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휴양지에 대한 단상

 

집과 휴양지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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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집에 눈이 꽂혔다. 영상으로 보는 수상가옥이다. 수상가옥이라 하면 흔히 동남아에서 떠도는 소수민족을 연상하던 터였다. TV다큐멘터리를 통하여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아니면 태국이나 미얀마의 국경지대에서 사는 소수민족들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기록물들을 접한 탓이다. 그들에 대한 인상은 집도 절도 없이 바다 위를 떠도는 모습으로서 호기심과 안쓰러움을 유발하는 수준이었다. 적어도 수상가옥에 관한 나의 기억은 대부분 그랬다.

한편, 근자에 유명 건축가들이 좋은 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상당히 본 때문에 집을 보는 눈만큼은 비교적 높아진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때문인진 몰라도 웬만큼 좋은 집을 보아도 그저 어느 돈 많은 부자가 ‘내가 이처럼 좋은 집에서 잘 살고 있다.’는 자랑을 하고 싶은가보다 치부해버리는 심리가 깔려있다. 그러니 웬만큼 좋은 집이 눈에 들어온다 한들 쉽게 감탄하거나 좋은 정보라 여기며 관심을 두는 일 따위는 별로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몰디브 해안의 수상가옥을 보면서는 나도 모르게 호기심이 발동하고 있다. 그곳은 기존의 휴양지와 여러 가지 점에서 다른 점이 눈에 띠는 때문이다. 환상적이라 할 정도로 깨끗한 해양생태계를 지니고 있는 점과 수상가옥을 비롯한 설치물들이 하나 같이 자연과 일체감을 이루고 있는 점에서다. 말하자면 인공미가 풍기는 등의 어색함이나 문명의 지나친 간섭으로 인한 거부감 같은 것이 없다. 이런 인상을 주는 데는 수상가옥을 조성한 건축가들의 탁월한 심미안이 탄탄하게 구현된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우선 뛰어난 풍광이 일품이었다. 하늘과 바다 중에 누가 더 예쁘고 멋있는지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아서 “저 하늘이야말로 지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경치로구나!” 싶다가도 순진한 아이들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것처럼 다정하게 일렁이는 물결을 보면서는 “세상 어느 곳도 이곳의 바다 보다는 더 예쁠 순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빠져드는 것이었다.

집 모양도 특이했다. 다른 집들과 멀찍이 떨어져 있는 단독 채에는 바람막이를 겸한 울타리가 있는가 하면, 높낮이를 달리한 발코니를 비롯한 실내공간이며 옥상까지 갖춰져 있었다. 때마침 안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도 신비감을 더해주는데 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었다. 더해서 모든 구조물들이 목조로 돼 있고, 지붕마저 초가로 덮여있어서 어느 것 하나 자연 아닌 것이 없다 싶은 느낌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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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천막 형 집들이 군집한 쪽으로 시선을 옮겨봤다. 지붕의 뾰족한 중심점에서부터 시작한 하얀색 지붕이 사면팔방으로 뻗어 있고, 이에 따라서 건물의 외양도 그에 맞춰진 다각형집이다. 위에서 잡은 사진은 영락없는 몽골의 ‘게르’를 바다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시원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들은 섬을 향해서 디귿 자 형으로 열을 지어 위치해 있었다. 그 사이로 해양생물들이 다채롭게 유영(遊泳)하고, 십자형 나무다리가 가로 놓여 있었다. 다리는 말하자면, 수상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이 땅을 밟고 싶거나 섬에 볼일이 있을 때마다 이용할 수 있도록 사람과 섬을 이어주는 가교였다.

 

그런데 수상가옥의 매력에 대해서도 좀 더 곰곰이 따져봤다. 변화를 불용하는 정착 형 주택과는 분명히 다른 속성을 지니고 있을 것 같았다. 바다 위 생활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여차 하면 짐을 싸들고 이동하는 유목민들의 삶과 닮아 있다는 지론이다. 환경과 여건에 따라서 삶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 그들 앞에 닥친 필연이라면 이에 적절한 선택을 해야 하는 인간의 선택은 고독한 숙명인 것 같다. 때 맞춰 짐을 싸들고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야 하는 가변성에서나 역동성에서 둘이 닮은꼴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농경생활을 하든 유목생활을 하든 또 수상생활을 하던 궁극적인 목적이 사람이 사람답고 훌륭하게 사는 것이라 치면, 돈 많은 관광객들을 위해서 지은 유명한 휴양지에 있는 수상가옥이나 우리네 동네마다 흩어진 소옥(小屋)이나 다큐멘터리에서 본 동남아시아의 수상가옥에서든 내일을 위한 충전과 안식을 취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공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긴, 몰디브 관광의 선전 문구인 ‘날마다 일상적으로 들어가는 집 말고 며칠 동안만 머무르더라도 평생 있지 못할 정도로 살아갈 의욕을 갖게 하는 집이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꿈을 간직하게 해 주어 좋다.’는 주장에서 보듯이 깨끗하고 멋진 환경과 다양한 생태계를 지닌 곳이라면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고도 긍정적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곳이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잠시나마 꿈을 꾸듯이 황홀한 공상에 빠져들 수 있는 계기가 돼준 먼 나라 몰디브 해안의 수상가옥들과 청정하고도 환상적인 자연경관은 여간 기분 좋은 것이 아니었다. 머잖아 그곳에 가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면 참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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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17:51 2016/11/0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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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단편영화제...2016년

 

-믿어줘(영국)

평범한 가정의 이상을 담은 영화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서 좀 게으르고 아이들을 돌보는데 있어서도 어수룩하여 지각에 배탈에 대응을 잘 못한다. 이웃집 여자로부터 남편의 약점 때문에 이혼한 이야기를 듣고서 부인도 자기를 그렇게 하지 않을까 은근히 불안하게 여기면서 자신의 잘못한 점을 사과하면서 야동을 끊겠다면서 비디오를 내던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방어막을 쳤는데 괜한 기우였다는 것을 알고서는 약간 멋적어 한다.

-인생게임(프랑스 )

놀이터에서 여자아이가 모래장난을 하고 있다. 아빠에게 놀아달라고 해도 게임에만 팔려 있어서 아이를 보는둥 마는 둥 영 성의가 없다. 부인과 이혼한 처지라서 딸을 보러 온 날이었던 것이다. 딸을 데려다주러 집에 가니 전처는 밥 주길 꺼려하는 티가 역력하다. 알고 보니 새 남자 친구가 와 있었다.

이 자리에서 두남자는 통성명을 하긴 했지만 신경전이 장난이 아니다. 딸 유치원 간식비가 밀렸다고 구박하는 아내의 지청구에도 불구하고 직업이 없는 상태다. 단 자꾸마 내세우는 것이 자긴 게임 개발가라는 말이다. 화면속에서는 격트를 벌이는 두 남자의 장면이 자구 교차해서 보인다.

자존심을 잔뜩 구긴채 돌아온 남자는 권총을 머리에 겨누면서 심각한 표정이다. 탕! 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그러나 게임화면이 비치는데 화면 속 한 남자를 향해서 방아쇠를 당겼던 것이다.

-엄마(​핀란드 )

​엄마와 나란히 앉은 아이와 함께 아빠가 차를 몰고 부지런히 달린다. 아이는 아빠가 묻는 말에 대꾸는 않고 오락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나 얼마 동안 달리다가 엄마가 아이와 함께 잠시 아이스크림을 사오겠다고 말한다. 이럴때마다 볼일이 엄청 길어지는 부인에게 남자는 주의를 준다.

여자는 아이를 데리고 아이스크림을 앞에두고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준다. 4차원 5차원의 세계를 헤매고 있는 듯 과거의 이야기가 선뜻 이해되니는 않는다. 그러다기 장면이 바뀌어 모자는 작별인사를 한다. 여자는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길이었다. ​

-나중에 생각하는 것(키프러스)​

​소설을 쓰기 위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남자에게 부인의 잔소리가 쏟아진. 한 여자가 병맥주를 마시며 축구를 보고 있다. 남자는 여자의 상태를 보면서 케이크에 반지를 꽂아 청혼하려고 관망을 한다. 소리지르는 여자와 글을 쓰는 남자가 A라고 하면 여자를 관망하면서 자꾸 틈음 엿보려는 남자는 B다. A와B의 장면이 교차하면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A남자는 잠시도 틈을 주지 않는 여자에 의해서 온전한 사고와 자유로운 행동에 제약을 받고 남자B는 남자를 돌아보지도 않고 자기 일에만 정신 팔려 있는 여자 때문에 도무지 둘을 위한 장래에 대해서 진진한 논의를 할 수 없다.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나중에 할 일인지 분별 없이 사는 인간들을 상징하는 것 같다.

~영국이 종단정책을 썼다면 프랑스는 횡단정책을 편 결과 흑인 유입도 비교적 흔한 일이다. 때문에 프랑스에서 흑인을 보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그래서 프랑스 영화를 볼라치면 미국처럼 다양한 인종이 등장하는 편이다. 영화를 통해서 다양한 인종을 접할 수 있다는 점도 재밌고, 짧은 시간에 주제를 표현해내는데 성공한 단편영화의 주제 부각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이들도 영상미나 화질이 대단히 좋은 것이 많았다.

-알츠하이머(프랑스 )

남매를 두고 있는 흑인 가정이다. 이웃 집 할머니가 알츠하이머병 환자로 알려져 있는데, 흑인 남자애가 정기적으로 약을 전달하는데 하루는 대답이 없다. 엄마에게 알리고, 엄마는 경비를 불러서 문을 따고 들어간다. 얼마 있다가 ​할머니는 깨어나서 자기 아들과 며느리와 손자와 손녀가 왔다고 좋아한다. 건배도 하자며 금새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들을 더 오래 붙잡고 싶어하지만 이내 대음을 기약하고 할머니 집을 나온다.

너는 내 손자구나 하지만 아이는 할머니의 흰 피부와 자신의 검은 피부를 잘 알기에 "할머니는 저와 달라요. 우리 할머니가 아니란 말이에요" 말해주면서 이웃 집 할머니 집을 떠난다.

 

-베르니체의 생각(이탈리아)​

화려한 용모와 젊음과 웃음도 잘 웃는 베르니체는 사촌에 비해서 남자로부터 사랑을 받게 된 것이 불행으로 변한다. 아기를 가졌을 때 남자는 당황하면서 잠시 외면을 하는데 사촌은 도와주겠다면서 집으로 받아들인다. 이때부터 일거구일투족을 감시하면서 사람을 공포분위기로 몰아가며 학대를 일삼는다.

베르니체의 남자 친구가 잘못을 빌러 찾아왔는데도 베르니체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남자 친구를 만나는데 방해를 하고 결국은 죽음에 이른다.

지난 주에 이어서 이번 주에도 단편영화를 봤다. 참 흥미있고 재밌는 시간이었다. 이번 주 것은 리스트가 있어서 손쉽게 알 수 있고 기억하기 좋다.

영화를 본 기억을 불러내어 내용과 감상평을 말해보겠다. 감상한 영화가 모조리 잘 생각이 잘 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기억력 제고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기억하여 줄거리와 감상평을 살짝 곁들여보려 한다.

단편영화라는 것을 올해 처음 봤다. EBS다큐축제를 통해서 ​다큐를 본 적은 여러 번 있었는데 조악한 것들이 가끔 섞여 있어서 좋은 인상을 가지진 않았었다. 그렇지만 이번에 성북동에서 본 단편 영화 중에는 인상 깊은 것들이 많았었다.

프랑스 영화를 봅면 심심찮게 흑인이나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프랑스는 모로코나 알제리를 식민지로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로부터 인구 유입이 돼서 여러 인종들이 살고 있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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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17:21 2016/11/0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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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 보다 한식이 좋아

호텔과 레스토랑 등에서

스테이크를 먹는다는 것

늘 실망러웠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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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찬 포럼이나 모임에서의 스테이크 보다

아~ 한식이 그리워!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처음에 죽 종류를 들고 나오고

이어서 샐러드 그리고 이어 메인요리라는 것이 스테이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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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공식처럼 정해진 법칙처럼 우린 스테이크라는 것을 먹어야 하나?​

호박죽은 짜서 더 이상 먹고 싶은 맘이 없었다

쥬스는 다 비웠다​

 

스테이크에는 고기덩어리, 소세지와 감자 몇조각,

옆엔 샐러드 한 접시

쥬스와 물이 놓여있고 나중엔 커피를 준다

커피맛 참 희안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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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우 작은 쟁반에 각각

밥과 반찬과 국이 나온다면 제격이련만

소박한 한식 메뉴를 개발해 내놓는다면 인기이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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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효과가 괜찮아서

배고픈 사람들이 보면 대단히 맛있게 ​잘 먹은 줄 알겠지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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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6 23:17 2016/10/26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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