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考) 백남기 농민의 민주사회장에 바치는 진혼 시(詩)

 -광장에서 빛난 가족과 민주시민들의 ‘불굴의 저항투혼’

 

선임기자 박정례= 백남기 농민이 귀향길에 올랐다. 5일 낮 4시를 기해서 357일 만에 서울을 떠난다. 고(考) 백남기 농민은 작년 11월 14일 쌀값 안정을 위한 민중총궐기대회에 참석하여 시위를 벌이던 중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 1년 여 동안 의식불명 상태에서 지난 9.25일 사망에 이르렀고, 별세한지 41일 만에 장례를 치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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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경찰은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두고 물대포로 인한 외압사가 아닌 병사라는 주장과 함께 시신 부검영장을 발부받아 3차에 걸친 집행 시도를 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시신 사수를 위한 시민들과 가족의 저지에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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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여론이 악화되자 경찰 당국에서 부검 시도를 스스로 철회한 시기와 맞아떨어진 쾌거였다. 정권 차원에서 폄하되고 유린되려는 찰나에서 한 인간의 죽음의 가치가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로 의미 있는 죽음으로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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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위원회에서는 드디어 5일부터 본격적인 장례절차에 들어가며, 오전 8시 천주교 수도사들과 유족들의 발인 이후 9시 명동성당에서 장례미사를 가졌고, 물대포 직사장소로 옮겨 노제를 치른 후 광화문광장에서 민주시민사회장으로 장례식이 비로소 엄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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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에는 백남기 농민의 생가가 위치한 보성 웅치면과 보성역 노제에 이어 광주로 이동해 12시부터 금남에서도 노제를 지냈다. 1000여 명 이상의 시민들이 나와 고인을 지켜보는 가운데 5.18광주 구 묘역으로 옮겨 안장절차를 밟았다.

 

미소 흩뿌리며 가소서!

                                박정례

 

님은 이제야 영면하셨습니다

님은 이제야 남녘 땅 광주로 떠나셨습니다

차마 떨치고 가시지 못한 길이었나 봅니다

 

민중이 총궐기하던 날

농민들의 염원을 충분히 대변하기도 전에

속 시원히 폭정을 향해 외쳐보기도 전에

님은 그리도 험한 참변을 당하셨기에

원통하고 분하여 우리 곁을 차마 떨치고 가시지 못하셨나 봅니다

 

그러기에 육신의 눈은 비록 감고 계시었으나

영혼의 눈을 부릅뜬 채 357일간 우리 곁에 머무신 게지요

 

적폐의 아이콘 유신공주 박근혜

무능과 불통의 아이콘 유신 보수주의자 박근혜

최순실의 충실한 꼭두각시였던 박근혜

대책 없이 오만하기만 하던 박근혜의

납작 엎드린 모습을 보시고서야 이제야 가시는 것이지요

무던히 참으신 끝에야 고향으로 발걸음을 옮기시는 것이지요

 

이 나라를 말아먹기에만 바빴던 박근혜에게

농민의 소리를 전달하고 싶어 찾아온 서울 길에서

님은 그렇게 처절하고도 억울한 국가폭력의 희생자가 되어

이 어지러운 혼군(混君)의 시대를 향해 맞서시면서

 

유신 철폐와 민주화 운동으로 편한 날 없이 사셨건만

우리 농촌 살리기에 헌신하느라 고달팠던 삶이었건만

박근혜 유신보수주의 정권은 죽음마저 헛되게 말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애국시민의 저항과 분노 앞에 꼬리를 내린 이 시간

이제야 만인의 애도와 추모와 존경을 받으시며

끝내는 민초들의 거침없는 함성과 애곡소리를 들으시며

 

고단했지만 보람찬 인생, 기어코 장한 기개 떨치시며

아! 백남기 그 귀한 이름 민주열사로 부활하시어

미소 흩뿌리며 안식의 길에 오르시었네!

 

삼가 엎드려 명복을 빕니다.

 

                                                                  *글쓴이/박정례 기자.르포작가.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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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8 14:01 2016/11/0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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