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어머니가 사는 법

다른 어머니가 사는 법

 

 

공원이나 유원지에 가면 으레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터줏대감이라 하더라도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나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계유지를 위해서 이른바 피 튀기는 심정으로 나오는 상인들이 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사람들은 상인들이다. 편하게 말하자. 장사꾼이라고. 그래서 말인데 장사꾼도 장사꾼 나름일 테다. 합법적인 장사꾼과 불법적인 장사꾼으로 나눌 수 있으니 말이다. 무엇을 팔던 간에 번듯한 매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서 구루마를 끌거나 좌판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은 이른바 잡상인 또는 노점상이라고 부른다. 무허가 상인이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무허가 상인도 터줏대감 못지 않게 공공장소에 터를 잡고 악착같이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은파유원지에서였다. 두 사람의 아이스크림 장수가 있었다. 60은 족히 넘어보여서 ‘아주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연배는 훌쩍 지난 분들 같았다. 그러나 워낙 프로다운 기운이 넘치는 바람에 할머니 어쩌고저쩌고 하는 식의 호칭은 집어치우고 그저 ‘아이스크림 장수’라고 부르고 싶은 생활의 달인들이었다.

 

잠시 쑥 몇 잎을 캐러 가신 친정어머니를 기다리면서 우연히 두 아주머니가 하는 양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 중에 나이가 좀 더 들어 보이는 쪽의 아주머니의 구루마에는 빨간 동백꽃 한 무더기가 꽂혀 있었다. 

 

‘아이스크림 구루마에 웬 꽃다발?’

  

구루마에 꽃을 장식해놓으면 사람들의 눈길을 조금이라도 끌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 보다. 하여튼 아주머니의 구루마는 눈에 띄었다. 유토피아라는 상호도 붙어 있었다. 유토피아? 아이스크림과 유토피아라, 나쁘진 않네. 잡다한 생각에 눈 바쁘고 머리 바쁘게 심심한 줄 모르고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동백꽃 쪽 아주머니가 황급히 아이스크림 구루마를 옮기는 것이었다.

 

        

 

‘아니 장사가, 자릴 지키지 않고 어디를 가?’

 

구루마가 움직이자 바짝 호기심이 일었다. 첨엔 웬 영문인가 싶었다. 조금 후에 무릎을 탁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대편 아주머니한테 손님이 몰리자 동백꽃 아주머니는 그쪽으로 다가가서 손님을 유인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요! 달고 시원한 아이스크리~이임!”

  

잠시 후 사태는 역전됐다. 이번에는 육덕 있는 아주머니 쪽에서 구루마를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동백꽃 아줌마와 손님을 반분하고 있었다. 요즘 손님은,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서 줄을 서면서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가 보다. 어디서든 빨리 사서 먹고 싶은 것이다. 주거니 받거니, 녹색의 테이블 위에서 춤추는 하얀 탁구공처럼 두 분의 구루마 랠리도 계속되고 있었다. 신나는 아이스쇼! 돈 안주고도 볼수있는 가슴 아린 생활쇼, 라이브 무대가 달리 따로 없었다. 은파유원지의 일정한 공간을 주름잡으면서 억척스럽게 생업을 펼치는 내 다른 어머니의 모습이다.

 

         

 

         

 

아이스크림을 실은 이동식 점포가 그야말로 서울 찍고, 대전 찍고, 광주 전남 거쳐서 부산 찍듯이 코 흘리게 아이들을 따라서 상춘객들의 발걸음에 따라서 이리저리 옮겨다니기에 여념이 없었다.

  

“여기, 아이스크림 있어요~오. 달고 시원한 아이스크림, 바닐라, 딸기, 쵸코오~”

마침 친정어머니가 오셨다.

  

“어머니 아이스크림 하나 드실래요?”

“너, 먹고 싶니?”

“어머니 드시라고요?”

“500원 짜리도 있나?”

“돈 천원은 하겠죠. 엄마는 꽃 꽂은 아주머니한테 가서 사세요. 저는 저 아주머니 거 살게요.”

 

두 아주머니의 불꽃 튀는 경쟁을 재미있게 지켜본 값은 해야겠다 싶었다. 공평하게 두 아주머니한테 사기로 했다.

 

친정어머니는 크게 숨을 내쉬며 자리를 찾아 털썩 앉았다. 캐 오신 쑥을 건사하시랴, 아이스크림 잡수시랴, 예의 그 삭신 쑤시고 저리고 안 아픈데 없는 몸 추스르시랴. 한번 크게 힘겨운 한숨을 내쉬시더니 덥석 한입 아이스크림을 머금으셨다.

  

그 순간에도 아이스크림 장수 아주머니들의 동작은 계속되고 있었다. 활짝 핀 봄꽃 속에서 열기를 내뿜는 속도는 오히려 더해갔다. 어디 하나 어눌한 기색이라고는 없이 재빠른 솜씨다.. 점차 사람들의 수가 불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모녀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취한 듯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악착같은, 다른 어머니가 사는 모습이다.

 

탱큐 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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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4 18:16 2010/06/04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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