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현실의 모순/부조리에 대한 일침을 가하고 바람직한 전망을 제시하는 곳

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9/05
    [시론] 이랜드, 뉴코아 투쟁에 뜨거운 지지와 연대를
    신문기자
  2. 2007/04/20
    [시론] 50대 총학 선거에 대한 단상
    신문기자
  3. 2007/01/01
    [신년사] 2007년을 바라보며(3)
    신문기자

[시론] 이랜드, 뉴코아 투쟁에 뜨거운 지지와 연대를

전날 단운위에서

 

2007 2학기 관악 사회대 개강집회 때

 

이에 관한 발언을 요청받았는데

 

늦잠을 자서 -_- 10분만에 개날림으로 쓴 글이다

 

왜 매일 글을 여유있게 쓰지 못하고 마감시간이 되어서야

 

쓰는지.. 버릇좀 고쳐야겠지만 아무튼 내용보다는

 

실제로 발언했을 때 좀 감정을 섞어서 반응이 좋았다 ㅋㅋㅋ



안녕하세요? 저는 진보의 요람 사회대 민중 복지의 한길로 06학번 대표 오유교라고 합니다. 한참 무더웠던 여름 더위도 한풀 꺾이고 이제 날씨도 선선해지는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그러한 날씨만큼이나 이랜드, 뉴코아 투쟁도 불꽃처럼 힘차게 타올랐습니다. 1차 점거 뒤 연행, 2차 점거 뒤 연행 그리고 계속되는 주말 매출제로 투쟁으로 이랜드 일반노조 조합원들과 연대 동지들은 다시금 현시기의 자본의 폭압적인 탄압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장만능주의가 마치 옳은 진리인양 누구나 외치고, 그에 따라 헌법에 보장된 노동조합의 파업이나 투쟁은 경제성장을 위해서 어느 정도 희생되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노동에 대한 자본의 압도적 우위가 관철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분야에 걸쳐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곳곳에서 목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지난 7월 1일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되었습니다. 말로는 비정규직 보호라고는 하지만 실상을 보면 비정규직을 확산시키고 비정규직을 영구히 존속시키려는 법안이나 다름없습니다. 2년 이상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조항은 현실에서는 2년도 고용도 하지 않고 해고를 하는 단기계약, 초단기계약이 성행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파견의 범위도 크게 넓혀, 이제 대다수의 직종에서 비정규직을 쓸 수 있게까지 만들었습니다.

이런 기만적인 비정규직 보호법의 모순이 극적으로 표출된 것이 바로 이랜드, 뉴코아 투쟁입니다. 0개월 계약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계약까지 하다가 급기야는 대량 해고로까지 이어져, 이랜드, 뉴코아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존권을 실질적으로 박탈하게 되고 만 것입니다.

처음에 제가 이 사태를 접하게 되었을 때는, 이 투쟁이 이렇게 오래갈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만큼 어려운 노동운동도 없고, 강력한 자본의 탄압에 의해 금방 와해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으로 비관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금세 오판으로 드러났습니다. 그전까지는 투쟁이라는 말도, 파업이라는 말도, 동지라는 말도 잘 모르던 이랜드 조합원들이 ‘민중가요’를 부르고 ‘마임’을 하고 ‘점거’를 합니다. 그 동안 찍소리 하나 못했던 이랜드 그룹 박성수 회장에게 직설적인 말과 구호를 날립니다.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동안 노동자로서의 계급 정체성을 확고이 하지 못했다면, 투쟁을 통해서 노동자로서의 계급 정체성을 다시금 확고히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랜드 조합원들의 강력한 의지와 행동에도 불구하고 이랜드 투쟁은 아직 승리하지 않았습니다. 이랜드 투쟁은 단순히 한 회사와 그 회사의 노조의 싸움이 아니라, 노동시장을 유연화시켜 더욱 더 노동자를 착취하려는 자본과, 그에 맞서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고용과 임금을 보장하려는 노동의 사실상의 대리전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이랜드 그룹은 많은 손실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총자본의 선봉대로서 교섭을 성실히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이랜드 조합원들은 많이 지쳤을 것입니다. 3차 점거라는 수단을 쓰지 않는 이상, 이 투쟁은 아무래도 소강상태에 접어들 수밖에 없는 이 때에, 청년학생인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이랜드 투쟁에 뜨거운 지지와 연대를 보내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에 이런 사태를 보다 많이 알려나가는 것일 겁니다. 이랜드 투쟁이 종래에는 승리할 것으로 믿으면서 말을 마치겠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시론] 50대 총학 선거에 대한 단상

  처음으로 총학생회 선거에서 선본원으로 활동했던 50대 총학생회 선거가 지난 4월 19일에 거행되었

 

던 개표를 끝으로 마감되었다.(사실 선본에 이름만 올려놓고 한 건 쥐뿔도 없지만 말이다.) 이번 선거는

 

나에게 있어서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일단 작년 얘기부터 하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자세히 보시려

 

면 아래를 클릭.



  사상 최악의 투표율로 무산되었던 지난 겨울, 당시 대부분의 관악 학우와 마찬가지로 나도 별로 선거

에 관심이 없었다. 49대 총학생회 재선거 선관위원을 하고 선거를 성사시키면서, (여기 들어올 만한 이

들은 별로 공감이 안 가겠지만) Suprise 선본에 나름 기대를 했던 나의 희망은 시간이 지나면서 산산이

조각나기 시작했다. 사상 초유의 총학생회장 탄핵 현장을 목도하면서, 마음 속으로 총학생회에 대한 '사

망선고'를 내렸다. 이후 보건의료노조 사태가 일어나면서 부총학생회장이 사퇴하게 되면서 혼란은 절정

으로 치달았다. 학우들은 운동권과 비권의 무의미한 논쟁과 갈등에 등을 돌렸고, 학생사회와 학생회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리고 그러한 흐름의 현실을 보여준 것은 바로 겨울의 단대 선거였다. 자연대, 공대

는 20% 정도의 투표율로 선거가 무산되었고 법대, 미대, 농대는 등록을 한 선본조차 없었다. 내가 속한

사회대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었지만,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연장 끝에 50%를 겨우 넘는 투

표율을 기록했고, 과/반 학생회는 절반도 서지 못했다. 바로 이것이 작년 겨울의 처참한 관악의 정치 지

형이었다.

 

  물론 올해 들어서 이러한 상황이 딱히 호전됐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2007년 상반기 임시 전

학대회는 무산을 앞둔 11시 30분 정도에 겨우 정족수를 채워 시작할 수 있었다. 대표들조차도 의무도

책임도 지지 않는, 뇌사상태에 빠져 있다고 자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던 것이다. 학내 현실뿐만 아니

라 학외 현실도 비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고용의 불안성을 조장하는 '비정규직 개악안', '신노사관계 로

드맵'이 국회에서 통과되었고,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명목으로 한반도를 침략적 전진기지로 재편하는 '평

택미군기지 이전확장 계획'이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투쟁 포기로 일단락 되었고, 전 사회의 신자유의

적 재편의 결정판인 '한미 FTA'가 타결되었다. 이러한 투쟁들의 패배의 요인으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

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각 개인들이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고 싶다. 

 

  아무튼, 이러한 비참한 학내/학외 현실 속에서 살아가면서, 나는 점차 의욕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해

도 안 되는 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욕할 사람이 있겠지만, 정

말 힘들었다.(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실 조건이 힘들면, 그 조건을 바꿔내기 위해서 싸우면 되고, 싸워

야 한다. 말은 참 쉽다. 하지만 실천은 어렵고 그에 대응하는 개인은 무력하다. 예전에 신년사에서 이러

한 상황의 해결책으로 벗들과 함께 하기를 주장(호소)했지만, 그것마저도 잘 안 되는 듯 싶어 안타까웠

다.

 

  이렇게 절망에 빠져 있을 때, 50대 총학생회 선거가 시작되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선거라도 해서 무

언가를 하고 있다며 자족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선본을 뛰기로 했다. 작년 여러 활동의 부산

물로 인해서, 이곳 저곳에서 접촉을 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만큼은 주변 선배나 지인을 통해서 아는

사람끼리 선거를 하기보다는, 내 정치적 지향과 가장 비슷한 곳에서 뛰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진보의

正道, 615 선본이었다. 비판할 점이 아주 많은 선본이지만, 솔직하게 '운동'에 대해서 선거 기간 동안

이야기를 풀어가는 곳은 그 곳뿐이었다.(혹자는 그래서 이번 선거 구도를 비권3 vs 스포츠권3 vs 운동

권1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렇게 선본을 결정한 후, 선거 운동을 열심히 해서 의욕을 되찾고 싶었다.

사회변혁에 대한 열망을 되찾고, 서울대 학생사회의 부활과 지형 변화를 위해 힘차게 결의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상처가 너무 큰 탓인지 결국 투표소 지키는 것과 개표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 아니 하지 않았다. 열심히 살지 않는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만 나날이 늘어갈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자신을 활동가라고 여기는 헛된 망상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불릴 자격도,

의지도 없는 무능력한 상태에 빠져 있으면서 말이다. 시기는 벌써 2007년 4월이 되었음에도, 생각은

아직도 2006년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나에 대해서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이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들에게 실컷 욕을 듣고, 무언가를 할 의욕이 생겼으면 좋겠다. 하지만

당분간은 아니 영영 그렇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이 현재의 나에 대한 나의 냉철한 판단이다.

 

  자조는 그만두고, 선거 얘기로 돌아가보겠다. 50대 총학생회 선거는 연장투표 없이 성사되었다는 것

빼고는 그렇게 좋은 평가를 내리기 힘든 선거였다. 일부 선본은 각종 할인 공약으로 외부 언론의 조명

을 받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고, '운동권'으로 분류되는(개인적으로 이렇게 나누는 것을 싫어하

지만) 선본들은 사회 문제에 대한 목소리와 인식을 보여주는 것에 인색했다. 이번에 당선된 Spotlight

선본에 대해서 우리 반 새내기는 '운동권인줄 몰랐는데?'라는 반응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대학국어

Pass/Fail 공약에 혹해서 투표한 사람들이 (내 주변에는) 많았다. 득표 전략 그 자체로만 따지면 물론

훌륭하다고 볼 수 있으나, 과연 그렇게 선거 운동을 해서 당선된 선본이 사회적 실천에 '빡세게' 연대

했을 때 학우들의 평가가 어떠할 지는 불보듯 뻔한 일 아닌가? 이번 선거 결과가 학우들의 기대와 선

본의 현실이 다른 '동상이몽'일 확률이 아주 크다는 데에서 우려를 금치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미 결과가 지어진 상황에서 비판만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표가 끝난 뒤, '동지가'를 불렀

던 Spotlight 선본에 대해서 좋든 싫든, 서울대에서 '동지'로서 함께 살아가는 이상 그들의 활동에 대해

연대와 지지를 보내주며 힘을 실어주는 것이 최우선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서울대에서 그들이 최대

의 지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잘난 척'(이에 대한 예는 무수히 많으나 생략하기로 한다.)을 하며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힌다면 서울대의 학생사회는 이제 희망을 버려도 좋을 것이다.  비판적 지지세력으

로서 50대 총학생회를 때로는 애정어린 눈으로, 때로는 냉철하고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사회변혁과 학생사회 부활의 그 길에 Spotlight 선본과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신년사] 2007년을 바라보며

  정말로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2006년이 지나갔다. 지난 한 해는 그야말로 한국적 모순과 세계

 

적 모순이 극에 달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지역주의는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망령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이로 인한 사회적 분열과 갈등은 치유되지 않은 채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사회적 양극화는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의료 가릴 것 없이 사회의 제 분야에서 엄청난 파괴력

 

을 발휘하고 있고 파편화된 개인들은 자본의 운동 속에서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으며 연대의 정

 

신도 사그라들고 있다. 초국화된 자본의 세계화를 가속화하는 한미 FTA의 협정도 곧 체결

 

된다는 소식도 들려오며, 5년 연기된 평택미군기지 이전 협정에 대한 책임을 대추리, 도두리

 

주민에게 전가하는 볼썽사나운 정부의 모습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비정규직 개악안과 신노사

 

관계로드맵의 통과로 불안정 노동은 기존보다 더욱 더 확산될 기로에 놓여 있으며 이는 역시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국민경제의 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주입을 하고 있는 주류

 

언론과 국가의 여러 상징조작과 여론의 형성 및 선도를 통해서 별 저항없이 대중들에게 받아들

 

여지고 있다. 날이 갈수록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는 미제국주의의 발악은 절정에 다다라

 

북핵 문제의 책임을 전적으로 북한에 돌리고 군사주의적 세계화 전략을 폐기하지 않은 채

 

이라크 전쟁에 이어서 이스라엘을 도와 레바논을 점령하려는 야욕을 부리고 있으며 이에

 

대한 세계인들은 '반미'로 응수하고 우호적이었던 국가들마저도 이라크에서 철군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학생사회도 그리 밝지 못했다. 2007년도 총학생회 선거에서 진보적 경향의

 

선본이 대거 낙선하는 사태가 발생했으며, 학생사회와 학생회의 전반적인 침체로 서울대에

 

서는 주요 단과대에서 선본이 등록을 안 하거나 투표율 미달로 선거 자체가 무산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개인들은 그러한 과정이 만들어

 

내는 여러 모순과 병폐들에 맞서서 싸우거나 최소한 비판적인 입장에 서기보다는, 그에

 

편승하여 자기의 경쟁력과 상품 가치를 높여 남을 짓밟고 자신만 잘 살겠다는 철저한 이기

 

주의로 무장해가는 듯하다. 이처럼 앞이 보이지도 않고 전망도 없는 현실에 대부분의 운동

 

들은 죽어가고 있으며 잔존하고 있는 운동들도 국가와 그 제반 장치들의 상징 조작을 통해

 

여론에 부정적으로 돼 가고 있으며 국민들은 하지도 않은 '개혁'에 피로증을 느끼고 2007년

 

대선에서 무능한 개혁세력보다는 부패한 보수세력을 뽑겠다는 의사를 표출하고 있고 한나

 

라당의 집권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진 말자. 희망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가온

 

2007년에 이 땅을 위기의 땅에서 기회의 땅으로 만들어내자. 위기란 기회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진보에 대한 실날같은 기대를 하고 있다면, 단지 그 기대에서 끝나지 않고

 

이론에 대한 공부와 현실의 실천으로 직접적인 행동을 조금이라도 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사회의 제 모순과 부조리에 맞서 싸울 동력을 얻을 수 있다. 현실이 힘들다면 주위를 둘러

 

보자. 절대로 혼자가 아니다. 혼자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제대로 살펴보면 자기의 고민과

 

아픔을 같이해 줄 사람을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벗들이 있기에 세상은 의미가 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지치지 말고 끝까지 힘찬 투쟁을 통해 개개인의 삶을 옥죄어오는

 

병리현상들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