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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무제한 통신감청: 경찰국가에의 꿈 / 한상희
한겨레 2007-06-11
» 한상희/건국대 법대 교수
정보사회에서의 정보는 그 자체가 권력이다. 특히 관료체제에서 일상적인 감시를 통해 규격에 맞추어 수집, 처리되는 정보는 더욱 그렇다. 정보란 말이 공식화되기 시작한 중세 유럽은 좋은 예가 된다. 그것은 처분을 기다리며 형식에 맞게 작성한 진술서 또는 하급조사관리가 작성한 보고서이거나, 혹은 공권력에 복종하여야 할 사람들의 신상기록을 가리키기도 하였다. 정보란 애당초 국민에 대한 국가감시를 바탕으로 관료의 권력을 확보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에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정도나 그것을 관리하는 방식은 국가의 권력성을 대변하는 지표가 된다. 과거 중정이나 안기부, 심지어 최근까지의 각종 정보기관들이 음지의 권력을 구축하여 양지의 정치를 혼동스럽게 하였음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된다. 최근 국회에 계류 중인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의 문제점 또한 마찬가지다. 관료들이 범죄수사 편의라는 명목으로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고 그 희생을 바탕으로 자신의 권력을 확장해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개정안의 뼈대는 수사기관이 휴대전화까지도 감청할 수 있게 함에 있다. 그동안 기술적 가능성에 대한 논란은 적지 않았지만, 어쨌든 휴대전화 감청만은 아니된다는 국민적 정서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통신회사에 감청장치를 설치하도록 강제하고 그것을 수사당국이 이용할 수 있게 한다. 기술적 문제로 국가감시가 곤란하였던 휴대전화 통화를 ‘통신회사의 협조’를 얻어 엿들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더구나 이런 우회적 방식은 향후 개발되는 그 어떠한 통신수단도 감청할 수 있게 한다. 통신업체의 중계기 등에서 통화내용을 가로챌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사용하는 통신수단들은 하나같이 국가적 감시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셈이 된다. 여기에 모든 통화기록은 최장 1년 동안 보관하도록 한 규정까지 결합한다면,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누구와 얼마나 통화를 하였는가도 송두리째 국가의 감시망에 걸려들게 된다.
그럼에도 개정안은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어떠한 안전장치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감청을 한 경우 수사기관이 30일 안에 그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리도록 한 규정마저 개악하여 최장 60일 동안 통보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들어 두기도 한다. 감시를 당하고도 그 사실을 알 권리조차 박탈당해야 하는 처지가 법의 이름으로 강요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통신비밀보호법은 되레 통신비밀침해법이 되기도 하였다. 범죄수사를 빌미로 모든 국민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몰아세우고 피의자도 아닌 일반인에 대해서까지 통화기록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는 등 전방위적인 감시사회를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이 개정안은 통신비밀의 침해범위를 더욱 확장함으로써 국민의 인권을 처참하게 내동댕이쳐 버린다. 정보인권을 보장하고 수사권력을 통제하기는커녕, 수사의 편의를 위해 모든 부담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이 개정안은, 수사관료들이 말하듯 테러 예방이나 범죄수사라는 목적만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밑바닥에는 국민의 사생활과 정보인권을 희생시키면서 오로지 수사의 편의와 관료조직의 안위를 도모하고자 하는 야경국가의 음모가 담겨 있다. 그래서 이 개정안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국회의 결단이 요청된다. 정보사회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그들의 편의와 권력이 아니라 국민의 인권이며 무엇보다도 자유로워야 할 우리의 생활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 주어진 최대의 헌법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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