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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용교수 가고 자용(資用) 교수 오다/ 정진상

어용교수 가고 자용(資用)교수 오다

반론-안경환 칼럼 “학생운동과…” 을 읽고

 

자본이 지배하는 시대에 자본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교수들이 나오는 것은 필연적인 법칙이다. 이들을 ‘자용(資用)교수’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들은 어용교수들의 속 보이는 거짓말과는 달리 ‘국제경쟁력’이란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기 때문에 대중들에게는 ‘중립적’으로 보이기 쉽다.

 

고려대의 이건희 명예 철학박사 학위 수여 사건이 결국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모양이다. 사건 마무리 단계에서 <한겨레> 칼럼 하나가 또 파문을 일으킨다. 서울대 안경환 교수의 5월24일치 칼럼 ‘학생운동과 선생의 역할’은 사건 과정에서 있었던 하나의 에피소드를 소재로 점잖게 훈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내용은 대학당국이 시위 학생들을 징계하겠다고 위협했을 때 그 부당함을 지적한 교수 109명의 성명서에 대한 비판이다. 안 교수의 주장은 간명하다. 첫째는 ‘민교협’ 교수들의 성명서가 물리력을 행사한 학생들에 대한 선생으로서의 꾸짖음은 전혀 없고, 둘째는 “생경하고 미숙한” 학생들의 삼성그룹 무노조 경영에 대한 비판에 서명 교수들이 부화뇌동하고 있으며, 셋째는 ‘산학협동’의 시대에 “대학의 사명”이라는 대의를 위해서는 “부의 축적과정에 숨겨진 과거의 부조리”쯤은 그냥 모른척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비판적인 독자들은 <한겨레>가 <조선일보>와 다를 게 뭐냐고 인터넷판에서 아우성이지만, 보통의 독자들이 점잖은 그의 논리 배후에 있는 한국 사회의 지배장치를 눈치 채는 것은 쉽지 않다.

 

안 교수가 비판하는 성명서 초안은 내가 본 그 성명서일 것이다. 대학당국의 징계위협에 처한 고려대 학생들의 다급한 호소문과 함께 전해온 성명서는 대학 본연의 역할인 비판 기능의 관점에서 절제된 언어로 대학당국의 학생징계 기도를 엄히 꾸짖은 것이었다. 안 교수는 나를 포함한 서명 교수들이 대학당국을 비난하면서 왜 학생들을 꾸짖지 않았느냐고 나무라는데, 성명서란 원래 작성되는 상황과 취지가 있는 법이라는 것쯤은 그도 잘 알 것이다.

 

안 교수는 “이 회장의 재산상속 과정이나 삼성그룹의 노조 정책에 불법이 있었다면 합당한 응징을 법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견 법학자인 안 교수에게 오늘날 법이 누구의 편이냐고 묻고 싶다. 지금의 법이 재벌의 ‘합법적’인 상속세 탈세를 막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녕 모르는가? 시대착오적인 무노조 정책을 위해 삼성그룹이 얼마나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사용하며, 법의 집행자인 ‘공권력’이 삼성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어떻게 짓밟고 있는지 모른단 말인가?

 

안 교수는 “모두가 권장하는 산학협동”을 들어 ‘대학과 자본의 유착’을 초래할 우려를 표명한 서명 교수들을 비판하고 있다. 이것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문제의 핵심이다. 대학이 학문을 하는 데 돈이 필요하고 기업이 돈을 기부하는 것을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시위를 벌인 학생들도 이건희가 고려대에 거액을 기부한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로 인해 대학이 기업의 이윤논리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서명 교수들의 분명한 주장이다. 이 주장을 ‘산학협동’으로 바꿔치기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군부독재정권 시절에 ‘어용(御用)교수’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학생들은 그들을 ‘선생’으로 여기지 않았고 ‘어용교수 물러가라!’가 ‘학생운동’의 단골 구호였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유행도 바뀌기 마련이다. 한 언론사의 한국 사회 ‘파워조직’ 영향력 여론조사에서 청와대가 11위에 머문 반면 삼성이 1위, 현대가 2위인 시대가 되었다. 자본이 지배하는 시대에 자본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교수들이 나오는 것은 필연적인 법칙이다. 이들을 ‘자용(資用)교수’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들은 어용교수들의 속 보이는 거짓말과는 달리 ‘국제경쟁력’이란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기 때문에 대중들에게는 ‘중립적’으로 보이기 쉽다. 이 때문에 <한겨레> 지면에서조차 점잔을 빼고 있는데도 ‘자용교수’라는 말이 아직 잘 들리지 않는다. ‘자용교수’라는 말을 유행시키는 일은, 학문의 전당인 대학을 자본의 지배로부터 지키려는 대학인들이 맡아야 할 몫이다. 안 교수의 훈계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려대 학생들의 시위가 지성인의 용기 있는 의사 표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진상/경상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05.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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