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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텃밭 앞에 서서(2004.08.16.)

[텃밭이야기] 황량한 텃밭 앞에 서서

 

가슴이 시원하고 흐믓할 줄 알았습니다.

로타리 쳐서 땅을 갈아 엎으면.

웬걸, 오늘 아침 텃밭 앞에 서자, 갑자기 황량함이 엄습해 왔습니다.

씨를 뿌린 후 단 한번의 손길(?)도 닿지 않았지만, "아이들 교육용으로 쓴다"는 이유만으로 이번 참사(?)를 용케 비껴간 목화 때문에 마음이 쓰라린 것은 아닙니다.

최소한 올 가을 까지는 정성껏 보존하면서 전시했어도 되는데, 급한 마음에 철거해 버린 '천공의 표주박'때문에 가눌 수 없는 자책감이 들어서도 아닙니다.

잡초나마 푸릇푸릇했던 텃밭이 온통 흙빛으로 뒤덮이고, 그 한 구석에 열 몇 그루의 목화만이 외롭게 바람결에 흔들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지난 수 개월간 여러 사람들이 정성을 쏟았던 흔적들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사실 어제 로타리 치고 밭고랑을 낸 후, 이런 허전함을 조금이라도 달래 보려고, 팻말을 하나씩 다시 박으며 지난 기억을 되살려 봤습니다.

농사와 관련하여 숱하게 쏟아지는 물음에 무엇 하나 제대로 답변할 수 없어, 아예 텃밭 이름을 '묻지마 농장'으로 지어 버린 기억.

농사를 짓는 텃밭인지 술을 마시는 주막인지 구분이 안됐지만, 그래도 이리저리 눈치보지 않고, 또 마다하지 않고 사오는 막걸리나 맥주나 소주를 가리지 않고 마셨던 기억들 ---.

그런데 왜 농사지은 기억은 없고, 술 마신 기억만 남는 건지 ---.

 

아쉽지만 어제로 상반기 농사는 매듭졌습니다.

상반기에 농사지으신 분은 가을 농사도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텃밭이 조금 남습니다. 혹시 주변에 가을 농사를 지으실 분이 있으면 신청하시면 됩니다.

로타리비용은 15만원 들었습니다. 무지개학교팀이 7만원, 자유학교팀이 8만원 내기로 했습니다. 텃밭 당 1만원씩 내시면, 로타리 비용으로 내고, 나머지는 퇴비를 사다 놓을 예정입니다. 땅 상태가 좋다고 해서 거름을 다시 하지는 않았습니다. 필요한 분은 퇴비를 사다 놓을 테니까, 필요한만큼 가져다 쓰시면 됩니다.

이번 주중에 배추나 무를 심어야 속이 찬다고 하니, 서두르시기 바랍니다.

참, 텃밭당 어느 정도 거름을 해야 하는지 묻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가 가장 당혹(?)스럽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항상 다음을 되새겨 주시기 바랍니다.

'묻지마 농장'이라는 점을.

 

2004.08.16.

세곡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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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天空)의 표주박’, 전시 마감 임박! (2004.08.08.)

[텃밭이야기] ‘천공(天空)의 표주박’, 전시 마감 임박!

 

텃밭에 오거나, 혹은 지나가는 분들이 항상 의아해 하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텃밭 한가운데 초롬이네 밭에 있는 구조물입니다.

정확하게 측정해 본 것은 아니지만 높이가 2.5m 정도되는 각목 구조물에 호박잎 같기도 한 잎들이 현란하게 위로 솟구치는 '무엇'입니다.

 

저는 오늘까지도 그것이 호박인 줄 알았는데, 초롬 아빠가 표주박 2개를 따는 것을 보고서야 그 잎들이 표주박잎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 구조물이 ‘천공(天空)의 호박’이라는 예술작품인 줄 알았고, 워낙 '묻지마 농장'이라 물어 볼 엄두조차 내고 있지 않았는데, 오늘 초롬 아빠가 표주박 2개를 따내는 것을 보고서야 농사를 짓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저희같이 아둔하거나 굳어있는 머리로는 시도는 커녕 상상조차도 못할 기발한 농법에 감탄 외에 다른 할 말을 잃어 버렸습니다.

다만 그 거대한(?) 구조물에 아직까지는 표주박이 2개만 달랑 달려 있었다는 점만이 아쉬웠을 따름입니다.

이 전무후무한 농법으로 제작된 ‘천공(天空)의 표주박’ 작품이 얼마 안있어 철거됩니다.

8월 중에 텃밭 전체를 갈아 엎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빠들 몇이서 하루종일 텃밭 잡초를 거의 정리했습니다.

몇 주간에 걸친 장마로 키만큼 자란 잡초 때문에 텃밭에 들어가는 것조차 어려웠는데, 오늘 작업으로 이제 안심하시고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상반기 농사의 마지막 수확물들을 빨리 챙겨가시기 바랍니다.

정리되는데로 가능한 8월 중에 밭 전체를 갈아 업겠습니다.

 

거름하고 로타리치려면 비용은 가구당 1~2만원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하반기 농사는 대체로 배추나 무우을 심는다고 합니다.

가능한 8월 중에 심어야 배추도 속이 찬다고 합니다.

시금치, 파 등을 심겠다는 분도 계십니다.

서둘러서 텃밭 정리를 마쳐 주시기 바랍니다.

 

참, 그동안 잡초 속에 묻혀 있던 목화가 자태를 드러냈으니, 항아리 선생님도 목화를 어떻게 하실지 빨리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가을 농사도 농사지만, 평생에 한번 볼까말까한 ‘천공(天空)의 표주박’이라는 작품 전시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혹시 그간 이 작품을 보지 못했거나, 봤더라도 작품인줄 모르고 지나치셨던 분들은 빨리 텃밭에 와서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관람료는 따로 없고, 작품의 예술성에 심취하신 분은 초롬 아빠께 막걸리 한잔이라도 사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표주박이 2개밖에 열리지 않은 점에 대해 위로해 주시는 것도 잊지마시길 바랍니다.

 

이상 '묻지마 농장'에서 알려드렸습니다.

 

2004.08.08.

세곡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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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농장'의 분실물신고센터(2004.05.)

[텃밭이야기]'묻지마농장'의 분실물신고센터

 

어제 아빠모임이 끝난후에, 가방2(어머니용 까만가방, 어린이용 가방), 모자2(밀집모자, 어린이용 썬캪?), 그리고 어린이 신발1짝을 두고 갔습니다.

아빠든 엄마든 애들이든 늦게까지 노느라 정신이 없었던것 같군요.

물건은 현이네집 안마당 식탁위에 보관하고 있으니 언제든지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모임에 고추대만 세우는 줄 알고 참여하셨던 아빠분들, 방과후 평균대를 만들고, 창고 정리하고, 방과후 방충망 수리하느라 수고했습니다. 참 텃밭에 물을 주기 위한 수리작업도 마쳐서 조금은 편해질 것 같네요.

이상 '묻지마농장'에서 알려드렸습니다. 왜 '묻지마 농장'이냐구요?

텃밭에 농사지으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 가령 "감자는 언제 캐느냐? 토마토 가지치기는 어떻게 하느냐? 지금 뭘 심으면 되느냐? 등등 -, 항상 이렇게 대답해 드립니다.

"어려운 거 더이상 묻지말고, 알아서 하세요"

 

2004.5.

세곡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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