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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나면 나라는 누가 지키나?

밑에 어떤 분이 병역거부권을 위한 평화놀이라는 것이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뭐 이런식의 반응들이야 너무도 익숙해서 딱히 별 다른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보통의 경우엔 이런 이야기들에 대응을 안한다. 이야기해봤자 그냥 시간낭비 힘낭비였던 경험도 많았고 더군다나 이 블로그는 100분토론 게시판도 아니니까. 그런데 가끔씩 오늘처럼 비가 하루종일 오는 주말이라서 기분이 묘할때는 평소의 습관과는 다른 행동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국가=개인?

 

어제 '병역거부권을 위한 평화놀이' 현수막을 들고있는데 지나가던 어떤 아저씨가 우리에게 물어보았다.

 

"군대가지 말자는 건가?"

"예"

"그러면 전쟁나면 나라는 누가 지키지?"

"국가는 전쟁에서 이기려는 노력이 아니라 전쟁을 안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뭐지?"

"아저씨는 국가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국가는 개인이지"

"저는 개인이 국가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싸움 안해봤어?"

"개인들의 싸움과 국가의 전쟁은 너무나 다르죠."

 

서태웅이 던져본 슛보다는 회수는 작지만 아무튼 살짝 지겨운 레파토리의 이야기들.

그런데 그 아저씨가 국가를 바로 자신과 너무 당연하고 아무렇지 않게 등치시키는 것에 살짝 당황하기는 했다. 병역거부권을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국가의 안보=개인의 안보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내 생각엔 개인의 안보를 국가의 안보와 등치시키는 것은 큰 문제가 있어 보인다.

 

뭐 이제는 인간이 살아생전 한 번 가보지 못하는 공간조차도 국가의 영토로 편입되어 있고, 세계지도를 보면 언제 생겼는지 풍경에선 볼 수 없지만 지도에만 표시되어 있는 선들이 그려져있고 그 국경이라는 선 안에 포함되지 않은 육지가 없고, 암튼 근대 국가라는 것이 지구에 나타나고부터 우리는 확실히 국가를 그저 무시할수만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의 안보가 개인의 안보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다. 이라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한국에 살고있는 사람들보다 확실히 불안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국가안보=개인의 안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날고싶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초등학생의 안보는 무엇인가? 온갖 욕설과 폭력을 참아가며 전쟁같은 노동에 시달리는 이주노동자들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한국국민들은 북한의 대포동미사일과 미국산 쇠고기 중에서 어떤 것에 더 위협을 느낄까? 27년전 오늘 광주 시민들의 평화를 헤친것은 어이없게도 한국군대였다.

이건희의 안보와 나의 안보는 너무도 다르다. 서울에 사는 20대 남성인 내가 평화롭기 위한 조건과 목포에 사는 80대 여성인 우리 할머니가 평화롭기 위한 조건은 다르다. 국가의 안보는 개인의 안보에 영향을 끼치지만, 개인의 안보는 국가의 안보만으로 지켜질 수 없다. 안보라는 것인 단순히 외국 군대의 침략으로부터의 안전이라면 그런 등식이 성립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외국군대보다 더 많은 위협과 폭력에 노출되어있다. 우리가 안보를 이야기할 때는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해야한다. 안보가 국가의 차원에서만 이야기 될 때, 우리의 평화를 위한 여러가지 요건들은 필연적으로 삭제될 수 밖에 없다. 그동안 우리는 국가의 안보가 절대시 되는 사회가 어떻게 시민들의 안보에 무능했는지 경험해왔다. 한국정부는 북한의 위협으로부터는 국민을 안전하게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광우병의 위협으로부터, 성폭력의 위협으로부터, 입시경쟁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지 못했다. 아니 국가가 나서서 그런 위협으로 국민을 내몰기도 했다.

 

국가의 안보만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사람들을 보면 살짝 의심이 된다. 저 사람은 대체 국가로부터 얼마나 많은 이득을 얻기에 저러는 것일까. 나같은 사람들은 국가로부터 얻는 것도 있지만 국가에 빼앗기는 것도 많다. 게다가 아마도 국가는 돈많은 사람들의 안보와는 다르게 나의 안보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나는 국가를 위해 내어줄 것이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국가에 나의 안보를 맡기지 않고 내 평화는 내가 스스로 지키고자 한다. 이제 국가의 안보가 아니라 개인의 안보를 이야기해야한다. 국가의 안보가 아무리 철통같이 지켜진다고 해서 개인들의 삶이 평화로운 것은 아니다. 물론 권력과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국가의 안보가 절대적이겠지만, 가진것이 없는 사람들일수록 외국의 군대보다 더 많은 것들이 삶을 위협하고 있다. 개인의 안보는 아마도 가족이나 마을과 같은 삶이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작은 공동체에서 시작해야할것이다. 그 부분은 아직은 잘 몰라서 딱히 할 말이 없다. 아마도 내가 하고 싶은 평화운동이 저 멀리 내다보고 가야할 방향일 것이다.

 

국가가 해야할 노력

 

개인과 공동체들이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안보를 자신의 것으로 가지고와야 하는 것이가장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국가안보 자체를 무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 국가가 해야할 노력은 무엇일까?

국가 안보의 목적이 국민의 평화라고 한다면, 국가가 해야할 노력은 어느 누구와의 전쟁에서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군대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누구와도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강한군대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안보상황이 좋은 나라는 아니다. 어떤 전쟁이든 이기든 지든 안하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전쟁에서 이긴다고 해서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라크에서 죽어간 많은 미군들을 볼 때, 미국은 과연 국민의 생명을 잘 지키는 안보가 좋은 나라일까? 전쟁은 어쨌든 많은 국민을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몰아넣는다. 가장 좋은 나라는 전쟁을 안하는 나라이다. 그럼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외국이 쳐들어오면 어떡하냐고. 전쟁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외국이 쳐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노력이다. 무작정 최악의 상황만을 상정하면 사실상 토론은 필요없다.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한 노력은 무엇이 있을까? 국가간의 갈등이 일어나는 요소들을 외교적인 방법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국가가 할 수 있는 노력일 것이다. 또한 국내적으로는 전쟁준비가 아닌 다른 방면으로 사회적인 역량을 모아가는 것이 전쟁을 예비하는 방법일 것이다. 전쟁이 애들 장난이 아닌 이상, 정말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작스레 외국이 쳐들어오지는 않는다. 한국은 지금까지는 필요이상으로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면서 지나친 전쟁준비만을 해왔다. 한국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전쟁을 안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 먼저 과연 한국의 적정 국방력이 어느정도여야 하는지 합리적인 토론을 통한 사회적합의를 모아서 결론을 내려야한다. 언제까지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과정된 위협만을 고장난 축음기처럼 떠들어 댈 수만은 없지 않은가. 지금 상황에서 적절한 국방력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병역거부권의 문제는 쉽게 풀릴 것이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적정 군사력을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한국만의 노력으로는 힘들고 주변국들과의 함께 진행되어야 할것이지만, 오히려 한국에서 먼저 치고나가면서 분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보다는 그런식으로 동북아의 평화국가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한국이 유리하지 않은가.

 

 

 

 

사실 국가가 해야할 노력을 왜 내가 생각해야하나 싶기도 하다. 국가가 해야하는데 하도 안하니까 너무 답답해서 써봤다. 어떤 의견들은 나의 의견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국가차원에서는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써봤다. 암튼 안보를 이야기할 때 국가라는 테두리를 넘어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하지만 아직 나조차도 그런 상상력이 너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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