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4월6일 인천공항에서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와 장기간 여행을 해 본적이 없다.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이나, 이삼일 친구들과 짧은 여정을 함께 한 적은 있어도, 한달이나 두달을 남과 함께 한적이 있었던가? 일본도 혼자였고 남미도 혼자였으니. 이 여행이 나의 첫 커플 장기 여행이 아닐까 한다. 아니, 우리의 첫 장기 여행이다.

 
동반자 D는 나의 남자친구다. D는 우리가 만난 지 한달이 채 지나지도 않아 '우리는 결혼할거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지만, 사귄 지 2년이 넘도록 아직 제대로된 프로포즈도 해 준적 없다(-_-) 나는 나대로 프로포즈나 결혼같은 것에 조금의 로망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다지 큰 불만은 없다. 그러나 D는 프로포즈나 결혼식을 자신이 꼭 치뤄내야 하는 관례처럼 여기고 있는 모양이다. 때문에 가끔씩 내가 '프로포즈도 안했으면서!!'라고 놀리면 D의 괴로워하는 얼굴을 볼 수 있다. 무척이나 즐겁다.
 
4월 6일.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길. 자전거를 실기 위해 다마스를 불렀는데, 다마스 운전기사분의 따님 분이 대한항공에서 근무하고 변호사 남친을 가진 소위 엄친아인 모양이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내내 기사님은 딸 자랑에 분주하다. 듣기에 나쁘지는 않았지만 변호사라는 딸의 남친이 얼마나 바쁜 삶은 살고 있는지 이야기 한 후, D의 허벅다리를 탁 내려치더니 하는 말이 '시간이 많아서 좋겠어!'란다. 순간 웃음이 픽 나왔지만, 어쨌든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핵심을 찌르지 않았던가. 시간이 많아서 좋겠다니!
 
아아,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시간이 많게 되었는가. 응당 우리 나이라면 (29살 동갑내기입니다) 한참 사회에 뛰어들어 바쁜 삶을 사는 것이 옳은 일이거늘. 어째서 우리의 시간은 이렇게 남아돈단 말인가. 
 
사회가 나의 시간을 사용하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내가 시간이 남아 도는 삶을 선택했는지는 모를일이지만, 나는 나의 남는 시간을 가지고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다. 우리의 재산 목록. 자전거 두대, 텐트, 침낭, 옷가지, 카메라, 아이패드 등. 과연 우리는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을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