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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공단 입구에 있는 호프집엔 토요일이라 손님이 없었다.

주인은 우리 밖에 없다고 에어컨도 끄고 급기야 술도 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술 사들고 공장 기숙사로 2차를 갔다. 

말이 기숙사지 공장 윗층 시멘트 바닥에 철제 침대 몇개 놓고, 삐걱이는 탁자를 식탁 삼아

때에 찌든 부르스타로 요리해 먹어야 하는 황량한 공간이었다.

기숙사 문 바로 앞으로는 도금 약품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는 이 공장에서 3년 일한  중국 연수생 친구가 일하다가 자꾸 코피를 흘린다고 걱정을 한다.

한국말도 잘 못하고, 물어보기만 하면 "괜찮아"를 연발한다는 중국인 친구는 토요일이라 어디 나간 모양이었다.

그는 중국인 친구 걱정 끝에 말한다.

이 공장에서 일하면 오래 못살아요...

 

그의 이야기는 명동성당 투쟁을 넘어 10년 전 방글라데시 투쟁의 현장으로 날아갔다가

이루어질 수 없었던 연상의 여인과의 사랑과 투쟁 그리고 감옥생활로 이어진다.

아홉명의 이모들 사랑에 모범생으로 자랐던 어린 시절 부터 285000원짜리 연수생 시절 그리고 프레스에 손가락 날라가고 두 시간 동안 공장 바닥에 혼자 쓰러져있던 날 까지.

이공장 저공장 다니는데 부도나고 해고당하고 투쟁하고 농성하고 지금 지역에서 조직하는 것 까지.

 

있는 술은 다 마시고, 그래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집에 오는 길.

그가 떠오른다.

 

"차별이란 말 방글라데시에서도 아니까 투쟁했었지요.

그런데 이젠 심장으로 알아요. 차별이 뭔지. 심장으로."

 

심장을 가르키는 그의 오른손 두번째 손가락은 뭉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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