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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공교육 붕괴, 그 문제점과 원인은 무엇인가?

발제는 좀 미리미리 써야겠다 ㅋㅋ

 

맨날 시간에 쫓겨서 쓰니 제대로 나올리가 ㅠ



공교육 붕괴, 그 문제점과 원인은 무엇인가?

by 교육법 세미나팀장 유교

 

1. 들어가며

우리는 저번 세미나에서는 공교육 붕괴와 사교육 과열에 관한 영상을 보고 간단한 사교육의 현실을 돌이켜보았습니다. 오늘부터는 이 주제에 더욱 심층적으로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이번 시간에 다룰 내용은 공교육 붕괴와 사교육 과열의 원인과 문제점에 관한 것입니다. 평소에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 있으면서도 막상 그 본질을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렵고 그 동안 막연하게만 생각해왔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깊은 논의와 고민을 통해서 이 주제에 대해 더욱 명확한 감을 잡아보도록 합시다.

 

2. 공교육 붕괴와 사교육 과열의 문제점

문제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교육의 시장화’와 관련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공교육의 역할을 사교육이 거의 대체하게 되면서, 소득과 계층에 따른 ‘교육 격차’, ‘교육의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첨부 참조) 이는 바로 계급적 재생산과 직결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기 힘든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또한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후 우리 사회 곳곳에 불어닥치고 있는 사회적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공교육 붕괴의 원인

3-1. 학교 교육의 효율성 및 학습효과에 대한 불신

교육여건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서울의 경우 강남 지역이 강북 지역보다 훨씬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그 원인은 주로 학군 간 학교수준의 차이, 사교육 여건의 차이, 부모들의 교육열 차이를 들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학교보다는 사교육의 수준이 교육여건 만족도에 더욱 기여한다고 할 수 있는데 학군 간 교육수준의 차이도 결국은 사교육 정도의 차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여건은 공교육에 대해서 학부모와 학생이 불신을 갖게 하는 주된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2. 교사의 과도한 업무부담

교사들은 생각보다 많은 잡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수업연구라는 본연의 임무보다도 오히려 비본질적인 일에 더욱 시간을 뺏기고 있다고 하소연을 하는 교사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수업 관련 업무에서도 많은 부담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교육부가 권장하는 수업시수보다도 초과하여 수업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오후 보충수업과 0교시로 흔히 대표됩니다. 가뜩이나 잡무 때문에 어떻게 하면 지식을 더욱 학생들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을지 수업연구할 시간도 적은데, 과도한 수업시수와 야간자율학습 지도는 이를 더욱 더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3-3. 교직에 대한 교사와 학생 간의 인식 차이

한국교원단체총연합이 교원, 학부모, 학생 24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육공동체 인식 설문조사’에서 교사를 ‘단순지식 전달 직업’이라고 답한 비율이 교원(35.2%), 학부모(22.3%), 학생(20.5%)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교사들이 생각보다 자기들을 ‘지식 전달 기계’로 비하하는 생각이 만연해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상 외로 학부모와 학생이 더욱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2가지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교사는, 공교육은 단순히 지식만을 전달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비록 지금의 현실에서는 참교육, 전인교육이라는 교육의 이상이 제대로 구현되고 있지 않지만 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맥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더 이상 교사들에게 ‘지식 전달’의 측면에서 별로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단순한 지식 전달마저도 사교육에 맡기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공교육이라는 것에 별 기대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3-4. 체벌 위주의 훈육

체벌 사건으로 뉴스감이 되고 교사가 징계를 당하는 일이 요즘에 부쩍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비단 오늘에만 국한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분명 과거에도 체벌은 존재했고 부모님 세대의 얘기를 들어보면 지금보다 더욱 심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부터 존재했다고 해서 무조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듯이 전통과 인습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체벌은 고등학교 교사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이용되는 훈육 수단이지만 그것을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체벌의 교육효과를 떨어뜨리고 학생들의 반발심을 일으키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반발이 심한 것은 공교육과 교사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진 것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4. 마치며

지금까지 공교육 붕괴의 문제점과 원인에 대해 짚어보았습니다. 물론 문제점과 원인이 비단 전술해놓은 것들에만 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이외에도 다양하고 복잡한 요인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중요한 논점들을 정리하고 그에 대해 고민하시길 바라며, 다음 세미나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제제기를 통해서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 쟁점에 대해서 딱히 무엇이 정답이다라는 것은 없으며 오늘 결론이 나올 수도 없습니다. 각자가 각기의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앞으로의 공부를 통해 그 입장을 더욱 분명히 하도록 노력합시다.

 

문제제기 및 쟁점

 

1.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자신이 생각하는 공교육 붕괴의 원인과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2. 사교육 과열 양상으로 인해 교육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이 난국을 총체적으로 타파할 해법은 있을까요? 그리고 현 시기와 상관없이 본질적으로, 교육격차는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3. 계급적 재생산이 심각해질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은 무엇이 있을까요?(즉 상층에서 하층으로, 하층에서 상층으로의 계급이동의 적체발생시 생길 수 있는 사회적 문제)

 

4. 교육여건의 만족도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입시성적 위주로 생각한 지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는 이것에 목매달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5. 과도한 교사의 부담을 경감시킬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한 번 생각해봅시다.

 

6. 교사, 공교육의 근본적 방향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무작정 이상을 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현실에 그저 굴복할 수만은 없는데, 어떤 거시적인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7. 교육의 수단으로서 체벌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과도한 체벌이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용납될 수 있는 것일까요?

 

 

 

 

<제목> 수능평균 강남-지방 읍면학생 43점차

 

수험생 부모의 소득 및 학력에 따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점수가 비례한다는 사실이 실증적 연구를 통해 드러났다.

수능점수와 수험생의 계층적 배경 사이의 상관관계를 밝힌 김경근 고려대 교수의 연구 결과는 수능점수와 사교육비 지출의 정비례 관계를 수치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동안 부모의 학력·소득수준에 따른 사교육비 격차가 확인된 적은 있으나, 이에 따른 수능 성적의 계층별 격차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적은 없었다. 또 계층별 수능점수 차이는 지역별 수능점수 차이로 그대로 이어진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부유층과 고학력 거주자가 많은 서울 강남지역 학생들과 지방 읍면지역 학생들 사이에 평균 43.85점의 격차가 나타났다. 서울지역 안에서도 강남·서초구 학생들(평균 314.70점)과 ㄱ·ㅇ구 학생들(평균 279.41점) 사이에는 35점가량의 큰 격차가 있었다. 사교육비 역시 차이가 컸다. 서울 강남지역 학생은 평균 79만3500원을 써 사교육비 지출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거듭 확인됐다. 읍면지역 학생은 평균 16만1300원을, ㅇ·ㄱ구 학생들은 평균 41만600원을 썼다.

 

지역별로 수능점수는 큰 차이가 나지만, 학급당 학생 수나 교사 1인당 학생 수 등 학교 교육여건에서는 지역별 격차가 크지 않은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오히려 학급당 학생 수(서울 34.22명, 읍면지역 29.10명)나 교사 1인당 학생 수(서울 16.74명, 읍면지역 12.70명) 등 객관적인 교육여건에서 읍면지역이 오히려 앞섰다. 이는 수능점수에 대한 공교육의 영향력이 크지 않음을 보여준다.

 

부모의 소득과 학력 이외에 직업도 수능점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버지가 고위 전문직 및 행정관리직인 경우 수능점수 평균이 324.13점인 데 비해 생산직 및 기능직에 종사하는 아버지를 둔 학생은 평균 287.72점을 기록했다. 일반 기술직 및 사무직 종사자 자녀들은 303.97점, 판매직 및 서비스직 종사자 자녀들은 299.57점을 얻었다.

 

이번 연구에서 부모의 소득이나 학력에 따라 분류한 학생집단의 수능 평균점수는 해당 지표와 한치의 어긋남 없이 정비례했다. 특히 부모의 경제력 및 학력, 사교육비 지출 규모, 수능 점수 등 3가지 요소가 모두 비례한다는 사실은 ’학력 대물림’ 현상이 사교육을 매개로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력 차이→사교육 기회의 차이→수능점수 격차’라는 교육 불평등의 악순환 고리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김 교수는 “전통적으로 계층간 간극을 메우고 사회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인식돼왔던 교육이 이제는 계층 고착화·양극화의 핵심 요인으로 여겨지고 있다”며 “선진국에서는 교육격차를 줄이기 위한 대책 수립에 힘을 쏟고 있으나 우리는 그동안 교육복지 투자에 인색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학업성취가 상대적으로 뛰어난 소외계층 자녀들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포부를 미리 접거나 하향 조정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용현 기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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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우리 안의 모순에 가슴으로 답하라

모의국회 주제 선정에서 국가보안법이 3차투표까지 간 끝에 부결되는

 

아픔을 안고(이것 때문에 술 먹고 꼬장좀 부렸지 -_-) 그 대신에 선정된

 

교육법에 관해서 한 1차 세미나의 발제이다.

 

'교육의 시장화'라는 것을 중점으로 놓고 썼는데

 

사실 교육의 시장화라는 것도 워낙 범위가 넓어서 결국은 또 세부주제를

 

선정하기로 하였다. 난 그 세부주제 중에 '대학의 기업화'를 지지하지만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우리 안의 모순에 가슴으로 답하라

by 교육법 세미나팀장 유교

 

 

1. 들어가며

누구나 학교를 다니면서 교육 문제에 대해 고민해봤을 것이다. 교육법이라는 문제설정은 법으로 표현되는 차원을 벗어나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는 여러 제 교육모순들을 해결하는 것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제 교육모순 속에서 핵심모순을 발견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모의국회가 단순히 법안이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의 현상을 두고 토론할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교육법이라는 주제는 사실 그다지 명확하지 않다. 교육법은 교육에 관한 여러 법들을 아우르는 추상적인 명칭이기 때문이다.(현재 교육법 가운데 기본이 되는 것은 교육기본법이다.) 그리고 그 중 한 가지 법률에 대해서도 수많은 쟁점이 나올 수가 있으므로 더욱 더 이를 논의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주제와 쟁점, 논의사항을 명토박아두지 않으면 논의가 질서있게 되지 못하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교육팀의 책임자로서, 본론으로 확실히 들어가기 전에 문제점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겠다. 교육문제와 모순이 현실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요는 국립대 법인화, 대학교 지주회사 설립, 전문대학원 설립 등으로 대표되는 ‘교육의 시장화’에 있다.

 

2. 교육모순, 무엇이 본질인가?

자본주의의 최첨단 형태, 또 다른 얼굴인 신자유주의가 우리 사회 곳곳을 지배한 지 십 수 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각 영역에서의 공적 규제를 완전 철폐시키고 모두 시장의 영역으로 편입시키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이 현상을 감지할 수 있고 교육 분야도 전혀 예외가 아니다. 헌법상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자신의 의지보다는 자신의 계급, 계층에 따라서 교육받을 수 있는 정도가 더 좌우되게 되는 것이다. 부르주아와 상류층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욱 질 높은 교육을 받고 프롤레타리아트와 하류층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욱 질 낮은 교육을 받는다.

‘공교육’이란 말은 이미 허상이 되었고 이제는 아무도 이를 믿지 않는다. ‘사교육’이 ‘공교육’을 보완이 아니라 완전 대체하는 수준에 이를만큼 우리의 사회는 지금 깊숙이 시장 지상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물들어 있다. 그리고 한미FTA가 비준되어 교육의 세계화가 이루어진다면 더욱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교육모순은 그 자체로 독립되어 있는 모순으로 볼 수 없다. 교육모순은 계급모순으로 포괄할 수 있는, 환원시킬 수 있는 모순인 것이다. 따라서 교육모순의 본질은 바로 계급모순에 있고 따라서 계급모순의 중심성을 눈여겨 살펴야할 것이다.

3. 교육의 시장화,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

교육의 시장화는 여러 가지 형태와 제도로 구현되어 나타나고 있다. 국립대 법인화가 대표적인 것인데, 이는 이미 그러한 상황에 와 있는 사립대와 더불어 이미 반쯤은 시장의 영역에 편입되어 있는 국립대를 거의 완전히 시장의 영역에 편입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대학교라는 교육기관이 교육이라는 주기능보다는 수익사업이라는 부수적 기능에 더욱 더 충실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그리고 능력에 따라 교육받는다는 구호가 난무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여기서 능력이란 개인의 노력보다는 개인의 출신 성분에 훨씬 구애받기 때문에 교육의 불평등성을 더욱 심화시킨다. 게다가 요즘에는 이에 더 나아가서 지주회사라는 것까지 등장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

대학교육 부문만 이런 것이 아니다. 대학교육 전 단계의 교육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역시 나타나고 있다. 학교에서의 수업보다는 사교육에 의존해야만 학벌 사회에서 더욱 높은 학력을 쟁취할 수 있는 구조로 더욱 더 재편되고 있다. 또한 수십 년 전에 교육 기회의 균등을 위해 실시한 고등학교 평준화도 이제는 각종 이데올로기적 공세로 인해 끊임없이 제도 자체의 필요성을 위협받고 있다. 3불 정책 폐기 압력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4. 교육의 시장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교육의 시장화에 대한 태도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하는 지배블록(부르주아 블록) 세력에서는 이를 적극 찬성하고 있다. 경쟁을 통해 개개인을 더욱 더 발전, 성장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근저에 깔고 교육을 시장에 맡김으로써 그것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인적자원의 개발을 바탕으로 세계화 시대에 다른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요지이다. 이는 교육문제가 단순히 개인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국가 경제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친다는 함의를 가지고 있다.

한편 기층민중을 중심으로 하는 피지배블록(프롤레타리아트 블록) 세력에서는 교육의 시장화에 대해 반대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먼저 교육을 통한 개인의 경쟁력 향상이라는 명제에 대해 비판적이다. 고등교육기관이 단순하게 예비노동자를 육성시켜 기업에 맞는 인간형, 기업이 원하는 인간형을 양성시키는 취업학교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등교육은 개인의 지성을 발현시켜주어야 하고 사회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전체적으로 꿰뚫어 보는 통찰의 눈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교육의 목적부터가 차이가 나는 것이다. 또한 교육을 시장에 맡기면 이러한 목적들이 달성되기 어렵기 때문에 교육을 공적영역에서 상당부분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그리고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말에 대해서도 과연 그것의 실체는 있는가, 국가 경쟁력이 강화된다고 극소수의 기득권층을 제외한 다수 민중의 생활이 나아지는가라는 의문을 갖는다.

이 둘의 주장은 입장에 깔려있는 기본 사상이 다른만큼 공론장에서 균형있게 다루어져야 할테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는 한쪽의 이야기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들리고 있다.(어느 쪽인지는 알 것이라 믿는다.) 그것은 역관계에 있어서 한쪽의 힘이 다른쪽의 힘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순수한 논리 대결을 하기보다는 각종 왜곡과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통해 다른 쪽의 목소리를 배제하기에만 급급했던 것이 우리 나라의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의국회에서 이에 관해 논의할 때는 현실에서 짜여있는 불균형적인 논의의 틀에서 벗어나, 각자의 입장을 당당히 밝혀 생각을 논의하는 장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5. 앞으로의 세미나 방향은?

지금까지는 개괄적으로 세미나에서 다룰 여러 가지 내용을 살펴보았다. 다음 시간부터는 이에 대한 구체적 내용과 자료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또한 크게는 교육모순이라는 대주제를 가지고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이라는 자원이 유한하지 않기에, 교육모순 중에서도 현 정세의 지배적 모순인 교육의 시장화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교육의 시장화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으며,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그리고 그 대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교육모순의 본질에 대해 사고해보고, 그것이 계급모순과 어떻게 결합돼 있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6. 문제제기와 마무리

사실 교육부문에서의 여러 가지 병리현상들을 단순히 법과 제도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교육문제는 계급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또한 계급문제는 자본주의가 철폐되지 않는 이상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자본주의의 동학, 문제에 대해 다룰 수는 없을 것이지만, 최소한 그 점을 염두에는 두어야한다. 이렇게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교육문제를 단지 완화시키는 것뿐이다. 아니면 더욱 더 악화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도 차선이라면 차선이다. 중요한 것은 관심을 가지고, 문제가 발견되면 그 문제에 대한 대책을 세워 열심히 노력하는 일이다.

지금의 글은 세미나 전반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에 오늘은 간략하게 영상을 보고 그와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그리고 아직 서로 잘 모르므로 자기소개를 통해 서로를 아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서먹서먹할지도 모르지만 곧 모두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최강의 스쿼드를 가진 축구팀이라고 해도 팀워크가 맞지 않으면 성적이 제대로 나올 수 없다. 스페인의 국가대표팀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스쿼드가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축구팀이라도 예상 외의 성적을 낼 수도 있다. 2002 월드컵 당시의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처럼 우리도 앞으로 친해져서 실전 모의국회에서 대박을 터뜨릴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글을 이만 줄일까 한다.

<첨부>

[제목] 대학들 지주회사 설립 붐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 대학들이 수익 창출과 외부 자본 유치 등을 위한 ‘지주 회사’ 설립에 나섰다. 이는 지난 7월 국회에서 대학이 주식회사 형태의 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서울대 ‘SNU 홀딩스´ 내년 출범

 

가장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서울대는 이르면 내년쯤 지주회사인 ‘SNU 홀딩스(가칭)’를 출범시키는 것을 목표로 관련 규정의 제·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사업 기반이 될 교수들의 연구 및 창업 활동이 학교에 귀속되도록 규정안을 만들었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은 7일 지주회사 설립을 위해 교내 연구의 제반 사항을 아우르는 ‘서울대 연구 규정’, 교수들의 창업 관련 사항을 관리하는 ‘서울대 교원 창업기업의 학교에 대한 주식 기부에 관한 규정’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연구 규정은 서울대 교수가 맡는 연구의 내용과 결과를 학교와 해당 교수가 공동 소유하고, 지적재산권 및 사업화 문제도 양측의 협의에 의해 진행하도록 했다. 창업기업에 관한 규정은 교수가 창업을 하면 학교에 통보하고 소유 지분 크기에 따라 2∼5%를 주식이나 스톡옵션으로 산학협력단에 기부하도록 했다.

 

산학협력단 관계자는 “지주회사 설립은 관습적으로 운영되어온 연구규정을 명문화해 교수들의 연구 활동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이익을 공유하기 위한 초석 단계”라고 말했다. 지주회사의 외부 자본 참여 가능성도 열어놨다. 국양 서울대 산학협력단장 겸 연구처장은 “지주회사를 설립할 경우 외부 자본에 맡길지 학교에서 운영할지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세대·고려대도 추진

 

연세대는 BT(생명공학)·IT(정보통신)·NT(나노기술)로 특화된 지주회사를 이르면 내년쯤 설립할 계획이다. 박진배 산학협력단장은 “성공적으로 운영 중인 연세 창업센터와 학교내 벤처를 연결시킬수 있는 지주회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중점 부분은 이공계 분야 사업으로 BT·IT·NT 부분을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세대도 외부 자본을 영입할 가능성이 크다. 박 단장은 “학교 자본으로 설립하기에는 규모가 작을 수 있어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면서 “학교 내 기업의 경영이나 컨설팅 노하우도 축적할 수 있어 이익 창출에 효과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려대는 관련 법안 시행령이 국무회의에 상정되는 시점인 올해 말까지 로드맵을 발표할 계획이다. 김지룡 산학협력단 창업기술지원팀 과장은 “지난해 법안 발의 공청회 단계부터 내부적으로 논의를 시작했다.”면서 “12월까지 로드맵을 발표할 것이며 어느 기술 분야에 주력하느냐에 따라 특성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서재희 강국진 이경주기자 s123@seoul.co.kr

 

1)이러한 모순이 바로 우리의 삶과 직결된 모순, 우리의 모순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2)교육 및 교육제도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정한 법률. 예전에의 ‘교육법’이 바로 이 법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글에서 간혹 나오는 교육법은 한 가지 법률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교육에 관한 여러 법들을 포괄하여 지칭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명심해주길 바란다.

3)‘명토박다’라는 말은 ‘지적하다’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4)대표적으로 로스쿨, 메디컬스쿨을 들 수 있다.

5)교육모순과 계급모순은 ‘중층결정’의 관계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는데 둘 중에서 계급모순이 더 우세하게 작용하므로 엄밀히 말하면 ‘과잉결정’의 관계에 놓여있다고 보아야 한다.

6)사립대와 비교하면 아직은 그래도 국립대가 나은 편이지만, 치솟고 있는 등록금 인상률은 계속적으로 대학의 문턱을 높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국립대 법인화가 완결된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사립대와 별반 차이가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7)얼마 전 서울대에서 ‘SNU 홀딩스’라는 지주회사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이는 언론에서 비중있게 다루어졌다.

8)평준화 지역 재학생보다 비평준화 지역 재학생이 더 성적이 좋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이는 기성언론을 통해 비중있게 다루어진다. 그러나 주장을 매몰되어 연구자료를 왜곡하여 해석한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9)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본고사를 금지하는 정책을 이른다.

10)예전에는 대학교만 나오면 출세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지만, 대학생이 300만이 육박하는 지금에는 그저 옛날의 전설일 뿐이다. 대졸은 더 이상 특권이 아니고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웬만하면 획득할 수 있는 지위가 되었다. 청년실업이 급증한 지금, 대졸이라는 스펙만 가지고는 어디서 명함 내밀기도 힘들다.

11)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학교는 이미 ‘지성의 요람’의 지위를 상실한 지 오래되었다. 취업과 고시에만 매달리는 ‘병든 지성’들이 각 대학교 도서관을 가득 메우고 있다. 물론 이는 단순히 개인들만을 탓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구조적 요인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12)‘기업하기 좋은 나라’도 똑같은 맥락에서 나오는 말이다. ‘노동하기 좋은 나라’는 만들면 안 되는 것일까?

13)계급적 차이가 있어도 교육기회가 상대적으로 균등하게 있다고 생각되고 대학이 평준화 돼 있는 ‘프랑스’마저도 특권 계층을 위한 학교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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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랜드, 뉴코아 투쟁에 뜨거운 지지와 연대를

전날 단운위에서

 

2007 2학기 관악 사회대 개강집회 때

 

이에 관한 발언을 요청받았는데

 

늦잠을 자서 -_- 10분만에 개날림으로 쓴 글이다

 

왜 매일 글을 여유있게 쓰지 못하고 마감시간이 되어서야

 

쓰는지.. 버릇좀 고쳐야겠지만 아무튼 내용보다는

 

실제로 발언했을 때 좀 감정을 섞어서 반응이 좋았다 ㅋㅋㅋ



안녕하세요? 저는 진보의 요람 사회대 민중 복지의 한길로 06학번 대표 오유교라고 합니다. 한참 무더웠던 여름 더위도 한풀 꺾이고 이제 날씨도 선선해지는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그러한 날씨만큼이나 이랜드, 뉴코아 투쟁도 불꽃처럼 힘차게 타올랐습니다. 1차 점거 뒤 연행, 2차 점거 뒤 연행 그리고 계속되는 주말 매출제로 투쟁으로 이랜드 일반노조 조합원들과 연대 동지들은 다시금 현시기의 자본의 폭압적인 탄압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장만능주의가 마치 옳은 진리인양 누구나 외치고, 그에 따라 헌법에 보장된 노동조합의 파업이나 투쟁은 경제성장을 위해서 어느 정도 희생되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노동에 대한 자본의 압도적 우위가 관철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분야에 걸쳐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곳곳에서 목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지난 7월 1일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되었습니다. 말로는 비정규직 보호라고는 하지만 실상을 보면 비정규직을 확산시키고 비정규직을 영구히 존속시키려는 법안이나 다름없습니다. 2년 이상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조항은 현실에서는 2년도 고용도 하지 않고 해고를 하는 단기계약, 초단기계약이 성행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파견의 범위도 크게 넓혀, 이제 대다수의 직종에서 비정규직을 쓸 수 있게까지 만들었습니다.

이런 기만적인 비정규직 보호법의 모순이 극적으로 표출된 것이 바로 이랜드, 뉴코아 투쟁입니다. 0개월 계약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계약까지 하다가 급기야는 대량 해고로까지 이어져, 이랜드, 뉴코아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존권을 실질적으로 박탈하게 되고 만 것입니다.

처음에 제가 이 사태를 접하게 되었을 때는, 이 투쟁이 이렇게 오래갈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만큼 어려운 노동운동도 없고, 강력한 자본의 탄압에 의해 금방 와해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으로 비관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금세 오판으로 드러났습니다. 그전까지는 투쟁이라는 말도, 파업이라는 말도, 동지라는 말도 잘 모르던 이랜드 조합원들이 ‘민중가요’를 부르고 ‘마임’을 하고 ‘점거’를 합니다. 그 동안 찍소리 하나 못했던 이랜드 그룹 박성수 회장에게 직설적인 말과 구호를 날립니다.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동안 노동자로서의 계급 정체성을 확고이 하지 못했다면, 투쟁을 통해서 노동자로서의 계급 정체성을 다시금 확고히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랜드 조합원들의 강력한 의지와 행동에도 불구하고 이랜드 투쟁은 아직 승리하지 않았습니다. 이랜드 투쟁은 단순히 한 회사와 그 회사의 노조의 싸움이 아니라, 노동시장을 유연화시켜 더욱 더 노동자를 착취하려는 자본과, 그에 맞서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고용과 임금을 보장하려는 노동의 사실상의 대리전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이랜드 그룹은 많은 손실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총자본의 선봉대로서 교섭을 성실히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이랜드 조합원들은 많이 지쳤을 것입니다. 3차 점거라는 수단을 쓰지 않는 이상, 이 투쟁은 아무래도 소강상태에 접어들 수밖에 없는 이 때에, 청년학생인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이랜드 투쟁에 뜨거운 지지와 연대를 보내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에 이런 사태를 보다 많이 알려나가는 것일 겁니다. 이랜드 투쟁이 종래에는 승리할 것으로 믿으면서 말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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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학생회의 의미와 목적

학련 1차 세미나 발제

 

이론을 참고하지 않고

 

그냥 내가 느끼는 대로 경험한 대로 썼다.

 

다시 읽으면 부끄러움이 많이 남는 글이다.



 

  학생회란 무엇일까? 지난 1년간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던 질문이다. 개인적인 경험과 사유로 그 동안 계속 고민을 이어오긴 했지만 딱히 단정하기 어려울 뿐더러 고민할수록 암울한 생각이 드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떨치려,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기 위해 세미나에 임하는 것인만큼 최대한 내 생각을 솔직하게 이번 글을 통해 펼쳐보려고 한다.

  과/반 학생회의 주요 기능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반 공동체의 유지/발전’이다. 새삼스레 이야기해보자면, 특정한 정치적 입장의 주장, 강요보다도 전술한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에 따라서 필자는 지난 1학기에 전혀 학우들과의 소통에서 정치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러한 류의 발화를 하는 동기나 선배를 제지하기까지 했다. 각종 정치적 행사를 겪으면서 갈등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적이 있으며, 형식적/실질적 지위로 의도적인 방해를 하기도 하였다.(개인적으로 3.8, 4.19, 4.30과 같은 정치적 사업에 전혀 참여를 하지 않았으며 지원하지도 않았다. 중립적 입장의 관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이러한 경향은 심화되어 갔으며 안 좋은 말로 하면 ‘반동화’가 되었다고도 외부에서는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행위로 인해서 정치적 지향에서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동기는 이제 더 이상 나를 동지로 생각하지 않으며 사이도 매우 소원해졌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며 생각해서 많은 반성을 하고 있으며 좀 더 융통성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학생회가 없는 지난 1년을 보내오면서, 반 공동체가 점차 와해돼 오는 것을 목도했으며, 이는 결국 ‘끼리끼리’ 문화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학생회가 있다고 해서, 이러한 개인주의의 절대적 경향, 개인의 파편화가 일거에 해소되거나, 불식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은 절대 아니다.(자본의 노동에 대한 힘의 절대적 우위가 관철되는 지금, 노동운동가들이 이러한 현실에 그저 포기하거나 조건 타령할 수만은 없고 그 힘든 지반에서 노력을 하면서 계급적 역관계의 반전이라는 이상적인 결과를 바라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이러한 경향에 대해 반전을 꾀하고 정치적 사상이나 생각이 어떻든 간에 서로 잘 어울리는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계기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개인적으로 우리 반에 대한 자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학생회가 없는 타 과/반에 비해 우리의 공동체는 나름대로 잘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학생회가 있던 작년보다 학생회가 없는 지금이 이 측면에서는 훨씬 월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장기적으로 볼 때 일시적일 수밖에 없으며, 점차 경향적으로 저하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올해와 같은 현상은 실질적으로 반 대표 역할을 하고 있는 나의 역량을 많이 소모한 등가교환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학생회가 없는 상태에서 앞으로도 나와 같은 이가 반을 책임지리라고 보는 것은 너무나 우연에 기대는 허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자칭 활동가라고 하는 개인에게 사적으로 운동에 도움이 되는 쪽보다는 쓸데없는 곳에 물심양면으로 지치게 할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전체 운동에서도 손실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리고 광역화 체제의 산물인 과/반은 본질적으로 구성원들끼리의 유대감이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아직은 그 구성원들을 제대로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과 자치회가 강화, 발전되었을 때의 결과를 생각해보면 과/반과의 관계에서 엄청난 파열음을 낼 것이다. 이는 물론 단기적으로는 실현되지 않겠지만, 수 년 후에는 그러한 상황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러한 예상을 한다고 해서 학생회에 대한 포기를 합리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광역화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와 과/반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인식 공유를 통해 보다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야 함은 물론이다.

  또한 기능주의적이고 관료적이긴 하지만, 기본 사업의 효율적 집행이라는 면에서도 학생회는 유효하다. 개강파티, 종강파티, 총엠티, 장터, 일일호프, 농활과 같은 사업들은 대다수의 과/반 구성원들이 암묵적으로 참여를 원하고 따라서 당연히 추진해야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는 몇몇 주체들이 계속적으로 추진하기에는 상당한 애로가 따른다. 물론 그 주체의 역량과 의지에 따라서 좌우되긴 하지만 이 역시 우연적인 것으로서, 학생회라는 기구가 존재할 때의 상황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필자는 반의 주체로서 저러한 기본적인 사업들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추진했고 별 어려움이 따르지 않았지만 이건 ‘특수한 상황’일뿐이다. 지형과 조건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물론 지금의 학생회 역시 소수 몇몇이 꼬라박는 구조라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는 있지만 접근의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특수성을 보편성으로 치환시킨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학생회의 목적과 기능이 단순히 저것에 국한된다면 필자는 차라리 학생회가 그렇게까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학생회를 운동의 ‘도구’로 보는 관점은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부인하지는 않는다. 물론 특정한 정치적 입장의 강요, 관철에는 반대한다. 하지만 정말로 낮은 수준에서의 소통의 담보는 이루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개인이 하기에는 너무나 부담이 되는 일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신념이 투철한 개인일지라도 전혀 정치적 담론이 부재한 상황에서 정치적 주장을 하는 것은 다른 학우들과의 관계의 희생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만 하는데 이는 선뜻 내키지가 않는 일이고 이에 따라서 그러한 말을 하게 될 용기를 상당부분 감소시키게 된다. 그러나 학생회가 정치사업을 최소한이라도 펼쳐낸다면, 그에 따라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모두가 어떤 민감한 정치적 이슈/문제에 대해서 고민이라도 해보게 되고, 말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연쇄적으로, 학생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이 주요하게 생각하는 활동가의 재생산도 더욱 더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게 될 것이다.(물론 고등학생 때부터 빨갱이였던 사람은 논외로 한다.)

  공론장이 밖으로부터의 왜곡과 위로부터의 억압으로 인해 뒤틀려 있는 한국 언론계의 현실을 타파하려는 평생의 꿈을 가지고 졸업 후 장차 기자가 되려고 하는 필자로서는 과/반 내에서의 공론장의 형성에 관심이 가는 것은 거의 본능에 가깝다고 봐야할 것이다. 지금의 우리 반 상황으로서는 이것 자체가 안 되고 있기 때문이 필자는 학우대중들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전술했듯이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이를 다르게 판단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필자는 타인의 시선이나 충고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물론 사회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잘못된 태도이지만, 나는 이제껏 이렇게 인생을 살아왔다. 후회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신조이다.)그러한 것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이상이 필자가 생각한 학생회의 의미와 목적이다. 학생회론에 대해서 작년부터 개인적으로 학습한 경험이 있는 필자로서는 좀 더 이론적이고 다양한 시각에서 글을 써내려갈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의 학생운동 지형과 세미나 기조에 비추어 봤을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지난 1년 간의 경험을 토대로 솔직하게 써보았다. 필자와 다른 지형, 상황에 처해 있는 다른 반 학우들은 동의하지 않을 내용이 있을 수도 있고, 매우 공감이 가는 내용도 있을 것이다. 서로의 입장과 견해는 다를 수밖에 없다. 모든 인간이 획일적이지 않은 이상 갖고 있는 생각은 사회화와 재사회화를 통해 상이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다른 가치와 견해들을 논의와 고민을 통해서 변증법적으로 도출해내 한 단계 성숙한 논의로 발전시키는 일일 것이다. 학생회 연금술사(학련)은 바로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며, 모두 이에 대해 동의한다고 믿으면서 글을 끝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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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국가보안법 폐지냐? 개정이냐?

  2007 27대 모의국회 주제 선정 와중에 국가보안법에 관해서 쓴 발제인데

 

사실 1시간만에 발로 써서 그닥 질이 높지도 않고 편향적이고 감정적이기까지 한

 

단점이 있지만 너그럽게 봐주시길 ㅋㅋㅋ



 

  국가보안법 폐지냐, 개정이냐?


  국가보안법, 언제나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어왔던 이슈 중 하나이다. 국가보안법이 특정 인사나 단체에 적용될 때는 xxx사건 식으로 크게 보도되곤 한다. 언론-특히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기성보수언론(필자는 이들을 ‘진정한 보수’로 보지는 않지만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표현을 쓰기로 한다.)-은 우리나라에 큰일이라도 일어난 양 호들갑을 떨곤한다. 흔히 얘기하는 ‘색깔공세’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에 한 발자국 더 나가면 ‘북쪽과의 연계성’까지 주장하곤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이러한 공론장1)의 왜곡 때문에 국가보안법에 대한 논쟁이 공정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폐지에 찬성하는 쪽을 ‘국가전복세력’, ‘빨갱이’, ‘좌경용공분자’, ‘친북좌파세력’으로 치부해왔던 것이다. 이 규정을 통해 이성적인 논의는 없어지고 오직 감정싸움만이 존재하는 결과가 초래되게 된다. 현실정치에서의 공론장의 왜곡과 배제를 넘어서서, 순수하게 논리로만 대립하는 하나의 장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보안법을 모의국회에서 다루는 의의가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필자의 경험 하나를 이야기해볼까 한다. 매년 5월 축제 시기에는 많은 과, 학부, 과/반, 동아리가 장터를 통해 돈을 벌고 친목을 도모한다. 하지만 학생들만이 장터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회관 앞에서 장터를 하는 ‘민가협’과 ‘유가협’이 바로 그것이다.2) 멋모르고 속없던 1학년 시절에 그래도 이 단체들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기에, 둘 중에 ‘민가협’ 장터에 가서 뭔가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국가보안법 철폐가’3)를 불러드렸다. 예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반응이 무척이나 좋았다. 먹을 것을 권하는 아주머니가 계시는가 하면, 눈물을 흘리시는 아주머니도 계셨고, 한 번 더 부를 것을 요청하는 아주머니도 계셨다. 시간이 없어 인사만 드리고 나왔지만, 이 기억은 아직도 나에게 생생하다. 민가협 아주머니들, 할머니들은 이 국가보안법 철폐가를 수도없이 불러봤을 것이다. 옛날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은 대개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고 기소되고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내가 뭘 안다고 함부로 그 노래를 불렀을까. 단순히 치기어린 장난은 아니었을까. 그런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이후에 계속 국가보안법에 대해 사유하게 되었다.

  6월 항쟁 20주년을 앞두고 도처에서 평가작업이 행해지고 있다. 이런 평도 나오고 저런 평도 나오고 있지만 모두가 공통적으로 입을 모아 외치는 것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아직 도 걸음마 단계라는 것이다. 그 근거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진정한 자유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냉전의 잔재들이 아직도 사회 도처 곳곳에 남아있다. 이 때문에 진리 양심의 자유, 결사 표현의 자유, 정치 사상의 자유가 특히 침해받고 있다. 민주주의는 사회 구성원 모두를 포용해야 한다. 구성원 중 누군가를 특정한 이유로 배제한다면 그 구성원을 제외한 구성원 중 누군가가 또 배제당하는 악순환이 계속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는 민주주의의 이념을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것이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바로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인 것이다. 반면 폐지 반대론자들이나 개정론자들은 자유민주주의의 근본질서를 해치는 세력은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보안법은 기술적으로도 그 존재이유를 더 이상 찾기 어렵다. 국내의 주요 형사법학회들은 이미 국가보안법의 기능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렸다. 2004년 국가보안법 개폐 논쟁4)이 뜨겁게 타오를 당시, 국가보안법은 현재의 형법으로 대체가능하고 정 그것으로 부족하다면 형법으로 보완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는 폐지론에 더욱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또한 조국의 통일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에 의하면 북한은 휴전선 이북의 땅을 무단 점유하고 있는 ‘반국가 무장단체’이다. 실체가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으나,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른 남북관계 법률과도 대치된다. 이러한 법률 간의 모순은 현재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남북관계를 생각한다면 매우 비현실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민주민족애국인사들이 조국의 통일을 주장하다가 국가보안법에 의해 짓밟혀왔는지를 생각해보면 한숨만 나오게 된다. 정권은 ‘국익’을 이유로 이러한 목소리들을 무시해왔지만 무엇이 진정한 ‘국익’이었던가? 겉으로는 통일을 외치면서 속으로는 온갖 반통일적 획책을 자행하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국익’의 실체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태의 결과로 이 땅의 자주, 민주, 통일을 향한 발걸음은 조금씩 뒤쳐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떠한 사상이나 이념이 옳냐, 그르냐는 폐쇄되고 억압된 소통의 장에서는 전혀 실현될 수가 없다. 그것은 바로 올바른 ‘공론장’에서 실현 가능하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두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국가보안법이 폐지가 되면 광화문에서 인공기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상황이 펼쳐지는 것은 차치해두고라도, 그런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동조할 국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하여 이기면 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주체사상’보다 못할 게 없으며 훨씬 우수하고 대한민국을 이만큼 발전시키고 반면에 북한은 낙후된 현실을 생각한다면, 그러한 논쟁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제약없이 논쟁이 펼쳐질 때, 우리의 민주주의는 한층 더 성숙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말 자체를 꺼낼 수도 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인사들을 마구잡이로 잡아가고, 가두고, 죽이던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현대사의 아픈 질곡들이 과거사 진상 규명을 통해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으며 이는 우리의 탄식을 자아내게 한다.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되어 이제는 그다지 논쟁할 필요도 없다고 하지만, 이렇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 법이 언제 다시 우리의 사상과 행동을 옥죄고 제약할 지는 그 누구도 모를 일이다. 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사상이나 세력들을 완전히 용인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의 적용을 받아오던 사람이나 집단은 대부분 우리의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진정한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마음에서 국가보안법상으로는 인정할 수 없는 행동을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다. 법률용어로 따지자면 ‘미필적 고의’쯤 되겠다. 물론 이에 반대되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현실 공론장의 내적 배제와 외적 왜곡을 극복하고 모의국회라는 하나의 이상적인 논의의 장을 통해 각자의 목소리와 입장들을 더욱 분명히 하고 어떻게 하면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문제들을 슬기롭게 풀 수 있을지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1) 독일의 사회철학자 하버마스의 개념으로, 간추려 말하면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참여해서 여론을 형성하는 마당’이라 할 수 있다.

2) 이들은 민주화운동 관련 가족들의 협의체로서,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3)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몸을 짓눌렀는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노래로, 한번쯤 들어보길 권장한다. http://www.plsong.com의 노래검색란에 제목을 치면 나온다.

4) 노 대통령의 ‘국가보안법은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한다’는 말로 시작된 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 시도는 그 동안 국가보안법으로 탄압을 받아오던 이들의 압도적인 지지-단식과 서명 등-로 탄력을 받고 여론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였지만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수구냉전세력과 기득권층의 집중 포화를 맞고 결국에는 야합을 하게 되어 참여정부의 개혁 좌초의 사실상의 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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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50대 총학 선거에 대한 단상

  처음으로 총학생회 선거에서 선본원으로 활동했던 50대 총학생회 선거가 지난 4월 19일에 거행되었

 

던 개표를 끝으로 마감되었다.(사실 선본에 이름만 올려놓고 한 건 쥐뿔도 없지만 말이다.) 이번 선거는

 

나에게 있어서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일단 작년 얘기부터 하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자세히 보시려

 

면 아래를 클릭.



  사상 최악의 투표율로 무산되었던 지난 겨울, 당시 대부분의 관악 학우와 마찬가지로 나도 별로 선거

에 관심이 없었다. 49대 총학생회 재선거 선관위원을 하고 선거를 성사시키면서, (여기 들어올 만한 이

들은 별로 공감이 안 가겠지만) Suprise 선본에 나름 기대를 했던 나의 희망은 시간이 지나면서 산산이

조각나기 시작했다. 사상 초유의 총학생회장 탄핵 현장을 목도하면서, 마음 속으로 총학생회에 대한 '사

망선고'를 내렸다. 이후 보건의료노조 사태가 일어나면서 부총학생회장이 사퇴하게 되면서 혼란은 절정

으로 치달았다. 학우들은 운동권과 비권의 무의미한 논쟁과 갈등에 등을 돌렸고, 학생사회와 학생회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리고 그러한 흐름의 현실을 보여준 것은 바로 겨울의 단대 선거였다. 자연대, 공대

는 20% 정도의 투표율로 선거가 무산되었고 법대, 미대, 농대는 등록을 한 선본조차 없었다. 내가 속한

사회대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었지만,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연장 끝에 50%를 겨우 넘는 투

표율을 기록했고, 과/반 학생회는 절반도 서지 못했다. 바로 이것이 작년 겨울의 처참한 관악의 정치 지

형이었다.

 

  물론 올해 들어서 이러한 상황이 딱히 호전됐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2007년 상반기 임시 전

학대회는 무산을 앞둔 11시 30분 정도에 겨우 정족수를 채워 시작할 수 있었다. 대표들조차도 의무도

책임도 지지 않는, 뇌사상태에 빠져 있다고 자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던 것이다. 학내 현실뿐만 아니

라 학외 현실도 비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고용의 불안성을 조장하는 '비정규직 개악안', '신노사관계 로

드맵'이 국회에서 통과되었고,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명목으로 한반도를 침략적 전진기지로 재편하는 '평

택미군기지 이전확장 계획'이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투쟁 포기로 일단락 되었고, 전 사회의 신자유의

적 재편의 결정판인 '한미 FTA'가 타결되었다. 이러한 투쟁들의 패배의 요인으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

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각 개인들이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고 싶다. 

 

  아무튼, 이러한 비참한 학내/학외 현실 속에서 살아가면서, 나는 점차 의욕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해

도 안 되는 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욕할 사람이 있겠지만, 정

말 힘들었다.(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실 조건이 힘들면, 그 조건을 바꿔내기 위해서 싸우면 되고, 싸워

야 한다. 말은 참 쉽다. 하지만 실천은 어렵고 그에 대응하는 개인은 무력하다. 예전에 신년사에서 이러

한 상황의 해결책으로 벗들과 함께 하기를 주장(호소)했지만, 그것마저도 잘 안 되는 듯 싶어 안타까웠

다.

 

  이렇게 절망에 빠져 있을 때, 50대 총학생회 선거가 시작되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선거라도 해서 무

언가를 하고 있다며 자족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선본을 뛰기로 했다. 작년 여러 활동의 부산

물로 인해서, 이곳 저곳에서 접촉을 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만큼은 주변 선배나 지인을 통해서 아는

사람끼리 선거를 하기보다는, 내 정치적 지향과 가장 비슷한 곳에서 뛰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진보의

正道, 615 선본이었다. 비판할 점이 아주 많은 선본이지만, 솔직하게 '운동'에 대해서 선거 기간 동안

이야기를 풀어가는 곳은 그 곳뿐이었다.(혹자는 그래서 이번 선거 구도를 비권3 vs 스포츠권3 vs 운동

권1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렇게 선본을 결정한 후, 선거 운동을 열심히 해서 의욕을 되찾고 싶었다.

사회변혁에 대한 열망을 되찾고, 서울대 학생사회의 부활과 지형 변화를 위해 힘차게 결의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상처가 너무 큰 탓인지 결국 투표소 지키는 것과 개표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 아니 하지 않았다. 열심히 살지 않는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만 나날이 늘어갈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자신을 활동가라고 여기는 헛된 망상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불릴 자격도,

의지도 없는 무능력한 상태에 빠져 있으면서 말이다. 시기는 벌써 2007년 4월이 되었음에도, 생각은

아직도 2006년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나에 대해서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이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들에게 실컷 욕을 듣고, 무언가를 할 의욕이 생겼으면 좋겠다. 하지만

당분간은 아니 영영 그렇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이 현재의 나에 대한 나의 냉철한 판단이다.

 

  자조는 그만두고, 선거 얘기로 돌아가보겠다. 50대 총학생회 선거는 연장투표 없이 성사되었다는 것

빼고는 그렇게 좋은 평가를 내리기 힘든 선거였다. 일부 선본은 각종 할인 공약으로 외부 언론의 조명

을 받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고, '운동권'으로 분류되는(개인적으로 이렇게 나누는 것을 싫어하

지만) 선본들은 사회 문제에 대한 목소리와 인식을 보여주는 것에 인색했다. 이번에 당선된 Spotlight

선본에 대해서 우리 반 새내기는 '운동권인줄 몰랐는데?'라는 반응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대학국어

Pass/Fail 공약에 혹해서 투표한 사람들이 (내 주변에는) 많았다. 득표 전략 그 자체로만 따지면 물론

훌륭하다고 볼 수 있으나, 과연 그렇게 선거 운동을 해서 당선된 선본이 사회적 실천에 '빡세게' 연대

했을 때 학우들의 평가가 어떠할 지는 불보듯 뻔한 일 아닌가? 이번 선거 결과가 학우들의 기대와 선

본의 현실이 다른 '동상이몽'일 확률이 아주 크다는 데에서 우려를 금치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미 결과가 지어진 상황에서 비판만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표가 끝난 뒤, '동지가'를 불렀

던 Spotlight 선본에 대해서 좋든 싫든, 서울대에서 '동지'로서 함께 살아가는 이상 그들의 활동에 대해

연대와 지지를 보내주며 힘을 실어주는 것이 최우선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서울대에서 그들이 최대

의 지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잘난 척'(이에 대한 예는 무수히 많으나 생략하기로 한다.)을 하며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힌다면 서울대의 학생사회는 이제 희망을 버려도 좋을 것이다.  비판적 지지세력으

로서 50대 총학생회를 때로는 애정어린 눈으로, 때로는 냉철하고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사회변혁과 학생사회 부활의 그 길에 Spotlight 선본과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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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관악에서의 지난 1년에 대한 회고(4) - 연석회의

   참으로 오랜만에 블로그질을 하는 것 같다. 그 동안 이런저런 일로 심경도 복잡하고 할 일도 많아서 때려치고 있었는데 오늘 갑자기 할 맛이 났다. 그럼 지난 1년의 회고를 계속 이어가볼까 한다. 이 회고는 단순히 추억을 자족하는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통해서 현재의 나를 돌이켜보고 좀 더 나은, 발전적인 삶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몸부림이라는 걸 염두에 두길 바란다.

  



  아마 때는 10월 초였을 것이다. 황라열 총학생회장이 탄핵 당하고 송동길 총학생회장 직무대행이 보건의료노조 사건을 계기로 사퇴를 한 뒤로, 49대 총학생회는 그야말로 공중분해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한 동안 총학생회는 부재 상태를 면치 못했고 그 기간이 여름방학 이었기에, 사상 초유의 사태였기에 딱히 학생사회 내에서 그 대안을 만들어 내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때 무엇인가 감정에 사로잡혀 학생사회를 위해서 무언가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때마침 단과대 학생회장단 회의라는 것이 꾸려진다고 했다. 그리고 그 회의의 의장은 그 열정과 진정성에 반한 진혜 누나였다.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에 대한 부채의식이 덧붙여져 결국 이 단짱단 회의에서 약소하나마 무엇을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반에서도 회계 같은 것을 맡아본 적이 없고 유일하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중학교때 교육감상까지 받게 만든 타자실력이었다.

 

 

  그랬다. 당시 단짱단 회의에서는 마침 속기할 사람도 마땅치 않았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일할 사람이 너무 부족했다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건대, 민주노동당 학위 사람도 별로 데려다가 쓰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 동안 연락도 안 하고 인사도 안 하는 불편한 관계였던(민노당 학위 사람들과는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진혜 누나에게 대뜸 문자를 보냈다. 속기할테니 맡겨달라고. 과거의 사소한 트러블은 잊어버리고, 신음소리를 내며 앓고 있는 서울대 학생사회를 위해 통합이 필요한 때였기에 진혜 누나도 흔쾌히, 아니 매우 반가워하면서 나를 맞아주었다.

 

 

  그리고 거기에서의 나의 임무가 시작되었다. 매 회의의 속기와 회의 내용 결과보고를 담당

하였다. 덕분에 당시 각 단대의 회장들을 지근거리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인평은 생략하기

로 한다.) 그것을 보며 대략이나마 각 회장들을 파악할 수 있었고 이는 후에 제50대 총학

생회 선거에서의 나의 애매한 태도에도 영향을 주었다. 각 단짱들은 학교에서 나를 보면

속기사라며 친근하게 대해주었고 어떠한 이유라고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그러한 것을

보면서 무척 기분이 좋았던 듯하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49대 총학에서 단짱단 회의로의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지 않아 분실물품도 여럿 있었고 결산도 제대로 되지 않았었다. 이는 나중에까지 문제로

이어져 제49대 총학의 해명을 요구하는 자보를 단짱단 회의 차원에서 쓰기도 하였고, 나

또한 제49대 총학에 대해 다시금 실망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서는, 이 '판'에 대해서도 점차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서로 하나가 되어서 학생사회의

발전을 꾀하기는커녕, 자신의 정파의 논리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거나(속어로 떽 받았다고

표현한다) 어떠한 발언을 함에 있어서 선거를 염두에 두어 몸을 사리거나, 지극히 정치적

인 공격을 일삼기도 하였다. 온갖 인신공격과 왜곡, 과장이 난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정치

였다. 물론 이러한 정치의 본질을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속한 바로 이 곳에서도 똑같

이 재현되고 있다는 것에 다시금 좌절을 느꼈었던 것이다.

 

 

  불미스러운 일도 많았고 기분이 좋았던 일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은 일은 아마

도 하반기 전학대회 준비인 듯하다. 정말 오랜만에 높은 목표를 두고 한걸음씩 나아가는

기분을 맛 보았던 것 같다. 자료집 편집은 오롯이 내가 했고, 또한 그런 일을 하는 것을

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자부심을 가졌다. 특히 전학대회 일주일 전부터는 자료집 준비에

바빠 매일 총학실에서 새벽 늦게까지 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형용할 수 없이 기뻤다.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했기에, 그리고 그러한 일이 내가

딛고 있는 이 곳을 미약하나마 좀 더 나은 곳으로 진보케 한다고 믿었기에 그리고 다른 이

들이 그에 대해 나에게 칭찬해 주었기에. 그리고 절정은 바로 하반기 전학대회 속기에 있

었다.

 

 

  전학대회는 역시 예년과 같이 예정보다 몇 시간 늦게 시작되었다. 어찌 생각하면 성사된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만큼 학생사회가 많이 침체 돼 있고 어렵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전학대회의 속기를 내가 맡아 열심히 속기했다. 장장 10시간 넘게

걸린 전학대회에서는 많은 논의가 오고갔다. 하나 하나 대의원의 발언을 새겨 들으면서

정신을 가다듬으며 속기를 하였다. 그러한 말들 중 일부는 무시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흩어진 말조차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끔씩 생산적인 논의가 진행되기도 하였으며, 정말 말을 잘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에게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하게 만든 말도 있었다. 다만 회의가 길어지자 대의원들은

점차 지쳐갔고 했던 말이 계속 반복되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

이 다 지나갔고 나의 속기는 끝이 났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성취감을 맛보았다. 패배감

에 빠져 있던 나에게 또 다른 자신감이 심어졌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사건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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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 임시 반운영위원회를 제안합니다

임시 반운영위원회를 제안합니다.

현재 우리 반에는 학생회가 없습니다. 작년의 24대 학생회를 끝으로, 한길반에서 학생회가

서지 못했기 때문이죠. 반운영위원회라는 것은 원래 학생회가 존재하는 바탕 위에서 학회장,

집부장, 각 학번대표들이 반의 사업계획과 활동방향을 시기별로 정해나가는 하나의 틀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학생회가 부재하기 때문에 반운영위원회가 열리지 못하고 있고 이는 반의 기본

적인 운영이나 최소한의 담론 형성, 공론의 장조차 만들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한길

반의 현실입니다.


이것은 시급한 당면 과제입니다.

3월은 특히 다른 어느 때보다도 반 행사나 반 일이 무수히 많이 치루어지는 달입니다. 새맞이

의 연장선상에서 새내기가 대학생활에 적응하도록 도와줘야 하는 때에, 논의의 장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하면 한길반이라는 과/반 공동체의 유지도 힘들어질 것이고 지금도 열악한 과/반

의 사정은 더욱 더 악화되는 길을 걷게 될지도 모릅니다. 당장 해야할 일도 태산 같이 쌓여있기

때문에, 더 이상 이런 식으로 반이 방치되는 것을 두고볼 수만은 없습니다.


물론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흔히 학생회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꼬라 박는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곤 합니다. 책임감과

의무의 멍에를 지고, 참여가 저조한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또는 소수가 그 많고

무거운 활동의 짐을 져야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단순히 한 과/반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

고 관악 전체에 적용되어 왔으며 모두가 즐겁게 참여하고 즐겨야할 반의 행사를 개인의

헌신적인 희생에 기반한다는 부작용을 낳아왔습니다. 기존 반운위는 한정되고 고정된 주체

들이 참여해왔으며, 이는 그 주체들의 개인적 사정에 따라 반 활동이 축소/확장되는 불안

성을 내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그 틀을 깨고, 참여하고 싶은 이는 모두 참여하

고 참여한 이가 의결권 및 발언권을 갖는 운영위원회를 새로이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합

니다. 많은 이들의 참여로, 우리 반이 항상 활기를 띠고 늘 즐거운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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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2007년을 바라보며

  정말로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2006년이 지나갔다. 지난 한 해는 그야말로 한국적 모순과 세계

 

적 모순이 극에 달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지역주의는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망령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이로 인한 사회적 분열과 갈등은 치유되지 않은 채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사회적 양극화는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의료 가릴 것 없이 사회의 제 분야에서 엄청난 파괴력

 

을 발휘하고 있고 파편화된 개인들은 자본의 운동 속에서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으며 연대의 정

 

신도 사그라들고 있다. 초국화된 자본의 세계화를 가속화하는 한미 FTA의 협정도 곧 체결

 

된다는 소식도 들려오며, 5년 연기된 평택미군기지 이전 협정에 대한 책임을 대추리, 도두리

 

주민에게 전가하는 볼썽사나운 정부의 모습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비정규직 개악안과 신노사

 

관계로드맵의 통과로 불안정 노동은 기존보다 더욱 더 확산될 기로에 놓여 있으며 이는 역시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국민경제의 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주입을 하고 있는 주류

 

언론과 국가의 여러 상징조작과 여론의 형성 및 선도를 통해서 별 저항없이 대중들에게 받아들

 

여지고 있다. 날이 갈수록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는 미제국주의의 발악은 절정에 다다라

 

북핵 문제의 책임을 전적으로 북한에 돌리고 군사주의적 세계화 전략을 폐기하지 않은 채

 

이라크 전쟁에 이어서 이스라엘을 도와 레바논을 점령하려는 야욕을 부리고 있으며 이에

 

대한 세계인들은 '반미'로 응수하고 우호적이었던 국가들마저도 이라크에서 철군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학생사회도 그리 밝지 못했다. 2007년도 총학생회 선거에서 진보적 경향의

 

선본이 대거 낙선하는 사태가 발생했으며, 학생사회와 학생회의 전반적인 침체로 서울대에

 

서는 주요 단과대에서 선본이 등록을 안 하거나 투표율 미달로 선거 자체가 무산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개인들은 그러한 과정이 만들어

 

내는 여러 모순과 병폐들에 맞서서 싸우거나 최소한 비판적인 입장에 서기보다는, 그에

 

편승하여 자기의 경쟁력과 상품 가치를 높여 남을 짓밟고 자신만 잘 살겠다는 철저한 이기

 

주의로 무장해가는 듯하다. 이처럼 앞이 보이지도 않고 전망도 없는 현실에 대부분의 운동

 

들은 죽어가고 있으며 잔존하고 있는 운동들도 국가와 그 제반 장치들의 상징 조작을 통해

 

여론에 부정적으로 돼 가고 있으며 국민들은 하지도 않은 '개혁'에 피로증을 느끼고 2007년

 

대선에서 무능한 개혁세력보다는 부패한 보수세력을 뽑겠다는 의사를 표출하고 있고 한나

 

라당의 집권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진 말자. 희망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가온

 

2007년에 이 땅을 위기의 땅에서 기회의 땅으로 만들어내자. 위기란 기회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진보에 대한 실날같은 기대를 하고 있다면, 단지 그 기대에서 끝나지 않고

 

이론에 대한 공부와 현실의 실천으로 직접적인 행동을 조금이라도 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사회의 제 모순과 부조리에 맞서 싸울 동력을 얻을 수 있다. 현실이 힘들다면 주위를 둘러

 

보자. 절대로 혼자가 아니다. 혼자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제대로 살펴보면 자기의 고민과

 

아픔을 같이해 줄 사람을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벗들이 있기에 세상은 의미가 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지치지 말고 끝까지 힘찬 투쟁을 통해 개개인의 삶을 옥죄어오는

 

병리현상들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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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관악에서의 지난 1년에 대한 회고(3) - 학4모

  방학이 되어서 거창하게 계획은 세워뒀지만, 막상 제대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생활 습관을 저녁형에서 아침형으로 바꾸고자 했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시도할 의지조차 박약해져가고 있는 시점에 놓여있다. 그나마 제대로

계속 하고 있는 것은 이 블로그질뿐인 듯하다. 그러면 지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볼까 한

다. 보려면 아래를 클릭하시든가.
 



 학4모에 가입하게 된 계기는 ‘그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여름방학이었다. 올

학내를 떠들썩하게 만든 주요 사건 중 하나인보건의료노조 학내 무단 진입사건

발생했다.(이 사건이 ‘그 사건’은 아니다) 그리고 총학생회 자유게시판과 스누라이프

서울대광장 게시판 등지에서 이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

다. 노조의 학내 진입을 옹호하고 도와준 단과대 학생회장들에 대한 성토도 만만치 않

았다. 이러한 비이성적인 여론과 마녀사냥을 보고 무언가 잘못 됐다고 생각했다. 물론

 

 

  학내 구성원 대다수의 포괄적인 동의와, 학교 측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회를 강행한 것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단순히 그 비판의 이유가 소음 때문

라면 이는 사안의 본질을 호도, 왜곡하거나 아니면 무지한 것이다. 전자 때문이라면

치적으로 특정 세력을 음해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으며 후자 때문이라면

생각하기 귀찮아서, 아니면 진정으로 생각이 없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폭행사건

에 대한 가치판단은 논외로 한다. 비록 보건의료노조가 사과성명을 내긴 했지만, 사건

당시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으로서 실상을 왜곡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외부단체의 학내 집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이다. 집회의 성격

은 무엇이고, 이유는 무엇이고, 왜 학교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충분한 학내

구성원들의 인식과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 동안 이런 것들은 제대로

돼오지 못 했고 학내에서 집회가 벌어지면 그 뒤에 나오는 것은 생산적인 논의이기보

다는 이 사건에서 나타난 모습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는 정치적으로 특정세력에

게 유리한 여론적 환경을 조성해주었다. 폭행을 당했던 L모씨는 아마 이 때의 일을 계

기로 인지도가 높아지고 동정심을 사게 되었으며, 이후 총학생회 선거 출마를 결심하

게 된 최초의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그 때의 몰지각한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던 나는 이중 아이디를 사용해서 총학생회 자

유게시판에서 노조를 옹호하는 편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총학생회 사이트의 가입

인증 절차는 단순히 이메일로만 이루어지며 따라서 한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아이디 개

수에 제한이 없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듯이 너무나 간단히도 발각되고 말았다. 그

리고 그 아이디 중에 실명도 있었기 때문에 실명을 대면서 비난을 하는 것을 보고 한편

으로는 두려웠고(아직 얼굴에 철판이 덜 깔렸을 시절이다) 한편으로는 죄책감이 들었

다. 그 이유야 어찌됐든 이중 아이디를 사용한 것은 도의적으로 잘못한 일이었으니 말

이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이 계속되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당시엔 계절 학기를 수강하

고 있었고 수강 과목 공부를 무척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발각된 이후로는 도저히 집중

도 되지 않았고 계속 그 기억이 나의 뇌리를 잠식하고 있었다. 결국 게시판에 사과문을

게재하게 되었다. 아마 새벽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마음을 일단 정하자 글 쓰는 것

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A4 3장 정도의 분량이었는데, 시간은 정말로 얼마 걸리지 않았

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동안의 스트레스와 부담감에 대한 반증이리라. 사과문에 이중

아이디 사용을 시인하고, 그 배경을 밝히는 데에 대부분을 할애하고 마지막에 짧게나

마 보건의료노조 사태의 합리적 해결을 위한 단견을 제시했다.
  

 

  사실 그 사과문의 핵심은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의 비판에 있었다. 이중 아이디 중 실

명 아이디 외의 다른 한 아이디의 닉네임은 “예속독재분단 민중패배”였다. 벌써 눈치

챈 사람이 있겠지만 “자주민주통일 민중승리”라는 학생정치조직(이 조직은 최근에 와

해되었다)과 정반대의 뜻을 가진 단어들로 조합된 닉네임이다. 그 계기는 이전 글에서

밝혔던 대로, 거기에 대한 경멸과 환멸감을 느꼈고 차마 실명으로 비판할 용기는 없어

(이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익명을 통해서 비판하기 위함이

었다. 솔직히 말해서 말이 좋아 비판이지 전혀 생산적이지는 않았다. 어떤 잘못을 하면

다른 사람과 더불어 같이 공격하는 식이었으니 어찌보면 아이디를 새로 만든 것 자체

가 애당초 잘못된 일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아이디가 보건 의료노조를 옹호하기

위한 아이디로 사용 됐다가 이중 아이디로 걸린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사과의 이유

로 다시 그렇게 아이디를 만든 이유로 환원된 것이다. 이런 행동을 함에 있어서, 특정세

력을 공격함으로써 내가 살려고 했다는 의도가 조금이라도 없었다고 부인할 수도 없

고 부인하지도 않겠다. 그리고 그러한 나의 의도가 결과적으로 들어맞았다. 솔직하게

털어놓음으로써, 그 당시에 보건의료노조 사태에 대한 어떠한 입장도 공개적으로 밝

히지 않은(실제로는 옹호하면서도) 단과대 학생회장들과 대비되었고, 사과문에서 비난

한 정치세력(안 그래도 이미지가 부정적인데)은 파렴치한 집단으로 부각되고 나는 그

에 당할 뻔한 불쌍하고 순진한 새내기로 봐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로써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착각이다. 어디까지나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이용할 뿐이다. 그리고 나도 그 당시 분위기에 발맞춰서 ‘대세

를 더욱 더 강화하는데 이용되었을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사과문을 올려

서 용서해 주었던 사람들도 (일부는 그렇지 않겠지만) 언제든 정치적 입장이 달라지면

예전의 과오를 지적하며 나를 공격할 사람들이다. 이는 비단 학생사회에서만 적용되

는 것도 아니고 정치가 있는 모든 곳에서 그렇다. 다만 그 형태와 강도만 달라질 뿐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에 ‘심리적 주술’이라도 걸린 양 나는 반동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단

과대 학생회장 학적 문제’, ‘보건의료노조 문제의 해결 방법’ 등등의 여러 정치사안에

있어서 ‘반동적 운동권’들의 입장을 지지하고 생각을 같이 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만남

을 가지면서 제22대 수의대 회장의 생각에 동조해주었고 때로는 지지하는 쪽지를 보내

기도 하였다. 그 내용은 대략 이랬던 것 같다. “그 동안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올

바르지 못한 일이 학생사회에 자행되어왔을까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섭고도 화가 납니

다. 학생회비 유용도 관행이고, 총학생회 회원이 아닌 사람(휴학생)이 회장으로서 모든

권한과 의무를 지고 행사하는 것도 관행이고, 충분한 토론과 논의 없이 노조를 학교 내

로 들어오게 하는 것도 관행이고, 두 눈 부릅뜨고 살아있는 학생회칙을 무시하거나 자

의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관행이었고 관행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관행이 아니라 인습입

니다. 그러한 올바르지 못한 것에 맞서서 총운위 내에서도 비록 소수지만 열심히 싸우

고 계시는 회장 님 뒤에는 우리와 같은 다수의 일반 학우들이 있습니다.” 지금 되새겨

보니 약간 창피하기도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 당시의 생각과 가치관을 지금의

생각과 가치관으로 비판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적절하지도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자만감인지도 모르겠지만 현재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확고하게 믿지 않으면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적어도 나는 그렇다)
 

 

  각설하고, 황라열 전 회장 탄핵 사건(내지는 절차 문제), 보건의료노조 폭행 사건, 송

동길 전 회장 직무대행의 사퇴로 인한 49대 총학생회의 해소로 인해서 그 원인을 당시

의 단과대 회장 및 단과대 학생회의 비민주성으로 돌리며 학생의, 학생을 위한, 학생에

의한 학생회를 만드는 모임이 생겨났다.(약칭 ‘학4모’. 원래 명칭은 서울대 학생사회를

비추고 미래를 조망한다는 뜻에서 등대지기였다. 이후 공모를 통해 개명했는데 그 명

칭이 학4모이다. 그리고 공모에 응모한 여러 개의 명칭 중 바로 내가 응모한 명칭이 채

택되었다. 한 마디로 학4모의 명칭은 내가 만든 것이다) 생기자마자 바로 가입했다. 아

마 4번째 정도였던 듯하다. 처음에는 참 분위기가 좋았다. 학생사회와 학생회를 뭔가

올바르게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게끔하는 분위기였다. 사람들도 다들 괜찮았다.(성격

면에서) ‘수해복구 봉사활동’, ‘세미나’ 등을 같이 하면서 서로 안면도 트고 돈독해졌

다. 하지만 학4모에 걸었던 기대는 점차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 성격이 애초부터 그랬

던 것인지, 변질된 것인지는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으나 핵심 구성원으로 볼 때는 후자

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첫 번째 실망을 하게 된 계기는 바로 회고록 1부에서 나와 인연을 맺게 된 교지관악 편집장

김지산씨 가입처리에 관한 논란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 가입을 할 때 세 개의 질문에 답하게

돼 있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학4모의 이념적 지향과 관련된 질문이었다. 김지산씨

는 이 질문에 대해 학4모의 의도대로 대답했고, 내가 생각하기에 별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구성원들 사이에서 딴지가 들어왔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이

가 없었다. 물론 생각이 같음에서 비롯되는 동질성도 중요하다. 하지만 꽉 막힌 현 학생회의

비민주성과 일방성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 점에서 갑

자기 생각나서 덧붙이자면, 제50대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탈정치, 先복지, 다원주의 고고싱

’이라는 선본 이름도 모순 덩어리다. 대학생의 정치/사회 참여를 중요시하고, 최소한 심정적 지

지라도 보내는 그/녀들의 의사는 배제하는 다원주의가 무슨 다원주의란 말인가? 하여튼 가입

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하는 이들의 의견이 많아서 결국 가입 안건이 poll에 부쳐졌다. 그리고

결과는 예상했지만 다소 놀랍게도 찬성 1명, 나머지 전부 반대였다. 그리고 그 찬성 1명은 바

로 나였다. 한편으로는 당혹했거니와 한편으로는 무서움을 느꼈다. 극단적인 배타성

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망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두 번째 실망을 하게 된 계기는 학정조 개념의 오도이다. 학4모는 자신이 학정조임을 부인

했다. 그리고 외부 학정조와 학생회와의 연계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정치에 대한 개념의 부재에서 오는 심각한 모순이다. 바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지금의

학생사회에서,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정치적인 행위인지(올해 비권이 총학생회를 ‘장악’했다고 난리를 피워대는 언론들을 보라!) 모르거나, 알면서도 모른 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학생’들이 모여 ‘조직’한 모임이 바로 학정조인 것이고 이는 외계

에서 갑자기 나타난 희한하고도 특이한 단체도 뭣도 아니고 우리 주변에서 지천으로 볼 수 있

는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것만으로도 끝나지 않았다.

 

 

  세 번째 실망을 하게 된 계기는 ‘스텝 제도’ 신설 시에 회원 자격을 2학년 이상으로 한

것 때문이었다. ‘스텝 제도’란 운영진과 비슷한 지위를 갖는 ‘스텝’을 여러 명 뽑아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학4모 전반에 관한 운영과 집행과 결정에 대한 권한을 주는 시스

템이었다. 스텝 자격이 2학년 이상이라는 것은 얼핏 보면 응당 별 무리가 없어보인다.

하지만 그 자격에 해설을 붙인 것을 보고 어이를 상실하고 말았다.(해설을 안 붙이는 것

이 나을뻔 했다.) 1학년은 운동권 선배에게 ‘세뇌’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2학년 이상으

로 제한한다는 것이었다. 학4모 회원 중에서 1학년은 딱 3명 있었다. 1명은 49대 총학

생회 문화국원으로 일했던 사람이고, 다른 1명은 의대 다니다가 중퇴해서 나이로는 6

수였던 사람이었고, 나머지 1명은 바로 나였다. 이렇게 봤을 때, 저 해설이 의도하고 있

는 대상은 누군가인가는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뜻을 같이 하자고 모인 사람

에게 보이는 이러한 작태에 배신감을 느꼈으며 그 한심한 인식/행위 수준에 경멸감을

느꼈다.

 

 

  학4모는 정말 지향만 놓고 보면 좋은 모임이다. 그리고 모두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학생사회와 학생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배제할 수도 없고 배제해서는 안 될 자생

적 모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식론과 방법론에서 크나큰 모순점과 미천함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는 이 모임이 개선해야 될 사항이기도 하다.(물론 스스로 개선해야 할 것이

다. 개선을 하지 못하면 없어질 모임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학4모가

이상적인 지향을 내걸고는 있지만 그러한 지향 속에는 엄청나게 정치적인 의도가 숨

어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도를 갖고 좋은 말을 가지고 함께 하자며 학우들을 꼬드기

고 있다는 것이다.(나도 그러한 사람 중 1명이었을지도) 자세히 풀어서 말해보면, 학내

에서 ‘운동권’을 없애는 것, 최소한 힘을 못 쓰게 하는 것이 바로 학4모의 진정한 의도이

고 그 의도는 바로 학생의, 학생을 위한, 학생에 의한 학생회를 만든다는 그럴 듯한 말

로 포장 돼 있다. 결국 이 모임도 소수의 인자들이, 브레인들이 핵심 운영 원리와 담론

을 재생산해내고 있으며 회원은 단지 거기에 정치적으로 '이용' 당하는 것일 뿐이다.

(물론 이용에 동의하는 사람에게는 할 말이 없다)

 

  이 모임에 대해 실망을 하고 그 본질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탈퇴하지 못했

다. 그리고 그러한 애매한 가입상태가 나로 하여금 내가 가진 정치성을 공개적으로 발

현하는 것을 억제케했다. 분명 학4모의 입장이 전혀 나의 입장이 아니었음에도 불구

하고 대놓고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이었다. 활동과 생각을 억제하는 일종의 억

제 장치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얼마 전에 결국은 조용하게 떠나갔다. 학4모

회원 중에서 총학 선본 2개가 나왔는데 이에 대한 학4모의 입장은 회원 중에 선거 나

오는 것과 단체는 별개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우스운 궤변이었다. 그리고 학4모 나름

중립성을 지켜주기 위해서 선거 나가는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탈퇴를 했다. 그 때의

분위기를 '틈 타서' 나도 탈퇴했다. 당당하게 입장서를 내고 탈퇴하지 못한 것은 나의

소심함에 대한 책망으로 이어졌다.

 

 

 

  또 하나의 조직에 대해 실망을 하며, 나의 여름방학은 지나갔다. 그리고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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