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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택시 노동자

택시노동자들 중에도 분명 '민주택시노조' 분들이 계시겠지만 이런 분들은 말이 없으신지, 아님 자신의 정체를 들어내기 꺼려하시는지, 왠만해선 만나기가 어렵다. 하지만 오늘 아침처럼 하필이면 [극렬 한나라당 분자] 아저씨가 운전하는 택시를 탔을 때는 참으로 난감하다. 어찌나 하나하나 꼬치꼬치 캐물으시는지. 이런 분들 특징은 마치 나의 생각이 궁금하다는 듯 질문으로 시작했다가, 쒜리 지 주장만 늘어놓으신다는 것인데, 촘스키에 버금가는 미국의 인지언어학자이자 정치 운동가인 레이코프의 말대로,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규정짓는 프레임이 굳어진 이들에게 아무리 'fact(사실)'을 설명한다고 해도, 그 'fact(사실)' 또는 'truth(진실)'이 자신이 맹종하는 프레임에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에는 프레임만 유지될 뿐 사실은 내동댕이 쳐진다는 것이다.
 
 
택시 안에는 '손석희의 시선집중' 이 한가득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볼륨을 줄인 기사 아저씨께서는 '빨갱이' 운운하시며 열린우리당과 정부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과거 학생운동권 출신 (특히 NL계열의 주사파) 인사들을 비난(절대 비판이 아니다!)하며, 국가보안법이 21세기 한국 사회에도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역설을 늘어놓으셨다. 더불어 민노당에 대한 색깔론도 양념처럼 잊지 않으셨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여대는 사람에게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을 맹연습 중인 요즘 학교 생활이지만, 아무리 귀찮다는 듯 듣고 있어도 아저씨의 질문과 비난이 끊이질 않기에 나도 나름 조목조목 따져서 대답을 해줬다.
 
 
내 정치적 관점에서는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이나 다 똑같은 개새끼들이다, 난 민노당에도 상당히 비판적이다. 절대 아저씨가 생각하는 그런 빨갱이 정당의 축에도 끼지 못한다"라던지, "그들의 과거 주사파 활동은 극단으로 치닫는 군사파시스트 정권 하에서 또다른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행위였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 중 대다수가 지금은 대부분이 전향하여 한나라당과 조선일보와 뉴라이트 운동에 포진하고 있다" 라던지, 아저씨가 비난한 이종석 통일부 장관에 대해서는 "지난 번 인사청문회를 보니 한나라당 국회의원들 앞에서 자신의 과거 경력에 대해 극구 사과의 절을 올리는 꼴불견을 연출하더라"라던지 "국가보안법의 시작이 식민시절 독립운동 하시던 분들 조지기 위해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치안법이었고 광복 후 한나라당의 뿌리인 친일파가 이름만 살짝 바꾸어 자기들 마음대로 악용했을 뿐이다, 국보법 폐지된다고 해서 광화문에 인공기가 휘날리고 남한 사회가 적화되지 않는다, 우리 시민사회가 얼마나 기름기 좔좔 흐르는데 그러시나, 저들이 조장하는 공포심에 휘둘릴 시민사회가 아니다" 라던지, "UN인권위원회에서조차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라던지, "자유민주주의 자꾸 운운하시는데, 아저씨가 지지하는 집단들이 의미하는 [자유]의 속뜻을 아신다면 그것이 결코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쓰레기 개념이라는 것을 아시게 될 것이다" 라던지 등등의 내 의견을 밝혔다.
 
 
아저씨의 마지막 질문은 이러했다. "80년대 최루탄 날리고 하던 시절에, 초등학생이었겠네요? (난 88올림픽때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라고 비꼬듯 물으신다 (보아하니 나이도 어린 놈이 뭘 그리 아는척 하냐는 눈치다). 그에 대한 나의 마지막 답변은 이러했다. "기사님, 그래서 역사는 공부하라고 있는 거랍니다. 해도 제대로 해야하는 거죠. 안그렇습니까?"  이후,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날 학교 정문까지 잘 데려다 주셨다.

 

from egloos blog, 2006년 5월 8일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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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오늘 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

난 왜 그들의 억지춘향을 대범하게 넘기지 못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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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칼럼] 일본의 우경화와 우리들의 우경화

 

내 블로그에 [거울을 마주하고 있는 양국의 극우] 라는 글을 쓰면서도 나의 모자란 글솜씨와 지식으로 답답한 마음이 한가득이었는데, 마침 오늘 한겨레에 박노자 선생이 자신의 칼럼에 이런 나의 터질듯한 답답함을 한방에 뚫어주는 좋은 글을 써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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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칼럼] 일본의 우경화와 우리들의 우경화

 

최근의 일본을 두고 우리는 상투적으로 ‘우경화’라는 말을 쓴다. 후기 자본주의의 위기에 봉착한 일본이 신자유주의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심화하는 계급갈등을 피비린내 풍기는 애국주의 이데올로기로 봉합하여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이야기다.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안으로는 이윤 저하란 위기에 빠지고 바깥으론 중국의 부상에 위기감을 느끼는 일본이 스탈린주의적 좌파의 위기를 이용하여 극우주의 일색의 정치로 가는 것은 염려스러운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 보수 논객의 입에서 “일본 우경화 걱정이네” 식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위선의 악취가 코를 찌른다.

그렇다. 일제 패망 이후에 일본의 공론마당에서 한때 우세했던 자유주의·온건좌파 담론이 지금 극우들에게 여지없이 밀린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좌파는커녕 제대로 된 자유주의라도 시민권을 얻은 적이 있었는가? ‘개인 존엄’을 기반으로 하는 일본 교육기본법에 여당이 ‘전통·나라에 대한 사랑’, 곧 ‘애국심’ 배양 조항을 넣기로 했다는 소식은 진보적 일본인·한국인에게 충격을 불러일으키고도 남았다. 그런데 저학년 학생을 ‘체벌’이란 미명 아래 학대한 교사를 ‘의원 면직’으로 처리해 사실상 징계를 하지 않는 반면, 국기에 대한 맹세와 같은 일제식 전체주의를 방불케 하는 의례를 거부한 교사를 지속적으로 마녀사냥 해 온 대한민국의 교육 관료와 극우 언론들은, 개인 존엄이 안중에 있기라도 하는가? 개인 존엄에 대한 관념이라도 있었다면 일제시대를 연상케 하는 머리(두발) 제한이라는 단어는 벌써 역사용어 사전에 들어가고 말았을 것이다.

아시아 침략에 대한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과 재일 조선인 등 소수자의 차별은 천인공노할 일이다. 그런데, 이라크 주둔 일본군의 철수가 개시돼도 한국군 철수의 가능성에는 굳게 입 다물고 미국의 잔혹한 중동 침략에 계속 들러리 노릇을 서고 있는 한국 정부는 과연 그런 행태를 책망할 자격이 있는가? 한편으로는 스페인 등 여러 나라들처럼 ‘불법 이민자 사면’을 벌여 직장을 갖고 있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에게 합법적 체류자가 될 기회를 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잔혹한 단속으로 피부색이 다른 민초들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한편으로는 유행이다 싶어 ‘다민족 다문화 사회’를 들먹이는 당국자들을 보노라면 쓴웃음이 나오다 분노의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대륙침략으로 횡재한 일본 재벌들한테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도 고약하게 느껴지지만, 미 제국의 베트남 침략으로 국외 진출과 돈벌이에 성공한 한진·현대 등의 국내 재벌들이 ‘월남 특수’로 벌어들인 돈의 일부라도 베트남 사회에 환원했다는 이야기 역시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일본이 전후의 자유주의에서 극우주의로 넘어가고 있지만, 우리 역시 일제말기 식의 극우주의를 벗어나려고 한때 약간의 노력을 하다가 지금 다시 우향우 하고 있는 형편이다. ‘국산’ 우경화가 가져다주는 ‘밑’의 고통에 대한 불감증의 정도로는, 대한민국이 구미지역은 물론 일본까지도 능가할 것이다. 시위 현장에서 경찰들의 폭력으로 농민·노동자가 죽거나 불구자가 되고 임신부가 유산을 해도, 민중을 적군처럼 다루는 정부를 ‘주류’ 신문이나 시민단체들이 한번 규탄해 본 적이 있는가?

일본의 극우신문들이 애국심을 한국에서 배우라고 외쳐대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아류, 친일 주구로부터 성장해 온 한국의 극우주의는 이미 일본 극우의 ‘모범’이 될 정도로 ‘발전’되어 우리의 미래를 버젓이 가로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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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게제된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댓글을 보니, 역시나 좌파라면 이를 악물고 달려드는 사람들의 짧은 욕지거리가 눈에 띈다. 이런 댓글들을 볼 때면 늘 궁금한 것이지만, 정말로 한나라당에서 알바를 고용해서 각종 인터넷 댓글들을 장악하고 있다는 게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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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 자살하다

핸드폰이 갑자기 울린다.

수신번호를 확인해보니 비정규직 교사로 교직에 나섰던 첫해에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눴던 그 녀석들 중 아직도 연락을 하고 지내는 녀석이다.

군대가기 전 한참 알바중이라며,

"첫 월급 타면 선생님 좋아라하시는 고기 사드릴게요!" 라고 했던 녀석인데,

회사가 부도나면서 그 전부터 받지 못했던 월급까지 합해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떼였다며 울분을 토하던 녀석이다.

 

'드디어 월급을 받은건가..... 오늘 간만에 소주 한잔 하게 생겼네....'

라며 구닥다리 핸드폰을 조심스레 열었다.

 

"여어~ 왠일이냐, 떼인 월급 받아냈냐?"

"쌤... 안좋은 일로 전화한 거에요......."

 

덩치가 나와 비슷해서 100kg 클럽을 만들었던 녀석이라 성격도 나와 비슷하여

왠만한 일에는 우울해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는 녀석인데,

오늘은 이상하다.

 

"쌤, 우리 2학년 때 가르치셨을 때, 재윤이 기억하세요?"

"응, 당연히 기억하지. 키크고 대따 잘생기고. 왜, 뭔 일 있어?"

"오늘 새벽에 자살했어요......"

 

뭔가 세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워낙 말이 없고 조용한 성격이라 그렇게 친했다고는 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떨어진 성적 올려보겠다며, 특히 자기는 영어를 잘하고 싶다며,

다른 녀석들하고 다르게 늘 수업에 굉장히 집중하며 열심이었던 녀석이었다.

그 점때문에라도 아직 그 녀석을 쉽게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 다음 해에 있을 정규직 교사 공개채용을 앞두고,

학교 비조합원들 사이에서는 나를 두고 "빨갱이"라며 말이 많았고,

혹여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는 나에게

그렇게도 말이 없던 녀석이 지나가며 한마디 던졌다.

"쌤, 쌤이 영어 제일 잘 하고, 제일 잘 가르쳐요. 걱정마세요."

 

지금 듣자면 한없이 부끄럽고 부담되는 말이지만,

당시만 해도 녀석의 그런 한마디는 엄청난 자신감과 희망을 불어넣기에 충분했었다.

(결국 그 해에 교장과 그에 기생하는 몇몇 선생들이 날 학교에서 내쫓았다. 결과적으로는 비정규직 교사의 경우 특별한 경우 연속하여 계약을 하자는 조합원들의 요구로 나를 포함한 "빨갱이"로 찍혔던 비정규직 교사들과 함께 그 해 공개채용에서 떨어졌던 "교장에게 인정받은 교사들"까지 다시 2년차 비정규직으로 근무할 수 있게 됐고, 이듬해 결국 "빨갱이"로 찍혔던 우리만 공개채용을 통과하여 정규직이 되었다.)

 

"아직은 왜 자살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 그럼 이따 전화해줘."

 

그리고 오늘 밤 녀석이 술에 취한 목소리로 다시 전화했다.

"쌤, 나 소주 네병 마셨어....."

말이 좀 짧으면 어떠랴, 고작 열살 차이인데.

"그리고 많이 울었어요... 개새끼...."

 

여자친구 문제였단다. 헤어지자고 선언하고 자기를 멀리한 여자친구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했고, 결국 양주 한병을 마신 후에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단다.

 

"개새끼... 쌤, 나 막 욕나와요... 그 새끼가 졸라 미워요... 그러면서도 너무 슬퍼요..."

 

21살의 청춘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왜 세상은 날 늘 억압하고 구속하려 하는지,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뒤죽박죽인 나이다.

도무지 정답을 얻을 수 없지만,

그래서, 정답이 없어서 더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그래서 더 많은 꿈을 꿀 수 있기에 아름다운 나이다.

 

하지만, 재윤이란 녀석은 결국 그 시간들을 이겨내지 못했다.

 

가끔씩 졸업생들을 만나거나, 아님 그들의 살아가는 소식을 들을 때면,

얼굴은 반가움에 함박 웃음을 짓고 있으면서도

마음 속 한 구석은 이상하게도 쓰려온다.

 

너무도 힘들어서, 그래서 너무도 많이 울었던 나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녀석들이 겪고 있을 그 힘든 시간의 무게들이 나에게도 전해져옴을 느껴서일까.

 

그러나 대부분은 그 시간의 통로를 잘 극복하여 진짜 어른이 된다.

하지만 하나둘씩 낙오되어 가는 이들의 소식도 전해져 온다.

그러나 문제는 갈수록

낙오된 자들의 소식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것이 아닐까.

그 낙오자들이 나의 학생들이었고, 나의 친구들이었을 때,

슬픔은 고통이 되고, 눈물은 한여름 더위를 더욱 달구는 뜨거운 소낙비가 된다.

 

"술 조금만 마시고 일찍 들어가. 산 사람은 더 열심히 살아야 해."

 

녀석들에게 영어단어 몇 개, 수능문제 풀이 기술 몇 개 더 가르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알쏭달쏭 도무지 이해를 못하게다는 녀석들 머리 속에

그 알량한 지식 몇 개 더 쑤셔넣어야먄

그게 진짜 참교사다, 라는 세간의 인식에 응하고자 나 또한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녀석들에게 그리 길지 않지만, 나름 경험해 온 삶의 무게들에 대해,

십 미터 먼저 달려온 인생의 선배로서,

삶에 관한 여러가지 단면들을 이야기해주려는 노력도 많이 했다.

해서 녀석들의 삶은 슬픔과 아픔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자유로워질 수 있길 바랬다.

 

"쌤, 보고 싶어요....."

"그래, 나도.... 너희들 많이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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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마주하고 있는 양국의 극우

날짜가는 줄 모르고 살다가 문득 TV를 보니 SBS라는 반동적 채널에서는 한 일본 우익 청년의 이야기를 스페셜로 내보내고 있고, 그나마 좀 나은 MBC라는 채널의 PD수첩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일본 속의 新친일파인 오선화에 관한 이야기를 내보내고 있었는데, "아, 그러고 보니 광복절이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하던 일 모두 멈추고, 이 프로그램 둘을 모두 열심히 시청했다. 광복절이면 으례 나오는 방송이니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문득 의문이 하나 들었다.

 

양쪽 프로그램 모두에서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생각을 여과없이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었는데, 그들의 인터뷰 발언 하나하나가 대한민국 극우-수구주의자들의 말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했다. 단지 그 발언들의 출발점이 한국이냐 일본이냐의 차이만 있었을 뿐이다.

 

방송은 일본 극우들의 생각이 점차 일본 국민들 속으로 흡수되고 있음을 우려하고 있었지만, 한국 극우들의 생각은 한국민들에게 흡수되지 않았느냐고 한다면, 그건 절대 아니올시다, 가 아닐까 싶다. 언론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극우적 인사들의 발언, 한나라당의 성명, 한기총의 집회성명들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각종 포털사이트에 넘쳐나는 네티즌들의 댓글들에서 과반수 이상이 저들 극우-수구 집단의 주장과 논리에 조금도 의심을 품지 않은 일반 대중의 의식을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경우, 군사독재 시절을 거쳐오며 대중에게 이식된 '평균적 감성과 관점'에서 조금이라도 이탈한 경우, 무조건 "친북반미"와 "좌익빨갱이"라는 애매모호한 언어로 공격하는 것이 다반사 아니냔 말이다. 보통의 인터넷 사이트 댓글 게시판에서 민노당, 민노총, 전교조, 한총련에 가해지는 마녀사냥을 보면, 저 중 두 단체에 속해 있고, 한 단체에게는 선거때마다 표를 던지는 나로서는 진저리치며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요즘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보자면, 마치 양국 극우들의 멋진 한판 대결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씁슬하다. 한국의 좌파는 노무현 이후 그 기본적 존립 조건마저 위태로워지고 있고, 일본의 양심적 평화세력은 제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극소수의 상황으로 내몰려진 상황에서, 양국의 극우는 서로 똑같은 얼굴을 하고 서로의 얼굴에 비난의 똥물을 쏟아내고 있는 듯 하여, 나로서는 무지 헷갈릴 뿐이다. 이 문장은 어느 나라의 지배세력으로부터, 이 말은 어느 나라의 우익들로부터 나온 것이란 말인가, 라고.

 

똑같은 모양새를 한 양국의 우익들이 서로를 향해 달리고 있고, 언젠가 이들이 쎄게 충돌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다. 하지만 8.15가 진정 민족의 해방절이 되고, 양국이 미국의 우산 아래서 벗어나 진정한 협력-상생의 관계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진보의 목소리와 영향력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커져야하지 않을까.



지난 6월 도쿄에 주말 여행을 다녀왔었다. 빈곤한 삶에 왠 해외여행이냐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래도 좀 무리를 해서라도 그 놈의 "식견" 좀 넓혀보자는 자기위안으로 다녀온 여행이었다.

 

둘째날 날이 밝아 호텔에서 나오자마자, 예의 그 극우단체의 트럭이 이른 아침 비어있는 도로 위를 달리며 확성기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큰 소리로 외치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시간에 한 번 꼴로 이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서 더욱 놀랬다고나 할까. 여행의 시작점이었던 신주쿠에 도착하니 역시나 아래 사진처럼 그 한복판에 극우단체 회원들이 트럭을 세워놓고 일장 연설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서 사진을 찍으려하자 이를 방해하는 극우단체회원때문에 멀리서 줌인하여 찍을 수 밖에 없었다. 헌데 내용을 들어보고 있자니,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러시아와의 영토분쟁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왜 우리라고 미국처럼 초현대식 무기로 무장한 강력한 군대를 가질 수 없겠는가, 헌법을 개정해야한다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일본의 실상이 이렇구나 싶어서 상당히 착잡한 마음으로 아사쿠사역에 도착했을 때다. 역 입구에서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담배를 하나 피고 있자니, 입구 역 벽에 붙어 있는 일본 공산당 의원의 벽보를 볼 수 있었다. "아, 아직 일본에 양심세력이 죽지는 않았구나" 싶어서 다행이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절대 존재할 수 없는(^^) 공산당 아닌가! (물론 민노당 수준의 정당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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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핸드폰을 살 것인가

 

2년간 써오던 스카이 핸드폰이 드디어 그 수명을 다했다.

AS를 받자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비용이 부담스럽다.

워낙 기계치다 보니, 새로 출시되고 있는 핸드폰이 뭐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몇 일동안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지만, 내 눈엔 죄다 그 놈이 그 놈일 뿐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낼 수 있는 정보들이란 고작,

우리나라 핸드폰이 노키아와 모토롤라에 밀리고 있다는 것,

VK핸드폰이 얼마전 부도를 내고 망해버렸다는 것,

그리고 많은 네티즌들이 용산 전자상가들에 대해 증오에 가까운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는 것 정도다.

 

하지만 용산에 대한 온갖 비난을 꼼꼼히 읽었다해도

여전히 나같은 기계치들이 맘놓고 발길을 돌릴 수 있는 곳은 용산뿐이다.

갈수록 이태원 골목에 버금가는 호객행위에 애써 무관심한 척하며

순간 여기다 싶은 곳에 발길을 멈추고 들어가보기로 한다.

 

내가 요즘 가장 탐냈던 것은 VK핸드폰이었다.

경제적 형편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요즘, 그렇게 싼 가격에

괜찮은 디자인과 괜찮은 성능을 가진 핸드폰을 살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나가던 벤처기업 VK의 갑작스런 부도는 우리나라 핸드폰 시장에 일대

혼란을 가져오지는 않았어도 나처럼 싼 가격 덕에 VK를 원했던 사람에게는,

용산을 둘러보며 느꼈던 많은 것들과 함께 더 큰 혼란을 줄 뿐이다.

VK에 대해 물어보면 미친놈 취급을 해버리는 용산 아저씨들에게 느꼈던

서운함과 함께 말이다.

 

몇 주째 주말마다 용산 전자상가를 돌아다니며,

우리나라 핸드폰 자본주의의 여러가지 모순들을 느끼게 됐다.

 

거대 대기업들 틈에서 나름 선전하고 있던 작은 벤처기업 VK의 갑작스런 몰락,

소득 수준 이상의 구매를 직간접적으로 강요하는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출시된

각종 뽀대나는 멋진 신형 핸드폰들,

지난날의 영광을 뒤로한 채 서서히 몰락해가는 거대 오프라인 전자제품 시장 용산의

썰렁한 모습들과 그곳에서 밥먹고 살아가야만 하는 많은 사람들,

어느 분의 말처럼 "없는 놈이 없는 놈 무시하고 사기치는 게 제일 기분 나쁘다" 는

명언을 다시금 되새기게 해주는 용산 전자상가 여기저기에 도사리고 있는

신용할 수 없는, 그러나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각종 거래행위들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다녀올 수록 머리 속은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핸드폰이야 다른 부가기능 다 필요없고 통화와 문자보내기 정도만 잘 되면

그만이지," 라는 생각을 아무리 굳게 다짐해봐도

기계의 튼실함과 판매가격 등을 고려해 볼때, 쉽사리 선택하기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다음 주말에도 용산을 한 번 더 둘러볼 작정이지만,

인기 연예인들이 한껏 눈을 치켜뜨고 선전하는 여기저기 붙여진

신형 핸드폰 광고 사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21세기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이라는 IT세계와 나와는 아무래도

가까이 할래야 도무지 가까이 할 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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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으로 가다

 

 

▲ 11년만에 다시 찾은 동해 바닷가. 여기는 정동진역 옆 등명해수욕장이다.

 

 

▲ 동해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 정동진역으로 향해 가는 기찻길

 

 

▲ 정동진 썬크루즈에서 바라본 동해바다

 

 

▲ 동해바닷물이 주는 여백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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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을 비추던 햇살

 

 

지난 5월 16일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있었던

"교육차별철폐 총력투쟁대회"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하에서 교육양극화를 심화시킬

국제중학교 설립의 중단을 촉구하고

예산을 낭비해가며 성과주의적 전시행정의 극치가 아닐 수 없는

"자원학교 (그들은 "좋은학교"라 한다) 만들기" 프로젝트를 막기 위해

당시 열흘 넘게 교육청 앞에서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던

전교조 서울지부장 정진화 선생님과 함께 많은 조합원들이 모여

벌였던 투쟁대회였다.

 

나아가 각종 교육차별정책을 철폐하고

궁극적으로는 무상교육실현을 쟁취하자는 대안까지 주장했던 당시 투쟁이었다.

 

지부장의 단식투쟁과 조합원들의 가열찬 투쟁에 더하여

서울시 교육위원회 소속 전교조 성향의 교육위원들의 활동까지 힘입어

국제중 설립은 유보되었고 자원학교만들기 프로젝트는 그 규모가 줄어들었다.

 

이러한 전교조의 투쟁과 함께 교육의원들의 활동 덕에

공정택 교육감은 꼬리를 감추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었다.

하지만 이는 한나라당의 서울시 의회 장악과

뒤 이을 교육의원 선거에서 전교조 성향의 교육의원들이

대거 탈락할 것을 예상했던 교육감의 계산된 행동이었을 뿐이다.

 

지난 8월 1일 모든 부자신문들은

전교조의 교육의원 선거 참패를 대서특필했다.

그에 앞서 전교조 부산지부의 한 세미나 내용을 가지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해묵은 색깔몰이를 했던 것도

결국엔 모든 것의 연장선상이었다.

교원평가와 성과급 차등지급에 관련한 문제에서

왜 교사들이 반대하는지 (이것은 비단 전교조만의 반대가 아닌데도

대부분의 언론은 전교조만을 물고 늘어진다) 에 관한

다양한 관점에서의 심층적 분석이 전무하다.

그저 물에 빠진 새앙쥐를 끊임없이 코너로 몰아가는 형국이다.

 

어찌됐든 이제 전국의 교육위원회에서 전교조 성향의

교육위원들은 이전보다 급감했다.

거의 모든 지방의회가 한나라당에 의해 싹쓸이 당했듯이

이제 전국의 모든 교육위원회 또한 그와 비슷한 성향의 인물들로 채워지게 됐다.

전교조 또한 수구집단들의 끊임없는 공세 덕분에

갈수록 그 입지가 좁아지는게 사실이다.

지도부 또한 뚜렷한 대안과 새로운 활동방식을 모색해 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의 문제는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야했던 공정택 교육감의 지난날의 작전상 후퇴가

이제는 신자유주의와 성과주의에 물든 온갖 교육행정으로

휘몰아칠 것이 틀림없다.

또한 우리 지역과 같이 잘사는 동네와는 거리가 먼 곳에 위치한

지역의 학교와 학생들은

그들보다 못살고 못배우고 잘나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분노의 화살을 공교육 전반과 전교조로 돌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따사했던 5월의 저녁 햇살은 우리의 투쟁에

밝은 희망의 빛을 내리쬐 주고 있었다.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과 맑은 두 눈빛의 아이들이 있는 한

언젠가 상식이 살포시 자리한 교육희망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방학중에는 유난히도 조용한 시간의 연속이다.

그러나 다가올 2학기, 우리는 또다시 투쟁의 불꽃을 활활 타오르게 해야한다.

그들의 공세 앞에 공공성의 최후의 보루인 교육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의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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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중독

 

       <광화문에서 바라본 조선일보 본사>

 

 

[쪽지1]

(...) 소위 조중동을 보는 수백만을 미워하는 사람과 어떻게 마음을 터놓고 대화가 가능한지 말해주세요. 자신이 원하는 신문을 읽을 권리도 자유도 없는 나라를 만드는게 오소의 꿈입니까. 그신문의 내용이 옳고 그름을 왜 다른사람과 집단이 평가해야 합니까. 지나친 우월감 과 독선아닌가요. (...)

 

[쪽지2]

(...) 살아온 방법이 다른만큼 가치관의 차이도 있겠지만 서로가 조금만 상대편 입장에서 생각을 해준다면 더불어 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오히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사회가 더 위험한 사회라고 여겨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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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알고 지냈던 어떤 분에게 왔던 싸이월드 쪽지 내용이다. 나와 연락을 끊은 이유에 대해 보내온 두 개의 쪽지를 보고 있자니, 일단 그 분을 너무 좋게 생각했고, 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이해하셨던 것에 대한 괜히 서글픔이 앞섰지만 (난 그 신문을 읽는 사람을 미워한다고 하지 않았다. 그 신문을 만드는 자들, 그리고 그 신문의 내용을 굳게 믿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무조건 빨갱이의 딱지를 붙여 공격하는 자들을 미워한다고 했을 뿐이었다....), 일단 그러한 개인적 감정은 둘째치고, 역시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조선일보 중독"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교육 헤게모니를 선점하기 위해 행해지는 전교조에 대한 조선일보의 각종 공세는 그렇다고 해도, 우리 사회 전반에 그들이 끼치는 영향이라는 게 아직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혹자는, 문화-예술 쪽 내용은 그래도 볼 게 많으니 그래도 좋은 신문 아니냐고 하지만, 역시나 그 신문 전반에 흐르는 논조로부터 그 어떤 장사라도 영향받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할 수가 없다. 나 또한 고등학교 시절, 집에 공짜로 배달된 조선일보로 대학본고사 대비 논술 공부를 한답시고, 저 신문 사설과 각종 칼럼에 실렸던 내용들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았었고, 그 영향은 아직도 내 무의식 저편에 찌꺼기를 남기고 있지 않은가. 학교에서도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열심히 읽은 조선일보의 내용을 토대로, 전교조와 노동운동 전반에 대한 조선일보식 비난을 일삼는 경우가 허다하다. 졸업 후 거의 모두가 노동자의 삶을 살게 될 녀석들이 그 누구보다 더 反노동자적 가치관을 굳히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 서글픔을 갖게 된다. 대부분의 교사들 역시 평상시의 대화 속에서 조선일보식 사고방식을 그대로 드러내며 교육을 이야기한다. 아직도 구태의연을 벗어나지 못한 색깔몰이와 팩트 자체를 180도 바꿔버리는 왜곡된 분석과 관점주입으로 인해, 현실의 문제점들을 파악하는 데 우리는 얼마나 더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이제는 그러한 조선일보식 관점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 되어, 그들의 것에 비판의 잣대를 들이댔을 경우, [쪽지1]의 경우처럼 그들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되고, 비판자는 우월감과 독선으로 가득찬 "좌익꼴통"이 되어버린다.

 

난 조선일보를 만드는 자들과 그 신문의 내용을 굳게 믿는 분들에게 [쪽지2]의 내용을 다시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다. 진실로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우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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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 성과급 반납 투쟁에 즈음하여

이글루스에서 블로그를 이사 중이지만,

문득 글빨이 강하게 땡겨서 하나 써재끼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방학 전 심각한 분위기의 분회총회에서

윤선생님은 이렇게 말하셨다.

"전교조가 뭔데, 왜 맨날 해주는 거 없이 이렇게 고민하게 만드는 거야?"

 

비합법화 시절, 학교측의 거센 방해공작 속에서도

끝까지 조합원으로서의 이름을 포기하지 않은 소위 "독수리 5형제" 중

한 분이신 윤선생님의 말씀이셨기에 더 강한 임팩트로 다가왔었다.

 

엊그제 "교원 성과급"이란 이름의 돈뭉치를 반납했다.

통장에는 딱 그 돈만큼의 잔액이 남아 있을 뿐이었고,

이 돈을 반납해버리고 나면 다시 내 수중에 돈은 한 푼도 없게 된다.

 

"악마의 유혹" 이라고 했다.

전교조 본부에서 날라온 성과급 반납 투쟁에 관한 소식을 담은 이메일에서

저 문구를 보았을 때, 왜 그리 저 흔한 클리셰가 인상깊게 뇌리에 박혔을까.

 

가끔씩 들어가보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방에서는

교사의 월급이 너무 많다고들 난리다.

교사 4년차인 나로서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글들뿐이지만,

그래도 빠듯하나마 저축하고 편찮으신 부모님께 돈 조금 보내고

생활비 쪼개써가면서도, 우리 사회의 대다수 노동자들에 비해서는

그래도 유복한 생활을 하고 있으니 불평하지 말자며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아왔다.

 

그래서 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선두에서

전체 교사 사회의 창의성과 모든 성과를 성과급 차등 지급이라는

악랄하고도 교묘하기 짝이 없는 방법으로 쥐어짜내어 흡수해버리려는

교육부 관료새끼들과 이에 복종하는 학교 관리자 집단들의

수작으로 통장에 수십 만원의 돈이 입금되었을 때, 나의

분노는 극을 향해 치닫기만 했다.

 

반납하고 났어도 찝찝한 기분은 여전하다.

성과급 차등 지급에 숨어있는 저들의 악랄한 의도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이

입금된 커다란 액수의 성과급을 신나게 쓰고 있을

학교의 저들 비조합원 교사들을 생각하자니

괜시리 시샘 비슷한 것을 내보게 된다.

그들이야 언젠가 곧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라는 최후의 공습이 본격화 되면

교육 전반이라던가 학생 생활에 대한 신실한 고민과 노력 없이

그저 학교 관리자들에게 잘 보여 좋은 등급 받으려는 노력만 하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할테고, 혹여라도

자신들이 전반적인 평가에서 최하 점수를 받게 되면

그간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않고 교무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일단 자기 통장에 입금되어 들어온 이 돈들, 지금

신나게 써버리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도 지금 당장 돈 들어갈 구석이 한두 군데도 아니고

물질적으로야 막막한 삶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그 동안 돈에 연연하지 않는 행복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전교조에 소속된 교사라는 게

잘해도 욕먹고 못하면 더 엄청난 비난과 욕지거리를 먹는 존재 아니었던가.

비록 지금의 성과급 반납 투쟁이 아무런 효과없이,

아무런 파장없이 이루어지면서 저들이 눈하나 깜짝하지 않을 거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돈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고 싶고,

저들의 행정적 행위 하나하나가 종국엔 우리 아이들의 삶을

좌지우지할 틀을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바꾸기 위함임을 알기에

외롭다, 시샘난다 투정할 것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전교조에 관한 기사들이 나와 그 밑에 달린 댓글들 보면

교원평가와 성과급 차등 지급에 반대하고,

"김정일 만세, 북한 만세"를 외치는 친북좌익 단체라며

자신들의 모든 분노를 담아 비난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실제 전교조에 몸담고 있는 교사로서,

억울하다 징징대고 싶어도 그럴 여력조차 없다.

교원평가와 성과급 차등 지급 뒤에 숨어 있는 그들의 시커먼 의도를

알리기에는 왜 우리에겐 우리의 의지를 알릴 방법이 이다지도 부족한지 모르겠고,

친북좌익과는 관계가 전혀 없는 대다수의 조합원 선생님들의

밝고 친근한 미소를 모르는 그들에게 전혀 사실과 다름을 알릴 방법 또한

지금 당장으로서는 없기때문에 가끔은 서글프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니지 않은가.

아이들의 해맑은 두 눈빛이 있고,

우리와 함께 하는 수많은 동지들이 있으니.

그래, 속시원하게 반납해버렸으니,

이제는 돈에 관한 근심걱정일랑 잊어버리고

순간순간 즐겁게 고민하며 살아보도록 노력하는게 더 낫겠다.

 

* 누군가 자신의 블로그를 링크하지 않은 채 덧글을 달았다.

   반납한 성과금을 되돌려 받을 걸 알면서 생색내지 말란다.

   혼자 대단한 일 한게 아니라면서.

   진보넷에 블로그 이사를 했을 때는 그런 사람 없을 줄 알았다.

   노파심에 밝히지만,

   이번 성과급 반납 투쟁은 예전처럼 되돌려 받지 못한다.

   이것은 교육부에서 그렇게 밝힌 사안이고,

   전 조합원이 이 사실을 충분히 인지했으면서도 벌이는 싸움이다.

   미혼인 나에겐 위에 언급한 "어려움" 정도는 새발의 피일 것이다.

   결혼하여 아이를 둔 대부분의 선배 조합원들에게 성과급은 "악마의 유혹"이다.

   이건 절대로 나 혼자서는 하지 못할 일이다.

   함께하는 동지가 있기때문에,

   우리의 삶이 돈에 좌지우지 되는 것을 거부하는 싸움이다.

   우리 사회의 다른 노동자들이 벌이고 있는

   여러가지 투쟁과 비교해서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란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게 과연 생색내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일까.

   (아울러 그 덧글은 삭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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