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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관악에서의 지난 1년에 대한 회고(4) - 연석회의

   참으로 오랜만에 블로그질을 하는 것 같다. 그 동안 이런저런 일로 심경도 복잡하고 할 일도 많아서 때려치고 있었는데 오늘 갑자기 할 맛이 났다. 그럼 지난 1년의 회고를 계속 이어가볼까 한다. 이 회고는 단순히 추억을 자족하는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통해서 현재의 나를 돌이켜보고 좀 더 나은, 발전적인 삶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몸부림이라는 걸 염두에 두길 바란다.

  



  아마 때는 10월 초였을 것이다. 황라열 총학생회장이 탄핵 당하고 송동길 총학생회장 직무대행이 보건의료노조 사건을 계기로 사퇴를 한 뒤로, 49대 총학생회는 그야말로 공중분해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한 동안 총학생회는 부재 상태를 면치 못했고 그 기간이 여름방학 이었기에, 사상 초유의 사태였기에 딱히 학생사회 내에서 그 대안을 만들어 내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때 무엇인가 감정에 사로잡혀 학생사회를 위해서 무언가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때마침 단과대 학생회장단 회의라는 것이 꾸려진다고 했다. 그리고 그 회의의 의장은 그 열정과 진정성에 반한 진혜 누나였다.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에 대한 부채의식이 덧붙여져 결국 이 단짱단 회의에서 약소하나마 무엇을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반에서도 회계 같은 것을 맡아본 적이 없고 유일하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중학교때 교육감상까지 받게 만든 타자실력이었다.

 

 

  그랬다. 당시 단짱단 회의에서는 마침 속기할 사람도 마땅치 않았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일할 사람이 너무 부족했다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건대, 민주노동당 학위 사람도 별로 데려다가 쓰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 동안 연락도 안 하고 인사도 안 하는 불편한 관계였던(민노당 학위 사람들과는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진혜 누나에게 대뜸 문자를 보냈다. 속기할테니 맡겨달라고. 과거의 사소한 트러블은 잊어버리고, 신음소리를 내며 앓고 있는 서울대 학생사회를 위해 통합이 필요한 때였기에 진혜 누나도 흔쾌히, 아니 매우 반가워하면서 나를 맞아주었다.

 

 

  그리고 거기에서의 나의 임무가 시작되었다. 매 회의의 속기와 회의 내용 결과보고를 담당

하였다. 덕분에 당시 각 단대의 회장들을 지근거리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인평은 생략하기

로 한다.) 그것을 보며 대략이나마 각 회장들을 파악할 수 있었고 이는 후에 제50대 총학

생회 선거에서의 나의 애매한 태도에도 영향을 주었다. 각 단짱들은 학교에서 나를 보면

속기사라며 친근하게 대해주었고 어떠한 이유라고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그러한 것을

보면서 무척 기분이 좋았던 듯하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49대 총학에서 단짱단 회의로의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지 않아 분실물품도 여럿 있었고 결산도 제대로 되지 않았었다. 이는 나중에까지 문제로

이어져 제49대 총학의 해명을 요구하는 자보를 단짱단 회의 차원에서 쓰기도 하였고, 나

또한 제49대 총학에 대해 다시금 실망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서는, 이 '판'에 대해서도 점차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서로 하나가 되어서 학생사회의

발전을 꾀하기는커녕, 자신의 정파의 논리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거나(속어로 떽 받았다고

표현한다) 어떠한 발언을 함에 있어서 선거를 염두에 두어 몸을 사리거나, 지극히 정치적

인 공격을 일삼기도 하였다. 온갖 인신공격과 왜곡, 과장이 난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정치

였다. 물론 이러한 정치의 본질을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속한 바로 이 곳에서도 똑같

이 재현되고 있다는 것에 다시금 좌절을 느꼈었던 것이다.

 

 

  불미스러운 일도 많았고 기분이 좋았던 일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은 일은 아마

도 하반기 전학대회 준비인 듯하다. 정말 오랜만에 높은 목표를 두고 한걸음씩 나아가는

기분을 맛 보았던 것 같다. 자료집 편집은 오롯이 내가 했고, 또한 그런 일을 하는 것을

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자부심을 가졌다. 특히 전학대회 일주일 전부터는 자료집 준비에

바빠 매일 총학실에서 새벽 늦게까지 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형용할 수 없이 기뻤다.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했기에, 그리고 그러한 일이 내가

딛고 있는 이 곳을 미약하나마 좀 더 나은 곳으로 진보케 한다고 믿었기에 그리고 다른 이

들이 그에 대해 나에게 칭찬해 주었기에. 그리고 절정은 바로 하반기 전학대회 속기에 있

었다.

 

 

  전학대회는 역시 예년과 같이 예정보다 몇 시간 늦게 시작되었다. 어찌 생각하면 성사된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만큼 학생사회가 많이 침체 돼 있고 어렵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전학대회의 속기를 내가 맡아 열심히 속기했다. 장장 10시간 넘게

걸린 전학대회에서는 많은 논의가 오고갔다. 하나 하나 대의원의 발언을 새겨 들으면서

정신을 가다듬으며 속기를 하였다. 그러한 말들 중 일부는 무시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흩어진 말조차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끔씩 생산적인 논의가 진행되기도 하였으며, 정말 말을 잘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에게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하게 만든 말도 있었다. 다만 회의가 길어지자 대의원들은

점차 지쳐갔고 했던 말이 계속 반복되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

이 다 지나갔고 나의 속기는 끝이 났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성취감을 맛보았다. 패배감

에 빠져 있던 나에게 또 다른 자신감이 심어졌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사건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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