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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현대차비지회의 투쟁과 결단을 적극 지지한다.

 

현대차비지회의 투쟁과 결단을 적극 지지한다.
 

- 동지들, 힘냅시다. 동지들과 함께하는 많은 동지들이 있습니다. -

 

 

  현대차비지회 투쟁이 또 한 번의 고비를 맞고 있다. 그동안 이 같은 상황은 숱하게 많았다.  어느 한 때 고비가 아닌 적이 없었다. 매일 매일, 한 시 한 시가 모두 고비였다. 앞으로도 투쟁이 계속되는 한 또한 그럴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왜 그런가? 그렇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비지회와 사측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절대절명의 투쟁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 쪽의 승리는 곧 어느 한 쪽의 패배를 낳는 투쟁이기 때문이다. 중간이 없는 투쟁이기 때문이다. 양보와 타협이 불가능한 투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고비는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상황을 넘어 비지회 투쟁의 향방과 승패를 가를 수 있는 정도의 정말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비지회가 투쟁으로 일구어 놓은 유리한 정세와 주도권을 계속 이어가느냐, 그렇지 않고 사측의 의도와 의지가 또 다시 힘을 발휘하는 국면이 형성되느냐를 가를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지회는 얼마 전 교섭 중에 사측이 일방적으로 ‘신규채용 공고’를 냈던 국면도 이겨냈다. 그럼에도 지금 다시금 중대한 고비를 맞게 된 것은 어이없게도 현대차지부와 금속노조가 사측 입장에서 비지회를 압박하는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지회 투쟁에서 ‘불파인정/신규채용중단’은 최소한의 요구다. ‘정몽구 구속’은 그 결과로서 가능하다. ‘불파인정/신규채용중단’은 서로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두 요구는 둘이 아니라 하나다. ‘불파’는 이미 인정됐다. 설령 대법원이 ‘불파’ 판결을 내리지 않았더라도 ‘불파’ 사실이 변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대법원조차 최종 판결을 통해 ‘불파’ 사실을 확인/확정했다. 따라서 ‘불파’를 인정하지 않는 ‘신규채용’은 당연히 그와 연동해서 불가하며 절대 부당한 것이다. 그런데도 사측은 ‘신규채용’을 밀어붙이고 있다. 즉 ‘불파’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다. 만 천하가 인정하고 있는 사실을 오직 현대차 자본(정몽구)만 모르쇠로 버티고 있다.   

 

  그런데 불파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현대자동차만이 아니다. 만 천하가 인정하고 있음에도 그 인정을 지금도 회의하거나 망설이는 부위가 있다. 현대차 자본이 ‘불파’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세력에 기대어서다. 그 핵심 부위는 정말이지 안타깝게도 현대차지부와 금속노조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금속노조와 현대차지부 노조 관료지도부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지난 10여 년에 걸쳐 여러 입장의 지도부가 번갈아 들어섰지만 이 점에서는 사실 결정적 차이가 없다. 현대차지부 조합원들도 심적으로야 그러지 않겠지만 행동으로는 적극적으로 인정하기를 망설이고 있다. 지난 역사적 과정이 지부 조합원들로 하여금 동요할 수도 있도록 흘러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어떤 결정적 계기가 만들어지지 않는 한 지부 조합원들도 쉽게 움직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현상은 심지어 ‘사내하청 노동자’, ‘지회조합원’ 사이에서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투쟁하는 조합원들 속에서 우려와 불만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게 사측이 노리는 바라는 것을 또한 투쟁하는 조합원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여기서 물러서거나 무너지면 안 된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고 있다. 아무리 속에서 열불이 난다고 해도 기필코 이겨내야 한다.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투쟁하는 조합원이 사측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어렵게 하는 결정을 하지 않는 한 생기지도 않을 일이다.

 

  우리는 “현대차비지회 쟁대위 결정(12월 26일)”은 물론, 그 뒤 이어지고 있는 비지회의 구체적인 방침과 실행에 대해서도 적극 지지한다. 우리는 비지회의 결정과 방침은 정당하고 올바르며 그것 외에 다른 더 좋은 결정과 방침이 따로 존재할 것이라고는 판단하지 않는다. 지금은 투쟁을 강화, 확산할 때이다. 6대 요구를 물리거나 6대 요구에 기초한 세부적인 안을 비지회가 별도로 제출할 수 있는 국면이 결단코 아니다. 지금은 오직 현대차지부와 금속노조가 가하는 부당한 압박과 압력을 실력으로라도 저지해야 한다. 그것은 곧 사측의 압박과 압력을 이겨내기 위한 선제 조치다. 그것이 곧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의 기대와 여망을 지켜내는 일이다. 아니 다른 무엇보다 투쟁하는 조합원 자신들의 권리를 지켜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안이다. 자신들에게 가하고자 하는 사측의 부당한 조치를 막아낼 수 있는 강력한 방안이다.

 

  투쟁하지 않고 쟁취할 수 있는 방안이나 길은 없다. 그런 것이 있었다면 벌써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까지 투쟁해왔으며 지금도 투쟁하고 있다. 투쟁한다고 반드시 승리한다는 보장이 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단지 투쟁하지 않으면 패배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만이 확실하다. 이 점에서 현대차비지회의 투쟁하는 조합원들, 해고노동자들이야말로 진짜노동자, 투쟁하는 노동자의 본보기다. 빈말이 아니다. 투쟁을 부추기고자 하는 수사도, 선동도 아니다. 누구보다 그들 자신이 먼저 알고 있다. 누가 시킨다고 지금의 투쟁이 가능하겠는가? 그들이 현재 차지하고 있는 객관적 위치와 역할이 그러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이 다른 노동자에 비해 투쟁적으로나 지적으로 원래부터 훌륭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바로 그 곳, 즉 역사의 현장에, 투쟁의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다른 방안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그 어떤 누구도 이들 투쟁하는 조합원, 해고자들을 대신할 수 없다. 오직 이 점에서만큼은 오직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권한이자, 권리이다. 이게 진실이다.

 

  그러나 다른 하나의 진실이 또 있다. 그것은 바로 이 투쟁이 현대차비지회만이 감당하고 책임져야 할 투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투쟁을 지지할 수도, 투쟁을 독려할 수도 없다. 길게 보면 전체 노동자계급이 함께 감당하고 투쟁해야 할 일이다. 적어도 현대차지부와 금속노조만큼은 그래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실이 그렇지 않게 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오래됐다. 그러나 다른 방안이 없는 것이 아니다. 공식노조에 대한 의존성을 떨쳐내야 한다. 관료지도부에게 운명을 맡길 수 없다.

 

  그리고 분명 대안은 있다. 길이 있다. 방안이 없지 않다. 가장 첫째는 투쟁하는 노동자 자신이 대안이다. 투쟁하는 주체가 희망이자, 전망이다. 그것 없이는 다른 무엇, 즉 연대투쟁은 일어날 수 없다. 따라서 두 번째 방안은 곧 아직 힘들고 불투명하지만 사회적, 정치적 연대투쟁이다. 이번 대선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본부’도 바로 투쟁하는 사업장, 노동자들에 기반 해서 나설 수 있었다. 아직은 확실한 대안으로까지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거기에 희망이 있다. 작년 희망버스, 희망텐트 투쟁도, 그 전의 촛불투쟁도 모두 공식노조와 무관하게 일어났다. 투쟁과 정치를 새롭게 일으켜야 한다는 열망과 운동이 현장으로부터, 활동가들로부터 다시 일고 있다. 쌍차투쟁, 현대차비지회투쟁, 장기사업장 투쟁 등을 통해 이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현대차비지회 동지들, 특히 투쟁하는 조합원과 해고노동자들이 조금 더 힘을 내고 버텨야 한다. 이제까지 정말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넘고 넘어 여기까지 왔다. 정말이지 기적이라면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러나 그 기적이 정말 기적이 되려면 지금 닥친 고비마저 넘어서야만 한다. 전국의 많은 노동자들이 동지들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그 성과가 잡히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다. 아니 바로 그런 힘들이 있다는 것을 지배계급, 현대차 자본(정몽구)이 가장 잘 알고 있다. 현재의 상황이 있기까지 그런 힘들이 직간접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대선에서 박근혜가 당선되었다고 해서 이런 힘들이 사라지지 않는다. 현대차는 지금 악수를 두고 있다. 힘이 있다고 해서 꼭 그 힘이 제대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물리학에서도 그렇지만 현실 투쟁에서도 상대의 힘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만 한다. 지금 그럴 정도는 충분히 있다. 비관하거나 미리 포기할 것은 없다. 설령 지금보다 일시적으로 더 어려운 상황을 맞는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여기가 결코 끝이 아니다. 여기서부터가 새로운 시작이자, 출발이다.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2012.12.27.
노동자혁명당추진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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