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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와 국제정세
고민택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와 국제정세.pdf (2.55 MB) 다운받기]
오는 3월 26~27일 서울에서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지난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이어 서울에서 그야말로 대규모 국제회의가 또 한 번 열리는 것이다. G20 정상회의 때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회의를 앞두고 노점상에 대한 탄압이 예외 없이 벌어졌으며, 경찰은 을호 비상령을 발동하고 삼엄한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이에 맞서 3월 25일에는 서울광장에서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반대하는 집회를 잡아 놓고 있으며 각 운동단체들도 반대 성명과 입장을 발표하고 토론회 등을 통해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갖는 계급적 실체를 폭로하고, 왜 반대해야 하는가를 알리기 위한 노력을 다하고 있다.
역사적 경과와 배경
알다시피 핵안보정상회의는 오바마가 2009년 4월 체코 프라하에서 ‘핵 없는 세상’을 주창하면서 2010년 4월 워싱턴에서 처음 열렸다. 오바마는 이른바 ‘핵 테러’ 대처를 위해 “향후 4년 내에 전 세계 모든 취약한 핵물질을 안전하게 방호하기 위한 새로운 국제적 노력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번 서울 회의는 그 두 번째 회의이다. 이번 핵안보정상회의에는 약 50개국 정상들과 국제연합(UN), 유럽연합(EU), 국제원자력기구(IAEA), 국제형사경찰기구(INTERPOL) 대표가 참석할 예정이다. 또한 핵안보정상회의와 함께 그 연계 행사로 원자력 인더스트리 서밋(Nuclear Industry Summit), 즉 핵 산업계 최고경영자회의가 3월 23-24일에 열린다. 워싱턴 1차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핵물질 보안에 있어서 민간분야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핵안보 컨퍼런스’가 함께 열렸는데, 바로 그 후속 회의라고 할 수 있다.
저들이 말하는 ‘핵안보’란 어떤 것인가? “핵안보란 비국가행위자를 비롯한 테러리스트 그룹에 의한 불법적인 핵물질 탈취 및 거래, 이를 통한 원자력시설 등에 대한 테러행위에 대응하기 위한 포괄적 개념”(서울 핵안보정상회의 공식 홈페이지 중)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핵물질, 여타 방사성 물질, 핵물질 관련 시설 및 방사성 물질 관련 시설에 대한 악의적 행위를 예방하고, 탐지하고, 그에 대응하는 조치”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핵안보에 대한 관심은 원자력에너지를 상업용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1960년대 말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부각됨에 따라 핵물질의 국제적 이동이 활발하게 되었으며, 이동 중인 핵물질의 불법 탈취 등을 예방하여 핵연료의 안정적 공급을 보장하는 것이 핵안보의 목표로 제시된 것이다. 그러다가 1990년대 초 소련 붕괴에 따라 구소련 영토 내 존재하던 핵물질 및 핵시설의 관리 문제가 대두되었으며, 이 시기에는 동 지역 내 핵물질·시설의 폐기 및 감축, 보호 등이 핵안보의 목표로 강조되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핵안보가 ‘핵 테러’에 대한, ‘핵 테러’로부터의 안보로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2001년 9. 11 사태 이후다. 이때부터 테러리스트 조직에 의한 핵물질 및 핵시설 악용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핵 테러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서 핵안보가 강조되기 시작했다.
한편 핵안보정상회의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2009년 4월 프라하에서 오바마가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비전, 즉 “핵무기 확대 금지, 핵무기고(arsenals) 감축, 핵물질 안보 강조”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그 뒤 이어서 2010년 4월 오바마 행정부가 ‘핵태세검토’(NPR: Nuclear Posture Review)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부시 행정부의 핵정책을 수정한다. 즉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을 기존에 비해 제한함과 동시에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는 동맹국에 대한 핵 억지력을 유지하는 내용을 조화시키는 데 초점을 두게 된다. 나아가 미, 러시아 간 새로운 장거리 핵무기 감축협정에 조인하고, 제 1차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하여 “핵테러리즘의 영향은 한 국가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대다수 국가는 이를 억제하고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는 국제적 인식을 형성(강제)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그 근거로 현재 전 세계에 약 1,600 톤의 고농축 우라늄(HEU)과 500톤의 플루토늄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의 관리가 취약하여 불법거래에 악용될 가능성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에 따라 지난 1차 정상회의를 통해 정상성명, 작업계획, 국가별 공약사항 언급 등의 결과물을 도출한 것이다.
핵무기 없는 세상?
우선 핵안보 정상회의는 기존 제국주의 5대 핵무기 보유국(미국, 프랑스, 영국, 러시아, 중국)의 핵 패권 체제 유지, 강화를 가장 일차적인 전제로 하여 성립하고 있다. 지금 인류에게 가장 위협적인 것은 바로 이들 국가의 핵무기다. 따라서 핵(무기)으로부터의 안전을 이야기할 때 기존에는 크게 ‘핵 군축’과 ‘핵 비확산’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를 전제로 나머지 나라들에게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것, 즉 핵 발전을 할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이 그나마 국제적인 합의였다.
그러나 알다시피 ‘핵 군축’은 그야말로 아무런 진전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핵 군축’(협상)을 통해 실질적으로 ‘핵무기 없는 세상’이 가능할 것으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마치 자본주의를 계속하면서 자본가를 없애겠다는 것만큼이나 허무맹랑한 소리다. 핵은 단지 과학기술의 산물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제국주의)의 산물이다. 백 번을 양보해서 핵의 평화적 이용이 있을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현실에서는 그에 앞서 핵무기 개발과 핵무기의 사용이 먼저 일어난 사실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제국주의는 단지 경제적 현상만이 아니다. 제국주의는 정치적, 군사적 패권 경쟁과 전쟁을 필수적으로 동반한다. 제국주의 아래에서 제국주의 사이의 정치, 군사적 경쟁과 대립, 그 연속선상에서 제국주의 사이의 전쟁을 피할 수 없다. 물론 그 근본에는 경제적 경쟁과 대립이 있다. 정치는 경제의 집중된 상태를 말하며,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 즉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핵무기 없는 세상’은 불가능하다.
지금 현재에도 제국주의 사이의 군비경쟁은 줄어들기는커녕 갈수록 커지고 있으며 늘어나고 있다. 사실 제국주의가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는 이미 충분히 포화 상태다. 그럼에도 제국주의가 지출하고 있는 군사비(국방비)는 전혀 줄지 않고 있다. 미국만 하더라도 세계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를 하면서도’ 국방비를 계속해서 증액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MD(미사일방어) 체제에 천문학적인 군사비를 쏟아 붓고 있다. 중국도 경제 성장에 맞춰 군사비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고 있다. 러시아 역시 군사강국 유지를 위해, 강한 러시아를 외치며 군비 경쟁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제국주의만이 아니다. 전 세계 나머지 국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한국은 세계 제2의 무기 수입국이다. 노무현 정권 때 시작한 국방계획 2020과 자주국방을 내세워 엄청난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다. 지난 냉전시대를 무색케 할 정도로 지금 전 세계는 군비경쟁에 한창이다. 더구나 지금은 세계공황이 한참 진행 중이다. 다시 말해 제국주의 사이의 전쟁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시점이다. ‘핵무기 없는 세상’은 동화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핵전쟁’마저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 펼쳐지고 있다.
또한 ‘핵 비확산’도 현실적 진전이 없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북한도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 대열로 들어섰다. 현재 이란 역시 핵(무기) 보유를 둘러싸고 미국(서방)과 대립 중에 있다. 그럼에도 유독 북한과 이란에 대해서만 문제를 삼고 있다. 따라서 ‘핵 비확산’ 역시 현재로서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무조건 동의/찬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리고 제국주의가 가하는 핵 패권과 핵 위협이 버젓이 살아 있는 현실 속에서 오히려 ‘핵 비확산’을 주장하는 것이야 말로 더욱 그 어떤 명분도 설득력도 가질 수 없다. 아니 명분과 설득력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제국주의 국가가 나머지 국가의 지배계급들로 하여금 핵무장의 필요를 느끼도록 내몰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하는 것을 보면서 앉아서 당하고 싶은 국가(지배계급)가 어디 있겠는가? 제국주의의 핵무기를 없애지 못하는 조건에서 ‘핵 비확산’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아무런 명분도 설득력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예컨대 ‘북핵문제’만 하더라도 단지 ‘비핵/반핵’이라는 차원이나, ‘북 체제 또는 북 지배계급의 행태’에 대한 ‘비판/반대’라는 측면에서 북을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즉 ‘북 체제나 북의 지배계급’을 옹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북핵문제’를 곧 ‘북의 문제’로만 접근하는 것은 사태의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북핵문제’는 ‘비핵/반핵’과 ‘자위권’ 사이에서의 선택문제나 찬반문제로 가릴 수 있는 그러한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 원인으로 따지자면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에 훨씬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제국주의가 행사하는 핵 패권, 핵 위협을 당연히 먼저 문제 삼아야 한다. 이 점에 대해 침묵(기권)하거나 사실상 패배주의(제국주의가 보유한 핵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기정사실화)에 빠진 채 ‘북핵’(폐기)만을 말하는 것은 제국주의에게만 면죄부를 주는 것에 불과하다. 이 것이 곧 ‘북핵’을 지지하(자)는 것으로 연결되어야 할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핵 일반’에 대한 반대를 들어 ‘북핵’도 반대(해야)한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는 맞지만 현실에서는 하나마나 한 이야기일 수 있다. 사태의 본체/본질은 제국주의 핵에 있다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강조해야 하는 것에 있다.
핵의 평화적 이용?
핵안보정상회의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것과는 한 참 거리가 멀다. 아니 오히려 제국주의 핵보유만을 정당화함으로써 제국주의에 의한 핵 위험과 위협을 그대로 방치하는 결과를 지속할 뿐이다. 그렇다면 다른 한편으로 ‘핵의 평화적 이용’ 문제는 어떤가?
핵안보정상회의는 ‘핵(기술)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구실로 ‘핵발전’을 지속하기 위한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 ‘핵발전’은 우선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가장 많이 애용하고 있다. 너무도 당연하다. 바로 역사적으로 ‘핵발전’이 ‘핵(무기)’의 군사화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전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핵발전’이 자본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주요한 산업이라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다. ‘핵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엄청난 투자자본과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며, 따라서 제국주의가 아니고는 ‘핵발전(소)’를 갖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핵발전’은 단순히 에너지만이 아니다. 에너지 이상이다. ‘핵발전’은 그 자체가 제국주의가 되기 위한 필수전제이며,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더라도 제국주의에, 비록 부분적 차원에서라도, 대항하거나 ‘핵(무기)’ 개발(결과로서만이 아니라 과정만으로도) 시도를 통해 국내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특별한 수단이다. 이것이 ‘핵발전(소)’가 사라질(폐지될) 수 없는 근본적(정치경제학적/자본주의적) 배경이다. 근본적 평화주의자들이 말하는 재생 에너지로 대체하자는 주장이 그 ‘옳고 그름’ 또는 ‘현실(경제성, 효용성 등) 가능성’과는 별도로 실현되기 어려운 이유이다. 제국주의, 즉 자본주의 체제를 그대로 둔 채로 재생 에너지로 전면적(지구적 차원)으로 대체하자는 주장이 갖는 공상성이 거기에 있다.
물론 지구 기후변화에 대처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화석 에너지’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자본주의 국가와 자본가들은 바로 이 점을 이용하여 ‘핵발전(소)’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역으로 공세를 펴고 있다.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선전이 대중적 차원에서 어떻게든 수용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핵발전(소)’으로부터 발생하는 위험과 위협이 매우 현실적인 것도 사실이다. 미국 스리마일, 구소련의 체르노빌,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불러일으킨 재앙을 누구나 목도하고 있다. 일상적으로 크고 작은 원전 사고가 잦은 것도 대중들에게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핵폐기물’ 처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도 무시 못 할 요인이다.
그러나 대중들은 지진이나 해일 등을 비롯한 자연재해와 그것들을 동일시하(려)는 정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이를 대중이 단지 지배(자본) 이데올로기를 스스로 내면화한 결과 때문에만 벌어지는 현상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들 ‘급진적 주장’이 갖는 낭만주의 내지 무정부성에 대한 거부가 모순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노/자 적대성을 부차화하고 있는 사회운동이 부딪치고 있는 한계를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 즉 ‘핵발전(소)’ 폐기를 계급문제와 분리시킨 채, 자본주의 체제를 폐기하지 않은 채 그것들을 횡단하는 것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대안이 될 수 없다는)이 대중들에게 존재하고 있다.
참고로 독일의 경우는 적어도 상당한 시일까지는 ‘핵(무기)’를 가질 수 없는 국제정치적 조건에 놓여 있다. 따라서 독일이 추진하고 있는, 즉 ‘핵발전(소)’의 장기적 폐기 결정 및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 정책(거기에는 단지 의식만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경제력과 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함)을 여타 나머지 국가에게 일반화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후쿠시마 재앙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38년 만에 다시 원전을 허용했으며, 프랑스, 중국 등은 계속해서 원전을 늘릴 계획을 갖고 있고, 스웨덴 등도 원전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은 원전 수출을 핵심 산업으로 키우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번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한국의 ‘핵발전’(기술과 능력)을 알리는 적극적인 장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제국주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통해 ‘핵발전(소)’을 하는 나라들에게 사찰을 강제하고 있다. ‘핵 비확산’을 내세워, 즉 NPT(핵비확산조약) 체제와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 등을 통해 실은 제국주의 자신들만의 배타적 핵보유 체제를 지속, 강화하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핵의 평화적 이용’을 내세워 ‘핵발전(소)’를 지속적으로 유지, 강화, 유포하려는 이중 전략을 쓰고 있다. 제국주의와 핵안보정상회의가 말하고 있는 ‘핵의 평화적 이용’에 대해서는 당연히 반대/거부/저항/투쟁해야 한다. 그러나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지배 이데올로기 일반과 ‘핵발전(소)’이 오히려 지속, 강화되고 있는 현실에 지속적, 일관적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전제(주장과 논리)가 필요하다. 하나는 ‘핵무기든, 핵발전이든’ 그것들의 폐기를 말하는 데 있어 궁극적, 현실적으로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폐지하려는 투쟁이나 전략과 어떻게든 연결/결합하려는 노력과 시도를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제국주의 전쟁 반대, 자본가 국가의 군사주의 반대를 우선적으로 주장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정치, 군사적 맥락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핵발전(소)’에 대한 노동자통제를 요구/실현하면서 ‘핵발전(소)’ 폐지 및 대체를 위한 민주적/대중적 프로세스를 세워 나갈 것을 주장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이미 생태파괴적이고 따라서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는 위험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대중들이 피부적으로 느끼고 있다. 바로 이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고 ‘핵발전(소)’가 갖는 위험 그 자체만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거나, 동시에 계급을 떠나 누구에게나 위험하다는 일반론을 우선시 한다면 정세와 동떨어진 당위론/도덕론으로 빠질 위험이 크다. 그럴 경우 정치적 맥락 없이 표류할 가능성만 높이게 될 것이다.
핵안보정상회의의 정치, 정세적 맥락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말하고 있는 “비국가행위자를 비롯한 테러리스트 그룹에 의한 불법적인 핵물질 탈취 및 거래, 이를 통한 원자력시설 등에 대한 테러행위”는 어느 정도나 현실적인가? 이건 거의 할리우드 영화 수준이다. 먼 미래의 어느 시점에 혹시 벌어질지도 모르지만(그리고 그 시기는 이미 야만의 세계에 가깝겠지만) 그러나 현재로서는 거의 공상 수준에 불과하다. 그에 비하면 제국주의에 의한 ‘핵 공격’ 가능성이야말로 가까운 장래에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는 매우 현실적인 위험이자 위협이다. 실제로 미국은 ‘핵 선제공격’ 옵션을 유지하고 있다. 앞서 말한 ‘핵태세 보고서’(NPR)에 의하면 핵비확산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국가들을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핵 선제공격’ 옵션은 현실에서는 이란과 북한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와 함께 이스라엘은 이란을 향해 핵 선제공격을 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면에는 여타 제국주의 국가에 대한 군사적 경고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미국은 2001년 9. 11 사태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새로운 국방전략, 세계패권 전략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냉전체제가 종식된 상황에서 한편으로는 미국만의 일국 패권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한 상황에서, 새로운 위험(적)을 가시화해야 할 필요성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그러한 추상적/원칙적 전략은 그 자체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현실적 맥락과 결부해서만 그 현실성을 획득할 수 있다. 그랬을 때 ‘테러와의 전쟁’은 무엇보다 중동에 대한 미국의 패권 관철 전략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석유(에너지)자원 확보를 둘러싼 제국주의 사이의 경쟁, 석유대금 결제화폐를 둘러싼 달러와 유로와의 경쟁, 중동으로부터 중앙아시아에 걸친 천연자원과 그 지역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차지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 전략이 바로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표출된 것이다. 또한 ‘테러와의 전쟁’은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군사비 지출과 군대파견을 여타 제국주의 나라들에게 분담시키고자 하는 의도(강제)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미국의 패권이 관철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약화된 미국의 위상을 반영하는 측면도 함께 결부되어 있다. 즉 미국이 독자적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력이 후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바마가 들고 나온 ‘핵없는 세상’은 바로 한편으로는 핵무기의 대량생산 경쟁 체제가 갖는 전략적 가치가 이미 현저히 약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르는 비용을 감당하기가 어려워진 상황(단지 비용만이 아니라 대중적 명분과 설득력에서)을 돌파하기 위한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핵무기(보유) 자체에서의 군사적 우위를 점하는 것의 실효성이 약화된 조건에서 미국은 MD(미사일방어)체제를 통한 경쟁에서의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으로의 변화를 꾀하려 하고 있다. 즉 핵무기 경쟁에 필요한 비용을 MD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비용으로 전환함과 아울러 그를 통해 제국주의 사이에서의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려는 의도와 군산복합체제를 지속시키기 위한 것까지 복합적인 (다)목적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신흥군사강국으로 부상하려는 잠재적 저력을 가진 나라(예컨대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중동의 일부 국가, 나아가 한국, 대만 등 아시아 국가의 일부까지)들이 핵개발을 하는 것을 억제/통제함으로써 NPT 체제를 유지시켜 핵무기가 확산되는 것을 저지해 핵강국의 패권을 고수하고자 하는 목적도 들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북핵(폐기)’와 이란의 핵개발을 저지할 필요성(명분)이 현실적으로 부상한 것이다. 물론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과 이란이 적당한(?) 선에서 미국과의 다툼을 할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몰고 가는 측면도 다분히 고려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도 가시적인 형태의 위험(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핵안보정상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되는 배경과 그것을 통해 거두려는 효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번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북핵문제’는 (공식)의제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북의 핵개발을 비난/규탄하는 장으로서 활용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이미 김성환 외통부 장관이 “58명의 국가 정상과 국제기구 수장들이 서울에서 핵을 주제로 논의하는 것 자체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지지하는 국제사회의 단합된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언급한 데서도 바로 알 수 있다. 또한 “핵안보정상회의는 고농축우라늄(HEU)과 플루토늄 등 핵물질 사용의 최소화를 추구하는 자리이므로 북에도 이러한 물질들을 포기하라는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 정부당국자들의 견해이다. 이상현 외교통상부 정책기획관은 지난 2월 동아시아연구원이 발간한 '글로벌 거버넌스와 핵안보정상회의' 보고서에서 "핵안보정상회의가 한국에서 개최되는 것은 한반도가 핵 비확산 문제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상징으로 부각된다는 의미를 갖는다"면서 "이번 회의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추가적인 모멘텀을 확보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한 데서도 명확히 그 의도가 드러나고 있다. 즉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는 한반도에서의 정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효과만을 낳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마침 지난 2. 24 북미합의가 성사(2. 29일 각각 발표)된 바 있다. 그 때만 해도 ‘북핵문제’에 대한 해법이 열리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랬다가 지난 3월 16일 북한이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 15일을 전후한 4월 12~16일 사이에 인공위성 '광명성-3호'를 발사하겠다고 밝히”면서 돌연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중국, 러시아, 일본, EU 등 전 세계가 일제히 북의 발표를 비난/규탄하고 나섰다. 이명박 정부는 '광명성 3호' 발사에 대해 "탄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해 핵무기 장거리 운반 수단을 개발하기 위한 중대한 도발행위"라고 말했다. 보수 언론은 연일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데 혈안이 되고 있다. 그러나 보도에 의하면 북한은 이미 김정일이 사망하기 이전에 미국에게 위성 발사 계획을 알렸으며, 미국은 이를 알고도 북한과 2. 24 합의를 한 것이다. 당시 북한과 미국은 합의 내용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각각 발표한 바 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위성 발사 계획을 취소할 것을 기대했을 수 있으며,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이 위성을 발사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합의를 한 것으로 간주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북한이 왜 지금 시점에서 그를 발표했는지 정확한 의도와 내막을 알기는 어렵다. 순 기술적으로 사전에 국제사회에 통보해야 할 시점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렇더라도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이 문제가 어떤 형태, 어떤 수준에서든 중요하게 다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또한 4. 11은 총선이 있는 날이다. 시점이 매우 미묘하게 얽혀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에 위성 발사 상황을 지켜볼 수 있도록 참관을 허용하겠다고 함으로써 위성 발사가 정상적인 주권 행위라는 것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만약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북핵(관련)성명’을 발표할 경우에는 이를 북한에 대한 ‘선전 포고’로 간주하겠다고 강하게 경고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러한 일련의 행위와 과정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정치적 의도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일종의 힘겨루기라고 할 수 있다. 즉 정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을 통해, 또는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각자가 취할 바를 관철시키겠다는 의도이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핵안보정상회의”는 핵(무기)으로부터의 위험과 위협을 완화/약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핵(무기)’과 ‘핵발전(소)’에 대한 위험과 위협을 증대시키는 역할만 할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번 “2012 서울핵안보정상회의”는 한반도와 동북아에서의 정치/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자본주의 위기가 심해질수록 그에 비례해 전 세계적 차원에서 정치 군사적 긴장이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를 그대로 둔 채로 세계가 평화로워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동자 민중은 평화를 원한다고 해서 ‘평화주의’ 또는 ‘평화체제’에 대한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평화는 오직 자본주의를 철폐함으로써만 쟁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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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의 [입장]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와 국제정세는 23일에 발행 예정인 정세월간지<혁명> 창간준비 7호에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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