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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

오늘은 예쁜 아기 엘리션의 백일잔치.

 

오후 내내 잔치판을 벌이고, 청소까지 말끔히 마친 주최측과 준비팀의 뒷풀이에 얼렁덜렁 같이 가는데,

명동 축소판이라는 일번가의 그 휘황찬란한 호프집들이 부담스러웠는지, 기어코 가던 발길을 되돌려 시장 앞 치킨 집으로 우루루 몰려간다. 좀 한적한 곳이 좋다면서.

 

치킨집 중앙의 긴 테이블을 다 차지하고도, 칸막이 테이블 하나에 바싹 모여앉아 이야기를 시작하니 작은 가게가 네팔말로 가득하다.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나이든 아저씨들의 찡그린 표정, 써빙하는 언니의 밝지 못한 얼굴, 낯선 눈빛으로 흘금흘금 쳐다보는 사람들들들. 다른 손님들이 들어오려다 나가는데 왜 내가 주인 얼굴 표정을 살펴야 하는거지? 기분이 정말 별루다. 이런 느낌이 싫어 번화가에 가지 않았나 보다. 한적한 시장 골목 치킨집에서 맥주한잔 하면서도 느껴야 하는 어떤 눈빛들.

 

열댓명의 사람들이 치킨 세 마리에 맥주를 마시다 보니, 안주가 조금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맞은편의 S가 기본 안주인 땅콩을 두번이나 더 달라고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참 섬세하고 따뜻한 S는 땅콩을 일일이 까서 옆에 앉아있는 친구들 먹여 주는 맛에 땅콩 좀 더 달라고 했는데. 서빙보는 언니가 주인 얼굴을 본다. 주인은 땅콩이 없단다. 아무 말 없이 주인을 바라보는 S에게 옆에 앉은 N은 요즘 땅콩이 비싸다며 조용히 얘기하고, 난 서빙보는 언니가 땅콩 대신 준 강냉이를 전달한다.그 때 봤던 S의 어떤 눈빛. 굳이 말로 설명하고 싶지 않은, 그 눈빛이 속상하다.

 

나와 함께 이주노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N이 말한다. S는 그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조합비를 내고 있다고. 다만 최근에 일이 없어서 조금 밀렸을 뿐이라고 한다. 난 오랫동안 S를 만났고, 그와 함께 만두를  빚어 먹었고, 소주잔을 들고 건배를 했어도 수십번은 했는데, 조합원일 줄은 몰랐다. 말이 많지 않은 그의 성격 때문이기도 했고, 나도 굳이 노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노조 활동가들  혹은 가까이 연대하는 동지들도 그가 조합원임을 몰랐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S를 그이들에게 인사시켜 준 적도 있으니까. 그런 그가 묵묵히 조합비를 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노조는 그에게 무엇을 해 주었을까? 궁금했다.

 

S는 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고 'MTU 넘버 원!' 이라고 했다. 왜 조합원이 되었는지,오늘은 술이 취해서 대답을 잘 못하니까 다음에 꼭 다시 물어보라고 나에게 몇번을 이야기한다.  늘상 주름 가득한 눈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던 그에게서는 처음 듣는 강한 어조의 말이었다. 그리고 '우리 외국 사람 힘들잖아' 라고 작게 두어번 이야기 한다. 예의 그 눈빛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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