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다육식을 하지 않는다.

냐옹님의 [p짱은 내친구(ブタがいた敎室) ] 에 관련된 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온 삶이 누군가에게 먹히기 위해 길러지는 게 옳지 못하다

그런 축산은 자신의 삶이 다른 누군가에게 종속되는 시스템의 일부다

라는 생각에 채식이라고 이름붙이기 뭣한 채식을 하고 있다.

그래서 되도록 양식한 녀석들을 먹지 않고

산에서 살다 잡힌 멧돼지 같은 녀석들은 먹겠다고 얘기하곤 한다.

(꼭 먹지 않아도 살만한데, 수렵을 해서 먹는 건 정당한가에 대한 질문도 있는데, 아, 그럼 머리 아프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야기 할 때는 '채식'이라고 하지 않고, 육식을 하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이게 경계가 참 모호하다.

식물을 몽땅 가둬 기르는 건 괜찮은거냐고 물어도 할 말이 없고.

마당에 놓아 먹인 닭은 어찌할 것이고.

등등등.

 

어쨋든, 기업식 축산은 '다른 생명의 삶을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종속시키는 것'이고,

그 기업식 축산으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기업식 축산에 반대하는 이유는 많이 있겠지만, 우선 내가 육식을 하지 않는 이유에서 접근하고 생각을 전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같은 이유에서 볼 때 육식을 하지 않는 것보다

커피나 초콜릿을 안먹는 게 더 우선이어야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축산농장에서 동물들의 삶이 빼앗기고 있는 것이겠지만,

플렌테이션 농장에서는 직접적으로 사람들의 삶이 극한으로 빼앗기고 있으니까..

 

그런데, 또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우리는 이 사회에서 내 삶을 빼앗긴 댓가를 지불하고, 또다른 누군가의 빼앗긴 삶으로 연명하고 있는 것이고,

결국 '숨쉬는 것 만으로 착취'라는 데 결론이 도달하게 되고-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생명에 대해, 윤회와 까르마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끝없이 올라가는 본질론적인/환원론적인 태도는 현실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니 조심해야겠고,

내 입의 잠깐 안락을 위해 다른 존재가 사육되는 것을 최대한 지양하려는 노력, 경향으로서 생각하려 한다.

 

 

기업식축산을 반대하기 때문에 채식을 한다는 건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대부분의 농업 또한 플렌테이션이고 그것들은 기업식 축산과 별다를 것 없는 효과를 낳는다.

그런 산물들을 먹지 않겠다면, 굳이 채식을 하기 보다는 수입밀로 만든 과자 빵을 우선 끊어야 할 것이다.

그럼 유기농은 다 괜찮을까. - 카자흐스탄 유기농 밀은 자국의 식량을 생산할 땅을 사용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은 그 밀을 먹지 못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어떤 땅이든 우선적으로 그 땅에 사는 사람이 먹을 식량을 키워야 하는데, 공정무역거래는 커피 코코아 같은 환금작물들이 길러지도록 조장하는 것이니 그것도 소비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물론, 그런 의도로 육식을 하지 않는다 할 때에도, 그것이 어떤 완전한 시스템에 대한 추구가 아니라, 현실의 모순을 지양하는 노력이라면 전적으로 동의한다.

2010/01/05 18:51 2010/01/05 18:51

지나간다합숙

또 합숙이 시작됐다.

고등학교, 기숙사에 있던 한달무렵을 제외하면,

무엇을 준비하기 위해 이렇게 오랫동안 합숙하는 건 처음이다.

이제 시험이 열흘 남짓 남았고,

분위기가 엄숙하다.

그 분위기에 질려, 더 농땡이를 피고 있다.

 

 

/

 

기차소리가 들린다.

여기 2주일 넘게 머물렀는데, 기차소리를 엊그제 처음 들었다.

그 동안 왜 안들렸는지 모를일이다. 작은 소리도 아닌데.

한 번 의식하고 나니까, 특별히 염두에 두고 있지 않더라도 드문드문 들리는 것 같다.

평상시 생각하고 있지 않더라도, 특별한 사건으로 지칭된 자극은 마음 속에 남아, 다음번에 비슷한 자극이 있을 때에는 더 쉽게 반응하는 것 같다. 내가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 수많은 자극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채 지나가버렸을 거다. 큰 소리라든지, 화려한 볼거리라든지, 이런 것들은 그 자극이 강렬해서가 아니라 그런 자극들에 이름을 붙여놓았기 때문에 쉽게 인지되는 것이지 않을까. 그보다 더 큰 자극들이 둘러싸고 있어도,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고 말야.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 공상중.

 

 

생물심리학 책 살거야.

2010/01/04 12:34 2010/01/04 12:34

지나간다착하게 살기

루시드폴쯔음의 나긋한 목소리에 젖어주고,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고,

채식을 시도하고,

한겨레를 읽고,

수익의 일부는 후원금으로 쓰고,

마음이 아플 땐 눈물흘리고,

그래서 기부를 하기도 하고,

주식이나 펀드는 하지 않고,

그건 정당하지 않은 것 같아요

- 사려깊은 목소리로 주변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언제나 경계하는 예쁜 삶.

 

 

 

그저 묵묵히, 끝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기.

삶에, 생명에 한도가 없다는 걸 항상 되새기기.

반성하고, 또 노력하고.

눌어언.

2010/01/02 14:50 2010/01/02 14:50

지나간다구글

구글이 이렇게 커진데에는 사람들이 구글에 대해 가진 이미지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구글'이라면 뭔가 더 개방적이고, 사용자편에 있을 것 같다. 화려하지 않지만 군더더기 없다. 실용적이고 합리적이다. 이런 이미지들.

 

그런 구글이 내놓고 있는 상품들을 둘러보다 보니, 구글 하나로 정보통신 산업이 귀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섬찟했다. 검색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유투브, picas 같은 스토리지 공간, 구글독스 같은 오피스, 아웃룩을 대체할 캘린더, 쥐메일과 구글 메신져, 크롬 브라우져  - 보통 인터넷 사용자들이 쓰는 모든 서비스들을 제공한다. 구글 appz 엔진 서비스에는 웹에서 실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개발자들을 모으고 있다. 자신의 프로그램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환경을 무료로, 트래픽 걱정없이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게 개발자들에게는 매력적인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쨋든 구글도 수익을 만들어내는 기업이다. 주 수익원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광고일 것이다. 개방성 때문에 많은 개발자들이 참여하고, 그들이 만든 프로그램이나 구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문득 떠오르는데, 조정환 같은 이들은 이런 장면을 두고 소비와 생산(노동)의 구분이 사라졌다며, 상품을 소비하는 이들이 이미 생산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떠들지만 생산적 노동/비생산적 노동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조차 무시하는 망설이다.) 구글 안에서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가면 늘어갈 수록 구글에 모이는 자본의 양도 늘어날 것이다. 컴퓨터에서 구글 홈페이지만 열수 있으면 다른 프로그램을 설치할 필요없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구글의 OS가 개발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이미 모바일OS는 상용화 되었잖아.) 구글 OS에서 구글 Chrome을 실행시키고, 그 안에서 영상을 보고 음악을 듣고 메신져로 채팅을 하고, 오피스 작업을 한다.

 

구글이 컴퓨터 사용자들을 장악하면 할수록 IT부문에서 독점적으로 얻어낼 이윤이 늘어나는데, MS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상품을 팔아 이윤을 남기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른게 뭐가 있을까? MS의 제품에 대해서는 마지못해 쓰는 것이고 무언가 부당하다는 거부감을 가지면서도, 구글은 IT산업의 산타 마냥 추켜세우는 것을 보면 오히려 더 무섭다. 구글이 사회적 통제를 받지 않는 이상, 구글의 성장이 인터넷 공간의 개방성, 자유로움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2009/12/31 21:52 2009/12/31 21:52

지나간다공간

어쩌다 보니, 대학 후반기를 보낸 집들은 꽤 널찍했다.

오래되어 낡은 집을 골라서인데, 그런 집이 방값이 쌌다.

오히려 방이 오밀조밀하게 붙어있는 집들은 대개 비싸다. 물론 걔중에는 특별히 비싸 널찍하기까지 한 방도 있다.

 

널따란 방을 고른 건 내 욕심이기도 할 것이다. 경계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이것저것 갖춰놓고 싶은 물욕이 불뚝불뚝 올라오곤 한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 모르겠는데, 갖춰놓을 공간이 없다면 굳이 갖다놓지 않았을 것들이 많다. 어떤 공간에서 지내느냐는 내 생활방식의 많은 부분을 좌우한다.

 

며칠전부터 기숙사에 들어와 지내고 있다. 방 하나에는 침대 두개, 책상 두개, 책장 두개 옷장 두개가 있다. 그러고 나면 두사람정도 누을 수 있는 바닥만 남는다. 이런 넓이의 공간에서 지내는 게 몇년만이라 어색한데, 내가 바라왔던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어 설렌다. 굳이 이것저것 갖춰놓을 필요 없이, 당장 생활에 필요한 옷가지 몇벌, 이불, 세면도구, 컵, 노트북, 읽을 책 정도만 있으면 된다.

 

밥을 해먹고, 빨래를 하기 위해 세탁기, 밥솥, 냉장고, 조리기구 등등을 갖춰놓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넓은 방을 청소하느라 청소기까지 있었는데도, 내가 관리할 수 있는 면적을 벗어난 것인지 방바닥은 언제나 지저분했다. 기숙사에는 우선 그런 물건들을 안갖춰놓아도 되니 좋다. 방바닥을 쓰고 닦는 것도 두어바퀴 뒹구르면 될 면적이라 그리 어렵지 않다.

 

어차피 물건정리는 워낙 엉망이라 지낸지 1주일 남짓에, 방바닥 군데군데 책과 짐들이 널어져 있지만, 공간이 좁으니 그리 흉해보이지 않는다. 넓다란 방바닥 가득히 짐이 널어져 있는 건 참 심란하다.

 

그냥 나에게 이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좋겠다고..ㅋ

물론, 밥과 빨래는 해결되어야 하겠지만..

 

/

이런 재생산노동을 공동으로 처리하면 자원이 훨씬 덜들어가는데 말이다.

수십명이 지내는데 세탁기 몇 대면 된단 말이다.

물론, 식당에서 일하고 건물을 청소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저평가된 노동이 있긴하다..

하지만 그렇다해서, 그것을 각 가정내로 되돌려보내봤자 여성의 노동은 여전히 저평가 된다.

공동으로 수행하느냐, 개별가정에서 수행하느냐가 여성노동 저평가의 쟁점은 아니다.

공동으로 수행하되, 어떻게 같이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겠지.

2009/12/30 00:50 2009/12/30 00:50

지나간다가진 사람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무렵부터 수능시험 준비를 시작하며 강제로 기숙사에 보내졌다. 밤 12시까지는 잠을 재우지 않고, 아침 6시 반이면 무조건 깨운다. 자율학습이라고 이름붙여진 강제학습 시간이 너무 끔찍했다. 잠이 많은 나는 10시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데, 졸고 있으면 사감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 괴롭혔다. 잠이 오는데 잠을 자지 못하고 버텨야 할 때 시간이 너무 천천히 흘렀다.

 

이런 것과 더불어 기숙사에 정을 못붙였던 큰 이유는 같이 생활한 사람들에게 있다. 고등학교 기숙사는 성적순으로 강제 입사하는 것이었고, 학교생활에서 중심에 있는 아이들이 모여 지내는 공간이 되었다. 그 아이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 기숙사 안에서 만들어지고, 자신이 의식하든 하지 못하든 무언가 가진 사람들끼리의 관계를 구축해나간다. 요즘, 그런 생활을 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 공간에 형성되었던 관계를 소위 인맥이라고 부른다는 걸 그 아이들이 모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기숙사는 한 방을 6명이 썼었는데, 2층침대 3대가 방 안에 들어가고 나면 남는 공간은 통로 밖에 없었다. 방은 잠을 자는 공간일 뿐이었다. 가뜩이나 잠이 부족해 12시 자율학습이 끝나면 바로 방으로 뛰어들어와 자기 위해 누웠다.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새벽 1시까지 자율학습을 하곤 했다. 방에 혼자 들어와 잠을 청하면 별 탈 없이 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미처 잠들기 전에  애인과 통화를 하기 위해 방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곤 했다. 난 한 번 잠이 들면 잘 깨진 않지만, 잠이 들기까지는 꽤나 예민하다. 통화하는 소리가 들리면 신경이 곤두서고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그렇게 통화를 하던 사람은 어렸을 때 미국에서 중학교를 다니다 와 영어를 매우 잘했다. 그렇게 유학을 다녀온 걸로 짐작해보면 집에 돈도 꽤 많은 것 같았다. 물론 성적도 좋았다. 축구도 곧 잘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남자학교를 다니는데 애인이 있기까지 했다.(그 무렵 남녀공학이 아닌 학교에서 이성친구가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움의 대상이곤 했다. 이성애 중심적인 생각이기도 할테고, 성을 비틀어 바라보던 것도 있었지만 어쨋든, 비슷한 기준을 갖고 있던 또래집단 사이에서 이성친구는 뭔가 특별한 것이었다.) 당시 내 기준으로 보나 지금 되짚어 생각해보나, 그 사람은 어느 것 하나 못가진 게 없었다. 기숙사에는 그렇게 뭔가를 잔뜩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새벽에 공부를 마치고 잠을 자러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통화도 어느정도 마무리되고, 들어온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나는 그 이야기들 까지 다 들어야 한다. 애인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진로에 대한 이야기, 학교에 대한 이야기 등등 자신들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생각들이 오갔다. 지금 기억에 남는 특별한 대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대화 자체가 공연히 불편해 끼고 싶지 않았다. 설사 그 아이들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기숙사 바깥에 있는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분명 달랐다. 내가 그 대화에 끼기 위해서는 그런 시선을 이해하거나 이해한 척 해야하는데, 어느 편이든 내가 하기 싫고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떤 날은 그 아이들의 대화가 새벽 4시 5시까지 이어진다.  내가 속한 대화가 아닌데 듣고 있었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이미 잠든 척 하느라 숨소리 한 번 크게 못내고, 뒤척이지도 못했다. 몇 시간 동안을 머리속으로는 온갖 생각을 다 하면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게 얼마나 곤욕이던지. 차라리 잠을 못자게 하는 고문이 더 낫겠다 싶기까지 했다.

 

그렇게 그 아이들은 서로 유대감을 쌓아갔고, 졸업 후에도 자기들끼리 틈틈이 만날 것이다. 사실 졸업 후에 그 아이들이 어떻게 살지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었는데, 요즘 시험 준비로 사람들과 합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내가 보았던 그 관계들을 체험했던 사람이 있다. 그 사람에게는 그 기억이 아무 문제 없는 당연한 것인 듯하고, 그 때 유대를 형성했던 사람들을 지금도 연락하고 만나고 있다 했다. 그래서 어떤 친구는 사시를 패스했고, 어떤 친구는 무엇을 하고 있고.... 이들 사이에 형성된 이 유대는 인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면서 이미 많은 것을 가진 그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을 가져다 줄 것이다.

 

난, 명확하진 않았어도 그게 느껴져서 그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분명히 시선이 서로 다른데, 어느 편에서는 자신의 시선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다른 편에서는 그 시선을 동경한다. 그 때 서발턴 이야기를 알았더라면 진지하게 고민해봤을 것인데..ㅋ

 

기숙사에 머무른지 한달이 조금 넘어 결국 난 퇴사당했다. 12시를 넘어서 하는 자율학습은 선택이긴 했지만 사람들에게는 이미 필수로 받아들여 지고 있었고, 난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었다. 같이 방을 쓰는 사람에게도 사감에게도 난 뭔가 삐뚤어지고 건방진 아이였다. 그 안에서 난 혼자였고 - 혼자가 아니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찾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그게 아쉽다 - 그걸 견디고 있기 싫었다. 기숙사 바깥에는 그래도 같은 편이 될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몇 명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난 그 때도 지금도 많은 걸 가지고 있다. 내가 더 가지려고 하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가지고 있던 걸 놓지도 않았다. 그런 부끄러움이 언제나 나를 괴롭힌다.

2009/12/27 22:59 2009/12/27 22:59

지나간다

티벳 여행을 가기 직전, 향을 피우지 않아도 향 냄새가 났었다.

향을 피울 만한 곳이 없는데도, 길을 걷거나 차를 탈 때면 코 끝에서 은은한 향내가 나는 것이다.

 

손으로 향을 피운다는 이야기를 들은적 있다.

향나무를 태워 향냄새를 발견한게 아니라, 이미 입력되어 있는 어떤 감각과 비슷한 것을 찾다보니 향나무 냄새를 찾게된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 원형에 대한 이야기다. 비교종교학, 고고인류학 등에서 인류가 경험하는 신비체험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유의성이 있다는 언급을 하곤 한다.

 

 

덧.

티벳에 있는 동안, 몸이 별로 힘들지 않고 괜찮았는데, 땅이 잘 맞는다는 느낌이었다.

얼마전 산 밑에 머무를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 있을 때도 몸이 참 가벼웠다.

이런 경험들은, 증명할 길 없는, 너무 주관적인 느낌에 불과하다. 자기암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런 경험들은 재밌다.

2009/12/27 22:27 2009/12/27 22:27

지나간다음악

집에 mp3를 구워놓은 씨디가 많이 있길래 그 안에 담긴 파일들을 모두 하드에 옮겨보았다. 대학교 1학년 무렵부터 몇년동안 내가 모아놓고 들었던 음악들의 목록을 훑어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CD에 어떤 밴드의 음반이 하나 밖에 안 담겨 있지만, 다음 CD에는 그 음반 외에 다른 음반이 하나 더 담겨 있기도 하고, 이렇듯 어떤 식으로 듣는 음악의 범위를 넓혀나갔는지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보낸 시간과 기억의 조각들을 이런 식으로 뜻밖에 확인하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떠올려보면 내가 만들었던 컴필레이션 음반도 있는데, 그걸 주위사람들에게 선물하고 꽤나 뿌듯해 했었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난 어느만큼 멀어졌나.

 

CD10장 분량의 mp3가 지금은 DVD 한장에 들어간다. 지금 집에 쌓여있는 수십장의 CD는 정리하고 나면 DVD 몇 장 분량 밖에 안될텐데, 공간을 잔뜩 차지하고 있는 녀석들이 민망해할까 해서 머쓱하다. 불과 5년전만 해도 DVD를 집에서 굽는 건 꽤 드문 일이었단 말이다.

그만큼 사람마다 쥐고 있는 정보의 양은 끝모르고 많아지는데, 우리는 그 중 어느만큼을 담아내고 있을까? 지금은 예전만큼 음악에 탐닉하지 못하는데, 들을 수 있는 음악들이 많아질 수록 쉽게 물리는게 아닌가 싶다. 나를 살펴보면 고등학교 때보다 듣는 음악의 양은 많아졌을지언정, 어떤 음악 하나를 내 안에 담아내는 깊이는 더 얕아졌다. 몇 년 전엔 음악 하나에 심취해 그 음악을 구석구석 머리속에 그려넣을 수 있었는데 말이다.

뭐, 그 땐 아예 mp3플레이어라는 게 없었고, 휴대용 기기는 cdp, mdp, 카세트플레이어 등이었는데, 난 cdp살 돈을 못모아 카세트플레이어로만 음악을 들었었다. 이미 절판돼 구하기 힘든 음반을 사기 위해 시내 모든 음반사를 돌아다니던 게 떠오른다. 지금은 설사 구하기 어려운 음반을 찾아야 한다 하더라도 발품을 팔기보다는 손가락에 일을 더 시켜야 한다. 어렵게, 어렵게 원하는 음악을 찾았다 해도 전선을 타고 온 음악은 발품을 팔아 손에 든것보다는 애착이 떨어진다. 옛날에 대한 향수인건가 질문을 던져보는데, 손과 발, 오감을 통해 촉지한 것과 전선을 타고 와서 모니터에 보이는 것 사이에는 그만한 '물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편이 더 맞는 것 같다. 우리는 결국 色의 세계에 살고 있으니까.

2009/12/19 16:39 2009/12/19 16:39

지나간다학생회 단상

MinorGood님의 [학생회운동에 거는 딴지] 에 관련된 글.

 

내가 겪어왔던 학생회 관련된 일들, 생각들. 떠오르는 대로. 짧게. 답없는 글.

 

 

내가 학생회일을 직접 했던 건, 총학생회 1년, 단대학생회 1년.

총학생회는 2학년 때 맡았었고, 그 때도 몇 안되는 사람들로 허덕이며 운영했었다. 그래도 총학생회 이름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많이 있을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시작했다. 그러다 총학생회 경험 속에서 학생회에 대한 실망에 부딪혔을 때(구체적인 실망의 근거들을 나열하려고 생각해보니 너무 장황해지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언급했던 것들이고, 지금 내가 쓰려는 글과 별 상관 없는 내용이어서 뺀다.), 맨처음 가졌던 건 학생회가 자치의 가능성을 내리누르고 있고, 그것을 벗겨내면 만인에 의한 자치가 가능할 것이라는 환상이었다. 중앙집권적인 권력과 대중에게 내재되어 있는 역능을 대립시키면서 그 둘 사이에서 인과관계를 찾아내려 노력했다. 이런 생각을 뒷받침해줄 근거를 아우또노미아를 소개하는 그룹에게서 끌어오려 했었고, 지금와서 보면 결론을 내려놓은 채 근거를 뒤적이는 매우 글러먹은 태도였다. 아무튼, 그런 생각에서 해봤던 게 선거반대운동이었는데 기호0번-자신의 이름을 찍자는 이야기에 사람들의 반응이 꽤 좋았었다. 이 때에도 선거는 소위 비권-반권의 이권다툼이었고, 어느 편이 당선되든 학교에 변할일이 없다는 건 객관적인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런 구호가 그 개인들의 정치참여를 보장하는 구체적인 제안이지 않았고, 결국 정치에서  자신을 분리시켜내는 걸 정당화시키는 효과를 남길 것이라는 반성을 요즘 와서 깊이 하고 있다. 선본들의 공약에 대한 비판과 정책제안 같은 활동이 당위적인 풀뿌리 민주주의만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낫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이런 시도들을 거치고, 단대학생회는 사실 별다른 준비 없이 함께 하게 되었다. 이것도 사람이 없어서 내내 허덕거렸다. 옆에서 보면 즉흥적인 결정으로 보이기도 하겠으나, 항상 머리속의 반절은 대학사회(특히 학생회)를 어떻게 개조시키면 좋을까에 대한 질문과 나름의 계획들로 차있었고, 내가 단대학생회에 들어가게 될 상황과 조건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계산이 있던 터였다. 몇 해전에 실패했던 걸 극복해보고 싶던 욕심이 있었다.

해가 갈수록 학생회의 조건도 무너지는 걸 실감했다. 이름만 '학생회', 손에 잡히는 물적인 토대가 너무 없었다.  그 때도 선도투만 머리속에 있던 것 같은데, 한창 한미fta정세가 있을 때여서 학생회 힘을 동원해 실천단을 꾸리기도 했지만, 정작 fta에 대한 대중적인 선전은 꽝이었다. 학생회를 자치공간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학생들 불러모아 매일 밥해먹기도 했지만, 그것도 내가 구상한 사업에 사람들을 끼워맞추는 식이었다. 학생회 임기 안에 하려고 했던 것 중 하나가 학생회칙을 바꿔 누구나 학생회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을 보장하는 일종의 평의회를 실현하려고 했는데, 결국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적극적인 반대자 몇명에게 밀려 무산되었다. 그 해 해봤던 모든 것들은 정말 몰정세적 선도투라고 이름 붙일 수 밖에 없도록 낯부끄러웠다.

학생회를 누가 어떻게 운영하느냐는 핵심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삶에서 정치가 사라지는 것과 꼭 같은 만큼 학생회도, 동아리도 축소되어가고 있었다. 학생회가 강력해지면 동아리가 죽는 대립관계/인과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것에 의한 효과가 반영되는 것일 뿐이다. 그 인과관계를 고민하는 동안 학교에서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시간이 지날 수록 모든 자치기구들이 비가역적으로 망가지고 있다.

고민은 여기까지인데, 그래서, 그걸 넘어설 방법은? - 도저히 답을 못찾고 있다. 지금 당장은 하고 있는 활동 유지하기도 벅차다. 그 활동마저 언제나 위태위태하다. 주변 대학들에서 활동하던 단위가 하나 둘 문닫더니 이제 내가 다니는 학교 밖에 남지 않았다. 푸념이 별로 도움될 일은 없지만, 그래도 한숨이 나온다. 처참한 현실.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버티는 일. 그래서 요즘은 학생회에 대한 고민을 접어두었다.

2009/12/16 00:25 2009/12/16 00:25

지나간다이해

다른 이를 이해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안되는 사람들이 있다.
걔중 가장 진절머리 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다.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핑계거리를 만들어내는 사람.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어떠한 영향을 받는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생각해보면, 어리다고 비겁한건 아니니 말이 맞지 않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인간이면 바뀔 여지라도 있을텐데, 그런 반성이 없는 사람은 바뀔 여지도 없으니 더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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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이상을 추구하는 삶을 살겠다며 모임을 정리했던 아이가 스키장 간다는 걸 보고 드는 생각이다. 내 기준에서 보면, 그 아이가 말했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허술하게 살면 안된다.
물론 나름대로 그 이상을 추구하겠지. 하지만 그게 자기 삶의 목적이라고 얘기하기에는 지금의 생활이 낯부끄럽지 않을까?
이건 어떤 삶을 추구하든지, 그 방향과 상관없이 스스로에게 던져야할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꼭 지고지순한 삶의 목표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 삶의 목표라고 이야기할 정도라면 그것을 위해 현재의 삶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 스스로 끊임없이 반성 해야하지 않느냐는 거다. 활동가에게도, 다른 어떤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그 아이가 말한 큰 이상이란 것도 정말 그 이상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담겨있기 보다는 자신의 세속적 욕망을 합리화시키는 겉치레로 보인다. 자신의 안녕에 대한 욕망을 그렇게 큰 이상으로 포장할 이유가 없다. 그런 욕망이 부끄러울 것도 아니고, 없어져야할 것도 아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다를까를 궁리하지 말고, 수많은 삶들의 숭고함을 경외하며 묵묵히 살아가면 될일이다. 성인입네 하면서 할거 다하는 인간들이 가장 저질이지 않던가.
뭐, 다른 사람을 마음을 속속들이 알수는 없지만, 그 아이가 자신을 너무 쉽게 합리화하는 건 틀림없다. 그리고 자기가 하는게 합리화라는 걸 모르는 것 같다는게 가장 큰 문제다...
(그래도 누구는 자기가 부끄럽다는 걸 안다고 말해서 기다리기로 마음 먹었다.)
 

2009/12/15 23:00 2009/12/15 2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