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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시위’도 죄가 되는 세상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1/03/28 12:45
  • 수정일
    2011/03/28 14:13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1인 시위’도 죄가 되는 세상

지난 3월 27일 서울 서초경찰서 정문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26일 오전 10시 <기아자동차 구속․해고․고소․고발 현장대책위>(이하 ‘기아차 현장대책위’) 대표 이상욱 조합원이 체포된 것에 항의하는 자리였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기아차 현장대책위와 구속노동자회를 비롯해 10여개의 노동사회단체들이 모여 경찰의 이상욱 조합원에 대한 체포를 한 목소리로 규탄했다.

지난 해 9월부터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고소고발·손배가압류 철회를 요구하며 1인시위를 벌인 이상욱 조합원기자회견에 따르면 이상욱 조합원은 지난 2008년 기아차 사측의 비정규직 대량해고를 염두에 둔 일방적인 전환배치에 항의해 해고․구속까지 된 바 있으며, 작년엔 비정규직 조합원들에 대한 사측의 고소․고발과 임금 가압류에 맞서 양재동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수개월간 진행했다. 정규직이지만 ‘노동자는 하나다’ 하는 연대의 마음으로 비정규직 투쟁에 늘 함께 해온 것이다. 하지만 이상욱 조합원은 또 다시 체포되었고, 이번에는 어이없게도 ‘1인 시위’를 했다는 게 그 사유였다.

경찰은 1인 시위를 했을 뿐인 이상욱 조합원에게 집시법 위반을 들먹였다. 하지만 현행 법률에서도 집회와 시위는 2인 이상을 말해 1인 시위는 애당초 집시법의 적용을 받지 않을 뿐더러 ‘20m 이상 떨어진 장소는 동일 장소로 보지 않는다’는 규정에 따라 여러 사람이라도 20m 이상의 간격만 유지해 1인 시위를 하면 어떠한 법률적 제제도 받지 않는다.

그런데도 최근 경찰은 집시법을 확대 해석해 1인 시위에 대한 규제를 가하고 있다. 여러 사람이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거나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 1인 시위를 할 경우라도 피켓의 내용을 가지고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1인 시위를 가장한 집회 아니냐’는 식으로 억지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이상욱 조합원의 1인 시위를 가지고도 동일한 잣대로 ‘미신고 집회’를 했다고 추궁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는 것처럼 이번 체포는 명백히 공권력의 표적수사에 따른 것이었다. 기아차 현장대책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윤주형 비정규직 조합원은 “현대기아 본사가 이상욱 조합원을 1인 시위를 이유로 직접 고소고발 했고, 검찰과 경찰이 나서 느닷없이 체포해 갔다”고 말했다. 공권력이 자본의 하수인 노릇을 자처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다행히 이상욱 조합원은 서초경찰서에 구금된 지 이틀 만에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미칠 파장은 결코 적지 않다. 자본의 입맛에 따라 공권력의 법집행이 언제든 자의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집회·시위의 자유는 말할 것도 없고 1인 시위와 같은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표현 수단까지 문제 삼았다는 점에서 민주적 기본권의 후퇴를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사건이 사노련 유죄판결, 자본주의연구회 국가보안법 적용 등 최근 공권력이 자행하고 있는 일련의 탄압 속에서 발생했다는 점은 공권력의 탄압 공세를 결코 좌시할 수 없게 하고 있다.

 

김성렬 (tjdfuf@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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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월호][국제]튀니지 봉기가 계속되다

  • 분류
    국제
  • 등록일
    2011/03/02 16:32
  • 수정일
    2011/04/08 16:43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2011년 2월2일
앤 탤벗(Ann Talbot)
출처 ; WSWS
번역 기사의 내용은 본지의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주] 
독재자 벤 알리를 몰아낸 튀니지 혁명은 지금 전세계로 퍼지고 있는 중동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튀니지 혁명은 이집트로 이어졌고, 18일 간의 치열한 시위 끝에 독재자 무바라크는 사임했다. 무바라크 사임 이후에도 이집트에서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시위는 이어지고 있다.
이집트 바로 옆 나라인 리비아에서도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리비아 정부는 용병을 써서 시위 참여자와 부상자를 공격했다. 하지만 이런 탄압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이어졌고 독재자 카다피 피신설이 나오기도 했다. 바레인, 예멘, 이란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는 소식과 잔혹한 시위 진압 소식이 잇따랐다. 심지어 중국에서도 다시 민주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튀니지 시위 역시 지속되고 있다. 2월20일에는 수도 튀니스에서 3,000명이 과도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이에 벤 알리 퇴진 이후 튀니지 상황과 튀니지를 둘러싼 열강들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글을 번역해 싣는다.


벤 알리 정권의 인사를 내각에서 제외하겠다는 정부의 개각 발표 이후, 거리에서의 시위는 잦아들었지만 튀니지에서의 봉기는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 봉기는 점점 더 노동계급적 성격을 띄고 있다.
비공인파업이 국영산업과 정부부처, 호텔에서 터져 나왔다.
튀니지 공항을 멈춘 최근의 파업에서 항공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이 파업은 노조의 어떠한 공식적인 준비 없이 갑자기 터져 나왔다. 회사 이사인 몬타싸르 왈리(Montassar Wali)는 이번 주에 특별한 이유 없이 사임했다.
튀니지 텔레콤 노동자들 역시 파업에 돌입했다. 그들은 파리 증권거래소(Paris Bourse)에 회사를 상장하려는 계획에 반대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일반 노동자와 경영진 사이의 임금격차를 줄일 것을 원하고 있다.
적어도 대형 호텔 한 군데에서는 직원들이 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들은 관리자의 사임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고등교육부의 직원들은 항의파업에 들어갔다.
새로운 내각은 화요일에 회의를 열어 안보 상황에 대해 논의하고 통행금지령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정부 대변인은 “현재 정국이 아직 안정화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최근 범죄조직의 소행이나 기존 정권의 조직적 시도로 추측되는 약탈행위들이 많이 발생했다. 이러한 시도는 사람들 사이에 공포감을 조성하여 군대가 봉기를 제압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화요일(1월 25일)에는 청년 패거리들이 수도 튀니스 근교의 부유한 동네인 카르타고에 나타나 학교를 공격했다. 군은 그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그들 머리 위로 총을 쏘았다. 이 사건은 월요일, 카쎄린(Kasserine)에서 공공건물들을 마구 뒤지고 약탈한 사건에 이어 발생한 것이었다. 튀니지 노동총연맹(UGTT, General Union of Tunisian Workers)의 지역 지부 임원은 책임을 져야할 사람들이 예전 집권 여당인 입헌민주연합당(RCD) 의 당원임을 확인했다.
월요일 밤에는 방화범들이 가베스 시의 유대교 회당에 불을 질렀다. 토요일에는 청년 패거리들이 광란에 휩싸여 튀니스 시를 가로지르며 페미니스트들의 집회를 풍비박산을 냈다. 나무막대기와 칼로 무장한 지역의 소규모 가게 주인들이 그들을 내쫓았다.
입헌민주연합당 지지자들이 이렇게 도발할 수 있는 것은 아직 노동자와 농촌의 빈곤층이 튀니지 봉기에서 독립적인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토요일(1월29일), 남부 튀니지의 가스파(Gasfa) 지역의 엘 기타르(El-Guettar)에서 21세의 아이만 벤 벨라카셈(Aymen Ben Belgacem)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이 인산염 광산 지역에 만연한 억압과, 실업, 빈곤이 그가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하도록 내몰았다. 그는 튀니스의 병원으로 옮겨졌고 병원에서 그는 매우 위태로운 상태였다. 절망으로 인한 그런 행동이 소위 자스민 혁명 이후에도 반복되었다는 사실은 어떠한 진정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진보도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임시정부는 벤 알리 정권 당시 수상이었던 모하메드 간누치(Mohammed Ghannouchi)를 수장으로 하고 있다. 간누치는 벤 알리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 너무 공공연히 알려진 몇몇 장관들을 마지못해 경질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경질된 인물에는 외무부 장관인 카멜 모르잔(Kamel Morjane)과 같은 사람이 있다. 하지만 개편된 간누치의 내각이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발생한 폭력적 사태 중 몇몇이 구(舊)정권 요인이 벌인 일이라고 해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군 경찰 비밀경찰 등 벤 알리가 의존한 안보 기관 모두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안 기관을 해체하려는 시도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반대 인사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을 재판에 회부하려는 시도 역시 없었다.
UN은 봉기과정에서 최소 219명이 사망하고 이에 더해 510명의 사람이 부상당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교도소에서만 72명이 사망하였고 그 중 48명은 모나스티르(Monastir) 교도소에서 사망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UN의 조사는 현재 진행 중이며 사망자 수는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사회에서의 체면 때문에 벤 알리의 재산에 대한 동결과 몰수가 시도되었다. 그의 조카 중 한 명이 소유한 비행기는 프랑스의 르 부흐줴(Le Bourget) 공항에서 몰수되었다. 스위스 당국 역시 비행기를 몰수했다. 유럽 장관들은 벤 알리와 아내인 레일라 트라벨시의 재산을 동결하는데 합의했다. 그러나 벤 알리 부부는 튀니지 중앙은행에서 빼간 5천 6백만 달러(한화 670억) 상당의 금괴 1.5톤으로 호화로운 망명생활을 즐기고 있다. 벤 알리 일가의 총 재산은 100억에서 120억 달러로 추측되며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다. 벤 알리 일가의 재산에는 호텔 체인, 제약회사, 자동차 공장, 참치 어업, 통신회사, 은행, 보험회사의 지분이 포함되어 있다. 벤 알리 일가는 튀니지 경제의 30~40%를 좌지우지 한다고 여겨진다.
벤 알리 가문 구성원 30명은 체포되었으며 그들이 국외로 밀반출 하려고 하던 귀중품들은 회수되었다. 그러나 벤 알리가 권좌에 있던 23년 동안 그와 그의 가문이 튀니지에서 부정하게 취득한 재산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프랑스와 스위스를 비롯한 다른 국가들의 입장발표는 형식적인 것이었다. 이는 수년간 벤 알리와 같이 행동해 온 다른 국가의 정부들이 뒤늦게 몰락하는 독재자와 거리를 두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강대국들은 이전 동맹자인 벤 알리와 서둘러 거리를 두는 한편 임시 정부를 공고히 하는 데 열의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조급함과 열의는 튀니지 봉기의 반향이 이집트, 요르단을 비롯한 다른 곳으로 지속적으로 확산되는 것에 대한 강대국의 우려를 보여준다.
내각 인사 개편과 개혁에 대한 빈껍데기뿐인 약속을 제시하는 것은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지배층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봉기에 대해 공통으로 보이는 대응 방식이다. 이와 동시에 그들은 억압적 군대와 지식인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들은 대중의 경제적 필요나 민주적 요구에 부응할 수가 없다. 그들이 도입한 자유 시장을 위한 조치들은 지배 엘리트의 구성원들을 더욱 부유하게 만들고, 다수의 사람들을 더욱 빈곤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배 계급의 부를 필연적으로 위협할 것이다. 또한 지배층의 사유화 계획을 지지하고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투자기회를 이용해왔던 전 세계의 자본가 계급 역시 위협할 것이다. 튀니지의 독재자가 재산을 비축해 놓았던 은행들은 그 재산이 어디서 나왔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벤 알리 일가뿐만이 아니라 세계적 금융 귀족들 역시 튀니지에서의 약탈을 통해 이익을 얻어왔다.
튀니지의 노동계급과 농촌 빈민층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일국적인 해답은 없다. 벤 알리와 남아있는 나머지 튀니지 자본가들은 국제 금융 자본을 대변하고 있으며, 서구 정부들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정권을 재건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국가 통합을 호소하고 있는 튀니지 노동총연맹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노동총연맹은 이미 교사들을 일터로 돌려보내는 데 성공했고 다른 경제 분야에서 터져 나오는 파업을 가능한 한 신속하게 잠재우려고 시도할 것이다. 노동총연맹이 계속해서 국가 통합의 화신이라고 칭찬하는 군대와 마찬가지로 튀니지 노동총연맹 역시 구체제의 일부다.
튀니지 봉기가 계속된다면 노동자는 그들 자신의 정치적 전망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전망은 국제적인 것이어야만 한다. 그들은 군대나 현존하는 정당에 기댈 수 없다. 비록 이전에 불법이었던 정당이 간누치 수상의 임시정부와 급속히 화해모드에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 정당들은 국가의 민주주의적 외양을 선전하면서 공식적 야당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는데 관심을 쏟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선전하는 국가란 빈부 격차가 여전히 심각하며 벤 알리의 후계자가 계속해서 다수의 희생으로부터 이윤을 얻고 있는 국가일 것이다.

 

번역│정지원 (jeewon@jinbo.net)


 

벤 알리는 누구인가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는 튀니지의 정치인이자 군인, 장군이다. 1987년 이전에는 하비브 부르기바 정권에서 짧은 기간 동안 수상을 역임했으며, 무혈 쿠데타로 1987년 11월7일,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2011년, 높은 실업률과 물가 상승에 의한 정권퇴진 운동으로 대통령직을 사퇴,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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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월호][정치]최근 사노위 내부 논쟁에 대한 사노위 회원과의 인터뷰

  • 분류
    정치
  • 등록일
    2011/03/02 16:19
  • 수정일
    2011/03/02 16:21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 공동실천위원회(이하  ‘사노위’)가 출범한지  7개월이 넘었다. 그동안 1기 지도부가 사퇴하고 비상대책위가 꾸려졌다거나 내부에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간간이 흘러나왔고, 작년 12월에는 < 참세상>에 비대위 구성과  내부논쟁에 대한 기사가 올라와 자세한 사정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사노위는 2월9일 홈페이지(http://swc.jinbo.net)를 통해 지난 달 15~16일 개최된 총회에서  2기 지도부를 새로 선출했다고 밝혔지만, 그동안의 논쟁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소개하지 않았다. 사노신은 사노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강산 활동가를 만나 그 동안 진행된 사노위 내부의 논쟁과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사노위 서울지역 회원이고, 이전에 강령기초위원회와 격주간 정치신문 편집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의견그룹의 일원이다.

 

의견그룹의 일원이라고 하셨는데 사노위 내에 의견그룹이 존재하는가
의견그룹은 그동안 사노위 내에 조직문제를 둘러싼 논쟁과정에서 형성된 공동의 인식과 과제를 가지고 형성되었고 아직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사노위는 서클운동을 넘어서서 공동의 정치원칙 아래 단일한 혁명정당을 추진하고자 결속한 조직이다. 그 주요과제(목표)는 강령·전술·조직·원칙을 확립하고 또한 노동자계급의 최선진부분을 이러한 운동으로 이끌어내어 혁명정당(사회주의노동자당) 추진위 건설이라는 다음 ‘단계’의 운동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따라서 공동의 강령·전술 방침이 집단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 조직규율의 확립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그런데 지난 7개월 간 사노위 활동은 이 문제에 대한 혼동과 대립을 낳았다.

 

어떤 혼동과 대립이었는가
문제는 민주적 집중주의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 또는 오해에서 출발한다. 사노위 출범 이후 첫 번째 중앙위원회에서 조직의 회원자격을 확정하는 문제가 등장했다. 당시 기존 회원에 더해 앞으로 새로 가입하려는 이들에 대해서만 가입원서를 제출, 작성하자는 안이 제기되었는데, 중앙위는 그 안은 바람직하지 않고 모든 성원이 가입원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도록 하자고 결정했다. 이러한 논의가 제기된 배경에는 사노위 출범 당시 회원자격을 확정하는 데 불분명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사노위를 구성하기로 한 세 개의 주요 단체(그룹)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멤버십’을 갖춘 동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개인(무소속)적으로 참여의사를 밝힌 이들이 함께 창립총회를 열고 조직(사노위)은 성립되었다.
그런데 기존 각 조직의 멤버십을 확정하는 것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창립총회 이후 다시 새롭게 멤버십을 확정하는 건 필연이었다고 본다. 이를테면 총회를 통해서 중앙기구를 결성하고 그로부터 지역조직을 형성해나갔는데, 그 회원자격이 불분명한 부분들이 드러난 것이다. 때문에 중앙위에서 가입원서를 전체적으로 작성하자는 결정이 나온 것이고, 이는 조직 결성 최초의 시기에 어느 정도 불분명했던 회원자격을 명확히 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결정에 따라서 회원들은 가입원서 작성이라는 의무를 이행해나가기 시작했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몇몇 개개인들과 특정지역에서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사보타주를 시작하면서 발생했다. 그래서 가입원서 작성에 대해 중앙결정을 이행하라고 거듭 촉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행하지 않았고, 그 지역위원회는 그 사람에 대한 제재를 중앙위에 요청했다.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다툼이 있다가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른 후 중앙위원회에서는 가입원서 작성이 필요하다는 결정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것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징계나 제재는 ‘현 사노위의 조직 단계에서는’ 적절하지 않다는 결정을 내렸다.

 

제재의 내용은 무엇이었나
한마디로 가입원서를 작성할 때까지 회원의 자격을 정지한다는 것이었다. 이게 징계냐 뭐냐  논란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 회원자격을 확정하는 것 이외에 가입원서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고 본다. 그게 안 되면 회원이 아직 아니고 가입원서를 작성하는 순간 권리를 부여하면 된다고 본다.
그런데 가입원서 작성 이전에 조직이 성립하였고 이미 회원 자격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었지 않느냐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설령 이미 회원으로서 다시 가입원서를 쓰자는 그런 결정이 아주 우스꽝스럽고 합리적이지 않아 보였다면, 더 나아가 불필요한 관료적 조치라고 생각되었다면, 그 결정을 바꾸기 위한 투쟁을 수행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 사노위 회원들은 결정된 방침을 사보타주하면서도 이러한 투쟁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나아가 가장 큰 문제는 조직의 지도부라는 중앙위 다수가 이런 사보타주에 대해서 맞서 싸우거나 이행을 촉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이 내린 결정의 유효성을 스스로 부정해 버리는 행위를, 즉 원래의 결정에 대해 스스로 조직적 구속력이 없는 것으로 선언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혁명가의 조직에 필수적인 민주적 집중주의의 원칙을 파괴한 것이다. 중앙위는 총회 이외에 가장 높은 결의권과 집행권을 지닌 기관이었는데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스스로 훼손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투쟁이 불가피했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사노위 내에서 지난 몇 달 동안 논쟁과 투쟁이 있어 왔다. 이 과정에서 조직의 잘못된 경향을 바로잡고 규율을 올바로 세워내고자 하는 이들이 단일하게 결속하기 시작했다.
의견그룹은 그렇게 형성된 것이고 조직문제 뿐 아니라, 사노위의 7개월 활동에 대한 평가와 사노위가 설정했던 목표인 혁명정당 추진체로 가기 위해 어떠한 플랜과 방침을 갖고 갈 것인가를 토론하고 공동의 안을 마련하여 2차 총회에서 단일한 대오로 투쟁하게 되었다.

 

사노위 결성당시 회원자격에 대한 규정은 어떻게 되어 있었나
가입의 절차와 방식이 회칙에 명확히 제시되어 있진 않지만, 회원의 권리와 자격은 규정되어 있다. 사노위의 11가지 정치원칙에 대한 동의와 소정의 의무와 권리를 가지도록 되어 있다.

아무리 준비단계라고 해도 어떤 입장에 대한 동의성을 표현하고 그에 따른 권리와 자격이 있다면 하나의 조직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회원가입서는 일종의 자기결의를 밝히는 것이고 조직성원이 되는 과정에서 당연한 것으로 보는데, 그에 대한 거부 의사는 말씀처럼 그냥 회원을 안 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 것이 되지 않았다는 것인가
그렇다. 심지어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 이행을 촉구하고 강제하는 것을, 마치 반동적인 국가가 국민에게 따를 수 없는 의무를 부과하는 데 저항하는 것처럼 ‘징계를 하려면 나도 하라’면서 이를 감싸고돌기도 하였다. 이는 사노위 내 특정 경향이 오랫동안 갖고 있는 가족주의 문제 또한 드러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문제가 중요한 것은 지금은 비록 가입원서 작성과 같은 일견 사소해 보이는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노위가 만일 사회주의 조직으로서 강령·전술·조직 원칙의 가장 선차적인 필수 과제를 확립하고 그것을 당적 실천으로 이끌어 가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추구하는 조직이라면, 사노위 회원들은 조직의 절차에 의해 결정한 방침에 따라 활동해야 한다는 원칙이 당연히 전제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결정에 대한 의무는 평회원이든, 중앙위원이든 모든 회원에게 똑같이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누구는 해도 되고 누구는 안 해도 되고 한다면 조직의 일체감은 전혀 형성될 수 없다.
지금의 이런 문제가 반복된다면 사노위는 결정된 조직적 방침에 대해서 회원들이 각자 알아서 하는 조직으로 생각될 수밖에 없다. 집단적인 실천을 담보해야 할 공동의 방침이 회원 개개인의 활동에 적용되지 않고 각자 ‘알아서’ 실천하는 조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강령문제가 아직 기초위원회 내부 토론에 멈추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보다 먼저 조직문제에 대한 내적인 투쟁의 필요성이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지면이 허락된다면 이에 대해 내가 제출했던 문건 중에 일부를 인용하고 싶다. “무엇보다 행동의 통일은 모든 구성원들이 상급 결정에 따라 의무를 이행하고 그것에 구속력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속으로부터 해방되어서 부문과 개인들의 자유를 주창한다면 단일한 조직은 성립될 수 없다. … 민주주의는 세론을 확정하기 위하여 광범위하고 활기찬 토론을 허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동지들은 “비판의 자유”를 이용하여 (집단적 결정에 근거한 행동의 통일을 전제로) 바로 이러한 결정에 대하여 자주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권리이자 의무이다. ‘중앙의’ 결정이 올바르지 않다면 이를 바로잡기 위한 부단한 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참여 분자들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우리는 중앙위원회 다수와 사보타주를 허용하려는 경향에 맞서 이러한 정신으로 투쟁해왔다.

 

가입원서 문제는 그렇게 결정된 것으로 마무리된 건가
중앙위가 (가입원서 작성이 필요하다는 결정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것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징계나 제제는 현 사노위의 조직 단계에서는 적절하지 않다는) 두 번째 결정을 내린 이후에도 논쟁이 지속되었다. 현재는 지난 2차 총회에서 모두 (기존에 작성한 이들을 제외하고)  가입원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가입원서 문제는 계기일 뿐 그 속에서 등장한 조직문제에 대한 보다 깊은 관점의 차이가 의견그룹이 형성된 근거인 것 같다
맞다. 향후 사노위 공동의 조직원칙은 규약초안으로 제출되고 토론될 예정이다. 그리고 이 ‘조직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다.


이런 견해의 차이들은 어디에서 기인한다고 보는가
이런 기본적인 부분에 대한 불일치는 더 깊게 보면 사노위의 특정 경향이 갖고 있는 뿌리 깊은 연방주의적·자율주의적인 조직관이 반영된 것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의견그룹은 첫째로 이런 경향 상의 문제를 치유하면서 조직적인 구심력·결속력을 강화하고 나아가 조직 내 민주주의, 즉 수동성을 넘어서 자발성의 강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두 번째로 5월 다가올 총회에서 이 조직이 당 추진위 건설로 나아가기 위한 과제를 통일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어떠한 조직적 태세가 필요하고 무엇을 자기과제로 삼아야 하는지 토의하고 단일한 방침, 그리고 지도부 구성안을 마련하여 지난 총회에서 공동으로 임했다. 총회에서 현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은 쟁점이 마치 ‘독재 대 민주주의’인 것처럼 제기했지만 그들이야말로 조직 내 수동성을 강화하고 노동자민주주의 정신을 흐려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인터뷰 모두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최근 튀니지, 이집트 등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란들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이 두 가지 사건은 혁명가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회주의자들의 객관적인 과제는 무엇인가 되돌아보게 하는 사건이었다. 사노위 내의 토론과 투쟁은 이런 과제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할 것인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야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최근 사노위 지도부의 모습은 그런 과제들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갖추고 투쟁해나가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사회주의자는 당연히 궁극적으로 세계혁명을 자신의 목표로 하고 현실운동에서도 국제주의에 기초해야하는데, 사노위는 튀니지와 이집트의 혁명에 대해 논평·성명·결의 혹은 캠페인을 하려고 하는 노력이 거의 없었다. 사회주의 정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하나의 사례로 치부하기엔 큰 문제이다. 그래서 아직도 혁명가의 조직원칙과 정치의 문제는 여전히 사노위 내부에서 투쟁해야할 문제일 수밖에 없다. 

 

‘불신’이 많으신 것 같다. 최근 사노위 신문에 이집트 혁명 기사를 게재하지 않았나
짧은 지면에 김강산 개인의 ‘부족한’ 글로 과제를 대체할 수는 없다. 그리고 ‘불신’은 당연히 있는데 그것은 조직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 1월15일 사노위 총회 결과 의견그룹의 안이 다수를 확보하는데 실패했다고 들었다
그렇다. 의견그룹은 총회에서 다수결 결정에 따라 패배했다. 지금 사노위는 출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조직구성원의 6분의1 정도가 권리정지된 회원들이고, 이들을 포함해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수가 지난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 또한 사노위의 고질적인 조직적 문제, 느슨하고 분산적이고 연방주의적 경향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비율상 6 대 4 정도의 열세로 패배했다. 하지만 의견그룹은 불과 2~3개월의 짧은 형성과 투쟁과정에 비해 강력한 결속력을 보여주었으며, 자신이 제시한 방침에 일정한 호소력을 가지고 세를 형성하는데 성공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의견그룹은 하나의 승리를 거두었다. 문제는 이에 기초해서 다음 단계로 어떻게 넘어가느냐 하는 것이다.

 

지난 총회에서 세 가지 강령 안의 초초안이 제출되었고 그 중 하나가 의견그룹의 안인 것으로 알고 있다. 사노위는 출범 당시부터 강령수립을 위한 논의를 기본 과제들 중 하나로 제시해 왔다. 향후 강령 토론에 대한 전망은 어떤가. 결국 조직문제의 차이는 강령적인 차이로 귀결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바로잡을 게 있다. 그동안 강령기초위원회의 토론과 활동결과 세 개의 초초안이 제출되었고 앞으로 3월 말까지 이에 대한 조직적 토론이 예정되어 있다. 좀 더 혁명적 안이라고 볼 수 있는 본인을 포함하여 양효식 등 5인이 제출한 안은 그 발의자 전원이 의견그룹의 구성원이긴 하지만 의견그룹의 단일한 안은 아니다.
이제 초초안이 제출되면 알겠지만, 총회에 제출된 세 개의 강령 초초안 가운데서 하나는 강령의 기본적인 구성요건을 올바로 갖추지 못했다. 나머지 하나는 이른바 “현존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사회성격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회피하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나 노동자혁명에 대한 전략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현실의 실천 문제에 있어서도 노동자권력 쟁취 전망을 위한 행동강령 대신 다양한 부분적인 요구들의 조합으로 나아갔다. 이는 명확히 기회주의 강령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의견그룹에서도 강령문제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진 적은 아직 없다. 결국 사노위의 핵심과제로 제시된 강령·전술·원칙의 확립에 있어 의견그룹이 이번에 보여준 결속력을 바탕으로 어떻게 강령 및 전술 문제에서도 단일한 대오를 구성하느냐가 향후 의견그룹의 핵심과제일 것이다. 이런 결속력·구심력의 확보를 통해 사노위의 목표로서 당추진위결성이라는 과제를 위한 정치활동을 주도적으로 함께 해 나가는 것 또한 의견그룹의 과제이다.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데 사노위 내부에서 강령에 대한 합의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거듭 말하지만 강령과 전술원칙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의견그룹이 어떻게 단일한 힘을 발휘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현재 주어진 강령 초초안들은 타협할 수 있다거나 화해할 수 있는 안들이 아니라고 본다. 사노위의 전망은 향후 강령을 위한 투쟁에서 그런 기회주의적인 요소들을 철저히 물리치고 혁명적 정치강령을 확립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달려있다.

사노위 매체를 통해서는 내부 논쟁들이 공개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의견그룹은 현 지도부에 지금까지 논쟁 과정을 공개할 것을 제기했으나 미루어오다 총회결과만 공개했다. 개인적으로는 조직 내 문제는 늘 공개되고 외향적으로 펼쳐져야 한다고 본다. 공개적인 투쟁, 토론이 있었다면 밖에서 이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와 억측은 바로 잡혀졌을 것이다. 사노위 입장에서 보아도 원칙과 정치를 확립해 나가는 과정이 밖으로 알려지고 노동자계급 속에서 토론되도록 하는 게 조직에 도움이 되면 되지 결코 해가 되진 않으리라고 본다. 전술·강령·조직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논쟁이 폐쇄적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노위 내 특정 경향은 이러한 공개적인 논쟁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런 논쟁을 공개적으로 하는 노력이나 매체도 부족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사노위 회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으나 기본적인 회원활동을 하고 있지 않는 한 사람이 논쟁과정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 공개적으로 논쟁과정을 희화화시키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이 회원의 오류를 바로잡고 공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모습이 사노위의 현 상태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해달라
사노신도 하나의 언론으로서만이 아니라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부분으로서 사노위 문제에 대해 주의 깊게 살피고 공동으로 대처할 문제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함께 했으면 한다. 사노신의 분투를 기원한다.

 

정리│이태영 (picollo@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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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월호][노동]홍대 농성장에서 만난 강현구씨 인터뷰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1/03/02 16:08
  • 수정일
    2011/03/02 16:08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본인 소개 부탁드린다
가톨릭 대학교 사회학과 강현구라고 한다.

 

홍대 투쟁 소식을 어떻게 접하게 되었나
처음에 같은 학교 다니는 친구가 청소 노동자와 관련한 서경지부에서 꾸린 학교별 회의체를 하고 있었다. 친구가 나가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말해주었다. “홍익대에서 170명 정도 해고되었다 같이 가자”고. 그 다음날 총장실 앞 점거하고 다음날 아침 7시에 홍대 와서 같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홍대 문제가 트위터에서 많이 이슈가 되었나
해고사실은 계속 회의체에 참여하신 분이 올렸고. 점거와 관련한 얘기는 실행 전에는 올리지 않았다.

 

동희오토 노동자들이 트위터에서 비정규직당을 만드는 등 동희오토 때부터 노동자 투쟁의 과정에서 트위터가 많이 사용된 것 같다
처음에는 트위터를 농성하신 분들이 직접 쓰진 않았고 연대 가신 분들이 현장 소식을 전달하는 것으로 사용했다. 사진을 찍어서 올린다든지. 동희오토 때부터 처음으로 농성하시는 분이 직접 쓰시기 시작했다. 동희오토 농성이 끝나고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 때 현대차 사장인가 노동부 장관인지가. ‘비정규직 임금 많이 받는다’라고 해서 농성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트위터를 통해서 월급 명세서를 찍어서 반박하면서 효과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번 홍대 투쟁에서는 특이하게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까지의 실천으로 많이 이어진 것 같다. 왜 홍대투쟁에서 그런 것이 가능했을까
사실 나도 궁금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랜드나 동희오토나 지지하는 여론은 있어도 적극적으로 연대물품을 보내는 경우는 드물었다. 아무래도 조합원분들이 나이대가 고령이시고 여성분들이 많으신 편이니까 일반 시민들이 자기 부모님이 겪으실만한 일이다 그렇게 느껴서 더 적극적인 듯하다.
동희오토나 현대자동차는 젊은 남성들이어서 그런 감수성을 못 느꼈는데. 부모님 같은 분이라 더 그런 감수성이 더 강해진 듯하다.
홍대 투쟁에서 연대의 흐름이 커진 것은 김여진 씨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홍대 흐름이 거세게 올 때 김여진 씨가 더 크게 만든 부분도 있기는 하다. 김여진 씨가 오기 전에도 일반 시민들이 연대물품을 보내주고 계셨다.
홍익대 총학의 말이 사안을 더 키운 부분도 있다. 외부세력 운운하니까 ‘그래, 우리 외부세력이다.’ 이러면서.

 

이러한 흐름이 홍대 투쟁 말고 다른 투쟁에도 하나의 흐름으로 퍼지는 것이 가능할 것 같은가
학교에서 청소노동자 관련해서 발제를 했다. 1학년 학부생에서 학과로 넘어가면서 ‘사회학은 이런 것이다’에 관한 미리배움터를 열었고 청소노동자 관련한 발제를 했는데 반응이 우호적이었다. 관심도 많고 뜨거웠다. ‘더 알고 싶다’, ‘더 알지 못해 아쉽다’는 말이 나왔다.
20대들이 탈 정치화되고 있다고 많이 우려하는데 대학 내에서 이런 사건이 터지니까 다른 대학에서도 우리 대학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인 것 같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는 것 같다. 홍익대가 잘 해결된다면 다른 대학에서도 노동자 조직화의 흐름이 일지 않을까. 댐 구멍이 하나 나면 물이 콸콸 흘러나오는 것처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더 많은 사람들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는 것 같다. 설령 인터넷 언론이라고 해도 직업기자고 어떻게든 현장의 목소리가 기자에게 걸러져서 언론사 가치관에 맞게 바뀌는데 트위터 같은 것을 통해서는 일반 시민들이 여과 없이 바로 의견을 올리니 현장과 가까워지는 듯하다.
그리고 속도가 매우 빠르다. 예전에는 인터넷 언론도 빠르다고 했는데 트위터는 현장에서 생생하게 라이브로 얘기가 나오니까 더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 닿는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달라
홍익대 문제가 사회적으로 얘기되고 하는 것이 좋긴 한데 걱정되는 건 어머님 아버님 문제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어머님 아버님이라는 말은 간접고용의 문제를 덮고 ‘부모님 같은 분을 건드리냐’는 전통적 가치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홍익대 투쟁이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비정규직의 문제, 간접고용의 문제에 대해 환기해서 사람들이 비정규직 투쟁에 더 관심을 갖고 사람들이 더 지지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인터뷰한 날 | 2월14일
정리 | 정지원 (jeewon@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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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월호][노동]홍대입구역에서 1인시위를 진행한 도우너씨 인터뷰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1/03/02 16:04
  • 수정일
    2011/03/02 16:05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사용자 삽입 이미지간단히 소개 부탁드린다
서양화과 졸업한지 2년 된 전업화가다. 생활비는 조금 조금씩 번다. 작업실에서 취미생을 가르치기도 하고 과외를 하기도 하고.

 

홍대 투쟁을 어떻게 처음 접하게 되었고 1인시위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사실 1월10일 정도까지는 그냥 뉴스기사로 ‘이런 일이 있었다더라’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트위터에 여기 홍대 미대 학생이 같이 청소노동자분들 초상화를 그릴 사람을 모집한다는 글을 올렸고, 그걸 친구가 이야기해줘서 “아 그럼 나도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초상화 그리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나도 뭔가 그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마침 1월1일부로 과외가 다 짤려서 시간이 많기도 했다. 그 친구를 통해서 청소노동자 아주머니들과 처음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초상화를 그려드리면서 조금씩 친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17일에 작업실에서 인터넷을 하는데 노컷뉴스 기사에서 오전에 기자회견을 하시던 청소노동자 아주머니들이 울고 계시는 사진을 보게 되었다. 초상화를 그려드렸던 분들도 배경에 보이는 것 같았다. 가슴이 매우 아팠고, 뭔가 이 사건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그날 저녁부터 1인시위를 시작했다.

 

1인시위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것이 있나
사실은 경찰이 한 번 왔었다. 아무래도 홍대 전철역 안에서 하다보니 역무원이 와서 자꾸 나가라고 했다. 자꾸 이러면 경찰을 부를거라고 했다. 괜한 마찰을 일으키기 싫어서 매번 지하상가 쪽으로 비켜주었으나 하루는 화가 나서 “1인시위는 집회가 아니기 때문에 집시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경찰이 와도 잡아갈 수 없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역무원이 정말 경찰을 불렀다. 그 역무원은 경찰이 이걸 잡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경찰은 이미 잡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주민신고가 들어왔는데 좀 혐오스럽다고 한다. 자리를 비켜줄 의향이 없느냐?”고 권유를 했다. 나는 “비켜줄 의향이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잘 마무리되었다.

 

다른 투쟁에 비해 홍대 투쟁에서는 온라인 활동도 활발했지만 온라인에서 투쟁을 알게 된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의 실천도 활발히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나도 사실 좀 의외다. 나 자신도 왜 이 사건에 이렇게 끌렸을까 잘 모르겠다. 그냥 개인적으로는 홍대가 미대가 유명하니까 같은 미대생으로서 좀 더 가깝게 느껴진 거 같고 (미대에는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데 대학 다닐 때 쓰레기를 마구 버렸던 게 생각이 나면서 청소노동자분들께 죄송스러웠다), 홍대 이 주변이 좋은 카페나 공연장도 많고 젊은 분위기여서 그런지, 홍대로 모이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 것 같다. 사실은 내가 작년에 과외하던 집이 양재IC 근처라서 과외를 오갈 때마다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사람들이 데모하는 게 보이곤 했었다. 그런데 그때는 왠지 분위기가 아저씨들이 좀 무섭기도 하고, 양재IC 사거리가 황량하기도 해서 혼자서는 절대 근처에 구경도 못갈 것 같은 삭막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농성장에 여성분들도 많아서 그런지 아기자기하고 편한 분위기가 있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발길을 끄는 것 같다.
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김여진 씨의 역할이 큰 것 같다. 스크린의 꽃이라 불리는 여배우가 이런 사안에 뛰어든다는게, 언뜻 딱딱해 보일 수 있는 이번 사건의 전체적인 인상을 유화시켜준 것 같다. 그래서 노동운동에 대한 젊은 사람들의 거부감이 줄어들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분이 트위터를 열심히 하시면서 ‘날라리 외부세력’이라는 자발적인 모임을 만들어 20∼30대 젊은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신 것이, 젊은 트위터리안들을 현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른 노동자들의 투쟁도 트위터를 통해서 접해본 적이 있나

트위터를 시작한 게 길지 않아서 많이 접하진 못했었는데 ‘모닝’ 만드시는 동희오토 분들 이야기는 한 번 접했었다. 그러나 그냥 한 번 글을 읽고 마는 정도였지 내가 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처음 이 홍대 사건을 접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홍대 미대 학생이 같은 미대생으로서 사람을 모집했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 학생이 아니었으면 나는 다른 투쟁과 마찬가지로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을 것 같다.

 

기존에 운동단체에서 주최하는 집회, 투쟁에 연대해본 적 있나
그냥 재작년에 그 FTA 반대하던 촛불집회, 광화문 사거리에 명박산성 쌓고 그럴 때 대학 친구들이랑 갔던 것 정도이다. 그런 종류의 대규모 집회가 있다고 하면 가끔 아는 친구들이랑 개인적으로 가곤 한다. 어떤 운동단체가 주최하고 여기 주최가 어딘지 그런 걸 잘 알진 못한다.


예전에 참여한 집회와 홍대 집회와 다른 느낌이 있나
어쨌든 내가 여길 참여하는 방식이 기존 집회를 참여했던 방식과 달라서 느낌은 많이 다르다. 청소노동자분들과 안면이 있다보니 도우너 옷 입고 집회 있을 때 참여하거나 점거농성중인 문헌관에 찾아가면 매우 반겨주시고 좋아해주신다. 이럴때면 참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찾아오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는 문화 콘텐츠랄까 시각적인 콘텐츠가 많은 것 같다. 정문에 옷 같은 것(홍대 정문에는 청소노동자들의 작업복을 걸어놓은 설치미술품이 있다)도 걸려있고, 조선일보 광고에 썼던 일러스트도 그렇고, 문헌관 이곳저곳에 미대생들이 만들어놓은 작품도 그렇고, 하고자 하는 얘기를 글 외에 시각적으로 보여주려는 노력이 많은 것이 다른 집회랑 다른 분위기인 것 같다.

 

연대하면서 노동운동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게 바뀌었나
사실 내가 기존 노동운동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이 곳이 분위기가 가족적이고 문화적인 것 같긴 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판단도 상황이 끝나야 제대로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이 농성이 안 좋게 끝나면 ‘아 내가 그때 왜 이렇게 설렁설렁 했지? 좀 더 과격하게 했어야 하는 것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제는 집회가 끝나고 다같이 다음 아고라에서 받은 10,000명 지지서명문을 행정실에 전달하러 갔었는데, 행정실 문은 잠겨 있고 교직원 한명이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조합원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었다. 이 와중에 약간 시비가 붙었는데 홍대 농성장에서 언성이 높아지는 걸 처음 보게 되었다. 나는 좀 울컥하면서 ‘아, 이게 그냥 적당히 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구나. 내가 좀 안일하게 생각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홍대의 지금 이 분위기가 무조건 좋다고 평가하긴 아직 어려울 것 같다. 결국은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승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투쟁에 트위터가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
나는 현재로서는 트위터는 매우 훌륭한 매체라고 생각한다. 포털사이트와 같은 공급자 중심의 어플리케이션이 아닌 사용자 중심의 어플리케이션으로, 정보의 검열이 적고, 점조직적이고 열린 관계를 통해서 정보가 신속하고 빠르게 전파된다. 이번 홍대 사건도 상황이 일어난 초기부터 전 과정이 실시간으로 트위터를 통해 알려졌고,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했다. 그리고 자발적인 참여인을 만들었다. 이는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며 상황이 급격하게 변화함에 따라서는 많은 사람들을 현장으로 모이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터뷰한 날 | 2월1일
정리 | 정지원 (jeewon@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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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월호][경제]물가는 오르고 양극화는 심해지다

  • 분류
    경제
  • 등록일
    2011/03/02 16:02
  • 수정일
    2011/03/02 16:08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새해 들어 물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설 연휴가 끝난 뒤에도 물가상승은 계속됐다. 15일 기준으로 돼지고기 가격은 지난해보다 80.7%나 올랐다. 닭고기 가격도 50%가 올랐다. 밀의 경우 30% 넘는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서울우유는 다음달 1일부터 기업체에 공급하는 우유 가격을 최고 65.9% 인상하겠다고 밝혔다가 이에 대한 항의가 빗발쳐 4시간 만에  번복하기도 했다.

 

이상기후와 투기세력 

 

정부가 물가상승률을 3%로 억제하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월보다 4.1% 올랐다. 설 연휴가 끝난 뒤에도 물가는 진정되지 않았고 갈수록 심각해질 전망이다.
물가상승의 원인에 대해 부르주아 경제전문가들은 세계적인 이상한파와 홍수, 가뭄으로 작황이 부진해 농산물 공급이 줄어든 것을 들고 있다.

 

비상업용 순매수 포지션(non-commercial net long position)

 

순매수 포지션이란 선물옵션 거래 용어인데, 실수요에 바탕을 두지 않은 비상업용 순매수 포지션이 크면 헤지펀드 같은 투기성 자금이 많이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여기에 경기회복 속도가 빠른 신흥국을 중심으로 원자재와 식료품 수요가 늘어나면서 물가가 오르고 있다고 진단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달 식품가격지수가 전월보다 3.4%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1990년 관측을 처음 시작 뒤로 가장 높은 수치이다.
투기세력의 문제도 있다. 오랜 저금리 기조와 양적완화 정책으로 시장에는 자금이 넘쳐나고 있다. 이 자금들이 더 높은 수익을 찾아 상품시장으로 몰려 들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밀의 비상업용 순매수 포지션은 3만5천건으로 2007년 8월 이후 가장 많았다. 옥수수 역시 41만4천건으로 전보다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원유의 경우에는 지난달 11일 약 22만7천건으로 처음 통계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았다. 이렇게 투기 자본이 몰려들면서 물가 불안이 더 심해지고 있다.
이상기후나 투기세력 문제는 국가 차원에서 손 쓸 수 없는 문제들이다. 이 문제를 물가상승의 중요한 원인으로 얘기하는 이들이 대책으로 내놓는 것은 공공요금 인상 억제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물가상승폭을 줄이면서 나라 밖 사정이 진정될 때를 기다리자는 것이다.

 

정부대책은 가격억제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물가대책 역시 초기에는 공공요금 인상 억제가 핵심이었다. 지난달 13일 대책회의를 연 정부는 공공요금과 대학등록금 인상 억제 등을 해결책이라며 내놓았다. 그러나 공공요금 인상을 마냥 미룰 수는 없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상반기에 억누른 공공요금 인상이 풍선효과로 하반기에 터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굳이 하반기까지 갈 것도 없이 지난달부터 공공요금은 무서운 기세로 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만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달 도시가스 요금은 4.7% 올랐고, 상수도 요금은 0.9% 올랐다. 그 외 공공요금들도 모두 올라 평균적으로 0.9%가 올랐다. 4년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올해 안에 전기요금과 대중교통 요금을 인상하겠다는 계획도 발표되고 있다.
정부가 빼든 또다른 카드는 몇몇 독과점 기업에 가격인하 압력을 넣는 것이다. 정유, 통신, 유통업계 대기업들이 도마에 올랐다. 이명박은 기름값 발언을 지속적으로 흘리며 정유회사들에 가격 인하를 요구했다. 기획재정부 윤증현 장관은 “독과점산업인 정유와 통신사들이 국민을 상대로 막대한 이익을 냈다”며 가격인하를 촉구하고 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자신이 직접 기름값 원가 계산을 하겠다며 정유사에 으름장을 놓았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판매수수료 공개를 요구하며 대형 유통업체를 압박하고 있다.
정부의 이런 압력에 해당 기업들은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해당 산업 실정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가격인하만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압력의 강도를 계속 높이자 형식적으로 따르는 시늉을 보이고 있다. 정유회사인 SK이노베이션 구자영 사장은 지난 10일 “정부 방침을 중분히 이해한다”며 정부정책에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유통업체들 역시 몇몇 식료품 가격을 동결했다.
하지만 원가공개 요구에는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정부의 요구가 어디까지 먹힐지 의문이다. 정부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기업이윤을 대폭 축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는 이명박 정부이기에 그렇게 할 리 없기 때문이다. 물가안정을 위해 정부가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쇼를 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양적성장을 위한 고환율과 저금리

 

△2007년 이후 원달러 환율 그래프 변화. 이명박 취임 이후 급격하게 상승했다.

한편 물가상승의 원인을 작황부진과 같은 외부 요인에서 찾지 않고 이명박 정부의 고환율, 저금리 정책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던 당시 94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은 9개월 뒤인 11월 24일 1,500원 선을 넘어섰고 이듬해인 2009년 3월에는 1,575원에 이르렀다. 이후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평균적으로 1,200원대를 유지했다.
환율이 높으면 수출대기업은 가격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 남한 수출대기업들은 금융위기 기간동안 높은 실적을 거두며 경쟁기업을 물리쳤는데 이는 정부가 고환율 정책으로 뒷받침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와 서민들은 높은 물가를 감당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고환율로 석유와 같은 수입품 가격이 오르면서 국내 물가가 오르기 때문이다. 수출대기업 성장을 위해 국내 소비자를 희생시킨 것이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계속 동결한 것도 물가가 오르게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높은 수준을 보였지만 한국은행은 딱 한 번 금리를 올렸을 뿐이었다. 이는 정부의 입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릴 때마다 열석 발언권을 행사하며 한국은행에 압력을 넣었다.
소위 경제전문가라 불리는 이들 중 상당수는 금리 인상을 물가상승 억제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꼽는다. 여당인 한나라당에서도 고환율과 저금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는 경기위축을 우려하여 금리 인상을 최대한 막아 왔다. 그러나 물가상승이 심각한 수준인 지금 금리인상을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금리를 인상했던 한국은행은 이번 달에는 동결했다. 아직까지 정부는 물가상승보다 경기 둔화를 더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다음달에는 금리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부르주아 경제전문가들의 예측이다.
현재로선 물가안정을 위한 가장 확실한 대책은 금리인상이다. 단기적으로는 공공요금이나 가격인상을 억누르는 시늉을 하며 버티겠지만, 결국 금리인상 카드를 들고 나올 수밖에 없다. 금리가 오르면 부채를 진 가계의 이자 부담은 늘어난다. 집을 구하기 위해 또는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대출을 받았던 노동자와 서민들은 고통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노동자, 서민들에게 또 한번의 고통 분담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양극화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6.1%이다. 2002년 이후 가장 높다. 정부와 언론은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 회복에 성공했다며 떠들어댔다. 그러나 남한 경제가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동안 이 사회의 양극화는 점점 심해졌다. 경제 위기를 이유로 노동자들의 임금은 삭감되거나 동결됐다. 그 결과 지난해 소득증가율은 5.8%에 불과했다.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소득이 늘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소득이 늘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계층간 격차도 커지고 있다. 남한에서 중산층의 규모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또 저임금 근로자 비중은 25.6%로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다.
현재의 물가상승은 남한 뿐 아니라 신흥국 대부분이 겪고 있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나라에서 물가가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명박 정부 역시 GDP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강을 파고, 돈을 풀고, 달러를 사들였다. 이렇게 양적인 성장에만 몰두하느라 물가 문제에는 별다른 대비를 하지 않았다. 물가를 잡으려다 성장률을 떨어뜨릴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은 심각한 물가 불안 상황에 이르렀다.
부르주아 경제전문가들이 말하는 경제성장은 정확히 말해 가진 자들만의 성장이다. 일반 대중 모두에게 성과가 고루 돌아가지 않는다. 반면 물가상승으로 인한 고통은 저소득층일수록 더욱 심하게 겪는다. 정부가 자랑하는 6.1% 경제 성장, 2.9% 물가 상승은 가진 자들에게 부를 6.1% 더 안겨주고 저소득층에게 2.9%의 고통을 더 안겼다는 뜻일 뿐이다.

 

하수혁 (24hour@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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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월호][노동]노동자 투쟁에서도 트윗,트윗?! 홍익대 투쟁과 온라인을 통해 흐르는 연대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1/03/02 15:59
  • 수정일
    2011/03/02 15:59
  • 글쓴이
    사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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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2월20일, 홍익대 청소·시설·경비 노동자들은 50일간의 농성 끝에 신규 용역업체와의 잠정합의안을 가결했다. 용역업체와의 합의내용에는 ▲전원 고용승계 ▲일 8시간 근무 및 주 5일제 ▲시급 4,450원 ▲식대 월 5만원 ▲명절 상여금 5만원 ▲전임자 청소 1명과 경비 0.5명 ▲서경지부 집단교섭 단협안 준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
기존에 이들은 75만원의 저임금과 한 끼 밥값 300원으로 대표되는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일했다. 이러한 환경을 바꾸기 위해 홍익대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이로 인해 170여 명이 해고되었다. 2011년 1월1일, 학교가 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내쫓자 노동자들은 홍대의 본관에 해당하는 문헌관 1층에서 점거 농성을 시작했고 50일 간의 농성 투쟁 끝에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용역업체와 합의가 이루어진 지금까지도 학교는 여전히 원청사용자성을 부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조활동 역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홍익대학교는 청소·시설·경비 노동자들이 농성에 들어간 이후 책임을 회피하고 노조 탄압으로 일관했다. 홍익대분회 분회장과 서경지부 간부 등 7명을 건조물 침입, 감금 등의 혐의로 고소고발 했던 것이다. 이에 노조는 고소고발 취하, 교섭테이블 마련, 노조 인정 등을 요구해왔으나 용역업체와 타결한 지금도 학교는 고소고발 취하 요구와 공식 대화 테이블에 응하지 않고 있다. 비록 용역업체와 합의하고 현장으로 복귀하기는 하지만 학교와의 투쟁은 계속되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새로운 연대의 흐름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은 최근 몇 년간 여러 학교에서 벌어진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소속 대학은 달라도 이들의 노동조건은 거의 유사하다. 간접고용과 저임금에 맞서는 고령 여성노동자의 투쟁은 다른 대학의 투쟁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되었다. 원청사용자성을 극구 부인하려고 하는 모습도 유사하다. 그러나 홍익대 투쟁은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이 사안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의 연대 흐름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까지 온라인 공간에서의 활동은 주로 투쟁 주체가 준비하는 홍보활동이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러한 홍보에 반응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서명운동 동참 등 온라인에서의 활동에 한정된 것이었다. 오프라인에서의 실천에 참가하는 것은 주로 투쟁사업장 노동자, 민주노총 관련자, 각종 정치단체 성원들로 한정되었다. 하지만 홍익대 투쟁에서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의 연대는 수동적인 서명운동 수준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끊임없는 지원과 연대

이번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온라인, 특히 트위터를 통해 이 사안을 알게 된 사람들의 실천은 더욱 적극적인 것이었다. 농성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홍익대에는 여러 개인이 지지물품을 보내왔다. 밑반찬, 핫팩, 커피 믹스 등 다양한 물품후원과 투쟁기금 지원이 이어졌다. 심지어 2월6일에는 ‘이노케어시스템즈’라는 중소기업에서 RT(글을 퍼 날라서 자신을 팔로우 하는 사람이 읽을 수 있게 하는 기능) 10회 당 홍대 노동자들에게 충전식 손난로를 보내준다는 글을 올렸고, 두 시간도 안 돼 600개가 넘는 RT를 받았다. 바로 다음날 충전식 손난로 180개가 홍대 노동자들에게 전달되었다. 이러한 지원물품은 앞으로도 예정되어 있다. 외환은행노조에서도 RT 한 회마다 100원씩 적립하여 홍대에 투쟁기금으로 전달한다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후원을 넘어서는 실천도 이어지고 있다. 홍익대 농성장은 여러 대학의 학생들, 인근 주민들, 홍익대입구역 근처에서 투쟁하고 있는 두리반 사람들, 홍익대에 맞서 함께 싸우고 있는 성미산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꾸며놓은 플랜카드와 지지메세지로 가득하다.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을 안타깝게 여긴 몇몇 예술학과 학생들은 ‘데굴데굴’이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이들은 떡국 끓이기, 길거리 행진, 퍼포먼스 등의 활동을 펼쳤다. 전업화가인 도우너 씨는 홍대입구역에서 도우너 옷을 입고 홍익대 투쟁에 관심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농성이 시작된 지 얼마 안된 1월8일에는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이하 ‘날라리외부세력’)이라는 트위터 상의 모임이 꾸려져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조선일보에 홍대 노동자 문제 해결을 요청하는 광고를 내는가 하면 홍대 투쟁에 필요한 기금을 모으기 위해 ‘우당탕탕 바자회’를 열기도 했다. 설 연휴에는 홍대 노동자들에게 떡국을 대접하는 떡국 번개를 진행했고 트위터에서 농성장에 김치가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돌자 2월13일에는 농성에 꼭 필요한 김치를 담그는 ‘김장번개’를 진행하기도 했다. 2월17일에는 홍대 노동자들에게 김여진 씨가 출연하는 <아이들>이라는 영화를 보여주는 영화번개도 진행했다. 이러한 활동은 모두 트위터에서 모인 사람들의 자발적인 활동과 모금으로 가능했다.

 

트위터 연대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학교의 묵묵부답에도 불구하고 이런 연대에 힘입어 홍대투쟁은 힘 있게 진행되었다. 지난 2월15일에는 2000명이 모여 집회를 진행하고 홍익대 정문에서부터 농성장이 있는 문헌관까지 행진하기도 했다. 이 집회에는 노동조합이나 기존의 정치단체뿐만 아니라 날라리 외부세력과 홍익대 투쟁을 지지하는 개인들도 많이 참가하였다. 이렇게 온라인을 통해 모이게 된 사람들이 노동자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찾기 어려웠다. 이러한 움직임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왜 특히 홍익대 투쟁에서 이러한 연대가 가능했던 것인지에 대해 몇몇 참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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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월호][기고]1사1조직의 관료적 통제를 뚫고 투쟁하는 비정규노동자들과 연대를 강화하자!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1/03/02 15:43
  • 수정일
    2011/03/04 16:59
  • 글쓴이
    사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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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1조직의 관료적 통제를 뚫고 투쟁하는 비정규노동자들과 연대를 강화하자!

기아화성공장 사노신 독자모임 이상욱

 

2011년은 소수노조, 비정규직노조 고난의 시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법과 제도를 통한 파업권 통제


이명박 정권은 비정규직 확대하는 ‘고용전략2020’과 더불어 2011년 7월 1일 복수노조 허용 이후 교섭창구단일화를 무기로 노조무력화 공세를 취할 것이다. 교섭창구단일화가 되면 1)자율적으로 교섭창구단일화 2)단일화가 되지 않으면 과반수이상 노조로 교섭창구 단일화 3)과반수노조가 없을 때에는 조합원 수에 비례해서 공동교섭대표단 구성 4)조합원 수가 10% 미만 노조는 공동교섭대표단에서 제외. 소규모 노조는 설립되더라도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파업권)을 확보하기 어렵다.
개악된 노조법은 파업찬반투표 등 노조의 합법적 파업권 행사를 정부가 검열·통제하도록 하고 있다. 가뜩이나 무쟁의 등 전투성을 잃어가는 대공장 노조들은 조합원 이탈을 두려워하며 과반수노조, 10%이상 노조가 되기 위해 전투성을 버리고 개량을 택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 것이다. 대공장 정규직노조가 과거처럼 살쾡이파업 등의 비공인파업에 들어갈 가능성이 희박한 가운데 합법적 파업권을 획득하기 위해 대중추수적인 보수적 길을 선택하고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쟁의행위찬반투표를 해야 하는 현실이다.


민주노총-한국노총의 연대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이 당선된 후 민주노총 상층지도부는 환호했다고 한다. 한국노총 안에서 그나마 개혁파라고 평가되는 이용득 위원장의 당선은 향후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파기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에 민주노총과 공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는 표면적 이유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미조직·비정규직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에는 관심이 적은 듯하다. 일례로 삼성전자노동자들의 백혈병 등 산재로 인한 잇단 죽음으로 폭로되고 쟁점이 되는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투쟁조직화의 의지가 없어 보인다.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의 2차파업이 난항을 겪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어떤 계획도 나오고 있지 않다. 다만 그동안 민주노총의 기반이었던 대규모 사업장에서 과반수,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잃지 않는 것이 중대한 관심사가 되고 있고 산하 산별노조나 핵심 대규모 사업장의 눈치를 보는 실정이다. 금속노조나 공공운수노조(준)의 계획에 기반하고 있다는 하반기투쟁계획 이외에 상반기 투쟁계획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하반기에 파업이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금속노조의 시기집중식 15만 파업계획도 어용 집행부인 현대차 이경훈 집행부의 임단협 계획에 달려있을 뿐이다. 복수노조-창구단일화 시대에 ‘민주노조사수’ 구호로 포장된 이러한 민주노총의 대공장 기득권 위주의 관료적인 모습은 2011년 정세를 더욱 암울하게 만든다.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겐 대세에 굴종할 것인가, 아니면 독자적인 투쟁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힘든 선택에 놓이게 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투쟁 통제하는 1사1조직
복수노조-창구단일화 문제에서 이미 1사1조직으로 포섭 돼 버린 기아비정규직분회 같은 경우는 더욱 상황이 좋지 않을 수 있다. 자본의 구조조정에 맞선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저항이 정규직노조의 이익과 대립되면 어김없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배신해왔다.
출산휴가, 산재 등으로 인한 휴가자의 일을 임시 계약직이 대체하는 상황에서 사측의 공정 축소로 일자리를 잃은 정규직이 임시계약직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들어와 고용을 유지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러한 정규직 대의원의 노사합의를 노조 집행부가 비호해서 결국 임시 계약직이 쫓겨났다.
원청의 공사로 인한 휴무 때문에 비정규직만 피해를 본 경우도 있다. 1년 이상의 공사로 일을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다르게 임금손실 보전은커녕 다른 업체로 강제전환배치 당하는 상황에 놓였고, 그 다른 업체의 임시계약직은 결국 재계약에서 배제되어 해고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분회 집행부는 투쟁을 조`하기 보다는 다른 업체로 옮기더라도 임금손실이 없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면피하는 모습이었고 그 뒤에는 암묵적 동의를 하는 정규직 노조집행부가 있었다.
지금까지 분회집행부는 정규직노조의 반동적이며 기회주의적인 행태에 대해 이렇다 할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이 같은 태도는 동일한 현장조직이 배출한 집행부라는 정치적 문제뿐만 아니라, 1사1조직을 완성해야 한다는 입장에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소위 좌파 정규직집행부-우파 비정규직집행부처럼 다른 현장조직 출신 집행부가 있었던 상황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상층 집행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순적인 1사1조직 논리는 일선 비정규직대의원들의 인식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 비정규직현장의 간헐적인 투쟁분출을 스스로 막는 논리로 사용되고 있다.
대공장에서 노조민주주의는 내부에서부터 파괴되고 있다. 간헐적으로 분출되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저항도 정규직노조에 의해 통제당해 순식간에 불씨가 꺼져버리고 만다. 예산권, 파업권, 교섭권도 없는 사내하청분회는 정규직노조를 바라보며 더욱 완벽한 통합, 1사1조직의 완성만이 생존의 방법이라고 여기고 있다.
대의원대회도 노동자민주주의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최근 기아 대의원대회의 양상을 보면 노조활동의 최소한의 약속인 규약마저 지키지 않고 있다. 집행부건 대의원이건 자신들의 의도가 관철되게 하기 위해 억지를 쓰거나 대의원대회를 장기화시키는 관행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이런 모습을 처음 접하는 비정규직 대의원들은 한편으로는 실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급속하게 그런 관행에 융화되어 버리고 만다.

 

기아에서 추진되는 불법파견의 문제점

현대차 불파투쟁은 노동자투쟁의 촉발과 확대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순간순간 발휘되는 노동자의 창조성과 지도자들의 헌신과 노력이 불파투쟁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금속노조-기아차지부에서 추진되는 불파투쟁은 현대차 불파투쟁에서 보였던 그 어떤 긍정적인 요소도 발견할 수 없다. 이렇게 얘기하면 노조지도부는 활동가들이 열심히 현장을 조직하지 않아서 문제라고 반문하며 노조로 단결해야 한다고 할 것이 뻔하다. 무쟁의, 연대투쟁의 기각 등 자신의 모습에 대한 반성은 없고 자신들의 관료적, 기회주의적 모습을 숨기기 위해 대중들을 동원할 뿐인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진지하게 활동하는 계급적 활동가들조차도 기아차 불파투쟁에 불을 붙이기 위해 열심히 조직화해야 한다는 밑도 끝도 없는 논리에 휩싸여 있다. 이런 인식을 깨고 노조관료들과 명확히 차별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편리한 현실론으로 무장한 노조관료들에게 이용당할 뿐이다.

 

교섭에만 더욱 집중하게 만들 위험성
정권의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를 빌미로 한 파업권봉쇄, 노조무력화는 금속노조-기아차지부가 기획하는 불파투쟁에 영향을 그대로 미칠 수밖에 없다. 사내하청분회는 임단협 과정에서 원청사용자성을 주장하며 원청과의 교섭을 요청하고 있지만 진행 된 적이 없다. 하청바지사장단과 집단교섭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본질은 정규직노조에 의한 대리교섭이다.
이런 가운데 금속노조-기아차지부가 추진하는 불파투쟁은 비정규직조합원들의 자발성을 끌어내고자하는 계획이 전무한 가운데 2011년 임금협상과정에서 특별요구로 상정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교섭의제로 상정되어 임금협상기간이라는 쟁점기간을 통과하면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어느 정도 관심을 갖지 않겠냐는 단순한 발상이다.
불법파견 집단소송이 원활하게 추진되기 어려운 상황은 현대차의 법원판결-현장투쟁의 수순이 아니라 곧바로 교섭테이블로 이목이 집중될 가능성을 크게 만들고 있다.
 
1차 하청만을 위한 조합주의적 투쟁으로 변질될 위험성

사내하청 중심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은 비정규직보다 못한 수백만 명의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노동운동이 되어 사회적 고립을 자초할 수 있다. (하부영, <제2민주노조운동 들불> 1월25일)
 
1사1조직으로 포섭·통제되어 있는 사내하청노조의 처지에서 정권의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로 흔들리게 되는 상황을 맞이할 분회 집행부는 작년과 같은 행태를 충분히 반복할 수 있다. 정규직이 주선한 대리교섭에 더욱 의존하게 되는 상황은 필연코 사내하청노조의 조합주의를 강화한다. 1사1조직은 소수노조, 비정규직노조의 예측 불가능한 자발적인 투쟁을 통제하는 관료들의 좋은 통제장치 구실로 자리 잡게 된다.
우리는 구체적인 정세를 인식하지 못하고 ‘불파투쟁 승리’ + ‘민주노조 사수’ 구호에 휩싸여 비정규직운동의 전망을 잘못짚어서는 안 된다. 비정규직노동자를 외면하는 노조를 사수하고 2·3차 하청노동자를 외면하는 불법파견투쟁을 승리로 이끈다고 해서 비정규직운동의 전망이 밝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고 전진하기 위해서는 전투성을 회복하기 위한 중요한 방법으로서 비정규직현장의 노동자민주주의의 적용과 실현, 조합주의 관료들에 의해 포위, 통제당한 상황을 주체적으로 타개하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 비정규직노동자들 스스로의 연대와 소통 강화 등의 과제를 실천하기 위한 전망을 세울 필요가 있다.
사업장에 갇혀서 진행되는 불파투쟁은 명확한 한계를 지닌다. 사업장 울타리에 갇혀 연대투쟁도 외면하는 임단협 투쟁과 마찬가지로 조합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아에서도 불파투쟁 열심히 하자’는 막연한 구호로는 이런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

 

대공장 비정규직운동 전망은 어떻게 만들어 질 수 있을까

 

정규직노조의 무쟁의에 대항한 계급적 독자성
타임오프저지투쟁에서 기아차지부가 보여주었던 무쟁의라는 반노동자적인 모습이 올해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더욱이 올 하반기 지부임원선거를 앞두고 더더욱 전투성을 포기할 가능성이 큰 것이 사실이다. 선거를 앞두고 좌파대동단결의 구호가 또다시 나올 것은 빤 한 일이다.
시도 때도 없이 자본과의 타협을 일삼는 우파 민족주의자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어처구니없게도 무쟁의도 당당한 전술이라고 외치는 소위 좌파집행부의 틈바구니에서 계급적 독자성을 유지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업장 안에서 집행부라는 노조체계를 뛰어 넘어 정규직집행부의 무쟁의에 대항하기란 쉽지 않다. 작은 몇몇 업체의 투쟁이 정규직집행부의 무쟁의를 돌파할 수는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최근 각급 업체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강제전환배치, 유연화 탄압은 알려지지도 않고 있고 정보도 조직되지 않고 있다.
거꾸로 분회집행부는 현장의 투쟁 사안을 집중시키면서 지도력을 확대하는 것이 아닌, 물품 사업이나 조합원콘도사용권확대 등 복지사업과 교육위원·산안위원 등의 모집사업으로 조합원들의 관심 이반을 막기에 급급하다. 사측의 구조조정 탄압을 모아내고 이 탄압의 가장 큰 피해를 받는 임시계약직, 2·3차 하청노동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 활동들을 조직해내야 한다.

 

조합주의 편에 서지 않겠다는 비정규직노동자의 선언이 필요하다!
정권의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로 노조를 흔들면서 이에 노조 안에서는 집행부를 필두로 조합주의에 찌든 대동단결주의가 크게 성행할 것이다. 노조가 저항의 기운을 잃고 민주노조 정신을 배반할 때 사측은 구조조정의 칼을 들이밀 수 있다. 그동안 여러 눈치를 보며 뒤로 미뤄두었던 내부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결국 피해를 보는 건 앞의 예와 같이 비정규직, 그 중에서 임시·단기 계약직노동자들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분회조합원 중심, 1차 하청 중심의 불파투쟁은 2·3차 하청노동자, 임시 단기계약직 노동자, 지역 납품업체에서 파견직의 형태로 열악하게 노동하는 노동자들을 소외시킬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내하청분회마저 자기조합원 먼저 살리고 봐야 그나마 조직력을 유지하고 나중에 큰 일을 도모할 수 있을 것 아닌가라는 현실도피적인 모습에 빠진다면 대공장에서 비정규직운동은 결코 전망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수차례 임시계약직 노동자들을 배신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불파투쟁 기조는 또다시 그들을 배신하는 꼴이 될 것이다. 이렇게 계속 간다면 대공장에서 비정규직운동은 끝나고 말 것이다.

 

관료적 통제에 갇히지 않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연대와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홍대미화원노동자들, 학습지노동자, 삼성의 산재노동자 등 대규모 사업장 투쟁이 아닌 소규모 노조, 영세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들의 투쟁에 연대·지원하는데 소극적이다. 하급 산별노조나 대공장노조들의 연대투쟁 회피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타임오프투쟁전선에서 전국의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무쟁의로 배신한 기아차지부, 그리고 현대차 이경훈 어용 집행부의 연이은 무쟁의 횡보 예상 속에서 관료들과의 독자성을 확보하면서 연대투쟁을 모색하지 않으면 관료들의 반노동자적인 흐름에 갇힐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정규, 영세사업장노동자들과의 연대를 모색하고 시야가 공장울타리에 갇히지 않도록 강화되는 조합주의에 저항하는 활동을 펼쳐야 한다.

 

자기 조합원 위주의 조합주의를 극복하는 노력은 계급성을 유지할 때만 가능하다

정권의 개악된 노동법을 무기로 노조의 파업권을 정부에서 통제하는 시대가 왔다. 이를 기회로 작업장 깊숙이 구조조정 탄압을 진행할 것이고 방방곡곡 비정규노동자를 더욱 확대해나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노조사수만을 외치고 사업장 울타리 안으로 갇혀 머무른다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노조 관료들은 자신들의 입맛대로 위기를 사용할 것이다. 노조집행부는 자신의 위치를 지기키 위해 언제 어디서 분출될 지 모르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을 통제하기 위해 때로는 노련하게, 때로는 폭력적으로 통제해왔다.
우리는 당장에 정권의 탄압과 노조관료들의 통제를 뚫고 나갈 수 없다. 이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고 현실과 타협한다면 미래는 탄압에 저항 한 번 못하는 굴욕적인 비정규노동의 시대가 될 것이다. 여기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지금은 돌파구를 만들 때다. 현실론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무쟁의와 투쟁하는 노동자를 배신하는 행위를 비판하고 우리 스스로 연대의 망을 확대해야 한다.
자기 조합원위주의 조합주의를 극복하는 노력은 계급적 독자성을 유지할 때만 가능하다. 소수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고작 10%에 불과하다. 나머지 고통 받는 90%의 노동자를 대변하는 투쟁을 할 때 정권과 자본, 노조관료들의 장벽을 뚫고 전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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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월호][기고]철폐하자, 간접고용! 기아공장에서도 본격적인 대응을!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1/03/02 15:37
  • 수정일
    2011/03/04 16:58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철폐하자, 간접고용! 하청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기아공장에서도 본격적인 대응을!
기아화성공장 단결노동자회 이준영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은 두 가지 의미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탄압과 착취와 차별에 신음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착취공장, 절망공장을 멈추고 노예가 아니라 당당하게 공장의 진정한 주인임을, 역사의 주인이자 희망공장임을 선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이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은 피와 눈물을 먹고 처절하게 투쟁해온 전체 비정규직 투쟁의 역사 위에 굳건하게 서 있다는 점에서 또한 ‘역사’적이다.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의 파업투쟁은 직접적으로 정규직화가 목표이다. 그러나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의 투쟁의 의미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의 투쟁에 대해 자신의 문제처럼 승리를 염원하고 있다.
이 투쟁은 파견과 하청제도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자본에 대항한 투쟁이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투쟁이 아니라 비정규직 착취제도를 통해 노동자 내부를 분열시키고, 결국 정규직의 임금과 노동조건, 고용도 악화시키는 총자본의 착취전략에 파열구를 내는 투쟁이다.
이 투쟁의 계기가 된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은 사법부의 시혜가 아니라 기륭, 동희오토, GM대우, 학습지, 화물, 건설 등 비정규직 동지들의 장기간에 걸친 피눈물 나는 투쟁 때문에 가능했다. 또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장점거 파업투쟁은 기아차 비정규직 동지들의 공장점거 파업투쟁의 기초 위에 굳건하게 서 있다.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은 이러한 비정규직 투쟁의 계승자이고, 기간투쟁의 한계를 넘어서서 대중적 투쟁으로 진행되고 있다.
비정규직 노예제도 철폐를 내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투쟁이 아니라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절한 요구와 염원을 안고 진행되는 투쟁이다. 더 나아가 이 투쟁은 비정규직, 정규직 가릴 것 없는 전체 노동자들의 투쟁이기도 하다. 대법원 판결을 기점으로 활력을 받고 있는 ‘정규직화 투쟁’, ‘간접고용 철폐투쟁’은 침체된 기아공장의 비정규직투쟁에 새로운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단지 기아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넘어, 강력한 투쟁을 점화하자!
 
당장 고민해야할 것들

전국 대공장 비정규직 투쟁의 두 축을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과 기아차 비정규직 투쟁으로 본다면, 현장주체들의 여건, 현장조건 등의 이유로 인해 2006년 이외엔 공동투쟁의 호흡이 맞지 않고 있다. 기아차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원청사용자성 쟁취투쟁,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투쟁은 시기적 일치성이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투쟁 역시 기아차 비정규직 투쟁과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의 호흡이 당장에는 맞지 않고 있다.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울산 1공장 점거파업을 위시한 현대차 비정규직투쟁을 두고 ‘당장의 투쟁’과 ‘장기적 투쟁’을 병행하고, 결국 일치시켜 나가는 계획과 결의를 다져야 한다.
현대차 비정규직투쟁이 패배한다면 기아공장에서 단기적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도 정규직화 투쟁은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투쟁은 연대 차원이 아니라 기아공장의 투쟁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우선 분회-지회-지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찾아서 모색해야 한다. 기아공장에 있어 정규직화 투쟁은 ‘당장의 투쟁’인 현대자동차 비정규직투쟁을 어떻게 지지, 엄호, 연대하고 공동투쟁을 성사시킬 것인지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선 3개 분회 토론회를 통해 해당 주체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간접고용 철폐! 직접고용 쟁취! 투쟁의 계획과 결의를 완성해야 한다.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사내하청분회는 공조직이나, 토론과 결의의 주체는 체계적 틀로 국한되는 의결단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능동적으로 토론의 과정과 내용공유를 통해 관심과 열의가 있는 원·하청노동자들의 참여 속에 함께 완성되는 것이 향후 투쟁의 앞날을 밝혀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해당 주체단위인 ‘분회 중심’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속노조 혹은 기아자동차지부에서 결정하는 것을 수임하는 정도로는 해당 주체인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수동적이고 종속적인 한계 안에 불파투쟁을 가두어버릴 뿐이다. 따라서 주체인 비정규직노동자 스스로의 방향과 결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부, 나아가 금속노조에 기아자동차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계획, 방향, 부단한 실천을 확고하게 전달해 나가는 결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기아자동차와 현대자동차의 차이

무엇보다 청원식·종속적인 관점을 청산해야 한다. 사내하청분회는 당사자의 부단한 실천과 힘이 담보되지 않을 때, 자본은 물론이요 지부-지회도 (누가 집행부를 잡고 있든 상관없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전제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화성 사내하청분회는 2010년 11월23일 분회 독자적 잔업거부를 전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전체평균 잔업거부 동참율이 30%에 불과했다. 업체별 편차가 크게 존재했으며 비정규직지회 당시 평균치에 크게 밑도는 참여율이다. 반면 2010년 11월26일 금요일과 12월3일 금요일은 지부 전체 주간조 잔업거부를 시행했다.
비정규직 조합원들도 이때는 전체가 참여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평균 30%참가율의 11월23일 분회 독자적 잔업거부에 원·하청 사측이 더욱 긴장해서 대응을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실은 여전히 부단한 조직의 과제를 부여하지만 또한 적들이 무엇을 더 두려워하는지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행정적인 수준의 정규직화 사업을 넘어야 한다. 집단소송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고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이미 집단소송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그러나 기아의 경우는 집단소송의 여부를 아래의 조건들을 놓고 판단하여야 한다.
기아차 비정규직 현장의 특성으로, 50대 이상의 연령대 비율이 현저히 높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실제 이 연령대의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투쟁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현저히 낮을뿐더러, 소송에 참여할 확률도 희박하고, 정규직 단협상 정년인 59세가 초과된 노동자들의 경우도 있다.
물론 노동조합의 관점으로 이 연령대의 노동자들이 그럼에도 불법파견 대상이며, 사측이 이를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고령대의 노동자들을 위장도급으로 채용하여 이중의 착취를 했다고 주장하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임금차액 청구소송으로 설득한다고 해도, 현실적 설득력은 상당히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적극성을 기대하기란 어렵다고 판단된다. ‘상시업무 정규직화’를 주장한다고 해도, 처우개선이나 잘되면 중규직화 정도의 기대감을 가질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식당·청소 노동자들도 법으로만 따지면 불법파견이 성립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의 경우 집단소송을 조직화는 물론 투쟁의 열기를 집중시키는 매개로 활용할 수 있었지만, 기아차 비정규직 현장에서는 그 반대의 현상이 나타날 우려가 상당히 크다. 또 어차피 현대차 비정규직에 비해 늦을 수밖에 없다.
물론 왜 기아는 집단소송을 하지 않느냐, 정규직화 요구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공격이 예상되지만 이는 뛰어넘어할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현대차 판결은 법제도에 한정될 문제가 아니라 전체 제조업 사업장에도 적용되는 사회적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현장조건의 차이를 고려한 투쟁계획이 필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장상황을 객관적으로 놓고 그에 따른 최적의 투쟁계획을 세워야 한다. 물론 현장상황의 차이로 현대차 직접라인공정 비율 높음/ 기아차 직접라인공정 비율 적음(혼류공정이 적고, 비정규직 공정이 집단화되어 있음)과 같은 경우를 주요하게 들 수도 있겠으나, 이와 같은 차이는 결정적 요소가 아니라고 보인다.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은 지난 2004년부터 불붙었던 불법파견 투쟁의 패배로 인하여 그동안 수천 명의 정리해고를 허용하는 결과를 낳았다.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은 100명이 넘는 투쟁과정의 해고자, 업체폐업-선별승계, 징계남발 속에서 비정규직지회를 사수해왔다. 이런 억눌림 속에 2010년 7월22일 대법원 판결은 단비와도 같은 희망을 찾아낸 것이다. 즉 이 판결을 통해 투쟁꺼리, 땅 속에 처박혀 있을 줄 알았던 노동자의 본성을 일깨운 것이다. 지금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불법파견 투쟁은 유일한 요구이며, 절박함 속에 싸울 수 있는 태세를 일깨워주는 단초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현대차의 상황을 고스란히 대입할 수 있을까? 분명하게도 지난 비정규직투쟁 과정 속에서 기아차비정규직지회와 현대차비정규직지회가 확보한 단협상의 내용은 많은 차이가 있다. 당장 기아차 비정규직노동자의 절박함은 상대적으로 크게 떨어진다. 그렇기에 열성적이고 집중적인 사업진행이 꾸준히 없다면 구호로만 머물게 될 우려가 있다.
대표적으로 기아차 비정규직에겐 별다른 정리해고는 없었던 점(물론 분회가 되고 난 뒤 업체전적이 발생하여 증가추세임), 기아차 비정규직은 업체변경 시 기본승계, 징계와 해고와 관련된 단협조항과 관례에 의한 보장이 앞서 왔던 점 등이 있다. 때문에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절박함이 지금 당장은 적다. 불법파견 투쟁이 단지 경제적 투쟁이 아닌 사회정치적 투쟁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인지한다면, 더욱 투철한 투쟁계획 완성과 결의를 모아가야 한다.
물론 불법파견 정규직화든,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상시업무 정규직화, 사내하도급 철폐, 원청사용자 직접고용 등등 비슷하면서도 다양한 목표가 있으나, 현장에 가장 적합한 투쟁목표와 계획을 중심에 두어야 이 큰 싸움을 일관성 있게 펼쳐갈 수 있다.

 

투쟁의 기조와 목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때문에 기아에서 불파투쟁을 끌고 가기 위해서는 제도와 형식을 뛰어넘는 실천 활동이 전제되어야 한다. 투쟁계획은 해당 주체들의 적극성은 물론이거니와 근태협조, 예산 지원이 완벽하게 되기 어렵다는 전제 하에 실천 가능해야 한다. 분명 사내하청분회는 공조직임에도 불구하나, 실제적 실천사업은 공조직의 틀에서 지원받는 예산과 근태협조를 뛰어넘어야 한다.
또한 참여자 또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노조간부에 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참여하고자 하는 조합원까지 폭넓게 대상으로 해야 한다. 이를 전제로 투쟁의 기조와 목표를 다음 세 가지 정도로 제시한다.

 

1) 간접고용 철폐, 기아자동차(주) 직접고용 요구
사내하청의 불법파견 여부를 따지는 것은 수세적인 대응이며, 자본의 무차별적 사내하도급 사용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와 철폐 그리고 원청회사의 직접고용 원칙을 주장 한다. 금번 대법원 판결은 사회적 기준으로 인식해야 한다.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체 상시업무 정규직화!

 

2) 파견법 철폐, 파견법 개악 분쇄
자본은 역시 통이 크다. 수년간 침체되어 있던 불법파견 투쟁이 발발되었지만, 자본은 아예 통 크게 파견법을 바꿔 ‘불법을 합법으로’ 만들고자 한다. 국회에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는 파견대상 전면 확대, 고용서비스 민간이양은 반드시 철폐되어야 한다. 사람장사 합법화는 결단코 폐기되어야 한다. 파견법 개악이야말로 정규직 노동자들이 집중해야 할 의제가 아니던가.

 

3) 외주화 분쇄
위장하도급, 파견법 개악, 외주화는 모두 노동유연화의 일환이다. 해외공장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노동유연화와 원·하청 노노분열, 노동조합 무력화의 가장 큰 공격 중 하나다. 실제 외주화에 대한 정규직 조합원들의 위기감은 자본에 대한 투쟁을 향하기보다는 하청노동자들의 희생을 전제로 흐르는 위험이 있다. 
이러한 투쟁목표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해당 주체단위인 3개 분회의 구체적 실천사업을 위해 3개 분회 공동논의체를 구성하여 운영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사전 현장진단(각 분회별 현황), 구체적 공동사업수립, 결정사항 이행평가, 각 분회별 의견공유 및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3개 분회의 집행부-대의원-확대간부, 활동가, 조합원을 포괄한 ‘회의, 결의대회, 수련회, 집회, 연대투쟁’도 진행해야 할 것이다.
3개 분회는 비정규직 핵심주체(분회집행부-대의원-확대간부-열성조합원)를 중심으로 사내하청분회가 집중력과 실력을 갖추도록 조직해야 하며, 금속노조 불파TFT, 기아차지부 불파TFT, 현대차비정규직(3주체)와의 공동논의 참여는 최소한 위 공동논의체를 중심으로 참여한다. 분회 중심성의 명확한 기초위에 기아자동차(주)에 ‘간접고용 철폐, 기아자동차(주) 직접고용’ 특별교섭을 요구하고, 금속노조와 기아차지부에 확고한 투쟁을 촉구해야 한다.

 

회의감, 종속주의, 패배주의를 버리고, 배신감을 뛰어넘는 자발적인 실천을 확보하자!

투쟁의 전제는 3개 사내하청분회에 있다. 분회가 힘을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뚜렷한 전망과 활동이 없기 때문이다! 집행부와 활동간부들의 의지, 구체적 전망, 계획이 배치되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가 문제해결과 투쟁의 대상이 현대·기아 자본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원청자본을 대상으로 한 전면적인 투쟁이 가능토록 조직해야 한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불법파견 투쟁에 돌입하면서 바지하청과의 교섭을 일체 거부하였다. 대법원에서도 명백한 불법파견임이 증명된 이상 아무 상관이 없는 바지하청과 교섭을 한다는 자체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면에는 비정규직지회의 조직력으로는 그간 바지하청과의 협상도 여의치 않았던 점이 있다. 대법원 판결이라는 반격의 근거와 조직력 확대를 꾀한 이상 모든 투쟁집중력을 원청자본에 쏟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 점은 기아 비정규직 현장조건과는 차이가 존재한다. 이에 따른 규정과 전술적 판단을 하여야 한다. 정규직 조합원들을 교육·조직하기 이전에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요구로 확고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 이전에 사내하청분회 확대간부, 활동가, 열성조합원들에 대해 교육과 토론 그리고 실천사업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동지들이 “사내하도급 철폐, 정규직화 투쟁”에 있어 핵심대오로의 단단한 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공동투쟁과 원·하청 공동투쟁을 배치해야 하지만 당장 안 된다면 공동투쟁은 분회 집중투쟁을 통해 성취되어야 할 것이다. “원·하청 노조의 진정한 연대는 상급관료와 대공장 조합주의에 대한 굴복이 아니라, 전면적인 투쟁을 통해서 전진하는 쟁취의 대상이라는 것! 이 모든 투쟁과정에서 견지되어야 할 것은 보다 강고한 비정규직 투쟁 주체들의 주체성과 독자성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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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월호][노동]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기아비정규직 운동의 전망인가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1/03/02 15:31
  • 수정일
    2011/03/02 15:44
  • 글쓴이
    사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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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기아비정규직 운동의 전망인가 

_기아자동차화성공투단(준) 주최 현장토론회

 

지난해 대법원이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인 최병승 조합원을 불법파견으로 판정한 이후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점거투쟁이 벌어졌고 전주와 아산에서도 노조가입과 출투, 선전전 등 노조활동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다시 꿈틀대기 시작한 대공장 사내하청운동은 그동안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던 GM대우자동차비정규직지회의 아치농성으로 이어져 2월1일 하청업체와 단계적 복직안에 합의를 도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비정규직노조가 존재하는 대공장 중 현장조합원을 2천 명 가까이 보유하고 있는 기아자동차(이하 ‘기아차’)에서도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의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지난 1월28일 기아자동차화성공동투쟁단(준) 주최로 열린 “불파투쟁, 기아비정규직운동의 전망인가?” 토론회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과정을 되짚어 보고 기아차 현장의 특수성과 비정규직운동의 전망을 모색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기아자동차 현장의 특수성

토론회는 조성웅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부지회장이 불법파견 판정 이후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터져나온 업체투쟁 및 점거농성 과정과 그 속에서 보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발성, 노조집행부의 지도력 부재, 정규직지부의 관료성 등을 생생하게 전달한 이후 기아차 활동가들의 발제로 이루어졌다.
먼저 발제한 비정규직노동자 모임 <단결노동자회>의 이준영은 현대자동차와 같은 불법파견 투쟁 방식을 기아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자에서는 불법파견 판결이 투쟁의 도화선이 되었는데, 기아차에서는 그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제조업 대공장에서 불법파견 이슈가 활발했던 2005년 당시 기아차 비정규직 운동은 정규직화 투쟁보다 업체투쟁에 기반을 둔 단협체결에 초점을 두었다.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해당자가 적었기 때문이다. 수년이 지난 지금은 자본이 공정상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불법파견의 요소를 거의 없앴기 때문에 유효판결의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뿐만 아니라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 중에는 정년퇴임을 앞둔 고령자가 많아 정규직화에 대한 열망이 상대적으로 낮다. 이준영 발제자는 많은 조합원들이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을 지지하지만 아직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다고 진단했다.
다음으로 <기아차 사노신독자모임>의 이상욱은 1사1조직 전환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변화에 중점을 두며 발제에 나섰다. 2008년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가 정규직노조에 폭력적으로 통합되어 현재는 각 공장별 정규직지회 아래 사내하청분회로 재편되어 있다. 비정규직노조는 안정적인 체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 반면 정규직지부·지회에 통제당하면서 독자적인 교섭권과 쟁의권을 사실상 상실했다.
이로 인해 최근 몇 년간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주체화나 의식화를 위한 투쟁과 교육 없이도 약간의 임금인상과 고용을 보장받았고 그 결과 비정규직노조는 강화되기는커녕 수 년 간의 업체투쟁·파업투쟁의 경험과 기억이 퇴화하고 있는 지경이다.

 

기아자동차와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

2000년대 초중반 현대차를 중심으로 한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과 이어진 노조건설,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의 원청과의 단협체결 등 성과가 있었지만 정규직 중심의 운동질서 속에서 독자적 투쟁력이 질식당하면서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지난해 말 벌어진 현대차 울산공장 점거 역시 정규직노조의 농간으로 정리 되었고 이후 정규직노조는 교섭과정에서도 선별적 복직안을 중재안으로 내며 투쟁력을 흩트렸다. 그러나 현재 그것을 뚫고 나아갈 수 있을 만큼 비정규직 주체들의 조직력과 활동가층이 두텁지 못하다.
현재 기아차지부는 불법파견 태스크포스팀(TFT)을 가동 중이라고 하지만 현장실태조사나 조직화 내용은 없고 TFT 플래카드를 맞추거나 회의차수만 늘리고 있는 상태이다. 사내하청분회 역시 법적 진정을 낼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그 가능성과는 상관없이 사업으로만 가져가는 모양새이며 활동가·조합원과의 공청회 등은 거의 열리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준영은 기아차 현장을 점검하고 불법파견 투쟁을 제안하면서 정규직화가 목적이 아니라 이를 매개로 하여 조합원들을 주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욱은 1사1조직이 강제된 기아에서 비정규직조합원들의 근본적인 의식변화 없이 불파투쟁에 나설 경우 곧바로 교섭에 기댈 확률이 높고, 2·3차 및 임시계약직 노동자들을 배제한 채 분회로 조직된 1차 하청만을 위한 조합주의적 투쟁으로 변질될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관료주의 극복과 주체성 확보가 관건

이러한 기아차 현장의 객관적·주체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발제자 및 참가자 대부분은 현대차와 같은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의 슬로건과 방식을 기아차에 적용하기는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기아차 비정규직 운동은 과거 현장투쟁단과 비정규직지회 시절 업체투쟁과 파업의 경험이 지금 전혀 성과로 존재하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때문에 현장투쟁과 주체복구를 위한 계획이 가장 시급하다. 그러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이러한 매개로 활용하기에는 구체적인 조건이 따라주지 않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계획을 제출한 이준영 발제자도 교육과 선전전, 토론회 등 기본적인 현장 활동의 복구를 제기했으며 이상욱 발제자는 1차 하청노동자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는 운동을 2·3차 및 임시계약직 조직화로 확대하고 노조에 국한되지 않는 기존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자고 제안했다.
이준영 발제자의 말대로 “기아공장에 있어 정규직화 투쟁은 ‘당장의 투쟁’인 현대자동차 비정규직투쟁을 어떻게 지지, 엄호, 연대, 그리고 결국 공동투쟁을 성사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일 수밖에 없다.
현장의 전투적 활동가들의 고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이라 판단하여 이상욱, 이준영 발제자의 발제문을 요약하여 싣는다. (조성웅 부지회장의 발제문은 지면관계로 싣지 못했다.)

 

이서윤 (cdbb@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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