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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마틴 [여성의 몸에 관한 의학적 비유:월경과 폐경]

에밀리 마틴(Emily Martin) / 출전:The Women in the body (Beacon Press, 1987) / 김희선 옮김

 

..(중략)..

그러나 우리에게 또다른 종류의 공포는 생산의 결핍, 즉 잘못 사용된 공장, 실패한 사업, 게으른 기계에 관한 것이다. 산업 활동을 분석함에 있어 위너(Winner)는 근대사회에서 과학기술체계의 중지와 붕괴를 '행동장애'로 표현하고 그것을 "궁극적 공포,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피해야만 할 상태"로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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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은 생산에 실패한 생산체계라는 의미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명세서도 안 붙어 있고 쓸모 없고 잘 팔리지도 않고 버려지고 폐기되는 것을 만들어내는, 잘못된 생산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아무리 역겨워도 월경은 흘러나온다. 그릇된 방향으로 간 생산은 우리를 당황과 공포로 사로잡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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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생산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월경에 적용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냉소적인 의미에서 여성이 생리를 할 때 조절이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출산을 할 수 없고, 종을 지속시킬 수 없고, 아기와 함께 가정에 안주할 준비가 안되어 있고, 남성의 정자를 성숙시키기 위해 안전하고 따뜻한 자궁도 제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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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교재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이 두 호르몬(에스트로겐과 프로제스테론)의 급작스런 결핍은 자궁내막의 혈관에 경련을 일으켜, 자궁내막의 표면층으로 흐르는 피의 흐름이 거의 멈추어버린다. 결과적으로, 자궁내막의 표면층으로 흐르는 피의 흐름이 거의 멈추어버린다. 결과적으로, 자궁내막 조직의 상당부분이 죽고 표면이 벗겨져 자궁강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적은 양의 피가 껍질이 벗겨진 자궁내막 벽에서 새어나와, 다음 며칠 동안 약 50그램 정도의 피가 손실된다. 벗겨진 자궁내막 조직과 피, 그리고 껍질이 벗겨진 자궁 표면에서 흐른 상당량의 혈청액, 이 모두를 월경액이라고 하는데, 이는 약 3~5일간 자궁 조직의 수축에 의해 점차 밖으로 밀려난다. 이 과정을 월경이라고 한다.](Guyton, Physiology, P.525)

 

 이 교재의 설명에도 파국으로 치닫는 분해의 이미지, 즉 '멈추어', '죽고' , '껍질이 벗겨져',  '손실되고',  '밀려난다'등의 단어들이 나온다. 

 이것들은 중립적인 단어들이 아니다. 오히려 실패와 분해의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모든 교재가 월경을 묘사함에 있어 그 같은 다량의 부정적인 용어들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인되지 못한 문화적 태도가 그같은 평가적 단어들을 통해 과학적 글 속으로 스며들어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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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논의에 대한 하나의 반응이 있다면, 그것은 객관적 의미에서 월경은 하나의 붕괴와 퇴화의 과정일 뿐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그것을 묘사하기 위해 특정 단어들이 사용되는 이유는 그 용어들이 실제로 발생하는 일을 묘사하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나는 월경과 근본적으로 유사한, 몸 안의 다른 과정들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반론을 제기하려 한다. 이는 그 과정들도 어떤 내막의 허물 벗겨짐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것도 붕괴와 퇴화의 용어로 묘사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위(胃)의 내막도 정기적으로 벗겨지고 대체되며, 정액도 남성의 여러 관들을 통과할 때마다 떨어져나간 세포물질을 흡수한다.

 위 내막은 소화중 생성되는 염산에 의해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위에 인용되었던 교재들에서는 점액의 분비, 점액세포가 위산에게 주는 간벽, 그리고 위 내벽의 정기적인 재생에 강조점이 두어져 있다. 여기에는 퇴화, 쇠약, 퇴보, 복원, 혹은 보다 중립적인 단어인 허물벗음, 벗겨짐, 대체 등과 같은 용어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위액분비의 주된 기능은 단백질의 소화를 시작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위벽은 그 자체가 거의 단백질인 부드러운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위의 표면은 자신이 소화당하지 않도록 특히 잘 보호되어야만 한다. 이런 기능은 위의 모든 부분에서 대단히 풍부하게 분비되는 점액에 의해 주로 수행된다. 위의 전체 표면은 아주 작은 점액세포층으로 뒤덮여 있고, 점액세포는 거의 전체가 점액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점액은 위액분비로 인해 위장 벽의 깊은 안쪽층이 상하지 않도록 한다.](Guyton,Physiology,p.498-499)

 

생리학 입문서의 이런 설명에는, 강조점이 근육과 위벽의 보호에 두어져 있다. 그것이 월경과 매우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점액세포층이 분명히 지속적으로 벗겨져나간다고는(그래서 소화된다고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비록 내가 참조한 모든 일반 생리학 교재가 월경을 복원을 필요로 하는 분해의 과정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의과대학생들을 위한 전공 교과서에서만은 위 내막에 관해서는 보다 중립적인 용어인 '벗겨짐'과 '재생'으로 묘사하고 있다. 위 내막과 자궁내막에 발생하는 일에 대해, 우리는 부정적 시각으로는 복원을 필요로 하는 붕괴와 쇠퇴로 볼 수 있고, 긍정적 시각으로는 지속적인 생산과 보충으로 볼 수 있다. 같은 동전의 양면, 즉 여성과 남성 둘 다 가지고 있는 위에 대해서는 긍정적 시각이 선택되는 반면, 오직 여성만이 가지고 있는 자궁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선택되는 것이다.

 

..(중략)

 

출처: 여성의 몸,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성의 상품화 그리고 저항의 가능성 /조애리 외 옮김/ 한울 펴냄

[여성의 몸에 관한 의학적 비유: 월경과 폐경], 에밀리 마틴, p2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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