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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연대)선진노동자는 인권운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선진노동자들은 인권운동이라는 말을 듣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느낌을 갖는다. 한편으로는 인간이 노동자와 자본가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간의 권리'라는 말은 추상적이고 공허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과거에 헌신적으로 투쟁했던 활동가들이 인권운동으로 '전향'하여 백화점식 운동을 하는 것이 못마땅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활동가들의 상당수가 노조관료가 되어 자본과 야합하고 대중 위에 군림하는 판에, 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는 그래도 그만큼 타락하지 않고 오히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모습에 신뢰감을 갖기도 한다. 더군다나 인권운동은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정보 등 새로운 운동영역을 개척하고 활성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생각이 들어 노동조합운동의 타락에 신물이 난 노동자들은 신선한 기대감을 갖기도 한다.

이런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생각은 선진노동자들로 하여금 인권운동을 무시해 버릴까, 반대로 차라리 인권운동을 적극적으로 해볼까 하는 혼란까지 느끼게 할 수도 있다. 단순한 거부나 무비판적 동참, 모두 옳지 않다. 그렇다면 도대체 인권이란 무엇이며, 선진노동자들은 인권운동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이것을 이해하려면 먼저 한국노동운동과 인권운동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동운동의 후퇴와 인권운동의 부각


인권운동이 진보운동에서 상대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90년대 중, 후반부터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 즉 계급투쟁적 노동운동이 상대적으로 활성화됐을 때는 인권운동이 거의 부각되지 않았다. 87년 여름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 노동운동이 진보운동의 중심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당시 노동운동은 전투적 조합주의라는 한계를 안고 있었지만 그것은 성장해가는 운동이 안고 있는 한계였으며,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한계였다. 또한 당시에는 선진노동자라면 당연히 노동자의 과학을 학습했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으로 확연하게 갈라져 있으며, 노동자계급이 중심에 서야만 해방을 쟁취할 수 있다는 점 정도는 이론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때에는 노동자운동을 어떻게 더욱 의식적이고 계급적인 운동으로 발전시켜 해방으로 진군할 것인가가 대부분의 활동가들과 선진노동자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이자 모든 것을 바쳐 이루어야 할 절대적인 과제였다.

그러나 구소련의 변화와 한국 지배세력의 보다 교묘한 통치방식은 노동해방 정치운동의 한계와 맞물려 노동운동을 급속히 쇠퇴시켰다. '자본주의는 영원하다', '노동자계급은 해체되고 있다. 노동운동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이데올로기가 부자언론과 자본, 정부에 의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활동가들이 썰물처럼 현장과 노동운동을 떠났다. 길을 잃은 선진노동자들은 좌절하고 방황하거나, 무너져가는 현장을 추스르는 데만 자기 활동을 제한하거나 아예 타락한 노조관료가 되기도 했다. 노동운동에서 후퇴했지만 차마 모든 진보운동을 포기할 수는 없었던 일부 활동가들은 마지못해 인권운동을 대안으로 선택하기도 했다. 노동운동의 후퇴에 비례하여 인권운동이 상대적으로 부각됐다. 이 점에서 지금의 인권운동은 '후퇴의 산물'이라는 부정적 측면을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인권운동이 노동운동과 대립한다고 간단히 결론내릴 수는 없다. 인권운동도 몇 가지 부류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자본가들의 관점에서 전개되는 박애주의 캠페인을 들 수 있다. <아시아, 아시아>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그 한 가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노동자들을 고통받는 자로만 볼 뿐, 투쟁과 해방의 주체로 보지 않으며 자본가들의 시혜에 의지해서 탈출구를 찾으라는 환상을 심어줘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흐릿하게 하기 때문에 해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동정적 박애주의 캠페인은 노동운동과 명백히 대립한다고 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나 UN 인권위, 기타 자본가들의 원조를 받거나 정부와 밀접히 연계된 NGO(비정부기구)들은 '인권운동'의 옷을 걸친 자본가적 박애주의 캠페인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자본가적 박애주의 캠페인의 계급적 실체를 항상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폭로하고 경계해야 한다.

다음으로 중간계급 인권운동을 들 수 있다. 중간계급이 그 내부에서 상층, 중층, 하층으로 나뉘고 그 사이에도 다양한 계층들이 있듯이, 그들의 인권운동 안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노동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인정하는가, 자본과 정부로부터 독립적이며 그들에 맞서 전투적으로 투쟁하려고 하는가, 자본주의 테두리 안에서의 개량만 추구하는가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는가, 주로 어느 계층에 기반을 두고 누구의 이해를 대변하는가에 따라 중간계급 인권운동도 천차만별이다. 이러한 종류의 인권운동에 대한 태도는 중간계급에 대한 태도와 다르지 않다. 노동운동은 중간계급 인권운동이 노동자계급 편으로 다가올 때는 박수를 쳐주면서 더 빠르고 곧게 다가올 것을 격려해야 하며, 그 운동이 자본가계급 편으로 후퇴할 때는 비판의 채찍을 휘두르면서 그들이 노동운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자계급의 인권운동이 있다. 이것은 노동자계급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운동이다. 그런데 노동자의 권리는 오직 노동해방을 통해서만 완전히 충족되므로, 이 인권운동은 궁극적으로 노동해방운동일 수밖에 없다. 한편 노동자계급은 노동자들의 해방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피억압계급의 인간해방을 추구한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인권운동'은 노동해방이라는 확고한 관점 아래에서 피억압계급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모든 형태의 억압과 수탈에 맞서 싸우는 것을 포함한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자본가적 박애주의 캠페인이나 중간계급 인권운동의 한계에 대해서는 비판적 관점을 갖되, 모든 인권운동을 무조건 적대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인권운동을 계급적 경계선을 따라 명확하게 구별하면서, 노동자의 자기해방운동이 바로 진정한 '인간의 권리'를 쟁취하는 수단임을 강조해야 한다. 현재의 인권운동은 주로 선진노동자들과 노동해방 활동가들이 아니라 중간계급 인권운동가들이 주도하고 있기에 숱한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노동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부정하거나 회의하는 부문주의, 정치의 모호함, 평화주의, 백화점식 사업태도 등등. 하지만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인권운동을 통해 선진노동자들이 관심을 갖고 개입해야 할 운동의 지평이 확대되고, 여성노동자 차별, 장애인노동자 차별, 이주노동자 차별 등의 형태로 노동운동 내에도 존재하는 불합리한 차별을 보다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다.

이렇게 역사를 검토하면 노동운동 강화가 여전히 핵심 관건임을 알 수 있다. 노동운동이 퇴조하고 인권운동이 떠오른다고 해서 인권운동으로 힘을 집중할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에 더욱 힘을 쏟아서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모든 이들을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으로 이끌 수 있는 굳건한 구심을 형성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아무리 인권운동이 활성화돼도 노동해방은 요원하며, 자본주의는 질기게 목숨을 이어갈 것이다.

노동운동이 활성화될 때만 인권이 실현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과거 노동운동이 활력 있게 전진했을 때는 여성운동, 장애인운동이 오히려 지금보다 더 강력하게 전개됐다. 이주노동자운동, 동성애자운동 등은 노동운동의 후퇴기에 성장한 운동들이지만, 이 운동들이 성장한 것도 과거에 노동자투쟁의 거대한 물결이 있었고 그 물결이 여전히 저조하게나마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은 노동운동을 철저히 강화시키려 하지 않은 채 몰계급적인 관점에서 인권운동만 강화시키려 하는 것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권의 역사


'인권'을 추상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허점투성이일 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 아주 유해하다. '인간은 타고날 때부터 하늘이 부여한 권리를 갖고 있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 등등의 주장을 살펴보자. 하루 12시간 죽도록 일하고도 서너 식구가 생활할 임금도 받지 못하는 수백만의 비참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기아와 식수 부족, 전염병으로 하루에도 부지기수로 죽어가는 북한, 이라크,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보면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운운하는 말이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공문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말 역시 노동자들이 겪는 불평등뿐만 아니라 장애인이나 동성애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부자유와 불평등을 반영하지 못하는 말이다. 대신 그 말은 자본가들에게 마음껏 부를 축적할 자유 즉 노동자를 무자비하게 착취할 자유가 있고 시장원리를 거스르는 '불평등한' 조치, 가령 국가가 자본가들에게 누진세를 적용하여 분배의 극심한 불균형을 조금 완화하는 것 등의 조치를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으로도 얼마든지 쓰일 수 있다. 실제로도 자주 그렇게 쓰이고 있다. 따라서 인권은 반드시 역사를 검토하면서 구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급했던 원시시대에 인권이란 개념은 희미한 흔적조차 없었다. 노예제 시대에도 인권이란 말은 없었다. 뛰어난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마저도 여자와 노예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고 짐승과 같은 부류로 여겼다. 민주주의를 꽃피웠다고 찬미 받는 그리스 시대에도 오직 자유민들만이 권리를 누릴 수 있었다. 봉건제 시대에도 봉건귀족들은 절대군주에 맞서 자신들만의 권리를 얻기 위해 싸웠다. 그래서 근대적인 인권보장의 첫걸음이라고 하는 자유대헌장(마그나 카르타)에도 모든 인간의 권리가 아니라 봉건귀족들의 권리만 명시되어 있을 뿐이다. 인권이란 말은 프랑스대혁명 등이 있었던 18세기에 이르러서야 겨우 등장했다. 인류가 노예주인과 노예, 봉건영주와 농노, 남자와 여자를 모두 대등한 인간으로 바라보기까지 최소 2,000년 이상의 세월을 걸렸던 것이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고 자유롭고 독립되어 있으며, 하늘이 부여한 인권을 가지고 있다'는 권리선언은 당시로서는 거대한 진보적 의의를 지니고 있었다. 그 선언은 절대왕정이나 봉건귀족들의 신분적 지배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었으며, 지배자들의 압제에 맞선 투쟁을 고무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분적 예속이 사라졌다고 해서 법 앞의 형식적 평등을 넘어서는 실질적 평등이 도래한 것은 아니었다. 토지, 기계, 공장을 가진 자본가와 무일푼의 노동자로 인간이 나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적 예속과 불평등이 신분적 예속을 대신해서 나타났다. 그리고 프랑스대혁명과 차티스트 운동 당시 민중들이 외쳤던 대로 '생존권 보장 없는 자유는 빈껍데기'에 불과했다. 실업자가 되어 길거리를 떠도는 사람에게 어떻게 인권이 보장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자본가들만이 자유와 평등의 '인권'을 맘껏 누릴 수 있었으며, 노동자들은 빈껍데기뿐인 '인권'에 좌절감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노동자들은 몰계급적이고 공허한 껍데기뿐인 '형식적 인권' 대신 항상 일자리 보장, 생활임금 보장, 죽지 않고 다치지 않으면서 일할 수 있는 권리 쟁취, 다쳤을 때 치료받고 휴양할 수 있는 권리 쟁취와 같은 노동자의 권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리고 법조문에 보장된 형식적 인권 대신 실질적인 노동자의 인권을 추구해나갔다. 그 후 줄곧 자본가의 권리와 노동자의 권리가 충돌했다. 정리해고를 할 수 있는 자본가의 경영권과 고용안정을 추구하는 노동자의 노동권이, 이윤 확대를 위해 임금을 삭감하려는 자본가의 권리와 사람다운 삶을 위해 임금을 인상하려는 노동자의 권리가, 그리고 시장 질서를 유지하려는 자본가들의 권리와 노동해방을 갈망하는 노동자의 권리가 격렬하게 부딪혔다.

따라서 노동자의 권리를 인권 또는 노동인권이라는 모호하거나 수줍은 표현으로 대체하려는 것은 피어린 투쟁을 통해 전진시켜온 역사를 뒤로 끌어당기거나 과감히 전진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행위일 뿐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몰계급적 인권으로 후퇴시키면 정리해고 분쇄, 임금인상 쟁취, 민주노조 사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같은 계급적 요구 대신에 '인권'이라는 추상적이고 감상적인 요구로 후퇴하게 된다. 몰계급적 휴머니즘이 널리 퍼지게 되면 노동자들은 날카로운 계급의식과 자본가들에 대한 적대감을 가질 수 없게 되며, 수동성과 순종의식에 물들게 된다.

또한 노동운동을 다른 부문운동과 동일한 위상으로 보고 백화점식 사업으로 힘을 분산하여 노동운동을 약화시킨다. 노동자의 계급적 권리보다 인권을 앞세우는 경향의 결정적인 약점은 계급 대립이 격화됐을 때 "자본가들도 인간인데 너무 나가면 안 되는 것 아니냐"며 투쟁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노동자들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조차 누리지 못하는 짐승과 같은 처지로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몰계급적 인권운동이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을 수밖에 없는 천형의 길이다. 노동자 자신의 요구를 내건 가차 없는 투쟁,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장애인노동자,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 동성애 취향의 노동자 등의 권리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모든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는 투쟁, 이것이 현대 사회에서 진실로 인권을 추구하는 운동이다.

인권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또 하나는 자본가들이 근대 시민혁명기에는 인권의 대변자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분명히 반(反)인권의 대명사가 됐다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귀족들로부터 차별당하고, 봉건군주들에게 세금이란 명목으로 수탈당할 때는 '인권'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가 성립함으로써 자신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난 다음에는, 그리고 자신들이 노동자계급과 날카롭게 충돌하게 된 다음에는 '인권'보다 자신들의 '질서'를 강조했다. 자본가들은 다른 모든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권문제에서도 이미 오래 전에 철저하게 반동적인 계급으로 돌아섰다. 반면 노동자계급은 다수이고, 여전히 실질적인 인권을 보장받고 있지 못하기에 가장 강력하게 인권을 위해 투쟁할 수 있는 세력이다.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는 피억압 민중들이 노동자계급과 함께 어깨 걸고 싸워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주의할 점이 있다. 군주제, 귀족제가 만연했던 시대에 천부인권 사상은 진보적 역할을 했다. 그런데 근대 시민혁명의 결과로 자본가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생산수단을 독점함으로써 국민들이 자본가와 노동자로 나뉘어 있는 이상, '국민주권'이라는 민주주의 원리도 자본가들의 민주주의와 노동자들의 민주주의로 나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당시 힘이 더 강했던 자본가들이 권력을 차지해 자본가 민주주의가 먼저 등장하게 되었다. 이 자본가 민주주의가 표현하는 인권이란 '1인 1표' 식의 형식적 권리에 불과했고, 노동자의 파업과 권리개선, 불평등 척결,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 등에 관해 자본가 민주주의는 온갖 억압과 공격, 기만을 자행함으로써 스스로 '인권의 적대자'임을 드러냈다. 이윤과 인권은 결코 양립할 수 없었다. 따라서 과거의 인권의 옹호자들은 현재의 인권의 파괴자들로 변화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노동자들은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인권에 대한 자각을 노동자 해방을 향한 대장정에 나서는 것으로 표출하게 된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자본가와 노동자로 나뉘기에 인권도 자본가의 소유권과 노동자의 노동권으로 나뉘게 된다. 봉건세력에 맞선 투쟁에서 자본가들이 제기한 인권이지만 결국 자본가들이 권력을 잡게 되자 인권보호는 '자본가의 소유권 보호' 정도로 변질했다. 자본주의의 법률과 질서, 공권력이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인권이 바로 자본가의 소유권이다. 자연스럽게 이러한 자본가적 인권은 노동자의 인권과 대립하게 되었다. 자본가의 소유권과 이윤권 보호의 이름으로 노동자 투쟁은 무참히 공격당했고, 노동자의 삶은 잔인하게 짓밟혔다. 결국 이 점이 분명해졌다. 이 사회는 두 개의 인권이 충돌하고 있다. 착취자와 억압자의 인권, 그리고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는 노동자의 인권!

한때 추상적인 인권에 집착하면서 '노동자도 인간이다'라는 선언에 머물던 노동자들은 여러 경험을 통해 자본가의 소유권에 맞서 노동자의 계급적 권리를 내세우게 됐으며, 그것은 결국 노동해방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노동자는 '자본가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인간'이라는 초기 선언에서, '자본가에 맞선 노동자의 투쟁'이라는 더 명확한 선언을 향해 전진해나갔던 것이다.





모호한 인권 대신 노동자계급의 관점을!


선진노동자들은 몰계급적 인권의 관점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관점을 철저히 견지해야 한다. 정규직, 남성, 한국인, 비장애인 노동자가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 장애인노동자를 대등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인간다운 권리를 위해 함께 투쟁하는 것은 무조건 올바르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자유와 평등을 만끽해야 한다'고만 막연하게 생각하면 자본가들의 '착취할 자유', '돈으로 국회의원 뺏지를 사고, 합법적으로 정치를 주무를 자유'에 대해서 단호하게 부정하지 못할 수 있다. 그리고 노동자는 하나라는 계급적 관점을 빠뜨린 채 막연히 인간주의(휴머니즘) 관점만 갖는다면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노동자, 장애인노동자들에 대해 보잘것없는 동정, 시혜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비정규직, 장애인노동자,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를 모두 스스로 투쟁하고 해방을 쟁취할 잠재력을 가진 노동자계급의 일부분으로 바라보고, 항상 노동자계급 전체의 이익을 중시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렇게 계급적 관점을 갖게 되면 비정규직의 적이 정규직이 아니고, 여성의 적이 남성이 아니며, 이주노동자의 적이 한국인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다. 이렇게 노동자들이 분명한 계급의식을 갖고 굳건하게 연대투쟁을 하면 백화점식으로 인권운동을 벌일 때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심지어 여성, 장애인, 외국인, 동성애자 중 노동자는 아니지만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도 이 힘을 보고 희망을 얻으며 노동자들과 기꺼이 손잡을 수 있다. 몰계급적 인권의 관점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관점을 확고히 견지할 때만 결정적 국면에서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가진 자들의 권리를 짓부수고 노동자의 권리를 전면적으로 쟁취할 수 있다. 그것만이 노동자들에게 승리를 즉, '영원히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다.

노동자 세상에서만 인간해방은 완전히 이루어진다. 자본가 사회에서는 아무리 인간애를 드높이기 위한 교육을 강화하고 '인권'을 외쳐도 남녀차별, 장애인 소외, 동성애자 억압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랜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는 각종 형태의 인간차별이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사람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자본가 근성에 근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소수 자본가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굴러가는 사회다. 자본가들은 첨예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동자의 피땀을 단 한 방울이라도 더 쥐어짜내려 한다. 그리고 노동자들 내부에 층층이 위계구조를 만들어 일치단결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그들은 여성, 장애인, 외국인, 동성애자 등의 인권을 일상적으로 유린한다. 그러면서도 자본가들은 노동자들과 피억압자들이 자신들의 '질서'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불우이웃돕기와 같은 자선사업에 나서며 불만을 잠재우려 한다. 따라서 이런 가진 자들의 질서에 과감히 도전하지 않는다면 인간해방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물론 노동자 세상에서도 모든 피억압자들의 인간해방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노동해방은 인간해방을 위한 기본 동력을 제공하고 반드시 인간해방을 완성시킬 것이지만, 거기에 도달하는 것은 상당기간 동안의 지속적인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되돌아와서 인권운동은 깡그리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반자본주의 진보운동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권운동도 이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인권운동이란 이름으로 다양한 피억압 민중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벌인다면, 그리고 인권운동가들이 노동자의 정치적 자유와 파업의 자유를 위해 투쟁한다면 노동운동은 거기에도 개입해서 노동자의 대안을 제기하고, 그들을 노동해방의 관점 아래 통합시켜 나가야 한다.

역사를 앞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선진노동자들은 몰계급적 인권운동의 한계를 정확히 이해하면서 노동운동을 계급적 단결과 연대, 해방의 깃발 아래 재차 강화해야 한다. 이렇게 중심을 분명히 세우고 인간다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가난한 빈민들, 그리고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는 모든 이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자 하는 진보적 인권활동가들에게까지 손을 뻗쳐서 새로운 세상을 향한 운동의 동력을 확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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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연대)1973년 칠레의 교훈



1973년 칠레의 교훈




1973년 쿠데타


1973년 9월 11일 장갑차, 탱크와 무장한 군 병력이 칠레 대통령궁을 포위했다. 공중에는 전폭기들이 순회비행을 하고 있었다. 피노체트를 우두머리로 한 군부 쿠데타세력은 대통령 아옌데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 곧이어 공군 폭격기가 대통령궁으로 폭탄을 투하했으며, 지상군도 탱크를 앞세워 모네다궁으로 진입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쿠데타는 완료되었다. 선거에 의한 사회주의 정권의 출범이라는 세계 최초의 실험은 이렇게 실패로 끝났다.

아옌데정권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부로서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들을 어느 정도 펼쳤다. 그러자 포악해진 자본가세력은 아옌데정권을 파괴하는 데 머뭇거리지 않았고 단호한 군사행동을 실시했다. 칠레 아옌데정권은 군부 쿠데타에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무력하게 무너졌다.

칠레의 경험은 우리에게 노동자의 진정한 정치세력화란 무엇인지 의문을 던진다. 선거에서 당선되면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이루어질 것인가? 그렇다면 선거를 통해 대통령까지 배출하여 사회주의 건설에 착수했다고 이야기되는 칠레가 결국 쿠데타로 한 순간에 붕괴된 상황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실패한 실험은 그릇된 정치노선을 그대로 반영할 뿐이다. 칠레의 패배는 우리에게 잘못된 정치세력화의 파괴적인 결말과 동시에 진정한 정치세력화의 방향을 제시해준다.


민중연합정부의 건설 - 투쟁의 시작


1970년 9월 칠레 대통령선거에서 민중연합 후보인 아옌데가 36.3%의 득표로 당선되었다. 민중연합은 노동자정당인 사회당, 공산당과 중간계급 정당인 급진당, 사회민주당, 인민통일행동운동(MAPU), 인민독립행동(API)의 6개 정당이 모여 69년에 결성했다. 경제가 악화되고 빈부 격차와 빈곤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노동자와 가난한 농민들은 기존 자본가 정치세력에 분노하며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 했다. 이 노력이 곧 노동자정당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회질서를 건설하려는 민중연합의 길로 이어졌으며, 이 대중적 열망을 토대로 아옌데는 선거를 통해 집권할 수 있었다.

아옌데정권은 출범과 동시에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개혁정책을 실시했다. ‘최초의 40개 정책’으로 노인 및 퇴직자의 연금수혜 확대, 의료비 감면, 400만 어린이에 대한 우유 무료급식, 빈민가 주택개선, 저임금 노동자 66%의 임금인상 등 소득재분배 정책을 펼쳤다. 특히 물가상승률에 100% 연동해서 임금을 인상시키는 제도를 실행함으로써 저임금 노동자의 실질적인 생활개선을 추구했다. 그리고 칠레의 핵심 산업인 구리광산과 철, 섬유산업 등의 국유화를 실시하고 대농장을 몰수하는 등 토지개혁을 통해 가난한 농민층 속에서 지지기반을 확대해나갔다.

하지만 투쟁 속에서 의식적으로 발돋움함으로써 개혁정책의 ‘소극적인 수혜자’에서 ‘적극적인 주인공’으로 도약해나갔던 노동자와 빈농들은 아옌데정권의 제한된 정책을 뛰어넘어 훨씬 멀리 나아갔다.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스스로 공장위원회를 조직했다. 빈농들 역시 대농장점거와 농민평의회 건설을 통해 생산과 노동을 스스로 통제하는 자주관리를 실행했다. 칠레의 노동자, 빈농들은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데 그치는 소극적인 존재에서 생산과 노동과정을 스스로 통제하는 사회 운영의 주체로 우뚝 서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런 혁명적 조치를 스스로 수행하지 않고서는 절대 이 사회의 주인공이 될 수 없으며, 이제 막 시작된 초보적인 개선조치들을 근본적인 조치들로 전진시킬 수 없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점차 더 높은 수준의 계급의식을 갖게 된 노동자들은 빠른 속도로 단결의 힘을 강화하여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전면에 등장했고, 아옌데정부의 급진적 개혁을 선두에서 강제해 들어갔다. 그리고 이후 자본의 공세에 맞서 노동자투쟁의 성과를 지키는 실질적 힘이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옌데정권의 수립, 그리고 이 정권의 여러 진보 조치들은 이미 그 이전부터 강하게 솟구치고 있던 노동자들의 자주적이고 급진적인 저항을 선거와 의회정치라는 구조 속에 가두어놓기 위해 자본가들이 채택한 차선책이었다. 만약 이 정도라도 진보적 조치를 허용하지 않았다면 칠레의 자본가계급은 노동자들의 거대하고 결정적인 공세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본가계급이 불안해했던 것은 모네다궁의 아옌데정부 각료들이 아니라 이 궁 바깥에 포진한 더욱 급진화되는 노동자투쟁의 흐름이었다.


자본가세력의 반격


노동자들의 투쟁 열기에 위협을 느낀 자본가세력은 칠레에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시도를 깨뜨리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무기를 하나씩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옌데가 선거를 통해 당선되기는 했지만, 의회에서 다수파는 여전히 자본가세력이었다. 그들은 다수파의 유리한 지위를 이용하여 민중연합정권의 소득재분배정책, 산업국유화 정책과 토지개혁에 대한 법안통과를 저지하고 나섰다.

그러나 대단히 현실적인 자본가들은 의회에서의 공허한 말다툼에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모든 것은 의회 바깥의 실제 투쟁에 의해 결정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우선 기존의 경제혼란을 확대하여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을 불어넣으려는 의도에서 ‘자본가파업’을 일으켰다. 자본가들의 영향력 하에 있던 운수업자들의 파업을 시작으로 중소기업가들이 회사를 폐쇄하고, 소상점주와 의사들이 영업거부에 들어갔다. 특히 트럭 운수업자들의 파업은 물자수송에 타격을 주어 경제에 커다란 혼란을 일으켰다. 아옌데정부는 이러한 자본가들의 입체적인 공격에 부딪혀 최소한의 개혁정책조차 실행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옌데정부는 자본가파업을 진압하라는 대중의 요구, 즉 반항하는 자본가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주도자들을 구속시키라는 요구를 외면했다. 오히려 이 정부는 대중의 요구와는 정반대로, 자본가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급격한 개혁을 자제해야 한다는 그릇된 결론을 이끌어냈다. 대중이 접수한 공장과 대농장을 자본가와 지주들에게 다시 돌려주고, 자본가세력을 자극하여 쿠데타의 빌미를 제공한다며 대중적 시위를 자제시키며, 심지어 각 지역에서 자본가에 대항한 투쟁들을 경찰을 동원하여 진압하기 시작했다. 아옌데의 민중연합정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자본가의 쿠데타로부터 정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과거의 반동적인 군 장성 3인을 장관으로 임명했다. 심지어 쿠데타가 일어나기 얼마 전에는 쿠데타 수괴노릇을 할 피노체트를 육군참모총장에 임명하기에 이르게 된다. 한마디로 아옌데정부는 노동자의 힘을 강화하고 자본가들의 힘을 제거하는 대신, 자본가들에게 ‘이 정부는 당신들과 협조하고, 당신들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오.’라고 확신시키는 데 집착했다.

이것은 두 가지 결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한편으로 노동자들은 이 정부로부터 점차 멀어졌고, 그 결과 이 정부는 자신을 방어해줄 가장 중요한 토대를 잃어버린 채 허공에 붕 떠버렸다. 다른 한편으로는 저항을 통해 상당한 재미를 본 자본가들이 자신감을 강화시키면서 ‘이참에 아예 이 정부를 쓸어버리고 아주 강력한 자본가 독재정권을 수립해 노동운동을 말살시켜야겠다’는 야심찬 계획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자본가세력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려 했던 민중연합정부의 무기력한 희망과는 달리, 군 장성들은 공장점거와 토지점거를 파괴하고 노동자들의 무장을 막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민중연합정부의 소심한 대응에 모든 것을 맡겨두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독자적 힘을 더욱 강화하는 방식으로 자본가파업에 대처했다. 각지에서 노동자들은 공장점거를 확대했다. 각 지역의 노조와 부인회 등으로 구성된 물자공급위원회가 물자분배와 소매상의 매점매석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했다. 민중연합정부에 대한 자본가들의 공격은 바로 자신들을 향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던 노동자들은 전체 노동자계급 단결의 힘을 끌어 모으기 위해 분투했다.

자본가들은 1973년 3월 국회의원선거에서 승리하여 민중연합정부를 탄핵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민중연합에 대중은 표를 던졌다. 노동자들은 이 정부를 믿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당장에는 이 정부에 표를 던지는 것이 전술적으로 이롭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선거는 다시 한 번 민중연합의 승리로 끝났다. 합법적인 방식으로 목적을 달성할 모든 수단이 실패하자, 마지막으로 자본가세력은 쿠데타라는 결정적 카드를 꺼내들었고 재빨리 준비에 들어간다.

그해 6월 29일 쿠데타 미수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맞서 노동자들은 24시간 총파업을 조직했고, 9월 4일에는 80만이 모여 민중정부 사수를 위해 노동자들이 무장해야 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자신의 목에 쿠데타라는 칼이 겨누어지는 상황에서도 아옌데정부는 오히려 자본가세력과의 타협 가능성을 굳게 믿었고, 노동자들의 무장요구를 묵살했다. 결국 아옌데정부는 노동해방을 향해 철저하게 전진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에 의지하기보다는, 노동자들을 압살하고자 하는 자본가세력에 더 의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투쟁의 성격이 근본적인 지점을 향하면 향할수록 아옌데정부는 혁명을 할 의지가 전혀 없는 개량주의 세력임을 드러냈는데, 이것은 자연스럽게 이 정부를 노동자의 편에서 자본가의 편으로 이동시켰던 것이다.

1차 쿠데타 시도에서 민중연합정부의 무기력함(이것은 기본적으로 급진화되고 노동해방을 향해 전진하려는 노동자들의 열망을 대변하려 하지 않았던 데 기인한다)을 확인한 자본가들은 결정적인 2차 쿠데타를 감행한다. 결국 9월 11일 피노체트를 중심으로 한 쿠데타는 성공했고, 군부는 의회를 폐쇄하고 모든 정당을 금지했다. 피의 보복이 뒤따랐다. 쿠데타 과정에서 아옌데 대통령이 사살된 것은 물론, 이날 이후 단 일주일 만에 3만 명의 노동자들이 죽임을 당했다. 거대한 사회적 격변의 시기에 구 지배계급과 타협하려는 시도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낳을 뿐이라는 사실이 또 한 번 비극적으로 입증되었다.

사실 쿠데타는 결코 아옌데 민중연합정부를 겨냥했다고 말할 수 없다. 이 정도의 소심한 정부라면 유럽에서 볼 수 있듯이 ‘개량주의 노동당이나 사회민주당의 집권’처럼 충분히 그냥 허용할 수 있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아옌데정부로서는 노동해방의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도처에서 자본가들과 충돌하면서 스스로 생산수단과 현장통제권을 확보해나가고 있었던 거대한 노동자투쟁의 흐름을 저지할 수 없다는 점이 바로 핵심적 문제였다. 이 흐름을 박살내서 자본주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아옌데정부가 아니라 총과 감옥으로 무장한 피노체트 군사자본가정부가 절실히 필요했다. 쿠데타는 모네다궁의 아옌데정부가 아니라 이 궁 바깥의 노동현장에 포진한 혁명적 노동자들을 정확히 겨냥했다. 쿠데타세력이 학살하고 진압했던 것은 바로 이 노동자들의 조직이었던 반면, 확대하고 보존했던 것은 모네다궁의 자본주의 정부 질서였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 운명공동체로서의 자각


칠레의 경험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몇 명을 노동자정당에서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정치노선으로는 새로운 사회 건설이 불가능함을 보여주었다. 대통령직 획득, 소위 선거를 통한 집권은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과업의 끝이 아니라 단지 아주 자그마한 시작일 뿐이라는 점, 노동해방 사회는 불평등과 착취를 완전히 없애는 경제적 변화와 연결될 때 가능하다는 점,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투쟁기구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유형의 정부를 창조하지 않고 기존 자본가정부의 구조를 유지한 채 노동해방을 꿈꾸는 것은 노동자계급에게 독약과 같다는 점이 다시 한 번 여실히 증명되었다.

자본가들은 자신의 부와 권력을 위협하는 노동자들을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 선거를 통해 정부를 노동자에게 빼앗겼던 칠레자본가들은 자신들이 사용할 무기 중 단지 하나만을 빼앗긴 것뿐이었다. 자본가들은 의회의 권력으로 노동자들의 공장점거를 불법화할 법률을 통과시킬 수 있었고, 공장, 기계, 버스, 트럭 등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을 발동하여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었으며, 여전히 그들이 장악하고 있던 군대와 경찰의 물리력으로 노동자투쟁을 파괴하고 민중연합정부를 전복할 수 있었다.

역으로 칠레의 패배는 진정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란 단결력, 투쟁력, 노동자 정치의식을 성장시켜 하나의 핏줄로 연결된 운명공동체로서 세력화하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역사적 운동에 뛰어든 노동자들은 선거에서의 승리가 노동해방을 향한 출발점일 뿐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노동대중은 한걸음 더 나아가 공장과 토지점거를 통해 생산현장에서의 힘을 쟁취하려 했던 것이다. 또한 계급의식으로 각성된 노동자들은 자본가 쿠데타로부터 자신의 정부를 방어하기 위해 목숨을 걸겠다며 ‘무장할 것’을 주장했다. 노동자들의 단결된 조직력과 역동적인 투쟁은 민중연합정부의 형식적인 권력보다 훨씬 강한 힘이었다.

민중연합정부의 패배는 이와 같은 노동자 정치의식을 더 높이 성장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투쟁력을 약화시키는 그릇된 정책 때문이었다. 그 배경에는 기존 자본가들의 권리와 질서를 결정적으로 침해하지 않고서도 불평등과 착취를 없앤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공상적인 관념이 있었다. 민중연합정부는 이 공상적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 자본가들의 협력을 필요로 했고, 공장과 기계를 돌려달라는 자본가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노동대중의 힘을 기반으로 건설된 민중연합정부는 역설적으로 노동자들의 힘을 약화시키고 자본가들의 입지를 확대하는 타협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려 한 것이다.

지난 역사가 보여주듯이, 그 결과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4월 총선


2004년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4월 총선은 민주노동당이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첫 번째 선거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획기적인 돌풍을 일으키지는 못하더라도, 기존 정당에 환멸을 느껴 탈정치화하고 있는 노동대중이 자본가정당들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하는 출발점 역할을 일정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칠레의 패배를 주의 깊게 검토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듯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노동자들이 독립적인 정치세력으로 결속하는 것은 현장의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전체 계급의 일부로서 자신을 간주하며 단결하고 투쟁하려는 의식을 가질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노동자정치세력화의 힘은 의회 내로 갇히는 것이 아니라 노동현장에 바탕을 둔 단결과 투쟁력을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곧게 뻗어나가야 비로소 참된 의의를 다할 수 있다.

현재 한국노동운동의 상황에서 “선거의 한계는 분명하기 때문에 보이콧해야 한다.”거나 반대로 “당선을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것 모두가 어리석은 주장이다. 문제의 핵심은 계급적 정치의식을 대중 속에 불어넣고 현장 노동자들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확대하는 데 선거라는 계기를 종속시키고 활용하는 데 있다. 칠레의 역사적 경험은 이러한 사실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다. 진정으로 새로운 세계의 건설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면, 우리는 칠레의 비극적 경험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경험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배운다면, 그럼으로써 선거와 의회를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알면서도 우리의 힘은 근본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직접적인 단결과 투쟁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명심한다면, 칠레의 교훈은 우리 운동의 전진을 위한 값진 거름이 될 것이 분명하고 또한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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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p>맑스주의와 테러리즘-존몰리뉴

맑스주의와 테러리즘
체제의 폭력이 테러리즘을 낳지만, 혁명가들은 사뭇 다른 투쟁 형태를 위해 싸운다



존 몰리뉴



우파들은 항상 지난 3월 11일 스페인 마드리드 테러 같은 사건들과 혁명을 연관시키려 해 왔다. 그러나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은 모두 그런 [투쟁] 방법에 항상 반대해 왔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폭력이 없는 사회, 지금 우리가 겪는 억압과 차별이 과거지사가 돼 버린 사회다. 그러나 맑스주의자들은 이 새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에서 폭력을 일절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폭력을 일절 거부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전쟁?핵무기?군대?감옥 따위를 지지하는 부르주아 정치인들은 순전한 위선자들이며, 맑스주의자들은 특정 상황 ― 민족 해방 전쟁이나 대중의 혁명적 투쟁 ― 에서 폭력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계급 투쟁과 무관하게 소수가 저지르는 관공서나 민간시설 폭파, 항공기 납치, 암살 등의 테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상 생각했다. 그 이유는 테러가 맑스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맑스는 착취?억압?폭정?전쟁의 근본 원인이 사악한 지배자 개인이나 악독한 정부가 아니라 사회가 계급으로 분열돼 있으며 다수의 노동 덕에 먹고사는 소수 계급이 생산수단을 지배하기 때문임을 보여 주었다.
지배계급 타도와 그들이 의존하는 경제 체제 타도는 수많은 개인들을 살해하거나 협박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새로운 경제 체제의 주역인 새 계급의 투쟁으로만 가능하다.
이를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적용해 보면, 자본가 계급을 패배시킬 수 있는 힘은 오직 노동계급 대중의 조직된 투쟁뿐이라는 것이다. 맑스의 말을 빌자면,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을 이렇게 강조하는 것은 자본주의 타도뿐 아니라 그 목표, 즉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위로부터의 혁명, 심지어 노동계급을 대리해서 행동한다고 자처하는 세력들이 추진하는 위로부터의 혁명조차도 한 무리의 착취자들?억압자들을 다른 착취자들?억압자들로 교체하는 결과만을 낳을 뿐이다.(그 혁명가들의 의도가 아무리 좋을지라도 말이다.) 이 점은 역사에서 거듭거듭 입증됐지만, 특히 동유럽?중국 등지에서 스탈린주의 군대의 정권 장악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런 곳에서는 사유 자본주의를 국가 자본주의가 대체했을 뿐이다.
사회주의자들의 투쟁 방법―리플릿 배포, 서명 운동, 노조와 정당을 통한 대중 시위, 선거 운동과 대중 파업―은 모두 노동자들의 의식?자신감?조직하기를 발전시켜 그들 자신의 행동을 진전시키기 위한 조처들이다.
테러 방법은 이런 전반적 전망과 모순된다. 마드리드에서 그랬듯이, 흔히 테러리스트들은 지배자들이나 억압자들이 아니라 평범한 노동 대중을 공격하는 등 완전히 잘못된 표적을 겨냥한다. 이것은 특정 민족이나 인종 집단 지배자들의 행위를 그 집단 전체의 책임으로 돌리는 ?잘못? ― 더 나아가 ?범죄? ― 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잘못은 우파가 흔히 범하는 것이기도 하다.
흔히 이것은 좌파가 극복해야 할 과제인 인종적?민족적?종교적 분열을 강화시켜 노동계급의 투쟁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심지어 더 신중하게 표적을 선정한 경우, 예컨대 폭군 개인이라든가 억압 국가의 고위 관리 등을 공격할 경우에도 의도치 않게 무고한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 잘못을 저지를 위험 부담은 여전히 남게 되고, 그 정치적 결과는 다르지 않다.
테러리즘의 공통된 결과 또 하나는 테러로 무너뜨리려 하는 바로 그 국가의 억압 기구를 강화하고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테러] 공격을 받은 정권은 오히려 시민적 자유에 대한 공격, ?용의자들?에 대한 무차별 검거 선풍으로 대응한다. 물론 항상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스페인의 최근 사건―스페인 국민의 훌륭한 대응 때문이다―은 놀라운 예외다. 그러나 그럴[억압 기구의 강화] 가능성이 훨씬 높다.



납치와 살인



마찬가지로, 테러 행위는 완전히 경멸받던 정치인이나 기업인을 모종의 순교자나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어 주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1978년에 붉은여단이 전 이탈리아 총리 알도 모로를 납치?살해했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러나 최선의 경우에조차 ― 테러의 표적이 누구나 인정하는 폭군이고 무고한 사상자 한 명 없이 완벽하게 그를 처형했을 때조차 ― 테러 활동은 맑스주의적 원칙에 어긋난다. 레온 트로츠키가 말했듯이, ?목적 달성을 위해 권총 무장만으로도 충분하다면 도대체 왜 계급 투쟁을 위해 노력하겠는가?…엄청난 폭발로 고위 인사들을 위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면 도대체 왜 당이 필요하겠는가? 집회, 대중 선동, 선거가 왜 필요하겠는가?…
?우리가 개인 테러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그런 테러가 의식 고양에서 대중이 하는 역할을 하찮게 만들고 대중 스스로 무기력함에 체념하게 만들고 대중으로 하여금 언젠가 위대한 복수자나 해방자가 나타나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트로츠키를 인용하는 것이 적절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트로츠키는 테러리즘과 관련해서 맑스주의의 주장을 탁월하게 요약한 일련의 글을 쓴 바 있고, 이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 지금도 구할 수 있는 팸플릿 ≪맑스주의와 테러리즘≫이다. 둘째, 그 글들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러시아 테러리즘이라는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로드니키, 즉 민중주의자들, 그 가운데 특히 나로드나야 볼랴(민중의 의지)라는 조직이 수행한 테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테러 활동 가운데 하나였고 아마도 체계적인 정치 전략으로 명확하게 정식화된 최초의 경우였을 것이다. 나로드니키는 심각하게 억압받던 러시아 농민에 기대를 건 지식인들이었고, 그들의 목표는 짜르와 그 각료들에 대한 체계적 공격으로 짜르 체제를 타도하는 것이었다. 게오르기 플레하노프가 지도한 러시아 맑스주의 운동은 민중주의에 반대하며 등장했고, 따라서 테러리즘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으며 그 과정에서 맑스주의의 입장이 분명하게 정립됐다.



테러 위협



러시아 맑스주의자들은 테러리즘에 대한 태도와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태도를 구분했다. 테러리즘은 비타협적으로 거부했지만 테러리스트들에 대해서는 늘 공감을 표시하며 그들의 개인적 용기를 항상 칭송했다.
지배계급 정치인들과 그들의 언론은 테러리스트들을 ?겁쟁이?, ?악마?, ?비인간적?이라고 끊임없이 비난한다. 러시아 맑스주의자들은 그런 생각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테러 위협?을 핑계로 짜르 체제에 대한 자신들의 비판을 누그러뜨리려 하지도 않았으며, 테러리스트들에 반대해 짜르 체제 편에 서지도 않았다. 그들이 테러리즘을 비판한 요지는 진정한 혁명 투쟁과 비교했을 때 테러리즘은 비효과적이며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물론 역사는 그들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결국 짜르 체제와 러시아 부르주아지 둘 다 무너뜨린 것은 폭탄 테러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대중 행동이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정식화된, 테러리즘에 대한 맑스주의의 태도는 시간의 검증을 견뎌 냈고, 몇 십 년 동안 하나의 행동 지침이 돼 주었다. 그러나 지난 몇 십 년 사이에 다양하고 강력한 테러 활동들이 벌어졌고, 이를 보면 몇 가지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먼저, 우익과 파시스트들의 테러리즘이 상당히 존재함이 분명하다. 북아일랜드의 오렌지[개신교 정치 단체] 준(準)군사조직, 이탈리아의 볼로냐 폭파 사건, 미국의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파 사건, 데이빗 코플런드[영국의 나찌]의 소호[런던 중앙부 옥스퍼드 거리의 외국인이 경영하는 식당가] 폭파 사건, 컴뱃 18[영국의 나찌] 등이 그런 예다. 분명히 이런 것들은 좌파에게 어떤 이론적 문제도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 것들을 모두 반대하기 때문이다.
다른 형태의 테러리즘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주로 1970년대에 극좌파와 학생 반란에서 갈라져 나온 다양한 단체들로, 미국의 웨더맨, 영국의 앵그리 브리게이드, 독일의 바더-마인호프 그룹, 이탈리아의 붉은여단 등이다. 대체로 이런 단체들은 그들을 배출한 대중 운동이 쇠퇴하는 것에 절망하고 이에 조급하게 대응한 결과다. 부분적으로 붉은여단을 제외하면, 그들은 대중 기반도 없었고 지배계급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도 거의 없었다. 그들의 주요 효과는 좌파를 와해시키고 혼란에 빠뜨린 것이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과제가 그런 분위기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물리적 행동이 아니라 ― 다함께 편집자] 주장을 통해서, 그리고 대중 투쟁의 적극적 계기를 확보함으로써 그렇게 해야 한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피억압 민족을 대변하려 애쓰는 다양한 민족주의 테러 단체들, 즉 아일랜드 공화국군(IRA), 조국과 자유(ETA), 다양한 팔레스타인 단체들 등이 계속 존재한다는 점이다. 대체로 이런 조직들은 상당한, 그러나 주로 수동적인 사회적 기반을 확보하고 있고―비록 그 규모는 소수인 경우도 있고 상당히 다수인 경우도 있는 등 다양하지만 말이다―결정적으로 그들은 대체로 민족 부르주아지의 일부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근본적으로, 그들은 재래식 전쟁(또는 적어도 게릴라전)을 수행할 수 있기를 바라는 정치적 결사체들이지만, 압도적으로 우세한 억압 민족의 군사력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는 처지다. 그들의 계급 기반과 그들의 정치적 관점 때문에 그들은 노동계급을 대안으로 여기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은 테러리즘에 의존하게 된다.
팔레스타인 인티파다가 가장 잘 보여 주듯이, 때때로 테러 전술이 대중 저항과 거의 결합되고, 이것이 분명히 우리 비판의 언어와 논조에 영향을 미치거나 미쳐야 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좌파인 우리가 팔레스타인의 자살 폭탄 공격이나 이라크 저항 세력의 공격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맑스주의적 비판의 일반적 설득력은 여전히 남아 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의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에 대한 비타협적 반대라는 맥락 속에서 맑스주의자들이 계속 주장해야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제국주의의 패배와 자본주의 타도는 서로 연관된 과제들이며 이 과제들을 완수할 수 있는 세력은 국제 노동계급뿐이라는 것이다.



존 몰리뉴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당원이고, ≪마르크스주의와 당≫(북막스)과 ≪렘브란트와 혁명≫(책갈피)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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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혁명정당&quot;에 관한 연구노트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에서 펌>


“혁명정당”에 관한 연구노트


  현재 남한 노동해방주의자들은 “혁명정당 건설”이라는 사활적 과업에 직면하고 있다. 이 과업은 비록 한 두 해만에 해결될 수 없는 과업이자 부단히 새로워지는 그런 과업이지만, 우리는 이 과업을 달성하는 데서 의지해야 하는 “설계도면”을 확립해야 하며, 이 도면에 따라 일관되게 전진해야 한다. 혁명정당이라는 높고 정교한 건축물은 오두막 혹은 단층 건물과는 달리 잘 짜인 입체적 설계도면 없이는 결코 착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 당의 한 요소가 되기를 꿈꾼다면, 남한 노동해방주의 그룹은 자신의 모든 정치적, 조직적 활동을 즉홍적으로 펼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가 창조하고자 하는 당, 그리고 이 당이 대변하는 계급 -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 - 에 정확히 부합하는 방식으로 활동해야 하며, 우리의 실천 하나하나, 발걸음 하나하나를 이런 방식으로 제대로 요약하고 평가하며 혁신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실천과 발걸음을 향도하고 검증하는 ‘기준점’인 “혁명정당 건설의 설계도면”에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혁명정당이 어떤 식으로 기능하고 성장하며, 따라서 이것의 중핵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우리가 어떻게 활동하고 발전해야 하는지를 부단히 탐구해야 하며, 이를 실천에 적용해 검증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결과물을 재차 “설계도면”에 투영해 진실로 남한 노동해방주의 운동을 지도하고 안내할 수 있는 훌륭한 “설계도면”을 끊임없이 완성해야 한다. 우리는 더 멀리 보고 더 멀리 전진함에 따라, 그리고 우리의 실천활동의 실제적 경험이 쌓여감에 따라 설계도면을 부단히 보완할 것이며, 혁신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견지할 수 있으며 또한 반드시 견지해야 하는 노선과 방향은 분명히 있다. 이 글은 그것에 대한 “연구 노트”다.


1. 응집적, 중간적, 대중적 요소의 상호관계에 대하여

  정치학은 지도자와 피지도자가 존재한다는 분명한 사실에 기초한다. 지도자와 피지도자로 이렇게 분할되는 것은 서로 대립하는 계급 사이에서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분할’, 즉 지배 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의 분할이라는 적대적 형태를 취한다. 이 경우, 정치학의 핵심은 “어떻게 현재의 지배계급을 타도하고 스스로를 지배계급으로 성장시킬 것이며, 어떻게 적대 계급을 종속시키고 복종시킬 것인가”에 있다. 그것은 너무나 자명하기에 재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동일한 한 집단 내부에서도 지도자와 피지도자로 분할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지금 다루는 문제는 바로 이 영역에서 “어떻게 정치를 적용할 것인가”에 있다. 여기서는 분할은 적대적이어서는 안되며, 상호융합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는 집단 안에서 발생하는 분할은 궁극적으로는 “노동의 분할”(분업)에 그 기초가 있는데, 이 기초는 전면적으로 발전한 인간들이 세포를 이루는, 완성된 노동해방 공동체가 탄생하기 이전에는 항상 일정한 정도로는 불가피하게 존재한다. 이처럼 지도자와 피지도자가 존재하는 이상, 정당은 지금까지 발견된, 지도자와 지도력을 발전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따라서 어떤 정당이건, 혹은 정당을 지향하는 어떤 정치세력이건, 지도자의 임무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목적에 부응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지도할 수 있는가, 그리고 피지도자들의 동의를 확보하고, 그들의 능동성, 창조성, 자발적 결의를 끌어내고자 할 때 의지해야 할 노선과 수단은 무엇인가를 정확히 하는 데에 있다.
  혁명조직에서도 (노동해방 혁명을 완수하기 이전에는) 지도자와 피지도자 사이의 분할은 불가피하다. 이런 분화를 인정하는 것이 엘리트주의인가? 그렇지 않다. 문제는 지도자와 피지도자 사이의 분할을 영구화하고 확대하려 하는가, 아니면 이러한 분할을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존재하는 객관적 조건들로부터 발생하는 불가피한 것으로(일종의 필요악처럼) 간주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제 행동을 전개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노동해방주의 혁명조직은 이 분할을 승인하되, “그것을 극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엄격한 전제 하에서 승인한다. 다시 말해 혁명조직이 지도자와 피지도자 사이의 분할을 승인하는 것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이지 그것을 확대하고 영구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혁명조직은 지도자와 피지도자 사이의 분할(상급 지도기관과 하급 기관으로의 분할)에서 “정확한 기준과 원칙, 한계”를 설정하여 엄격하게 준수해야 한다. 오히려 가장 큰 오류가 발생하고 가장 치명적이고 교정하기 힘든 결함이 드러나는 영역이 바로 이 영역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며, 그것도 이 목적에 대한 강렬한 지향을 갖는 집단에서는 통상적으로 복종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무조건적이라는 생각이 일반화되기 쉽다. 이 경우, 모든 실천과 행동에서 위로부터의 명령에 무조건 따르는 것, 혹은 어떤 체계적인 설명과 납득 없이도 위로부터 지시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점차 극복되어야 할 “역사적 필요악”인 지도자와 피지도자 사이의 분할을 확대하고 이를 영구화하는 것으로서 노동계급 혁명조직의 원칙과 양립할 수 없다. 혁명조직은 이 분할에 기초하여 출발하지만 이 분할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혁명조직은 “모순과 긴장 관계” 속에서 작동하며, 이는 “민주주의와 중앙집중주의 사이의 관계”에서 그리고 “응집적, 중간적, 대중적 요소 사이의 상호관계”에서 표현된다.  
  
대중적 요소

  하나의 정치세력이 정당으로 상승하는 것이 역사적인 필연이 되고, 그래서 그 정치세력의 승리와 전진을 예측할 수 있게 되는 시기는 언제인가? 그 시기는 응집적, 중간적, 대중적 요소가 모두 충분하게 존재하고, 상호간에 적절한 비례관계가 형성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만 이 정치세력은 중단없이 전진할 수 있으며, 혁명을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힘 있는 행동과 실천을 조직할 수 있다.
  대중적 요소의 특징은 규율성과 대의에 대한 충성이다. 이들은 조직에서 다수를 이루는데, 노동대중의 직접적 일부로서 가장 앞선 부분이다. 만일 이 대중적 요소가 충분하게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어떤 정치세력이건 단지 정당의 맹아에 불과할 뿐 실제의 정당이 될 수 없다. 이 경우 이 정치세력은 자신이 기반하고자 하는 계급의 힘을 동원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의 ‘이론적 조류’로서만 존재할 수 있을 뿐 ‘물질적’ 힘을 가진 위력적인 실체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이 대중적 요소 없이는 정당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은 이들을 조직하고 집중시키며, 훈련시키는 응집적 세력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세력이 될 수 있다. 이들에게 규율성을 부여하고 대의에 대한 무한한 “자발적 충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응집적 힘들이 없다면 이들은 자신의 힘을 동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없다면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모래알처럼 무규율한 분산적 대오로 떨어지며, 대의에 대한 확신과 전망을 잃고 동요하고 사기저하에 빠지며 행동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이들이 보유한 규율성과 대의에 대한 헌신성을 제대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정당의 정신”을 확립해야 한다. 정당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세력은 과거의 위대한 전통과, 그리고 원대한 미래와 연속성이라는 굳건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생한 자각을 대중적 요소들에게 반드시 제공해야 한다. 다시 말해 혁명적 전통을 계승하고 위대한 미래를 열어젖히는 행동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을 통해 “현재” 이미 시작되었으며, 또한 그것은 앞으로도 반드시 계속될 것이라는 확신을 부여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조직에서 하나의 역할을 맡고 있다는 책임감, 아직 외형적으로는 크지 않지만 적극적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으며 열어젖힐 수 있다고 느끼는 세력과 연대하고 있으며 그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는 책임감, 이러한 책임감이야말로 “정당의 정신”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인데, 이 정신을 창출하지 않는다면 대중적 요소들이 가진 가능성과 잠재력은 절대 현실적 힘으로 끌어올려질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자각들은 구체적이어야 하며, 추상적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혁명조직의 실천과 조직적 행동 하나하나를 통해 “선언”하고, “확인”해야 한다. 그럴 때에만 대중적 요소들은 끊임없이 자극받고, 규율성과 대의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할 수 있다. 반면에 혁명조직이 그것을 부여하지 못한다면, 불가피하게 대중적 요소들은 규율성과 충성심을 잃고 개별화된다. 그들은 엄격한 규율에 의지하고, 조직과 함께 행동하기보다는 일시적인 기분에 휩쓸려 자족적이고 충동적인 행위에 의지하게 된다. 마치 동물원에 갇힌 야수들의 행동과도 같은 야만적인 개인주의 요소가 대중적 요소들 사이에 퍼지며, 이는 곧 조직을 고갈시킨다.
  따라서 과거의 혁명적 전통을 계승하고 미래를 능동적으로 개척하는 “정당의 정신”을 세워냄으로써, 그것도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교화나 자임에 의해서가 아니라 조직의 하나하나의 실천과 행동을 통해서 세워냄으로써 대중적 요소들의 “규율성”과 “대의에 대한 헌신성”을 수호하고 이들을 하나의 강력한 세력으로 육성해나가는 “응집적 요소” 및 “응집적 요소를 대중적 요소와 연결시키는 중간적 요소”가 없다면 “대중적 요소”를 하나의 힘으로 조직할 수 없으며, 모여 있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무기력해진다. 물론 조직의 이 대중적인 인자들은 누구나 응집적이고 중간적인 힘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은 단번에, 그리고 한꺼번에 그렇게 도약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그들은 오로지 그들을 그렇게 육성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을 때에만 “점차” 도약할 수 있다. 따라서 “정당의 맹아”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응집적 요소”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

응집적 요소

  응집적 요소는 혁신의 능력, 창조성, 불완전한 것들을 종합할 수 있는 능력, 총체성, 다면성, 불굴의 혁명성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들은 그 자체로는 별것 아니거나 아무것도 아닐 대중적 요소들을 단일한 방향으로 집중시켜 효율적이고도 강력하게 만든다. 응집적 요소들은 대단히 목적의식적이고 효율적이며 규율잡힌 힘을 지니고 있다. 이들이 보유한 이 힘은 ‘누군가 자신들에게 부여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내부에서 샘솟는 힘’이기에 아직 “정당의 정신”이 생겨나기 이전에도 이들은 그것을 먼저 체화하고 있다. 바로 그렇기에 이들은 “자신의 정신”을 조직 전체로 확산시킬 수 있으며, 그것을 “정당의 정신”으로 우뚝 세워내 대중적 요소들을 동화시키고 그들에게 규율성과 확신을 부여할 수 있다. 그런데 일종의 “당의 본원적 자본”으로 기능하는 이들이 탄생하는 것 자체가 운동의 일정한 발전단계를 전제로 한다. 응집적 요소가 창조되기 위한 전제조건은 현 체제에서 발생하는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특정한 혁명적 해결책’이 존재하며, 이 해결책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문제들을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굳건한 확신이다. 이러한 확신 없이는 응집적 요소가 형성될 수 없다. 이 경우, 응집적 요소를 자처하는 지도자들 자신이 오래가지 않아 스스로 붕괴하며, 대중적 요소들은 순식간에 구심을 잃고 뿔뿔이 흩어진다. 그런데 이 “혁명적 해결책”이 대두되는 것 자체가 기존 사회의 모순이 첨예화되고, 미래 사회의 싹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객관적 발전단계에 의존하며, 또한 실천을 통한 검증이 축적됨으로써 나타나는 역사적 발전단계를 요구한다. 따라서 응집적 요소가 생겨나는 것 자체가 “혁명정당이 창출되기 위한 조건이 무르익기 시작했음”을 웅변하는 것이다.
  응집적 요소들은, 낡은 기존 사회를 반드시 혁명적으로 쇄신해야 한다는 확신, 그리고 그것을 위한 수단들은 이미 마련되었다는 확신으로부터 “목적의식성과 혁명적 규율성”을 발전시킨다. 현존 체제에 대한 완벽한 거부와 미래 사회에 대한 명확한 확신으로 무장한 이들은 생생한 의무감과 무한한 헌신성을 자신의 내부로부터 끌어낸다. 이들은 불굴의 혁명성과 낙관으로 무장하고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혁명적 조직을 건설하는 데로 나아간다. 이들은 “조직의 정신”을 규정하며, 이 정신 아래 대중적 요소들을 모집한다. 만일 이들의 정신이 투철한 것이라면, 이 정신의 빛은 더 많은 대중적 요소들을 고무시키고 통합시킬 수 있다. 대중적 요소들은 이들이 제시하는 혁명적 해결책으로부터 확신을 끌어내고, 이들이 발산하는 혁명적 의지에 고무되어 자발적 규율성을 확립함으로써 이들을 중심으로 “응집”한다. 또한 응집적 요소들은 자신의 혁명적 해결책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단일한 노선과 전망에 입각해 단일한 방향으로 자신의 대오를 혁신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이 혁신의 능력은 혁명조직이 변화하는 정세와 상황에 자신을 능동적으로 적응시키면서, 그것에 부단히 자신의 각인을 찍도록 보장하며, 아울러 불필요한 희생이나 역량의 낭비를 제거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조직이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함으로써 규율이 이완되고 사기저하가 퍼지는 것을 차단한다.  
  이런 식으로 기능하는 “응집적 요소”는 적은 숫자일지라도 하나의 혁명적 조직이 자신을 유지하고 성장하는 데 필수적인 “지도력”을 제공한다. 이 응집적 요소에 대한 판단 기준(자질)에는 다음의 것들이 있다. 첫째, 응집적 요소는 조직을 운영하는 데서 대중적 요소들이 확신에 차서 자발적으로 규율을 따르고, 헌신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활동의 전망을 제공하고, 과거로부터 미래로 이어지는 연속성 속에서 현재를 조망해줌으로써 현재 수행하는 실천들에 역사적 의의를 부여하며,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운동가들이 자신의 실천이 조직활동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분명히 의식하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와 관련, 응집적 요소의 시야는 반드시 원대해야 한다. 조직의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을 보면, 조직이 어떤 조직이며, 또한 어떤 조직을 지향하는가를 가늠해볼 수 있다. 절대로 정당으로 발돋움할 수 없는 분파주의자들은 내부적인 사소한 사건을 놓고도 광적으로 흥분하고 지엽적인 문제에 지대한 가치를 부여하는데, 그것은 그 사건이 그에게는 어떤 비장한 의미가 있는 것이어서 그로 하여금 열광주의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직의 경우, 그들이 말하는 “계급적 전위조직”은 공문구이며 실제로는 ‘자신들의 협소한 경계 내부’에서 발생하는 이러저러한 사소한 문제들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분파주의에 감염되어 있다. 이 경우, 응집적 요소가 노동자계급의 대지 위에서 호흡하지 못하고,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혁명운동의 역사적 맥박과 분리되어 있으며, 전국적이고 세계적인 원대한 시야에서 운동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협소한 내부 문제(이것은 시시콜콜한 갈등들이나 순전히 아카데믹한 이론논쟁들로 나타난다)에 관심사가 집중되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 하나의 정당으로 성장할 수 있는 맹아로 혁명조직을 육성하려 한다면, 응집적 요소는 발생하는 주요한 모든 사안에 대해 그것이 전체 운동 속에서 점하는 적절한 비중에 맞게 정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이것을 둘러싼 관심과 논쟁을 적절하게 끌어내며, (당분간 실제 미치는 영향력이 크건 적건) 주요한 사건들에 대해 정확한 입장을 수립하고 최대한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으로 조직의 진정한 효율성, 그 능동적인 힘을 강조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응집적 요소는 가장 책임성 있는 “조직적 화신”이어야 한다. 가장 치명적인 재난은 지도자들이 불필요한 희생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데서, 그리고 조직원의 희생을 고려하지 않고 그들의 생명으로 도박을 한 데서 비롯된다. 그런데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에서 승객들의 생명을 책임지고 배의 키를 잡을 수 있는 선장은 반드시 다음의 덕목을 가져야 한다; “배가 난파당해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에는 선장은 ‘반드시’ 그 명단에 포함되어야 하며, 구조시에도 ‘가장 늦게’ 구명보트에 오르는 사람은 선장이어야 한다” 이 덕목은 희생을 요구하는 모든 행동에 적용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누구도 희생하려 하지 않으며, 그 누구도 규율을 준수하지 않게 된다. 오로지 선장이 끝까지 배를 사수하려 하며, 승객들의 목숨을 책임지려 할 때, 그리고 가장 어려운 일을 기꺼이 담당하려 할 때에만 승무원과 승객들은 모든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려 하며 선장의 명령을 따라 규율을 지킬 것이다. 반대로 선장이 가장 먼저 구명보트에 오르려 하는 상황이라면, 모두가 배를 포기할 것이며 아비규환의 무질서 상태가 조장될 것이다. 이 경우 조직에서는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먼저 도망가려 눈치보는 “패잔병의 분위기”가 자라난다. 따라서 재난이 발생한 다음에는 가장 먼저 지도자들의 책임을 엄격하게 추궁해야 하며, 지도자들이 스스로 기꺼이 그것을 선도해야 한다. 이런 책임성 있고, 자기희생적인 분자만이 응집적 요소가 될 수 있으며, 그럴 때에만 조직은 혁명조직다운 규율과 헌신성을 확립할 수 있다. 어떤 시기이건 가장 어려운 곳에 제일 먼저 달려가고, 가장 힘든 일을 제일 먼저 자청하며, 가장 거대한 희생을 제일 먼저 치를 것이 의심의 여지 없이 분명한 분자가 지도적 역할을 담당할 때만, 모든 조직원들 사이에서 자신에게 부여되는 임무를 결코 회피하지 않으며 어떠한 난관도 희생도 기꺼이 감수하려는 용감한 기풍이, 그리고 자발적으로 규율을 엄격하게 집행하는 풍토가 자라날 수 있다.  
  셋째, 응집적 요소는 조직의 “전통”을 수립하고, 이것을 통해 끊임없이 현재를 과거와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것만이 뿌리깊은 나무처럼, 과거로부터 힘과 전통, 경험을 빨아들이면서 현재를 밀어가도록 보장할 수 있다. 여기서 전통이란 적극적 의미의 전통, 즉 “끊임없는 발전 속에서의 연속성”을 뜻한다. 이 연속성은 응집적 요소로 조직 내에 체현되어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 응집적 요소는 연속성을,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조직적 활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을 추동하는 과정에서 발휘되는 현실적인 방식으로 구현해야 한다. 또한 응집적 요소는 자신이 파괴될 경우를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어떠한 경우에도 응집적 요소들을 재창출할 수 있는 맹아를 조직적으로 준비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유기적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잘 정리되어 있는 “역사적 문서고”를 마련해야 하며, 그것을 통해 조직의 모든 과거를 재조명하고 비판적으로 정당화해야 한다. 그리고 실천 활동의 중요한 국면에서 항상 해설적이고 이성에 호소하는 안내문을 제공하여, 조직원들이 자신의 실천을 역사적 견지에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단련하도록 도와야 한다. 마지막으로 응집적 요소들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여 “차기 지도부”를 적절하게 마련해 두어야 한다.
  넷째, 중앙기구(응집적 요소)의 연속성이 초래하는 위험은 연속성의 단절로부터 비롯되는 즉홍성과 능력의 결핍이 낳는 위험에 비한다면 작은 것이다. 따라서 중앙기구의 인적 연속성은 필요하며, 문제는 그것이 관료화될 위험성을 적절히 차단하는 데 있다. 그것을 위해서는 응집적 요소는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주의깊게 행사해야 하며, 조직원들의 능력을 부단히 계발하고 그들이 지속적으로 자신의 수준으로 상승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이는 혁명정당의 원리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혁명정당은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만드는 것, 즉 자신을 역사적으로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혁명정당은 (계급 폐지에 이르는 오랜 기간의 실천을 통해 계급을 전위의 수준으로 상승시킴으로써) “계급의 한 부분이되 계급 전체와는 구별되는 전위”인 자신이 불필요해질 때에만 비로소 완전하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 점은 혁명조직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 하나의 혁명조직이 완벽하고도 충분하게 성숙해 나가는 것은 내부에서 지도자와 피지도자 사이의 간극이 좁아지고, 조직의 대중적 요소들이 부단히 지도적 요소의 수준으로 격상되어 나가는 유기적 발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응집적 요소의 가장 중요한 자질 중의 하나는 피지도자들과 자신 사이의 간극을 부단히 “좁혀나가는 방식”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효율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응집적 요소가 이런 식으로 제대로 기능할 때에는 조직은 “민주적”으로 작동한다. 왜냐하면 민주적 수단을 통해서도 지도자들은 조직원들의 지지를 충분히 끌어낼 수 있으며, 또한 바로 이런 식의 지지만이 가장 가치 있고 가장 강력한 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응집적 요소가 그런 힘을 잃으면 조직은 “관료적”으로 작동한다. 왜냐하면 조직원들이 지도자들의 견해를 이해하고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경우, 다시 말해 지도자들과 조직원들 사이의 간극이 지나치게 벌어질 경우, 지도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관료적” 방식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중간적 요소

  마지막으로는 중간적 요소가 있다. 이 요소는 응집적 요소와 대중적 요소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기능을 담당한다. 응집적 요소와 달리 이들은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능력을 대표하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이들은 대중적 요소와는 달리, ‘비판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지도자와 대중적 요소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 대중적 선전, 선동, 조직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응집적 요소가 창출한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힘을 대중적 요소의 규율과 헌신, 확신으로까지 확장시키는 중간고리의 역할을 담당한다. 동시에 그들은 대중적 요소로부터 빨아들인 상황에 대한 감각을 바탕으로 응집적 요소가 관료화되고 상황에 뒤처지지 않도록 비판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이들은 응집적 요소와 대중적 요소를 매개하는 ‘허리’인데, 이들은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아래에서 위로 이어지는 쌍방향의 피드백 구조를 지탱한다. 다시 말해, 이들은 뇌수와 신체를 연결시키는 혈관이자 신경으로서 기능하는데, 한편으로는 뇌수의 명령을 신체의 각 부위로 전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신체의 각 부위가 빨아들인 자양분과 정보를 뇌수로 전달한다. 그리하여 신체를 유기적으로 작동시킴과 동시에 뇌수가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조직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하고, 관료적인 방식의 불건전한 집중주의가 나타나며, 지도적 기구에서 상황에 대한 판단을 그르치는 것은 많은 경우 이 중간적 요소의 “책임감과 능력의 결핍” 때문이라는 사실, 다시 말해 이들의 “정치적 미성숙” 때문이라는 사실은 강조되어야 한다. 따라서 중간적 요소를 창조하고 단련시키는 것은 조직의 위와 아래 모두를 강화하는 데 필수적이다. 만일 중간적 요소들을 제대로 육성하지 못한다면 조직은 몸과 머리가 따로 놀 듯이 분절화되고 파편화된다.
  다음으로 중간적 요소들은 다면적이고 총체적인 능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이들은 대개 한두 가지의 전문적인 분야에서만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다. 분업에 따른 전문성은 중간적 요소의 특징이자, 이들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토대이다. 조직적 분업체계를 통해 중간적 요소들의 전문성을 통일집중하여 완성된 것을 창조하는 작업은 다방면에서 균형있게 발전해 있으며,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응집적 요소의 역할이지만, 혁명조직의 총체성을 구성하는 각각의 부분들을 실제로 집행하고, 이 집행에 대중적 요소들을 동원하는 역할은 중간적 요소들이 수행한다. 따라서 만일 이 중간적 요소들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아무리 잘 짜인 총체적 계획일지라도 그것은 제대로 집행될 수 없다. 응집적 요소는 중간적 요소들을 각각의 자질에 걸맞게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경우에만 중간적 요소들이 특별한 능력들을 제대로 발휘하게 만들 수 있으며, 역으로 이들이 부족한 면 때문에 심각한 오류를 범하는 것을 적절히 차단할 수 있다.
  또한 중간적 요소는 응집적 요소의 지도를 대중적 요소가 자발적이고 의식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방침을 해설하고 이것의 실천적 의의를 설명하며 그것을 대중적 규율로 전화시키는 연결벨트이다. 만일 이 연결벨트가 부실하다면, 응집적 요소의 지도는 조직의 저변으로 스며들지 못하며, 지도자들과 기저 사이에 거대한 심연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응집적 요소와 대중적 요소 사이에는 항상 일정한 정도로는 간극(이는 시야와 경험, 능력 등의 요소에서 비롯된다)이 존재하는데, 이 간극을 메우는 정규적이고 지속적인 작업은 중간적 요소들이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간적 요소들이 게으르거나 무능력하게 되면, 대중적 요소들은 응집적 요소들의 판단들을 따라가지 못하며, 불가피하게 “정치적 수동성”이 조장된다. 뿐만 아니라 이런 정치적 간극이 확대되게 되면, 지도자와 피지도자 사이의 분할이 확대된다. 이것이 확대되는 것과 나란히 지도자들 사이에서 엘리트주의와 관료주의가 성장하며, 이들은 (자신이 확실히 옳다고 판단하며, 많은 경우 실제 옳기도 한) 결정들이 정치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다수의 대중적 요소들에 의해 기각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여러 음모들과 기술들에 의지하게 된다. 역으로, 지도자들과의 확대되는 간극을 느끼되 무기력한 상황에 놓여 있는 대중적 요소들은 ‘지도자들의 결정을 무조건적으로 인정하고 뒤따르는’ 수동주의를 발전시키게 되며, 그 결과 그들은 응집적이고 중간적인 요소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뒤로 “후퇴”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혁명조직은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며, 머리와 신체는 서로 대립하고 겉돌게 되면서 질병들이 자라난다.  
  이런 질병들이 자라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중간적 요소들이 제대로 기능해야 한다. 자신에게 부여된 객관적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중간적 요소는 창조적이고 총체적인 방식으로 결정들을 내릴 수는 없더라도 각각의 결정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대중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 그리하여 대중적 요소들과 응집적 요소들을 연결시키고 양자 사이의 간극을 부단히 좁혀나가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 능력은 (비록 응집적 요소의 능력 수준에는 아직 도달하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이론적, 조직적 능력 모두로 구성된다. 중간적 요소로 기능할 수 있을 만큼의 이런 능력을 확보하고 있을 때에만 그들은 “조직의 신경이자 혈관, 그리고 비판자”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응집적 요소와 대중적 요소를 중간에서 제대로 매개하고 양자를 연결시킬 수 있기 위해서는, 중간적 요소들은 한편으로는 “응집적 요소와 교통”할 수 있는 능력을,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적 요소들과 호흡”할 수 있는 능력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전자는 최소한 응집적 요소들의 판단과 사고, 시야들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는 발전되어 있을 것을 그들에게 요청한다. 후자는 대중적 요소들로부터 운동에 대한 생생한 감각과 열망들을 빨아들일 수 있는 힘을 확보할 것을 그들에게 요청한다. 양자 모두가 상당한 수준의 이론적, 조직적, 실천적 능력과 경험을 요구함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능력을 갖춘 중간적 요소들을 배양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에 있다. 그것은 “응집적 요소”로부터 나온다. 응집적 요소는 중간적 요소를 매개로 부단히 대중적 요소들과 교통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중간적 요소들의 성장을 도와야 한다. 중간적 요소들은 응집적 요소들과 접촉하면서 그들의 시야와 능력, 혁명성, 결단력, 판단력, 이론적 감각 등을 빨아들이며, 이로부터 중간적 요소에게 필수적인 능력을 확보하며 나아가서는 응집적 요소로 도약할 수 있는 힘을 축적해 나간다. 동시에 이 과정은 그들이 대중적 요소들을 지도할 수 있는 힘을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응집적 요소와 중간적 요소 사이의 (그것이 어떤 형태를 취하건) 정규적이고 지속적이며 안정적인 교통을 보장하는 것은 중간적 요소들을 배양하는 데서 필수적인 조건이다. 또한 중간적 요소들을 양성하는 독자적인 수단들을 마련하는 것에 주의를 게을리해서는 한다. 조직을 숫적으로 다수인 대중적 요소들의 수준에 맞추어 일면적으로 운영하게 되면, 결코 중간적 요소들이 육성될 수 없다. 왜냐하면 대중적 요소들이 훈련되는 데 필요한 것들과 중간적 요소들이 훈련되는 데 필요한 것들 사이에는 수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도자들은 중간적 요소들을 육성하기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을 따로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가령 조직의 대중적 요소들은 아직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고급 주제들을 기관지의 일부란에 특별히 할애하는 것, 그들을 위한 특별 훈련계획을 집행하는 것, 그들과의 교통시에는 논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 높은 수준의 발전된 선진노동자들과의 접촉 기회를 그들에게 특별히 제공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나아가서 중간적 요소들 중 응집적 요소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장 선진적 부분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도 준비해야 한다. 이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되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응집적 요소들과 아주 긴밀히 호흡하고 대화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그들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응집적 요소가 수행하던 기능 중 일부를 맡겨 시험하고 단련하면서, 이런 실제의 경험을 통해 그들을 부단히 응집적 요소로 격상시켜 나가는 것이다.
  어떤 방식을 취하건, 혁명조직은 이 조직 내의 다양한 층들(이들은 각각 상이한 발전단계를 반영한다)을 고려해야 하며, 획일화되지 않는 다면적이고 중층화된 방식으로 성원들을 단련시켜야 한다. 대중적 요소들은 부단히 중간적 요소로 끌어올려야 하고, 중간적 요소들은 부단히 응집적 요소로 성장시켜야만 하며, 응집적 요소는 더 높은 수준의 응집적 요소로 단련시켜야지 그 역으로 해서는 안된다. 조직원들은 항상 자신의 발전단계보다 아래에 있는 성원들과 호흡하고 그들을 지도하되, 그들의 눈은 위를 향해야 하며 보다 발전된 성원들로부터 자극받고 지도되면서 성장해야 한다. 그리하여 혁명조직은 응집적이고 중간적인 요소들을 부단히 두텁게 하고, 이 두터워진 힘에 기반해 대중적 요소들을 확대해야 한다. 그것만이 “위로부터의 사상”, 다시 말해 “가장 붉고 투철한 색깔로부터 시작해 이것이 조금도 희미해지지 않도록 보장하면서 양적으로 붉은 색깔을 확대하는 것”을 제대로 관철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계급의 선진적 부분이 되고자 하는 혁명조직이 진정 “선진적”으로 작동하는 길이다.  

세 가지 요소 사이의 적절한 비례관계

  혁명조직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들 사이에는 적합한 일정한 비율이 있으며, 그것이 확보될 때 그 조직의 힘은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된다. 가령, 군대는 각자 유형에 따라 고유한 비례 관계가 있다. 포병 부대냐 보병 부대냐에 따라, 전방 부대냐 후방 부대냐에 따라 사병과 하사관, 위관급, 영관급, 대장급 장교 사이에 숫적 비율이 달라진다. 혁명조직도 자신이 성장하는 각각의 단계에 따라, 그리고 자신이 발딛고 있는 계급투쟁의 조건에 따라서 응집적, 중간적, 대중적 요소 사이에 변동하는 탄력적인 비례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이 비례관계가 부적절하게 되면 화학반응에서와 마찬가지의 현상이 일어난다. 서로 결합하는 화학원소들 중 가장 부족한 한 원소에 의해 화학반응정도가 결정되듯이, 상대적으로 결핍된 어느 한 요소가 전체 조직의 성장을 가로막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특정한 시기에 과연 어느 요소가 결핍되어 성장이 장애에 봉착하는지를 포착해야 하며, 힘을 집중하여 그 요소를 보강해야 한다. 가령 어떤 정당이 지방선거에서는 많이 득표하지만 정치적 중요성이 더 큰 전국 선거에서는 조금밖에 득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분명 중앙지도부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이 경우 지방의 하급요원은 충분히 성숙해 있지만, 그 나라의 전체 운동을 지휘하는 총참모부는 허약한 것이다. 이와 달리, 전국적 쟁점에 개입하여 영향력을 미치는 데서는 활발하지만, 지역별 쟁점에서는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총참모부는 강하지만, 지방의 하급요원은 부족하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응집적 요소가 결핍되어 있는 조직은 자발적 규율이 이완되어 있으며, 혁명적 활동력이 정체되어 있고, 활력과 진취성이 결여되어 있다. 이 경우, 운동가들의 헌신성과 패기, 자신감, 자신의 활동에 대한 자부심은 없거나 대단히 약하다. 그리고 조직의 각각의 부분은 서로 따로 놀며 집중화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런 조직은 지역이나 사업장에서는 눈에 띄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그 규모에 비해 현저하게 작은 힘만을 발휘한다. 개별 인자들이 휘날리는 깃발은 도처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지만 전체로서의 조직적 힘은 느낄 수 없게 된다. 조직은 항상 상황을 뒤쫓기에 급급하며, 일관되며 계획적인 활동을 전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조직의 결집력은 모래알처럼 대단히 취약하다. 이런 조직은 절대 “역사적 전통”을 수립하지 못하며, 매 상황에 자신의 각인을 찍어내지도 못한다. 이런 조직은 개별 인자들의 역사는 대단히 오래되지만 해체와 재결집을 반복해 왔기에 단지 ‘인적 구성’에서만 연속적일 뿐, 그 어떤 “조직적 전통”도 확립하지 못한다. 가령 “노힘”과 같은 조직이다.
  이에 비해, 응집적 요소는 발달되어 있되 대중적 요소가 부족한 조직은 매 상황에서 가장 올바른 정책을 제기하기는 하지만 이를 집행하는 데는 무기력하다. 이 조직은 응집적 요소가 결핍된 조직에 비해 훨씬 더 발전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상황을 주도할 수 없으며 자신의 각인을 모든 상황에 제대로 찍어낼 수도 없다. 이런 조직은 그 조직의 규모에 비해서는 항상 도드라지게 부각되며 훨씬 더 강력하게 느껴지지만, 자신의 힘을 모든 개별적 부분에서 입증할 수는 없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 조직은 하나의 입장으로는 분명 가장 앞서 있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데에서는 아직 무기력하다. 따라서 누구나 이 세력이 활동하고 있음을 느끼고 이 세력이 제출하는 입장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아직 이 조직의 힘을 피부로 강하게 느낄 수는 없다. 이런 조직은 강력한 조직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뿐 아직 현실에서 강력한 세력은 아니다. 중간적 요소가 결핍되어 있는 조직은 관료성이 만연하거나 상급 요원들이 관성화되어 활력을 잃게 된다. 이 경우, 대중적 요소들의 규율과 충성은 기계적이고 맹목적인 형식을 취하며, 응집적 요소는 현실적 감각을 잃고 무기력해진다. 조직의 기저로부터 신선하고 새로운 지도자들이 부단히 창출되지 못하며, 중앙기관은 혁신 능력과 탄력성을 잃고 경직된다. 중앙기관의 결정은 하부에서는 제대로 집행되지 못하며, 그 결과 조직이 취하는 입장과 실제의 실천 사이에 “거대한 간극”이 생겨나게 된다. 이런 조직은 언젠가는 결국 응집적 부분과 대중적 부분이 서로 나뉘어 자립화하게 되며,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병사들을 잃고 고립된 장군들의 소규모 부대로, 다른 한편으로는 구심도 방향성도 없이 단순히 모여있을 뿐인 대중적 세력으로 분할된다.
  어떤 세력이 정당으로 발돋움하는 것은 그것이 여러 수준의 요원들을 자신의 내부에서 형성하거나 혹은 외부로부터 끌어들여 결집한 정도, 그리고 그 요원들이 확보하고 있는 역량 정도, 마지막으로 여러 수준의 요원들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의 적절함에 달려 있다. 조직이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응집적, 중간적, 대중적 요소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이 균형을 지탱하는 비례관계는 조직이 성장하는 객관적 발전단계에 따라 수시로 변동한다. 따라서 혁명조직은 매 시기에 발생하는 질병들을 정확히 진단하여, 어떤 요소가 결핍되어 질병이 생기는지를 판단하고 이를 보강하기 위한 작업을 적시에 펼쳐야 한다. 결핍된 요소를 보강하는 작업은 조직 내에서 이 요소를 창출하는 ‘내부 작업’과 외부로부터 이 요소를 수혈받는 ‘외부 작업’ 모두로 구성되는데, 어떤 조직의 내적 생산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 또한 혁명조직은 자신의 발전단계에 따라 각각의 요소들의 비중을 달리 한다. 혁명조직이 자신을 수립하는 단계에서는 응집적 요소가 가장 선차적인 조건이고, 이것이 없다면 일관된 성장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부대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대중적 요소를 결집하고 규율을 부여할 수 있는 응집적 요소가 반드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의 맹아는 대단히 의식적이고 투철할 뿐만 아니라 노선과 방향성을 분명히 한 응집적 요소들이 결집하는 것에서 생겨나며, 당은 응집적 요소가 자신의 연속이자 표현으로서 중간적 요소를 형성하는 시기에 가시화된다. 그리고 이 중간적 요소들이 대중적 요소를 결합시키고, 응집적 요소와 긴밀하게 연결짓는 방식으로 조직할 수 있을 때 어떤 시기에도 사라지지 않는 생명력 있는 당이 창조된다.  
  따라서 혁명정당 창건은 응집적, 중간적 요소를 육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점에서 현재 남한 노동해방주의자들은 유능한 지도자들, 그리고 이 지도자들을 노동자계급의 선진부분들과 연결시키는 중간간부들을 형성해야 한다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현재의 남한 혁명조직은 노동자계급의 전위들을 체계화되고 유기적으로 준비된 정치적 군대로 조직하는 데 필요한 지도자들을 선별하고 계발하는 기능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선진층을 정치적으로 성숙하고 조직적으로 투철한 노동해방 혁명가들로 끌어올리는 데 필요한 지도자들을 육성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미래 당의 기간 요원들을 체계적으로 결집시키고 육성할 응집적 요소들은 현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특정한 해결책’(혁명적 노동해방주의)으로 완벽하게 무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타 계급들의 장단점 및 노동자계급의 힘을 끌어낼 수 있는 정확한 방도를 이해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론적 활동 없이는, 다시 말해서 혁명조직이 대표하는 노동자계급의 힘과 특성을 규정하는 여러 원인들과 이 계급이 발전해 왔으며, 발전해 나갈 경로에 대한 체계적인 탐색과 연구 없이는 지도자들은 형성될 수 없다. 동시에 실천적 활동 없이는, 다시 말해서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자신을 긴밀하게 연결지으며, 노동자계급의 최우량 분자들을 지속적으로 노동해방주의 운동의 지도적 요원으로 인입하고 육성하며, 광범한 노동대중들 속으로 깊숙하게 파고들 수 있는 실제 방도들을 부단한 실천 속에서 계발할 수 없다면 지도자들은 형성될 수 없다. 남한 혁명조직은 이 이론적이고도 실천적인 작업에서 성공함으로써, 그리하여 당을 벼려낼 혁명적 지도자들을 부단히 양성함으로써 당창건 운동을 당위에서 현실로, 염원에서 확신으로, 가능성에서 현실성으로 반드시 끌어올려야 한다.

종합을 통한 완전화

  혁명조직이 위력적인 실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여러 면에서 “풍부”해야 한다. 역동적으로 기능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요소들 없이는 강력한 당을 창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론적, 정치적, 대중적, 국제적, 혁명적, 문화적, 전국적 요소 등을 모두 구비하지 않는다면 완전한 혁명조직을 창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혁명조직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그것은 초기에는 뛰어난 개별 인물들, 그룹들, 당파들 속에 분산되어 있기에 이들을 종합하지 않으면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혁명조직을 세워낼 수 없다. 그런데 상당히 협소한 지반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소그룹들이나 개인들은 불가피하게 이상의 요소들 중 몇몇만을 발전시킬 수 있을 뿐이다. 어떤 세력은 이론적 측면에서 발전되어 있는 반면, 어떤 세력은 실천적 측면에서 발전되어 있다. 어떤 세력은 영남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반면, 어떤 세력은 수도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각각이 특수하게 발전시킨 이 요소들은 그것이 협소한 한계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는 ‘배타주의와 편협함’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각각의 세력들은 자신이 발딛고 있는 좁은 지반에서 끌어낸 경험들을 지나치게 일반화하고, 자신의 특수한 실천감각들을 과대포장하며, 자신들이 발전시킨 요소들과 타 세력이 발전시킨 요소들을 즉자적으로 대립시키면서 특별한 한두 측면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며 대립한다. 이런 배타주의와 협소함, 대립은 하나의 혁명조직 내에서도 각각의 인물들의 특성과 발딛고 있는 지반 등의 차이를 반영하여 나타난다. 그러나 만일 그 자체로는 불완전한 이런 요소들이 제대로 집중되고 종합될 때에는 그것은 풍부함, 다채로움, 편향에 대한 안전판을 산출한다. 응집적인 요소가 갖춰야 할 자질은 이처럼 그 자체로는 불완전한 요소들을 편협함과 배타성으로부터 구출하여 완전하고 풍부한 것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전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능력이 혁명조직에서 확립된다면, (물론 동일한 정신과 노선이라는 기초 위에서) 각각의 개인들, 부분들이 발전시킨 특별한 감각과 그들이 발딛고 있는 특수한 지반은 서로간에 불필요한 대립과 반목을 낳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힘으로 전화한다.
  정신상의 통일성, 다시 말해 근본 노선상의 통일성을 혁명조직을 굳게 단결시키는 기초로 놓아야 하는 이유, 그리고 단순히 사소한 실천상의 동질감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견고한 통일성의 초석을 놓을 수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협소한 부분적 실천으로부터 대두되는 통일성은 대개의 경우, 각각의 운동가들, 그룹들이 기반하고 있는 실천공간의 동일성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경우, 이 통일성은 실천적 통일성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결코 견고하지 않다. 그것은 서로 활동하는 공간, 지역, 사업장이 다르거나 하면 곧장 붕괴될 그러한 종류의 통일성에 불과하며, 결코 “완전한 종합”에 도달할 수 없다. 이런 정도의 통일성으로는 결코 전국적이며 정치적인 원대한 통일을 이룰 수 없으며, 사소한 충격만 가해져도 또는 혁명조직의 활동공간이 조금만 확장되더라도 곧 붕괴의 조짐을 보인다. 이런 세력은 결코 이론적 요소들과 실천적 요소들을 종합할 수 없기에 불가피하게 이론적 요소 혹은 실천적 요소 하나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면서 단지 하나의 면만을 완고하게 발전시키게 된다. 그 결과 이론가들은 실천적 힘을 박탈당하며, 실천가들은 편협하고 즉홍적인 실무가 수준을 넘어설 수 없게 된다. 이에 비해 강령, 전술, 조직 노선상의 굳건한 통일에 기초한 조직은 구성원들이 서로 판이하게 다른 지반 위에서 실천을 전개하더라도 그것이 배타주의와 편협함, 불필요한 대립을 낳는 것이 아니라 당면 상황에 대한 전체적이고도 균형잡힌 이해, 편협한 지역적 시야와 단사주의를 뛰어넘는 원대한 시야, 사소하고도 지엽적인 대립을 피하면서도 주요하고 결정적인 문제들에 관심과 토론을 집중시킬 수 있는 힘을 낳도록 추동한다. 이 경우, 각자가 발전시킨 특별한 요소들(가령 이론적 역량과 실천적 역량, 조직적 투철함과 대중과 융합할 수 있는 능력)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되어 풍부하고 완전한 것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전화하며, 서로 상호융합하여 높은 단계로 상승한다. 서로는 서로를 존중하게 되며, 자신의 단점을 상대방의 장점으로 보완하고, 자신의 장점으로 상대방의 단점을 메우게 된다.

종합의 수단

  이제 우리는 “종합화”의 “수단”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 그 수단은 첫째, 근본화 능력, 즉 정신상의 경향을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근본화 능력이란 표면적으로는 상이해 보이는 것 속에서 동일한 것을 추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일해 보이는 것 속에서 상이하고 대립되는 것을 비판적으로 추출할 수 있는 힘이다. 이 힘에 기초하면, 통일과 분리는 아카데믹하고 배타주의적인 눈에 따라서가 아니라 실천적이고 계급적인 눈에 따라 추진하며, 토론은 “이론적”(이것은 토론을 지엽말단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화시켜 수행할 때 나타난다)으로 전개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진지함과 책임감이다. 구체적 상황을 잘 알지 못하고, 생생한 실천 감각을 발전시키지 못한 영역에서는 다른 동지의 견해와 감각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는 그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는 성장 중에 있는 미완의 혁명조직이 자신을 냉철하게 객관화시키는 능력과도 연결된다. 진지하고 책임성 있는 혁명조직은 각각의 시기에 자신의 성장 정도에 정확히 부응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정식화하고 결론을 끌어낼 수 있으며, 아직 분명하고도 명확하게 결론을 도출할 수 없는 사안과 관련해서는, 실천과 경험을 통한 검증의 결과에 맡겨두면서 공란으로 기꺼이 남겨둘 수 있다. 이는 아직은 문제를 해결할 수단이 없는데, 해결책을 둘러싸고 소모적인 논쟁을 거듭하고 쓸모없이 대립하는 분파주의적 습성을 추방한다.
  셋째, 구체에서 추상으로, 추상에서 구체로 이어지는 역동적 토론과 경험의 끊임없는 일반화, 이론의 끊임없는 실천화이다. 이론과 실천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킬 수 없다면 편향은 불가피하다. 이 경우 혁명조직은 경험주의의 늪 아니면 아카데믹한 습성에 빠져든다. 실천가들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에 불가피하게 소중한 경험을 전조직적 재산으로 전화시키지 못하며, 다른 운동가들의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지도 못한다. 각각의 상이한 경험들은 서로를 대립시키고 완고하게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는 배타주의를 낳을 뿐이다. 또한 운동가들은 단지 개인적 경험에 의지해서만 실천할 뿐, 전세계 노동자 운동의 경험들로부터 빨아들인 자양분에 기초한 원대하고도 치밀하게 실천할 수 없게 된다. 이런 경험주의와 편협함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모든 성원들의 이론적 능력을 배양하는 것, 그리고 이론적으로 일반화하여 토의할 수 있는 토대를 닦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이론과 실천의 유기적 결합과 종합을 통해 전진해야 한다. 이럴 때에만 지역의 활동에서 전국적인 요소를 추출해 내고, 일국적 활동에서 국제적 요소를 추출하면서 운동을 확장시킬 수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역동적인 활동이며, 운동이 발전하고 보다 높은 지반 위에서 통일되는 데 기여하는 유일한 활동이다. 민주집중제의 견실성을 보장하는 것은 바로 이상의 기초들이다. 왜냐하면 어떤 민주집중제적 형식도 내용적 기초 없이는 무망한데, 이 내용적 기초는 다름 아닌 “정치적 통일성”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살아 있고 약동한다면, 혁명조직은 그것에 부합하는 민주집중제의 형식을 채택하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상의 기초 위에서 ‘토론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에 대한 확고한 승인’을 결합시켜야 한다. 민주집중제가 없다면 종합화는 모두 허구적인 것으로 전락하며, 어떤 실제적 단결도 낳을 수 없다. 왜냐하면 종합화 작업은 오랜 기간에 걸친 부단한 역사적 작업을 통해 성장하며 결실을 거둘 뿐만 아니라 그것은 결코 완성에 도달할 수 없는 “점근선”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종합화를 위한 충분한 토론과 검토의 기회를 갖지만, 그 이후에는 “민주집중제”에 기초해 결정을 내려야 하며 그것을 행동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럴 때에만 ‘종합화 작업’은 행동으로 승인되는 것이며, 그 구체적 결실을 맺는 것이다.

혁명조직의 운영원리

  정당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힘을 확보하려 한다면, 혁명조직은 불순한 요소들을 일정한 정도로는 포함할 수밖에 없다. 만일 완벽하게 순수한 것으로만 자신을 제한하려 한다면 불가피하게 혁명조직은 소수의 혁명가들만의 좁은 한계 내로 갇히고 말 것이다. 문제는 “정도”에 있으며, 어느 경향이 어떤 경향을 무의식적 도구로 이용할 것인가에 있다. 만일 정도가 지나쳐서 모든 다양한 조류들이 마음대로 공존한다면 그것은 “노힘”과 같은 회색의 무정견한 세력으로 떨어진다. 만일 기회주의적 경향이 혁명적 경향을 압도한다면, 그것은 기회주의 세력이 혁명적 세력을 자신의 무의식적 도구로 이용하는 비극적 상황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역이라면 일정 정도로 불순물이 섞이는 것을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적합한 한계 내에서 (물론 혁명조직의 발전단계와 성숙정도를 고려하면서) 조직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을 겁낼 필요가 없다. 진정 강력한 조직이란 단 하나의 불순물도 포함하지 않은 완벽하게 순수한 조직이 아니다. 그것은 극소수의 선비 혁명가들만을 모집하고 있는 그런 순수주의 소그룹에게서나 발견할 수 있을 뿐 강력하고 위력적인 혁명그룹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 진실로 강력한 혁명조직이란 약간 미완이며, 일정 불순한 요소들이 섞여 있을지라도 그것을 제어할 수 있고 소화할 수 있는 조직, 그리고 그것들까지도 무의식적 도구로 이용할 수 있는 조직이다. 심지어 일정한 편향을 가지고 있는 불안정한 것일지라도 그것을 호령하고 이용하면서까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조직이다. 가령 무정부적 생디칼리즘 경향은 그 자체로는 혁명적 노동해방주의에 대립하며, 격렬하게 맞서는 경향이다. 그러나 만일 이 경향이 일정한 한계 내로 제한되며, 조직 내에서 극소수파의 지위에 머물러 있다면, 또한 그것이 조직의 규율에 복종한다면 그것은 혁명조직에서 “해독제”로 기능할 수도 있게 된다. 이 경향은 혁명조직이 관료화되는 징후를 경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기능할 수 있으며, 과도한 중앙집중주의를 제어하는 안전판으로 기능할 수도 있게 된다. 레닌의 경우, 일부 아나코-생디칼리즘 세력을 계속 끊임없이 교정시키면서 제3인터내셔널에 결합시켰고, 이를 통해 국제 노동자계급운동을 강화시켰다. 이처럼 문제는 지배적인 경향이 무엇인가에 있으며, 응집적인 요소들이 불완전한 경향들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이용할 수 있으며, (적절한 시기에는 과감히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것을 위해서는, 혁명조직에는 다양한 부류의 운동가들이 참여하지만, 따라서 모든 성원들이 진실한 혁명가일 수는 없지만 다음의 점은 분명해야 한다. 혁명조직을 지배하고 규정하는 정신은 오로지 투철한 노동해방 혁명가들로부터만 나와야 한다.
  이는 곧바로 “중핵의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킨다. 혁명조직의 지도자들은 모든 운동가들에 대해 무한한 낙관주의(변화시키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견지하지만, 동시에 모든 운동가들에 대해 가장 날카로운 비관주의(운동가들의 한계에 대한 엄밀한 인식)를 결합시켜야 한다. 각각의 운동가들, 그룹들, 당파들의 경향성은 절대로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 특히 운동에 입문한지 수년 이상된 개인들, 자신의 활동을 개시한지 오래된 그룹들, 당파들은 결코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 이들의 경향성, 한계들은 상당히 고질적인 것이며, 그것이 단순히 관념적 교화로 손쉽게 극복될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다. 지도자들은 이들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것은 관념적 교화가 아니라 일상적 활동 하나하나를 통해 오랜 기간 동안 수행해야 한다)을 끈질기게 수행함과 나란히 이들의 한계들이 조직에 해악을 미치지 않도록 경계하고 보장책을 반드시 마련해 두어야만 한다. 이 보장책 중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의 중심기구의 구성을 혹독한 검증대를 통과한 철두철미한 혁명분자로 제한하는 것이다. 1장에서 언급한 응집적 요소의 자질에 가장 부합하는 투철한 혁명가들만으로 중심기구를 구성하고, 이들을 조직의 중핵으로 명확히 세워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혁명적 노동해방주의에 굳건하게 입각하고 있음이 증명된, 정치적으로 믿을 수 있는 분자들이 중핵을 구성하도록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이들이 조직의 여타 부분들을 정확히 지도하고, 불완전한 운동가들과 일정 미숙한 경향들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 이럴 때에만 조직의 중심부에 비혁명가적 경향이 침투하고, 위험한 경향들이 파고드는 것을 차단할 수 있으며, 그들이 어떤 실책과 오류를 범하건, 그리고 그들이 어떤 파괴적 역할을 수행하건 그것이 조직에 별다른 타격을 미칠 수 없도록 대비할 수 있다.  

혁명조직의 훈련에 대해

  모든 상황에 대처하는 데서 관건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즉각 실천에 투입할 수 있도록, 잘 조직되어 있고 준비되어 있는 세력이 존재하고 있느냐이다. 어떤 상황이 유리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렇게 준비되어 있고 또한 전투정신으로 충만해 있는 세력이 존재하고 있는 경우에 한정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상황은 그냥 스쳐지나가며, 혁명조직은 그것에 아무런 각인도 찍을 수 없다. 이 경우, 상황이 유리하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무의미해진다. 그러므로 혁명조직이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일상적 작업은 능동적으로 상황에 개입할 수 있는 세력이 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끈질기게 작업하는 것이다. 그런데 혁명조직이 가장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할 가장 결정적인 국면은 다름 아닌 혁명적 투쟁 시기다. 따라서 혁명조직을 “일상적 시기”의 정신이 아니라 “혁명적 시기”의 정신으로 무장시키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혁명적 시기에 빛을 발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전투조직일 수 있도록 일상적 시기에 잘 준비하고 단련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가령 전투부대는 평상시에도 “가장 가혹한 전쟁” 시기에 대비할 수 있는 대형과 정신으로 편제되고 훈련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부대는 “영국 황실 문앞을 지키는 장난감 병사”들이지, 적의 대포가 불을 뿜는 속에서도 적의 진지를 향해 돌격하는 전투부대가 될 수 없다. 혁명조직도 동일한 방식으로 훈련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혁명조직은 결정적 상황에서 준비된 전투세력으로 자신을 우뚝 세워낼 수 없으며, 무기력한 실체를 드러내고 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혁명조직은 다음 번 혁명의 파고가 밀려오기 전의 휴지기에 과거 혁명의 전통을 수호하고, 혁명적 정신을 보존하며, 혁명의 교훈을 추출하여 이를 다음 번 혁명에 넘겨주는 “혁명 기억의 담지자”로 기능해야 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현실적 수단들의 총체들을 계발하고 이를 부단히 발전시키는 작업이 일상적 시기에 혁명조직이 전개하는 활동의 기초를 구성한다. 이는 혁명조직의 정치활동 문제와 곧장 직결된다. 과거 혁명의 위대한 전통과 정신을 수호하고, 이 혁명이 패배한 이유를 정확히 정식화하여 다가오는 혁명을 준비하는 것은 혁명과 혁명, 전투와 전투 사이의 막간극 - 이 막간극은 3-4년일 수도, 30-40년일 수도 있다. 여기서는 세계사적 잣대가 적용된다. - 에서 혁명가들의 정치적 임무이다. 이는 과거 혁명의 교훈에 대한 이론적 정식화, 골간 핵들과 투철한 고참 혁명가들의 육성, 혁명 정신과 기치의 보존 등으로 구성된다. 가령 맑스는 1848년 유럽 혁명기의 경험으로부터 자신의 정치적 판단을 끌어냈다. 그는 생애에서 1848년을 제외하고는 다른 유럽 혁명을 보지 못했지만, 그 이래 모든 시기에 그가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노동자 당파의 실천적 태도를 결정하기 위해 항상 돌아왔던 지점은 다름 아닌 “1848년 유럽 혁명 시기”였다. 그는 이 시기에 나타난 각 계급과 조류들의 입장, 태도에 기초하여 정치적 대응을 결정했으며, 바로 그 시기의 혁명적 정신으로 실천했고 자신의 당파를 무장시켰던 것이다. 이 점에서 막간극의 평화적 정서에 적응하고 영합할 수 있을 뿐인 “노힘”이나 “한노정연”이 평화의 시기에 번성하는 나약한 기회주의 거품이라면, 혁명 정신에 기반해 부단히 훈련하고 투쟁하는 노동해방주의 조직은 혁명 시기에 쭉쭉 뻗어나가는 혁명적 중핵이다.
  이런 혁명적 중핵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혁명조직은 일상적 시기에 부단히 자신을 단련하고 충분한 예행연습을 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파업과 전투적 투쟁 국면에서 우리의 정확한 각인을 찍는 역동적 활동을 정규적 활동으로 정착시키는 것, 혁명적 결단의 시기에 결연하게 투쟁할 수 있도록 투철한 혁명적 규율을 집행하고 무한한 헌신을 조직활동의 규범으로 세우는 것, 가장 정력적이고 결단력 있으며 자기 헌신적인 강고한 분자들을 조직의 중핵으로 육성하는 것 등으로 구성된다. 또한 혁명조직은 이론적 활동과 훈련을 통해 과거 혁명과 부단히 대화하고, 혁명운동의 역사적 숨결을 호흡하며, 자신의 모든 실천을 미래 혁명과 연결시켜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서 혁명조직은 혁명적 투사들과 전국적 연결망을, 그리고 국제 노동해방주의 세력의 견고한 연결망을 아무리 작더라도 끈질기게 조직해야 하며, 그리하여 결정적 국면에서 이 연결망을 봉기의 망이자 혁명을 지도하는 망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이런 작업만이 종이호랑이와 같은 지위에서 포효하는 맹수의 지위로 혁명조직을 격상시킬 수 있으며, 날쎄게 먹이를 나꿔채는 매처럼 혁명의 기회를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붙잡으며, 적들의 모든 약점을 예리하게 공격하면서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위대한 혁명조직을 창조할 수 있다.
  혁명 정당으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혁명조직은 언제 어떤 시기이건 자신이 전개하는 실천활동의 전노선을 “혁명을 조직하고 준비하는 데 적합한 방식”으로 세워내야 한다. 눈앞만을 보는 세력, 그리하여 단지 당으로 이름 붙여진 파벌이나 조합주의의 정치적 변종만을 생산할 수 있는 세력과 혁명조직은 판이하게 달라야만 하는 것이다. 혁명조직은 “응집적, 중간적, 대중적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짓고”, “자신이 보유한 모든 힘들을 종합하여 부단히 완성체로 전진하며”, “혁명의 시기에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일상적 훈련을 전개”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멀리 보며, 치밀하게 준비하는 혁명조직이라면 우리 노동자계급의, 우리 혁명가들의 참모부 - 노동해방주의 혁명정당 - 를 건설하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전진하는 혁명조직이라면 그 어떤 난관도 뚫고 기필코 승리의 고지에 도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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