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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국가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일

새벽길님의 [김선일 6주기] 에 관련된 글.

 

사람들은 원래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기억하는 속성이 있다.

나 또한 스스로 부끄러운 일이나 감추고 싶던 일들, 부정하고 싶던 일들을 곧잘 잊어버리곤 한다.

그건 무의식을 가장한 지독한 의지일거다. 하지만 반성이든 성찰이든 어쨌든 간에 억지로 기억하고 곱씹어 불편한 마음을 상기시켜야 하는 일들도 있다.

 

미디어스에 실린 기사 '김선일,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 를 보고서야 김선일 씨가 죽은지 정확히 6년이 됐다는 것을 알았다. 파병국가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몸서리치게 싫었고, 하늘 보기 부끄러웠는데, 언제나 그렇듯 시간이 지나고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었다. 가끔씩 '그린존'같은 이라크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볼 때도, 미국 나쁜놈이라는 생각만 들었지, 내가 파병국가의 국민이라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한 번, 딱 한 번 파병국가의 국민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던 적이 있다. 은국이가 병역거부 선언할 때였다. 강철민과 함께 농성한 기억이, 파병을 막을 수 없었던 무력감이 물밀듯이 솟구쳤다. 하지만 그 때도 김선일을 생각하지는 못했다.

 

김석 기자의 글을 보니, 당시 강경한 한국 정부의 입장이 김선일씨에게 해를 끼칠까봐 외신들조차 조심조심 했다던데, 국가가 국민을 지켜줄거라는 환상 따위는 버린지 오래지만, 그래도 좀 충격이었다. 그리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안타까운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과 김선일의 죽음을 기억조차 못하는 사람들(나를 포함해서) 모습이 핀이 나간 필름처럼 어긋나게 겹쳐지면서 슬픈 생각도 들었다.

 

미디어스 기사를 보고, 다시 한 번 파병국가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해본다. 김선일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짊어진 원죄의 상징일 것이다. 내가 속한 국가가 저지른, 나는 결사코 반대했던 악덕에 대해서 내가 책임질 수 있고 책임져야 하는 몫은 어디까지일까 생각해본다. 아울러 베트남에서 한국 군대가 저지른 전쟁범죄, 한국 대기업들이 가난한 나라에 가서 저지르고 있는 노동탄압과 환경파괴, 이런 일들에 나는 어떤 책임을 느끼고 무슨 행동을 해야할까? 물론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니라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악행들로 파생된 이익들을 어떤 형태로든 취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내 책임이 없다고 말 할 수는 없다. 파병국가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일. 일단은 더 많이 부끄러워하고 더 많이 슬퍼하고 기억하고 고통스러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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