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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 벗어나자, 석유중독

인구 26위, 경제 11위에 견줘 너무 앞선 석유소비량 세계 7위… 의존도 낮추는 방법 고민해야

 

 

▣ 글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1배럴(bbl). 석유 단위를 셀 때 쓰이는 이 단어는 최근 유가가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신문과 방송에 자주 나온다. 나무통이란 뜻의 배럴은 19세기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생산한 원유를 나를 때 나무통을 사용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단위인 리터(ℓ)로 환산하면 1배럴은 158.9ℓ가 된다. 1.5ℓ짜리 플라스틱 음료수통 106개 분량이다.

석유 1배럴의 값은 지난 2월19일 미 서부텍사스유(WTI) 기준 100.04달러로 사상 처음 세 자릿수에 진입한 뒤 130달러를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배럴은 60달러에 미치지 못했다. 2000년 이전에는 10~20달러 수준이었다.


△ 5월29일 서울 여의도의 한 주유소. 국제유가 급등으로 국내의 휘발유, 경유값도 치솟아 리터(ℓ)당 2천원대에 육박하고 있다. 액화석유가스(LPG) 등 가스 가격도 6월부터 줄줄이 인상될 전망이어서 서민들과 생계형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석유값이 이처럼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 사이에선 투기세력이 석유값을 밀어올리고 있다는 주장과 수요에 견줘 공급이 못 미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고유가, 투기 탓인가 공급 부족인가

 

투기세력 때문이라는 주장은 이렇다. 미국발 금융위기(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 경기가 침체되면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내려 달러 약세가 이어지자, 저금리 달러에 매력을 못 느낀 투기자본들이 원유나 금, 옥수수, 밀 같은 실물 시장에 집중적으로 투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가 급등 원인을 투기세력에서 찾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 석유수출국기구(OPEC)다. 차키브 켈릴 OPEC 의장은 5월28일 스페인 국영 라디오와 한 인터뷰에서 “투기세력이 유입되면서 유가가 급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지 소로스도 영국 일간지 <데일리텔레그래프>와 한 회견에서 투기세력을 고유가 주범으로 몰아세웠다.

하지만 다른 전문가들은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에서 유가 급등 원인을 찾고 있다. 1956년 킹 허버트 박사가 제시한 ‘피크오일’(peak oil) 이론이 대표적이다. 피크오일은 석유 생산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시점을 일컫는다. 소비는 계속 늘어나는데 생산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돈을 주고도 석유를 살 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피크오일은 매장량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와는 별 관계가 없다. 수요가 늘어날수록 피크오일에 이르는 기간은 단축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앞으로 20년 안에 전세계 석유 공급이 수요보다 매일 1억 배럴씩 모자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석유 부족 현상이 이르면 2012년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도 “적절한 공급 증가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제유가가 2년 안에 배럴당 150∼200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가 인상 원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해법도 다르다. 갈등도 빚어진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4월29일 기자회견에서 “국제유가가 급격히 뛴 이유는 석유 생산이 석유 수요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OPEC에 석유 공급을 늘리라고 압박했다. 하지만 OPEC은 “금융시장을 떠난 투기자본 때문에 유가가 올랐다. 석유 생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


 

 

석유값 인상은 장기적으로 우리의 먹을거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가가 상승하면 석유를 대체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진다. 석유 대신 바이오디젤이나 바이오에탄올을 더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바이오연료는 콩과 옥수수를 원재료로 한다. 바이오 연료를 많이 만들어낼수록 식량 부족 현상은 더욱 심각해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그렇지 않아도 비싼 농산물 가격의 폭등이 예상된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의 유가 상승은 투기세력과 수요-공급의 문제가 혼재돼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앞으로 유가는 단기적으로 조정을 받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꾸준히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고유가는 서민경제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유가 상승에 연동돼 원가 부담이 커진 전기, 가스, 철도, 고속버스 등의 공공요금이 하반기에 줄줄이 오를 예정이다. 액화석유가스(LPG)에 도시가스(LNG)에 소규모 가게, 노점에서 주로 쓰는 가정용 LP가스 가격 인상도 예상되고 있다. 자고 나면 치솟는 경유값 때문에 화물차 운전자들이 손을 놓는가 하면 어민들이 조업을 포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부 ‘석유독립특별위원회’를 만들라

 

현재 국제시장에선 경유가 휘발유보다 8~9달러 높다. 휘발유는 주로 자동차 연료로 쓰이지만, 경유는 발전용과 산업용, 농업용 등 수요가 다양해 중국·인도와 같은 신흥시장에서 수요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휘발유가 더 비싼데, 휘발유에 붙은 유류세(교통세·교육세·주행세)가 1ℓ당 737.26원(부가가치세 포함)으로, 경유의 523.27원보다 200원 이상 비싸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서민들이 쓰는 경유에 대해선 세금이 없는 면세유를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5월29일 서울 용산의 한 아파트 단지. 평일 대낮임에도 자가용들이 주차장에 가득 차 있다. 급등하는 유가가 부담스러운 운전자들이 차를 주차장에 세워놓고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고유가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석유 중독’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유가 상승을 막을 수 없다면, 대체에너지를 개발하고 에너지 소비를 점차 줄여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박복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팀장은 “나라마다 고유가에 대응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중국·인도형은 에너지 소비 억제보다 해외 유전 확보와 같은 공급 위주 정책에 주력하고 있다. 반면 유럽·일본형은 에너지 소비 억제와 대체에너지 개발에 정책의 역점을 둔다. 석유자원이 유한하다고 본다면 우리나라가 추진해야 할 방향은 후자라고 본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하루에 쓰는 석유는 약 230만 배럴로, 장충체육관 부피의 5배가 넘는다. 인구 규모(세계 26위)나 경제 규모(세계 11위)에 견줘 너무 앞선 세계 7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에너지 사용량 가운데 22%는 가정과 상업 부문에서 쓰이고 있다. 이 가운데 10%만 절약하면 6억달러의 외화가 절약된다. 이는 전국 고등학생들이 2년 동안 무료 급식을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보통 사람들이 석유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실천도 필요하다. 자가용 대신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힘들더라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가는 작은 실천이 석유 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를 석유를 우리의 딸과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한 방법이다.

안준관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본부 부장은 “석유가격 상승은 원가 상승, 물가 상승, 수출채산성 악화, 경제 둔화 등으로 경제의 모든 부분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런 악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석유로부터의 독립’이다. 대통령 산하 ‘석유독립특별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위원회를 통해 국민, 학자, 관료, 정치인들 모두가 지혜를 짜내 한국 사회가 석유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1배럴의 원유에서 뽑을 수 있는 휘발유는 63.5ℓ. 2000cc 소나타(연비 11.5㎞/ℓ)에 ‘만땅’(70ℓ)을 넣고 달리면 730㎞를 갈 수 있다. 서울~부산을 왕복하기에 조금 부족한 정도. 1000cc의 경차 모닝(연비 16.6㎞/ℓ)으로 달리면 730㎞의 같은 거리를 가는데, 소나타의 3분의 2인 44ℓ만 있으면 된다. 석유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싶은 당신이 경차나 소형차를 타야 하는 이유다.

 

고유가 부추기는 환율정책

 

 

 

수출에 목말라 세금 쏟아붓네

 

정부의 잘못된 환율정책이 고유가를 부추겨 서민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대착오적인 고환율(원화약세) 정책으로 서민들이 고유가와 고환율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강만수 경제팀은 ‘경제성장률 7%’라는 성장목표에 집착해 1970년대식 수출 드라이브에 ‘올인’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세금을 쏟아부어 환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5월27일 한때 1050원을 웃돌았다. 지난해 각종 경제연구소가 예상한 올해 환율은 880~930원이었다. 이러다 보니 거의 모든 나라 화폐에 대해 약세인 달러가 유독 원화에 대해서는 강세다. 국제유가 상승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고환율 때문에 국내 기름값이 더 올랐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이유다.

5월27일 두바이유는 배럴당 126.48달러로 이명박 정부 출범 전에 견줘 37.7% 올랐다. 급등하는 유가에 더해 환율마저 치솟으니 원화로 치르는 기름값은 훨씬 더 비싸진다. 같은 기간 원-달러 환율도 덩달아 9.4% 올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저환율이 고유가 충격을 어느 정도 완화했는데, 새 정부 들어서는 환율이 급등세로 돌아서면서 고유가 충격을 증폭시키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적정 수준 이상으로 환율을 끌어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높은 환율은 단기적으로 수출 증대와 경기 부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효과가 있다. 고환율은 수출 기업들에는 좋지만 그 부담은 국민이 짊어져야 한다. 당장 경유값 급등도 국제유가가 오른 것이 일차적 원인이지만 환율 상승 탓도 크다. 5월27일 정부는 뒤늦게 달러를 대량 매도하면서 환율을 끌어내리기는 했지만 ‘뒷북 대책’이라는 비판이 따른다.

정부의 유가 전망도 ‘뒷북’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4월28일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민관 합동회의’에선 올해 연간 유가 전망치(두바이유 기준)를 배럴당 90달러로 예측했다. 하지만 두바이유 가격 곡선은 이런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고유가 대책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3월 유류세를 10% 인하했지만 유가 급등으로 효과는 채 일주일도 가지 못했다. 정부는 5월28일 뒤늦게 국무총리 주재로 에너지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종합대책을 내놨다. 정부가 가스, 전기, 주유 등의 대금을 대신 지불하는 ‘에너지 바우처’를 저소득층에게 지급하고, 화물운송 업계와 영세 사업자를 위한 유가보조금 지원을 2년 연장한다는 것이 뼈대다. 지난 정부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나왔던 기존 대책의 재탕 삼탕이다. 바우처 제도의 경우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지, 서민이나 영세 사업자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지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 예산을 마련하더라도 시행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비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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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촛불은 아시아인들의 건강 지키는 투쟁”

출처 : 한겨레21 홈페이지 (강조는 본인)

필리핀 월든 벨로 교수 “요새는 신자유주의자들도 그렇게 완전 개방 요구 안 해… 불황에 빠져드는 미국 경제와 거리둬야”

 

 

▣ 방콕(타이)= 엄기호 <닥쳐라 세계화> 저자

 

[미국산 쇠고기 파동]

 

지난 20년간 한국의 정치·경제를 관심 있게 지켜보며 많은 글을 써온 필리핀 국립대학의 사회학과 교수 월든 벨로와 미국 쇠고기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WTO)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일관되게 반대해온 세계적인 석학이자 활동가다. 인터뷰는 그가 설립하고 책임을 맡고 있는 타이 출랄롱콘대학 글로벌 사우스(Focus on the Global South)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 (사진/ 한겨레 김종수 기자)

 

 

한국에서는 지금 미국에 쇠고기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광우병과 관련해 뜨거운 사회 이슈가 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두 가지 의미에서 의미심장하다. 하나는 한국이 1997년부터 급속하게 추진해온 미국식 신자유주의 체제의 완성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IMF의 권고를 전적으로 수용한 나라다. 이번 쇠고기 협상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그동안 한국 정부가 추진해온 미국 시장과의 완전한 통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국가가 될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 10대들이 거리를 점거하고 투쟁을 벌이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 한국은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언제나 아시아에서 선두에 서 있었다. 한국에서 새로운 사회운동이 벌어지면 그것은 곧 전 아시아로 퍼지는 경향이 있다. 정부의 신자유주의화와 새로운 사회운동의 대두라는 점에서 이번 광우병 사태는 의미심장하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검역체계에 이상이 없고 국제수역사무국(OIE)과 같은 국제적인 검역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이는 미국에서 얼마나 철저히 검역을 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는 상관이 없는 검역주권의 문제다. 일본은 왜 아직도 수입을 제한하고 있는가? 솔직히 나는 미국의 농무부가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는 것도 믿기 어렵고 OIE가 미국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국이 각자 사정에 맞는 검역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은 뼈를 고아먹는 유일한 민족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런 식생활 습관에 맞춰 그 부분에서는 더욱 민감하고 엄격하게 검역을 실시하는 권한이 한국에 있어야 한다.

한국의 대통령은 질 좋고 맛있는 쇠고기를 싸게 먹게 되는 것이고, 먹고 안 먹고는 국민이 선택할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그게 바로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에서 자유는 ‘선택의 자유’만을 의미하고 그것은 언제나 소비자의 이름으로 찬양돼왔다. 시장이 개방되고 다양한 상품이 진열되면 소비자는 그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다는 게 신자유주의다. 그리고 이를 소비자의 권력이 강화되고 시장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미화해왔다. 그러나 그 ‘소비의 자유’는 대부분 생산자들의 고혈을 착취해 일시적으로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 소비자가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허상이다. 소비자는 진열돼 있는 것을 고를 수만 있지, 무엇이 진열돼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개입할 수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금융과 유통자본에 의해 결정된다. 생산자는 일방적으로 수탈당하고 소비자는 자신이 권력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게 하는 게 신자유주의 체제다.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은 ‘알아서 골라먹으라’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을 위해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통제하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쇠고기 시장 개방은 한-미 FTA 타결과 연계된다. 한국 정부는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FTA를 타결하지 않으면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미 FTA는 한국 경제를 완전히 미국에 종속시킬 것이다. 지금도 한국은 정치적으로 미국에 종속돼 있는데, 그동안 추구해온 독자적인 경제발전은 포기하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될 경우 한국의 경제는 미국과 전적으로 연동돼 미국의 경제 부침에 따라 요동치게 될 것이다. 현재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정책은 신자유주의 중에서도 이미 낡아버려 서구조차 따르지 않는 1990년대식 신자유주의다. 요새는 신자유주의자들도 그렇게 완전 개방을 주장하지 않는다. 대통령 주변의 경제자문 라인에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한-미 FTA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말인가.

=지금 미국 경제는 심각한 불황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럴 때 현명한 정부라면 미국 경제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미국과 가급적 거리를 둬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 미국과 완전히 경제적으로 연동되는 FTA를 체결하겠다는 것은 자살행위다. IMF를 한번 보라. 1997년 경제위기가 왔을 때만 하더라도 전 지구를 자기 손에 쥐고 있는 것처럼 승승장구하던 것이 IMF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IMF는 생존을 이어가기에 급급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는 IMF 탈퇴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대출 감소로 재정 압박도 심하다. 이런 IMF가 권고한 것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 한국이고 그것이 지금 한국이 겪고 있는 양극화와 경제불안의 한 요인이 아닌가. 그런데 다시 한-미 FTA로 그것을 반복하려 하고 있으니 한국 밖에 있는 우리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한국의 쇠고기 시장 개방과 한-미 FTA로 선례를 만들어 다른 나라를 압박하려고 할 것이다. 미국은 대만과 일본의 쇠고기 시장 역시 개방하라고 압력을 행사할 것이다. 미국은 지금 타이·말레이시아와 FTA 협상을 진행 중인데 한국과 협상한 내용이 모델이 될 것이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곧 아시아 전역에서 벌어질 일이다.

그렇다면 이번 쇠고기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행동 역시 아시아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

=거리로 뛰어나온 한국의 10대들과 주부들은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지금 한국의 쇠고기 시장 개방 반대 시위는 한국민들의 건강뿐만 아니라 전체 아시아인들의 건강을 지키는 엄청나게 중요한 투쟁이다. 좀전에 말한 것처럼 한국이 1997년 이후 가장 충실하게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따라왔기 때문에 쇠고기 시장과 FTA로 제도적으로 그것을 완성하게 되면 미국은 전체 아시아 국가에 압력을 행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한국의 시위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10대들이 나왔다는 점이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들이 열광하는 스타를 광우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나왔다고 말하기도 한다.

=(웃음) 환상적이다. 멋지지 않은가? 나는 그들이 자신들의 스타를 미국과 광우병으로부터 지켜내기를 바란다. 상대가 누가 됐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하는 모든 행동은 아름다운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마 아시아에서, 아니 세계에서 최초일 것이다. 곧 다른 나라의 10대들도 그렇게 하지 않을까 기대된다. (웃음) 물론 대중스타만은 아닐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학교급식의 문제도 있고 여러 가지가 10대들과 주부들을 움직였을 것이다. 그들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가 아닌가. 오히려 이런 문제에 전통적으로 한국의 사회운동을 이끌어왔던 대학생 운동과 노조가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안타깝다. 노조에서도 문제의 심각성과 이 투쟁의 세계적인 의의를 깨닫고 10대들과 함께 어깨를 겯고 거리에 서기를 바란다. 한국의 투쟁은 세계의 투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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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하기'의 달인들

그들이 모든 일을 비밀스럽게 처리하는 이유는? 

사안에 당당히 맞설 '용기'가 없으니까.

 

YTN 이사회, 구본홍 사장 '몰래' 선임

http://news.empas.com/show.tsp/cp_ma/20080529n16164/

 

정부, '쇠고기 고시' 틈 타 '수돗물 사유화' 발표

http://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0529175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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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농민과 민주주의 ― 산마리노 공화국의 교훈 / 울프 선드호슨

출처 : 녹색평론 홈페이지 (강조는 본인)

 

 

이 글은 민주주의는 중산계급이 확립된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일반통념―배링턴 무어의 “부르주아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는 단호한 언명에 반영되어 있는 믿음―에 대한 도전으로 씌어진다. 농민이야말로 자유를 지키는 정치질서를 위한 최선의 사회적 기반이라고 생각했던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단서를 취해서, 나는 농민이 민주적 정부 시스템을 건립할 수 있다는 가설을 살펴보려고 한다. 여기서 들고자 하는 사례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나라 산마리노이다. 산마리노의 장구한 역사는 민주주의 확립의 배후 추진력은 교육받은 부유한 중산계급일 필요가 없으며,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농민계급이 이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이 발견은 서구의 정부, 학자, IMF 및 세계은행과 같은 기구들이 제3세계 국가들을 위해서 관례적으로 행하는 바로 그 처방이 의심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지난 20세기―또 21세기 초반까지도 계속해서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지구의 구석구석에까지 ‘자유’민주주의를 퍼뜨리기 위한 노력으로 특징지어졌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확산은 앵글로색슨 국가들(그리고 그보다는 덜하지만 서유럽)이 내세우는 공식적 정책으로서 많은 자금에 의해 뒷받침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민주주의의 진척상황은 보잘것없다. 왜 전세계적인 민주주의의 성장이 지지부진한가라는 의문에 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이 글에서 개발도상국에서 민주주의를 확립하려는 노력들에 관련하여 두 가지 중요한 문제를 살펴보려고 하는데, 그것은 민주적 정체(政體)를 건립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농민의 역할, 그리고 서구의 설계자들이 개발도상국들에 심어주려고 하는 민주적 질서의 본질이다.

 

  농민은 민주적 정부 시스템을 건립할 수 없는가

  민주주의의 진화에 관한 다수의 문헌은, 다소 단정적으로, 민주적 질서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부유하고 교육받은 중산계급뿐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부르주아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라는 단호하지만 역사적 사실과 관계없는 배링턴 무어의 주장에 가장 확고히 표현되어 있는 관점이다(배링턴 무어,《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 주목할 것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주창자들도 똑같이 민주적 정체를 건설하는 과업을 수행하는 주체는 바로 중산계급이라는 데 동의했다는 사실이다. 중산계급의 미덕에 대하여 여하한 의심도 불식하려는 나머지 친(親)민주주의 이론가들은 궁극적인 증인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내세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오직 중산계급만이 ‘민주주의’를 성립시킬 수 있음을 증명한 것으로 흔히 잘못 인용되고 있다.

  나는 많은 서구 국가에서 중산계급이 민주주의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묻고자 하는 것은 “부르주아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는 언명에 함축되어 있는 보편성이다. 그러한 주장은 비과학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 유럽 국가에서도 민주주의는 농민에 의해 확립되어 왔기 때문이다(주요 사례는 스위스, 아이슬랜드공화국, 아일오브맨(the Isle of Man), 안도라, 그리고 대부분의 코사크 부족이다). 단크와크 러스토우의 흥미로운 관찰에 따르면, “전형적인 서구 국가에서, 과두정에서 민주정으로 권력의 이동을 궁극적으로 강제했던 것은 산업혁명 이후 증대하고 있던 하층계급 세력”이었다. 더욱이, 배링턴 무어의 명제는 노골적으로 인종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상거래와 제조업에 종사하는 중산계급이 출현하기 훨씬 이전부터 농민들이 마을 민주주의를 실천해온 유럽 바깥의 상황을 그가 완전히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민공화국들은 통상적으로 확장주의적 성향이 없기 때문에 규모가 작다. 역사가나 정치이론가들의 고려 대상에서 그들이 제외된 이유도 그 작다는 점일지 모른다. 그러나, 바로 이 학자들이 흔히 민주주의의 요람으로 주저없이 묘사하는 약 3천년 전의 그리스 도시국가들 역시, 어떠한 기준으로 보아도 규모가 매우 작다. 흥미롭게도, 플라톤이 생각했던 민주적 정체의 이상적인 규모는 정확하게 5,040개 집안의 우두머리들(시민 자격이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시민이 하나의 장소에 모여 연설자의 말을 명료하게 들을 수 있는 규모가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여하튼,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민주적 정체의 모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어설픈 논리이다.

  주로 앵글로색슨 문화권에서 (그리고 맑스주의에서) 보여주는 중산계급에 대한 집착은, 영국의 법체계가 대부분 게르만 부족(농민)의 법으로부터 유래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리고 원래 농민에 의해 창설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의회가 있는 아일오브맨(the Isle of Man)이 영국의 영토에 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만큼 더 의아스럽다. 생각이 깊은 이론가라면 이러한 농민문화의 자취들을 통해서 중산계급 이외의 다른 집단도 민주적 구조를 세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편단심 중산계급만을 찬미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의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농민을 열등한 존재로 무시하는 영어사용 국가들의 성향” 탓인지 모른다. 물론 이러한 성향은 고전적 사상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유와 평등이 지배적인 정치적 가치가 되는 민주적 질서의 지원세력으로서 농민이 첫째이며, 목자(牧者)가 그 다음이라고 생각했다. 농민의 특별한 덕성은 그들이 비록 행정관을 선출하고 입법활동을 감시하는 자신들의 권한을 고집하면서도, 토지로부터 생계를 도모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불필요한 회의를 소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리스의 중장비 보병(hoplite army) 대부분이 농민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정치적 열망은 가볍게 무시될 수 없었다.

  그동안 이태리 도시국가들을 찬양하는 중세 이태리에 관한 연구가 많이 행해져왔다. 그런데 그 도시국가들을 지배하던 중산계급은 민주적 질서를 차례차례 권위주의 정부 시스템에 내어주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농민 민주주의는 무시되어왔고, 민주적 정부 시스템을 보존해온 외로운 나라, 산마리노는 언급도 되지 않았다. 앵글로색슨 이론가들에게 왜 농민계급을 무시하는 성향이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으로 돌아감으로써 시작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규모 자작농도 사회의 중간영역의 귀중한 일원이라고 여긴 반면에, 상거래로 돈을 버는 사람들은 “당연히 지지할 수 없는” 활동에 종사하는 것으로 여겼으며, 그런 활동은 불평등을 만들어냄으로써 정치의 정상적인 작동을 위험에 빠트린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현대의 민주주의 이론가들의 주장, 즉 일정 수준의 재산과 교육이 민주적 정치체제의 성립에 필수불가결한 요건이라는 주장과 현저하게 대조된다. 실제로, 상공업에 종사하는 중산계급의 정치적 미덕에 대한 아담 스미스의 상찬(賞讚)은 실은 18세기 유럽 자유주의 사조를 반영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 사조는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나 그것과 얽혀있는 자유방임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현실적으로 진정한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존 그레이) 것이다.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절대군주로부터 자유를 쟁취하고자 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자기 계급을 위해서였지 사회 전체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필수불가결한 요건으로 일정수준 이상의 부(富)를 처방하는 것은, 과거에 그랬듯이 지금도, 대중에게 자유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일정한 교육수준이 필요하다는 널리 말해지고 있는 주장도 역시 똑같은 목적에 봉사한다. 즉, 교육을 덜 받은 하층민의 권력에 대한 접근을 막으려는 목적 말이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에서도, 산마리노에서도, 교육의 결여가 민주주의의 실천에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이제 배링턴 무어, 아담 스미스, 칼 맑스에 의해 개괄된 민주주의는 부유하고 교육받은 중산계급을 주연 배우로 한 것으로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조건부 없이 기술된 단순한 민주주의, 가난하고 교육받지 않은 농민들에 의해 실행되는 민주주의와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을 것이다. 실제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연결시키는 오늘날의 유행은 검토될 필요가 있다. 그 둘은 양립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실은 상호 적대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수도 있다. 반세기도 더 전에 폰 하이에크는 “우리 세대는 민주주의에 대해 너무 많이 말하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그것이 섬기는 가치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게 사실일지 모른다… 민주주의는 본래 하나의 수단, 국내의 평화와 개인의 자유를 방위하기 위한 공리적인 장치이다”라고 날카롭게 통찰했다. 본질적으로, 사람들은 ‘좋은 정부’를 원한다.

  ‘좋은 정부’의 뜻은 사회마다 다르다. 종교규범, 고래(古來)의 법, 전통, 신화, 변화에 대한 갈망, 유행하는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무엇이든 한 특정 사회에서 ‘좋은 정부’로 여겨지는 것에 충실하면 그 정권은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그것이 정당성을 확보하는 유일한 길이다. 서구세계에서, 우리는 ‘좋은 정부’와 민주주의를 동일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환상에서 깨어난 시민들에게 있어서, 민주주의는 점점더 무의미한 선거 의식(儀式)과 의회제라는 허튼 장난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최근에야 새로운 정부 시스템을 가지고 실험을 시작한 사회의 시민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그러한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높이 평가된다면 그것은 민주적 기구나 정치가들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추구한다는 목표 때문이다. 정권의 정당성이나 ‘좋은 정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지도층이 민중의 필요와 이익에 응답하는 정책을 실행하느냐 않느냐에 달려있다.

 

  산마리노 이야기

  산마리노를 세상에 소개하려는 노력은 그동안 거의 없었다. 내가 아는 한 산마리노에 관해 영어로 된 책은 겨우 2권이다. 그리고 그 둘도 한 세기도 더 전에 나온 것들로서, 19세기 앵글로색슨 학문적 관행―서구의 지혜와 전통의 성채(城砦) 바깥에 기원을 둔 것이면 무엇이든 내려다보는―의 전형적인 스타일로 씌어졌다. 따라서 얼마간의 기초적 자료를  여기서 제공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산마리노 공화국의 영토는 사방이 이태리에 의해 둘러싸여 있고, 면적은 61평방킬로미터가 못되며, 아드리아해(海)의 항구 리미니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1994년 기준으로 주민은 24,335명이었다. 그중 5% 이하가 농업부문에 종사했고, 1991년의 1인당 소득은 미화 6,000달러를 나타냈다. 최초의 의회선거는 1906년에 있었는데, 투표권은 각 가정의 가장(家長)과 대학졸업자들에게 한해서 주어졌다. 참정권은 점진적으로 확대되어, 1958년에는 여성도 선거권을 획득하였다.

  현재의 산마리노는 전형적인 중산계급 사회이며, 특별히 주의를 끌 만한 특이한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자유를 위한 산마리노의 투쟁의 역사에 눈을 돌릴 때 우리는 이 작은 나라가 민주적 모델 건립에 끼친 특이한 기여를 발견하게 된다. 산마리노 공화국은 서기 301년 2월 3일에 창건되었다. 나라의 이름은 달마티아 출신의 기독교도였던 석공 마리노에게서 따온 것인데, 그는 종교적 박해로부터 도망쳐 움브리아 산맥의 티타노산에서 피신처를 구했던 것이다. 신화에 따르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실천하려는 그의 경건한 신앙과 단호한 의지가 비슷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을 이 은신처로 불러들였다. 366년 그가 임종할 무렵에는 신앙심이 깊은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이들은 자신의 신념과 생활방식을 그 누구에게서도 방해받지 않으려는 확고한 결의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이야기가 얼마나 사실이나 신화에 근거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많다. 그러나 신화는 일단 사람들에게 수용되면 역사적으로 증명될 수 있느냐 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일정한 방향성을 형성한다. 이 공화국의 소박한 농민들 사이에 자유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 공동체의 성립을 둘러싼 상황뿐만 아니라, 마리노의 평등주의적 가르침이라는 신화의 힘이었다. 산마리노 사람들은 그들의 공동체가 원래 박해를 피해 도망쳐온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않았고, 20세기에 한참 들어와서까지도 정치적 색깔에 관계없이 모든 난민에게 피신처를 제공했다.

  교황령(敎皇領)은 수차례 이 공화국을 지배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산마리노 사람들은 이웃 우르비노 대공(大公)의 자비로운 보호를 수세기에 걸쳐 받는 혜택도 누렸다. 1463년, 그들은 말라테스타가(家) 리미니의 제후들에 대항하여 우르비노 공국(公國), 교황령, 나폴리왕국과 동맹을 맺었다. 전자가 패배하고 전리품이 동맹국들 사이에 분배되었을 때, 산마리노 사람들은 세라발레를 상으로 받았고, 그로써 현재의 국경선이 확립되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산마리노가 보다 큰 국가들에게 자치체로서 인식되게 된 것이다. 당시의 베니스 역사가 피에로 벰보가 말한 바와 같이, 산마리노는 “그 자신을 공화국으로서 운영하고, 어떠한 왕에게도 복종하지 않는다.”

  리미니와의 전쟁은 산마리노 공화국이 싸운 마지막 전쟁이었다. 중세 초기에는 티타노산 정상의 막강한 요새가 주민들을 보호해주었지만, 대포(大砲)의 출현으로 이 산악 공동체의 안보는 위태로워졌다. 소규모 인구의 가난한 나라였기 때문에 효과적인 방어를 위한 충분한 군대를 가질 희망도 없었고, 용병을 살 수도 없었다. 용병은 보통 자기들이 보호하기로 되어있는 도시에 눌러앉아 때가 되면 권력을 찬탈하였다. 점차로, 산마리노는 정치적 자주 국가로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외교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들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비로소 온전한 인정을 받은 것은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이태리의 지도를 새로 그렸을 때였다. 여러 세기 동안 정치적 반대자들의 피난처가 되어왔고, 이태리 반도의 약 200개 민주공화국들 중에서 ‘현대’까지 살아남은 사실상 유일한 국가였기 때문에, 나폴레옹은 산마리노를 자유정신의 기념비로 선언했다. 나폴레옹에 의하면, “유럽에서 거의 완전하게 추방된” 자유의 정신은 “오직 산마리노에서만 존재했다.” 유럽의 한 작은 구석에 자유의 정신을 보존해온 산마리노 시민들의 ‘미덕’은 인정받을 만한 가치가 있었고, 그것은 나라의 독립성을 보존하는 형태로 보상을 받았다.

  반세기 후 가리발디가 이태리를 사보이가(家)의 지배 밑에 강제로 통일했을 때, 그 역시 산마리노의 독립을 침해하지 않았다. 그 자신 산마리노에서 한때 피난처를 구했던 가리발디는 여러 세기에 걸쳐 정치적 피신처를 제공해온 산마리노의 공헌을 나폴레옹보다도 더 높이 평가했다. 실제로, 이 ‘인간정신의 기념비’는 하나의 독립국으로서 보존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산마리노는 중립을 유지했고, 그것은 나치 독일에 의해서도 존중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이태리가 주요 전황(戰況)의 현장이 되고, 이 소공화국이 약 100,000명의 난민에게 피난처를 제공한 뒤에도 계속되었다. 오직 영국만이 폭격을 가함으로써 산마리노의 중립성을 무시했다. 산마리노 영토에 독일 군부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 폭격으로 전황에 사활적인 어떤 이익이 생기는 것이 아닌데도 영국은 이곳을 공격했다.

  이 작은 공화국이 살아남은 것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상황이 요구하면 무기를 드는 것을 주저치 않았던 강인한 산악 농민들의 영웅적 자질에서 그 원인을 찾아보려는 유혹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1463년 산마리노가 마지막 전쟁에서 싸웠을 때까지만 해당된다. 대부분의 세월 동안 산마리노는 가난한 농업국으로 남아있음으로써 살아남았다. 그렇게 해서 산마리노는 영토확장에 부심하는 군주들의 주의를 끌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산마리노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 중 하나인 안토니오 오노프리는 이 정책을 이렇게 설명했다. “오직 가난하고 미미한 존재로 남아있음으로써만 산마리노는 오랜 세월에 걸쳐 자유와 주권을 유지하기를 희망할 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마리노는 평등주의적 기독교 복음을 설파했는데, 그 가르침 속에는 신(神)에 대한 개인의 책임이 강조되었다. 그리고 그는 공동체의 확고부동한 정신적 지도자였지만, 세속적인 일에 대한 의사결정에 공동체 구성원들의 참여를 장려했다. 힘든 노동, 검약, 간소함이 미덕이었던 반면에, 부(富)의 취득은 도덕적 부패를 낳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가치의 보존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공동체적 규율의 제정이었고, 이 규율은 1253년 이래 그들의 ‘법전’ 속에 소중히 보호되었다. 공화국 영토가 티타노라는 하나의 산에 국한되어 있는 이상, 어떤 가족도 세 마리 이상의 염소를 기르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토지의 취득에 대한 규정이었다. 토지는 적어도 애초에는 시민들 사이에 고르게 분배된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적 계층화가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특별한 기술을 익히거나 혹은 혼인으로 공화국 바깥에 있는 토지를 소유하게 됨으로써 보다 많은 재산을 축적할 수 있는 집안들이 생겨났다. 공화국 안에서는 그러한 부(富)를 더 큰 사유지로 변모시키는 일이 법으로 금지되었으므로, 이들은 집을 더 크게 짓고, 예술을 후원하고, 교회와 그 복지 프로그램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교육을 받고, 그럼으로써 ‘고귀한’ 신분을 획득했다. 이 공화국에서 출현한 귀족은 상위의 군주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군사적 봉사를 주된 임무로 하면서 농민계급을 억압하는 기사(騎士)들로 구성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들은 농민 속에서 나온 ‘평민귀족’이었고, 사람들은 그들이 공동체에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 고맙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과도한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서, 귀족들이 도시의 성벽으로부터 반경 1마일 이내에 집을 짓는 것은 1317년에 제정된 법령에 의해 금지되었다. 또한 산마리노 인근의 기사(騎士)들이 이 ‘평화로운 공화국’에의 편입을 원했을 때 그들의 요청은 거절되었다. 왜냐하면 ‘진짜’ 귀족을 국경 안에 두는 것은 사회의 평등주의 및 공화주의적 본질을 훼손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층민 속에서도 다소의 계층화가 일어났다. 특별한 기술을 습득한 사람에게는, 중세 길드의 관행에 따라, ‘님’이라든지 ‘귀하’와 같은 칭호가 사용되었다. 그렇지만 산마리노는 기본적으로 평등주의적인 농촌사회였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 오직 부분적으로만 비옥한 환경에 인구증가라는 압력이 가해지면서 경제와 사회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해졌다.

  산마리노의 정치제도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마리노가 살아있는 동안 공동체의 의사결정 과정이 어느 정도까지 정식화되어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이 공동체의 초기 역사의 어떤 단계에서 아링고(arringo)가 출현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는 물론, 초기 농민 민주주의 사회에서 보통 그러했듯이, 아링고는 남성 가장(家長)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링고 회의에의 참석은 의무적이었다. 정부 그 자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에게 행정 일을 맡겨야 할 필요가 있으면 그 회의가 한시적인 임명을 했다. 단지 수백명으로 구성된 농민공동체에서 그러한 입헌적 조치만으로 충분했다. 아마도 아링고에 제출된 가장 중요한 안건은 도로나 정상의 요새를 개선하기 위한 공동노력이나, 난민을 수용하는 문제, 그리고 정치 및 경제적 평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에 관한 것이었을 것이다. 아링고 회의는 공동체의 구성원들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재판소 역할도 했다.

  산을 넘어서 바깥 세계와 관계하는 일은 제한되어 있었다. 가난했기 때문에 산마리노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웃 군주들의 제국주의적 설계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를 내버려 두라”라는 것으로 가장 잘 요약될 수 있는 이념적 성향의 농민들이었기 때문에, 그들 자신도 다른 영토에 대하여 아무런 야심이 없었다. 그러나 상황은 14세기에 이르러 변했다. 한편으로, “우리를 내버려 두라”는 태도는 내부적인 정치과정에 영향을 끼쳤다. 즉, 매주 열리는 아링고 회의 참석은 많은 사람들에게 점차로 특권이라기보다 짐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산마리노도 더이상 인근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완전히 물러나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공식적 정부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아링고의 멤버들)은 아링고와 같은 다수 정치가로 구성된 체제가 너무나 혼란스럽다고 생각하여 그들의 전권을 ‘60인 평의회’에 양도했다. 아링고는 특별히 중요한 안건을 다룰 경우에는 여전히 소집되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해마다 적어도 두번은 회의를 열 권리를 유지하여, 일반적으로 공익에 관한 다양한 안건을 평의회에 청원하였다. 그러나 여러 세기를 지나면서 반년마다 열리는 아링고 회의의 참여도는 떨어지게 되었고, 기본적으로 주권이 “인민에게 있다”는 점을 ‘60인 평의회’에 일깨워주기 위한 기능만 남게 되었다.

  ‘60인 평의회’는 집단적으로, 또 상징적으로 ‘산마리노의 군주’라는 타이틀을 취했다. 그것은 세 계층, 즉 신흥귀족, 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시장도시의 시민들, 그리고 농민계층으로 고르게 나뉘어져 있었다. ‘60인 평의회’는 비(非)귀족 구성원들 중에서 내각역할을 할 ‘12인 평의회’를 선출했고, 그중 2/3는 매년 교체되었다. 적어도 1244년 이후로는 위계구조의 정상부에 2인의 섭정관이 자리하고, 그들에 의한 양두(兩頭) 정치가 실시되었는데, 이들은 오직 공동으로 행동하고, ‘60인 평의회’의 결정사항을 집행해야 했다. 두 섭정관 중의 하나는 귀족이어야 했고, 다른 하나는 시장도시의 시민이나 농민계급 중에서 뽑혔다. ‘60인 평의회’ 구성원 중에서 임명된 그들의 재임기간은 6개월에 불과했고, 3년 후에 다시 임명되는 것이 가능했다. 섭정관 임명 절차는 복잡했다. ‘60인 평의회’가 후보 3쌍을 선출하고, 최후의 선택은 공개적인 의식(儀式)에서 어린 소년이 항아리 속으로부터 그중 한쌍의 명단을 끄집어내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정치적 쇠퇴의 시기에는 ‘60인 평의회’의 구성원이 80명까지 불어나거나 혹은 1739년의 경우처럼 고작 23명으로 줄어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13세기에 창설된 정치제도가 거의 600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 대부분의 시기 동안 평등개념은 상당히 잘 지켜졌으며, 입헌적 질서는 사회의 상이한 신생그룹이나 계급들의 이해관계를 조화시켜왔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이르러 경제구조가 변화하기 시작하자, 오랜 세기 동안 사회를 다스려온 정치적 합의구조가 붕괴되었다. 자본주의의 도입과 함께 경제적 하층계급이 생겨났고, 그 상황에서 사회주의자들은 현존 시스템의 ‘퇴폐’를 비난하면서 옛 아링고의 민주적 가치와 실천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60인 평의회’는 짧은 기간 동안 버티다가 결국 장차 재편될 ‘총평의회’의 구성은 보통선거에 의거해야 하며, 그 유권자는 옛 아링고 시절처럼 가장(家長)들과 대학졸업자들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1906년의 첫 선거로부터 반세기가 걸려서 여성들에게도 투표할 권리가 주어졌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공산-사회주의 연정(聯政)에 의해 저지되어 있다가 1957년에 이태리와 미국이 관련된 쿠데타 비슷한 상황에서 그들이 실각하게 되면서 이루어진 혁신이었다. 그 이후 산마리노의 정치질서는, 2인의 섭정관에 의한 양두체제라는 기묘한 제도를 제외하고는, 여타 서구식 대의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질서와 대체로 닮은 것이 되어왔다.

 

  결론

  이제 우리는 원래 이 탐구를 부추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우리가 답을 찾았는지 평가해야 한다. 즉, 산마리노 정체의 정치적 진화가 민주주의에 이르는 한 특정한 경로로 정당하게 간주될 수 있는가, 그리고 둘째, 이 발견이 개발도상국들에서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역사는 잘못 해석될 수 있고, 산마리노의 역사도 예외가 아니다. 잘못된 해석은 과거의 사건을 오늘의 도덕적 가치에 의해 측정할 때 특히 일어나기 쉽다. 잘못된 해석 혹은 오해의 두드러진 예의 하나는 박식을 자처했던 미합중국의 두번째 대통령 존 아담스에 의한 것이다. 그의 시각에서 볼 때, “산마리노는 전혀 완전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에 스파르타와 로마가 그랬고, 지금 매사추세츠, 뉴욕, 메릴랜드가 그런 것처럼, 왕정, 귀족정, 민주정의 혼합물이다.” 아담스가 이렇게 썼을 때, 산마리노의 정치제도는 14개의 세기에 걸쳐 작동해왔고, 거기에는 자연히 기복이 있었다. 하지만 아담스가 그릇되게 주장하듯이, 그것이 군주제였던 적도 귀족제였던 적도 없었다. 일종의 귀족이 출현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권력은 늘 엄격하게 제약되어 있었다. 물론, 16세기에 시작되어 절대주의의 전성기에 이르는 동안 산마리노 역시 세계적 추세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고, 귀족계급은 분명 공동체에 대한 자신들의 권력을 증대시키려는 기도를 했다. 그러나 1797년에 이르러 ‘땅의 사람들’은 ‘귀족계급의 억압 혹은 폐지’를 요구했으며, 이 함성으로 귀족계급은 오래된 법령을 좀더 엄격히 준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티타노산의 이 공동체는 그 역사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모든 가장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그리고 의무도―를 가진 채, 모든 결정이 집단적으로 또 민주적으로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이 공화국의 민주적 성격에 대하여 두 가지 이론(異論)이 제기될 수 있을지 모른다. 단지 가장(家長)에게만 정치참여의 자격이 주어진다면 그것이 어떻게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21세기의 기준에 의하면 그런 제한적인 참정권은 명백히 비민주적이다. 그러나 시대의 맥락에서 보면,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앞서 나아간 민주적 관행이었다. 둘째, 그 시스템은 권력을 과도하게 ‘평의회’에 위임하였기 때문에 완벽히 민주적인 것으로 보기는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지만, 당시에는 민주주의 그 자체가 산마리노에서도, 이태리 혹은 세계 어디에서도 시대의 관심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평의회’의 임무는 ‘좋은 정부’의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었고, ‘좋은 정부’란 그 공동체의 관점에서 보자면 전제적 통치나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전체 사회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며,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공화국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농민의 관점에서 볼 때, 근대 자유주의자들의 생각과도 다르지 않게, ‘작은’ 정부가 ‘좋은 정부’이다. 그러나, “나를 내버려 두라”는 농민의 이데올로기는 공사(公事)에 대한 무관심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실은, 그것은 농민이 자신의 특권이라고 느끼는 문제들에 대해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으려는 방법이었을 뿐이다.

  해마다 2차례 열리는 아링고 회의는 본질적으로 ‘평의회’뿐만 아니라 새로 선출된 ‘섭정관들’에게 주권은 인민에게 있으며, ‘평의회’는 그 존재를 인민에게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오늘날의 정치학의 기준에 의하면 이러한 제도는 순진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세 이태리는 기본적으로 대중적 신뢰 위에 세워진 영속적인 경제 및 정치적 구조들을 창조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교황의 사절(使節) 라니에리가 산마리노 사람들에게 그들이 ‘자유’를 무슨 뜻으로 쓰는지를 물었을 때, 글자도 모르는 그 농민들은 그것을 웅변적으로 설명해주었다. 사람은 “자기자신에게 속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만물의 ‘주인’ 이외에 그 어떤 인간에 대해서도 그가 충성을 맹세해야 할 대상은 없기 때문이다.” 즉, 오직 하느님만이 사람들로부터의 복종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농민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중세에 이태리의 다른 곳에서는 중산계급이 자유를 절대군주들에게 넘겨주었고, 20세기에는 파시즘에 굴복하고 있는 동안에, 민주주의가 산마리노에서는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의 옹호라는 점에서는 산마리노보다 더욱 상찬할 만큼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나라가 거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결론적으로, 산마리노가 하나의 민주적 정치체제로서 진화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민주주의의 배후 추진력이 교육받은 부유한 중산계급이 아니라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농민층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이것은 우리를 두번째 질문으로 인도한다. 산마리노의 역사적 경험이 제3세계 국가들의 민주화 과정에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옛날 티타노산에서의 상황이 오늘날 개발도상국의 농민대중의 상황과 매우 다르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오래 전 이태리 반도에서 일어난 일, 즉 농민이 자신의 이웃들과 이야기함으로써 공통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던 방식이 오늘날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할 타당한 이유가 없다. 실제로, 마을 수준의 토의 혹은 마을 민주주의는 세계 전역에 걸쳐 오랜 세월 동안 존재해왔다.

  확실히, 이런 종류의 마을 민주주의가 근대적 스타일의 민주적 정치체제로 발전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 오래된 민주적 관행을 유효한 대중 민주정치로 전환하려면 어떤 합리적-논리적,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단계를 거쳐야 한다. 농민들(그리고 다른 사회집단들)도 실제로는 중산계급 못지않은 ‘미덕’을 갖고 있다는 데 대해서 완고한 중산계급 옹호론자들과 도덕적 논쟁을 해봤자 소득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민이 지배한다”(민주주의)는 원칙에 따른 정치 시스템을 건립하려는 시도가 바로 그 인민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은 명백한 이치이다. 조금 달리 말하자면, 다수 인민이 농민으로 구성되어 있는 나라에서 민주적 정치체제를 건립하는 일에 진정으로 헌신하고자 한다면, 그 어떤 사회공학자나 개혁가도 이 과정에서 농민을 배제하는 비논리적 행위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적 정치체제를 건설하려는 노력에서 농민대중이 보통 제외되는 게 사실이다. 그들에게 맡겨진 유일한 역할은 4년마다 어떤 중간계급이나 상층계급 출신의 정치가들에게 표를 던지는 일이다. 그런데 그 정치가들은 의회에서 농민을 ‘대표’한다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계획된 현상이다.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은 서구의 민주주의 나팔수들이 제3세계에 팔려고 하는 것은 단순히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팔아먹으려고 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세계화, 그리고 지적재산권―그중에서도 특히 외국재산권―을 보호하는 법률 시스템을 포함하고 있는 이른바 ‘자유민주주의’라는 꾸러미이다. 그런 시스템 속에 평등, 정의, 공동성, 독립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농민 민주주의를 위한 여지는 없다. 서구의 정부와 사회설계자들, IMF, 세계은행, WTO가 일반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반(半)민주적 시스템이다. 거기에는 정기적으로 열리는 선거와 조작된 정의(正義), 그리고 개방된 시장이 있다. 그리고 그 시스템 속에서 전통적 혹은 신흥의 중산계급은 자신의 후원자인 외국인들의 이익을 위해서 매판(買辦)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한 정치 시스템은 민간 독재정부나 군사정권 못지않게 정치적으로 취약하다. 이러한 나라에서, 오로지 진실로 대중을 대변하는 토착적 지도자들이 출현하여, 인민대중의 이익을 추구할 때만 민주주의가 성공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세울 만큼 충분한 규모의 교육받은 부유한 중산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개발도상국들에서, 지배 엘리트들과 그들의 서구인 고문(顧問)들에게는 세 가지 선택지(選擇肢)가 있다. 첫째, 실행 가능한 민주주의를 창조하겠다는 생각은 묻어버리고, 자신들의 개인적 이익을 확보하면서 권위주의적 정부 시스템에 매달리는 것이다. 둘째, 대중이 일정한 기간마다 투표소로 몰려가서 지배계급의 권력을 재확인해주는 사이비 민주적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이 시스템은 현실을 위장하여, 예컨대 인도에서처럼, 실제로는 상층계급(혹은 카스트)이 나라를 운영하고 있으면서도 서구인들로부터 ‘자유-민주적’인 국가라는 칭찬(그리고 대외원조)을 받게 만든다. 셋째, 그들은 서구식 처방은 무시하고, 자신들의 과거의 결함으로부터, 또 산마리노 같은 나라의 역사로부터 배워서, 다수 인민 즉 농민계급을 민주적 정치 속으로 참여시키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중산계급이 정치적 변화의 주체가 될 만큼 강력하지 못하고, 따라서 대중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상황에서 확실히 농민은 소중한 동맹자가 될 수 있다. 만약 이 마지막 선택지가 방기(放棄)된다면 진정한 민주주의는 무기한 연기될 것이다. (김정현 옮김)

 

 


 

울프 선드호슨(Ulf Sundhaussen)   이 에세이는 호주 퀸스랜드대학 출판부에서 간행되는 학술지 The Australian Journal of Politics and History, 2003년 6월호에 게재된 것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에세이의 원제목은 “Peasants and the Process of Building Democratic Polities: Lessons from San Marino”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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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les - Across the Universe


 

 

Words are flowing out like endless rain into a paper cup,
They slither while they pass, they slip away across the universe
Pools of sorrow, waves of joy are drifting through my open mind,
Possessing and caressing me.
Jai gu ru de va om,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Images of broken light which dance before me like a million eyes,
That call me on and on across the universe,
Thoughts meander like a restless wind inside a letter box they
Tumble blindly as they make their way, Across the universe
Jai gu ru de va om,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Sounds of laughter shades of earth are ringing
Through my open views inciting and inviting me
Limitless undying love which shines around me, like a million suns.
It calls me on and on, Across the universe
Jai gu ru de va om,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Jai gu ru de va 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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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소 사태' 되짚어 보기

출처 : 뉴스메이커, 한겨레21 (강조는 본인)

 

정부-민간단체, 자신들 유리한 주장 되풀이
쇠고기 청문회 불구 국민들 혼란 해소 안돼

[커버스토리]“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국민은 진실만 듣고 싶다

 

미국산 쇠고기를 과연 안심하고 먹을 수 있을까? 이영호 통합민주당 의원은 5월 7일 국회 쇠고기청문회에서 ‘아트’(예술)와 ‘사이언스’(과학)라는 말을 꺼냈다. 정치적인 주관적 입장(아트)과 과학적인 객관적 입장(사이언스)이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정부 측 과학자(의사·수의사 포함)와 민간단체 측 과학자들의 상반된 이야기를 듣는 국민으로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부 측에서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과학적 증거를 들이대고, 민간단체 측은 그들 나름으로 광우병이 위험하다는 자료만 설명한다.

‘아트’를 빼고 ‘사이언스’만 들어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프리온, MM형 유전자, BSE, OIE, SRM, vCJD란 용어만 들어도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어려운 용어를 떠나 국민들이 묻고 싶은 질문은 한 가지뿐이다.

“미국산 쇠고기, 과연 안심하고 먹을 수 있을까요?”
5월 7일 쇠고기 청문회장은 광우병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국민의 눈이 집중됐다. 청문회에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광우병은 지구 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면서 “앞으로 광우병이 없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 장관은 “만약 광우병이 일어나면 책임지고 (수입) 중단시키겠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고 위험하지 않다. 하지만 미국과 쇠고기 협상을 타결한 직후 정부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이들은 온라인인 인터넷과 오프라인인 촛불 문화제를 통해 정부의 협상 자세를 성토하고 있다. ‘졸속’이라는 평가를 받는 쇠고기 협상으로 광우병의 위험은 증폭됐다. 이 중 일부는 괴담으로, 어떤 것은 분명한 진실로 드러났다.

국민은 진실만 듣고 싶어 한다. 그러나 과학적 진실은 아직까지 광우병의 모든 것을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과학자들의 광우병 논란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과학적으로 분명하지 않는 사실을 토대로 여기저기에서 유리한 입장을 끌어대기 위해 확률 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청문회에서 차명진 의원은 “일본 연구에 따르면 미국 소로 인한 광우병 발병 확률이 47억 분의 1”이라고 주장했다. 신동천 연세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정부 측 설명회에서 “인간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1000만 분의 1이냐 2냐에 대한 얘기지 그냥 1이냐 2냐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제로(0)는 아니지만 극히 미미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적 진실, 모든 것 규명 못해
확률 논쟁에 대해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김정범 대표는 “우주에서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저절로 생길 확률은 제로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에 인간이 살고 있지 않느냐”면서 “제로에 가깝다는 확률을 이야기하는 것은 말장난일 뿐 과학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확률 논쟁은 불확실성에 대한 통제 여부와 연결돼 있다. 김 대표는 “불확실성을 갖고 있지만 사전 예방 차원에서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면서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이야기해야지 안전하다고 하는 것은 과학자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비슷한 주장 같지만 신 교수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신 교수는 청문회에서 “(광우병 발생) 확률이 적다고 해도 국민 건강을 우선 생각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정책에서는 위험이 통제 범위 안에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우병이 현대 사회에서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 들어와 있다고 보는 만큼 불확실성을 어떻게 컨트롤할 수 있느냐가 문제라는 것이다. 풀어 말하자면, 광우병의 위험이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를 개방하는 정책에서는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대표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광우병이 ‘위험하다’가 아니라 ‘안전하지 않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험하다’와 ‘안전하지 않다’라는 말은 비슷한 의미로 들린다. 하지만 미국산 소의 경우를 들여다보면 두 단어의 차이를 좀 더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위험하지 않지만 안전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예가 지난해 정부 측 자료에도 드러난다. 농림부 자료에 따르면 “광우병이 아직도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으며 미국의 광우병 방역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감안”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미국에서는 1997년부터 반추동물사료에 반추동물 유래 단백질의 사용을 금지했으나 소 이외 일부 돼지 및 가금 사료에도 반추동물 유래 육골분을 사용하고 있다. 광우병의 교차오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도축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 미국에서는 도축 과정에서 0.1%에 한해서만 광우병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눈으로 봐서 괜찮은지 보는 검사도 도축하는 소의 5~10%에 불과하다. 일본에서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34마리 소가 광우병에 걸렸지만, 미국보다 광우병과 관련해서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도축 소에 대한 전수검사를 실시하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은 청문회에서 “PD수첩에서 방영한 미국 도축소의 영상물은 동물 학대 영상이 아니라 광우병으로 의심될 수 있는 기립 불능소가 도축 과정에서 어떻게 검역을 빠져나가는지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이 영상물 때문에 캘리포니아에서 대규모 리콜 사태가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검역시스템이 얼마나 광우병에 취약한지 말해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농림부에서 작성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 분석 검토’에서는 “30개월령 이상의 소에서 생산된 쇠고기의 안전성이 과학적으로 완전히 입증되지 못하였음”이라고 나타나 있다. 광우병이 발생한 19만여 건 중 99.97%가 30개월령 이상의 소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근거였다. 이 자료에서는 또 “미국의 BSE(광우병) 통제체계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30개월령 미만 조건 불가피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협상 기본 방향은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면서 180도 뒤집혔다. 이번 쇠고기 협상에서 30개월 이상인 소의 고기까지 완전 개방하는 것이다.

인간 광우병 잠복기 10~40년
20개월, 30개월이 논란거리지만 미국의 도축장에서 이 소의 월령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객관적인 방법은 없다. 개체이력 시스템이 미비하기 때문에 많아야 15~20%의 소만 월령을 알 수 있다. 도축장에서 치아를 통해 월령을 추정할 뿐이다.

미국에서 발생한 세 번째 광우병 발병 소의 예를 살펴보면 미국소의 광우병 위험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2006년 2월 27일 앨라배마의 한 농장에서 암소가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다음 날 안락사한 암소의 사체는 매장됐다. 이 암소의 뇌 연수 일부분인 빗장(Obex)를 검사한 결과 광우병으로 밝혀졌다. 다시 소를 파헤쳐 조사했지만 인식 도구가 없었다. 사체의 머리 검사 결과 태그나 태그가 붙어 있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소는 2004년 앨라배마의 농장으로 왔다. 미국 농무부(USDA) 동식물검역소(APHIS)의 역학조사보고서에서는 연관이 있는 25개 농장을 조사했지만 추적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의 결론을 줄이면 다음과 같다.

“소들은 구별할 방법도 없고, 크기나 색깔이 비슷하게 생겨서 주인도 잘 모른다. 대부분 소는 태어난 해에 팔려서, 죽을 때까지 몇 번씩이나 팔린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디에서 왔는지 밝힐 수 없었다.”

이 소는 10살로 판단됐다. 1997년 사료 강화 조치 이전에 광우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5월 6일 신문광고에서 ‘1997년 동물성 사료 급여 금지 이후 미국에서 태어난 소는 단 한 마리도 광우병에 걸린 바가 없습니다’라고 적어놓았다. 여기에서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광우병에 걸린 소가 10년령인지 어떻게 과학적으로 판단할 수 있냐는 것이다. 국내 일부 수의사는 이 소의 치아 사진을 본 후 2년이 되지 않은 소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민 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박상표 정책국장은 “치아로 나이를 감정하는 것은 과학적인 방식이 아니며 불확실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의문은 광우병으로 밝혀진 것이 3마리일 뿐 전체 1억 마리에 달하는 미국 소 중 몇 마리가 광우병에 걸려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부 측 자료에 따르면 인간 광우병의 잠복기는 10~40년이다. 유럽의 경우 1989년과 1990년 소 광우병이 가장 많이 발생했고, 인간 광우병은 1990년대 중반쯤 많이 나타났다. 조경태 민주당 의원은 청문회에서 “미국에서 소 광우병이 2003년 처음 나타난 만큼 2013년이 지나봐야 미국산 소의 광우병이 인간에게 위험한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광우병 날뛰어도 못 잡겠네

동물-사람 간 전염되는 치사율 100%의 위험한 전염병…

진단과 사후 관리, 대응 체계 없는 ‘안전불감증’ 개방

 

▣ 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2부- 광우병의 습격]

 

2007년 12월16일, 24살 영국 청년 앤드루 블랙이 죽었다. BBC 방송국 등에서 열정적인 라디오 프로듀서로 일하던 앤드루는 2006년부터 이유 없는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 점차 공격적으로 변했고, 살이 급격히 빠졌다. 증세는 점점 심해졌고 급기야 더 이상 걸을 수도, 제대로 말할 수도 없게 됐다. 2007년 7월, 앤드루는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vCJD), 즉 ‘인간광우병’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5개월 만에 사망했다.

 


△ 질병관리본부는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인간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인수공통전염병대책위원회를 구성했지만, 1년에 두 번 정기회의를 하는 데 그치는 등 실질적으로 전염병을 추적, 관리하는 기능은 하지 못하고 있다.

 

 

‘30개월’ ‘특정위험물질’ 안전핀 뽑고는

 

1996년 영국에서 첫 번째 vCJD 환자가 발생한 뒤 영국은 곧장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일을 금지하고, 모든 국민의 헌혈을 금지했다. 광우병 역학조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전담팀도 꾸렸다. 사회 전 영역에 ‘광우병 대책’을 둘러쳤지만 어김없이 지난해에도 희생자는 발생했다. 앤드루 블랙이 166번째 vCJD 희생자다. 이처럼 ‘인간광우병’ 환자가 한 번 발생하면 그 사회는 ‘광우병 위험 국가’가 되고, 국민은 ‘인간광우병’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혈액 등을 통해 사람-사람 간, 쇠고기 섭취를 통해 동물-사람 간 전염이 이뤄진다.

그러나 정부는 이 모든 위험을 무시하고 지난 4월18일 광우병 방어의 두 가지 안전핀을 뽑아버렸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소의 광우병 안전연령으로 여겨지는 ‘30개월 이하’ 조건과 광우병 위험물질인 ‘특정 위험물질 금지’ 조건을 포기한 것이다. 정부는 과연 어떤 대책을 마련해두고 안전핀을 뽑았을까. ‘인간광우병’ 환자가 발생하면 우리 사회는 이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까.

vCJD는 신경과 전문의들만 진단할 수 있다. 현재 신경과 전문의들이 있는 180여 개 대학병원급 종합병원이 ‘전국 표본감시 의료기관’으로 지정돼 있다. 이들 기관에서 뇌파 검사나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통해 환자의 병이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의 일종인지를 진단할 수 있다. 이 병이 일반 CJD인지 혹은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어서 생긴 vCJD인지를 확진하기 위해서는 뇌척수액을 뽑아내거나 뇌조직을 추출해 ‘생검’을 해야 한다. 뇌에는 광우병 원인물질로서 전염의 주요한 원인인 프리온이 많기 때문에, 이 생검을 하기 위해서는 vCJD를 포함해 CJD만을 전문적으로 진단·진료하는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 전문 진료기관’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현재 국내에 지정된 전문 진료기관은 평촌 한림대병원 한 군데뿐이다. 이 병원은 “한국인의 유전자나 식습관이 vCJD에 취약할 가능성이 높다”고 논문에서 밝힌 김용선 교수가 책임자로 있는 곳이다. 정해관 성균관대 교수(감염병리학)는 “‘광우병 위험 소’로 인한 광우병 유입이 언제든지 가능한 지금, 전문 진료센터를 늘리고 국민을 대상으로 전문 진단센터가 있다는 얘기도 계속해서 홍보해야 하지만, 현재까지 그런 노력은 전혀 없다. 정부가 발표하는 대책에도 그에 대한 것은 일언반구도 안 나온다”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진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사후관리’라고 지적한다. vCJD는 일단 걸리면 치료 방법이 없기 때문에 환자들을 적절히 관리하는 사후처리 시스템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로는 이런 ‘사후처리’에 관한 제도도 미비하다. vCJD는 전염병이기 때문에 100% 화장을 해야 안전하지만, CJD 환자를 대상으로 화장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는 전혀 없다. 또 CJD는 병의 원인, 역학관계, 예방법, 치료법 등 아무것도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에 이를 연구하기 위한 부검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로는 환자들의 기피, 또는 인식 부족 등으로 부검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05년 국립보건원 조사보고서를 보면, 1997년부터 2004년 12월까지 국내에서는 총 202명이 CJD 환자로 의심돼 진단 의뢰됐는데, 이 가운데 130명이 의사 및 확진 CJD 환자로 보고됐고, vCJD 환자로 확진된 사람은 없다. 김용선 교수는 2005년 펴낸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 등 인수공통감염증의 현황분석 및 관리정책 개발’이라는 논문에서 “130명의 환자 중에서 뇌조직 생검을 할 수 있었던 환자는 21명에 불과해 뇌조직을 이용한 CJD의 진단이 이루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우리나라가 vCJD(인간 광우병)로부터 안전한가 여부도 판단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최경찬 한림대 교수(신경병리학)는 “뇌조직 생검도 힘든데 부검은 더 어렵다”며 “부검을 제도화해서 CJD 환자가 발생했을 때 모두 부검을 함으로써 CJD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전염병 예방법에 시신 처리 조항, 부검 의무화 조항 등을 추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4월18일 타결된 미국산 쇠고기 협상에 따라, 이제부터 살코기는 물론 ‘광우병 위험물질’인 특정위험물질도 함께 수입된다. (사진/ 한겨레 신소영 기자)

 

 

CJD 환자 추적 못하고 연구도 안 돼

 

환자 추적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관련 연구도 지지부진하다. 김용선 교수는 같은 논문에서 “아직 국내 CJD 환자의 정확한 수와 동향 및 vCJD 환자의 존재와 동향에 관해서도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대로 된 환자 추적 및 진단을 위해서는 수의사, 의사, 연구소, 질병관리본부 등이 하나의 팀을 이룬 전담 연구반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질병관리본부는 의사 4명, 수의사 1명, 질병관리본부 전염병감시팀장 1명, 수의과학검역원 검역과장 1명 등이 포함된 ‘인수공통전염병대책위원회’에 ‘CJD(vCJD) BSE 전문분과위원회’를 두고 있지만, 위원회가 하는 일은 1년에 두 차례 정기 회의를 여는 것뿐이다. 긴급 안건이 발생할 경우에만 비상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 미리 병을 점검하고 원인을 찾는 등 적극적인 대응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질병관리본부 전염병감시반 담당자는 인수공통전염병대책위원회 위원이 누구인지 묻자 5년 전에 위원으로 참여하고 지금은 위원이 아닌 사람들의 이름을 대는 등 위원회 구성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학 내 연구시설도 전혀 없다. vCJD는 일단 걸리면 현재로서는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100% 사망한다. 우희종 서울대 교수(수의학)는 “어차피 치료할 수 없다. 지금은 예방법도 없는 상태에서 수입만 강행한 상태다. 그렇다면 치료약을 개발하고, 한국에서는 광우병이 어떤 방식으로 걸리는지에 대해 연구해야 하는데, 대학에서 연구할 수 있는 시설이 하나도 없다”고 답답해했다.

프리온은 일반적으로 단백질분해효소나 열, 방사선, 포르말린 처리 등에 의해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134도에서 18분 이상 고압증기멸균을 시행해야 변성된다고 한다. 그만큼 없애기가 어렵기 때문에 광우병 연구시설은 기본적으로 ‘생물안전기준(BSL)-3’ 수준을 만족해야 한다. 미국 질병관리예방본부(CDC)가 정한 생물안전기준은 1에서 4까지 있다. BSL-3 시설의 설비 요건은 △연결 부위 없이 바닥 소재가 벽의 10cm 높이까지 덮어야 하고 끝부분은 실리콘 접착제로 봉해져야 하고 △바닥은 에폭시 등 단단한 마감재로 마감돼야 하고 △벽은 세제, 염소계 표백제, 수산화나트륨 등과 같은 화학물질에 저항성이 있어야 하며 △견고한 유광 페인트가 칠해져야 하며 △실험실 내 진공흡입 시스템을 설치해 흡입되는 공기가 필터를 통과한 뒤 실험실 밖으로 나가야 하고 △모든 수도꼭지는 역류 방지가 되는 것을 사용하는 등 모든 설비에서 공기와 액체 유출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시설이 없을 경우 ‘프리온’으로부터 안전을 유지할 수 없다.

 

‘생물안전기준-3’ 만족시켜야 하는데…

 

우희종 교수는 “최소한의 대학 내 연구시설을 갖추고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신속히 보고하고 대응할 수 있는 체계들부터 마련해놓고, 미국 쇠고기 수입을 재개했다면 조금이라도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라며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문만 열고 보는 식의 ‘안전 불감증’ 개방이 국민의 분노를 샀다”고 지적했다.

앤드루의 엄마 크리스틴은 아들을 잃은 뒤 인터넷에 ‘앤디를 위한 정의’(www.justiceforandy.com) 홈페이지를 열고 아들이 왜 vCJD에 걸렸는지 원인을 추적 중이다. 또 1996년 첫 광우병 환자가 나올 때까지 ‘사람에게는 아무 이상 없다’고 홍보한 존 거머 영국 농림부 장관 등 정부 관료 10명의 퇴진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대책 없는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은 국내의 수많은 엄마들을 언제 ‘앤디 엄마’ 같은 투사로 만들지 모를 일이다.

 

보수신문의 ‘탓’ 보도

 

 

 

현실 부정하며 소 뒷걸음질

 

▣ 김유진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차장

 

 

 


 

‘방송 탓’, ‘반미좌파 탓’, ‘연예인 탓’, ‘인터넷 탓’ ….

미국 쇠고기 전면 개방에 대한 국민의 분노에도 아랑곳없이, ‘보수신문’들은 ‘탓’만 하고 있다. 졸속 협상을 두둔하고 광우병 우려는 ‘오해’로 몰아가려다 보니 국민을 부추긴 책임을 누구에겐가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보수신문’들이 가장 격렬하게 비난한 대상은 지난 4월29일 방영된 문화방송 〈PD수첩〉이다. 5월2일 <중앙일보>와 <조선일보>가 포문을 열었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미국 쇠고기 수입을 다룬 프로그램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일환으로 미국 쇠고기 개방을 반대하는 정치적 선동”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도 사설을 통해 “TV 속 ‘미국 쇠고기 괴담’은 터무니없이 과장된 내용이 많다”고 주장했다. 하루 뒤 <동아일보>도 사설을 싣고 “출범한 지 두 달 남짓한 정권을 타도하자고 외치는 ‘광우병 괴담’의 발신지는 지상파 방송의 일부 프로그램”이라고 방송을 탓했다. 그러나 〈PD수첩〉 보도에 대해 이들 신문은 막연히 ‘과장’이라고 주장할 뿐 무엇이 사실과 다른지 과학적으로 반박하지 못했다.

보수신문들의 ‘방송 탓’은 곧 ‘인터넷 탓’으로 이어졌다. 인터넷에 떠도는 온갖 헛소문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광우병 위험성을 싸잡아 ‘괴담’으로 취급하면서 국민이 이런 ‘괴담’에 휘둘렸다고 주장한 것이다. 나아가 ‘반정부·반미 투쟁을 의도하는 세력’이 이런 ‘괴담’을 계획적으로 유포하고, 여기에 청소년에게 영향력이 큰 연예인들까지 나서 ‘엉터리 소동의 주연’으로 나섰다고 비난했다. 배후 세력을 밝혀내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보수신문들의 이런 비난에도 여론이 꿈쩍하지 않자 이번에는 구체적인 ‘배후세력’으로 전교조를 낙인찍었다. 많은 청소년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 몇몇 전교조 지부에서 광우병 쇠고기 반대 활동을 했다는 사실 등이 ‘전교조 탓’의 근거로 주장되고 있다.

이렇듯 ‘탓’ 시리즈를 자가발전하는 보수신문의 근본 문제는 ‘현실 부정’이다. 이들은 졸속협상의 문제와 객관적인 광우병 위험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또 광우병 정국이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 축적된 결과라는 점도 인정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보수신문들은 사회 각 분야를 헤집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불도저 리더십이 ‘민주정부 10년’을 거친 국민, 그중에서도 권위주의를 경험하지 않은 청소년들과 충돌하고 있다는 점을 모른 척한다. 하지만 국민 여론은 보수신문들이 이런 ‘현실 부정’을 극복하지 못하면 ‘조·중·동의 시대’도 끝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믿게 하소서

영국 광우병 발생부터 최근 미국의 리콜사태까지 쇠고기 소비는 각국 정부 조치에 대한 신뢰와 관련돼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2부- 광우병의 습격]

 

1984년 12월 영국 서섹스 지방 스텐트 목장에서 사육 중이던 ‘133번 소’가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머리를 흔들고 자세를 바로잡지 못하면서, 걸핏하면 넘어졌다. 이듬해 2월 133번 소는 숨을 거뒀고, 비슷한 시기 목장의 다른 소들도 비슷한 증세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병리학자들이 133번 소의 주검을 검시했다. ‘해면상뇌증’과 비슷하게 뇌 조직이 스펀지처럼 텅 빈 상태였다. 영국 정부가 ‘소해면상뇌증’(BSE·이하 광우병)의 첫 사례를 공식 발표한 것은 133번 소가 이상 증세를 보인 지 2년여 만인 1986년 말의 일이다.


△ ‘안전합니다. 믿어주세요~!’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지난 4월22일 워싱턴 중심가 무역대표부청사에서 한국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방 합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연합/AP PHOTO/ MATTS AYLES)

 

 

 

발병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다만 도축한 병든 소의 잔유물을 다시 소 먹이로 사용하는 게 전염의 주요 경로로 꼽혔다. 영국 정부는 1988년 모든 병든 소를 살처분하는 한편 도축한 소의 잔유물을 소 먹이로 사용하는 걸 금지시켰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으면 인간도 치명적인 질병에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까지는 그로부터 10년 세월이 더 필요했다.

 

‘일본산은 안전하다’는 말만 반복하다가…

 

1996년 영국 정부가 ‘인간 광우병’을 공식 인정하자, 기다렸다는 듯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 정부가 앞다퉈 비슷한 발표를 내놨다. ‘미친 소’ 파동이 유럽 전역을 휩쓸었다. 처음엔 몰랐고, 나중엔 감췄다. 쇠고기의 안전성을 믿을 수 없게 됐다. 1990년대 중반 유럽에서 쇠고기 소비량이 극도로 위축된 것은 당연했다. ‘신뢰’의 위기가 부른 결과다.

2001년 9월 일본 지바현에서 광우병 사례가 발견됐다. 유럽을 제외한 지역에서 광우병이 발병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광우병 파동이 유럽을 넘어 전세계적 현상으로 번진 계기였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광우병 사례가 발견된 지 2주가 지난 뒤에야 이런 사실을 공개했다. 육우업계에선 ‘일본산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한 달여 만에 두 번째 광우병 사례가 나왔고, 같은 해 11월 세 번째 감염 소가 발견됐다.

광우병 파동 이전만 해도 일본의 쇠고기 시장은 전도가 양양했다. 1980~90년대를 거치며 쇠고기 소비량은 3배 이상 늘었고,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수입 쇠고기가 몰려들고 있었다. 일본 쇠고기 시장의 3분의 2가량이 수입물량으로 채워졌다. ‘안전’에 대한 믿음은 깨졌고, 정부에 대한 ‘신뢰’는 무너졌다. 쇠고기 소비량은 광우병 파동과 함께 70%가량 급락했다. 당시까지 단 1건의 광우병 사례도 발견되지 않았던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산 쇠고기 소비량도 덩달아 50%가량 떨어졌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강력한 ‘처방’이 필요했다. 일본 정부는 연간 120만 마리에 이르는 자국산 도축 쇠고기 전량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하기로 했다. 2002년 중반에 이르면서 일본의 쇠고기 소비량이 광우병 파동 이전에 비해 10~15%가량 줄어든 수준까지 회복된 이유다. 먹을거리 시장에서 안전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미국에서 광우병 사례가 처음 발견된 건 지난 2003년 12월이다. 그로부터 한 달여 만인 2004년 1월13일 <월스트리트저널>이 성인남녀 2378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8%가 ‘정부가 광우병 확산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적절히 취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답했다. ‘신뢰’는 소비로 이어졌다. 전미목축쇠고기협회(NCBA)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03년 27.9kg에 이른 미국인 1인당 쇠고기 소비량은 광우병 파동과 함께 시작된 2004년 28.6kg으로 되레 늘었다. 2005년과 2006년엔 각각 28.4kg과 28.5kg으로 엇비슷했고, 지난해에도 28.4kg을 유지했다. 미국 소비자들의 ‘신뢰’는 근거가 있는 걸까?

 

지난 2006년 12월 미 의회조사국(CRS)이 내놓은 광우병 관련 보고서를 보면, 2002년과 2003년 미 검역당국은 연간 3500만 마리에 이르는 도축소 가운데 각각 2만여 마리에 대해서만 광우병 검사를 했다. 광우병 사례가 발견된 이후 검역을 강화하면서 2004년 6월부터 2006년 8월까지 ‘이상 징후’를 보인 소 78만8천여 마리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 ‘신뢰의 위기, 싹이 트는가?’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학교 급식용으로 납품됐다 회수된 쇠고기. 홀마크/웨스트랜드 파문으로 미 농무부는 사상 최대 규모의 쇠고기 리콜을 단행해야 했다. (사진/ 연합 김재홍)

 

 

미 육우업계가 기존 입장을 바꾼 이유

 

 

전미프리온질환병리감시센터(NPDPSC)는 지난 4월3일 내놓은 자료에서 “지난해 미국에서 도축된 약 3500만 마리의 소 가운데, 프리온 질환(광우병) 검사를 거친 소는 전년(47만 마리) 대비 90%나 떨어진 4만 마리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특히 “미국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프리온 질환 검사를 벌이고 있는 캐나다에서 지속적으로 광우병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검사를 강화하면, 광우병 발병 건수가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된 광우병 사례는 모두 16건이다. 이 가운데 13건이 제대로 서지 못하는 증상을 보인 ‘다우너 소’에서 발견됐다. 미 농무부가 다우너 소 식용 도축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이유다. 하지만 수의검역 과정에 치명적 허점이 존재한다. 일단 검역을 통과한 뒤에는 이상 증세를 보이더라도 식용 도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우너 소 식용 도축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지난 2월 미 검역당국이 사상 최대 규모인 6만4천여t에 이르는 쇠고기에 대해 리콜을 단행한 것도 미 동물보호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가 캘리포니아주 ‘홀마크/웨스트랜드’ 도축장에서 다우너 소를 육우용으로 도축하는 장면을 공개한 데 따른 조처였다. 당시 리콜 대상 쇠고기 가운데 1만6천여t은 이미 학교 급식용 등으로 소비된 뒤였다. ‘신뢰’가 무색해진 게다.

그동안 다우너 소 도축 전면 금지에 반대해온 미 육우업계가 최근 입장을 바꾼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이다. 미육류연구소·전미육류협회·전미우유생산자연맹 등은 지난 4월22일 다우너 소 도축 전면 금지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미 농무부에 냈다. 〈AP통신〉은 이날 제러미 러셀 전미육류협회 대변인의 말을 따 “소비자들에게 (육가공 업계가) 경제적 이득보다 소비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낼 시점이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업계의 이런 기류 변화에 대해 일부에선 “쇠고기 수입국의 압력이 커진 탓”이라고 풀이한다. 실제로 패트릭 보일 미육류연구소 대표는 〈AP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현 상태가 지속된다면 결국 미국 소비자들은 물론 개방이 어려운 외국 쇠고기 시장에서도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며, 다우너 소 도축 전면 금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과학적인 사실보다 중요한 것

 

미 워싱턴주립대 농경제학과 토머스 월 교수와 질 매클러스키 교수는 지난 2004년 1월 펴낸 ‘광우병이 쇠고기 무역에 끼치는 영향’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광우병과 관련한 소비자들의 행태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건 과학적인 사실보다 정부에 대한 믿음”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 소비자는 자기 정부를 믿고 있다. ‘신뢰’의 근거는 취약하다. 한국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말한다. 그 ‘믿음’의 근거 역시 취약하기만 하다.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일어선 국민은 그러니 ‘실용적’이다. 정부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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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교수와 함께 하는 한국경제, 세계경제 알기

출처 : 성공회대 홈페이지

[공개강좌]김수행 교수와 함께 하는 한국경제, 세계경제 알기


1부 : 이론적 검토

제1강(5월 21일) :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구조
제2강(5월 28일) : 경제의 금융화
제3강(6월 4일) : 경제의 위기와 공황
제4강(6월 11일) : 세계경제의 구조와 발전



2부 : 현실 분석

제5강(6월 18일) : 1997년 한국공황의 원인과 결과
제6강(6월 25일) : 한국, 미국, 중국, 일본 사이의 대외경제 관계
제7강(7월 2일) : 1980년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1)
제8강(7월 9일) : 1980년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2)


일시 : 수요일 오후 7:00 ~ 10:00
장소 : 이천환기념관(정보과학관) 6110강의실(시청각실)
주최 : 성공회대학교      주관 :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참조사항:
1)수강료: 없음.
2)문의처: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이메일: democracy@skhu.ac.kr/
          02-2610-4232, 011-608-9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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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 아이러니

 <사요나라, 갱들이여>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기괴한 노스탤지어의 끝은 시시한 자기파괴였고, 역사적-사회적 상상력은 증발된 채 무력한 알레고리만이 남았을 뿐이다. 결국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절대기억으로 중핵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간다는 이야기이다. 겐이치로는 그때 그 처절했던 시간들을 아이러니로서 기억하는 방법을 터득했고,  그렇게 성공한 글쟁이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아이러니는 또 다른 아이러니를 낳게 되고, 그 순간 기억이 가진 절대성은 그 힘을 잃게 된다. 그리고 과거의 사건들은 희미한 반복을 통해서만 가끔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사건을 재생산해내지 못하는 사건은 무용하다. 무용성을 획득한 사건은 멋진 서사적 질료가 되어 거리의 군중 속을, 극장의 스크린 속을, 책장의 먼지 속을 배회한다.

 

 사건(들)을 기억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같은 열도에서는 그것을 설익은 낙관주의자들의 유희로 기억하기도 하고(식스티 나인), 바다 건너 사건의 중심지였던 곳에서는 탐미적이고 원초적인 욕망의 분출로 기억하기도 한다(몽상가들). 방법은 다를지 모르겠지만, 사건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만큼은 위 작품들 사이에서 차이점을 찾기가 힘들다. 그들은 일관되게 ‘그때 그 사건’을 아이러니의 영역에 가두어두려고 한다. 사건을 아이러니의 영역에 가둔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역사를 아이러니의 연속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 아이러니의 이름 앞에선 희대의 독재자도 파쇼적 열기도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히틀러는 우연히 나타났다가 우연히 사라진 아이러니한 인물이었고, 파시즘은 민족-국가주의의 희비극적 배리였다. 그렇다. 이질적 계열들의 우발적 조우가 만들어내는 역사의 유희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세계는 아이러니로 점철되어 있고, 인간의 삶은 그 아이러니를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잊고 있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때 그 사건’이 아이러니에 대한 대항으로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경제적 동물들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 ‘그때 그 사건’을 이야기한다는 건 단순한 재현 그 이상이다. ‘그때 그 사건’이 경제적 동물들의 세계를 보편화시켰다는 지적도 있지만(이것도 일종의 아이러니인가?), 나는 그것이 사건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자연적인 상황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사건은 오로지 자연적 아이러니를 초월한 상태에서만 ‘현존’할 수 있다. 다만 사후에 아이러니로서 ‘기억’될 뿐이다. 사건은 계열들의 배치과정에서 상황의 틈을 뚫고 솟아오른 일종의 변이이다. 거기에는 그 어떤 초인적 의지도 개입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연을 넘어선 우연이고, 공통적으로 잠재되어 있던 상상력의 동시적 분출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의 과정과 굉장히 유사하다.) 상상력이 아이러니의 우위에 서는 순간 모든 무력함은 해방적 행위들에 의해 전치된다. (그리고 이것은 문학과 예술이 수행해야 할 본연의 임무이기도 하다. 비록 지금은 완전히 방기된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내가 지금 ‘그때 그 사건’을 이야기하는 건 ‘앞으로 도래할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동시에 사건의 도래를 막는 경제적 동물들의 윤리적 외피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만 한다. ‘그때 그 사건’이 겨냥했던 지독한 현실의 모순들은 여전히 견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동물들은 도착적 윤리학을 통해 사건의 도래를 끊임없이 유예시킨다. 그들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무기들은 다음과 같다. 1) 재앙의 스펙타클에 대한 끝없는 환기, 2) 인권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전쟁이라는 쇼비즈니스, 3) 결국엔 모두가 선량한 피해자라는 알량한 사해동포주의. 특히 3)의 이름으로 펼쳐지는 집단 망각의 쇼는 자유-책임에 대한 전면적 부정으로 이어진다. 자유주의적 세계/역사관에서 자유는 뻔뻔한 관용과 양보의 제스처로 나타난다. 결정불가능성이라는 구조주의적 신의 보살핌 아래 ‘선량한 피해자들’은 역사의 폐허 위를 자유롭게 활보한다. 미래의 사건은 이 윤리적 외피의 취약한 부분을 지속적으로 공격한 후에야만 도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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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 / 지아장커

 

1. 유용 = 자본제 생산

 첫 번째 에피소드. 광동의 한 의류공장에서 여공원들이 재봉틀을 다루며 옷을 만들고 있다.  특별할 것 없는, 흔하디 흔한 제3세계 공장의 풍경. (여기서의 제3세계란 단순한 지리적 분류를 뛰어넘어, 자본주의 국가 내부에서 제1세계와 함께 상존하는, 동시에 언제든지 확대-재생산이 가능한 '광대한 게토'를 의미한다.) 그리고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육체적/정신적 질병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 이것은 뒤에 펼쳐질 (영화적) 마법을 위한 준비단계일 뿐이다. 다만 그 유용한 생산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생산의 외부에선 곧 무용한 존재로 전락한다는 점만은 상기해두자.

 

2. 무용 = 예술

 유용성의 논리에 대항하는 아티스트 마커의 방식. 그것은 비인격화된 상품 대신에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진, 만든 이의 혼과 역사가 담긴 '예술품'으로서의 옷을 만드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기획은 서구 명품브랜드들의 전략과 본질적으로 같은 원리를 따르고 있다. 아티스트에 의해 창조된 독창적 디자인, 대량생산되지 않는 옷의 고유성,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옷의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점까지. 이러한 명품들은 이제 '자본제 생산논리'에서 벗어나 '유한계급 논리'의 영역으로 편입된다. 계급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위치한 사람들은 자본제 생산이 만들어내는 살벌한 현실에서 벗어나, 품위와 낭만으로 가득한 탈자본주의적 문화들을 향유할 수 있다. 무용한 것들에 대한 접근은 유용한 것들에 대한 걱정과 부담이 더 이상 요구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하다.  나는 이렇게 무용성을 추구하는 예술들을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 부른다. 나는 이런 예술들을 존중하며, 자신의 고유한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고부가가치를 생산해내주길 바란다. 다만 예술의 자율성이니, 정치-사회적인 것으로부터의 해방이니 하는 헛소리들은 자제해줬으면 한다.

 

3. 무용한 존재들의 절대적 유용성

 첫 번째 에피소드의 반복, 혹은 변주. 노동자들에게 포커스를 맞추는 것은 같지만, 이번엔 생산과정이 아니라 옷을 입고 고치는 모습들을 바라본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합리적 교환이 아니라, 인정과 호혜에 의한 교환이 이루어지는 양장점. 그리고 탄광일로 얼룩진 작업복을 벗고 몸을 씻는 노동자들의 '숭고한' 뒷모습. 자본제 생산(유용)의 차원과 예술(무용)의 차원을 넘어서 옷은 그들의 삶에 녹아 스며들고, 결국엔 삶과 구분되지 않는 '부분으로서의 삶'이 된다. 비록 자본제 생산에 의한 비예술적인 옷들이지만, 그것들은 사람들의 삶에 밀착해서 예술을 뛰어넘은 예술성을 구현해낸다. 침묵의 응시가 유도하는 부끄러움, 반성적 사유, 그리고 필요에 대한 감각들. 이것이 내가 앞에서 말한 (영화적) 마법의 정체이며, 이러한 마법은 또다른 반복과 변주를 통해 확대-재생산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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