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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와 <피아니스트> 그리고 슈베르트의 피아노 3중주 2번

<해피엔드>와 <피아니스트> 그리고 슈베르트의 피아노 3중주 2번

 

해피엔드

 

최보라. 그녀는 지쳤다. IMF로 직장인들이 무더기로 실직하던 해, 그녀의 남편 서민기 역시 실직했고 그녀는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성생활도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고 남편이 그녀에게 살갑고 사랑스럽게 구는 것도 아니었다. 삶은 지루하고 생활은 힘들 때 그녀 앞에 대학시절의 애인 김일범이 나타난다. 그녀는 일범을 만나게 되면서 무기력하고 힘들던 결혼 생활에서 일탈하여 새로운 삶의 쾌락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은 해피엔드가 되지 못했다. 불안한 그녀의 일상 속으로 민기의 어긋난 욕망과 분노가 파고들고 그녀의 불안한 그림자 뒤로 슈베르트의 피아노 3중주 2번이 흐른다.


피아니스트

 

에리카. 그녀는 강박 속에 살고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오로지 딸을 피아니스트로 키우기 위해 사랑이라는 허울 속에 그녀를 가두어 왔고 나이 40이 되도록 쇼핑 리스트와 귀가시간까지 일일이 간섭하고 있다. 왜곡된 어머니의 사랑은 그녀를 사회에서는 이름 있는 피아니스트이자 까다로운 피아노 교수로 만들었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느끼지 못하고 행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울타리에 갇혀 사랑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그녀는 포르노 샵에서 남자들이 자위 후 버린 휴지를 들고 냄새를 맡거나 자해를 하고 야외 극장에서 카섹스를 하는 연인들을 보며 소변으로 오르가즘을 해결한다. 포르노를 본 것이 사랑에 관해 이해하고 있는 것의 전부인 그녀는 비로소 사랑하게 된 제자 클레머를 만나서까지 자신을 때려달라고 요구하지만 그것은 결코 그녀가 매저키스트이기 때문이 아니다.
고고하고 차가운 모습을 지녔지만 사랑을 할 줄 모르는 그녀의 황량하고 처연한 모습 뒤로, 역시 슈베르트의 피아노 3중주 2번이 흐른다.

 

에리카와 최보라는 불안하고 우울하다.

 

그녀들은 사랑을 찾지만 이미 여성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반쯤 찌그러져 주어지는 이 세상에서 여성이 온전히 자신만의 사랑의 방식을 찾고, 자신의 열정과 욕망에 따라 사랑을 하며 행복을 느끼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닌 것이다.

프랑스와 한국이라는 머나먼 정서적, 공간적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두 영화에서 그녀들의 안타깝고 불안한 모습 위로 슈베르트의 피아노 3중주 2번 ‘안단테 콘모토’가 흐르도록 선택된 것은 두 작품의 음악 감독 모두가 그 선율이 마치 그녀들의 억눌린 욕망으로 인한 우울과 불안을 대변하듯, 그녀들의 심리를 드러내며 그것을 그대로 보는 이의 마음속으로 가져다 놓게 되리라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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