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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미국 쇠고기 추가협상에 대한 10문 10답

국민들과 함께 읽는 미국 쇠고기 추가협상에 대한 10문 10답

(다시보는 재협상 10문 10답)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전문가 자문회의-

 

1. 이번 추가협상으로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해진 것인가요?

 

아닙니다.

 

정부 말을 다 믿는다 쳐도 이전에는 수입금지되었던 창자를 말하는 곱창, 막창과 회수육(AMR), 분쇄육, 등뼈, 사골뼈, 꼬리뼈, 혀가 제한없이 수입됩니다. 그리고 이 부위는 한국사람이 가장 잘 먹는 부위이지만 광우병 위험이 있는 부위입니다. 곱창은 유럽연합에서는 연령과 상관없이 전체가 광우병 위험부위로 지정되어있고 회수육은 척수조직이 88%에서 포함되어 있어 미국에서도 학교급식에서 금지되었습니다. 혀는 유럽과학위원회에서 편도조직이 붙어있다는 것을 확인하여 프랑스에서는 실질적으로 혀요리가 금지되었습니다.

 

소 곱창이 들어가는 곰탕이나 설렁탕, 곱창이 광우병 위험 음식이 됩니다. 또 회수육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햄버거나 피자, 소시지등이 다 위험해집니다. 혀요리가 들어가는 편육이나 수육도 위험합니다. 결국 정부의 추가협상은 실제로 한국사람이 먹는 위험부위는 하나도 수입을 금지하지 못했습니다. 추가협상으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이 하나도 담보되지 않은 것입니다.

 

2. 정부는 '품질 시스템 평가(QSA)'로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차단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거짓말입니다.

 

우선 이번 30개월 이상을 수입금지 한다는 QSA 프로그램은 일시적 조치이고 그 기간은 길어야 1년 정도라고 예상됩니다. 그 기간을 정하는 것은 미국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안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길어야 1년 뒤면 30개월 이상 쇠고기도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조삼모사라는 거죠.

 

또한 QSA는 민간자율프로그램으로 예전에 국내에 있었던 '품' 마크를 농산물에 실시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즉 미국 쇠고기 업체에서 알아서 시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실효성이 전혀 없습니다. 미국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QSA 보다 훨씬 강력한 '수출 증명(EV)' 프로그램이 작동되던 지난 2006년~2007년에도 전체 미국산 쇠고기 수입건수의 50% 이상에서 뼛조각이 적발되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갈비통뼈가 9번, SRM인 등뼈가 2번이나 적발되었습니다. 정부가 직접 보증하는 수출증명 프로그램으로도 50%이상이 수입위생조건을 어기는데 기업들이 알아서 실시하고 정부가 간접 보증하는 QSA 프로그램이 지켜진다는 것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꼴입니다.

 

3. 이번 추가 협상에서 SRM 문제를 모두 해결했다고 하던데요?

 

거짓말입니다.

 

추가협상을 통해서는 4월 19일 졸속 협상으로 합의한 수입 위생 조건의 SRM 규정을 단 한글자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다만 30개월 미만의 뇌, 눈, 척수, 머리뼈 등 4개 부위는 "특정 위험 물질(SRM)은 아니지만 한국 수입업자의 주문이 없으면 반송 조치하겠다"고 정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들 4개 부위는 EU, 일본, 중국, 대만, 홍콩, 베트남, 태국 등에서는 특정위험물질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부위는 0.001g, 즉 후추 한알 정도만 들어와도 위험합니다. 그런데 이번 추가협상은 소량의 뇌, 척수, 머리뼈 등은 수입을 허용했습니다. 머리뼈조각은 머리뼈가 아니고 척수조각은 척수가 아니라는 해괴한 주장입니다.

 

정부가 전면적으로 수입을 허용한 곱창이나 막창도 EU에서는 특정위험물질입니다. EU는 십이지장에서부터 직장에 이르는 모든 내장과 장 사이에 붙어 있는 장간막까지 제거를 의무화하고 사료로도 쓸 수 없게 합니다.

 

뇌, 안구 머리뼈 등을 누가 먹습니까? 하지만 정작 한국사람이 즐겨먹는 곱창, 척수조직이 포함되는 회수육, 편도가 붙어있는 혀도 수입됩니다. 무엇을 막았다는 것입니까? 정작 한국사람이 잘 먹는 광우병 위험부위는 하나도 막지 못했습니다.

 

4. 이번 추가협상에서 검역 권한을 강화했다고 하던데요?

 

거짓말입니다.

 

수출용 작업장의 승인권과 취소권은 여전히 미국 정부에 있습니다. 동일한 작업장에서 2회 이상 식품 안전 위해가 발견해야 일시적인 작업 중단 조치를 요구할 수 있는 협정은 그대로입니다. 도축장 현지 점검에서 중대한 위반을 발견하더라도 도축장 승인 취소를 할 권한도 없습니다. 미국 도축장 현지점검 시에도 여전히 카메라조차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는 것도 변함이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검역주권은 전혀 강화되지 않았습니다.

 

5. 한국정부는 어쨌든 재협상은 불가능하고 심지어 무역보복도 당할 수 있다는데요?

 

아닙니다.

 

정부는 추가협상도 불가능하다고 이야기 해왔습니다. 그러나 추가협상을 했습니다. 정부는 이제와서 재협상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국제법적으로 재협상이 불가능한 협정은 없습니다. 이번 미국쇠고기 수입고시보다 훨씬 강력한 협정인 미국-페루 자유무역협정(FTA)은 심지어 국회비준이 끝 난 후에도 미국정부가 재협상을 했습니다. 당연히 한미 쇠고기협상의 재협상은 어느 때나 가능합니다.

 

무역보복이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검역협정 때문에 핸드폰을 수입금지하는 식의 무역보복은 한국정부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바 있습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한국과 미국이 모두 가입해 있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중국과의 마늘파동과 같은 보복조치도 중국이 WTO에 가입하기 이전의 무역보복조치였습니다. 이번 한미 쇠고기협상과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정말로 만에 하나 무역보복이 있다고 쳐도 그 액수는 많아야 400억 원 정도 입니다. 국민 1인당 900원 인데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1년 예산의 0.02%쯤 부담을 하는 것이 무슨 문제입니까?

 

6.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을 위해 미국산 쇠고기는 전면 개방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한국정부는 한미 FTA를 위해 쇠고기를 무조건 수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4대 선결조건이 바로 미국쇠고기 수입, 의약품 가격인하조치 금지,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 세제 금지, 스크린 쿼터 축소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지금까지 쇠고기협상과 한미 자유무역협정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말을 바꾸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또 의약품 가격을 깎아서 건강보험재정을 절약하는 것을 금지하고, 배기량이 많은 자동차에게 세금을 더 물려 환경을 보호하는 것도 금지하고, 스크린 쿼터를 통해 한국의 영화를 보호하는 것을 금지하자는 것이 한미 FTA의 선결조건이라면, 이런 협정이 국민들에게 무슨 도움이 된다는 것일까요? 여기에 또 미국쇠고기를 무조건 전면개방해서 한국국민의 생명을 걸면서까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맺어야 한다면 그런 FTA 과연 왜 해야할까요?

 

또 한미 FTA에 대해서도 그 내용이 자세히 밝혀지지도 않았습니다. 정부는 먼저 한미 FTA 내용을 소상히 밝히고 국민의 찬반입장을 물어서 결정해야 합니다. 또한 지금 시점은 미국 행정부가 바뀌면서 미국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추진자체가 불투명해지고 있는 시점입니다. 한국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한국이 미리 국회비준을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더욱이 한미 FTA 찬성입장을 가진 시민이라도 국민 생명과 안전을 내주면서까지 한미 FTA 협정을 맺는 것에 찬성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7. 어쨌든 30개월 미만의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유럽이나 일본은 동물성 사료를 아예 금지한 것과 달리 미국은 광우병 발생국임에도 교차오염의 위험이 있는 동물성사료를 여전히 소에게 먹입니다. 또한 미국은 유럽연합이나 일본에서 광우병 특정위험물질로 지정한 부위를 동물사료는 물론 인간 식품원료로도 사용합니다. 또한 일본은 모든 소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하고, 유럽은 30개월 이상 모든 소와 30개월 미만이라도 위험 도축소에 대해서는 모두 광우병 검사를 하지만 미국은 0.1%미만의 소만을 검사합니다. 또 미국은 30개월 미만에서 뇌, 눈, 척수, 머리뼈, 등배신경절, 등뼈, 창자, 장간막 등을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로 정의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미국규정대로 30개월 미만 쇠고기와 부산물을 허용할 경우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이 국내에 들어오게 됩니다. 모든 나라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거나 연령제한과 부위제한을 엄격하게 하는 것은 30개월 미만 미국산 쇠고기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국제상식이기 때문입니다.

 

8. 국내검역을 강화하면 안전이 보장되지 않나요?

 

아닙니다.

 

우선 국내검역으로는 30개월 이상인지 아닌지 판단할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살코기, 갈비, 곱창, 혀, 사골, 꼬리뼈 등 한국에 수입되는 부위는 한국에서 몇 개월짜리 인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미국의 업자가 30개월 미만이라고 딱지를 붙이면 그것을 믿어야 할 뿐입니다. 미국 수출업자들이 나이를 허위로 기재하더라도 적발할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미국에서조차 이력추적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으므로 정확한 나이판정을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미국에서 하는 소의 이빨로 나이를 추정하는 치아판별법은 미국 교과서(Veterinary Anatomy, 3판, p639)에도 전혀 신뢰할 수 없는 방법이라고 명기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20개월 미만소의 뼈있는 살코기를 수입하려고 치아판정만이 아니라 원산지 및 생년월일을 알 수 있는 이력추적제를 포함한 상세한 나이판정장법을 미국에게 요구했고 이러한 수출증명 프로그램에 따라 미국쇠고기를 수입하고 있습니다. 이런 수출증명 프로그램도 없이 나이 판정을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에 더해 광우병 검사는 도축장에서만 가능합니다. 한국에 일단 쇠고기나 부산물이 들여오면 이것으로 광우병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검역으로 광우병을 걸러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9. 미국 사람이 먹는 쇠고기와 똑같은 것을 먹는다고 한국정부는 주장하는데요?

 

거짓말입니다.

 

이번에 밝혀진 도축장 현지점검 보고서를 보면 30개 작업장 중 창자부위를 버리는 작업장이 10개였습니다. 미국에서는 곱창을 안 먹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뼈나 사골, 꼬리뼈는 미국에서는 식용부위가 아닙니다. 미국 쇠고기산업의 원칙은 "미국사람이 선호하는 살코기로는 운영비를 충당하고 이윤은 내장과 가죽에서 남기는데 이 내장부위는 수출을 통해 남긴다"라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소비되지 않는 부위를 한국이나 일본에 내다 팔아 이윤을 남긴다는 것이고 이것이 소 한 마리값의 10분의 1에 해당합니다. 여기에 일본은 20개월 미만의 살코기와 뼈붙은 살코기, 중국은 30개월 미만의 살코기만 수입합니다. 나머지 내장 부위는 이제 한국에만 팔게 됩니다. 이것이 미국축산업자와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국정부가 한국의 쇠고기 수입전면개방을 그토록 환영하는 이유입니다. 미국사람들도 안 먹는, 그리고 전세계에서 아무도 안 먹는 미국소의 내장과 등뼈 등의 위험부위를 한국사람만 먹게 되는 것이 이번 추가협상입니다.

 

10. 정부는 쇠고기 재협상은 없다면서 이번 주에 쇠고기 고시를 강행한다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번 추가 협상이 90점은 된다고 국민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4월의 협상이 미국기업과 미국정부에게 100점이라면 이번 추가협상은 미국기업에게 90점이 된다는 말입니다. 미국 거대 농식품기업에게 손해 본 것이 하나도 없고 수출할 것은 다 수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정부가 정작 막아야 할 부분은 추가협상으로 하나도 막지 못했습니다. 한국국민에게 이번 추가협상으로는 바뀐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번 추가협상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팔아먹은 또 한번의 사기극일 뿐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재협상을 요구하는데 왜 재협상이 불가능합니까? 우리는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부시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규탄해야 합니다. 국민의 힘은 협정무효 전면재협상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없는 정부는 정부로서의 자격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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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최호철]2008년촛불대행진

[만화-최호철]2008년촛불대행진
 
[만화] 2008 촛불대행진   

최호철
/ 만화가



2008.6.24 ⓒ 최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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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회주의’는 그 자체로 옹호되어야 한다.(2004.04.)

그래도 ‘사회주의’는 그 자체로 옹호되어야 한다.

 

단호한 대답?

 

지난 두 달간 성황리에 치루어 졌던 [현대 자본주의의 이해]강좌(한노정연 주최)의 마지막 ‘종합토론’시간 때였다.

강사가 그간의 강좌 내용을 종합하여 ‘현대 자본주의의 전망과 과제’라는 주제로 기조 발제를 한 후, 참석한 수강생들 사이에서는 열 띤 질의․응답과 토론이 진행되었다.

강좌의 결론은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불안정을 극대화하면서 새로운 위기를 재생산할 것”이고, “이 위기를 진정으로 극복해 나갈 주체형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자본 그 자체의 위기’라는 점에 대해 강사진은 의심의 여지없는 단호함으로 결론을 맺어 주었다.

그리고 이 자본주의의 위기를 진정으로 극복해 나갈 주체는 바로 ‘노동자계급’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현장성, 계급성, 전문성’의 기치를 내건 한노정연의 연구위원답게 분명하게 대답해 주었고, 참석한 수강생 대부분도 이에 공감하는 듯했다.

 

그런데, 열 띤 토론의 막바지에 한 수강생으로부터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당연히(?) 나왔다.

순간 강사진은 멈칫하는 것 같았고, 그 사이 토론에만 귀를 기울이던 나는 재빨리 나섰다.

“‘사회주의’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뜻밖의 단호한’ 대답에, 사회를 보던 강사는 “대안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며 서둘러 토론을 마무리지었고, 마침 시간도 많이 지난 터라 곧바로 뒷풀이로 들어갔다.

사회를 보던 강사가 서둘러 토론을 종결시킨 이유가 시간 부족만이 아니었다는 점을 나중에 강사진이 제출한 [강좌 소개서 : 전쟁과 공황, 위기로 점철된 역사 -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본 현대 자본주의]라는 글을 읽고 알았다.

 

“이 강좌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나아가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완결적이고 직접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 현 좌파이론의 전반적인 한계 때문 --- 20세기 사회주의의 붕괴가 가져 온 충격은 현실의 운동뿐만 아니라 이론진영 전체에 엄청난 공백을 초래 --- 과거에 진리라고 믿고 따르던 이런 저런 ‘교의’들이 사실상 결함 많은 하나의 이론체계에 불과하다는 자각 ---길고 지난한 과정일지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씩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가 다다른 결론이다”

 

아니, 나는 사실 그날 종합토론과정에서 이들 강사진의 고민과 고통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나 또한 이런 고민과 고통으로부터 한 치도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20세기 사회주의의 붕괴라는 역사적인 현실이 지난 십 수년간 우리들을 짓눌러 왔던 그 중압감을 누가 홀가분하게 벗어 던질 수 있었겠는가?

적어도 여전히 스스로 사회주의자이고자 했고, 또 그 이념을 고통스럽게 부여안고 왔다면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현 좌파이론의 전반적 한계”라는 현실을 외면한 채,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씩 만들어 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애써 무시한 채, “‘사회주의’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그만 단호하게 답해 버리고 말았다.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대안사회의 이념과 전략으로서 “‘사회주의’는 그 자체로 옹호되어야 한다”는 소박한 판단 때문이었다.

 

우려와 조롱

 

그런데 이 말을 내뱉자마자, 단호했던 대답과는 달리 내 마음과 머리 속에서는 90년대 초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에 십 수년간 ‘사회주의’, 혹은 ‘사회주의운동’에 대해 퍼부어졌던 수많은 우려와 조롱이 걷잡을 수 없이 순식간에 뇌리를 휘젓고 지나갔다.

 

“아무리 우리 사회가 민주화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라는 우려는 차치해 두자.

그보다는 오히려 구체적인 내용도 없고 대중적 정서도 고려하지 않은 채 행해졌던, “그래 나는 사회주의자요”식의 ‘선언적 운동방식’, 그리고 이러한 운동방식이 가져왔던 여러 폐해와 실패의 경험으로부터 생겨난 우려가 귓전을 세차게 흔드는 듯 했다.

“선언만 해서 뭐하냐, 내용을 채워야지”, “대중적 정서가 아직 이르니, 풀어서 이야기하면 된다” 등 등.

그런데 이런 우려는 그나마 견딜만한 것이었다.

어쨋든 운동하는 방식의 차이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견딜 수 없는 것은 “아직도 그 낡은 이념을 벗어 던지지 못했나”라는 조롱이었다.

‘사회주의’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소련과 동구를 봐라, 중국과 북한을 봐라. 이미 실패하고 낡은 이념과 체제가 어떻게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겠는가”라고 조롱하는데, 이것이 조롱으로 느껴지는 것은 ‘사회주의’가 미래의 전망을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기껏 과거의 잔재나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는 실제 현실의 사회주의운동이 미래의 전망은커녕, 과거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자리매김조차도 제대로 해내고 있지 못한 데에 대한 자책 때문이었다.

 

사실 10여 년 전, 이런 우려와 조롱을 벗어나 스스로 한 걸음이라도 더 내딛기 위해 ‘현장에서 미래를’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연구소운동은 출발했었다.

연구소는 신경영전략과 신노사관계, 나아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서, 현장의 활동가들과 함께 노동운동의 민주적 계급적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다.

노동운동의 정치적 전망을 왜곡하는 자유주의적 개혁주의나 사민주의적 개량주의, 그리고 민족주의에 맞서서도 힘겨운 이데올로기투쟁을 전개해 왔다.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의 노동통제 노동강도의 강화와 노동자계급의 분할, 그리고 노동조합운동의 개량주의화와 관료화가 어떻게 국가의 노동정책,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맞물려 있는지, 노동자들의 투쟁이 자신의 삶과 노동의 조건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를 어떻게 변화시켜 왔는지, 연구소는 이론과 정책으로 해명하려고 노력해 왔다.

 

한편으로는 이런 노력과 투쟁의 성과로,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의 계투 자체의 진전으로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는 이제 ‘새로운 이론적 실천적 과제’에 직면하게 됐다.

“그러면 대안은 뭐냐?”는 것이다.

‘자본 자체가 위기’인 현실에서, 그 위기의 표현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선 전세계 노동자민중들의 투쟁이 그 어느 때보다 고양되고 있는 현실에서, “‘노동자투쟁의 진정한 정치적 대안’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래도 철회하지 않는 이유

 

그런데 그간의 우리의 노력과 투쟁이 우려를 씻어내고 조롱을 넘어설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을 정리하지도 못했는데, 나는 그만 덜컥 ‘사회주의만이 대안’이라고 말해버리고 말았다.

이 답변이 그간의 노력, “하나하나 내용을 채워나가는 과정”에 찬물을 끼얹게 되지는 않을지, 또 하나의 ‘교의(도그마)’를 현실에 강요하는 꼴이 되지는 않을 지, 그래서 우려와 조롱만을 더욱 골 깊게 만들지는 않을지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사회주의만이 대안’이라는 답변을 다시 주어 담지 않기로 결심했다.

 

먼저, ‘사회주의’란 개념은 지난 노동자민중투쟁의 역사적 성과라는 점 때문이다.

그것이 현실사회주의의 역사적인 실패에 의해 상처를 받았어도, 그 상처조차도 내팽개치는 것이 아니라 보듬고 안아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미래의 대안사회가 한편으로는 자본주의로부터 나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 사회주의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평가와 그 극복으로부터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와 관련하여, ‘실패’의 원인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현실 사회주의가 이루어놓은 ‘성과’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

‘000주의’라는 비판과 딱지 붙이기 이전에, 오히려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들이 이루어지고, 그에 기초한 진지한 토론이 이루어 져야 할 때이다.

그 때 우리는 현실 사회주의가 진전시켜 놓은 성과를 계승하면서, 동시에 그 한계 혹은 오류를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내용을 하나씩 구체화해 나가면서 그 내용에 걸 맞는 용어나 개념을 세워나가야 하지, 그렇지 않을 때, 얼마나 공허한 선언인가”라는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87년 이후 노동운동의 발전에서 ‘근로자’가 아닌 ‘노동자’라는 용어를 사용해 나갈 때, 그 용어 자체를 사용하는 것이 하나의 절박한 이데올로기투쟁이었다.

‘사회주의’란 말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이루는 내용으로 다 분해해서 하나 하나의 내용이 다 정리되면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라는 용어 자체를 수호하기 위한 노력 자체가 하나의 투쟁이다.

‘어떠한 사회주의인가’를 둘러싸서 다양한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그래서 그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사회주의’라는 말 앞에 ‘민주적’, ‘과학적’, ‘혁명적’, ‘인간적’ 등등의 수식어를 붙일 수는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전망으로서의 ‘사회주의’라는 용어와 개념은 그 자체로서 수호되고 주장되어야 한다.

 

출발의 지점

 

그날 종합토론이 끝난 후 뒷풀이 자리에서, 나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옆에 있는 동료에게 이런 문제제기와 바램을 쏟아 부었다.

 

“‘자본주의의 위기’ 자체만을 이야기하면서, 그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이 ‘새로운 사회=사회주의’의 물적 조건을 어떻게 준비시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왜 이야기하지 않는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공세로 인한 노동자계급의 분열과 노동운동의 위기에 대해서는 그토록 과도하게 강조하면서, 투쟁 속에서 새로운 사회의 주체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에 대해서는 왜 그토록 야박하게 평가하는가?”

 

“이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공세에 맞선 전세계 노동자민중들의 투쟁은 ‘반자본투쟁’으로 진전되어 가고 있는데, ‘반자본’ 이후의 정치적 전망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가?”

 

마침 5월 23일부터 25일 사흘간에 걸쳐 ‘2003년 제1회 맑스 꼬뮤날레’가 개최된다.

적어도 아직 스스로 맑스주의자라고 생각하는 학자들과 활동가들이 모여, ‘지구화 시대의 맑스주의의 현재성’을 주제로 열띤 토론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십 수년 간 우려와 조롱 속에서도 ‘사회주의’ 이념을 포기하지 않고 현장에서, 지역에서, 그리고 여러 부문에서 치열하게 투쟁해 온 실천 활동가들도, 최근 사회주의 정치조직운동의 혁신과 연대를 내걸며 실천운동의 진전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토론과 실천적 모색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공세에 맞선 노동자민중들의 현실의 투쟁과 동시에 그 투쟁의 미래와 굳건하게 결합해 나가고, 그리하여 한국에서의 사회주의운동이 새로운 가능성을 얻고, 한국의 노동자민중운동이 이 결합 속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나간다면, ‘사회주의만이 대안’일 수 있다는 나의 답변은 최소한 우려와 조롱은 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회주의’는 그 자체로 옹호되어야 하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출발해야 한다.

비록 신문기자이자 소설가인 손석춘이 소설 [유령의 사랑]에서 맑스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했을지라도 말이다.

 

“왜 당신들은 나를 밟고 가지 않으려는가?

왜 당신들은 내가 걸음을 멈춘 그곳에서 단 한걸음도 더 전진하려고 하지 않는가?

왜 앞으로 걸어가지 않고 자꾸 뒤를 돌아보는가?”

 

[현장에서미래를]

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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