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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50대 총학 선거에 대한 단상

  처음으로 총학생회 선거에서 선본원으로 활동했던 50대 총학생회 선거가 지난 4월 19일에 거행되었

 

던 개표를 끝으로 마감되었다.(사실 선본에 이름만 올려놓고 한 건 쥐뿔도 없지만 말이다.) 이번 선거는

 

나에게 있어서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일단 작년 얘기부터 하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자세히 보시려

 

면 아래를 클릭.



  사상 최악의 투표율로 무산되었던 지난 겨울, 당시 대부분의 관악 학우와 마찬가지로 나도 별로 선거

에 관심이 없었다. 49대 총학생회 재선거 선관위원을 하고 선거를 성사시키면서, (여기 들어올 만한 이

들은 별로 공감이 안 가겠지만) Suprise 선본에 나름 기대를 했던 나의 희망은 시간이 지나면서 산산이

조각나기 시작했다. 사상 초유의 총학생회장 탄핵 현장을 목도하면서, 마음 속으로 총학생회에 대한 '사

망선고'를 내렸다. 이후 보건의료노조 사태가 일어나면서 부총학생회장이 사퇴하게 되면서 혼란은 절정

으로 치달았다. 학우들은 운동권과 비권의 무의미한 논쟁과 갈등에 등을 돌렸고, 학생사회와 학생회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리고 그러한 흐름의 현실을 보여준 것은 바로 겨울의 단대 선거였다. 자연대, 공대

는 20% 정도의 투표율로 선거가 무산되었고 법대, 미대, 농대는 등록을 한 선본조차 없었다. 내가 속한

사회대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었지만,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연장 끝에 50%를 겨우 넘는 투

표율을 기록했고, 과/반 학생회는 절반도 서지 못했다. 바로 이것이 작년 겨울의 처참한 관악의 정치 지

형이었다.

 

  물론 올해 들어서 이러한 상황이 딱히 호전됐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2007년 상반기 임시 전

학대회는 무산을 앞둔 11시 30분 정도에 겨우 정족수를 채워 시작할 수 있었다. 대표들조차도 의무도

책임도 지지 않는, 뇌사상태에 빠져 있다고 자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던 것이다. 학내 현실뿐만 아니

라 학외 현실도 비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고용의 불안성을 조장하는 '비정규직 개악안', '신노사관계 로

드맵'이 국회에서 통과되었고,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명목으로 한반도를 침략적 전진기지로 재편하는 '평

택미군기지 이전확장 계획'이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투쟁 포기로 일단락 되었고, 전 사회의 신자유의

적 재편의 결정판인 '한미 FTA'가 타결되었다. 이러한 투쟁들의 패배의 요인으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

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각 개인들이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고 싶다. 

 

  아무튼, 이러한 비참한 학내/학외 현실 속에서 살아가면서, 나는 점차 의욕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해

도 안 되는 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욕할 사람이 있겠지만, 정

말 힘들었다.(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실 조건이 힘들면, 그 조건을 바꿔내기 위해서 싸우면 되고, 싸워

야 한다. 말은 참 쉽다. 하지만 실천은 어렵고 그에 대응하는 개인은 무력하다. 예전에 신년사에서 이러

한 상황의 해결책으로 벗들과 함께 하기를 주장(호소)했지만, 그것마저도 잘 안 되는 듯 싶어 안타까웠

다.

 

  이렇게 절망에 빠져 있을 때, 50대 총학생회 선거가 시작되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선거라도 해서 무

언가를 하고 있다며 자족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선본을 뛰기로 했다. 작년 여러 활동의 부산

물로 인해서, 이곳 저곳에서 접촉을 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만큼은 주변 선배나 지인을 통해서 아는

사람끼리 선거를 하기보다는, 내 정치적 지향과 가장 비슷한 곳에서 뛰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진보의

正道, 615 선본이었다. 비판할 점이 아주 많은 선본이지만, 솔직하게 '운동'에 대해서 선거 기간 동안

이야기를 풀어가는 곳은 그 곳뿐이었다.(혹자는 그래서 이번 선거 구도를 비권3 vs 스포츠권3 vs 운동

권1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렇게 선본을 결정한 후, 선거 운동을 열심히 해서 의욕을 되찾고 싶었다.

사회변혁에 대한 열망을 되찾고, 서울대 학생사회의 부활과 지형 변화를 위해 힘차게 결의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상처가 너무 큰 탓인지 결국 투표소 지키는 것과 개표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 아니 하지 않았다. 열심히 살지 않는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만 나날이 늘어갈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자신을 활동가라고 여기는 헛된 망상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불릴 자격도,

의지도 없는 무능력한 상태에 빠져 있으면서 말이다. 시기는 벌써 2007년 4월이 되었음에도, 생각은

아직도 2006년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나에 대해서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이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들에게 실컷 욕을 듣고, 무언가를 할 의욕이 생겼으면 좋겠다. 하지만

당분간은 아니 영영 그렇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이 현재의 나에 대한 나의 냉철한 판단이다.

 

  자조는 그만두고, 선거 얘기로 돌아가보겠다. 50대 총학생회 선거는 연장투표 없이 성사되었다는 것

빼고는 그렇게 좋은 평가를 내리기 힘든 선거였다. 일부 선본은 각종 할인 공약으로 외부 언론의 조명

을 받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고, '운동권'으로 분류되는(개인적으로 이렇게 나누는 것을 싫어하

지만) 선본들은 사회 문제에 대한 목소리와 인식을 보여주는 것에 인색했다. 이번에 당선된 Spotlight

선본에 대해서 우리 반 새내기는 '운동권인줄 몰랐는데?'라는 반응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대학국어

Pass/Fail 공약에 혹해서 투표한 사람들이 (내 주변에는) 많았다. 득표 전략 그 자체로만 따지면 물론

훌륭하다고 볼 수 있으나, 과연 그렇게 선거 운동을 해서 당선된 선본이 사회적 실천에 '빡세게' 연대

했을 때 학우들의 평가가 어떠할 지는 불보듯 뻔한 일 아닌가? 이번 선거 결과가 학우들의 기대와 선

본의 현실이 다른 '동상이몽'일 확률이 아주 크다는 데에서 우려를 금치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미 결과가 지어진 상황에서 비판만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표가 끝난 뒤, '동지가'를 불렀

던 Spotlight 선본에 대해서 좋든 싫든, 서울대에서 '동지'로서 함께 살아가는 이상 그들의 활동에 대해

연대와 지지를 보내주며 힘을 실어주는 것이 최우선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서울대에서 그들이 최대

의 지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잘난 척'(이에 대한 예는 무수히 많으나 생략하기로 한다.)을 하며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힌다면 서울대의 학생사회는 이제 희망을 버려도 좋을 것이다.  비판적 지지세력으

로서 50대 총학생회를 때로는 애정어린 눈으로, 때로는 냉철하고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사회변혁과 학생사회 부활의 그 길에 Spotlight 선본과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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