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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만든 식빵 by dion
오랜만의 일기다.
새로 취직한 테이크아웃 커피점에서 일한지 1달 반만에 처음으로 조퇴를 하였다.
목이 아팠고, 열이 났다. 밤새 아팠다. 조금 늦잠을 자서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
늦게 온 점장이 내 이마를 짚어보더니 얼른 들어가라며
다음부턴 이렇게 아프면 전화하고 나오지 말라고 말했다.
신기하다. 지금껏 학원과 연구실에 있을 때는
주어진 일을 다 소화하기 전까지는 아프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며
입원이 아닌 이상 참으면서 일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가끔은
긴장이 풀려서 아픈 거라면서 슬쩍 비난을 듣기도 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살짝 열이 있다고 나를 그냥 돌려보내다니.
여튼, 집에 와서 푹 자고, 점장이 싸준 감자샐러드 샌드위치를 대충 씹어먹으며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
그래도 낫질 않고 기침과 열이 계속 나긴 한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목에 찬바람이 든게 원인이겠지만
하루도 쉴 날 없이, 어린이날에도 하루종일 집에 페인트칠을 해서 피곤했던 게 문제였을 것이다.
정말 한 시도 가만 쉬지 못하는 성미이기도 하지만,
이른바 빈마을 생활을 그냥 훌렁훌렁 지낼 수가 없어
하루 하루 바쁘니 이렇게라도 휴식이 다가오는 게 반갑기까지 하다.
빈마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즘은 다시 또 하루 하루가 세미나요 미팅이요 회의다. 아주 그냥
단 하루를 조용히 지낼 수 없다. 함께 사는 ㅇㅅ이 블로근지 트윗인지에다가
“빈마을에 사는 게 버겁다. 운동의 속도로 살자니 너무 빠르고, 삶의 속도로 운동하자니 너무 느리다.”
라고 했다던데.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어쩌면
이 어중띠고 피곤한 가운데 하나의 선이, 새로운 속도가 발명되고 있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운동과 생활이 분할될 수 없음에서 생성되는 기묘한 속도.
구체적으로 최근 진행되고 있는 빈마을 금고 논의, 빈가게 논의들.
그것은 가치의 척도와 체계의 측면에서 기존 사회의 당연한 형식들을 뒤틀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것을 자본주의의 바깥 경제, 혹은 그 외부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또한 얼마만한 파급력을 가질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여기서
우리를 피곤에 쩔게하는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모임’들이 형성되고 있고,
그것이 회의든 모임이든 잠깐 술자리든 어떤 것이든 간에,
이런 시간 속에서 사람들이 전심전력으로 토론하는 중에 어떤 질감이 형성되고 있는 중인 거다.
4일 전에 처음으로 빵을 만든 이후, 빵만드는 재미까지 붙어 더더욱 바빠졌는데,
이렇게 아픈 와중에도 아침에 식빵과 넙대대한 빵, 그리고 바나나초코칩머핀 6개를 구웠다.
참 재미나다. 빵이 부푸는 게. 상이한 배합에 상이한 모양. 같은 배합에도 다른 빵이 탄생하기도 하고. 여튼 빵에 비유를 하면,
1주일에 한 번 보다가 2주일에 한 번 보다가 1달에 한 번 보는 식으로 멀어지던
최근 3달 정도의 관계들은 빵 반죽으로 치면 1차 숙성과 2차 숙성 중간에 있는
휴지기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거다.
우리는 이 반죽덩어리를 헤엄치는 효모무리들과 다르지 않아,
시간이 흐르고 활동이 모이고, 쉬었다가 숙성되는 단계들을 거쳐 마침내
찰진, 하나의 덩어리, 모양도 형체도 아직 갖춰지지 않은 하나의 덩어리인 것이다.
이제 그걸 식빵틀에 넣거나 머핀틀에 넣어 그에 맞는 온도로 구워내야 한다.
그 전까지 효모들은 스스로 지치지 않도록 시간을 갖고 움직이며 너무 치대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탄력이 붙는다’라는 말을
나는 빵을 굽고 빈마을 금고를 재차 이야기하고 있는 이제서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새로운 삶/운동의 형식이 얼마만큼 부풀어오르고 어떤 맛과 향을 낼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효모들은 밀가루와 물과 소금 사이를 헤엄치며 존재론적 도약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두리반으로 향하는 옆집 사람. 201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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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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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되고, 빈집 놀러가고, 그러다 메신저하고, 빈집의 이런저런 놀꺼리 일꺼리 참여하고, 틈틈이 모여서 회의하고 그러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하고, 연애 시작하고, 메신저 하며 농사짓고, 결국은 에너지 고갈로 사직동(친정)가는 횟수 줄이고, 빈집의 이런저런 놀꺼리 공부꺼리 접었는데도 늘 피곤하고 쫓기는 생활의 반복. 그래도 순간순간 즐겁고 좋아서 이렇게 살고 있지만 가끔은 나몰라라 하고 훌쩍 떠나버리고 싶어.부가 정보
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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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즐겁게들 살아라라라! 아프면 야단맞는다는 이야길 들으니 누군가가 연구실을 압력솥 모델이라고 불렀던 게 생각나는군 ㅋㅋ 버겁지 않고 즐거울 수 있는 운동과 삶의 리듬을 재발명하길!!!!부가 정보
디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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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ㅂ/ 나도 가끔 그렇다오. 근데, 최근엔 앞으로 내가 한 60년은 더 살테니 좀더 마음의 여유를 가져도 되겄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음.디디/ 압력솥이라... 멋진 비유! 난 어쩌다보니 설익은 쌀 된 듯.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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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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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문이 아니라 어느지점엔가 문이 있으리라는, 길을 발견하거나 그 길을 따라가 보기 전이지만, 지금 이 순간의 문제들에서 벗어나는 길이 어딘가 있으리라는 감각이다' 라는 글을 오늘 어디서 우연히 봄. 난 쌀이 되고 싶었던 돌멩이? ㅋㅋㅋ부가 정보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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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죽에 펀칭을 쪼끔 더 해줘얄 듯. 자넨 바게뜨 구우면 잘 굽겠구먼, 이라고 하면 너무 아줌마같나?ㅋ그나저나 압력솥모델 넘 인상적인데...난 뭐였을까. 같은 속도로 안익어서 문제 많았던 콩?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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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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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한테 옮을수도 있으니 약간 의무기도 하죠...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