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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신부님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거..

문신부님이 경찰과 실랑이를 하다 삼발이 아래로 떨어지셨다.

삼발이를 오갈때 항상 걱정이 되었는데..경찰은 어떻게 그 위험한 곳까지 왔는지...

할수 있는것은 기도..뿐..

 

마음이 찹잡하다.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을 더 찾아야 할텐데...

싸움의 현장에 언제나 앞서시는 모습이 나에게, 우리에게 준 힘을 생각하면..

내가 할수 있는 것은 보잘것 없지만 그거라도 해야지.  할수있는 것들을 더 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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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자유라고...

어제 화요일자 경향신문을 읽다 기겁했다. 워낙 바빠서 읽지 못하다가 어제 잠깐 여유를 갖고 읽었다.

정희준의 시평이었는데 나꼼수의 비키니 수영복 응원 홍보와 관련된 일련의 흐름에 대해 진보들이 자아비판을 강요하고 사과를 강요하고 있다는게 핵심이었다. 정말 놀라웠다. 이런 사안에  양심의 자유를 갖다댈수 있다는 사실에...

 

얼마전 사랑방 활동가가 양심적 병역거부로 감옥에 갔고, 또 얼마전에 청소년 활동가가 양심적 병역거부로 곧 감옥에 갈 처지에 있다. 그들이 지키려고 하는 양심의 자유를, 총을 들지 않을 자유를 이렇게 오용하니 말이 나오지 않는다.

 

정희준은 "비판, 비난은 개인의 자율적 판단에 기반하지만 반성, 사과는 다르다"고 했다. 물론 그는 <나꼼수>가 여성들을 성적 대상화했고, 여성들이 불쾌했다는 사실에 동의한다"고 했다. 그러나 "집단이 위력시위를 니서 반성과 사과를 강요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일뿐 아니라 공개적 자아비판의 강요이고 이를 통해 <나꼼수>를 사살검증하겠다는 것이다."라며 침해라고 했다. 진보에 의해 전방위적으로 침해당하고 있다고...

 

'여성들을 성적 대상화했다는 사실에 돋의하지만' 사과는 할수 없다는 모순. 상대방에게 모욕을 줬지만 사과는 할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는가? 아니면 집단적으로 사과를 요구했기에 못하는 것이라는 뜻인가? 이러한 논리적 모순에 글을 다시 읽어내려가면 모순의 이면에 있는 생각이 드러나있다.. " 양심에 반하는 사과를 강요당하는 것은 쿨할수 없다"라는 구절.

 

사실 글쓴이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다"는 의미를 모르는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만약 어떤이가 누군가에게 침을 뱉는 행위를 했다면, 그리고 그것도 자신의 무지로 인해, 편견으로 인해 그러한 행위를 했다면 당연히 사과할 일이 아닌가. 우리가 권력을 이용하거나 권력자나 폭력을 사용한  가해자에게 맞서 항의의 행위로 침을 뱉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지와 편견, 감수성없음으로 인해 침을 뱉었다면 침을 뱉는 행위를 한 자에게 사과를, 성찰을 요구히는 것은 당연하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했다는 것은, 여성을 온전한 인격의 한 주체로 보고 대우하지 않고 성적으로만 바라보고 취급하는 것을 말한다. 성적 대상화가 만연한 지금의 사회에서 무의식적으로 길려진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부추기고 반성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 '함께 하려는 사람'으로 본다면 그렇게 대우해서는 안된다고, 평등하게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그 요구란 함께 가기 위한 전제이며, 함께 가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우리 안의 위계와 편견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명박이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사고는 우리를 더나은 삶으로, 서로가 존중받는 사회로 나갈수 없으니까 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를 양심의 자유라고 하는 것은 성적 대상화가 얼마나 모욕적인 처우인지 인지하거나 느끼지 못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를 양심의 자유에 반하는 강요라고 명명하는 것은 그가 여전히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이 모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더욱 암담하다.

핵심은 사과 강요가 아니라 여성을 여전히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는 태도에 대한 성찰이라는 것이다. 

 

양심의 자유는 근대 인권에서 종교의 자유조차 봉건권력에 의해 보장받지 못했던 역사에서 기원을 두고 있다.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다른 생각을 가질 권리를 줄곧 옹호해온 사람으로서, 타인인 여성의 인격을, 인간적 존엄성을 부인하고 모욕하는 행위을 그저 양심의 자유이고 사상의 자유라고 인정할 수 없다. 지금은 많이 모자라는 선언인 세계인권선언과 자유권 규약에서도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파괴할 목적의 행위로 해석하지 않는다. 차별의 선동이 되는 행동에 대해 '인권' 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가들이 노동자는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말과 행동을 할 때 우리는 그에게 노동자도 인간이니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면 안된다고 말하는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저 표현의 자유니까..라고 넘어가지 않는것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와 자본가의 위계적인 권력관계에 민감하면서도, 성별화된 가부장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한 위계질서에 대해 무감한 사람들에게 왜 성찰해야하는지를 말하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에 가슴에 끓어오르는 응어리를 느끼며...

 

또한  '인권'과 '자유가 얼마나 일상화된 말인지를 실감했고, 그리고 어떻게 오용되는지도..

인권의 이름으로 행하는 폭력에 대해 성찰해야 하는 시기임도 깨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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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워낙 내가  아날로그형이라 온라인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다.

그럼에도 글을 써야지 했던건 아마도.. 새로운 도전이 주는 즐거움과 생활의 변화를 꾀하려는 것..

특히 진보넷 블로그는 왠지 괜찮지 않을까하는 마음이다.(빨리 호스팅 후원을 해야 겠다^^)

 

요즘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이사로 정신이 없다. 그래서 세상 소식을 간헐적으로 듣기는 하지만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지 못하다. 사람사는데 있어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 밥먹고 자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비용을 관리하는 것 말이다. 운동하면서 소홀해질수 있는 '생활'에 대해 환기하는 시간이다.

 

이사할 공간, 장소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없는 돈에 많은 짐과 식구들...^^ 겨우 구한 집이지만 이삿짐 쌀 일도 걱정이지만 싼 이삿짐센터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하여간 이런일로 요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시간이 여유로워, 아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올해 계획 중 하나인 블로그를 개설했다. 종종 일이 손에 안 잡힐 때, 여유로울 때 창을 열어 새로운 공기가 드나들도록 만드는 효과 를 블로그 글쓰기를 통해 경험하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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