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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비폭력

그저께, 26일 월요일,
밤 11시 20분께,
연구실을 나가 김밥집 가서 김밥 6줄을 싸고 음료수 1병을 사고 택시를 타고  갔다.
"아저씨, 종로요."
"종로 어디요?"
"음... 종각역 쯤이요..."

아저씨 흘끔 백미러 보시더니
"지금 들어가시는 거에요, 나가시는 거에요?"
어휴, 아저씬. 다 아시믄서.
"나가는 거지요. 아휴 참. 친구들이 춥고 배고프다 해서요."
파고다공원쪽에서 좌회전이 안되자,
"좌회전 안 되겠네요. 여서 내려서 걸어가시는 것이 더 빠르시겄어." 하셨다.

YMCA 건물 앞부터 사람들이 들어차있었다. 종각역쪽으로 전경을 밀고 있는데...
연구실 사람들 찾아보려고 해도 전화를 하면 곧 끊어지고 끊어지고
워낙에 정신없는 시점이라 김밥 줘도 못 먹을 것 같기에
도보쪽으로 빠져있었다.
쪼금 무리를 해서 나온 거라 일단 시위대 옆쪽으로 빠져 담배를 한 대 무는데
사람들이 외쳤다.
"비폭력, 비폭력, 비폭력, 비폭력, 비폭력..."

김밥은 친구에게 맡기고
전경 진영 쪽의 높은, 내 가슴께까지 높이가 되는
철로된 네모난 그걸 뭐라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길가에 전철 환풍구라고 해얄까 그것 위로 올라갔다.
한 손으론 가로수를 잡고 한 손엔 핸펀을 동영상 모드로 해놓구
봤다. 사람들 사이로 데이지 꽃이 보였다.
전날 아고라에서 꽃 들고 나가자는 게 잠시 링크에 떴었는데
그 중에 데이지가 평화를 상징한다며 좋다고 답글 달리더니
정말 누군가는 들고 나온 거다. 흠.

전경들은 종각역 사거리를 버스로 천천히 막기 위해 시간을 벌고 있었고
시위대는 한 걸음씩 밀어내면서 그 자체로 해방감에 넘치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가다간 시간 끌다가 사람들 흩어지고 연행 시작되겠군... 했는데
사실 뭐 사람들도 아주 모르는 건 아니었을 거다.
다만, 오늘도 청와대는 힘든건가? 어떻게 더 경찰에 안막히고 가는 법 없나? 하는 생각은 좀 들었지만.

어쨌거나,
비폭력을 사람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외치고 있는 것을 보니
내 입에서도 비폭력이라는 말이 오랜만에 내뱉어지는 게...
5월 4일 오전의 상황과 비폭력이냐 대항폭력이냐를 두고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던 것과
어마어마한 새까만 전경들과 갑자기 나타난 죽봉들과
스크럼 짜고 앉아있을 때의 답답함 같은 것들이 순간 스쳐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잠시 잊기로 했다.
사람들의 밝게, 더 여유롭게, 더 장난스럽게 터져나오는 얼굴들을 하나하나 담느라 메모리가 딸렸다.

어젯밤에 라디오를 듣다 잠들어서 오늘 아침 지직거리는 라디오 소리에 깼다.
어젯밤 사람들이 113명이 연행되었노라며, 그간에 연행된 사람들 합친 수보다 많다며.
흠. 113명? 100명이 넘게?
허 참!
전경들이 작정하고 사람들 잡아가면 4-5백 명도 잡아가지만
비폭력 집회에서 100명이라.
섣불리 말할 수는 없지만,
다치려고 그냥 닭장차에 올라타셨다는 기사를 보고
오마이뉴스에 불구속기소된 사람들이 단체사진 찍은 것에 대한 기사도 보고 하니
실실 웃음이 나는게 힘이 점점 커지는 것 같다.
어쨌든,
그 중엔 몇 사람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싶고, 몇 사람은 즐기고도 있었겠지만
누구든 가슴 철렁하면서 이렇게 딸려가야 하나 하는 심경은 있었을 것 같다.
이 와중에 당근 쁘락들이 설치고 다니는 모양인데
오늘밤도 내일밤도 모레 밤도 길에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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