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말해요, 찬드라

 

 

말해요, 찬드라 ( 불법대한민국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삶의 이야기) 이란주 지음, 삶이보이는창(2003)

 

언제부턴가 출판계의 작은 흐름을 타고 있는 이주 노동과 이주에 대한 책들을 나는 그닥 곱게 바라볼 수가 없다.  '한국인' 작가의 '한국적 시선'이기에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성찰적 태도가 책 속에서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이주민의 시선'이 반드시 옳고, '한국인'은 입다물고 있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젠더의 문제에 있어 모든 여성의 입장이 반드시 정치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듯 또 남성페미니스트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표방하기 이전에 스스로 성찰의 자세부터 갖추어야 하 듯, 올바름과 성찰이라는 참으로 무거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짊어지고 '한국인'이 '이주민'에 대해 쓴 글들을 찾기는 쉽지 않다. 상상해보라! 가령 '한국 여성들의 삶 이야기' 라는 주제로 지금의 여성들이 겪고 있는 문제와 일상에 대해 한 남성이 (혹은 남성 페미니스트가) 쓴다면 어떤 내용이 나올까? 나는 쓸 수 없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맥락속에서 "말해요, 찬드라"는 나에게 꼭 구해서 읽고 싶은 책은 아니었다.

 

저자는 오랫동안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울고 웃고 부대끼며 그.녀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현장에서 싸워온 활동가이다. 서문에서 밝혔듯이 저자의 애절함과 분노는 책 곳곳에서 묻어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안는 사연들로 가득하다.  정신분열을 앓고있는 한국인 부인과 네살이 되도록 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를 두고도 네팔인 남편은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추방의 기로에 놓여져 있고, '그냥 미혼모도 아닌 불법체류하는 몽골 미혼모'의 사정은 너무나 딱하고, 알콜중독에 노숙인이 된 망명객은 결국 피범벅이 되어 병원에 실려간다. 어떤이는 프레스에 손가락이 잘려 치료를 받던 중 에이즈 감염이 발견되 추방되기도 하고, 6년 4개월을 정신병원에 갇혀 지냈던 찬드라는 말을 잊었다. 책 속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참 슬프고도 끔찍하다. 어디 그 뿐인가, 흉칙하게 손이 잘리고, 머리 한쪽이 비어있고, 수갑이 채워진 채 출입국에 잡혀가는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영정사진과 유골함으로 남은 이주노동자들. 사진 속 이주노동자들은 처참하다. 그.녀들은 모두 악몽 속에 있다. 그리고 그 아픔과 절망 속에서 저자는 동분서주하고 때로는 악다구니를 쓰기도 한다. 힘겹고도 어렵게 그.녀들을 도와주고 공공기관에 가서 함께 싸우고 또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는 저자가 참 대단하다. 저자의 가식 없는 이야기는 한국사회가 이주노동자들에게 얼마나 모질게 행패를 부리고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한 편, 저자와 자원 봉사 의료진들의 악몽속 그.녀들에 대한 헌신적인 도움을 보여주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이주노동자의 삶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한 권의 책 속에서 이주노동자는 불법체류자, 알콜중독자, 에이즈 감염자, 미혼모, 수갑차고 끌려가는 사람, 오줌을 지리고 있는 노숙자, 대책없이 아이를 낳는 부부, 끔직하게 삶을 마감한 사람들로 묘사된다. 그리고 저자의 깊은 한숨과 근심 걱정의 눈빛, 때로는 연민 어린 힐난이 함께 한다. 이 곳 이주노동자들은 저자의 바램처럼 '오래된 이웃처럼 살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저자가 말한 '우리 안의 이웃'인-도대체 이 '우리'라는 표현부터가 참으로 배타적이다- 그.녀들은 이 사회가 '정상'이라고 말하는 범주에 들지 못하는 불쌍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와는 다른'  혹은 '문제적인' 존재일 뿐이다. 나는 이 책이 '한 현장 활동가의 이주노동자 상담 사례 및 경험' 이라는 제목이었다면, 그건 저자 자신의 이야기니까 설령 그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분명 이주노동자 삶의 이야기라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저자는 '한국인'이다.

 

나는 제 3세계 '이주민'과 '한국인'의 관계에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그 자체로 억압하는 자의 위치에 놓여져 있다고 생각한다. 무심코 내 뱉은 단어 하나, 일상의 작은 몸짓, 스치듯 지나치는 눈빛만으로도 기득권자와 아닌자 사이에 권력은 행사되어지고 뜻하지 않은 가해를 범할수 있다. 이 책에서 보여진 저자의 시선에서 나는 이에 대한 그 어떤 성찰과 고민의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지점이다. 이 지점에서는 저자의 깊은 애절함과 분노, 헌신적인 활동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채, '한국인' 의 시선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화석화한다. 책 속에서 사연으로 혹은 한 장의 흑백 사진으로 등장한 이주노동자들을  그.녀들의 삶으로부터 소외시켰을 그 시선이 슬프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과연 무슨 권리로 타인의 삶을 악몽이라 이름 붙이는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