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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꼴찌는 이제 없다: 20080301삼일절 마라톤 소감

아름다운 꼴찌는 이제 없다

 

20080301삼일절 마라톤 당일날, 멀리 서쪽에서 원정오신 형네 가족과 형 친구네 가족으로 부산스러웠다. 조용하게 가서 미친듯이 달리곤 언제 달렸냐는 듯이 조용하게 돌아오는 때와 달리, 가족들이 옆에서 부산을 떨어주니, 마치 소풍이나 온 것 같다. 이래서 가족이 좋은거여......

 

형이 일찍 도착하여, 여유있게, 꿩만두국도 먹고 (이것이 나중에 화근이 되었지만 말이다..) 춘천 명동거리로 나섰다. 가족들은 추운데서 구경꾼이 되느니, 청평사나 금병산을 다녀오시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청평사 입구에서 입장료 1300원이 아까와서 문앞에서 되돌아왔다고 한다. 아니 그럼, 그 유명한 회전문도 못보고, 고려시대 건축도 못봤겠구만......거기다가 오봉산 자락에 멋지게 걸터앉은 청평사의 산세도 못보았겠구만...... 나와 똑같은 양반들이 여기에도 있었구만...... 지난번에 내소사에 들렸다가, 입장료 안내려고 안들어갔었는데, 나는 괜찮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덩달아 안들어갔던 몇몇 지인들께 어찌나 미안했던지... 어쨋든 입장료는 무조건 없어져야혀......

 

약간 쌀쌀한 날씨가 적응이 안되던지, 서쪽에서 오신 형이 몇겁씩이나 되는 긴 팔과 긴 바지를 입었다가 벗었다가 하는 사이, 나는 과감하게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이번에 기념품으로 제공된 빨간 티셔츠를 엄마에게 주려고 사이즈를 바꾸러 갔다오고 하는 사이에 벌써 오후 1시, 뛸 시간이 되었다.

 

작년에 맨 뒤에 서 있다가 뒤따라오는 회송차를 물리치느라 고생한 것을 생각하여, 이번엔 일찌감치 앞자리를 차고 들어갔다. 몇만명이 일제히 총소리에 달려나가는 큰 대회보다는 사람의 구령에 맞추어서 하나 둘 셋! 할때 뛰어나가는 맛이 더 있다는 것을 느끼자 마자, 소수가 뛰는 고독감을 맛보아야 했다. 이번엔 어떻게 된게 여성주자들도 보이질 않는구나...... 형은 벌써 저만치 간 것 같고.. 올해도 나 혼자 투쟁이구나......

 

1km도 안 뛴것 같은데, 이게 왠일인가? 아까 2시간전에 먹은 만두국이 위에 그대로 앉아있는 것 같이 가슴이 답답하다. '형도 그렇겠지' 하고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역시 음식은 3시간전에 찰떡이나 밥으로 먹으란 말이 괜한 말이 아니구나.. 후회해봤자 소용없고, 이제는 몸의 생리적 기능이 좋아지길 기다리는 수 밖에......

 

평상시에 물속에서 다리운동을 열심히^^ 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운동장돌기를 게을리 한 것이 겉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역시 숨을 가뿐한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반환점을 돌 때까지는 몰랐는데, 반환점을 돌아나오니, 내 뒤에 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아뿔사...... 올해에는 맨 앞에 섰는데도 이게 왠일인가?

 

처음엔 의아해 하다가, 나는 곧 알게 되었다. 결국, 내 앞에 쌩쌩거리면 달린 이들은 배테랑급들이고, 몇년전까지 헉헉거리면서 내뒤를 따라오는 군단이 없어졌다. 아니 몇년동안 서서히 없어지더니, 결국 올해엔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오직, 체중이 제법 나가는 한 청년이 한참만에, 반환점을 향해 기어가는 모습이 보일 뿐이다.

 

내가 처음 마라톤을 시작할 당시, 즉 2003년도 즈음엔 마라톤은 축제였다. 그 때에도 꼴찌를 했었는데, 그 때 같이 마지막까지 걸었던 사람들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땐 꼴찌도 일등도 모두 같이 뜀뛰기를 마쳤다는 축제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바하흐로 잘뛰는 사람들만이 마라톤을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하고 생각하다가 오늘 깨닫게 되었다. 이것도 바로 자본주의의 성공위주, 실력위주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하고......

 

예전에 영국에서 맥주집(팝)에 간 적이 있다. 유럽 전체는 모르겠지만, 1997-1999년시기엔 영국도 한국이나 일본의 문화에 영향을 받아서 팝안에 비디오가 설치되었고, 노래방기기가 설치되어서 맥주를 마시다가 원하는 사람들은 나와서 노래를 부르도록 무대를 만들어 놓았었다. 그 때, 친구들과 우연히 들른 팝에서 느낀 것은 영국 사람들은 노래를 못하는 사람들은 절대 무대에 나서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노래를 아주 잘 부르는 사람들만이 무대 앞에 나가서 노래를 하고, 상대팀과 경쟁을 할 뿐, 나머지는 모두 구경꾼에 불과 했다. 그리고 무대 앞에 나선 대표주자들은 경쟁이라도 하듯이 노래를 잘 불러야 했다. 안 그러면, 구경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나는 노래를 잘하건 못하건 너 나 할 것없이 의무적으로 불러야 하는 우리의 문화랑 달라서 놀란 적이 있다. 이게 무슨 재미야? 하고......

 

나는 올해에 마라톤을 하면서 갑자기 영국의 노래방이 생각났다. 잘부르는 사람들만의 축제...... 자본주의가 먼저 발달된 나라에서의 발달된 문화는 경쟁의 문화였다면, 이제 우리도 서서히 경쟁의 문화에 젖어드는 것일까? 그래서 모든 곳에서 아주 잘하지 않으면, 아예 명함도 못내미는 경쟁사회가 되어 버린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은 열심히 한 노력의 댓가가 없는 자본주의사회속에서 이제, 성실, 노력, 진심 등의 언어를 잊어버린 것일까? 그렇게 살지 않아도 돼......라고 하면서......

 

어쨋든 나는 점차 프로들만이 참가하는 마라톤 대회를 우매하고 우직하게도 계속 참가하고 있다. 나의 실력이 늘어난 것도 아니면서 나이를 꺼꾸로 먹는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더 잘달릴 가능성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지만, 잘나가는 경쟁위주의 사회를 방해하고자, 나는 끝까지 꼴찌로라도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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