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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30
    불면이 돌아왔다.
    겨울보리
  2. 2009/04/29
    2009/04/29
    겨울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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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양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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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04/22
    꼬부라진 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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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9/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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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과 살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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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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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보리
  9. 2009/04/07
    네 시작은 비록 미약하나~
    겨울보리
  10. 2009/04/06
    [경인일보 3월 12일] 두 개의 눈이 필요한 한국
    겨울보리

불면이 돌아왔다.

휴가가 뭔가 전환점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나?

 

글쎄... 편안하게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생각은 많이 했나?

 

그렇긴 한데 결정에는 이르지 못했다.

 

 

 

불면이 돌아왔다.

먼저 해결봐야 하는 것은 이같은 상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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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9

내 멋대로 정한 나름 긴 휴가를 끝내고

어제부터 출근하고 있다.

 

벌써 다음 휴가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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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고추

내공이든 내성이든..

나에겐 너무 부족하다.

B급 노동자인 주제에 노동환경의 영향은 어지간히 받는다.

 

매운 것이 생각나던 차에 몹시 스트레스를 받으니 더 심해졌다.

하지만 요새는 특히 입맛이 까다로워지는지...

매운 것이 먹고 싶은 때면 찾던 쫄면도 영 시원찮다.

들척지근하고 닝닝한 조미료 맛이 떠올라서 영 내키지 않았다.

 

생각 끝에 고추 한 봉지, 1000원어치 사왔다.

원래는 그냥 고추를 살 생각이었는데...

사온 걸 보니 청양고추다.

씨를 빼고 잘게 다지다시피 썰어서 비빔 고명을 만들어 비빔밥을 해먹었다.

하지만 사들인 고추장의 조미료 맛 때문에 역시 그냥 그렇다.

그래도 자잘한 매운맛이 입 안에서 터지듯이 퍼지는 것은 좋았다.

 

고추를 다룬 손 끝에도 매운 맛이 계속 남아서

눈 한번 비빌 때마다 코 한번 후빌 때마다 눈물 콧물이 빠진다.

 

칼칼하고 눈물 쏙 빠지고 입안 얼얼한...

그렇지만 죽을 것 같지는 않은 매운 것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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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부라진 국수

어려서부터 몹시도 국수를 좋아하던 나는 날국수 가닥을 뽑아 과자 삼아 먹곤 했었다.

시골서 좋은 군것질 거리였다고 해도 좋겠다.

살짝 익힌 것이라고는 해도 날 것에 가까운 국수가닥이 맛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입이 심심하니 재미가 반이 넘었다고 하겠다.

 

어느 날,

나와 같이 국수 가닥을 먹던 언니가 어떻게 만든 것인지

지팡이처럼 끄트머리가 꼬부라진 국수가닥을 들고 자랑을 했다.

 

언니 말인즉...

입안에 넣고 부러뜨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잘 꼬부라뜨리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전력을 다했다....기 보다는 틈틈이 애를 써보았지만 계속 실패했다.

실패했다는 사실을 잠깐 잊을 때까지...

아마 먹을 것 없는 심심한 겨울날이 끝나갈 때까지였을 것이다.

 

한참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나는 솥뚜껑에 한가닥 떨어진 채 휘어있는 국수가닥을 발견했다.

국수는 삶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부뚜막의 물기와 솥뚜껑의 열로 보기좋게 휘어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언니가 나를 놀려먹었음을 깨달았다.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국수의 모양을 바꾸는 데는 수분과 열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는 것도...

 

물론 문제는 남아있었다.

그때 언니가 보여주었던 지팡이처럼 꼬부라진 국수는 부엌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었다.

아마 언니 또한 우연찮게 발견한 예외적 존재였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언니 또한 계획적으로 나를 놀려먹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으며

그때 그 국수를 꼬부라지게 만들었던 수분이 타액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언니 또한 타액이라는 사실만 두고  입안에서 조심스레 굴려서 꼬부라뜨릴 수 있다고 믿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한 25년쯤? 지난 다음에 언니에게 이를 물었다.

언니는 물론 까맣게 잊은 뒤었다.

진실은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진실이란 생각처럼 용이하게 포획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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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1

아직도 여전히 미망을 해결하진 못한 게다.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빗방울이 떨어지고 작은 파문 하나가 일자...

급격히 혼란스러워지고 말았다.

 

참는 것도 내 자신을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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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국면

떠돌아 다니는 것이 생각보다 괜찮다.

아직은 호사지만...

곧 정체성에 걸맞은 씀씀이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굶게 되면 굶는 거다.

겁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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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과 살구꽃

아주 비슷한 이 두 꽃에서 관상용으로 이름높은 것은 단연 벚꽃이다.

벚꽃 축제는 셀 수 없이 많지만 살구꽃 축제는 없으니까.

 

멀리서 보면 분홍 꽃구름이 비슷하지만 두 꽃은 조금 다르다.

벚꽃이 녹색 꽃받침에 분홍색 꽃이 피는데 비해

살구꽃 자체는 흰 빛에 가깝다.

다만 살구꽃의 꽃받침은 붉은 빛이어서 전체적으로는 분홍빛으로 보이는 것이다.

 

벚꽃은 그 열매 버찌를 포기하고 꽃 자체로 이름 높을 뿐이라

꽃 자체가 양껏 피도록 가지 치기를 할 필요도 없이 잔가지 무성한 것이 좋다.

 

그러나 살구꽃은 살구 열매를 거둬야 한다.

그러므로 꽃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식수 간격을 조절해야 하고

가지 치기도 필수다.

외모로 보면 모자랄 것 없는 살구꽃이 벚꽃보다 꽃으로 덜 유명한 이유다.

 

물론 이 때문에 살구꽃이 벚꽃보다 더 좋은 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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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나는 노동자다.

요즘 세상에 노동자가 존엄을 지키고 싶어한다는 것이 도대체 가당키나 한 일인가?

 

나 스스로 노동자 정체성을 인정한 이상 나에게 닥치는 이 끝없는 소외된 노동은 이제 겨우 시작인 셈이다.

 

생각해보면 그다지 효율성 높은 노동자도 아니지 않는가?

나 하나를 기르기 위해 처박은 돈이나 시간을 계산을 따진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자본이 나란 노동자를 어떻게 계산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결정적으로 나는 그다지 자본에 포획될 의사도 많지 않은 산업예비군 아닌가.

 

그러나,

부질없이 분노하는 것으로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된다.

나에게는 아직 굶어죽을 자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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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작은 비록 미약하나~

네 시작은 비록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할 것이다....라고?

 

정말?

거짓말 마!

 

네 시작은 비록 미약하나... 그 끝도 미약할 것이다.

 

<사례>

 

고려 말의 문익점은 붓뚜껑 속에 반출이 금지된 목화씨앗을 숨겨 이땅에 들여왔다.

말하자면 밀수를 한 것이다. 요새 이런 일 하면 큰일난다. 무슨 전염병 따위가 묻어들어올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대부분 씨앗이 싹이 트지 않았지만 그 중 한두 알이 싹이 터 이를 소중하게 불려나간 결과 전국적으로 목화재배가 가능할 만큼 되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 목화산업은 쫄딱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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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3월 12일] 두 개의 눈이 필요한 한국

 

  2007년 11월이었다. 주안영상미디어센터 상영관에서 아이리쉬 밴드 바드(BARD)의 아일랜드 음악여행을 다룬 <두 개의 눈을 가진 아일랜드>라는 음악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다. 바드는 이 여행에서 성취한 바를 음반으로 제작하였고 얼마 전에는 이 다큐의 감독 임진평이 1시간 남짓한 영상에서는 미처 다루지 못했던 이야기와 풍경을 실어 동명의 책도 발간하였다. 자신의 예술과 삶이 향하는 방향을 고민하는 이들 젊은이들의 동행은 깊은 감명을 준다. 표제의 ‘두 개의 눈’이란 벨파스트의 유서 깊은 벽면에 씌어있다는 글귀로 과거와 미래를 보는 눈을 말한다.

 

    A Nation that keeps one eye on the past is wise.

    A Nation that keeps two eyes on the past is blind.

   하나의 눈을 과거로 향하는 민족은 지혜롭다.

   두 눈을 모두 과거로 향하는 민족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한쪽 눈을 과거를 보는 데 쓰면 현명하고 두 눈을 모두 과거를 돌아보는 데 쓰면 아무 것도 볼 수 없다니? 우리가 역사를 되새기는 이유는 더 나은 삶, 오로지 더 부유한 삶만이 아니라, 더 인간답고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즉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를 꾸리고 미래를 구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두 개의 눈, 과거를 보는 눈과 미래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일랜드에는 바로 그 두 개의 눈이 있다.

 

  ‘아일랜드’라면 우리는 그저 영국 옆에 있는 먼 나라쯤으로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사실 아일랜드가 우리 역사와 문화에 끼친 영향은 상당하였다. 아일랜드는 식민제국이었던 여타의 유럽 여러 나라와는 달리 식민경험을 지닌 나라다. 우리가 이웃나라 일본에게 식민지배를 받았던 것처럼 영국의 식민지였다. 우리가 독립을 선언하고 3.1운동으로 그 의지를 만방에 떨치고 있을 무렵, 그들 또한 영국과 독립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1921년 부분적이나마 독립을 쟁취하기에 이른다. 당시 이들의 독립운동과 그 문화적 표현이었던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은 3.1운동을 전후하여 우리나라에도 다각적으로 소개되었고 우리는 이들의 독립운동에 깊은 연대의식을 느꼈으며 여러 가지 시사점과 아이디어를 얻었다. 1920년대 한국의 문학, 연극 등 각종 문예 분야에 아일랜드는 깊은 영향을 미쳤었다.

 

  그리고 90년이 지났다. 아일랜드는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이 영국을 능가하고 그보다도 더 중요하게는 국민들 스스로 얼마나 행복한가를 묻는 행복지수가 영국보다도 훨씬 높다. 그리고 그들의 행복의 바탕을 이룬 것이 일상 속에 존재하는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는 두 개의 눈이라는 사실을 몇몇 한국 젊은이의 음악여행에서 다시 확인한다.

 

  우리가 우리의 독립의지와 독립역량을 세계만방에 떨쳤던 3.1절 90주년이 불과 며칠 전이었다. 이번 3.1절에는 근엄한 관료들의 3.1절 기념식보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한 ‘3.1절 퍼포먼스’가 더 눈에 띄는 것을 보니 3.1정신의 진정한 계승이 이제야 시작된 것이 아닌가하는 부끄러운 기쁨마저 생긴다. 한편에서 3.1운동과 그 결과 탄생한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1948년 단독정부의 수립에서 한국의 역사를 기산하려 한다는 소식이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쯤 되면 과거만을 보는 두 개의 눈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아예 눈 감고 과거를 보지 않으려는 맹목과 무지가 걱정이다. 게다가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이를 교육하려고 일선 학교에 이를 골자로 하는 팸플릿을 배포했다가 거센 비판에 부딪쳐 부랴부랴 회수했다니 편협한 정권의 권력 남용이 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데 이르고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더 부자로 잘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 살아오면서 작은 행복이나 즐거움은 늘 미뤄왔지만 형편은 오히려 더 나빠지고 삶은 한층 피폐해지고 있다. 우리 힘으로 나라를 세우고 운영할 힘이 있음을 세계만방에 선언했던 1919년 3월 1일을 기억하면서 그때 지구 반대편에서 같은 목적으로 싸우던 아일랜드를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는 과거, 현재와 미래를 보는 두 개의 눈이 우리에게도 절실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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