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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고추나무는 일으켜 세우지 말라!(2003.08.19)

쓰러진 고추나무는 일으켜 세우지 말라!

 

몇 달 전 개인 사정으로 농가주택으로 이사 온 뒤, 계속 눈에 거슬렸던 것이 텃밭에 심어져 있던 고추였다.

좋은 종자로 심었다는 고추가 집주인의 관리 소홀로 쓰러져 방치되고 있었고, 농사에는 애초부터 무지랭이인 나는 집을 나가고 들어오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쓰러진 고추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더 이상 바라만 보지 않고 쓰러진 고추나무를 일으켜 세워야겠다고 어줍지 않은 마음을 먹게 된 것은 쓰러진 고추들이 막 썩기 시작할 때에서야 였다.

 

고추나무 세우기

 

쇠막대기를 땅에 박고 비닐끈으로 쓰러진 고추들을 묶어 세우면서 내가 놀란(?) 것은 고추나무가 너무 좋은 종자여서 풍성하고 실하게 열린 고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 쓰러졌다는 점이었다.

이웃집 농부들이 고추나무가 어느 정도 자라면 ‘때’를 놓치지 않고 지지대를 받쳐 준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놀란 이유는 ‘때’를 놓쳤다는 점 때문이 아니었다.

고추나무가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열매를 맺어, 결국 사람이 지지대를 받쳐 주지 않으면 자신이 맺은 열매의 무게마저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썩을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무릇 이것은 ‘자연’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다.

더 많은 수확을 원하는 사람들에 의한 종자 ‘개량’의 결과였다.

이 ‘개량’된 고추나무는 주인을 잘못 만나 다 자라기도 전에 쓰러져 썩게 됐지만, 주인을 잘 만나 ‘때’를 맞춰 풍성하게 수확된 고추들의 운명은 어떨 것인가?

다 팔려서 소비되지 않으면 그대로 밭에서 썩거나 창고에서 썩을 것이니, 결국 고추의 운명은 ‘자연의 때’만이 아니라 ‘시장의 때’와도 궁합이 맞아야 온전하게 자신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자, 고추나무 하나 세우면서 드는 괜한 상념에 마음이 씁쓰레 해졌다.

 

밭 여섯 이랑이 보기에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둘이서 한나절을 끙끙대야 간신히 쓰러진 고추나무를 세울 수 있었다.

‘때’를 놓쳐 아쉬웠지만, “남은 고추라도 건질 수 있겠지”하는 조금은 흡족한 마음으로 밭두렁에 주저앉아 매판장에서 사온 막걸리로 목을 축이는데, 마침 곁을 지나가던 뒷집 통장 아저씨 왈(曰),

 

“쓰러진 고추는 일으켜 세우는 것이 아니여, 뿌리가 흔들려 바람이 들어가면 고추가 다 죽어. 괜한 일들을 했구먼.”

 

조급한 기대와 설레임

 

이날 이후, 나는 집을 드나들 때마다 어설픈 마음으로 세운 고추나무들이 하나씩 둘씩 누렇게 시들어 가고, 붉게 익다가 병이 들어 썩은 채 무게를 감당 못하는 시든 나무에 메달린 고추를 하염없이 바라보아야만 했다.

이러길 보름가량 지났을까?

여름 장마가 끝나가자 고추밭을 하루 빨리 뒤집어엎어 김장 배추와 무우를 뿌려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씩 긴장되고 흥분되어 갔다.

누렇게 시들어 빠진 고추나무를 뽑아내고, 밭이랑을 뒤집어엎어 고른 다음, 거기에 새로 김장 배추와 무우 묘종을 심을 생각을 하니 한편으로는 속이 후련해지는 듯했고,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기대와 셀레임이 가볍게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시들어 빠진 고추나무와 붉게 익다말고 썩어가는 고추는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밭을 뒤짚어 엎고, 새로운 묘종을 심는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은 벌써 내년 봄에 파릇파릇 솟아날 배추와 무우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이런 기대와 설레임으로 자랑삼아 장모님한테 이야기했는데, 정색을 하며 장모님 왈(曰),

 

“고추를 버리지 말고 일일이 다 따야 혀, 얼마나 좋은 고추인데. 썩은 부분만 도려내면 돼.”

 

2003.08.19.

세곡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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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간 베를린 묵언기행(黙言紀行)

25일간 베를린 묵언기행(黙言紀行)

 

몸이 불편했지만 발도로프 교사자격 취득을 위한 마지막 연수과정을 포기할 수 없다는 아내의 간청(?)을 받아들여, 보호자 자격으로 연수생 일행과 함께 동베를린에 도착한 것은 1월 21일경이었다.

 

출발 이전부터 이미 각오하고 예상도 했지만, 독일어라고는 한마디도 할 수가 없어 25일간 눈만 부릅뜨고 입은 꾹 다문 묵언기행(黙言紀行)이 시작됐다. 간혹 통역자로 함께 간 동갑나기 이(李) 선생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것 외에는 돌아다니며 직접 보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처음에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서 멀리 가는 것조차 두려워, 아내가 교육을 받고 있는 낮 시간 동안 숙소와 학교가 있던 동베를린의 중심가인 알렉산더프라츠(광장) 근처만 걸어서 돌아다니곤 했다.

 

독일어를 모르니 궁금한 것을 누구에게 물어 볼 수 없고, 책이나 자료도 읽을 수 없어, 그냥 발 가는대로 돌아다니면서 가벼운 눈요기만 하던 어느 날, 낯선 거리와 광장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로자 룩셈부르크 스트라셰(거리)’, ‘칼 리히프크네히트 스트라셰’, 그리고 ‘마르크스엥겔스 광장’이었다.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다. 아니 자본주의체제로 흡수 통일된 지 벌써 15년이나 지났는데, 어떻게 과거 동독 시절의 거리 이름이 그것도 자본주의체제를 혁명을 통해 타도하려고 했던 사회주의 사상가와 지도자의 이름을 딴 거리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는가?

 

만약 한반도에서 북한이 남한 자본주의체제로 흡수통일된다면 ‘김일성 광장’, ‘김정일 거리’ 등등의 이름이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이미 내전을 통해 분단된 체제에서 태어나 숨막히는 반공 반북의 메카시즘적 제도와 문화 속에서 47년간 살아 온 남한의 한 활동가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겨우 이런 정도였다. ‘동서독의 분단체제는 남북간의 6.25.와 같은 대량살육의 내전을 겪지 않아, 서로에 대한 증오와 적대가 그리 크지 않았던가 보구나.’ 아니 ‘과거 마르크스의 혁명이론이 소련의 도덕교과서로 박제화됐던 것처럼, 로자 룩셈부르크나 칼 리히프크네히트의 사상과 실천도 그 생생한 혁명성이 거세되어 아스팔트 거리 이름으로 박제화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그러나 머릿속을 맴도는 이런 저런 상념과 궁금증에 대해, 베를린에서 유학 중인 한 후배의 답변은 나의 알량한 상상과 추측을 여지없이 깨뜨려 버리는 것이었다. “독일인은 칼 마르크스나 로자 룩셈부르크를 사회주의 혁명가가 아니라 동서독 분단 이전의 ‘독일인’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거리 이름과 광장 이름을 그대로 남겨둔 것이다. 과거 동독에 있던 구소련의 잔재들은 이미 대부분 정리했다.”

 

독일 민족이 위대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독일이 지배계급이 무섭다고 해야 하나? 25일간의 묵언기행(黙言紀行) 동안, 겨울 내내 검은 구름에 가려 햇빛이라고는 거의 볼 수 없는 베를린의 날씨처럼, 무겁고 어두운 상념만이 머릿속을 짓눌렀다. 아내를 학교까지 데려다주느라 매일 지나쳤던 로자 룩셈부르크 거리에도 다른 거리와 마찬가지로 개똥들이 이리저리 뒹글고, 마르크스엥겔스 광장 주변의 건물도 다른 건물들처럼 온통 뜻 모르는 낙서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되돌아보니 단지 독일어만 몰라서 25일간 묵언(黙言)했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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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뛰어넘는 관심농법(觀心農法)?(2004.08.31.)

[텃밭이야기] 천년을 뛰어넘는 관심농법(觀心農法)?

 

몇 년전 궁예와 왕건이 나오는 TV드라마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드라마에서 궁예의 관심법(觀心法)이 화제가 됐었습니다.

보기만해도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일컷는데, 이 관심법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저는 궁예의 관심법(觀心法)이 드라마에만 있는 걸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천년이라는 시공을 뛰어 넘어, 관심법(觀心法)이 이 묻지마농장에서 관심농법(觀心農法)으로 부활하는 장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것입니다.

드라마처럼 펼쳐진 이 장면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던 저는 참으로 행운아라고 생각했습니다.

혼자만 보고 간직하기에는 너무나 마음이 설레서 그 장면을 텃밭을 아끼는 모든 분들과 함께 나누기로 결심했습니다.

 

며칠 전, 텃밭 한가운데 있는 목화밭에 항아리 선생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목화밭 주위를 한바퀴 주의깊게 돌아본 후 그냥 가시려길레 물어 봤습니다.

"손 좀 써야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항아리 선생님 왈, "이 목화는 봐 주기만 해도 잘 자라요."

 

그 때 저는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배추 모종을 심고 잡초를 뽑아내던 두 손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농법의 새로운 경지 아닌가?

이름하야 관심농법(觀心農法)의 경지 아닌가?

지난 봄에 무지개 학교 아빠들이 구사했던 태평농법에 이은 초롬아빠의 천공농법,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관심농법(觀心農法)의 경지가 아닌가?"

 

저는 이 어줍잖은 묻지마 농장을 경영하면서 불과 1년 사이에 관심농법의 경지까지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며칠 전에 이런 행운을 만끽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혼자서 말입니다.

그러니 어찌 이 장면을 혼자만 간직할 수 있겠습니까?

함께 나누어야죠.

 

목화나무가 비스듬히 쓰러져 있어도 오로지 목화꽃만 볼 수 있는 경지,

목화나무 밑에 잡초가 수북하게 자라고 있어도 그 잡초가 목화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을 거라는 목화나무에 대한 저 굳건한 믿음,

오랜만에 와서 물을 주지 않아도 주인의 따스한 시선만 받으면 목화가 잘 자랄 것이라는 저 확신 ----

농법의 새로운 경지, 관심농법(觀心農法)의 경지!!!

자라나는 잡초만 봐도 안절부절 못하는 저는 언제 저러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 ---

 

* 몇 집만 빼고 배추나 무를 다 심었네요.

아직 심지 못한 집은 빨리 서두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빈 텃밭이 몇 개 남았으니 더 농사짓고 싶으신 분은 그냥 말뚝박고 쓰시면 됩니다.

무우나 알타리, 갓 씨는 중앙공원 옆 재래시장에서 1봉지에 2,000씩 팔고, 배추 묘종은 텃밭 아래 비닐 하우스에서 1개당 100원에 팝니다.

 

2004.08.31.

세곡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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