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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엔 화장실에 간다고 잠이 깼다가 다시 자려 누우니 한동안 잠이 안 왔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며 든 생각은
시험 문제 출제, 연구수업 준비, 읽기 수행평가 채점, 쓰기 수행평가 채점(200명의 글을 두 편씩 읽어야 한다 ㅠㅠ), 논술 능력 평가 채점, 오늘 내로 처리해야 할 공문 두 건(국회의원들 국정감사 기간이 되니 이런 저런 보고를 하란 게 많다.), 시험 전까지 나가야 할 진도..
처리해야 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것들이라 스트레스를 받았다. 수업 시간에 말하기 수행평가도 해야 하는데 아 시간이 빠듯해.
밤새 걱정한다고 도움 될 건 하나도 없는데,
성경에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마라. 걱정으로 네 키를 한 자라도 늘일 수 있느냐'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 맘처럼 되진 않는다.
두어 시간 정도 말똥말똥 깨어 있었더니 퍽 피곤하다.
그런데 막상 출근을 하니 또 그럭저럭 일이 된다. 일이란 게 또 닥치면 되게 마련인가보다.
오늘 복장을 터지게 한 것은 일이 아니라 한 아이의 얼굴이다.
수업에도 안 들어가는 1학년 아이인데 교무실에 있는 온 쌤이 그 아이의 얼굴과 이름을 안다.
수업에 들어가길 늘 거부하고 담임 곁을 맴돌기 때문이다. 너무나 무기력하게.
매일 배와 머리가 아프고 교무실에서 잠을 자거나 앉아 있다.
1학기 초에는 친구들이 뭐라고 해서 교실에 가기 싫다고 했다.
반 아이들을 불러 타이르고 이젠 친구들이 나서서 친하게 지내려고 하니 다른 핑계가 생겼다.
수업 시작하고 5분쯤 늦게 등교를 하고선 수업 중간에 들어가면 창피해서 못 들어가겠다고 한다.
데리고 들어가려면 힘이 세고 안 들어가겠다는 의지가 강해 아이를 보건실이나 교무실에 있게 하게 된다.
그럼 교무실에 있다가 언제쯤 들어가자는 약속을 하면 그러마 한다. 그러나 그 시간이 되면 가방을 두고 집에 가거나 다시 들어갈 수 없다고 버틴다.
어떤 날은 교실에 간 줄 알았는데 화장실에 있는 아이를 만나거나 복도를 배회하는 아이를 만나기도 한다.
어쩌다 수업에 들어가면 한 시간 지나면 바로 내려와 머리나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겠다고 한다.
학교에서 하는 대부분의 일에 참여하지 않고 늘 이런저런 이유를 댄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도 진짜 이유는 아닌 듯 하다. 문제점을 개선해도 나아지는 게 없고 다시 새로운 이유들이 생겨난다.
아이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프다. 배와 머리가 늘 아픈 것도 표현되지 못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담임은 그런 아이를 헤아리고 무척 애를 쓴다. 올 때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끈기 있게 아이가 지킬 만한 다음 약속을 하려 한다. 때로 단호하게 이야기할지언정 성을 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올해 첫 발령을 받은 신규 교사인데 담임에 업무에 학교일이 무척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그 아이에게 시간과 정성을 바친다.
나는 그 반 부담임이기도 하고, 바로 뒷자리 쌤 반의 아이이기도 해서 교무실에 아이가 있을 때 몇 번 이야기를 해 보았다.
잠만 자면 심심할 테니 읽기에 좋은 책도 권해 주고, 도서관에 같이 가서 책도 골라 주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그 아인 어른과 이야기할 땐 속내든 아니든 곧잘 이야기를 잘 한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듯도 하다. 자기 블로그도 보여준다. 좀 달라져야겠다고, 인생이 늘 이렇게 피해다닐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는 듯도 하다.
그런데 다음 날이면 처음과 똑같은 무기력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루이틀은 안쓰러웠으나 같은 일이 2학기 들어서도 반복이 되자 뚱한 얼굴로 교무실에 들어서는 아이를 보면 짜증이 인다.
아인, 우리 선에선 어찌할 수 없는 듯하다.
학교에 오는 상담 교사와 연계하여 상담을 하게도 하고
학교에서 강사가 와서 예술 치료를 하기에 그 프로그램에도 참석하게도 하고
가족이 받을 상담을 권하기도 했지만
어디에도 가진 않는다.
지키지 않을 약속으로 당시의 어려움만 모면하고 일을 맞닥뜨리면 도망을 간다.
아이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면, 엄마는 엄한 아버지가 알면 안 된다며 아버지에겐 그 일을 알리지 말라 한다. 그리고 본인도 어쩔 수 없으니 아이를 유예처리하거나 그냥 두라고 한다. 학교에도 보내지 않겠다고 한다.(하지만 아이는 학교에는 온다. 그리고 학교에 오면 다시 나가려 한다.)
너무 심한 날 상담을 위해 부모를 오라고 하니, 학교에 온 엄마는 아이의 답답한 모습을 보고 도리어 화를 내고 나가버린다. 전화를 하니 핸드폰이 꺼져 있다.
아이는 혼자서는 변할 수 없을 것이다. 혼자만 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아이 문제가 부모에게 있다는 것이 너무 분명한데 부모는 그저 아이를 포기하려 한다.
아이 아빠가 아파 병원에 입원했다고도 하니 집안일도 복잡한가보다.
시간이 지날 수록 담임도 지친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진작에 지쳤다.
연락이 되는 엄마는 학교 전화를 반기지도 않고 그냥 아이에게 신경을 끊으라 한다.
아이를 보면 반응도 없는 거울에 대고 혼잣말을 하는 심정이다.
뭘 더 할 지도 모르겠고, 모른 척 하자니 자꾸 보이고.
아이가 내 얼굴에서 답답해하는 기미를 챌까 염려도 되지만,
아이를 마주치면 환한 표정이 안 나온다.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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