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행은 당초 보성 쪽에서 일박 후 아침 일찍 화순의 운주사로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보성에서 적당한 숙소를 찾지 못했다. 익숙한 곳으로 가자는 생각으로 전주로 발길을 돌렸다.
다음 날 김제 금산사 방문과 전북에서의 일정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주에 들어서자 조금은 낯익은 불빛과 눈에 익은 건물이 보여 비로소 푸근한 느낌이 안겨왔다. 별이가 전주 쪽 지인들과 통화를 하여 적당한 숙소를 소개받았다. 모텔이 모여 있는 쪽으로 가서 ‘테라’라는 곳에 짐을 풀었다. 그런 다음 밖으로 나와 식당을 찾았다.
순두부백반과 고등어구이백반을 골랐다. 9시, 늦은 저녁임에도 괜찮은 식사 집을 만난 것 같았다. 잘 먹었기에 하루의 피곤을 보상 받는 기분이 들었다. 인건비와 재료비 등이 오르기만 해서 많은 업소들이 일찍 문을 닫는 추세인데 우리가 간 곳은 10시까지 영업하는 곳, 사실상 우린 마지막 손님이었던 셈, 언제 어디서나 먹는 것은 중요하다.
고적답사, 좋은 경치를 구경했다손 치더라도 배고픔이 찾아오면 사람은 오직 밥 생각뿐이다. 배를 채울 적당한 곳을 향해 신경을 곤두세우고는 한다. 장시간의 운전과 긴장 끝에 찾아온 배고품, 나도 나지만 별이의 상태는 잘 먹고 잘 자둬야만 했다. 그래야 내일을 위해 힘내어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 밥값은 각 8천원, 이후 피곤한 몸을 내려놓고 숙면만 취하면 됐다.
9일 아침, 9시 숙소 앞에서 만났다. 김제 금산사로 고고 gogo! 금산사 길은 잘 닦여 있었다. 길 변의 풍광도 괜찮고 금산사로 들어가는 길이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을 만큼의 거리여서 주변을 둘러보며 접근해나갔다.
자연히 좋은 인상을 받았다. 금산사로 가는 내내 깨끗하게 정비된 도로를 달릴 수 있었고, 절 근처의 마을도 풍요로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어서 이다. 쓰레기 등 거슬리는 것도 없었다.
풍광과 잘 어우러진 일주문을 거쳐서 가람 안으로 들어갔다. 제일 궁금한 것은 뭐더냐? 복층으로 된 미륵전이었다. 일반 절로 따지면 대웅전인 셈인가 봤다. 미륵전은 총 3층의 외관, 온몸을 돌로 두들기며 수행하는 망신참법(亡身懺法)으로 유명한 진표율사가 세웠다 한다.
미륵전 보다 더 궁금한 것은 그 안에 안치된 미륵부처상이다. 미륵은 불교에서 믿고 있는 미래의 부처다. 이곳은 미륵신앙의 총 본산이라 할 정도로 미륵부처로 유명한 곳이다.
미륵전 자리는 원래 용소(龍沼)라는 깊은 연못이었다고 한다, 이 늪진 땅을 숯으로 메꾸고 미륵보살을 앉혔다는 얘기다. 정말 웅장하고 큰 부처가 있었다.
증산도에서는 강일순 강증산이 바로 금산사 미륵전을 통해 세상에 온 옥황상재라고 한다. 이 땅에서 9년간의 천지공사 소임을 마친 후 임종 때에도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노라.” 했다. 증산도에 의하면 강증산의 탄생도 금산사 미륵전이요 임종 시 다시 돌아간 곳도 즉 천상으로 환궁한 곳도 금산사 미륵전이라는 얘기다.
아무튼 금산사를 보게 돼서 기뻤다. 어디를 찾아가든지 첫 인상은 중요한 것, 대한민국의 어느 절에 가든 온통 ‘중창불사’라는 이름으로 기와 한 장에 몇만원 하는 식으로 모금대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 없었는데 이곳은 그래도 청정한 모습을 보여줬다.
절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온갖 물품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저 있는 형상을 보노라면 세속의 탐욕을 목격하는 인상을 받지 않울 수 없었다. 쓰다만 물품들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어서 고즈넉하거나 정돈된 모습을 상상하고 간 절간에서 실망을 느끼기 일수였다. 대학시절에 가봤던, 작년과 재작년 수유리의 유명한 절들도 다시 가보니 그랬다.
“이런 절집은 처음이네!”
전설이 펄펄하게 살아 있고 스토리가 풍부한 곳이라면 상상의 날개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미륵전은 웅장했고 기타의 가람은 고색창연 했으며 주변의 풍광과 잘 어우러져 있었다. 잘 다녀간다. 금산사! 살아 생전에 언제 다시 오게 될지는 모르겠다. 이 나이에 금산사는 비로소 처음이거든.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