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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 현상

이 영화, 봤다. 오랜만에 나오는 괴수영화인데다 공짜로 볼 기회였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영화를 본 대전 씨너스에서는 그 날 다이하드와 므이, 화려한 휴가를 틀어주고 있었다. 뜬금없는 플롯이 등장하고 서양인이 전형적 한국 신파를 연기하는 걸 보고 있으려니 이 사람, 영화 참 못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자전적 글에서는 조소를 넘어 연민까지 느껴졌다. 나는 정말 이 영화를 보고 나선 심형래라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동정심이 동해버렸다.

 

사람들 영화를 참 편파적으로 본다. 영화 관람객은 크게 두 개로 나뉘었는데 애국심으로라도 영화를 봐야한다는 축이랑 나머지 하나는 평소 예술영화 깨나 본다는 사람들 혹은 영화를 '읽는다는' 축이다. 어느 쪽이든 장르 영화가 그 자체로서 뻗어나갈 싹을 잘라버린다. 전자야 말할 것도 없지만 후자는 더욱. 프랑스에서나 통할 영화 문법만을 갖고 모든 영화에 들이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럽은 장르 영화의 불모지나 다름 없다. 둘이서 혹은 서너명이서 잔잔한 호숫가 주위를 걸어다니며 수사의 향연을 벌이는 것도 나름의 매력이 있겠지만 영화가 사람 사이의 '관계'에만 집착할 이유는 전혀 없다. 나아가, 영화가 '스토리 텔링'에 목매달 필요도 하등에 없는 것이다.

 

조지 로메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좀비 영화를 보고 빈약한 플롯에 남는 것은 '피튀기는 살점'밖에 없단 식으로 말하는 건 다분히 동어반복적이다. 감독 스스로 혹은 장르 스스로 그 효과를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에 계란 흰자를 바르고 눈가에 쇠고리를 박은 펑크족에게 "괴기스럽다"라고 말하는 것, 그게 바로 펑크족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던 것처럼.

 

세상에 일반적인 게 있을 수 있을까. 일반적인 걸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을까. 원칙은 어디까지나 '잠정적 합의'일 수밖에 없다. 다양한 관점, 유연한 시각으로 영화를 볼 수는 없을까. 장르 영화는 장르 영화대로 존중받고 그 스타일 안에서 논란이 시작됐으면 좋겠다. 어설픈 대화, 비현실적인 플롯으로도 하나의 생명이 탄생할 수 있다.

 

다시- 괴수 영화는, 괴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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