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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위 1년, 그 당건설 투쟁에 대한 평가

 

사노위 1년, 그 당건설 투쟁에 대한 평가

(1차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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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위가 출범하고 1년이 지난 지금, 정세는 당시보다 더욱 무르익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 위기는 전 세계적인 계급투쟁의 고양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럽과 북아프리카 · 중동, 중국과 인도와 동남아시아, 미국과 영국, 다시 중동과 남유럽 등 모든 대륙과 나라들에서 노동자 민중들의 시위와 점거, 파업과 봉기 등 대중투쟁의 물결이 휩쓸고 있다. 혁명이 책 속에나 있는 과거의 얘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실’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대중투쟁이 터져나오는 것은 이제 시간의 문제로 보인다. 청년학생들의 등록금 투쟁으로 촉발된 ‘제2의 촛불항쟁’으로 시작될지, 사내하청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촉발된 전체 조직노동자들의 총파업으로 시작될지, 아니면 양자가 결합된 방식으로 가장 폭발적인 형태로 터져나올지 그 구체적인 양상이 어떻든 한국 또한 ‘혁명의 현실성’으로부터 비껴갈 수 없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하게 다가오고 있다.

 

정세는 오히려 1년 전보다 이렇듯 더욱더 무르익고 있음에도 사노위는 혁명정당 건설로 나아가는 데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사노위의 정치적 해산을 선언하고 사노위 1년을 평가하고 있는 우리 또한 이 실패의 후과를 온몸으로 떠안고 감내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후 투쟁과 진로 또한 어떤 식으로든 이 실패의 자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진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펼쳐지고 있는 정세는 우리에게 마냥 실패를 되뇌이고 있거나 우리 투쟁의 불철저함을 비통해 하고만 있을 만큼 한가로운 여유를 주지 않는다. 따라서 이하의 평가는 단순히 지난 일에 대한 복기와 반성을 넘어 사노위 실패를 딛고 다시 정세에 부응하는 실천으로 힘차게 나서고자 하는 우리의 ‘새로운 다짐’의 일부이다.

 

이 평가문은 사노위 1년의 전 과정과 활동 전체를 평가하지는 않고 있다. 주요하게 ‘강령 통일 실패’로 표현되는 정치노선 상의 차이가 어떠한 실천적 · 조직적 함의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 그리고 ‘현장에서 사회주의 정치활동’ 확립에 실패한 문제와 관련하여 지역위, 분회 활동을 포함한 전체 조직활동에 대한 평가 등이 빠져 있다. 또한 이후 당건설운동의 과제와 전망, 평가 주체의 진로 문제도 담고 있지 않다. 이 평가문은 현재 ‘사노위의 정치적 해산’을 불가피하게 한 당건설 투쟁 실패의 직접적인 원인과 경위를 신속히 전달하기 위한 1차 보고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

 

우리의 ‘사노위 해산’ 및 ‘공동실천 종료’ 선언에도 불구하고 사노위 다수파는 사노위를 사유화하고 사노위 운동을 희화화시키고 있다. 이에 맞서 사노위 실천의 의의와 성과를 올바로 자리매김하고, ‘사노위를 통한 당건설 투쟁’ 실패의 원인과 성격을 정확히 제시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이 1차 평가서가 작성되었다. 6월 1일 28인 명의로 낸 “사노위의 정치적 해산을 선언한다” 제하 성명서에 담긴 해산 이유를 상세하게 밝히는 후속 성명으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총체적인 평가는 이후 제출하겠다.

 

 

1. “사노위 실패” : 애초 사노위는 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인가?

 

1) 목표와 과제, 옳았나?

 

사노위는 사회주의 혁명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사회주의자들의 공동실천 조직이었다. 사노위 건설 공개제안서에서 밝혔듯이, 사노위는 2008년 이래 세계공황과 자본주의 체제 위기를 배경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과제를 제기하며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에 나서겠다고 했다.

 

첫째,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운동을 전면화하는 과제’이다. 둘째, ‘당건설 투쟁 속에서 노동자계급 투쟁의 대안 지도력을 세워내는 과제’이다.

 

첫째 과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공공연하고 전면적인 사회주의 실천을 통해서 한국 사회에서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을 가시화시키고 세력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 세력화를 사회주의노동자 당 창건으로 연결하고자 분투할 것이다.”

 

둘째 과제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을 위한 정치투쟁을 다양한 수준에서 펼치면서, 동시에 공세적인 요구를 내걸고 노동자계급의 단결 투쟁을 최선두에서 조직해 나가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개량주의 노동자당과 노동조합 관료들의 투항적인 反노동자계급 지도력을 밀어내고 광범한 노동자들 속에 사/노/위가 혁명적인 대안 지도력으로 우뚝 서 나가는 것이다.”

 

또한 사노위 출범선언문에서도,

첫째, 당 건설운동의 전면화 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의 결의는 그 동안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자계급 운동 속에서 대담하게 사회주의 강령을 내걸고 공공연한 사회주의운동을 펼쳐내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사회주의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할 선진노동자들이 노조운동을 넘어서는 전망을 갖지 못한 채 조합주의에 갇혀 있기를 강요받아 온 그 동안의 상황 또한 우리가 사회주의 당 운동을 전면화 시켜내지 못한 책임이 아닐 수 없다. 사노위의 출범은 사회주의자들이 더 이상 협소한 써클의 자족적 울타리에 갇혀 지내거나 대중조직과 노동조합운동 뒤에 자신을 숨기고서 활동하는 것으로부터 확실한 단절을 이뤄내고 새로운 당 운동의 단계를 열어젖히겠다는 결연한 각오다.”

 

둘째, 대안 지도력 수립 과제에 대해서도 “사노위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의회주의와 대리주의, 자본가 정당과의 계급협조로 왜곡 후퇴시킨 진보정당 운동을 대체할 새로운 대안으로서 사회주의노동자정당을 이 땅에 기필코 세워낼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우리는 사노위를 통해 이러한 두 과제와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이라는 목표를 이루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어떤 실패인가? 이러한 과제와 목표 자체가 잘못된 것이어서 실패인가? 만약 그렇다면 사회주의자들은 방향을 틀어 당분간 써클정파운동으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이며, 현 시기 노동자계급 지도력의 위기를 감수하는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진보정당과 민주노총 · 산별노조 등 노동자운동의 현 지도부에 대당하는 지도력 다툼에서 한 발 비껴 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지금은 선진노동자운동이 궤멸되었고 활동가 주체가 극히 소수화된 상황에서 그러한 과제와 목표를 내거는 것은 맞지 않다는, 즉 지금은 당 건설의 시기가 아니라는 비판이 있었는데 이 비판이 이제 옳은 것으로 입증된 것은 아닌가? 우리는 그런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은 오히려 역으로 사회주의 당건설 운동을 전면화하고 대안 지도력을 세워내기 위한 투쟁을 통해서만이 활동가 주체도 형성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본다.

 

계급투쟁이 고양되고 그 속에서 선진활동가들이 배출되기를 기다려서야만 당 건설을 전면화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계급투쟁의 고양과 당 건설운동의 전면화 및 대안 지도력 수립을 위한 투쟁을 추상적으로 분리시키고 단계론적으로 바라보는 대기주의이다. 우리는 이러한 과제들을 밀고 나가는 것을 통해 계급투쟁의 고양도 실제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투쟁이 확대되고 전 계급적인 투쟁으로 전면화될 잠재력을 품고 있어도 현 지도부들이 중재와 타협, 투쟁 회피로 이 잠재력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지, 정세적으로 투쟁이 가라앉아서가 아니다. 단적으로 2010년 겨울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폭발적인 투쟁과 이를 틀어막은 진보정당 · 산별노조의 행태(야5당의 중재 농간)만 보더라도 ‘계급투쟁의 침체’가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지도부/ 지도력 위기의 문제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현 시기 당 건설의 목표와 과제는 정세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그 절박함은 무엇보다 자본주의 위기로 인한 이러한 계급투쟁의 폭발적 잠재력 때문이지만, 정세의 이 근본 토대와 함께 당면의 정치투쟁 지형 또한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을 그 어느 때보다도 긴급한 과제로 제기하고 있다. 현재 민주대연합 및 그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진보대통합이 노동자들의 불만과 분노를 대중투쟁 대신 의회주의와 ‘선거를 통한 심판’으로 급격히 몰고 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선진노동자 주체들이 소수”라는 이유로 사회주의 세력들이 이러한 정세와 정치 지형에 대한 전면적인 개입을 기권하고 만다면 선진노동자 주체의 상태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열악해 질 할 것이며 당 건설의 조건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후퇴될 것이다. 경제적 · 정치적 수준 모두에서 정세는 당 건설의 긴급함을 강력히 지시하고 있다.

 

 

2) 당건설의 경로로서 사노위는 “예정된 실패”였나?

 

그럼 목표와 과제가 문제가 아니라면 당 건설의 수단과 경로에서 문제였는가? ‘사노위를 통한 당 건설’ 자체가 실패의 근원이었는가? 우리는 사노위라는 당건설 공동실천 조직 대신 각자의 써클을 통해 또는 개별 활동가로서 그러한 당건설의 목표와 과제를 추진했어야 했는가? 사노위 건설 당시에 사노위에 대해 “예정된 실패”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외부의 비판이 있었다. 처음부터 원칙과 노선을 단일하게 명확히 하지 않은, 정치적으로 잡탕 조직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분열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노위를 통한 당건설’은 본질적으로 공동실천위원회로 조직을 함께 하면서 강령/전술/조직상의 통일을 위한 투쟁을 통해 당을 건설하는 경로이다. 처음부터 원칙과 노선이 단일하면 애초에 사노위 같은 ‘공동실천 경로’ 를 거칠 필요도, 강령 상의 통일을 위한 투쟁을 거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니, 애시당초 써클들로 분립해 있는 상황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처음부터 원칙과 노선을 단일하게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은 순수 써클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일 따름이다. 물론 이러한 ‘순수 경로’는 “예정된 실패”의 길을 걸을 필요가 원초적으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단일한 원칙과 노선’이 계급투쟁에 대한 실제 지도력일 수 있을지는 전혀 실천적으로 검증된 바가 없다는 것이다.

 

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 같은 공동의 조직활동 속에서 정치적 · 조직적 통일을 위한 투쟁을 통해 원칙과 노선의 실천적 지도력을 검증하는 것과 개별 써클로 남아 검증하는 것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어느 쪽이 실천적으로 검증된 당 강령의 정립을 더 보장할 수 있는 경로일지는 볼세비키당 같은 모든 위대한 당의 건설 과정이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공동실천위원회 같은 경로에는 통일에 실패할 가능성이 객관적으로 엄존한다. 현재의 사노위가 그렇듯이 말이다. 그러나 결과가 실패라고 해서 사노위라는 당건설 경로의 올바름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통일에 실패했어도 사노위 운동을 거친 것은 옳았다고 평가한다. 적어도 각자의 써클로 또는 개별 활동가로 남아서 했을 것에 비한다면 훨씬 더 남한에서 당건설을 앞당기는 과정으로 작용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사노위가 ‘실패’라는 것은 강령/전술/조직 상의 통일을 이뤄내지 못해 당 추진위로 전환하지 못한 것의 실패이지, 차라리 각자의 써클로 또는 개별 활동가로 남아 있었다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실패가 아니다. 어차피 시도하고 도전하지 않는 운동에서는 실패할 것도 없다.

 

사노위는 통일을 이루는 데 실패했지만 그 공동실천 과정에서 첫째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운동을 전면화하는 과제’와 둘째 ‘당건설 투쟁 속에서 노동자계급 투쟁의 대안 지도력을 세워내는 과제’에서 ‘순수써클 경로’에 비해 훨씬 더 큰 전진을 이루어낸 경로임을 입증했다. 아전인수식 평가는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사노위 운동 1년을 절대적인 기준을 잣대로 해서 다 실패했다는 식으로 평가해버리고 만다면 이는 진공 속의 평가일 뿐이다.

주어진 조건을 전제로 해서 상대적 평가를 한다고 할 때, 첫째 사회주의 당 건설운동을 전면화하는 데서 공공연한 진전을 이루어냈다. 무엇보다 사노위 건설 및 출범 그 자체가 그러한 진전이다. 일정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4.30 정치대회 및 G20 반대 정치캠페인 등은 진보정당과는 다른 사회주의 당 운동 세력이 독자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노동자계급 앞에, 적어도 선진노동자들 사이에 분명히 각인시켰다. 둘째 강령 논쟁과 강령/조직/전술상의 통일 및 정립을 위한 투쟁을 통해 노동자계급운동의 대안 지도력을 세워내는 과제를 공론화했다. 이런 것들은 만일 써클들로 남아 있었다면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건설의 목표와 과제뿐만 아니라 사노위라는 수단과 경로도 문제는 아니다. 공동실천위원회를 통해 강령/전술/조직상의 통일을 위한 투쟁을 거친다는 이러한 당건설 경로 자체가 틀린 경로였지 않다는 것이다. ‘사노위 공동실천을 통한 당건설’이라는 기획과 시도 자체가 잘못돼서 실패한 것이 아니다. “예정된 실패” 같은 것은 없다. 이 경로의 성공/실패 여부는 주체의 투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숙명론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실패한 것은 사노위라는 경로가 아니다. 주체의 투쟁이 실패한 것이다. 왜 어떻게 실패했나?

 

 

 

2. 사노위를 통한 당건설 투쟁, 왜 어떻게 실패했나?

 

먼저 주체의 성격과 구성부터 살펴보자. 사노위는 사노준, 사노련 일부, 노투련 등 3개 써클 출신 인자들과 개별 활동가로 구성되었다. 사노위는 써클들의 연합체가 아닌 개인 가입의 형식을 취했고, 출범 직후 사노준의 해산으로 형식적으로는 사노위 내 더 이상 어떤 써클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결코 단일 조직이지는 않았다. ‘구 사노준’ 다수파와 ‘구 사노련’ 소수파 등이 조직 내 ‘경향’으로 계속 존재하는 것은 공동실천위원회로서 불가피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모두에 의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와 같이 분파들의 존재와 그에 따른 다수파/소수파 구도는 사노위 시작부터 주어져 있는 내부 지형이었다.

그런데 이 ‘구 사노준’ 대 ‘구 사노련’의 다수파/소수파 구도는 사노위 출범 후 얼마 안 돼서 벌어진 ‘가입원서 건’을 둘러싼 투쟁을 거치며 그 구성과 성격이 바뀌기 시작했고, 2차 총회(2011년 1월) 이후에 ‘소책자 비평 건’을 놓고 벌어진 투쟁 속에서는 완전히 재편된다.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다수파/소수파 구도 자체는 마지막 3차 총회까지 변함없이 계속되었다. 소수파가 이러한 투쟁들을 거치면서 구 사노련 중심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새로운 성격과 질을 획득한 것과는 다르게 다수파는 어떠한 성격 변화 없이 다수 패권블록으로서의 구 사노준 경향이 그대로 이어졌다. 나아가 소수파로부터 이탈한 인자들까지도 이 패권블록 안으로 손쉽게 흡수, 편입시켜냄으로써 구 사노준의 기존 틀은 그대로 온존했다.

 

1) 가입원서 건 : 민주집중제 확립을 위한 투쟁

 

‘가입원서 건’을 둘러싼 투쟁은, 조직의 결정에 대해 해태, 사보타지하는 것을 옹호하는 연방주의 경향에 맞서 민주집중제(민주적으로 결정된 사항에 대한 행동의 통일)를 확립하는 투쟁이었다. 이 투쟁 속에서 민주집중제 확립에 동의하는 동지들이 결집하여 ‘제1차 의견그룹’이 형성되었다. 이 제1차 의견그룹은 구 사노련 출신만이 아니라 구 사노준의 일부 동지들과 구 노투련의 대다수 동지들이 포함되었다. 1차 의견그룹은 사노위 2차 총회에서 민주집중제를 구현하는 방식으로의 회칙 개정과 함께 ‘당건설 총력투쟁 체제 재구축’의 기치를 내걸고 지도력을 떠맡기 위한 투쟁까지 전개했다. 이 소수파 의견그룹의 투쟁이 총회 표결에서 51 대 82로 비록 패배했지만, 이 투쟁은 ‘사노위를 통한 당건설’ 투쟁에서 결코 부차적인 투쟁이라고 할 수 없다. 강령/전술/조직상의 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다름 아닌 조직 문제를 둘러싼 투쟁이었다.

 

조직의 결정은 그것이 민주적인 과정을 거쳐서 결정된 것이라면 모든 조직 성원에게 구속력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결정은 유효하나 공동실천위 단계라서 집행할 순 없다’(6차 중앙위 결정)고 하여 가입원서 작성 결정(1차 중앙위 결정)에 대해 사보타지 하는 개인 성원에게 어떠한 조직적 제재도 가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조직의 결정을 무력화시킨다면 아무리 말로 당건설을 표방해도 그것은 공문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공동실천위원회로서 사노위가 행동 통일을 높여냄으로써 공동실천위 단계를 극복하고 당으로 나아가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공동실천위 단계’를 핑계로 행동 통일을 파괴할 자유와 연방주의적 조직운영 논리를 다수파가 옹호한 것이다.

 

이에 대해 10명 중앙위원들이 연서하여 당건설을 후퇴시키는 6차 중앙위 결정사항을 폐기하기 위해 긴급중앙위 소집을 요구했지만, 다수 중앙위원들은 이 긴급중앙위 참가를 보이콧하여 무산시켰다. 이에 항의하여 31명의 평회원 명의로 “긴급중앙위 무산에 대한 우리의 입장” 제하의 성명이 발표되었다.

 

“6차 중앙위원회에서 다수 중앙위원들은 가입원서 거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입원서와 관련한 1차 중앙위의 결정사항(‘모든 성원은 가입원서를 쓴다’)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공동실천위 단계에서 가입원서 건으로 징계는 과도하다”는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밀어붙였다. ‘결정은 유효하지만 결정에 대한 집행은 안 해도 된다’는 식으로 하여 민주집중제 원칙에 따른 행동통일을 파괴하고 조직의 결정을 해태, 보이콧하는 행위에 면죄부를 부여했다.

이 같은 6차 중앙위 결정은 사노위가 행동통일을 높여감으로써 당을 건설하려는 공동실천위원회인지 아니면 써클들과 개인들의 느슨하고 분산적인 상태를 정당화하기 위한 공동실천위원회인지 심각한 회의와 좌절감을 조직에 만연시키고 있다....

1년 3개월이라는 주어진 시간 안에 당 추진위 건설을 대내외적으로 공약하고 있는 사노위로서는 그 무엇보다 회원들 사이의 행동통일을 높여나가야 하는 조직적 과제를 갖고 있다. 또한 정치적 신뢰와 지도력을 조직 내외적으로 획득해 가야 할 과제 또한 가장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판단 하에, 우리는 중앙위원 10명의 연서로 잘못된 결정을 바로 잡기 위해 긴급 중앙위원회 소집 요구를 한 것이다....

  지난 11월 27일 중앙위원회 10명의 중앙위 개최 요구에 따라 양효식 공동대표가 긴급중앙위원회를 소집했지만, 그러나 다수 중앙위원들의 불참으로 무산되었다....

6차 중앙위원회의 다수 중앙위원들이 민주집중제에 따른 행동통일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중앙위원회의 권위를 실추시킨 데 이어 이번 긴급 중앙위원회까지 무산시킴으로써 중앙위원회는 이제 무력화되고 정치적 파산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우리는 긴급중앙위원회를 무산시킨 다수의 중앙위원들의 책임 방기 행위를 강력하게 규탄하고, 아래로부터 평회원 동지들과 함께 조직을 바로 세우고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투쟁을 올바른 침로 위에 다시 가져가기 위해 조직 내외에서 전면적인 투쟁에 나설 것임을 밝히는 바이다.”

 

2) 의견그룹의 형성과 2차 총회 대응

 

이 평회원들의 성명에 이어 경기지역 동지들이 이 투쟁에 함께 하면서 2차 총회를 준비하기 위한 의견그룹이 결성되었다. 의견그룹은 2차 총회에서 민주집중제 확립과 함께 당건설 총력투쟁 체제를 재구축하기 위한 2기 사업계획안과 회칙개정안을 제출하고, 무규율과 연방주의에 맞서 좌초하고 있는 사노위를 바로 세우기 위한 투쟁을 전개했다.

총회 표결에서 패배했지만 의견그룹은 총회 자체뿐만 아니라 총회 전 단일안 협상과정에서부터 총회 말미 통합지도부 제안에 대한 대응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행동통일을 이루어냈다. 이는 의견그룹이 단순히 가입원서로 촉발된 논쟁 및 총회 대응을 위한 일회적 한시적 동맹에 제한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총회 직후 의견그룹이 낸 “2차 총회에 대한 평가와 이후 과제” 제하의 입장서 내용은 이후 의견그룹의 중심적인 투쟁과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연방주의적 산개체제 · 조직보존주의적 관성과의 투쟁을 전면화해야 한다

 

우리는 현재 의회주의자들의 진보대통합당 건설에 맞서 진정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로서의 사회주의노동자당을 건설하는 투쟁이 우리 내부의 현실안주적이고 현상유지적인 관성과의 투쟁과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노위를 통한 당 추진위 건설’이라는 것이 결코 ‘조직의 합력을 모아서 사노준의 확대판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일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무조건 당건설의 실패로, 또 하나의 확대판 써클 정파를 만드는 것으로 귀결되고 될 것이다.

우리가 민주대연합의 외연에 다름 아닌 진보대통합당 건설에 맞서 선진노동자들 사이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정력적이고 활발한 정치투쟁/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투쟁을 만들어 내고자 한다면, 우리 내에 이러한 조직보존주의적 관성과의 투쟁을 병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단체와 활동가조직과 현장조직으로, 또는 협소한 지역 사안 중심의 활동으로 각자 산개되어 있는 역량을 그냥 그 상태에서 모아내는 데 급급하여 조직을 느슨하게 연방주의적으로 유지해 나가는 것의 연장선상에서 결코 당 추진위를 만들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당 추진위 건설은 ‘조직의 합력을 모아낸다’는 미명 하의 이러한 연방주의적 조직보존과의 철저한 단절을 대표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총회에서 비록 실패했지만, 결코 물러설 수 없는 당건설 총력투쟁체제 구축을 위해 우리 의견그룹은 이 같은 연방주의적 산개 대형을 해체하고 당 추진위를 향한 민주집중제적 돌격 대형으로 조직을 재편하는 투쟁이 여전히 당건설투쟁/정치투쟁에 관건적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2차 총회 과정에 이르기까지 연방주의에 맞선 조직 재편 투쟁은 이제 당 추진위 강령 · 규약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정확히 민주집중제 규약을 확립하는 투쟁으로 전면화, 본격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와 ‘집중’의 대립?

- 지도의 중앙집중 없이는 정치방침에 대한 민주적 토론과 논쟁을 활성화시킬 수 없다

 

2차 총회 과정에서 드러난 또 하나의 심각한 모습은 ‘민주’와 ‘집중’을 대립시키는 경향이다. 당 추진위 건설이라는 하나의 분명한 목적 아래 결집한 우리들에게 ‘민주주의’란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을 위한 민주주의인가? 당 추진위 건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전체의 총의를 모으기 위한 수단으로서, 나아가 이 총의에 바탕을 둔 지도의 집중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민주주의인가? 아니면 조직의 결정과 방침으로부터 특정 개인, 특정 집단의 자유를 허용 받을 권리로서의 민주주의인가?

우리는 신임 2기 중집이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토론과 의견수렴”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민주적 중앙집중주의를 기각하고 오히려 연방주의적 산개 체제를 강화하여 당 추진위 건설을 향한 전진을 되돌려놓는 심각한 우를 범하지 않을까 경계한다. 진정으로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토론’을 활성화시키고 최대한 다수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내기 위해서는 지도의 중앙집중이 필수적 전제조건이다.

 

당건설투쟁의 도정에서 정세가 제기하는 새로운 과제와 도전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응하는 조직의 정치방침과 전술이 민주적으로 토론될 수 있기 위해서는 일단 정치방침과 전술이 ‘기 존재’해야 한다. 중앙이 선제적으로 낼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토론을 배치하고 논쟁을 조직해야 한다. 그냥 ‘아래로부터’, ‘민주적으로’ 토론되어 나올 수 있다고 상정한다면 그것은 조직의 필요성을 사실상 기각하는 무정부주의나 자생주의일 것이다.

낯선 새로운 과제와 도전에 대응하는 데 있어서 정치방침과 전술은 불가피하게 조직 내 논쟁을, 나아가 첨예한 조직 내 갈등까지도 수반할 수밖에 없으며, 조직이 이를 감수할 태세가 되어 있다면 오히려 논쟁은 조직을 활성화시키고 역동적으로 되게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정치방침과 전술은 조직 내 연방주의적 · 자치주의적 관성과의 투쟁을 불가피하게 할 것이다.

각각의 상황에 대한 정치방침과 전술을 제출하고 논쟁을 조직하는 것 자체가 그러한 관성과의 투쟁이며 이 투쟁이야말로 중앙의 일차적인 임무이다. 이러한 투쟁을 매개하지 않고서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토론과 의견수렴’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지도의 집중 없이는, 즉 민주적 중앙집중주의를 기각하고 연방주의와 산개 체제에 굴복하고서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토론과 의견수렴은 불가능하다.

 

“민주적 토론과 의견수렴”을 위해서라도 ‘조직의 합력’이 아니라 ‘조직의 역동성’을!

지난 1기 4차 중앙위에 제출된 ‘진보대연합에 대한 정치방침(안)’의 운명을 보라. 1기 중앙위 · 중집은 이 중대한 사안과 관련한 정치방침(안)에 대한 조직 내 토론을 조직하는 것을 방기했다. 민주적 토론과 의견수렴을 조직하길 포기한 것이다. 다름 아니라 정확히 연방주의와 산개 체제에 굴복했기 때문이다. 조직 내 논쟁과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겁내 했고, 연방주의 · 자치주의적 관성과 투쟁하는 것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민주’와 ‘집중’을 대립시키고 지도의 중앙집중을 ‘중앙 독재’와 연결시켜 기각하는 신임 2기 중집의 경향으로 볼 때 1기와는 달리 연방주의 · 자치주의적 관성과의 투쟁을 불사하고, 조직 내 논쟁과 갈등을 겁내지 않고서 과연 정치방침과 전술을 선제적으로 제출하여 이에 대한 조직 내 토론을 활성화시키고 의견수렴을 적극 조직할지, 우리는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후 예정되어 있는 강령 · 규약 논의 또한 이러한 논쟁 과정과 결합되는 것을 통해서만 남은 기간의 당건설투쟁이 역동적이고 외향적인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에만 성공적인 추진위 건설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총회에서 1안을 발의한 우리 의견그룹은 사노위가 이러한 당건설투쟁의 궤도 위에 올바로 들어설 수 있도록 우리의 분투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2011년 1월 27일

당건설 총력투쟁체제 구축을 위한 의견그룹 [총회 1안 발의자]

 


 

 

조직 문제를 둘러싸고 구 사노준 다수파에 맞서서 전개한 이 투쟁에서 패배함으로써‘사노위를 통한 당건설’ 투쟁은 전진하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를 겪게 되었다. 회칙 개정을 포함한 이 투쟁의 패배로 인해 과연 이후 추진위 전환을 놓고 다수파의 벽 앞에서 연방주의에 맞선 민주집중제 당 규약(안)을 채택하는 것이 가능할지에 대한 회의감이 짙게 드리워졌다.

2차 총회를 거치며 ‘사노위를 통한 당건설’ 투쟁이 비틀거리며 후퇴를 겪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의견그룹의 결속된 투쟁은 이 후퇴하는 당건설 투쟁을 바로 잡고 다시 사노위를 전진의 길로 들어서게 할 주체세력의 형성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1차 의견그룹은 더 이상 구 사노련의 연장은 아니지만, 구 사노준의 무원칙한 패거리식 옹호(사보타지 인자에 대한) 및 연방주의 경향에 반대하여 결집했다는 점에서 구 사노준 다수파에 대항하는 소수파의 구도는 -- 소수파의 성격과 구성을 질적으로 변화시키면서 -- 계속 이어졌다.

 

3) 소책자 비평 건 : 조직 내 비판과 토론의 활성화를 질식시킨 관료주의

 

소책자 비평 건을 둘러싼 투쟁은 사노위 2기 지도부를 단독으로 구성한 구 사노준 다수파가 조직 내 비판에 대해 관료적 제재를 가하려 한 데서 촉발되었다. 지도부가 발행한 소책자에 대해 한 회원이 쓴 비평 글을 놓고 다수파는 “조직의 사업을 부정, 파괴했다”는 ‘죄목’으로 글 삭제와 사과를 요구했다. 비평 글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정치 토론의 문제를 행정적인 방식으로 정리시키려고 하는 관료주의는 혁명정당 건설과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 관료적 제재에 맞서 비판의 자유를 옹호하고 조직 내 관료주의가 대두하는 것에 맞서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 것은 당연히 당건설 투사들의 가장 기초적인 임무에 속한다.

 

서울지역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의견그룹 성원들이 서울지역위 기관지 <사회주의자 통신>을 통해 비판의 자유를 방어하는 캠페인을 조직하며 선두에서 투쟁했다. 그러나 다수파는 이에 대한 일체의 정치토론을 회피하고 손쉽게 다수의 힘으로 조직 내 비판과 토론의 활성화를 억누르려 했다. 구 사노준 다수파는 그들 내 정치적 무정견과 정치노선 상의 연방성으로 인해 이러한 조직 내 비판과 토론의 활성화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관료적 제재에 반대하여 비판의 자유를 옹호한 이 투쟁은 다수파의 수적 힘에 밀려 서울지역위 집행부가 지역총회에서 총사퇴하는 것을 끝으로 결국 패배했다. 당건설은 비판과 토론의 활성화라는 자양분을 섭취하면서 전진한다. 회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행정적 처리와 ‘사업’을 앞세워 정치적 토론을 질식시키는 조직이 강령 상의 통일을 위한 투쟁을 계급 속에서 공개적으로 조직하길 기피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실제로 이 소책자 비평건을 둘러싼 투쟁 이후 다수파는 강령 초안 토론을 공개적으로 개최하는 것에 대해 단일한 초안이 아닌 복수안이 나왔다는 이유로 사보타지 하거나 아주 형식적으로만 이행했다. 이로써 사노위를 통한 당건설 투쟁은 본격적인 강령 투쟁에 앞서 이미 좌초하기 시작했고, 실패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웠다.

 

4) 1차 의견그룹의 해소와 야합세력의 이탈

 

한편 소책자 비평 건을 놓고 의견그룹이 분열하여 해소되었다. 2차 총회를 거치면서 사노위를 전진시킬 주체세력 형성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의견그룹이 비판의 자유 방어 문제를 계기로 잠재해 있던 내적 차이를 격렬히 드러낸 것이다.

 

5월 28일 3차 총회에서 사노위에 남아 강령 단일화를 이뤄내겠다며 구 사노준 다수파와 동거하는 것을 선택한 의견그룹 이탈세력은 이미 소책자 비평 건을 둘러싼 투쟁에서도 다수파와 행보를 같이 했었다. 그들은 관료적 제재에 반대하고 비판의 자유를 옹호하길 거부했다. 그리고 오히려 비평 글이 사노위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글이고 “오보”라며 삭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로 인해 의견그룹은 그 주요한 사안에서 행동 통일을 이루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격렬한 대립 충돌을 빚으면서 끝내 4월 3일 8차 회의를 끝으로 해산을 맞았다. 그러나 비평 글을 둘러싼 의견 대립 이전에 보다 근본적이고 누적된 차이와 대립이 깔려 있었다. 다름 아니라 당 추진위 건설과 관련하여 5월 또는 8월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둘러싼 차이였다. 의견그룹 내 일부 인자들이 당 추진위 건설에 대한 사노위의 기본 방침이자 대중에 대한 약속인 ‘1년(+3개월) 내에 강령/전술/조직상의 통일을 이뤄 추진위를 건설한다’는 원칙을 기각시키고 사노위를 1년 더 연장하자는 입장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의견그룹 내에서 비평 글을 삭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 인자들 모두가 바로 이 ‘1년 연장’ 입장에 동의하는 인자들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비판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조차 완강히 거부하는, 이해할 수 없는 태도의 배경에는 이런 근본적인 대립이 있었던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 2월 27일 의견그룹 4차회의에서 고민택의 발제 내용에 대해 정원현, 백종성의 격렬한 반대가 있었다. 정원현 백종성은 만일 고민택의 발제 내용이 의견그룹에서 채택되면 의견그룹을 탈퇴하겠다고까지 공언하면서 반발했다. 2인이 격렬히 반대한 고민택의 발제 내용은 무엇이었던가? 첫째, 예정대로 5월 또는 8월에 당 추진위 건설해야 한다. 둘째, 강령상의 통일을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사노위를 해산하고 강령에 따라 각자 추진위 건설로 가야 한다. 이런 배수진을 치고 강령 투쟁 등 내부투쟁에 임할 때만이 최대의 긴장감을 갖고 당건설 투쟁을 할 수 있다.

사실 발제 내용은 사노위 건설 당시의 공개제안서에서부터 사노위 출범 당시에 이르기까지 계속 대내외적으로 밝혀온 추진위 건설 방침과 다를 게 없다. 즉 기존 추진위 건설 방침과 다른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년(+3개월) 내에 강령/전술/조직상의 통일을 이뤄 추진위를 결성한다는 기존 방침은 명백히 2011년 5월 또는 8월에 추진위를 출범시킨다는 것이고, 고민택 발제 내용은 이를 재확인한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만일 1년(+3개월) 내에 강령/전술/조직상의 통일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단일하게 추진위 결성으로 가지 못하며 따라서 공동실천위원회로서의 사노위는 종료, 해산해야 한다는 것도 기존 방침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결론인 것이다.

 

이와 같이 기존 방침의 재확인일 따름인 발제 내용에 대해 정원현 백종성은 어떤 입장으로 반대했는가? “강령 문제 미룰 수 있다. 사노위 11개 원칙으로 조직 확대 후 해도 늦지 않다. 그런데 강령논의 하면서 조직 깨고 간다? 가장 최악의 수다.”, “절대 깨져선 안 된다. 깨는 것은 미친 짓이다.”

정원현 백종성은 고민택 발제에 대한 반대 토론이라는 형식을 빌어 사실상 기존 원칙 기각 및 수정을 들고 나온 것이다. 5월 또는 8월까지 강령 상의 통일을 끝내 이뤄내지 못한다면 결국 강령에 따라 제 갈 길을 갈 수밖에 없고, 분리한 속에서 당 추진위 건설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그 동안 의견그룹 내 대다수 동지들의 자연스럽고 정당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미 제출되어 있는 강령 초초안의 3인안 내용을 볼 때 저렇게 개량주의에 뒷문을 열어놓고 있는 강령안과 과연 단일화가 가능하겠는가, 저런 강령안을 사회주의혁명정당의 강령안이라고 내놓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 일인가 하는 회의와 불신이 강하게 일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 백 2인의 ‘강령 문제 미루고 사노위 연장하자’는 주장은 의견그룹 다수 동지들의 입장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강령 토론 기간이 아직 8월까지 계산하면 5개월 이상이나 남아 있고, 그 기간 동안에 강령 통일을 위한 긴장 어린 비타협적 투쟁을 전개해야 할 상황에서 스스로 먼저 1년(+3개월)이라는 옵션을 풀어버리고 긴장을 빼버린 상태에서 무슨 당 추진위 건설투쟁이 집중성을 가지고서 가능하겠는가? 또한 화해할 수 없는 두 가지 강령 · 노선이 무원칙하게 동거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1년 더 함께 한다는 것이 사회주의혁명정당을 건설하겠다고 공언해 온 세력으로서 어떻게 정당화가 될 수 있겠는가? 1년 3개월의 공동실천위 기간을 넘어 이후 서로 다른 강령과 노선으로 조직활동을 하고 서로 대립되는 강령과 노선 하에 신문이 잡탕으로 발행되고, 서로 모순되고 충돌하는 전술과 실천지침들이 같은 신문에 나란히 1년 동안 실려서 노동자계급 앞에 제출되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이것이 당 건설인가?

만일 의견그룹 성원인 정원현 백종성이 아니라 사노위 현 중집이나 다수파의 누군가가 감히 이런 주장을 들고 나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의견그룹 동지들로서는 ‘그건 사노위 깨자는 얘기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격렬한 항의와 반발이 즉각 나왔을 것이다. 2인이 제기하는 사안의 성격은 이렇게 심각한 것이었지만, 2인이 의견그룹 성원이었다는 이유로 다수 동지들은 일단 토론을 거부하기까지는 않는 인내심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거슬러 올라가서 지난 2차 총회 직후에 정원현은 이미 결론이 난 ‘통합지도부’ 문제를 의견그룹에 계속 제기하여 논란을 일으킴으로써 의견그룹 다수 동지들의 불신을 불러온 바 있다. 총회에서 이미 의견그룹의 사업계획이 패배하고 구 사노준 다수파의 사업계획이 채택되어 그에 따른 2기 지도부가 선출되었는데 정원현은 그 상황에서 의견그룹이 2기 지도부에 소수파로 참가하여 다수파의 사업계획을 함께 집행해야 한다는 투항적인 주장을 들고 나온 것이다.

동지들은 정원현의 사노위 연장 주장을 이 통합지도부 주장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 통합지도부 문제가 계속 내부에 제기되었다면 의견그룹은 그 때 이미 깨졌을지도 모른다. 통합지도부 문제는 중집 스스로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정원현도 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사노위 1년 연장’ 주장으로 다시 의견그룹 내부를 뒤흔든 것이다.

 

3월 중에 있었던, 뒤이은 의견그룹 두 차례 회의는 이 문제가 비평글 문제를 둘러싼 논쟁과 결합하여 첨예한 대립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4월 3일 회의에서 의견그룹이 파탄난 것이다. 의견그룹은 분리되기 이전에 이미 와해되고 있었던 것이다. ‘사노위 1년 연장’ 주장으로 의견그룹은 이미 분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비평글을 둘러싼 의견그룹 내 논쟁이 그리도 적대적으로 전개된 것은 의견그룹을 화해할 수 없이 갈라놓은 ‘사노위 1년 연장’ 문제 때문이었다. ‘강령 문제 미루고 사노위를 1년 연장하자’는 입장은 단지 의견그룹을 같이 할 수 없는 문제를 넘어 사노위를 같이 할 수 없는 문제였다.(이 2인의 ‘1년 연장’ 입장에 대해서는 다수파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의견그룹은 기존 방침과 원칙대로 반드시 5월 또는 8월에 혁명적 강령으로의 통일을 이루어내기 위해 비타협적으로 투쟁할 동지들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정원현 백종성을 필두로 한 의견그룹 이탈 세력은 이후 다수파와 소수파 사이에서 잠시 중간지대를 형성하는 듯이 보였지만 사실 이는 다수파에 편입되는 과정에 불과했다. 이 점은 3차 총회 및 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서울지역 총회 및 강령 초안 전국토론회 등에서) 이들 이탈 세력이 의견그룹을 앞장서서 공격하는 모습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이와 같이 의견그룹이 당 추진위 건설 원칙을 견지하면서 강령 투쟁을 수행해야 할 과제를 중심으로 새롭게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구 사노준 출신의 경기지역 동지들도 독자 전망을 모색하며 새 의견그룹과 진로를 달리 했다. 구 사노련 출신으로 다수파에 편입된 의견그룹 이탈 세력과는 달리 이 동지들은 다수파와 거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강령(이행요구 포함)에 입각한 노동자투쟁 조직화’ 및 현장에서 사회주의 정치활동 문제를 명확히 정리해서 자체 전망을 빠르게 수립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5) 강령 투쟁

 

소수파는 본격적인 강령 투쟁을 앞에 두고 이와 같이 그 세력이 축소되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소수파는 사노위 1년 시한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혁명적 강령으로의 통일에 마지막 사활을 걸고 ‘혁명정당 강령 정립을 위한 모임’을 제안하며 독자적으로 공개토론회를 개최했다. ‘모임’ 제안문은 사노위를 통한 당건설 투쟁이 당시 도달해 있던 지점을 다음과 같은 절박한 상황 인식으로 표현했다.

 

“사노위가 5월 또는 8월에 당 추진위 결성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혁명적 강령을 정립해서 가야 합니다. 혁명정당 강령 없이 사노위가 당 추진위로 전환할 수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 사노위 출범 후 1년 + 3개월이 되는 8월까지 만일 강령 · 전술 · 조직 상의 통일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사노위가 단일하게 추진위 결성으로 가지 못하며 따라서 공동실천위원회로서의 사노위는 종료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을 상기할 때 이제는 혁명적 강령으로의 통일에 마지막 사활을 걸어야 할 때입니다...

사노위를 통해 혁명정당을 건설하려 하고 혁명적 사회주의 강령 정립을 지지하는 모든 동지들은 혁명정당 강령 정립을 위한 비타협적인 투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피티독재와 무봉 같은 혁명적 사회주의의 원칙과 이행요구를 포함하는 혁명적 강령으로의 통일을 위한 투쟁에 추진위 건설의 사활을 걸어야 할 때입니다.이에 가칭) ‘혁명정당 강령 정립을 위한 모임’을 동지들과 함께 시작하고자 합니다. 동지들, 5월, 8월까지 혁명적 강령으로의 통일을 위한 투쟁에 함께 합시다. 혁명적 강령에 기반한 당 추진위 건설 투쟁에 모두 함께 합시다.”

 

강령 토론이 계속 사노위 내부로 갇혀서는 이제 더 이상 혁명적 강령 통일의 가능성은 없다는 위기의식이 3차례의 독자 공개토론회를 강행하도록 추동했다. 이것으로 공개적인 강령 초안 토론에 소극적이었던 다수파가 얼마나 압박을 받았는지, 전체 사노위에 강령 투쟁의 긴장이 얼마나 걸렸는지는 정확히 평가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독자 공개토론회를 통해 사노위 내부의 강령 투쟁과 논쟁점들이 외부에 공공연하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사노위를 통한 당건설 투쟁이 5월 또는 8월에 과연 어떻게 결판날지에 대한 외부의 관심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5월 14일에 개최된 사노위 전국토론회는 혁명적 강령으로의 통일이 더 이상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토론회였다. “강령 초안들 간에 별 차이가 없다”며 단일화를 압박하는 주장들이 다수파 일각에서 나왔지만 이날의 첨예한 논쟁 자체가 5인안과 3인안 사이에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함을 보여주었다. 의견그룹을 이탈한 야합세력은 이날 의견그룹이 지지하는 5인안에 대한 공격에 앞장섰다. 5인안 초안에서 한 두 문장을 집어내 ‘노조 포기주의’, ‘초좌익’ 등으로 몰아가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방식의 공격은 이후 이탈세력이 사노위에 남아 다수파와 어떻게 ‘강령 단일안’을 야합해낼지 그 방향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었다.

 

6) 4차 중앙위 결정사항과 야합에 맞선 투쟁

 

다음날인 5월 15일에 있은 사노위 4차 중앙위원회는 이러한 야합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주었다. “3차 총회에서 강령초안이 채택되지 않을 경우, 차기 총회에서 강령초안을 유보 없이 채택한다”고 결정하여 다수파 중심의 강령안을 표결로 밀어붙일 것이니 ‘따라올라면 오라’고 선포한 것이다. 또 “단일안을 작성할 것을 전제로 강령기초위원을 선출한다”고 결정하여, 이미 단일안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낸 5인안의 강령기초위원들을 배제하고 의견그룹 이탈 세력들을 새로 구성하는 강령기초위에 포함시켜 밀실야합으로 단일안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사실은 5인안 위원들뿐만 아니라 3인안과 2인안 위원들도 포함하여 전체 강령기초위원회가 단일안이 불가능하다고 공히 결론내리고 이를 조직에 보고했었다)

 

나중에 사노위 3차 총회는 의견그룹이 퇴장한 뒤에 이 중앙위 결정사항을 그대로 채택했다. 그리고 새로 구성한 강령기초위원회에 정원현 백종성을 포함시켰다. 4차 중앙위가 결정한 식으로 3개월을 연장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야합을 위한 연장에 불과함을 3차 총회는 결국 숨길 수가 없었다. 원칙적으로 사노위 시효의 3개월 연장이 가능했음에도 의견그룹이 4차 중앙위 결정에 반대하고 규탄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야합으로 가기 위한 결정임을 모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4차 중앙위 직후 5인안의 강령기초위원인 오세철과 양효식은 “당 추진위 건설 원칙을 짓밟은 중앙위 결정에 대한 우리의 입장” 제하의 성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현 중앙위의 절대 다수를 이루고 있는 구 사노준이 “강령/ 전술/ 조직/ 상의 통일을 통한 추진위 건설”의 원칙을 이런 식으로 짓밟는 중앙위 결정을 앞세워 3차 총회를 밀어붙이고자 한다면 이는 사노위라는 틀을 자신들의 사유물로 만들려는 음모라고 간주할 수밖에 없다. 이에 우리는 분명하고 단호하게 밝힌다. 강령 / 전술 / 조직 상의 통일을 끝내 이루어내지 못하면 공동실천위원회로서 사노위는 공동으로 해산을 선언하고, 공동으로 청산 작업을 해야 한다. 이것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

 

이어서 5월 22일 소수파는 “3차 총회는 ‘사노위 해산 총회’가 되어야 한다”는 25인 명의의 성명서를 통해 사노위를 통한 당건설을 끝내 파탄으로 몰아간 4차 중앙위 결정을 규탄하고, “사노위 운동은 실패했다”고 결론 내리며 사노위 해산을 요구했다.

 

“4차 중앙위는 마지막으로 지켜야 할 사노위 운동의 정당성마저 짓밟는 행위를 저질렀다. 4차 중앙위는 세상을 속이고 자신마저 배반하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사노위 운동은 실패했다. 이 엄연하고 냉정한 사실로부터 누구도 도망갈 수 없다. 아무리 아프고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일단 실패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패했다고 해서 사노위 운동이 추구하고 시도했던 것 자체마저 부정하거나 부정당해야 하는 것인가의 문제는 아직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이르다.

사노위의 실패는 예정된 실패가 아니다.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는 계기와 과정이 교차했으며 혼재해 있었다. 최종적으로 성공에 이르지 못했을 뿐이다. 누가 어떻게 사노위 운동의 경험과 교훈을 살려 나가냐에 따라 사노위 운동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도 계속해서 부딪쳐야 하는 문제이다.

 4차 중앙위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과 여지를 앗아갔다. 사노위 운동 전 과정의 결말을 희화화시키고 있다. 해프닝, 에피소드로 전락시키고 있다. 3차 총회에서 강령단일안이 성원 모두의 동의를 통해 또는 모두가 인정한 상태에서 최종적으로 표결을 통해서라도 결정을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현실 앞에서 3개월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강령단일화를 이루기 위한 시도를 마지막으로라도 한 번 더 하자는 취지로 4차 중앙위 결정을 이해해 보려고 한다 하더라도 “강령초안을 유보없이 채택한다”거나 “단일안 작성을 전제로 강령기초위원을 선출한다”는 방안은 도저히 그런 취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7) 3차 총회와 “사노위 정치적 해산 선언”

 

사노위 3차 총회는 끝내 해산을 거부했다. 사노위를 통한 당건설 투쟁은 이렇게 실패로 마감했다. 소수파는 28인 명의로 “사노위의 정치적 해산”을 선언했다. 그리고 사노위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당 건설 의지 재확인”을 주장하는 3차 총회 결정이 왜 “조직 보존주의를 앞세운 야합”에 불과한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사노위가 실패한 것은 단지 강령 문구상의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때문이 아니다. 강령 상의 불통일은 혁명이냐 개량이냐와 관련한 총노선의 차이를 드러냈으며, 이는 ‘어떤 당’을 건설하고 ‘어떤 정치활동’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좁힐 수 없는 간극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강령 논의를 3개월 더 연장한다고 해서 해소될 수 있는 차이가 아니다. 더군다나 그 3개월을 계급 속에서의 공개적인 강령 논쟁을 배제한 상태에서 무조건적인 단일화를 전제한 몇몇의 밀실 논의를 통해 단일안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은 정치적 통일에 기초한 당 강령의 정립이 아니라 조직 보존주의를 앞세운 야합일 따름이다.

혁명적 강령으로의 통일을 비웃고 조직만 유지, 보존하면 된다는 이러한 정치 냉소주의에 바탕한 무원칙한 동거로는 결코 사회주의 혁명정당을 건설할 수 없다. ‘깨져서는 안 된다’, ‘사노위만이 유일한 대안이다’라는 맹목적인 조직보존 논리는 ‘강령에 입각한 당 건설’ 원칙을 사실상 폐기하는 논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해산 선언에도 불구하고 사노위 다수파는 “당 건설 의지 재확인”을 주장하면서 사노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사노위가 더 이상 당 건설 추진체로서 동력과 의의를 상실했음을 마냥 감출 수는 없다. 사노위 다수파가 사노위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아무리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 명의를 참칭하더라도 사노위는 사실상 ‘확대판 사노준’에 불과하다. 이후 3개월 안에 단일안으로 나올 강령의 구체적 모습이 어떠하건 그 본질적 성격은 개량주의에 뒷문을 열어놓고 있는 3인안의 중도주의 강령 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유로콤의 진지전적 “주체형성 전략”을 기본틀로 하여 거기에 이행요구 중 몇 가지 항목들을 끼어넣는 식의 절충과 야합으로 버무린 ‘단일안’이 나올 것이다. 이것에 아무리 ‘사회주의노동자당 추진위 강령’이라는 명칭을 붙인다 해도 그것은 ‘확대판 사노준 강령’에 불과하다.

 

현 사노위가 확대판 사노준에 불과한 것은 강령 단일안의 성격 때문만이 아니다. 조직과 전술에서도 또한 그러하다. 노동전선으로 대표되는 상층노조운동, 단체, 부문 등을 병렬적으로 모아놓은 연방주의 조직 구조가 온존하고 있다. 전술 역시 이러한 조직 구조를 반영하듯 꽁무니주의 전술(조합운동과 부문운동에서 회원들의 조합주의적 · 부문운동주의적 활동을 사후 추인하는 전술)이 노골화, 체계화 되고 있다. 노조와 현장, 그리고 각 부문운동 영역에서 개량주의 주류를 거스르면서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펼쳐나가기에는 이미 각각의 영역에서 개량주의 내 좌익의 위치로 안착해 감에 따라 개량주의 운동의 재생산에 일조하고 있다. 현 사노위가 아무리 ‘사회주의운동의 전면화, 대중화’를 소리 높여 내걸고 있음에도 공허한 메아리로 그칠 뿐 실제 각각의 일상 활동영역에서 회원들의 실천은 노동전선이나 단체, 부문운동의 한계 안에 안주하여 그 틀을 넘어서고 있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노위 실패의 본질은 바로 이러한 강령/조직/전술에서 구 사노준의 기존 틀이 깨지지 않은 채 사노위 운동 속에서 지속될 수 있었던 데 있다. 달리 말하면 사노위 소수파를 형성한 혁명정당 건설 세력이 당 건설 공동실천 속에서 이러한 사노준의 기존 틀을 깨뜨리고 사노위를 당 건설 추진체로 바로 세우는 투쟁에서 패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패배는 많은 부분 소수파의 투쟁의 불철저함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다.

 

 

 

마치며

 

사노위 실패, 즉 ‘사노위를 통한 당건설 투쟁’이 실패로 결말났다고 해서 애초 사노위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식의 평가 아닌 평가는 우리의 결론이 될 수 없다. 실패에도 불구하고 1년여 기간의 사노위를 통한 당건설 투쟁은 현 시기 남한 노동자계급운동 속에서 혁명정당 건설투쟁이 넘어야 할 장애와 과제가 무엇인지를 실물적으로 집약해서 보여주었다.

사노위 내 소수파와 다수파의 투쟁은 그것이 비록 노동자계급운동에 당장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영향과 파장을 미치고 있지 않은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투쟁의 계급적 의미와 성격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그 투쟁은 노동자계급 속에서 어떤 당을 건설하고, 어떤 정치활동을 할 것인가를 둘러싼 투쟁이었다. 혁명정당인가, 개량주의에 뒷문을 열어놓는 중도주의 정당인가? 연방주의에 바탕한 꽁무니주의 정당인가, 민주집중제에 기초한 전위당인가? 강령에 입각하여 노동자투쟁을 조직하는 사회주의 정치활동인가, “강령 따로, 실천 따로” 식의 추수주의 · 경제주의 활동인가? 사노위 투쟁의 이 본질적인 주제는 이후 그 어떤 당건설 투쟁에서도 결코 비껴갈 수 없는 과제로 사회주의자들 앞에 가로놓여 있을 것이다. 사노위 투쟁에서 사회주의자들이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할 성과와 유산이 있다면 바로 이 투쟁의 의미와 교훈을 당건설 운동의 새로운 지형 위에서 정확히 되새기는 데서 나올 것이다.

 

혁명정당 건설을 통해 현 시기 노동자계급운동의 대안 지도력을 세우고자 하는 사회주의자들이 공동실천 속에서 강령/조직/전술상의 통일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 공동실천의 구체적인 조직적 형태가 무엇이건 간에 그 투쟁은 사노위 운동이 결론적으로 도달한 지점을 자신의 출발점으로 삼아 전진할 수 있다.

 

 

 

2011년 6월 9일

사노위 정치적 해산 선언자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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