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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콴과 넝

"나한테 친구는 너 하나밖에 없어"

라고 말하던 넝

회색 구름으로 뒤덮힌 무거운 오후,

낯선 도시의 한 복판에서 그녀가 보고 싶었다.

전날 받은 맹콴의 메세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맹콴은 내가 싱가폴에 도착하던 날,

내 이름이 쓰여진 손바닥만한 메모지를 들고

환한 웃음으로 공항에서 나를 맞아준 친구이다.

그녀는 나의 친구의 친구로

내가 그녀의 친구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낯선 이곳에서 살뜰하게 나를 챙겨준 싱가포리안이다.

 

그녀가,

싱가포리안인 그녀가 있다는 것은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보증인을 써야할 때도 맹콴의 이름을 썼고

혹시 무슨일이 생기면 어쩌지, 라며 불안했던 때도

얼른 달려와줄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밥을 한 번 같이 먹고

맥주를 한 번 마시고 나서

난 그녀가 좋아졌다.

만나는 횟수 만큼

내면의 이야기가

차곡 차곡 쌓이는 느낌의 관계

가느랗고 긴 다리로

성큼 성큼 걸어가다

잘 미끄러지기도 하는 쾌활한 맹콴

지난 한 달 간 유일한 친구였던 그녀를

난 자꾸만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난 자주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바쁠 것 같아서

혼자였던 나와는 달리

가족과 동료와 친구가 있는 그녀에게

혹시나 부담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넝은 가끔 전화를 해서 물었다.

언제 술 한 번 마시자.

응, 그래야지!

라고 말하면서 쉽게 날짜를 정하지 못하는 나에게

알아, 많이 바쁘지? 시간 있을 때 연락해.

라고 풀죽어 이야기했다.

 

낯선 한국 땅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쌍둥이를 키우며 지내야 했던 시간,

너무 너무 심심해서

컴퓨터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일을 반복했다던

그녀에게,

난 정말 왜 그렇게 바쁘다고만 했을까?

 

"이번 주는 바쁘고, 다음 주에는 시간이 날 것 같아"

라는 멩콴의 한 문장에도

살짝 위축감이 들었던 나는

이제야 겨우

넝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가 몹시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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