게릴라 양측 모두 잔혹행위를 저질렀다. 영국의 고위 기관에 따르면 (영국은 동맹국 중 가장 강경파였다.) 적어도 후자의 잔혹 행위는 적어도 관련 기간 동안에는 벌어졌다. 코소보에서 심각한 잔혹행위는 나토가 세르비아를 폭격한 이유가 아니었다. 반대로 심각한 잔혹행위는 나토 공습의 결과로 벌어졌다.
이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폭격 몇 주 전에 나토가 사령관 웨슬리 클락 장군은 폭격이 지상에서 세르비아군의 잔혹한 보복을 유발할 것이라고 백악관에 통지했다. 그리고 폭격이 시작되자 언론은 그러한 반응은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UN이 처음으로 코소보 밖의 난민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폭격이 시작되고 한참 뒤의 일이었다. 폭격 중에 이루어진 밀로셰비치에 대한 기소는 많은 부분 미국과 영국의 정보에 기초해 이루어졌다. 기소는 예외적으로 공습 이후의 범죄만으로 국한되었으며, 당시 더 악질적 범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었던 미국과 영국의 지도자들이 심각한 범죄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외교적 해결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믿을만한 근거가 있다. 실제로 공습 78일 후에 부과된 UN 결의안은 세르비아와 나토 사이에 상당한 입장의 타협을 이루고 있었다.
서구의 자료를 포함하여 이 모든 내용은 내 책 『세 새대가 선을 긋다 (A New Generation Draws the Line)』에서 자세히 검토되고 있다. 확인적 정보(corroborating information)는 그 이후에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다이애너 존스턴6)은, 공습이 발표된 3월 20일 임무가 철회되기 전까지 코소보 상황을 파악하기 매우 좋은 위치에 있었던 코소보감독기구의 유럽측 책임자 디트마르 하르트비히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쓴 2007년 10월 26일자 편지를 보고한다. 그는 편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98년 11월부터 개전 전날 그 지역을 소개할 때까지 받아본 어떤 보고서에서도 세르비아인들이 알바니아인들에 대해 중대하거나 조직적인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야기는 없다. 또한 대량학살이나 대량학살류의 사건, 범죄와 관련된 단 하나의 사안도 없다. 반대로 내가 받은 보고서에는 항상 점차 빈도가 증가하고 있는 코소보해방군의 세르비아 행정부에 대한 공격을 고려해볼 때, 세르비아의 공권력은 상당히 자제와 절제를 보여주고 있다고 적혀있었다. 세르비아 정부의 분명하고도 자주 언급되는 목표는 (1998년 10월) 밀로셰비치-홀부르크 합의의 문구 그대로 지키는 것이었고, 이를 통해 국제사회에 개입할 구실을 주지 않으려 했다. … 코소보감독기구가 각국의 정부에 보고한 내용과 각국 정부가 이후에 언론과 대중에 유포한 것 사이에는 커다란 ‘관점의 차이’가 있었다. 이 차이는 유고슬라비아와 전쟁을 위한 장기간의 준비요소 중 하나로 볼 수밖에 없다. 내가 코소보를 떠나기 전까지, 언론과 정치인들이 언론에 못지않은 기세로 쉬지 않고 주장했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1999년 3월 20일까지는 이후 국제사회가 불법적인 조치를 취하게 만든 군사개입을 할 어떤 이유도 없었다. EU 회원국이 전쟁 발발 전후로 보여준 집단적인 행동은 심각한 우려를 불러왔다. 이는 진실은 파묻혔고 EU는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양자물리학이 아니며 언제나 충분히 의심할만한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 사안만큼 결론이 확고히 뒷받침되는 것은 드물다. 매우 명백하게도 모든 것이 완전히 부당한 것이었다. 지배적인 교리는 어디까지나 나토가 인종청소를 멈추기 위해 개입했다는 것이다. 풍부한 사실 증거들을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공습지지자라면 그것이 잠재적인 학살을 멈추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지지를 정당화시키지만 말이다. 이는, 그러므로 우리는 폭격하지 않으면 일어날지도 모르는 대량학살을 중지시키기 위해 대량학살을 불러오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심지어 이보다 더 충격적인 정당화들도 있다.
이러한 만장일치적인 동의와 열정의 이유는 명백하다. 김일성조차 부러워했을 법한 미친듯한 자기찬양과 힘의 과시 이후에 공습이 개시되었다. 나는 이에 대해 다른 곳에서 검토한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성사에 있어 주목할 만한 시기는 망각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쇼가 벌어진 뒤에는 영광스러운 대단원만 있으면 되었다. 고귀한 코소보 개입이 그러한 대단원을 장식했다. 그리고 이런 환상은 강력하게 유지되어야 했다.다시 질문으로 돌아오면, 두 개입 모두 숭고한 목적에 의해 촉발되었다고 각색된 아전인수격 서술이라는 측면에서는 유사점이 있다.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현실 세계의 모습은 두 사례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와 비슷하게 많은 사람들은 진행 중인 이라크 무력개입과 현재 리비아 개입 사이에서 유사성이 있다고 본다. 이 사안에 대해서도 유사한 지점과 차이점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가?
나는 이 사안에 대해서도 같은 나라 둘이 연루되어 있다는 점을 빼면 의미 있는 유사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라크의 경우, 개입의 목적들은 명확히 인정된 것들이었다. 리비아의 경우 그 목적은 적어도 하나의 측면에서만 유사한 것 같다. 그것은 앞에서 지적한대로 믿을만한 우방의 정부체제가 지금 수준을 훨씬 넘어서 서구 국가들이 바라는 것들을 지지하고 서구 투자자들에게 리비아의 풍부한 석유자원 접근에 특혜를 주는 것을 희망하는 것이다.

 

 

 

 

 

앞으로 몇 주 동안 리비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는가? 그 맥락에서 미국에서 미국의 정책과 관련하여 개입을 반대하는 사람과 반전 운동의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당연하게도 불확실하다. 그러나 현재(3월29일) 예상해볼 수 있는 것은 석유가 풍부하며 서구 제국주의 권력에 매우 의존하고 있는 동쪽 지역과 지위가 약화되는 잔혹한 독재자 하에서 황폐화된 서쪽 지역으로 리비아가 나뉘는 것, 또는 서구 국가들이 지원하는 세력의 승리 중 하나일 것 같다. 어느 경우가 되었든 프랑스·영국·미국 삼국은 문제를 덜 일으키고 더 의존적인 정권이 들어서기를 바랄 것이다.
나는 런던에 근거지를 둔 아랍 언론 <알 콰즈 알 아라비(al-Quds al-Arabi)> 3월 28일자에 가능한 이후 결과에 대해서 상당히 정확하게 서술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예측의 불확실성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그 잡지는 국제사회의 개입이 리비아를 “반정부 세력이 주도하는 석유자원이 풍부한 동쪽지역과 카다피가 이끄는 가난에 찌든 서쪽 지역, 이렇게 두개의 국가로” 분할하고 “… 유전이 안전하다는 점으로 볼 때, 우리는 인구밀도가 낮고, 서구의 보호를 받는 새로운 리비아 석유 토후국을 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르며, 이는 페르시아 만의 토후국들과 매우 비슷할 것이다”라고 예측한다. 아니면 서구의 지원을 받는 시위대가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독재자를 제거하는 데까지 나아갈지도 모른다.
평화와 정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염려하는 사람들은, 외부권력의 강제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들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려고 하는 리비아 사람들을 돕고 지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추구할 방향과 관련하여 희망사항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의 미래는 그들의 손에 있어야 한다.

 

번역│이정인 (wjddls@jinbo.net)
정지원 (jeewon@jinbo.net)

 

각주----------
1) 한 국가가 자국민을 상대로 인권유린 등의 반인륜적 범죄를 자행했을 때 국제사회가 개입해 이를 억제할 수 있다는 개념으로 2005년 9월 UN 세계정상회의에서 정해졌다.
2) 서반구(西半球)는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본초 자오선을 기준으로 서쪽의 반구를 가리키며, 대체로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의미한다.
3)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광장, 이집트 민주화 시위의 중심지가 되었다.
4) 카다피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강화되자 UN안보리가 3월17일 통과시킨 대 리비아 결의안. 주요한 내용은 리비아와 일체의 무기거래 금지, 리비아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설정, 리비아 자산의 동결 등이다. 이를 집행하기 위한 다국적군의 리비아 공군기지 공습은 이 결의안에 대한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는 비판이 있다.
5) 어떤 주장을 할 때, 그 주장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할 책임
6) 유럽과 서구의 외교정책을 전문으로 하는 미국의 좌파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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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정치]새로운 형태의 학생운동이 필요하다 - <청년 사회주의자 1만인 선언> 인터뷰

  • 분류
    정치
  • 등록일
    2011/05/05 17:37
  • 수정일
    2011/05/05 17:37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지난 3월22일, 한 진보넷 블로그(http://blog.jinbo.net/wethesocialists)에 ‘1만 사회주의자 선언’이라는 이름으로 <참여를 제안합 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을 블로그에 올린 이들은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합당국면 속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사회주의자들이 함께 모여서 활동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노신>은 4월18일, 사회주의자 선언을 제안자들의 회의가 진행되는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으로 찾아가 <청년 사회주의자 1만인 선언>이 어떻게 기획되고 운영되고 있는지 활동가들을 만나 알아보았다.

 

<청년 사회주의자 1만인 선언>에 대해 소개 부탁드린다
김연(이하 ‘연’)
: <청년 사회주의자 1만인 선언(이하 ‘선언’)>을 기획하게 된 김연이라고 한다. 예전에 <다함께>에서 활동했었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선언>을 하게 된 계기는 일단 학생운동의 패러다임이 변화했다는 인식에 기반한 것이다. 실제로 파편화 된 개인들이 기존의 단위조직으로 결합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대해 주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변화된 학생사회의 패러다임에 맞춰서 어떤 형태의 조직이 유효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시작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단위 조직들의 문제점이라든지 한계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연구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선언을 통해서 지금의 패러다임에 맞는 학생운동의 형태를 구상해보고 싶다.

 

<선언>은 어떻게 결성되었나
: 처음 시작은 나랑 예찬씨랑 같이 얘기했던 게 있다. 기본적으로 탈정파적 구성 하에서 진보적 외연을 넓혀나갈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원래는 <사회주의를 꿈꾸는 명랑한 부랑자>라고 트위터 모임이 있었다. 그렇게해서 처음 예찬씨랑 만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생도(생활도서관)에 와서 우리가 1만 사회주의자 선언 같은 걸 해 보면 어떻겠냐고 내가 제안을 먼저 했다. 그래서 박가분씨가 거기에 대해서 굉장히 동의를 많이 해서 선언문을 작성해주셨고 그렇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3월 중순부터 굴러가게 되었다.


학생운동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화했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것들을 보여주는 사례가 어떤 것들이 있는가
: 기존의 학생운동이 전체 운동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면 지금의 학생이 갖는 조건은 이전의 학생이 갖는 조건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학생사회를 구성하는 성원 자체도 달라졌고 학생들이 놓여있는 물질적 조건 역시 크게 변화했다. 동시에 운동권의 게토화가 굉장히 강하게 일어났다. 이에 대한 인식을 해결하는 것도 우리의 숙제이다. 근본적으로는 학생이 더 이상 부유하는 계급이 아니라는 거다. 학생사회라는 커뮤니티 역시 급속도로 붕괴해왔다. 그것은 비단 운동권뿐만이 아니다. 학내자치 자체가 무너진 지금의 상황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선언문을 보면 기존 운동단위들이 청년을 ‘동원’한다든지 청년문제를 배타적으로 여긴다는 내용이 있다. 기존 운동조직에 대해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나
: 기본적으로는 학생대중이 처해져있는 구체적 상황에 대한 분석이 우선적으로 행해져야 될 필요가 있다. 사실 그런 움직임이 없었던 건 아니다. 시설노동자 문제를 통해서 노학연대를 강화하고자 했던 행진의 움직임이나 생활등록금이라는 문제를 통해 등록금운동을 배가하고자 했던 연세대 총학생회의 사례를 보면 기존의 운동권들이 변화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순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한 부분들이 있다는 거다. 청년들이 처해있는 구체적 상황에 대한 분석이 여전히 부재한 편이다. 따라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 구체적인 공론장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게 우리의 목적이다.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에 기인할 때 더 큰 외연확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언>을 기획하게 됐다.

 

‘사회주의자’라는 명칭을 썼는데 사회주의가 무엇이며 사민주의와 어떤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하나. 기존 사회주의 운동조직들의 견해와 유사한가
김예찬(이하 ‘찬’)
: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여타 다른 단체들의 사회주의와 다른 사회주의를 이야기하고자 한 거라기보다는 이를테면 우리가 처해있는 조건 속에서 우리가 익히 이야기하고 있는 사회주의가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어떤 식으로 그 이념성을 표출해야 하는지, 어떤 문제를 이야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집중했기 때문에, 다른 사회주의하고 어떻게 구별되는가의 문제와는 다른 것 같다.
사회주의가 무엇이냐고 했을 때 여러가지 전제나 기본적으로 얘기되어야 할 것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조직은 어떤 조직에 대해서 ‘너희는 진짜 사회주의가 아니다’이런 식으로 얘기한 경우도 굉장히 많다.
최근에 나도 재밌는 일을 많이 겪었는데 ‘너는 개량이다, 우리는 사회주의다, 너는 사민주의자에 불과하다, 너희는 자유주의자 아니냐’ 이런 식으로 서로 그렇게 얘기한다. 우리는 일단 이런저런 조직들 중에서 어떤 사회주의가 옳으냐를 떠나서 청년들의 조건에서 익히 이야기되고 있는 사회주의라는 것이 우리 청년의 현실하고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글을 쓸 때도 이런 문제의식이 많이 반영되었다.

 

선언문에 보면 기존의 사회주의 정치조직과는 문제의식에 대한 소통이 거의 불가능했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 말은 기존의 사회주의 정치조직과 논의나 교류가 있었다는 것인가
: 여기 오신 분들이 조직활동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다. 기존 조직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 조직에서 느꼈던 소통의 부재라든가 막혀있는 유리천장 같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같은 이념을 가지고 같이 활동을 하는데. 젊은 친구들에 대해서는 이런 얘기가 있다.
20년 전 20대 때 운동하면서 짱 먹었던 사람들이 지금도 짱 먹고 있다. 이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런 식으로 조직 내에서 성장을 할 때 청년들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있다. 이를테면 청년들은 열심히 해야되고, 패기가 넘쳐야 되고, 좀 참신한 생각을 가져야 하고. 근데 막상 참신한 생각을 가지고 얘기를 하면 그것이 조직의 기풍과 맞지 않다고 쳐 내는 부분도 있다.
기존의 조직활동했던 사람들은 그런 부분에 문제의식이 있는 것 같다. 기존의 조직에서 활동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겐 기존 운동조직이 평소에 청년문제에 대한 태도 같은 것에서 거리감을 느껴질 수밖에 없게 한다. 물론 거리감을 완전히 좁히는 건 불가능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거리감이 존재하는 것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또 그렇게 느끼게 되는 측면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소통의 문제같은 것들이 얘기된 것 같다.

 

<선언>을 띄우게 된 계기와 진보정당의 합당국면이 연관돼 있는 것 같다. 진보정당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 진보정당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지금의 합당국면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통합파들이 더 오른쪽으로 간 통합을 요구하는 건 굉장히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독자파라고 해도 하나의 독자파가 아니다. 독자파 내에도 굉장히 다양한 결이 있다.
그 중에는 민주노동당을 배제한 민주당과의 통합만을 이야기하는 독자파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한 국면에서 대부분 청년 학생들이 갖는 조직재생산에 대한 부분을 담보로 해서 보다 더 왼쪽에 있는 합법정당을 지향하고자 하는 게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논의를 해 봐야 할 것 같다.
: 2012년(대선)이 앞에 와 있는 국면이고 합당 얘기가 나오고 있다. 내가 봤을 때 나쁘다는 건 아니고 진단을 해 보자면, 대학에 있다 보면 굉장히 여기저기 단체들의 포스터가 많이 붙는다. 대부분 흔히 NL이라고 부르는 특정한 계파의 학생단체들, 새로 엄청나게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진 단체들의 것들이 많이 붙는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고 그런 식으로 단체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는 건 존경할 만한 일이다. 이것이 2012년 앞두고 학생회나 이런 곳에 이 사람들이 개입을 해서 특정한 목적성을 가진다. 이를테면 우리같은 경우, 내가 고려대 학생인데 고려대에 여러가지 학생 행사들이 있고 기조들이 나온다. (그런데) 기조들이 이를테면 나는 진보신당 당원인데 진보신당 당원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조가 나올 때가 있다. (문제는) 그것에 대해서 어떤 분명한 설명 없이, 지금 이 상황에서 옳은 것이라는 식으로 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나는 어떤 두려움이 있냐면, 2012년이 됐을 때 합당이 진행되고 새로운 정당이 (출현하거나) 갈라졌을 때 그 때 상대적으로 세력이 왕성한 그런 진영에서 진보라는 가치를 독점하면서 그것을 계속 재생산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진보가 아니라 왜 사회주의냐고 했을 때 사회주의가 가지는 명확한 이념성이나 사회주의적인 가치를 뭉뚱그려서 진보라고 이야기되는 그런 것 말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주의란 이념적인 가치를 선언을 함으로써 거기에 대해서 경계심을 가지고, 이러한 진보뿐만 아니라 사회주의란 이념 자체가 존재한다는 걸 자체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제안을 할 때 개인뿐만 아니라 <전국학생행진>이나 <사노위> 같은 단체도 염두에 두는 것 같다. 기존 정치단위와 같이 할 생각이 있는지, 같이 한다면 어떤 정치를 가진 사람들과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 깔끔하게 범PD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NL도 되면 좋은데 거기까지는 손이 안 닿는지라 일단 염두에서 제외해놨는데 범PD 진영이랑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
박가분(이하 ‘분’) : 사회주의라는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조직을 떠나서 누구든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사회주의라는 가치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씀을 안 하신 것 같은데 앞으로의 모임 속에서 마련해나가야 할 과제인가
: 사회주의라는 게 나는 어떻게 이해를 하냐면, 명확하게 까놓고 이야기를 하자면 결국 노동의 분할이라든지 사람과 사람간의 위계질서라는 게 전혀 필연적이지 않고 그런 것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궁극적으로 국가가 폐지되어야 하고 자본이 사회화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본적인 부분에 있어 명확한 이념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런 이념이 구체적인 국면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대중한테 그 이념을 어떤 식으로 설명하고 패러프레이즈 해야할 지를 고민하는 와중에서 아까 말씀드렸듯이 기존 조직의 관성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을 했다. 물론 이전에도 훌륭한 사회주의자들도 있고 사회주의 조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따로 청년 사회주의자 선언을 개개인들이 모여서 하게 된 것이다.
: 나는 그 동안 사회주의라는 게 억압돼 있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사회주의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합법정당 테두리 내에서 진보랑 뭉뚱그려서 되게 애매하게 민족주의적 가치도 들어가 있고 우파적인 자유주의적 가치도 들어가 있는 진보로 항상 이야기를 해왔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가 결국 폐지되어야 한다 혹은 자본가, 자본주의적인 게 폐지되고 자본을 사회화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기 힘든 부분이었다고 한다면 그걸 앞으로 좀 더 명확하고 공공연하게 계기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2008년 촛불시위 이후에 하나의 사회현상으로서 민주주의적인 자기 권리에 대해 20대 대학생들, 청년들의 의식수준이 많이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학습모임을 꾸린다든지 이를 통해서 집회에 참여하고 스스로 저항의 주체가 되려는 노력이 많이 보인다. <선언>도 2008년 촛불시위 이후의 사회적인 흐름 속에서 이런 고민이 더 구체화된 것인가
: 나는 촛불을 평가하면서 몇 가지 갈리는 부분이 있다. 촛불의 대중동원력이나 연인원은 굉장히 괄목할 만한 것이었고 지역에서 자생적인 운동의 흐름을 만들어 낸 것 역시 촛불의 거대한 성과이고 동시에 촛불이 이루어 낸 의식의 급진적 변혁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촛불의 한계가 있다. 촛불 당시에 급진적인 좌파 조직들이 외연 확장을 정말 잘 못했다. 실제로 남은 부분도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조직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그 문제가 어떤 것이냐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실제로 수원촛불이나 강남촛불 같은 경우도 계속 보고 있는데 촛불 이후 일어난 자생적인 움직임이 반드시 사회주의로 귀결될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지금 민란(문성근의 백만민란운동) 같은 조직의 성장세를 보면 촛불 이후로 능동성을 갖게 된 대중이 반드시 사회주의로 올 것이라고 단정지어서 얘기할 수 없고 그렇다면 우리가 변화해야 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외연을 넓혀나가야 될 것이냐, 지금 우리에게 명백히 한계와 문제점이 있고 이 한계와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공동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걸 위해서도 지금 구상을 하고 있다.

 

사회변혁운동에서 청년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청년이라고 해서 더 급진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실상 촛불시위라는 집단적 경험을 겪었기 때문에 더 그런 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촛불시위에 모든 사람들이 참여한 것은 아니다. 100만 명에 들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고. 촛불을 보고 집단적인 방식에 대해서 더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수치화되거나 계량화되거나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과도한 기대를 가지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결정적인 순간, 변혁의 결정적인 정세가 올 때 들고 일어날 수 있지만 거기서 청년이라고 해서 따로 청년이 변혁운동에 있어서 더 잘 나갈 수 있다라든가 더 앞으로 좌파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살 것이라는 기대는 별로 없다.
하지만 지금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87년 민주화 이후에 90년대 들어오면서 좌파운동단체들, 조직이나 진보정당이나 시민사회단체들 이런 사람들이 굉장히 노령화된 것은 사실이다. 노조도 그렇고, 노조만 보더라도 40대, 50대에 가까운 사람들이 지도부에 많고 이런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결국에는 20년 후에 30년 후에 여기에 지금 있는 사람들이 그 역할을 해야 된다는 건 자명한 일인데 그 때를 대비해서라도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네트워크를 가지고. 옛날처럼 운동하는 사람들이 다 ‘내가 무슨 학생회에 있고, 아님 무슨 단체에 있고’이러면 ‘아, 이 놈이 그 놈이구나’ 이렇게 할 수 있는 때가 아니다, 지금은. 워낙 파편화 돼 있고 연락도 잘 안 되고 서로 잘 모르고. 그런 걸 만들어 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나도 딱히 청년에게 주어진 큰 사명 혹은 역할 같은 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옆에서 지켜보면 조직이든 뭐든 간에 재생산을, 현장에서 최전선에서 재생산의 역할을 떠맡는 사람들이 청년이란 생각을 한다. 사람들한테 지금은 어떤 이념이나 그런 것들이 많이 퇴색해가고 있는 시대이다. 청년들한테 이념이 가지고 있는 매력, 혹은 이념을 통해서 내가 주체화 될 수 있는 경험의 장들이 점점 줄어들어가고 있고 심지어 남아있는 조직 내에서도 오히려 이념에 대한 환멸이나 불신같은 걸 경험하기가 상대적으로 더 쉬운 위험이 많이 있게 되었는데 그런 경향을 역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청년들을 호명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전통적으로 어떤 운동에서나 청년층이 제일 거리에 많이 나온다. 실제로 조직의 간부재생산을 위해서도 청년 단위에서의 기층조직을 꾸준하게 꾸리는 것이 안정적인 조직의 운영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그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거다. 전체 기간대오의 숫자도 굉장히 많이 줄어들었다. 실질적으로 조직들이 갖는 외연 역시도 이전에 비해서 굉장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 원인이 학생사회의 붕괴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이 여전히 조직재생산을 위해서 유효한 단위이기 때문에 이들을 묶어낼 수 있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걸 다 같이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앞으로 모임의 전망이나 활동계획은 어떠한가
: 나는 조직을 또 만들거나 이런 건 불가능 할 거라고 본다. 왜냐면 각기 사실 활동하는 단위들이 또 따로 있으니까, 꼭 이제 좌파조직이 아니더라도 여러가지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네트워크 식으로 어떠한 생각이 있을 때 서로 연락 돌려가지고 이런 거 같이 해 보자고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만 많이 만나더라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걸(선언) 논의하다가 곁다리는 아닌데 좀 이상하게 먼저 뭐 한 게 있다. 진보신당 당 대회 때 ‘청년학생당원 100인’이라고 해서 요구안을 만들어가지고 냈던 적이 있다. 그런 식으로 진보신당 안에 청년 당원들이 많고 좌파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걸 100인 선언을 통해서 (확인했다).
현재 같은 당원이지만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엄청 많다.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그걸 또 어떤 조직으로 당장 만들기 보다는 서로 만나는 사람들의 접촉면이 많아질수록 여기서 또 다른 어떤 사회적인 기획이 나올 수도 있고 또 조직을 만들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조직을 만들 수도 있고 그런 거다. 그런 걸 원하고 그걸 한 거다.
근데 여기에 대해서도 똑같이 많이 참여를 하고 이름을 알게 되고 얼굴을 알게 되고 다른 집회장소에 나가서도 만나게 되고 이렇게 되면 그 때 그 사람하고 더 친해지고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되고, 그래서 또 다른 기획을 만들거나 아니면 조직을 만들고 싶으면 만들 수도 있는 거고. 그런 식으로 하는 어떤 전(前)단계라는 것으로 의미를 두고 싶다.


인터뷰|김성렬 (tjdfuf@jinbo.net)
정지원 (jeewon@jinbo.net)
정리|김재영 (hedwig@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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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편집자의창]노동귀족과 프롤레타리아트

 

노동귀족과 프롤레타리아트

4월 재보선은 예상대로 소위 ‘민주대연합’의 승리로 끝났다. MB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단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더욱 힘을 얻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조직노동운동은 상설연대체 건설논란에서 나타났듯이 민주대연합 꽁무니를 쫓고 있을 뿐, 한때 노동운동의 중심 화두였던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슬로건은 이미 오래 전에 자취를 감추었다.

이런 상황은 정치운동의 기반이 되어야 할 조직노동운동의 붕괴와 무관하지 않다. 재보선에서 현대중공업노조와 미포조선노조는 한나라당 후보 지지를 표명했다. 메이데이를 며칠 앞두고 서울지하철노조는 민주노총에서 탈퇴했다. 이 노조들이 밞아온 행적을 보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이는 민주노총의 양축을 이루어온 금속대공장과 공공부문 노조운동이 붕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귀족 노조들

 

최근 현대차지부 이경훈 집행부가 단협에서 정규직노동자 자녀 우선채용을 요구한 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 연대하지 않는 현대차지부가 이러한 요구를 했다는 것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은 듯하다. 현대차 정규직노조는 이제 진보진영에서도 지위를 세습시키려는 노동귀족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고 있다.

노동귀족이라는 말은 엥겔스가 1880년대 영국 노동운동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처음 사용했다. 당시 그는 영국에서 사회주의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를 노동귀족의 등장으로 설명했다. 엥겔스는 노동귀족으로 두 개의 집단을 지적했는데, 하나는 직업별 노조로 조직되어 있는 숙련공과 다른 하나는 대공장 노동자였다. 엥겔스는 이들의 노동조건이 20년 동안 중단 없이 개선되어 왔으며 그것은 세계시장에서 영국 산업의 독점적 위치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남한에서 대공장 정규직의 노동조건 역시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1997~1999년 사이 구조조정 시기를 제외하고 최근 20여 년 동안 후퇴한 적이 없다. 현재 자동차와 조선소 등 대공장 정규직의 연평균 임금은 6천만 원 정도이다. 물론 법정 노동시간에 기초한 기본급 수준은 130~150만 원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현대와 기아 등 완성차 공장을 기준으로 하면 평일 8시간에 2시간 잔업, 주말 특근 14시간을 해야 이 ‘평균적인’ 임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한다 해도 연봉 6천만 원은 남한사회에서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사실 장시간노동이 일반화되어 있는 남한에서 주 64시간의 장시간노동은 그다지 특수한 현상도 아니다. 이런 고임금이 가능한 기반은 남한의 자동차와 조선산업이 세계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독과점적 위치와 광범위한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존재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정규직은 점점 보수화되고 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영웅적인 투쟁을 이야기하지만 그 이면에 해고대상이 아니었던 다수의 노동자들과 다른 대공장 노동자들이 바로 얼마 전까지 동료였던 해고자들의 투쟁에 거의 연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쉽게 간과되고 있다. 이 정도 쯤 되면 엥겔스의 기준으로 볼 때 남한의 대공장 정규직노동자들을 노동귀족이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좌절한 비정규직노조운동

 

대공장 정규직이 상대적으로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정규직이라는 지위를 빼앗기게 되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과 박탈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때문에 해고대상자들은 격렬히 투쟁하지만 해고를 모면한 노동자들은 심각한 보신주의에 빠지는 이중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이런 양상은 비정규직에 대한 태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자신들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오로지 고용형태밖에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규직은 비정규직문제에 대해 더욱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를 취한다.
실제로 인원 구조조정이 현장에 들어올 때, 정규직은 대의원 체계를 중심으로 한 상시적 합의구조를 통해 고용을 전환배치 정도로 보장 받는 대신 비정규직을 자르는 데 동의한다. 이 체계 속에서 정규직노동자와 비정규직노동자의 이해는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2003년 이후 대공장에서 건설되었던 비정규직노조들은 대부분 대중적 노조로 발전하는데 실패한 것은 무엇보다 조직노동운동의 벽을 넘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노조가 건설되어 투쟁에 나섰을 때, 대공장 정규직노조는 오히려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 속에서 자본의 탄압을 정면으로 맞은 비정규직노조는 고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대중적 기반을 갖췄다고 평가받았던 기아차비정규직지회는 금속노조와 정규직노조의 1사1조직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독자성을 박탈당한 채 정규직노조에 종속되었다. 그 결과 현재 기아차사내하청분회는 독자적인 투쟁을 하지 못하는 식물노조가 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은 비정규직투쟁과 같이 대공장에서 안정적인 교섭구조를 흔드는 불안요소가 발생했을 때, 자본과 정규직노조가 함께 그 요소의 발전을 원천봉쇄하고 필요한 때는 멀쩡한 노조를 깨면서까지 통제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조합운동으로서 비정규직운동은 실패했으며, 당분간 회생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 대공장 정규직노조는 높은 노동조건과 고용을 보장하는 합의구조를 통해 사측에 포섭되어 현장을 통제하는 사측의 대리자가 되어있다. 이러한 양상은 복수노조 시대가 되면서 더욱 강화될 것이며, 더 큰 문제는 정규직노조의 이런 노선이 정규직조합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공장 정규직노동자들은 성과급에 기반을 둔 임금체계와 상당한 양의 회사 주식을 보유함으로써 자본의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많은 사안에서 자본의 이해와 자신의 이해를 동일시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실은 사회주의자들이 이제 대공장 정규직, 조직노동운동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90년대 후반 남한 사회주의자들은 조직·전술·강령적으로 대공장을 중심지로 설정해 왔다. 하지만 대공장노동자들의 조합적 이해를 급진화시키고 이를 통해 정치의식으로 나아간다는 전술은 사실상 실패했다. 대공장에서 해고자 투쟁을 제외하고 전투적 투쟁은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그 투쟁을 통해 정치의식의 고양으로 나아간다는 구상은 관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현실에서 드러나고 있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전체 노동자의 10%도 되지 않으며, 거의 대규모 작업장 노동자들과 일치하고 있다. 문제는 80%에 달하는 미조직노동자들, 조직노동운동의 저변에 깔려 사회 하층을 이루고 있는 미조직 노동자들이다. 촛불투쟁과 같이 조직화되지 않은 대중운동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는 이들이야 말로 생산수단이 박탈당하고 자본의 이해를 공유하지 않는 진정한 의미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구성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전술·강령은 소수의 조직노동자가 아니라 이러한 다수 노동자들, 전체 프롤레타리아의 이해에 맞추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에 있어 사회주의자들의 전술은 여전히 조직노동자에 맞추어져 있으며, 이런 모습은 아직도 조합주의와 단절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주의자들의 전술에, 1사1조직과 같이 비정규직운동의 독자성을 파괴하는 관료적 통합에 대한 지지로 나타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에게 안녕을 고할 것인가? 물론 아니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가 누구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2011년 4월30일
사회주의노동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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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노동]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재능불매운동 - 재능지부 오수영 사무국장 인터뷰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1/05/05 15:14
  • 수정일
    2011/05/05 15:19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재능교육 학습지 노동자들의 투쟁이 1,227일(4월30일 기준)을 맞이했다. 재능교육의 수수료 제도 개악에 맞서 시작된 투쟁은 사측의 단체협약파기와 노조 전임자 해고로 인해 장기화되었다. 단체협약 원상회복과 해고자 원직복직을 위한 투쟁은 작년 말 사측이 노조 조합원을 전원 해고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섰다.
사측의 노조말살 시도에도 불구하고 재능지부 조합원들은 지금도 시청 앞 재능교육 사옥 앞에서 농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삭발투쟁에 이어 얼마 전에는 유명자 지부장이 21일 동안 단식을 진행했으며, 뒤이어 유득규 사무처장이 4월22일까지 단식농성을 이어갔다. 현재 재능지부는 <재능교육 OUT 국민운동본부>를 꾸려서 대중적인 불매운동을 만들어 나가려고 하고 있다. 재능지부 오수영 사무국장을 만나 그간의 투쟁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들어보았다. [편집자주]

 

단협파기 이후에 싸움을 이어나가다가 중간에 국면이 바뀐 것 같다. 노조탄압이 더욱 극렬해졌는데 그 상황이 어떻게 전개 되었나
(대표이사가 바뀌면서) 현장에 있는 조합원들 ‘걔 아직도 해고 안 시켰냐, 걔 대상자다’, (그 대상자가) 유득규 사무처장이었던 것 같다. 간부들 중에서 현장에 살아있는 그 사람이 사무처장 그리고 강영식 조합원 그리고 박경선 조합원 이렇게 세 사람이었는데, 간부들 중에서 이 사람들 아직도 해고 안 시켰냐라고 얘기를 했고.
불매는 그 이전부터 진행이 되긴 했지만 실제로 힘을 받지 않았다. 우리가 돌아다니면서 상황 알리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유인물 꽂고 이러긴 했지만 대중적인 힘으로 불매가 진행된 상황은 아니었는데. 사측에서는 특히 유득규 사무처장을 불매를 주동하는, 이러면서 해고를 시켰는데, 그 때 분위기가 현장에다가 ‘노동조합, 불법단체의 불매활동’ 이러면서 현장에 일괄적으로 교육을 다 시켰다. 8월에 유득규 사무처장 해고되던 그 시점에 다 시키면서 조합원 일대일 면담이 쫙 들어갔다. 불법임의단체인 노동조합이 재능교육 불매를 선동하면서 우리 현장을 다 망가뜨린다는 교육이 전면적으로 진행이 되면서 조합원들 면담 들어가고. 3차례, 교육국장이 설득 못시키면 사업국장이, 사업국장이 설득 못시키면 총국장이 이렇게 면담 들어가면서 재계약 시점에 노조탈퇴하지 않으면 다 해고다, 그러면서 유득규 사무처장 해고되고 최민정, 이현숙 이 사람들은 계약일이 좀 빨라서 해고시키고, 연말에 가서 전원 다 해고시켰다. 연말에 해고된 조합원들이 여기 와서 같이 투쟁하지 않았는데도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재계약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회사가 밝혔고 그리고 해고가 됐다.
그 때 같이 왔던 게 압류, 살림살이, 자동차, 사무실 집기 압류 그런 국면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조합원 전원해고가 우리한테는 플러스가 됐던 것 같다. 그 때까지 (이전)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는 국면이었는데. 일단 조합원들이 전원 해고가 되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간부들 집에다 손배압류하고 이런 거야 뭐, 다른 회사들은 압류까진 안하지만, 어쨌든 활동하는 조합원들에 대한 징계성 (조치) 이런 것들은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 사람들이 그렇게 마음이 많이 동하지 않았다.
처음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 그러다가 좀 지나니까 손배 150억, 자동차 압류 그런 얘기 막 하면 그러려니 했는데. ‘그냥 현장에서 일했는데 조합원이라고 재계약을 안했대’ 라고 하는 게 사람들 마음을 많이 움직였던 것 같다. 정말 나쁜 회사구나, 이런 이미지가 확산됐고 한편으로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서울에 고립되어 있었는데 지역에 해고자들이 발생하면서 지역에서 공분이 일어나고 국지적인 움직임이 만들어지고. 그리고 작년에 해고문제, 압류문제 터지면서 공대위가 구성이 돼서 대중적인 사업(이 되었다).
그 전에는 대중적인 사업이 사실 없었다. 집회 맨날 하는 거, 그리고 연대단위 조금씩 붙어서 플래카드 조직하고 가가호호 방문해서 재능교육 나빠요, 하고 유인물 뿌리고. 그게 대중사업은 아니다. 그냥 우리가 너무 절박하니까 알리려고 막 한 거지 대중적으로 뭘 할 수 있는 동력이 사실 없었다. 동력이라 해봤자 옛날 지대위에 우리하고 학생들밖에 없었기 때문에 할 수가 없었는데 일단 연맹, 정당이 딱 붙고 본부가 붙고 이러면서 대중적인 캠페인을 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했던 게 성화봉송 대회, 해고노동자 대회, 전국적인 1인시위 조직 이런 공동행동을 벌여나갈 수 있는 대중적인 힘이 됐다.

 

최근 사측이 제시한 안의 내용은 무엇인가
대중적으로 재능교육 문제가 확산되고. 향린교회에서 종각역에서 1인 시위 진행하고 트위터 상에서 재능교육 불매, 문제들이 떠돌아 다니면서 회사가 많이 압박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제기한 게 자기네들 나름대로는 최후의 안이다라고 얘기하면서 안을 하나 던졌다 사측이. 3주인가 2주 전에 안을 하나 던졌는데 내용이 뭐냐면 ‘단체협상 원상회복 없다, 단체협약 없다’, 지금 해고된 조합원 12명 중에 한 명은 해고되자마자 바로 정리했고 남은 11명 그리고 2001년 파업으로 해고된 황창훈 동지까지 12명인데 황창훈은 이번 건은 아니라고 그러면서 제외. 그리고 그 11명에 대해서 처음에는 오수영(사무국장), 유명자(지부장) 복귀 안된다라고 했는데 두 번째 단식투쟁도 하고 머리깍고 그러면서 오수영, 유명자까지 현장복귀해주겠다. 최근에 해고된 6명에 대해서는 6개월 후에, 그리고 중간에 해고된 3명에 대해서는 18개월 후에 그리고 유명자, 오수영은 36개월 후에 복귀. 단 월 50만원씩 생계를 지원해주고 민형사상의 소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손배압류나 이런 것들은 어차피 끝나면 해결되는 거니까 해주겠다 뭐 이런 안을 갖고 나왔다.

 

 

사측안에 대해 조합원들이나 연대단위의 반응은 어땠나

연맹이나 사실 연맹뿐 아니라 (연대단위들이) 우리들 앞에서 얘기를 잘 못하긴 하는데, 연맹위원장님은 솔직하게 얘기를 한 거다. ‘지금 이거 받아야 된다, 아니면 너네 다 망가진다. 어쨌든 회사가 의지를 표명했으니까’ 이런 입장을 보였고 우리들한테 말은 못했어도 아마 다 저걸 좀 받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을 거다. 그래서 4월10일 날 공대위 대표자들하고 집행단위하고 우리 조합원들까지 다 올라와서 전체회의를 했다.
사실 최근에 해고된 조합원들 일부는 그런 생각도 했다, 다들 그런 생각 할 거다, 이 투쟁이 얼마나 길게 갈지도 모르고 언제 해결될 지도 모르고 이런데 그런 마음이 들 거다. 그리고 현장에 선생님들도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이렇게 투쟁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의심을 아마 다 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현재 노조지도부가 더 가야된다라고 결의를 밝히고 한다면 같이 하겠다’고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쭉 발언을 하고 ‘지금 현재 지도부는 당연히 받을 수 없는 안이다라고 얘기를 했다’, ‘단체협약 아니면 안 되고’, ‘우리는 순차복직 안되고 황창훈 동지를 제외한 나머지에 대한 복직 안 된다’. 어차피 사측이 노동조합의 명맥을 유지할 수 없게끔 하는 안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연대단위 동지들 중 일부는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왜 못 받냐, 받아야지. 그리고 사실 내가 생각할 때에도 다들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그런데 그 분들을 설득하기로 한 거고. 그리고 나머지들은 투쟁사업장 연대를 할 때는 항상 그렇지 않나, 주체가 싸운다면 같이 가야되는 거 아니냐. 그런 입장이 있으니까. 그렇게 하면서 투쟁을 쭉 가자고 얘기를 했고 우리 내부적으로 얘기를 한 건, 회사가 우리한테 최후의 안이다라고 던졌고 이것을 받지 않으면 그 동안 미뤄졌던 법률적인 압류, 손해배상, 그냥 하겠다고 광고를 했는데, 우리가 생각하기엔 이건 최후의 안이 아니다, 처음 자기들이 안을 던진 거고다시 한 번 우리한테 협박을 하는 건 지들이 똥줄이 타니까 협박을 하는 거 아니냐 받으라고. 그리고 불매를 대중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국면이기도 하고 이러면서 단식투쟁을 통해 조직하는 것을 계속해 나가자고 얘기를 했다.
 

최근 자본가들이 순차적 복직안을 많이 던진다. 이에 대한 고민은 어떠한가
나는 순차복직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한다. 위원장은 뭐 이렇게 3시간, 6시간 같으면 받는다고 장난하는데. 근데 만약에 기륭처럼 한 라인을 타는 노동자들이 순차적으로 복직이 되면 그런 안은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왜냐면 어쨌든 처음에 혼자 들어가는 거 아니고 둘이 들어가는 거고 순차적으로 같은 공장 안에 사람들이 들어오는 거지 않나. 그러면 이거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전국사업장에다가 지국도 다 다르다. 우리 조합원들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재능조합원들은 아마 끝까지 남아있을 것 같긴 한데. 그렇게 사업장도 다 다르고 있는 곳도 다르고 너무나 멀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소통하고 조합원으로 내가 남아있는 것이 현장에서 고통스럽더라도 이것을 같이 교류하고 연대의식을 가질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만약에 지금 그런 식의 순차복직안을 받게 되면 나는 우리 조합원들이 못 견딘다고 생각한다. 못 믿어서가 아니라 나도 못 견딜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아, 나는 여기 왜 있지, 나이도 이렇게 들어서, 차라리 딴 거 하지. 아마 이런 생각 들 거다.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뭔가 할 수 있어야 남아있는 거지.
사실 노동조합도 없는데 혼자 이 부정영업 천국에 들어와 가지고 몇 개월씩 (유령회원 만들고). 그렇게 들어가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단협이라는, 그리고 들어갔을 때 뭔가 승리감? 이런 게 있어야 하잖나. 어, 쟤네들 돈 받고 들어왔네? 쟤네 단체협약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6개월 해봤자 300밖에 안되는데 어, 300 받고 들어와, 이런 얘기할 거 아닌가. 내가 6개월 후에 복직하지만 실제로 복직될 때까지 내가 제기하고 거리에서 투쟁했던 것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300만원을 받고 6개월 복직 받았다는 그런 얘기 분명히 할 거다.그러면 나 역시 우리 조합원 역시 자기 자존감도 빼앗겨 버리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받을 수 없는 안이라는 걸 아마 알았을 거다.

 

현재 수도권 지역의 투쟁 사업장 간 연대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서울지역에 모여져 있는 장기투쟁사업장들을 묶어서 뭔가 함께 하는 것을 기획해야 한다고 우리도 고민은 늘 한다. 지금 민주노총 서울본부도 힘이 좀 빠져 있고 이러면서 그런 사업이 없지 않나. 옛날 강남성모병원 투쟁하고 이런 때와 달리. 그런 사업을 원래 서울본부에서 해야 되는데 못하고 있고. 담당자도 없어졌다가 최근에 생겼고. 근데 우리가 워낙 오래됐으니까 그리고 여성사업장이다보니까 금속남성 동지들이나 새롭게 투쟁을 시작하는 사업장에 계신 분들이 우리한테 연대를 꼭 해야 된다는 그런... 우리를 도와주고 연대를 꼭 해야된다는 그런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번에 PD수첩 보면서 좀 많이 놀랐는데 PD수첩에 나왔던 울부짖던 그 남성 노동자들이 다 우리 농성장에 오시는 동지들이다. 맨날 오면 그런다, 우리보다 당신들이 더 불쌍하고 안됐다고 막 그러면서 자기네 신경쓸 거 하나도 없고, 자기네들이 도와줄 수 있는 게 뭐가 있고 함께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걱정하고 안쓰러워한다.
근데 PD수첩 봤더니 막 ‘어~ 저거 뭐야~’ 했다. 서로 가지고 있는 상처를 아니까 더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았겠나. 사람이 앞만 보고 이렇게 가다가, 이제 사람을 둘러보고 자기 안에 상처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 상처에 대해서 너그러워지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 같다. 지금 투쟁사업장 간의 연대는 그런 식으로 되고 있다. 나는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당연한 거고 이것을 묶어서 뭔가 사업을 투쟁을 만들어나가야 하는데 아직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자생적인 연대 정도인 것 같다.

 

발레오 노동자들과 재능의 연대도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인가
그것은 서울본부에서 한 거다. 발레오는 진짜 고맙다. 만약 발레오 없었으면 농성장 유지 못했을 거다. 아마 싸우다가 말았을 거다. 우리 농성장 여기(시청)로 이사 오면서 (이 지역에) 발레오가 있었다. 우리도 말로는 마이크 잡으면 시청광장을 중심으로 발레오, 재능, 그 때 인권위에 장애인들도 있었고 시청 앞에 도시철도 해고자들도 있었고. 이렇게 있으니까 우리 이것들을 하나로 모아서 뭔가 해봤으면 좋겠다, 생각은 있지만 이게 잘 안 된다. 서로 바쁘고 일정 맞추기가 힘들고.
처음 연대는 술로 시작됐다. 발레오 동지들이 공장농성자들이 있고 여기 서울농성자들이 있으면서 여기 지부장님이 사업을 잘 한다, 그 공장이 분위기가 좋은 것 같다. 자기 내부적인 연대의식 이런 게 많아서 서울 올라오면 항상 안주를 준비해가지고 농성장에서 술을 먹는, 너무 과하게 먹으면 안 되기는 하는데, 술 먹고 조합원들끼리 서로 얘기하고 속내를 털 수 있는 자리를 의도적으로 만드신다. 그러면서 발레오 동지들이 술 먹고 잠잘 데 없고 이리로 넘어와서 우리 조합원들이랑 같이 술먹고.
처음에는 발레오 남성 동지들이 재능에 여자들이 많으니까 온다, 이런 소문이 났다. 그래서 나와 사무처장이 재능에 여자가 어딨냐, 제일 나이 어린 애는 아줌마고, 나머지는 40대에다가 성격도 지랄같고. 우리가 여자가 어딨냐. 사실 그 사람들은 연배도 어리고 비슷하거나 애아빠들이고 그런데 여자로 보냐고. 어쨌든 발레오 동지들이 술자리에서 연대를 하고 그게 서로의 투쟁에 대한 공감대 이런 게 진행되면서 농성장에 이제 무슨 일이 생겼다, 구청에서 철거한다 그러면 무조건 오는 거야 막. 그래서 우리는 농성은 낮에 한두명 있을지언정 주변에 동지들이 늘 있으니까.

 

지역에서도 조합원들이 해고되면서 연대가 되고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예를 들면 춘천에 박경선 조합원 있는 지역에서는 지난번에 유인물을 5천부를 찍었다, 그 좁은 강원도에 유인물을 뿌리려고. 이걸 어디 갖다가 뿌리려고 강원도 사람 5천명도 안될 것 같은데 이러면서. 어쨌든 민주노총 강원본부에서 월 1회 집중선전전의 날, 이렇게 해서 유인물을 뿌리고 강원지역에서 CMS 조직을 엄청 많이 했다.
회사측 안 나오고 나서 강원도에 비정규직센터 하는 동지가 전화가 왔다. 나도 잘 모르고 얼굴도 한 번도 못 봤다. 그런데 그 동지가 그 전에도 우리 투쟁 지원한다고 해서 CMS를 강원지역에서 20~30개를 조직해서 보내줬는데. 전화가 왔는데 자기가 이런 말해도 되는지 정말 모르겠는데 나는 그 안 안 받고 꼭 끝까지 싸워서 단체협약 쟁취했으면 좋겠다, 자기가 강원도에서 200을 조직해서 보내겠다고 CMS를. 이렇게 호언장담하고 끊었는데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부천 지역 같은 경우에도 부천촛불이 아직 남아있으면서 매주 목요일 선전전 진행하는데 마지막 주 목요일 날은 재능문제를 가지고 부천역에서 송내역에서 선전전 진행하는 거 이런 식으로 조직이 되고.
부산은 조합원들이 자체적으로,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부산이나 울산은 조합원들이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열심히 하고 1인시위도 열심히 하시긴 하는데 이쪽하고는 좀 분위기가 다른 것 같다. 대중적으로 이것을 알리고 조직하고 이런 것들이 부족하다. 부족하긴 한데 월 1회 부산 전 지역 지국 선전전 울산 전지역 지국 선전전 이런 식으로 박아서 당원들하고 본부하고 해서 같이.

 

 

△ 지난 3월25일 재능지부 조합원 5명이 삭발하고 위원장 단식에 돌입했다. 오른쪽부터 오수영사무국장, 유명자 지부장, 이현숙 조합원

 

단식투쟁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처음에는 단식을 가자고 생각을 했는데 좀 흔들렸다, 기한도 없는데 단식해서 사람 몸 버리고 일도 안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많이 했다. 결과적으로 단식은 우리한테 완전히 플러스가 됐다. 릴레이 동조단식하고 1000인 동조단식하면서 정말 대중적인 기반이 생겼다. 이 투쟁을 알리는 기반이 생겼고 결과적으로 투쟁이 확대되는 국면, 오늘 보셔서 알겠지만 기독단위, 향린교회가 1인시위한 것에 대해서 사측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공문을 3차례나 보냈다, 내용증명을.
근데 사측이 잘못한 거다. 정당이나 이런 것과 다르게 이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존감이 굉장히 강한 집단이다. 어떻게 감히 우리한테. 촛불집회하면 이렇게 많이 안 왔는데 이걸 보고 (사측이) 정말 나쁜 놈들이구나, 그냥 지지하는 마음을 표현했다고 우리한테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 그러고 협박공문을 보내고. 전해듣기만 했는데 그 분 성함이 생각이 안 나는데, 보통 다 목사님이라고 그러지 않나, 감정이 나쁘고 거슬린 목사들한테 목사라고, 누구누구 ‘목사’ 이렇게 보낸 거다. 어떻게 감히 지네가. 그러면서 향린교회 내부에서도 공분이 일어났고 향린교회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 단위들이 이번에 기독교 단위들이 이번에 ‘재능사태 해결 기독교대책위’를 꾸릴 수 있을만큼 공분이 일어났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한테 불리하지 않다. 언론도 조명하고 있고 오늘도 기자회견 하는데 사실 불매 기자회견하면 그동안 (연대가) 잘 안 붙었다. 항상 우리 꺼(기사) 실어주는 정도만, 항상 매일노동뉴스하고 참세상, 딱 두 군데만 왔다, 다른 데는 전화해서 오라고 하면 온다고 해놓고 안 왔다. 그런데 민중의소리가 오늘 사람을 보냈다. 민감한 단위다, 지금 선거국면인데 우리한테 사람을 보냈다 취재하러. 그리고 한겨레에서도 취재를 왔고. 전반적인 국면은 우리한테 유리하고 자본한테 불리하게 가고 있다.

 

말한 것처럼 연대가 시민사회로 확산되면서 <재능OUT국민운동본부>가 출범했다. 관련하여 앞으로 투쟁 방향을 어떻게 잡고 있나
사측한테 겁 좀 주려고 좀 대중적인 이름을 만들자고 얘기했다. ‘따뜻한 밥한끼의 권리’, ‘진짜 사장이 고용해’, 이런 것처럼 뭔가 대중적인 것을 만들자고 말로는 해놓고 없으니까 이걸로 간 거다. 어쨌든 전에는 상급단위에서 정당이나 노조나, 불매하자 아래로 내리꽂는 방식으로 조직하는데 조직이 잘 안되잖나. 노동조합이나 정당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유지는 하되 아까 말했던 종교나 인권단체, 교육단체, 학부모단체들이 들어오면서 이 단체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성격이 명확한 데잖나. 그 성격을 가지고 지원할 수 있는 사업을 벌여나갈 거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어차피 이름만 올리고 말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실제로 단체가 가지고 성격으로 투쟁을 조직하겠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핵심은 불매를 조직하는 것. 사실 이름만 올리려고 하는 데도 있다. 그리고 이름만 올리려고 하지 않더라도 (기존 연대단위에는 불매할) 재능회원이 사실 없다.
이번에 천주교 노동사목전국연합 이쪽에서 우리 단위에 들어오게 되면서 부천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무국장이 애가 넷인데 첫째가 재능한 지 6년이 됐단다. 6년, 5년, 3년, 애들이. 막내도 원래 시키려고 했단다. 재능매니아인거야, 엄마가. 근데 끊었다. 그 전에 이 사람이 우리 투쟁을 몰랐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알고 봤더니 이 사람이 강종숙 위원장 대학 친구더라. 보통 활동하는 사람들이 집에서 경제권도 없고 그러니까 발언력이 없잖나. 그런데 기자회견문 써주신 걸 보면, 재능 끊자 그랬단다. 그래서 가족회의를 소집했다고 한다, 자료를 쭉 뽑아가지고. 애들하고 엄마하고 여섯이서 둘러앉아서. 이런 문제가 있다, 어떻게 하겠나. 당연히 토론을 하면 재능교육을 끊자고 하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나쁘잖아.
그래서 끊는 이런 일들이 (생긴다). 기존에 우리가 접했던 곳에서는 재능을 다 끊었고 노조간부들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도 재능했던 사람들이 작년 연말 올해 넘어가면서 다 끊었다고 한다. 안 끊던 사람들까지도 해고자 발생하고 나서 끊었고. 그래서 이제 어디를 끊으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는거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말을 하고 끊어야 하는데 조용히. 나 끊어요, 하고 광고하고 끊어야 하는데. 그래서 없었는데 시민단체나 종교단체들은 그동안 우리하고 만난 적이 없는 상태잖나. 젊은 신자들이 많고, 그러니까 여기서 재능불매 조직을 확실하게 해보려고 하고.
향린교회에서는 종각역에 원래 재능광고판이 있는데 거기서 1인시위하니까 사측이 광고판을 없앴다. 그러면서 향린교회하고 트위터에서 ‘재능광고판을 찾습니다’ 했다. 그것도 조직하고 재능이 올해 전국시낭송회 행사를 본사에서 한다. 교인들이 같이 1인시위를 하겠다고 했다.

 

기존에 노동운동을 하지 않던 사람들 사이에서 연대가 확산되고 있는데 새로운 현상인 것 같다
동희오토 투쟁 이후에 뿔난 시민들이 촛불 이후에 풀 데가 없잖나. 그러니까 끊임없이 투쟁을 만드는 노동자, 노동운동에 자발적으로. 여기 아니면 붙을 데가 없다 사실. 노동운동 사업장이나 장기투쟁사업장이 늘 있으니까. 그래서 여기서 각각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좋은 것 같다.
나는 이 투쟁 하면서 자신감은 아닌데 치유되는 그런 게 있었다. 맨날 우리끼리 머리박고 우리끼리 죽어나가는 이런 투쟁, 항상 그래왔는데. 천막농성장 이쪽으로 옮기고 그러면서 진보신당이나 교인분들하고 같이 사업을 하면서 우리끼리만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게 철저하게 머리박고 싸우는 건 우리가 해야되지만 그 외의 것들을 어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내가 해야지라고 생각해서 해주는 것. 밤에 와서 술 마시고 놀아주기, 1인시위 가서 하기 이런 것을 자발적으로 하고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음으로 해서 대중에 대한 불신, ‘해도 안될 거야’, 이런 생각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나 스스로 치유가 많이 됐다.

 

 

지금까지 투쟁을 해오면서 어떤 것을 느꼈나

사람들은 끝까지 투쟁해서 반드시 쟁취해야 한다, 이렇게 구호를 외치지 않나. 나는 나를 의심한다. 끝까지 투쟁해서 반드시 쟁취해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나는 이 투쟁하다 죽고 싶진 않다.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도 많고 근데 어쨌든 이 투쟁은 마침표가 있어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그래서 앞으로도 해결되지 않으면 현장에 계속 남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의심도 한다, 이렇게 장기투쟁으로 가서 나중에 몸도 망가지고 마음도 망가지고 우리는 도대체 뭘 할까. 설사 우리가 현장에 들어간다고 해서 이 더러운 재능교육이 우리 예전에 노동조합 조합원들 3,800에서 천 명 정도 떨어졌을 때 이미 현장은 지금 같진 않았지만 망가졌었다. 천 명가지고도 그게 잘 안됐는데 우리 12명이 들어가서 얼마나 바뀔까, 그런 두려움도 있다. 다시 또 쓰레기 같은 인간들하고 사무실에서 부딪히면서 맨날 싸워야할 생각하니까 끔찍하고.
그렇긴 한데, 그렇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요구하는 단체협약과 원직복직이라는 문제가 나 개인의 아니고 지금 계속해서 뒷걸음치는 노동운동, 노동조합운동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노동자들이 승리했다는 이런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승리했다. 자존감도 회복이 되는 거고 이런 것들을 만들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 남아있는 거고.
투쟁은 어제도 너~무 일하기 싫은 거야. 왜 나 혼자 여기 앉아서 이걸 하고 있어야 돼, 미치고 환장하고 팔짝 뛰겠고, 도망갈 수도 없고. ‘나는 내일 기자회견만 끝나면 소주 한 병을 먹고 잠 잘거야’ 그랬는데 아직 소주 한 병을 못 먹었다. 내가 좀 힘들 때 옆에 좀 덜 힘든 사람이 다독여주고 상대방이 힘들면 내가 또 다독여주고. 발레오 동지들이 쌍용차 동지들이 우리한테 힘줬던 것처럼 그렇게 천천히 가면, 싸울 때 빡세게 싸워야겠지만, 단 두 사람만 남아도 아마 끝까지 싸울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갈 수가 없다. 이 1000이라는 상식적인 숫자가 넘어가면서 도망갈 수 없게 됐다, 너무 유명해서. 예전에는 1000이 넘어가기 전에는 나는 도망간다, 나는 이 겨울에 이 추운 천막에 나는 안 보낼 거다, 이 추운 겨울에 길바닥에서 잠 안 잔다, 나는 얼어죽지 않기 위해서 정리하고 갈 거다 이런 말도 했다. 근데 이 1000이라는 기점을 딱 넘어가면서부터 이런 말 안한다, 못한다. 너무 유명해져서. 한겨레21 이런 데도 나오고. 아까 목사님도 그런 말 하셨잖나. 바닥을 치는 게 아니라 그냥 바닥에서 살고 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연대의 힘으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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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여성][인터뷰]꾸준하게 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사내하청분회 최경옥 PDI 부서 조합원

  • 분류
    여성
  • 등록일
    2011/04/08 23:08
  • 수정일
    2011/04/08 23:08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여성에 대한 일상적인 차별은 어떤 것이 있나
일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들어와서 보니까 여자들이 일하는 환경 같은 것부터 차별이 있더라. 하다못해 퇴근을 하더라도 남자들은 다 퇴근을 시켜놓고 여자들은 잡아놓는 거다. 야간하고 빨리 가서는 애기 학교도 보내야 하고 막 그러는데.
남자들은 다 옷을 갈아입고 가는데 여자들은 못 가는 거다. 하다못해 그런 데서부터 차별을 하더라. 아 더럽고 치사해서. 항의를 하다하다 안되니까 아, 더럽고 치사해서 내가 남아있지. 그리고 가끔씩 못할 때는 도망도 가고 그런다. 이상하게 남자들은 단속 안하는데 여자들만 단속한다. 차별을 하는 거 같다.
예전에는 더 심했는데 (비정규직)노동조합, (사내하청)분회가 생기면서 지금은 좀 없어지긴 했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 얘기도 많이 하고 그런다. 뭐냐면 누가 불량을 (못 발견하고) 놓쳤다거나 잘못을 했으면 ‘내가 OO는 예쁘니까 좀 봐주지’ 뭐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고, 다른 사람이 놓쳤으면 ‘와서 이거 확인 좀 하고 가라 그래라’ 이런 식으로 짜증을 내고.
그러니까 여자분들을 같은 일하는 동료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되게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똑같이 일을 해도 분명히 품질(검사)에는 기준이 다 있어서 이 공장이 돌아갈 텐데. 일은 우리가 남자들 못지않게 한다. 일하는 것도 우리가 되게 힘들게 한다. 라인을 타는데 발바닥이 아플 정도로 여자들이 힘들게 하고, 일 강도를 되게 높여서 한다.

 

임산부와 관련된 사안이 있다고 들었는데
임산부들이 생기면 대체 인력이 들어와야 하는데 안 들어오는 거다. 처음에는 그것부터 싸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을 집어넣으니까 임산부들이 조금 더 당당하게 다녔다. 자기가 나가더라도 사람을 대주니까 남들에게 피해주는 게 아니니까 당당하게 다니면서 임산부 분들이 한두 명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임신을 하면 쉬운 일로 보내주고 그랬고.
그런데 작년부터 공장에서 UPH UP이라고 작업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도 임산부까지는 생각을 못했다. 우리도 일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사람을 달라고 싸웠었는데 TO를 못 받았다. 그러면서 TO를 못 받고 키퍼(누가 월차를 쓰거나 화장실을 갈 때에 대비하여 라인 가동의 절대 필요인원에 준비된 추가인원)가 돌아가면서 (보충)해주었다. 나머지 사람들이 그 (임산부의) 일을 충당해서 해주는 거다.
여성의 날 때문에 생각하게 되었는데 임산부인 분들도 힘들다고 그런 얘기를 하더라. 왜냐하면 전처럼 쉬운 데로 보내줬지만 시간이 빨라졌기 때문에 움직이는 횟수가 늘어나고. 예전에는 700대를 했으면 지금은 1,000대를 하는 거다. 하다못해 어떤 달은 1,200대까지 했다는고 한다. 그 정도면 우리가 옛날에 비해서 (라인을) 되게 많이 돌렸다는 거다. 아무리 공정을 뺐다고 해도 내가 움직여야 하는 횟수 그런 게 늘어났기 때문에.
그렇다보니까 우리 작업자들도 힘들고. 주간에는 5시 반까지 (임산부가 일하는 시간이) 되는데 야간 TO도 그 사람이 같이 하는 걸로 되어 있는데 임산부가 야간은 못 들어온다. 주간에 5시 반에 가기 때문에 5시 반부터 잔업에도 항상 사람이 모자라고. 야간에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임산부의 그 TO를 우리가 충당하다 보니까 임산부도 부담스럽고 우리도 힘들고.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왜 나라에서는 임산부에 대한 혜택을 돈으로는 해결을 하면서 왜 이런 거는 생각을 못할까. 왜 여성의 그런 문제를 국회나 이런 데서는 왜 거기까지는 생각이 못 미치나 그런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나도 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이의만 제기하고 그거에 대해서 싸우진 못했다. 어떤 일까지 있었냐면 임산부가 (조금 더 노동강도가 낮은) 비검사 파트로 가야 되서 검사라인의 분들이 짜증이 났다. 주간 잔업이랑 야간에 일손이 부족한 그런 것은 어느 정도 설득을 해서 검사분들도 참는다.
그런데 (임산부가 비검사 파트로 가면) 비검사 분들이 자기 자리를 빼앗기기 때문에 그분들이 노는 거다. 자리가 없으니까. 비검사 분들은 검사하는 작업은 (잘) 못한다. 그러다 보니까 검사 분들은 막 째려보고 싫어하고.
그런 분위기가 생기면서 한 번은 애기가 만삭이 다 되었는데도 감추고 복대를 차고 검사에서 일을 한 애도 있다. 내가 “그거는 싸워야 된다 노동조합에서 같이 싸워야 된다.” 그렇게 얘기했는데도 그 임산부 분이 싫다고 거절을 하더라. 자기는 너무 자존심 상해서 하고 싶지 않다고. 그 분이 (문제제기를) 안하니까 넘어갔다. 하다못해 그런 일들이 또 있고.
지금도 야간은 우리가 하니까 임산부가 생기면 “아, 누가 또 생긴 거야?” 그렇게 하면서 그 분을 말로는 ‘축하해’ 이렇게 하지만 속으로는, 그거를 우리가 다 충당을 하니까, 진심으로 밝은 미소로 축하하기 어렵다. 같은 여성으로서 그런 얘기를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분회나 정규직지회가 임산부 TO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응하나
대응도 대응이지만 아예 이러한 문제가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른다. 임신부가 일을 한다는 자체도 모르고 있다. 여성분들이 여기 기아 내에 워낙 인원이 적다보니까 그런 문제로 싸우고 싶어하는 것 같지 않다. 노동조합이라는 것은 소수의 힘든 사람들을 위해 많이 일을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의 성과나 자기네들의 문제를 더 가져가지 그런 (여성) 문제로 싸우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들이 그런 문제가 있다고 분명히 얘기를 했으면, 하다못해 여성 조합원이 물어본 건데 이런 문제를 노동조합에서 앞으로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자꾸 와서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기보다는 그냥 전화통화가 땡이었다.
남성분들도 분명히 여기 지금 맞벌이 하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 자기 와이프도 그렇게 다니는 사람들 많을 텐데. 남성 우월, 1차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내 와이프한테까지 미칠 것을 생각 못하고 내 자식한테까지는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내 딸까지 이렇게 그런 대우를 받겠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고. 노동조합이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내하청분회로 재편되기 이전 비정규직지회 시절에 여성위원회가 있었다 알고 있다. 그 때에 여성조합원들은 여성 문제에 관심이 높았나
전에 여성위원회가 있을 때에는 기아 내 비정규직 노동조합 자체가 불이 붙었다 그래야 하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많이 뭉쳤다. 노동조합에서 하는 일들은 조합원들이 딱딱딱 해줬다.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다.
지금은 노동조합 생기면서 차별이 많이 없어졌다. 정규직 분들이 대놓고 와가지고 일하는데 올라와서 함부로 농담 던지고 가고 그런 것도 많이 없어졌다. 여성위원회라는 그런 게 있다는 것 자체는 정규직 분들도 알고는 있는데 그런 것 때문에 그런 건지. 그런 것을 좀 덜 하더라. 좀 무서워한다고 그래야 하나.
말 잘못했다 잘못 걸리면 큰일 나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건지. 그런 문제가 많이 없어졌던 것 같다. 노조가 활발하기 전에는 우리가 일하는 장소에 와가지고 음료수 빼다가 아가씨들 주고가고 그랬었다.
그리고 노조 자체에 여성이 내 말을 주장하고 내 말을 한다는 걸 보고 남자 분들이 조금 겁을 먹었다 그래야 하나? 그렇게 돼서 지금은 그런 문제가 많이 없다. 함부로 와서 농담하는 사람이 없다. 사람 봐가면서 던지고 뒤에서 살살하고 함부로 와서 말은 안 붙이는 것 같다.

 

한국 리테크(PDI 하청업체) 사장은 남성노동자를 늘린다던데
여자들은 생리휴가가 있다. 임산부 분들은 1년 휴직계도 내고 5시 반에 퇴근하면 TO도 없고. 내가 생각해도 사장 입장에서는 골이 아플테니까 사장이 자꾸 남성을 쓰는 거다. 젊은 남성분들을 자꾸 쓰는 거다. 예전에 여성 사업장은 남성이 일하지 않게끔 여성만 들어와서 일을 하게끔 보장하는 그런 단협을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거를 (추진) 하다 못했다. 그게 아쉽더라.

 

3·8 기획주간 하면서 사진전도 하고 걸개도 걸었는데 주위 여성조합원들의 반응은 어떤가
거의 반응이 없다. 없는데 이게 처음 한 거다. 그런 생각도 했는데 오죽했으면 3·8여성의 날을 만들었을까. 이게 처음 계기가 돼서 우리 여성조합원이 있다는 걸 남성조합원들한테도 많이 알리고 이런 문제를 노동조합 차원에서도 같이 싸울 수 있는 문제로, 사업 같은 걸 가져가는 문제를 좀 더 깊이 생각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걸 보고 지나치면서 여성조합원들이 자기가 힘들었던 부분을, 예전에는 꾹꾹 눌렀던 여성조합원들이 좀 그런 게 있구나 하고 생각을 해서 노동조합에 와서 얘기하는 그런 조합원도 생기지 않을까.
한꺼번에 그것들이 될 거라는 기대는 안한다. 오늘도 다들 안 나올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꾸준하게 하는 게 그게 중요한 거 같다.

 

이번 기획주간이 어떤 의미가 있었나
이렇게 했다는 것 자체에서 의미를 둔다. 이렇게 행사를 대공장에서 남성들의 분위기 속에서 했다는 것 자체가 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분들이 많이 같이 하지는 않더라도 나름대로. 처음엔 그런 거 아닌가. 노동조합이라는 것도 처음에 “왜 저래?” 하고 욕하고 그러다가 지나가다 보다가 이렇게 믿게 되지 않나. 다들 처음이라서 그런 거지 계기를 만들어서 가져가는 게 중요한 거 같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부탁드린다
나도 예전에는 집에서 살림만 할 거라고 생각했다. 막상 나와서 내가 일을 하다보니까 여성이니까 되게 힘든 게 많더라. 회사에서도 발바닥이 아픈데 집에 가서도 발바닥이 아프다. 집에 가서도 앉을 틈이 없다. 이렇게 얘기하면 좀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애기 때부터 한국에서는 남자분들이 가사일을 아예 안하는 걸로 알고 있다. 우리 남편도 굳이 시켜야 하지 가만히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내가 이 정도 해줬으면 됐지, 내가 오늘은 안 도와주는데 다음에 도와주겠다, 이렇게 생각을 한다. 우리는 진짜 발바닥이 아프다. 언니들 다 그렇게 얘기한다. “나는 내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 이렇게 얘기를 한다.
그런 문제를 많이 풀어가야 되는데 여자분들이 언제까지 이렇게 (참을 건가), 예전처럼 여자분들이 직장을 안 다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봤을 때는 직장생활을 하는 여자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이 거의 그럴 거 아닌가. 집에서 살림하고 막 눈치보고 그런 것을 이 사회가 바뀌어 가는 방향으로 해야 되는데 . 가끔가다 그냥 ‘이런 걸 바꿔야 하는데 어떻게 바꿔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리│정지원 (jiwon@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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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여성][인터뷰]똑같은 조합원인데 우리는 너무 힘들다-정복희 사내하청분회 여성부장 / 현대푸드 조합원

  • 분류
    여성
  • 등록일
    2011/04/08 23:05
  • 수정일
    2011/04/08 23:05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이번 3.8 여성의 날 기획주간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기아자동차 내에 여성조합원들은 많지만 여태까지 이런 행사는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올해 한 정규직 활동가와 (사내하청)분회에서 추진을 해서 이렇게 하게 되었다.

 

현대푸드에서 일한다고 하셨는데 노동강도나 노동환경은 어떤가
여기 메인(조립라인) 식당에서 식사인원만 2천3~4백 된다. (주야) A, B조로 나뉘어 있고 식사인원은 똑같다. 일단 일하는 강도가 엄청 힘들고 40kg, 20kg 그런 걸 막 들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또 일을 많이 하다보면 다치기도 하고 허리 같은 데 고통도 많이 따른다.
그런데 분회차원이 아닌 화성지회 총무실 복지담당이 라인 조합원들(정규직 생산직)이 원한다고 식사 인원과 메뉴를 늘렸다. 그 과정에서 인원은 더 충원 안 해주면서 공정이 자꾸 늘어나니까 엄마들이 그게 너무 힘들다.
그래서 그런 것을 분회차원에서도 “어떻게 줄일 수 없냐”, “똑같은 조합원인데 왜 이렇게 (일방적으로) 하냐”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서비스업이니까 해야 된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는 안 되는 게 있고, 되는 게 있어야 하는데. 아니면 조합에서 인원충원을 같이 요구를 하든가.
근데 우리 대의원이 그러는데 정규직 노조에서는 ‘그런 것까지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 신경을 쓸 수 없다’는 식으로 정규직들이 말을 했다고 한다. 똑같은 조합원인데 우리는 너무 힘들고. 메뉴가 5~6가지 늘어났다.


일이 힘들고 산업재해가 많을 것 같다. 노동강도나 산업재해와 관련해서 개선하려는 노력이 있었나
우리가 대의원들한테 ‘뭘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요구를 올리면 이 사람들은 뭐 해준다고는 하지만 그게 계속 지금까지 안 되고 있다. 우리 현대푸드는 식당이 5개 업장이다. 그런데 휴게실이나 샤워실이 기존에 없는 데도 있다.
엄마들이 일을 하다보면 쑤시고 아프니까 우리가 찜질팩 같은 것도 요구했다. 찜질팩을 금방 주지도 않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서 주긴 했는데 그게 얼마 안 가서 못쓰게 되었다. 벌써 그거 교체해 준다고 한 지가 2달, 3달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엄마들이 산재도 나지만 관절 같은 데 무리가 오고 그런다. 현재 나도 지금 허리가 안 좋아가지고 그게 다리로 왔다. 2월15일부터 신경주사 맞으면서 이 달(3월) 15일까지 쉬고 있는 상태다. 산재도 힘들다고 봐야 하지만 회사 측에서 그거를 지금 자기네가 인정해 줄지 인정해 주지 않을지 모르겠다. 이걸 병가로 해줄 것인지도 모르겠다. 얘네들(사측이) 하는 말은 ‘산재 떨어지기 힘들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노동강도나 산업재해와 관련하여 노조에서 항의나 투쟁을 조직하는지, 그렇다면 현대푸드 노동자들의 요구가 주요 사안으로 다뤄지는가
이번에 3·8 여성의 날 때문에 우리가 업체마다 요구사항이랑 다 적은 플랜카드를 지금 북문에 걸어 놓았다. 하지만 맨날 사측이 하는 소리가 ‘결재만 떨어지면 해준다’, ‘원청에서 승낙만 떨어지면 언제든지 해준다’는 것이다. 3라인 식당 같은 경우는 우리가 처음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샤워장을 요구했었다. 그게 벌써 6년이 넘어 7년째가 된 거다. 그런데 여태껏 안 되고 있다.


사측이 요구를 이행하지 않는 것에 대해 항의는 되고 있나
항의를 해도 잘 안 된다. 이번에 대의원들이 그걸(샤워실 설치) 안건에 올렸더니 ‘(사측) 총무과에서 결재 떨어지면, 자리만 떨어지면 언제든지 해준다’고 말은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데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는 거다.
한마디로 이 핑계 저 핑계 대는 것 같다. 진짜로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못해주겠나? 정규직들은 샤워장이 엄청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그러고서 얘네들이 하는 말이 ‘자리가 없어서 그렇다’는 거다. 그건 하나의 핑계다. 여성 있는 라인 쪽들만 샤워장이 없다. 없는 데가 많다. 정규직들은 그래도, 구석구석에 해놓는 거지.

 

사내하청분회 여성부장은 어떻게 맡게 되었나
내가 처음에 05년도부터 06년도에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활동을 계속해왔다. 여태 해오다가 이번에 (사내하청분회에서 나보고) 여성부장을 맡으라고 하는데 노조 활동은 했지만 또 (여성 관련) 범위 내에서 크게 아는 것도 없어서 내가 처음에 안 한다고 막 그러다가, 한번 해보자 그래갖고 여성부장을 맡았다.
솔직히 부족한 것도 많고 해서 나름대로 하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 내가 현재 몸도 그렇고 하니까. 그것도 조금 부담이 되었지만 또 3·8여성의 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올해 이게 추진이 되면 이거는 꼭 앞으로라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어느 누가 같이 했으면 하는 마음에 같이 활동하는 여성동지들하고 분회하고 하게 되었다.

 

여성노동자라서 차별받는다고 느낄 때가 있나
있다. 아무래도 남성들 위주로 많다보니까 특히 우리 식당 엄마들이 남성 직원들한테 무시를 받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정규직이든 아니든 남자분들한테. 왜냐하면 기존에 있던 엄마들은 좀 오래되고 해서 나이가 있고. 그리고 또 식당이라는 개념을 어딘가 모르게 안 좋게 생각하는 기분도 들어서 엄마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서비스라는 게 고객들이 원하는 거 해주고, 그 (노동자들) 위에 조리사들 있고 하니까 그것만 따라서 하면 되는 건데. 한마디로 좀 무시한다든가 그런 것을 느낄 때가 좀 있다. 그런 건 고쳐야 할 것 같다.
옛날에는 바깥에서 식당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사람들이 인식 갖고 있는 게 그렇다지만 지금은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이것도 서비스(노동), 하나의 대식당이고 엄마들도 진짜 역할을 하고 있는 거다.

 

현장에서 성희롱이 많이 발생하는가
아마 나름대로 그게 있을 거다. 그게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지금 정규직 여성위원회가 있다. 분회 자체에는 아직 없다. 정규직 여성위원회가 딱히 활동하는 것도 없는 것 같고. 나름대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만 있을 거다.
여성분들 있는 데는, 우리 식당 같은 경우는 엄마 같은 분들이고 또 조리사들은 나이가 20대, 30대이다 보니까 그러다 보니까 아들 같고 (해서) 그런 저기(성희롱)는 없다. 또 엄마들이 그런 걸 또 참지 않고.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

 

노동조합 만들면서 문제 있는 조리사를 쫓아낸 적이 있다고 들었다
우리가 처음에 노조 만들면서 점장도 하나 쫓겨나가지고 지금 소하리에 있다. 처음에 노조 만들 때 그 점장이 노동자를 탄압 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조리사들 몇 명이 엄마들을 탄압해서 그 때 당시 대의원들이 분회에다 지적하고 요구해서 그 이후로 5~6명 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조리사들이 엄마들한테 함부로 할 수가 없고. 함부로 하면 현장마다 반 대표나 (그런 사람들이) 그래도 지금은 많이 깨우쳐서 대응하니까. 처음에는 노동조합이란 걸 잘 몰랐지만. (지금은) 엄마들이 그렇게 당하고 있지는 않고 또 당한다 할지라도 활동했던 가닥이 있으니까 옆에서 누군가가 못하게 하고 지적을 한다.
자기네, 조리사 말로는 그러더라고. 여기 기아 안이 월급이 가장 세다고. 그래서 바깥에 조리사들이 다 여기 오길 희망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여기 노동조합이 생겨가지고 오히려 싫어한다는 거다. 골치 아프다고. 왜 그러냐면 조금만 함부로 하면 항의하고 그렇지 않으면 분회에서 전화질 해가지고 그러니까.
그런 건 많이 개선이 되었고. 예전에는 조리사들도 엄마들 무시하고. 조리사들이 엄마들한테 볼펜 탁탁 던지고 막 그랬었다. 그런 것들도 없어졌고. 그렇게 했던 조리사들은 다 쫓겨나 버렸다.

 

이번 <기획주간> 활동을 한 소감은 어떠한가
3월2일부터 3월8일까지 일주일이 기획주간이었는데 돌아보자면 현장에 들어가서 사진도 찍고 그것을 한 정규직 활동가 동지가 프로그램 맡아서 사진 확대를 했다. 라인도 마찬가지고, 미비한 점이나 이렇게 여성들이 우리는 이렇게 일하고 있다는 거, 샤워실도 없고 했다는 것을 알리는 사진 전시회를 2일부터 8일까지 오늘까지 이렇게 쭉 했다.
호응이 좋은 식당도 있지만 또 오늘 같은 날은 좀 별로. A조는 호응이 좋았었던 것 같은데 B조는 조금 호응이 적었다. 그래도 하나하나 다 알리는 거니까 누군가는 다 보고 평가를 했을 거라 생각을 한다. 그게 좀 좋은 면이었던 것 같다.
오늘 저녁에 3·8여성의 날을 위해서 준비해 온, 북문에서 이제 촛불집회를 진행할 거다. 날이 추워가지고 걱정이 되고. 물론 조합원들이 많이 모이다가도 너무 춥고 그러면 좀 그게 잘 안될 것 같아 걱정스럽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부탁드린다
촛불집회가 오늘 하루로 해서 끝나는 게 아니고 내년, 내후년 여성조합원들이 있는 그날까지 쭉 이렇게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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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여성]일회적인 사업을 넘어 여성노동자의 주체화로!- 기아차 화성공장 103주년 3·8 여성의 날 기획주간 사업

  • 분류
    여성
  • 등록일
    2011/04/08 23:03
  • 수정일
    2011/04/08 23:03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3월8일 저녁,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북문 앞에서 촛불집회가 열렸다. 촛불집회에는 기아자동차 노동자들과 사회단체 활동가, 지역 노동자 등 50여명이 참가했다. 이 곳에서 여성조합원들은 현장에서 여성노동자가 겪는 어려움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촛불집회는 <103주년 3·8 여성의 날 기획주간(이하 ‘기획주간’)>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기획주간> 사업에는 <기아자동차지부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와 <붉은몫소리>, <사노신 기아 독자모임>과 여성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함께했다. 이들은 3월2일부터 8일 <기획주간> 동안 현장에서 여성노동자가 겪는 어려움을 공유하고 알려나가는 활동을 진행했다.
중식시간에는 화성공장 내 여성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알리는 사진전이 식당에서 진행되었다. 이와 함께 진행된 업체별 간담회에서는 여성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현장에서의 불만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간담회에는 생산직 여성노동자뿐 아니라 공장을 청소하는 청소노동자, 식당노동자들도 함께 참여했다.

 

여성을 위한 공간은 없다

올해 진행된 <기획주간>의 활동을 통해 현장 안팎에서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고통과 차별은 여전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우선 여성들이 쓸 수 있는 샤워실과 휴게실, 화장실 등의 공간이 매우 부족했다. 간담회에 참여한 여성조합원의 말에 의하면 품질동 건물에는 여성 휴게실이 없어서 화장실 한 칸을 휴게실로 쓰고 있다고 한다. 여성노동자들은 ‘냄새도 심한 그 곳에서 먹기도 하고 쉬기도 한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공장 내 식당에서 일하는 현대푸드업체 노동자들은 비정규직노조가 처음 생길 때부터 샤워실을 요구했다. 하루 종일 음식을 다루고 일하면 땀과 음식냄새가 배게 마련이라 퇴근 전에 샤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요구가 제기된 지 햇수로 벌써 7년째가 되었지만 하청업체는 ‘자리만 생기면 해주겠다’는 말로 여성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 동안 정규직 남성노동자의 샤워시설은 더 늘어났다. 이는 ‘자리가 없다’는 업체사장들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또한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공간이 노조의 의제에서도 끊임없이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내에서 정규직 노조는 사측과 시설물 사용 등에 대한 협의를 통해 정규직 남성노동자들의 샤워실, 헬스장을 늘렸다고 한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조직통합이 되면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 역시 같은 노조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샤워시설은 단 하나도 설치되지 않았다.

 

남성 중심적인 작업장 분위기

남성 중심적인 작업장 분위기도 여전했다. 남성 관리자가 여성노동자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명확히 성희롱이나 성폭력이라고 규정되지는 않더라도 남성과 여성, 관리자와 노동자 사이에 권력관계에 의해 폭력적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았다. <기획주간> 행사에 참여한 한 여성조합원은 현대푸드에서 남성조리사가 여성조리원에게 “OO아”라는 비속어를 써서 여성조합원이 언어폭력이라며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성폭력 문제는 관리자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함께 일하는 정규직 남성노동자들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다. 비정규직여성노동자들은 업체 사장이 함부로 했을 때에는 노조를 통해 해결하였지만 정규직 남성노동자의 행동에는 참는 경우도 있었다.
업체별 간담회 중에 PDI 부서에서 벌어지는 성희롱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자동차 검사를 담당하는 PDI 부서에서는 정규직 남성노동자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게 성적으로 모욕감을 줄 수 있는 말을 던지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때 여성노동자가 정규직 남성노동자에게 항의를 하기란 쉽지 않았다. 정규직 남성노동자들은 라인에서 검사한 차량의 마지막 통과여부를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데, 그들에게 성폭력이라고 항의를 했을 때에 이미 검사한 차량을 제대로 검사하지 않았다며 다시 돌려보내는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주체로 나서자

지금까지 여성노동자들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끊임없이 노조에 요청해왔다. 그러나 이는 임금이나 전환배치 등의 소위 ‘주요’ 사안에 비해 덜 시급하다며 계속 후순위로 밀렸다. 그 결과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1/3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노동자들이 샤워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은 생기지 않고 있다. 노조 역시 그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있다.
또한 여성노동자가 직면한 문제에는 사측이나 관리자에 의한 성폭력과 차별도 있지만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에 의한 성폭력도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정규직 남성 노동자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을 때 정규직 노조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침묵하거나 반발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결국 현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의 해결은 여성노동자들의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가부장적인 현장 문화를 바꾸어 나가는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이번 <기획주간>활동이 일회적인 활동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의 주체가 될 여성 활동가들의 결집으로 이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정지원 (jiwon@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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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노동] 현대차비정규직, 다시 문제는 지도력이다-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조성웅 부지회장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1/04/08 22:59
  • 수정일
    2011/04/08 23:04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을 통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불어나기 시작한 조합원 수는 그 속도만큼이나 큰 파괴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 자본은 계속 법을 지키지 않았고 복직도 정규직화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투쟁은 길어졌다. 공장점거파업 이후 정규직노조의 말에 순순히 따르지 않은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이하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에게 대량징계와 해고폭풍이 휩쓸었다.
이러한 가운데 사측과 유착한 한 집행부 임원이 간부들의 조합비 유용 등 비리사건을 ‘적절한’ 시점에 폭로하면서 비정규직지회의 조직력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집행부 사퇴 이후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했으나 지도력의 공백이 좀처럼 메워지지 않고 있다. 때문에 현재 각 공장별·사업부별로 선전전 및 집회 등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하나로 모이지 못한 채 각자 분투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속노조는 여전히 현대자동차지부 눈치를 보며 방관하고 현대자동차지부(이하 ‘현대차지부’)는 자기 말에 따르라며 협박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관리자들이 노조를 탈퇴하라며 회유하거나 탄압하는 부당노동행위가 만연하다. 물량싸움도 여전해 보수적인 정규직 대의원들이 자기 선거구의 조합원 자리를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은 나몰라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대량징계는 아산공장으로 확산되었고 전주공장에도 징계가 예고되어 있다.
그러나 조직력의 붕괴는 단순히 ‘징계’와 ‘비리사건’ 때문이 아니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어떤 무기를 가지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갈팡질팡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현대차비정규직 투쟁에 함께해 온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조성웅 부지회장이 기로에 서 있는 이 투쟁이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기고해 주셨다.
첫 번째 글은 1공장점거투쟁을 중심으로 현대차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 대한 평가를 다루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두 번째 글에서는 집행부 선거를 앞둔 현 시점에서 현대차비정규직 투쟁을 전진시키기 위한 방향과 제언이 담겨있다.
기고글은 본지의 입장과 다를 수 있다. [편집자주]

 

 

노동자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을 단결시키고 그들의 창조적 열정과 계급적 태도, 단호한 직접행동을 담는 노동자계급의 대중운동이며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활력을 대의기구로 제도화하지 않는 노동자계급의 영속적인 자기결정운동이다.
풍부한 대화와 토론, 비판적 활력 속에서만 노동자민주주의는 생존할 수 있고 노동자민주주의를 통해서만 자본의 유연화 공세에 맞설 수 있는 창조적 열정과 직접행동이 성장할 수 있다. 이는 좀더 인간적이고 보다 민주적이며 더욱 문화적인 지도력의 구성,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지도력의 구성을 의미한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지도력의 구성은 곧 혁명정당 건설로 요약된다.
차이 속에서 소통을 확장하고 협력을 생산하는 힘을 성장시키는 비판적이고 문화적인 노동자계급의 역량만이 관료주의를 넘어설 수 있고 이경훈 집행부의 파업파괴행위에 맞서 싸울 수 있다. 비판적이고 문화적인 노동자계급의 역량을 구성하는 힘이 바로 노동자민주주의이며 현대차비정규직 공장점거파업투쟁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이미 “새로운 사람”들이다. 생존을 위해 정규직과 경쟁하고 동료와 경쟁하고 심지어 동지와 경쟁했던 과거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아니다. 현대차비정규직 조합원들은 자본의 탄압 속에서 태어났고 성장한, 이제는 자본이 두려워하는 새로운 사람들이다.
현대차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치떨리는 경쟁의 시간과 단절했고 비정규직노동자들도 단결할 수 있고 공장을 멈출 수 있으며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가졌던 그 감동의 시간을 기억해야 한다.
현대차비정규직노동자들은 1공장점거파업을 사수하고 2공장, 3공장으로 파업을 확대하기 위해 맞아도 맞아도 투쟁의 현장으로 돌아왔으며 병원에 누워서라도 투쟁하겠다고 결의했던 위대한 용기와 직접행동의 시간을 기억해야 한다. 현대차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동지들의 따뜻한 손을 기억해야 한다. 마주 잡은 따뜻한 손으로 함께 꿈꿨던 희망을,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족들까지 “동지라는 말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고 하지 않았는가? 동지들은 모든 것들을 변화시켰다. 동지라는 말이 포괄하고 있는 새로운 세계, 현대차비정규직 공장점거파업은 지금 이 곳에 존재했던 “우리들의 꼬뮨”이었다.
문제는 이 꼬뮨의 생존기간이 대단히 짧았다는데 있다. 다시 문제는 지도력의 문제다. 개량주의로는 개량주의를 비판할 수 없고 조합주의로는 조합주의를 넘어서지 못한다. 평조합원들의 노동자민주주의와 쟁대위의 조합주의적 지도력은 공장점거파업 기간 내내 불안정한 동거를 유지했고 공장점거파업의 해제와 현대차비정규직 특별교섭으로의 퇴행은 조합주의적 지도력이 평조합원들의 노동자민주주의를 배제시킨 결과물이었다.
현대차 자본은 공장점거파업을 무장해제시키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지만 평조합원들의 노동자민주주의는 자신들이 사용할 수 있는 핵심적인 무기를 결여하고 있었다. 즉 자신의 투쟁하는 지도부를 건설하지 못했다.

 

 

△ 출처 : 참세상

 

평가토론의 부재와 평조합원 배제

특별교섭과 평화교섭 기간은 지회 내부의 동요와 분열을 조직하고 두려움을 생산하는 자본의 시간이었다. 현대차는 농성장을 해제하자마자 3공장 57명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체포영장 발부자들을 확대했으며 징계위를 소집했다. 손배가압류를 자행했다. 비정규직 특별교섭은 조직력을 와해시키기 위한 자본의 무기였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쟁대위는 투쟁을 지속하고 유지하기 위한 체력이 고갈됐고 끊임없이 동요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쟁대위는 백기투항 할 수도 없었다. 여전히 평조합원들의 정규직화 투쟁에 대한 열망과 직접행동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조합원들은 화·수·목 출근투쟁, 중·야식선전전, 수요본관집회, 조합원 교육에 60%이상이 참여하고 있었고 정규직화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조직했다.
그러나 평조합원들에게도 약점은 존재했다. 조합주의적 지도력을 대체하지 못하고 여전히 조합주의적 지도력에 의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많은 오류에도 불구하고 이상수 지회장을 넘어설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평조합원들은 자신들이 건설한 노동자민주주의의 힘을 확신하지 못했고 자신의 무기로 사용하는 법을 모르고 있었다.
지도력은 하나의 명령이 아니다. 지도력은 조합원들과 긴밀하게 접촉하고 풍부한 비판과 토론을 조직함으로써 협력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등장한다. 평조합원들의 계급적 활력과 노동자민주주의를 보존하고 그들을 투쟁의 주체로 세워내는 것은 흔들리는 지도부를 쑤신다고 해서, 상황과 전술로 강제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차비정규직 공장점거파업을 통해 배웠듯이 집단적으로 모이고 비판과 토론을 조직하고 문제점을 진단하면서 오류를 극복하는 방법을 정식화하고 함께 결정하고 공동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이 집단적인 토론과 결정의 과정 속에서 새로운 투쟁의 주체가 성장하는 것이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쟁대위는 집단적인 토론을 조직할 의지가 없었다. 오히려 집단적인 토론이 생산적인 토론과 결의보다는 서로를 비난하고 물어뜯는 난장판이 될 것이라고 두려워했다.
이것은 지도부 스스로의 동요를 조합원들에게 손쉽게 전가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집단적인 투쟁 평가 작업은 삭제됐고 2차전술의 D-DAY를 잡고 참가인원을 소집해 상황과 전술일정을 잡는 것으로 대체됐다.
D-DAY는 평조합원들의 집단적인 토론과 공동결정으로부터 분리돼 있었다. 지도부가 수배상태이고 보안을 유지해야 하는 문제점을 고려할 수 있고 또한 D-DAY가 현대차자본이 설치한 평화교섭 기간이라는 통제장치를 파괴하고 평조합원들의 활력을 소집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더라도 D-DAY의 오류는 평조합원들이 건설한 노동자민주주의를 배제시켰다는 점이다. 조합원들을 D-DAY의 주체로 세우는 것은 자신들의 25일 동안의 파업투쟁에 대한 집단적인 평가작업과 결합해야 하고 노동자민주주의를 회복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라”는 8대요구안을 4대의제로 축소한 문제, 직접교섭이 아니라 지회의 독자성을 훼손하면서 3주체 논의에 참가한 교섭문제, 연대동지들에 대한 태도와 외부세력이데올로기, 쟁대위원들과 현장간부들의 동요를 강제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 이 전체 과정에서 등장했던 평조합원들의 노동자민주주의에 대한 평가와 오류를 극복하기 위한 진지한 고민들과 수단들을 구체화하는 집단적인 노력이야말로 평조합원들을 투쟁의 주체로 세우는 방법이었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지도부는 평조합원들의 집단적인 힘을 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즉 집단적인 힘을 배제하고 소수의 결의결사한 동지들을 소집하는데 시간을 낭비함으로써 하락하는 투쟁동력을 방어하지 못했다.
소수의 결의한 동지들도 평조합원들의 집단적인 힘으로 지지되지 않으면 쉽게 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D-DAY는 집행될 수 없었고 오히려 지회 임원들의 자본과의 유착관계가 폭로됐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지도부는 설 휴가 전부터 회자됐던 자본과의 유착관계와 조합비 유용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서 D-DAY를 조직하는 것에 집착하고 이 투쟁으로 상황을 돌파하려 했다. 하지만 내부의 약점이 치명적이었기 때문에 설령 투쟁의지가 있었다 하더라도 내부의 약점을 치유하지 않는 한 투쟁은 단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었다. 그것은 경험을 통해 충분히 평가할 수 있다.

 

 

△ 출처 : 울산노동뉴스


비정규직 독자성 상실, 조합주의로의 경도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쟁대위는 지난 1월 평화교섭 기간에 갇혀 투쟁으로 전진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백기투항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동요했다. 이 동요를 끊어낸 것은 스스로의 결단이 아니라 1월25일 제출된 현대차노사합의안이었다. 현대차노사합의안은 지도부 30여명의 해고를 포함하고 있었고 집단소송 포기와 공정별·직무별 대표소송을 제기했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는 너무나 정당하게 “현대차노사합의안은 비정규직 조합원 다 죽이는 안”이라고 규정하고 2월7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소집해 “8대요구안 쟁취 2차파업”을 결의했다. 이상수 지회장은 조계사 단식농성에 돌입하고 전 임원들은 현대기아차본사 광고탑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는 2월14일 쟁대위를 소집해 "4대의제와 관련된 교섭에 더이상 참여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결정하고 2월17일 500여명의 조합원들이 참여한 파업출정식을 통해 8대요구안 쟁취 2차 파업을 공식화했다. 21일에는 부당징계에 맞선 4시간 부분파업도 조직했다.
그러나 2월21일 4시간 부분파업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차는 지회 임원들의 조합비 유용 사실을 담은 유인물을 현장에 배포하고 곧바로 언론을 통해 공개했다. 이와 동시에 현대차는 파업에 참가한 평조합원들까지 포함하는 무차별 대량징계를 자행했다. 각 공장 대표들, 대의원들, 현장위원들은 해고되거나 정직자로 현장 밖으로 내쫓기고 현장간부들이 없는 상황에서 현대차는 평조합원들에게 조끼를 벗도록 협박하고 “쓸래, 나갈래”라는 대단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노조활동포기각서와 노조탈퇴를 강요했다.
현장은 가장 기본적인 노조활동조차 보장되지 않는 병영과 같은 통제가 강화됐고 평조합원들과 노조간부들의 분리가 완성됐다. 현대차는 내부 흔들기와 폭력적인 장계탄압을 효과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불법파견철폐 정규직화 투쟁의 동력을 진압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임원들의 조합비 유용건은 임원 각 개인들의 실수가 아니라 현대차지부의 대리교섭에 의해 훈육된 조합주의적 활동의 결과물이다. 노동조합의 현장활동은 부재했고 지회 임원들은 조합원들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렇기 때문에 조합비에 대해 너무나 손쉽게 손을 댔던 것이다.
지회 독자성의 유실과 대리교섭에의 거주, 현장활동의 부재는 부패하고 타락한 대공장 정규직 조합주의를 너무나 빠르게 배우는 늪지였다. 술과 사행성 오락, 도박과 성매매는 부패하고 타락한 대공장 조합주의적 활동의 형식이었고 자본의 매수의 방식이었다. 자본은 밥 한 끼에 정보를 수집하고 술 한 잔에 회유하며 도박과 성매매를 통해 영혼을 타락시킨다. 그리고 투쟁의 결정적 국면마다 도덕적 문제, 비리문제를 폭로하면서 투쟁을 파괴해왔다.
수많은 끈으로 연결된 자본과의 유착관계를 끊어내고 “노조의 독자성”을 회복하지 않는 한, 투쟁의 전진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임원들의 조합비 유용 사건은 가르쳐주고 있다.

 

공개적·집단적 토론 통해 지도력 구성해야

그렇기 때문에 불법파견철폐, 정규직화 투쟁의 새로운 지도력을 구성하는 것은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임원 몇 명 뽑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성을 회복하는 문제, “모든 시내하청을 정규직화하라”는 8대요구안을 사수하는 문제, 현대차지부에 의한 대리교섭이 아니라 현대차와의 직접교섭을 쟁취하는 문제, 평조합원들의 직접민주주의를 건설하는 문제는 한 명의 뛰어난 지도자의 잘 짜여진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징계자들과 평조합원들이 참여하는 집단적인 토론과 논쟁의 결과이어야 하고 결과물일 수밖에 없다.
불법파견철폐, 정규직화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정치환경은 대단히 반동적이고 폭력적이다. 현대차는 징계탄압과 무력으로 투쟁동력을 진압하고 있고 현대차지부는 4월 가이드라인(정규직 임단협 전에 비정규직 특별교섭 마무리)을 제출하고 비정규직지회를 무장해제하려 하고 있다.
이미 대규모 징계가 강행됐기 때문에 4대의제 관련 교섭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남아 있는 문제는 해고의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만 남아 있다. 교섭에 들어가는 순간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임원들은 가장 앞장 서 투쟁했던 해고자들을 청산하도록 강요받게 될 것이고 지회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폭력적으로 진압될 수밖에 없는 힘의 관계 속에 있다.
누가 임원으로 선출되더라도 현대차와 현대차지부의 폭력적인 진압 앞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 객관적인 조건이다. 따라서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는 것은 징계자들 전체의 치열한 집단적인 토론과 논쟁을 통해 집행부의 임무와 역할에 대해 공동결정하고 임원들을 통제할 수 있는 집단적인 힘(공동책임)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의 집행부 선거과정은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라”는 투쟁의 목표를 분명하게 결정하고 “4대의제와 관련된 교섭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겠다"는 기존 쟁대위 방침을 재확인하며 현대차지부의 대리교섭이 아니라 8대요구안 쟁취를 위한 현대차와의 직접교섭 방침을 결정하는 집단적인 토론과 논쟁의 과정이어야 한다.
이 집단적인 토론과 논쟁 과정은 2차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집행부의 임무와 역할에 적합한 주체를 구성하는 수단이며 공동결정과 책임 속에서 지도력의 안정성을 갖추는 방법이기도 하다.

 

 

△ 현대차비정규직 조합원총회 (출처 : 울산노동뉴스)


2차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지도력을 건설하는 과정은 자본의 탄압을 견뎌야 할 뿐만 아니라 개량주의자들 노사협조주의자들 조합주의자들과의 투쟁일 수밖에 없다. 공장점거파업 과정과 점거해제 이후에 지회 내부의 경향들은 분화되고 있다. 불법파견철폐, 정규직화 투쟁의 지도력을 건설하는 문제, 임원선거는 이 경향과 경향의 투쟁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경향과 경향의 대립이 드러나지 않고 은폐되어 있고 후보군을 누구로 할 것인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층중심의 실무적이고 기술적인 선거준비는 임원후보군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평조합원들의 집단적인 힘을 구성하는 것을 배제한다.
따라서 임원 선거는 징계자 전체와 평조합원들이 참여하는 집단적인 토론을 조직하는 방식이지 않으면 안된다. 이 집단적인 토론을 통해 현시기 지도력의 성격, 임무와 역할에 대해 견해를 제출하고 공개적으로 논쟁을 조직해야 한다. 집행부의 성격과 임무와 역할을 둘러싼 경향과 경향의 공개적인 논쟁은 평조합원들에게 판단의 근거를 제공할 수 있고 계급적 태도를 수립하도록 도울 수 있다. 평조합원들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에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과 능력이 있다.
평조합원들은 자본의 폭력적인 탄압을 견디면서도 4대의제를 쓰레기 안이라고 규정하며 계급적 태도를 수립했고 1공장점거파업을 사수하기 위해 폭력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도 생산타격투쟁을 제안하고 결정하고 집행했다. 그리고 지금 평조합원들은 지도력의 공백을 최소화하고 다시 한 번 투쟁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평조합원은 비록 지도부에 대한 불신과 내 곁에 현장간부들이 없는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조끼를 벗었지만 노조탈퇴를 거부하고 있고 벗은 조끼를 잘 개어 사물함에 보관하고 있다. 언제든지 다시 투쟁조끼를 입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평조합원들이 다시 투쟁조끼를 입는 날은 고통 없이 오지 않을 것이다. 내부혼란을 견디며 논쟁의 시간을 거쳐가야 한다. 충분히 고통스러워야 하고 구체적으로 사유해야 하며 자신의 계급적 태도를 취하고 결단해야 한다. 체념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불신과 분열을 넘어 그들이 다시 잡은 깃발은 조합주의도 아니고 개량주의도 아니며 평조합원들이 건설했던 노동자민주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혁명적 사회주의일 것이다. 지금 계급투쟁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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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노동] 현대차비정규직 공장점거파업과 노동자민주주의-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조성웅 부지회장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1/04/08 22:31
  • 수정일
    2011/04/08 22:54
  • 글쓴이
    사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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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을 통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불어나기 시작한 조합원 수는 그 속도만큼이나 큰 파괴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 자본은 계속 법을 지키지 않았고 복직도 정규직화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투쟁은 길어졌다. 공장점거파업 이후 정규직노조의 말에 순순히 따르지 않은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이하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에게 대량징계와 해고폭풍이 휩쓸었다.
이러한 가운데 사측과 유착한 한 집행부 임원이 간부들의 조합비 유용 등 비리사건을 ‘적절한’ 시점에 폭로하면서 비정규직지회의 조직력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집행부 사퇴 이후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했으나 지도력의 공백이 좀처럼 메워지지 않고 있다. 때문에 현재 각 공장별·사업부별로 선전전 및 집회 등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하나로 모이지 못한 채 각자 분투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속노조는 여전히 현대자동차지부 눈치를 보며 방관하고 현대자동차지부(이하 ‘현대차지부’)는 자기 말에 따르라며 협박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관리자들이 노조를 탈퇴하라며 회유하거나 탄압하는 부당노동행위가 만연하다. 물량싸움도 여전해 보수적인 정규직 대의원들이 자기 선거구의 조합원 자리를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은 나몰라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대량징계는 아산공장으로 확산되었고 전주공장에도 징계가 예고되어 있다.
그러나 조직력의 붕괴는 단순히 ‘징계’와 ‘비리사건’ 때문이 아니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어떤 무기를 가지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갈팡질팡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현대차비정규직 투쟁에 함께해 온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조성웅 부지회장이 기로에 서 있는 이 투쟁이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기고해 주셨다.
첫 번째 글은 1공장점거투쟁을 중심으로 현대차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 대한 평가를 다루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두 번째 글에서는 집행부 선거를 앞둔 현 시점에서 현대차비정규직 투쟁을 전진시키기 위한 방향과 제언이 담겨있다.
기고글은 본지의 입장과 다를 수 있다. [편집자주]


현대차비정규직지회는 현대차자본이 설치해 놓은 ‘현대차비정규직 특별교섭’이라는 덫에 걸려 동요하면서 공장점거파업을 통해 솟구쳤던 계급적 활력을 유실하기 시작했고, 현대차의 잘 기획된 작품인 지회 임원들의 조합비 유용과 횡령 사건으로 조직력의 대부분을 유실했다. 불법파견철폐, 정규직화 투쟁은 투쟁이 시작되기 전으로 뒷걸음질 치는 듯이 보인다.
불법파견철폐, 정규직화 투쟁은 적이 강력했기 때문이 아니라 강력한 적에 맞서 계급투쟁을 지속하고 유지하기 위한 지도력이 취약했기 때문에 퇴행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평조합원들이 스스로 투쟁하는 지도력을 건설하지 않는 한, 공장점거파업에서 등장했던 오류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도력은 하늘에서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류로부터 배우고 오류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정식화하기 위한 집단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비로소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평조합원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공장점거파업을 통해 배워야 한다. 현대차비정규직 공장점거파업은 모든 정치세력들의 말과 행동이 투명하게 드러남으로써 평조합원들이 자신의 부족했던 경험을 보충하고 학습했을 뿐만 아니라 투쟁을 지속하고 유지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배우는 교육적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평조합원들은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투쟁의 출발점을 스스로 새롭게 창출해야 하며 불법파견철폐, 정규직화 투쟁이 다시 현장을 조직하고 자본의 유연화 공세에 맞서 계급투쟁의 신호탄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자신의 집단적인 협력을 통해 조성해야 한다.

 

공장점거파업 해체한 3주체회의

3주체회의(금속노조,현대차지부, 현대차비정규직3지회)는 공장점거파업을 무장해제하기 위한 자본의 바리케이트였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평조합원들은 공장점거파업의 마지막 날에 이르러 “이경훈을 넘어야 현대자본과 맞짱 뜰 수 있다”는 자각에 이른다. 이러한 자각은 공장점거파업의 운명을 요약하고 있다. 이경훈을 의식적으로 넘어서려 하지 않고 어쨌든 이경훈을 불파투쟁에 끌어들여야 한다는 “이경훈 활용론”은 좀더 노골적이거나 보다 은폐된 형태로 존재했지만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지도부와 평조합원들, 개량주의 정치와 중도주의 정치까지 공유하고 있었던 남한 노동운동의 정치적 현주소였다. 이경훈 활용론의 구체적인 수단은 3주체회의였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현대차비정규직3지회가 참여하는 일명 “3주체회의”는 현대차자본의 무자비한 폭력과 탄압이 정점에 달하고 이에 황인화 조합원이 분신으로 항거했던 투쟁 직후에 태어났다.

 

 

△ 공장점거파업을 해체시칸 3주체회의 (출처 : 울산노동뉴스))

황인화 동지는 “비정규직 철폐, 무슨 일이 있어도 싸우자, 노동자는 하나다 투쟁!” 의식이 남아있는 그 순간조차도 조합원들에게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라는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투쟁을 호소하고 정규직 조합원들과 전국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연대를 호소했다.
황인화 동지의 분신 직후에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민주노총 울산본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대표자들이 참여한 대책회의의 결론은 “흥분하는 조합원들을 자제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동자대회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지도부의 방침을 기다렸지만 지도부의 방침은 투쟁이 아니라 투쟁의 자제, 조용한 촛불문화제가 다였다. 1공장점거파업을 사수하기 위한 직접행동은 등장하지 않았다.
흥분하는 조합원들을 유능하게 자제시킨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노동조합 관료들은 투쟁을 수습하고 공장점거파업을 해제시키기 위한 계획에 착수한다. 11월22일 울산에서 열린 금속노조 대의원대회는 즉각적인 전면총파업이 아니라 “구사대와 공권력 진압시”라는 단서조항을 달아 전면총파업을 결정하고 이조차 12월1일까지 유보시킨다.
금속노조 박유기 집행부가 12월1일까지 총파업을 유보한 것은 현대차지부 이경훈 지부장의 노골적인 파업파괴선동 ― “총파업 때리면 이 싸움 3일 안에 박살난다...조합원총회 통해 분명히 물어야 한다” ― 에 대한 화답이자 굴종이었고 12월1일까지 현대차와의 교섭국면을 여는 일에 집중하고 공장점거파업을 수습하기 위한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황인화 동지의 분신 이전까지 현대차지부는 금속노조와 현대차비정규직 3지회가 요구했던 공동투쟁을 완강하게 거부했던 제3자였을 뿐이다. 현대차 이경훈 집행부는 2010년 11월18일 공문을 통해 “비정규직 불법파견 문제는...현대차지부와 진행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불법파견철폐 정규직화 투쟁은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이경훈 지부장은 황인화 동지의 분신 이후에야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경훈 지부장은 11월22일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 참가해 파업파괴행위를 노골적으로 선동했고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중재안을 던지고 24일 3주체회의를 소집한다. 그리고 24일 3주체회의 결과는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라’는 8대요구안을 폐기시키고 손배가압류 최소화 등 ‘현안문제’ 해결로 후퇴시킨 것이었다.
현대차지부 이경훈 지부장이 소집한 3주체회의는 황인화 조합원의 분신 이후 흥분하는 조합원들을 자제시키고 공장점거파업을 무장해제시키기 위한 성격을 갖는다. 12월9일 농성이 해제되기 전까지 3주체회의가 한 역할은 “공장점거파업의 통제와 해체”였고 그 결과는 현대차자본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이었다.
현대차와 현대차지부는 하나로 통합됐다. 현대차지부는 현대차를 대신해 외부세력이데올로기를 선동하며 해고자는 조합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농성장에서 폭력적으로 끌어내고 권우상 전 연대노조 사무국장을 강금해 폭행했다. 현대차지부의 허락을 득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농성장을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여 농성장을 통제하고 고립시켰다. 추위와 굶주림에 고통받고 있었던 조합원들에게 농성장해제를 김밥 한 줄로 협박했고 밖에서는 아름다운 연대로 포장했다. 이경훈 집행부는 공장점거파업을 해체하기 위해 대단히 ‘계급적’으로 투쟁했고 마침내 노사평화를 이끌어냈다.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울산본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1공장거점파업장으로부터 투쟁을 확대시키는 것이 아니라 타협하고 중재하고 조정하고 수습해 투쟁을 마무리하는 데 적극적인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공황기, 개량주의자들과 노동조합관료들의 역할은 생존권적 요구에 나서는 현장조합원들의 투쟁을 통제하고 파괴함으로써 자본가계급에게 협력하는 일이었다.
공장점거파업 속에서 어용과 민주의 경계는 사라졌고 노동조합관료제(개량정당과 관료적 산별노조의 결합)로 통합됐다. 노동조합관료제는 현 시기 “반혁명이자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는 이유이고 자본가계급이 지배자로 존재하는 수단”이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는 현대차와 한 몸이 돼 노골적으로 파업파괴행위를 조직했던 이경훈 집행부와 이에 굴종하고 타협하고 중재하고 조정하고 수습해 투쟁을 해체시키려 했던 개량주의자들과 노동조합관료들을 폭로하고 이에 맞서 투쟁해야 했다.
하지만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쟁대위는 평조합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장점거파업을 통제하고 해체하려 했던 3주체회의에 참가했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쟁대위가 3주체회의에 참가한 것은 11월17일 쟁대위 회의를 통해 결정한 “현대차비정규직지회는 현대차가 조건 없이 교섭에 임할 것을 요구한다”는 “직접교섭” 방침을 스스로 폐기한 것이었고 공장점거투쟁을 파괴하기 위한 이경훈 집행부의 협박 앞에 굴종한 것이었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쟁대위가 3주체회의에 참가한 것은 공장점거파업을 무장해제하는 첫걸음이었다.
개량주의자들, 노사협조주의자들, 조합주의자들은 “지금 당장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는 불가능하다. 교섭을 통해 현안문제부터 풀어가면서 정규직화는 장기적 과제로 가져가자”고 선동했다. 교섭을 미끼로 농성장을 해제하려 했다. 현대차자본이 노동운동 내부로 파견한 이경훈 집행부의 파업파괴 프로그램에 금속노조, 민주노총울산본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은 손을 들어 중재자로 참여했고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쟁대위는 수줍게 끌려갔다.
“이경훈 활용론”의 결과는 무엇인가? 농성장의 강제해산이었다. 파업의 무기가 사라지자 3공장 비정규직노동자들은 해고됐고 체포영장발부자는 늘어났으며 징계위가 소집되고 손배가압류가 집행됐다. 공장점거파업의 파괴였고 노사평화였다. “이경훈 활용론”은 공장점거파업을 해체시키기 위한 개량주의자, 조합주의자들의 슬로건이었다.

 

 

△ 출처 : 울산노동뉴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평조합원들이 건설한 노동자민주주의

이경훈을 넘는 것은 관료주의를 넘는 것이고 관료주의를 넘는 것은 부르주아 정치를 넘는 것이다. 관료주의는 부르주아의 정치이다. 부르주아 정치는 비판과 토론이 억압된 명령의 질서이다.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에 초대받지 못하고 철저하게 배제된다. 비판과 토론이 억압될수록 정치적 수동성이 강화되고 위계적 질서와 관료적인 명령이 결합한다. 차이는 제도화되어 억압은 강화된다. 대화가 죽은 자리에 조합주의(노사협조주의)와 관료주의가 굳건하게 자리 잡는다. 명령과 통제가 모두를 사로잡는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의 관료적 명령과 통제를 뚫고 일어선 대중적 파업투쟁이 현대차비정규직 평조합원들의 공장점거파업이고 그들이 이룬 정치적 이름이 노동자민주주의였다.
현대차비정규직노동자들은 신차가 나올 때마다 해고됐다. “자른다 자른다는 이야기만 듣고 살아왔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서로 헐뜯고 근속(입사역순)을 가지고 서로 싸웠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는 현대차의 해고방침을 “입사역순, 조합원 우선 고용보장” 방침으로 받아들였고 조합원들조차 누가 피켓을 많이 들었고 집회에 많이 참석했는가에 따라서 운명이 결정됐다.
현대차비정규직 공장점거파업의 출발점은 바로 이러한 “치떨리는 경쟁”과 단절하고 싶다는 절박한 요구,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절박한 요구였다. 현대차비정규직 공장점거파업은 하나의 계획에 의한 일의 순서와 절차를 뛰어넘는 대단히 특이한 활력으로 구성됐다.
현대차비정규직노동자들의 25일간의 공장점거파업은 절차와 과정으로 굳어진 정규직 교섭질서를 한꺼번에 뛰어넘었다. 현대차비정규직노동자들은 자본의 지불능력이나 교섭절차와 기술이나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생활 그 자체의 고통”이었으며 이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 불법파견철폐 정규직화 투쟁이었다. 당연히 자본의 지불능력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고 지금 이 곳에서 실현돼야 했으며 이를 위해 머리로 생각하고 고민했던 모든 투쟁의 수단들을 한꺼번에 집행해버린 것이다. 현대차와 노동조합관료들이 감히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과감하게 그리고 대단히 빠른 속도로 투쟁을 조직했던 것이다.
현대차비정규직 평조합원들의 노동자민주주의는 어떻게 구성됐는가? 그것은 관료적 명령과 통제를 아래로부터의 비판과 토론으로 대체했고 비판과 토론을 도입하는 수단이 바로 1공장거점파업 농성장총회, 비거점파업 조합원총회, 각 공장별 조합원총회, 공장별 분임조회의였다.
현대차비정규직 평조합원들은 비판과 토론의 민주적인 기구를 통해 쟁점에 대해서, 요구안에 대해서, 전술에 대해서 자기 손을 들어 발언했고 견해를 제출했으며 때로는 논쟁하고 때로는 설득하면서 자신들의 계급적 요구와 전투적 전술을 유지하고 사수하려 했다.
평조합원들의 노동자민주주의는 자신의 권리를 위임하지 않는 자기결정과 직접행동을 발전시켰다. 평조합원들의 자기결정과 직접행동은 대의제 속에 뿌리처럼 달라붙어 있는 관료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대의기구로 우회하지 않고 토론과 결정과 집행의 연속적인 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비판과 토론, 결정과 집행에 따른 직접행동(행동통일과 규율)이 평조합원들이 이룬 노동자민주주의의 구체적 형상이었다.
현대차비정규직 평조합원들은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라”는 자신들의 절박한 생활적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 자본의 이윤을 뿌리로부터 파괴하는 공장점거파업을 머뭇거림도 없이 과감하게 단행했고 공장점거파업을 해체시키기 위한 개량주의자들, 노사협조주의자들, 조합주의자들과 계급투쟁을 조직했다. 평조합원들의 투쟁은 책을 통해 배운 것이 아니었다. 그만큼 절박한 생활상의 요구는 계급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평조합원들은 자신의 민주적 기관을 통해 현대자본과 개량주의 조합주의자들이 제기하는 “지금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라는 요구는 불가능하다. 단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요구에 맞서 “이 안은 쓰레기 안”이라고 찢어버리면서 투쟁했고 이경훈 지부장이 밥 가지고 장난칠 때 “차라리 굶자”고 결의하며 농성장을 사수하려 했다.
또 평조합원들은 1공장점거파업을 사수하기 위해 “1공장 동지들에게 한 끼 밥보다도 오늘이든 내일이든 라인을 끊어주는 것이 더욱 힘나게 하는 것이다. 2공장, 3공장 생산타격 주게 되면 1공장 거점파업 동지들이 힘이 날 것”이라며 파업의 확대를 제기하고 생산타격투쟁을 결의하고 집행했다.
이것은 불법파견 철폐, 정규직화 투쟁의 요구와 전술문제를 둘러싼 계급투쟁이었다. 평조합원들의 노동자민주주의는 계급적 태도를 취하고 전투적 행동을 이끌어내는 협력의 공간이었다.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라”는 평조합원들의 요구는 850만 전체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었고 법률적 가이드라인 안에서 단계적 정규직화론을 제기했던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현대차비정규직회 지도부, 이 개량주의자들, 노사협조주의자들, 조합주의자들의 요구는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평조합원들은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통해서 계급투쟁을 조직했고 가장 계급적인 요구가 가장 대중적인 지지를 이끌어낸 다는 것을, 가장 계급적인 요구만이 노동자계급의 공동행동을 조직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자본의 공세와 노조관료들의 파업파괴 행위에 맞서 계급적인 요구를 정식화하고 노동계급의 공동행동, 계급투쟁을 조직할 수 있는 정치적 수단이 노동자민주주의다. 노동자민주주의는 절차적이고 형식적이며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이 노동조합의 운영이나 국가의 운영에 “직접적이고 더욱 결정적으로 참여하고 통제권을 행사하는 평등”을 의미한다.
현대차비정규직 평조합원들은 비판과 토론을 통해 지도부의 방침을 결정하는데 직접적으로 참여했다. 흔들리는 지도부를 강제했고 투쟁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자 했다. 노동자민주주의 속에서 평조합원들의 대중지성이 성장했고 자발성과 결단력, 창조력이 솟구쳐 올랐다. 이것이 25일 동안 공장점거파업이 유지될 수 있었던 힘의 원동력이었다.

 

 

△ 공장점거파업이 한창이던 지난 11월22일 울산에서 열린 금속노조 대의원대회. 총파업은 통과되었지만 각종 단서와 현대차지부의 협박 속에 총파업은 실행되지 않았다. (출처 : 울산노동뉴스)

 

자발성과 의식성의 결합 - 지도력의 문제

 

투쟁의 실마리와 방향을 제시하는 것, 투쟁의 모든 국면과 모든 순간에 이미 풀려나 움직이는 노동계급의 모든 힘을 당의 투쟁대오 속에서 실현되도록 정치투쟁전술을 계획하는 것, 사회민주당의 전술이 단호함과 예리함에 바탕을 두고 결정되고 그 단호함과 예리함이 실제 세력관계의 수준 밑으로 내려가지 않으며 오히려 그 세력관계에 앞서도록 하는 것, 이것이 대중파업 시기에 지도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도는 어느 정도 저절로 기술적인 지도로 바뀐다. 사회민주당의 일관되고 단호하며 선진적인 전술은 대중들 속에 안정감과 자기확신, 투쟁의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노동계급을 과소평가한 것에 뿌리를 둔 유약하고 머뭇거리는 전술은 대중에게 해롭고 혼란스러운 결과를 불러일으킬 따름이다 (로자의 <대중파업론> 중에서)

 

자발성은 현대차비정규직 공장점거파업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었지만 또한 현대차비정규직 공장점거파업 과정에서 확인한 것은 완전한 자발성이란 없었다는 것이다. 가장 뛰어난 자발성조차 의식성과의 결합 속에서만 구현되었다.
평조합원들의 민주적 기관은 아래로부터의 자연발생적인 요구와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지도부에 결합하고 있었던 한 사회주의자의 계획에 의해 대단히 의식적으로 조직됐다.
평조합원들은 자신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자 가슴 속에 담아준 자신의 이야기, 분노와 희망, 투쟁과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평조합원들의 발언은 대단히 짧았지만 명쾌했다. 군더더기 없이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었고 투쟁의 요구와 전술방향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었다. 평조합원들의 발언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선동이었다. 계획 속에서 평조합원들의 자발성이 성장했으며 이 자발적 활력이 흔들리는 지도부를 강제하는 의식성을 구현했다.
동성기업 투쟁은 평조합원들의 자발성과 지도부의 의식성이 조화롭게 결합된 투쟁이었다. “시트조합원은 신규업체와의 근로계약을 거부한다. 사측이 시트조합원을 공격(해고)할 시 현대차비정규직지회는 즉각 쟁의행위에 돌입한다”는 현대차비정규직지회의 단호한 방침은 동성기업조합원들에게 두려움을 넘어 안정감을 갖도록 했고 동성기업 조합원들에게 놀라울 정도의 투쟁 결의를 불러일으켰다.
동성기업 조합원들은 11월15일 머뭇거림 없이 담벼락을 넘어 라인점거투쟁을 조직했다. 동성기업 조합원들의 라인점거투쟁은 직선으로 1공장점거투쟁까지 이어졌고 이 직선 위에는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평조합원들의 열정과 창조적인 직접행동이 있었다.
11월15일 현대비정규직지회 1,100여명의 평조합원들은 1공장 CTS공정에 모였다. 전면파업을 통해 만난 1,100여명의 평조합원들, 가슴 벅찬 감동이 그들을 휘감고 있었다. 그들은 마침내 “치떨리는 경쟁”과 단절했다. 집단적인 힘 속에서 그들은 미래를 꿈꿨다. 현대차자본의 목젖을 힘껏 움켜쥐었다.
공장이 멈췄다. 정규직화 투쟁에 대한 자기확신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들을 휘감고 있었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지도부도 전혀 예상치 못한 평조합원들의 놀랍고 경이로운 자발성은 바로 지도부의 과감한 전술방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조합원들의 ‘자발적 의식성’은 조직운동으로 구현되지 못했다. 평조합원들은 “우리는 싸울 준비가 돼 있다. 지도부는 흔들리지 마라”고 호소했지 자기 스스로 흔들리는 지도부를 대신해 현장투쟁지도부로 뛰어오르기 위한 용기와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평조합원들의 민주주의는 흔들리는 지도부를 대신해 독립적으로 행동하지 못했다. 이것이 평조합원들의 자발성의 약점이었으며 지금도 존재하고 있고 2차파업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서야 할 과제다.

 

 

△ 출처 : 울산노동뉴스

평조합원들의 자발성의 최대치는 흔들리는 지도부가 올바른 방침을 내리도록 하고 지침이 결정되면 성실하고 헌신적으로 따르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지도부가 흔들릴 때 평조합원들도 흔들렸고 나의 동지들이 현대차지부 상집간부들에게 폭행당하면서 끌려나갈 때 지도부가 침묵하자 평조합원들도 침묵했다.
평조합원들의 거듭된 호소와 비판에도 지도부가 반복적으로 흔들리고 오늘 지침이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바뀌고 평조합원들의 통제를 벗어나자 평조합원들의 계급적 활력은 불균등해지기 시작했고 이탈자가 발생하기 시작했으며 현대자본의 폭력은 하나의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노동자민주주의는 자발성과 의식성의 결합, 평조합원들의 계급적 태도와 전투적 행동을 조직하는 투쟁하는 지도부의 결합이라는 것을 현대차비정규직 공장점거파업은 가르쳐주고 있다. 이는 곧 평조합원들의 대중지성의 발전, 자발성과 창조력의 성장은 의식성과의 결합을 통해서만, 자신의 투쟁하는 지도부를 건설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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